클론(가수)

[1]

SBS 스타상 가수부문 대상[2]

1995년

1996년

1997년

룰라

클론

H.O.T.

날개 잃은 천사

꿍따리 샤바라

행복


서울가요대상 대상

1995년

1996년

1997년

룰라

클론

H.O.T.

날개 잃은 천사

꿍따리 샤바라

We are the future

1. 개요
2. 경력
2.1. 데뷔
2.2. 1집 - 1996년 별들의 전쟁의 승리자
2.3. 2집
2.4. 3집
2.5. 4집
2.6. 대만 진출
2.7. 강원래의 교통사고로 인해 벌어진 예기치 못한 잠정 활동 중단
2.8. 2017년, We Are
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댄싱듀오.

90년대 1차 한류스타이자 90년대 후반기를 대표하던 남성 듀오 그룹.[3]

Clon[4]

강원래[5], 구준엽[6]으로 구성되어 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남성 댄싱 듀오.

데뷔곡 '꿍따리 샤바라'가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여러번 거머쥐었고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 한 때 해외까지 진출했던 듀오다. 당대 가수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터프가이임을 강조했다. 실제로도 강원래, 구준엽 둘 다 키가 꽤 큰 편으로 강원래는 183cm, 구준엽은 178cm이다.

2017년 6월 20일 데뷔 20주년을 맞이해서 미니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주요 히트곡으로 `꿍따리 샤바라`, ``, `도시 탈출`, `Funky Tonight`, `돌아와`, `사랑과 영혼`, `초련`,`빙빙빙`,`내사랑 송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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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2.1. 데뷔

경기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은 당시 학교와 인근 지역에까지 알려진 소문난 춤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서로 춤을 추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으며, 이태원의 나이트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서울에서 잘 나가던 춤꾼들 사이에서도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고교 졸업 이후 이들은 댄스경연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7]한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1990년에 현진영이 주축이 된 현진영과 와와에서 와와 1기 멤버로 활동했지만,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군입대 크리를 겪으며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8]

제대 후에 구준엽은 1993년 이탁과 '탁2준2'[9]로 활동했고, 강원래 역시 유명가수들의 백댄서 생활을 하다가 클론 결성 1년 전인 1995년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에 객원 랩퍼로 등장해 주목을 받으면서 가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그 뒤 1990년대 중반 김건모를 키웠던 히트 제작자이자 작곡가인 김창환에게 발탁된 이들은 당시 김창환 사단의 간판이자 당대 최고의 음반판매 깡패였던 김건모가 김창환과의 불화로 라인뮤직을 떠났고 신승훈도 김창환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곡을 작곡하는 등 대스타를 잃으면서 흔들린 라인뮤직의 구원 투수로 발탁되었으며 1996년 5월에 전격 데뷔했다.

2.2. 1집 - 1996년 별들의 전쟁의 승리자

김창환 사단의 구원투수가 된 이들은 김창환이 작사,작곡한 <쿵따리 샤바라>로 1996년 별들의 전쟁 시기에 참여했다. 이 당시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이 컴백해서 활동하던 시기였으며 이들 모두가 음반을 발매하자마자 한 달도 안 되어 1위 후보에 오를 만큼 정말 각축전이 심했던 시기였고 그 외의 곡들도 꽤 오랫동안 순위권에 머물 정도로 스터디 셀러곡들이 많은 시기였다.[10]

강원래와 구준엽은 공식 데뷔를 늦게 했을 뿐이지 가수 활동을 한지는 이미 10년 가량 지난 중고 신인이었고 기성 가수들과 함께 활동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능수능란하게 적응을 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제작사에서는 앨범 발매 전부터 미리 클럽 등지에 데모 테입의 형태로 이 곡을 배포해 두면서 크게 홍보를 한 결과 이들은 앨범을 발매한지 1달도 안 되어 각 방송사의 1위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이들은 이 기세를 몰아서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김건모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스피드'로 4주 연속 1위를 한 다음 대기록에 도전할 때 그 기록을 저지하고 새로운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그 날 이들은 가요톱10 첫 1위가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 날 김건모는 바로 전년도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김창환사단) 소속의 클론이 1위를 할 때 축하를 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움을 참아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에 김건모의 '스피드'가 골든컵 수상에 성공했다면 김건모는 조용필에 이어서 4년 연속 골든컵, 정규앨범 4장 연속 골든컵 수상곡 배출[11]로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12]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 뒤 이들은 그 여세를 몰아 '꿍따리 샤바라'로 다른 경쟁작인 룰라의 '3!4!'와 dj.doc의 '여름 이야기'와의 경쟁 끝에 골든컵의 주인이 되었으며 1집의 후속곡인 <난>도 1위 후보에 오르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이러한 높은 인기를 증명하듯이 1996년에 개최된 SBS 스타상과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13]

2.3. 2집

그 뒤 이들은 1집의 기세를 이어서 1997년 6월에 여름 바캉스 곡인 <도시탈출>을 선보였지만 기획 단계부터 1집의 성공을 너무 크게 의식한 나머지 <쿵따리 샤바라>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평가를 떠나 제작자의 앨범 홍보 방향부터가 대놓고 '쿵따리 샤바라 2'였다.[14] 참고로 이들뿐 아니라 어떤 노래가 대박을 터뜨리면 다음 앨범에서 똑같은 컨셉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엔 이미 성공 공식이 보장되어 있기에 적당한 수준의 인기를 끌 수 있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고, 이전 히트곡만큼 큰 인기를 누리기가 어렵고 가수의 위상을 올리기가 힘들다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클론의 경우 정확히 이에 부합하는 사례로서 도시탈출이라는 노래로 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했지만, 방송3사에서 골든컵을 비롯해 각종 1위를 쓸어남았던 전년도의 열풍에는 훨씬 못 미치는 인기였다.

당시의 주요 경쟁자는 임창정이었으며 그는 예능에서 끌어모은 인기를 가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그 때 또 다시>를 대히트시켰고, 1년 전과는 반대로 그가 3집에서 2곡의 골든컵을 받은 건 물론이고 여러 상을 쓸어갔다. 그 뒤로도 유승준의 가위, 의 해변의 여인, H.O.T.의 행복, DJ DOC의 DOC와 춤을 등 쟁쟁한 곡뿐만 아니라 2세대 아이돌로 바뀌어 가는 시대였던터라 타이틀곡은 결국 각 방송사에서 1위 후보만 전전하다 활동을 마쳤다. 이후에 후속곡인 발라드 풍의 <빙빙빙>으로 10위권에 들면서 선전했지만 음반판매량은 1집의 밀리언 셀러에서 수직으로 하락해 20만장 대에 그쳤으며 1집에 비해 크게 하락한 차트 순위와 음반판매량으로 그들은 전형적인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다.

하지만 2집의 부진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위상이 대폭 축소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카리스마 이미지와 세련된 비트, 친근한 멜로디 등등 가수가 가지고 있던 음악적인 이미지와 컨셉은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1집의 인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2집이 상대적으로 부진하긴 했지만 절대적인 인기가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곡만 잘 뽑으면 얼마든지 이전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의 입지는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 무렵부터 한류 열풍이 슬슬 불을 지피면서 당시에 대만 쪽으로 프로모션을 하게 되어 가수로서, 연예인으로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15]

2.4. 3집

약 1년 반의 공백기를 가진 후 1999년 3월 27일 3집을 발매했다. 두 멤버 모두 강렬한 랩핑과 낮은 음역대의 허스키 보이스를 가지고 있어 기존 멤버들만으로는 음악적인 변화를 꾀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닌 객원맴버 <김태영>과 같이 활동했다. 테크노 리듬과 펑키 리듬을 접목한 <돌아와>를 타이틀로 하여, 2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하고 한국에서의 하락세를 반등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후속곡으로는 <funky tonight>, When a child is born을 리메이크한 <사랑과 영혼> 등을 선보였는데, 두 곡 모두 이전 활동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비트와 레트로 느낌의 멜로디를 접목하여 음악적인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무렵에 대만에서의 인기가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H.O.T., NRG, 베이비복스와 함께 중화권 한류 1세대로 상징적인 인기를 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만, 홍콩 등지에서 이제껏 볼 수 없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한류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에는 일본 문화가 이들 지역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보통 여리여리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으며, 강렬한 남자 이미지조차 비주얼 락계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 낮은 톤의 목소리로 강렬한 춤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클론은 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고, 남자들의 로망이자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으며 초창기 중화권에서의 한류를 주도한 대표 가수로 큰 인기를 끌었다.

2.5. 4집

3집에서의 반등 및 한류 열풍의 시발점으로 롱런의 기반을 다진 이후, 2000년 4월에 4집 앨범을 발매했다. 색상 반전의 야광봉춤 컨셉인 <초련>이 타이틀곡이었으며 후속곡은 <거짓말>이라는 댄스곡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테크노를 적극적으로 접목시켜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비트로 승부한 <초련>은 기존의 클론 이미지와 아주 잘 부합하면서 대중적으로 부담없이 다가오는 곡이었고, 결국 나이트클럽 및 레크리에이션계를 섭렵하며 2,3집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끌어 완벽하게 정상의 자리로 다시 올라섰다.

KBS 뮤직뱅크에서 무려 4주 1위, MBC 음악캠프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4년 만에 다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후속곡인 <거짓말> 역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선전했다. 색상 반전으로 인한 충격과 야광봉 퍼포먼스의 손목 돌리기가 큰 이목을 끌며 유행을 탔고, 20대 나이트 시장을 정확히 타켓팅한 것이 주요한 성공 이유 중 하나였다. 초련의 대성공으로 음반판매량 역시 3집 27만장을 훌쩍 뛰어넘는 41만장의 판매량을 올렸다.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최전성기 1집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갈 만한 위상을 찾아올 수 있었고, 해외에서의 인기를 감안하면 1집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절정의 인기를 끌어올려 인기 가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참고로 초련은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귀에 익은 버전은 Techno Mix, 즉 테크노 버전이며 오리지널 믹스(Original Mix) 버전이 따로 있다. 그리고 5집에 추가된 2005 Glrgolos. Re-Mix 버전도 있다.

2.6. 대만 진출

성공적인 1집 데뷔 후 여름을 대표하는 남성듀오로 인기를 얻으며 '난', '도시탈출', '초련', '사랑과 영혼' 등의 각종 히트곡을 쏟아낸 것은 물론(펌프 잇 업 게임 때문에 Funky Tonight도 꽤 인지도가 있는 편.) 그 인기가 국외까지 퍼져 아시아권의 원조 한류가수라고도 불린 바 있다.

대만에서는 '빙빙빙'[16]이란 노래를 히트치면서 당시 故마이클 잭슨급의 인기[17]였다고 하니... 지금도 클론을 기억하는 대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대만 활동내용들이 대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중 구준엽의 인기는 대단해서, 몇년 연속으로 대만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선정되며, 대만 톱스타 '서희원'(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과 사귀었다. 그야말로 98~99년 당시 대만의 구준엽은 추후 일본의 배용준보다 더한 인기를 가지고 있었던 슈퍼스타였다고 보면 된다.[18] 2000년도에도 대만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에 있었으나 후술하는 강원래의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여담인데 대만에서는 이 둘이 사귄다는 소문까지 자자하여 클론이 어이를 날렸다고 한다.

2.7. 강원래의 교통사고로 인해 벌어진 예기치 못한 잠정 활동 중단

2000년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던 도중 (현재의) 신논현역 사거리를 좌회전하는 과정에서 불법 유턴한 차량과 충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는 사고[19]를 당했다. 이 사고 때문에 강원래가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클론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의 하반신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됨과 동시에 댄스 가수 활동 역시 불가능하게 되자 클론은 끝내 해체되었다.

이후 2005년 휠체어를 이용한 안무를 만드는 강원래의 투혼, 그리고 무명가수 원우가 객원으로 합류해 5집을 내고 '내사랑 송이'라는 타이틀곡으로 컴백해 휠체어 댄스를 보여주며 건재함을 과시한 뒤 5집을 마지막으로 둘은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강원래는 라디오 DJ로, 구준엽은 'DJ KOO'란 이름으로 솔로 가수 및 클럽 DJ로 활동 중이다.

4년에 한번 월드컵 시즌이 되면 TV에 함께 얼굴 정도는 비춰주며 월드컵 시즌에 만들어진 응원가들은 각종 대회에 나오면 울러 퍼질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금봐도 세련된 파워풀한 댄스와 터프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큰 인기를 구가했다. 대한민국 댄스 역사에서 도 파워풀한 남성안무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그룹으로, 남성다운 선이 살아있는 멋있는 안무를 잘 만들었으며 그런 안무가 돋보이는 대표곡인 <난>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솔로 댄스가수인 MKMF에서 구준엽과 함께 특별무대를 만들었다.

특히 강원래는 이주노, 박철우, 양현석, 현진영 등과 함께 대한민국에 흑인음악, 흑인댄스를 도입한 이태원 춤꾼 1세대로 당시 개인 댄스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 가요계의 유명 아카데미 단장들이나 댄스 스승들은 강원래 밑에서 시작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2.8. 2017년, We Are

2017년 6월 29일 12년 만의 새 앨범 'We Are'을 발표하면서 컴백했다. 다만 과거의 클론 음악스러운 곡들보단 클럽풍 EDM의 곡들인지라[20] 클론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워하는 듯하다. 여담으로 수록곡중 두곡이 하드스타일이다.

3. 여담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등과 함께 라인음향 소속으로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휩쓴 김창환 사단의 일원이며 정확히는 김건모가 라인음향을 떠난 뒤 기획해서 데뷔시킨 케이스. 다른 라인음향 가수들과는 달리 가창력은 떨어지지만 댄서 출신이라서 그런지 춤실력은 대단히 뛰어났다. 즉, 댄스와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를 예견한 김창환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2014년,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본인들의 노래 「쿵따리 샤바라」의 피쳐링으로 참여했으며 랩 파트를 나레이션으로 했다.

공부를 못해도 성공한 케이스 중의 하나로, 구준엽과 강원래는 학창시절 학업성적이 반에서 꼴찌는 둘이서 도맡았다. 이 2인방보다 더 성적이 나쁜 학생은 운동부였다고 한다. 공부를 못하는 대신 다른걸 엄청나게 잘해서 성공한 사례이다. 그렇다고 공부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정도 재능이 없으면 닥치고 공부나 해야 한다.

한국 음악사에서 댄스로 이름을 날린 그룹이었지만 강원래는 지저분한 사생활과 대인 관계때문에 그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동료 연예인이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하늘에겐 원수와도 다름이 없으며, 이하늘의 여자친구를 강제로 뺏어갔던 이야기를 DJ DOC 7집에 디스곡으로 발표했고, 이후 라디오 스타 클론,박미경 편[21]에서 강원래가 이 내용을 발언함으로 이하늘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다만 나중에 런닝맨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현재는 앙금을 풀었으며 구준엽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듯하다.

개그맨 지상렬염경환이 개그 콤비 듀오로 "클놈"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를 했었다. 이에 클론 측에서는 자신들을 희화한 패러디를 보면서 클놈에게 너 고소를 시전하려고 했다가 자세히 지켜보니까 개그 컨셉이 너무 재미있어서 결국은 고소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입었던 의상을 지원했다고 한다.[22]

그레서인지 클론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 때 괜히 남자 두 명(그 중에 한 명은 삭발)이 있으면 쓸데없이 클론 따라하기 놀이장난이 유행하기도 했다.

JTBC정치부 회의에 나오는 이상복 부장과는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다른 반장들이 부장님 친구라서 그런지 생방송 중에 클론을 언급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덕분에 클론 새 앨범 발표 예정, 클론 새 앨범 발표 같은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23]

중국의 배우, 가수 서희옥[24]이 클론의 <도시탈출>을 <환상적이야>라는 곡으로 번안해서 불렀다.https://www.youtube.com/watch?v=34hd2867q8s

2018년 3월 9일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 공연을 했다. 기사 영상


  1. [1] 상단의 사진은 1996년 난(Nan)이라는 곡의 MV에서 사용된 장면 중 하나를 캡쳐한 것이다.
  2. [2] 1996년부터 지금의 SBS 가요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어 실시된다.
  3. [3] 90년대 전반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듀스가 있다.
  4. [4] 다른 동음이의어와는 달리 e가 빠진 표기를 쓴다.
  5. [5] 서브보컬, 메인래퍼, 리드댄서
  6. [6] 메인보컬, 메인댄서, 서브래퍼
  7. [7] 강원래가 1위, 구준엽이 4위였다고 한다.
  8. [8] 이들을 대신해 후속으로 들어온 와와 2기 멤버들이 다름아닌 이현도김성재로, 추후 듀스라는 그룹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9. [9] 그룹 이름 때문에 탁재훈과 같이 한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현진영과 음악적으로 관계가 깊은 '이탁'과 함께 활동했으며 그룹명도 당연히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0. [10] 1996년 상반기 가요계는 1995년 9~12월에 쏟아진 명곡들이 1위 곡을 비롯한 10위 권을 점령했으며 1995년 10월에 나온 음반이 1996년 6월에도 10위권 이내에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이 때는 크게 롱런한 곡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1996년 1월 3일~5월 15일 방송분 내내 1위를 차지했던 곡 모두가 1995년 발매곡이며 설운도의 '쌈바의 여인'(1995년 7월 발매)은 1996년 10월 말까지 30위권 안에 있었다.
  11. [11] 1993년 1집 첫인상, 1994년 2집 핑계, 1995년 3집 잘못된 만남으로 골든컵 수상.
  12. [12] 당시 1위 제조기였던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3집 앨범에서는 1위 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13. [13] 참고로 그 해에는 치열한 대접전으로 인해 가요톱텐에서 <쿵따리 샤바라>와 같이 골든컵을 수상한 곡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이 유일하며 1996년에 발매된 곡으로는 쿨의 <운명>이 유일하다.
  14. [14] 도시탈출 뮤직비디오 로고를 보면 대놓고 '쿵따리 샤바라 2'라는 표현이 나온다.
  15. [15] 참고로 최근 상황을 비교하자면 EXID가 이와 비슷하다. 역주행 신화를 쓴 위아래의 메가히트 이후 비슷한 컨셉의 Ah Yeah, Hot Pink를 연달아 내놓았지만 이전 곡과 비슷하다는 혹평을 적지 않게 받으면서 결국 위아래의 그늘을 지우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물론 위아래라는 성공 공식을 상당 부분 벤치마킹한 뒤의 두 노래 모두 큰 인기를 모으며 방송사 1위 및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도 EXID하면 하니의 직캠 역주행이 대표 시그니처로 떠오르는 만큼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클론의 경우엔 쿵따리 샤바라가 1위를 휩쓸고 대상까지 수상했던 메가 히트곡이었던 만큼, 이보다 훨씬 인기의 격차가 컸다.
  16. [16] 홍콩의 가수 겸 배우인 두덕위(杜德偉)도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17. [17] 당시 마이클 잭슨이 대만에 방문했을 때 공연료가 당시 클론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단지 안타깝게도 당시 수익배분체계가 잘못되어 있던 것 때문에 공연을 중개하던 연예 기획사들이 중간에 많이 가로챈 영향으로 클론 멤버 두 사람은 배분을 별로 못 받아서 큰 돈을 벌지 못했다.
  18. [18] 물론 일본보다 대만의 연예시장 자체가 작았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지만 어찌되었건 각국 단기간 연예계 서열에서 정점은 분명 구준엽이 위였다.
  19. [19] 이 이야기는 스펀지에서 380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사고 당시, 사고를 목격한 행인이 도로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강원래를 추후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인도로 옮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부러진 뼈가 신경을 건들게 되었고, 만일 행인들이 그를 옮기지 않고 놔두었다면 하반신 마비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척추나 경추 다친 사람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길 복판에 내버려 두었다면 2차 사고로 사망했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20. [20] 각각 라디오 DJ와 클럽 DJ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음악적 성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21. [21] 2010년 3월 17일 179회, 3월 24일 180회 방송분
  22. [22] 클론이 직접 방송에 출연해서 "우리가 클놈에게 의상을 지원해준 적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23. [23] 2017년 7월 17일에 정치부회의에 직접 출연했다! '강지영의 Talk 쏘는 정치' 코너에서 이상복 부장과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했고 아주 잠깐 진행도 해보았다. 클론이 프로그램 클로징 멘트를 끝내고 동창끼리 다정하게 셀카 찍는 모습을 보였다.
  24. [24] 클론의 노래 말고도 한국의 많은 가수들의 곡을 번안해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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