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주치 울루스
Зүчийн улс


국기


1237 ~ 1502

위치

북아시아, 동유럽 일대

수도

사라이 바투

정치체제

군주제

지도자

언어

몽골어, 튀르크어

종교

텡그리, 이슬람, 기독교, 티베트 불교
이슬람

1. 개요
2. 역사
2.1. 건국
2.2. 통치
2.3. 쇠퇴와 멸망
3. 역대 칸 목록
4. 멸망 이후
5. 역사보기 틀 모음

1. 개요

몽골어 : Зүчийн улс (Züchiin Uls), Алтан Орд (Altan Ord)

타타르어 : Алтын Урда (Altın Urda)

러시아어 : Золотая Орда (Zolotaya Orda)

카자흐어 : Алтын Орда (Altın Orda)

페르시아어 : اولوس جوجي (Ulūs-i Jūchī)

한자 : 金帳汗國, 欽察

영어 : Kipchak Khanate; Golden Horde

킵차크 칸국이란 몽골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설립된 4대 칸국 가운데 하나이다. 표제어인 킵차크 칸국은 몽골 침입 이전 이 지역에 살았던 중세 튀르크계 민족인 킵차크인에서 따온 것이다. 킵차크인들이 살게 된 이후 이 지역을 킵차크 초원이라고 불렀으므로 몽골인들이 세운 왕국 역시 킵차크 칸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금장한국(the Golden Horde, 金帳汗國, Золотая Орда)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쓰이는데, 이는 킵차크 칸국에 복속되었던 중세 러시아인들이 몽골인들의 황금 천막을 보고 붙인 별명이다. 킵차크 칸국과 다른 칸국들의 몽골인 지배층들은 왕조의 창립자인 바투 칸이 칭기스 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주치 씨족의 영지(주치인 울루스)라고 불렀다.

칭기즈 칸 시대에 넘어온 몽골인 정복자들이 세운 왕조이지만, 주민 다수가 튀르크계였기 때문에 소수 몽골인 지배층들도 결국 거기에 동화되어 튀르크-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사진술이 등장한 후 킵차크 칸국 왕실의 후손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슬라브인들과 다를 바 없이 생겼다. 오늘날 러시아의 타타르스탄 공화국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 튀르크어족 킵차크어파 국가들의 전신이 된 나라이다.

2. 역사

2.1. 건국

칭기즈 칸의 장남인 주치의 영지가 모태가 되며, 주치의 아들 바투가 유라시아 서부 초원 지대를 휩쓸고 다니면서 사실상 킵차크 칸국의 기틀을 닦았다. 전성기 영토는 서쪽으로 현재의 몰도바,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북쪽으로는 현재의 러시아, 남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이르렀던 국가다.

킵차크 칸국이 러시아 남부 스텝을 점령했다는 사실은 루스인(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의 선조)들이 그동안 몇 세기에 걸쳐 터전을 닦아 놓은 가장 좋은 토지의 대부분을 뺏겼다는 뜻이었다. 이후 루스의 인구와 경제 활동, 정치적 중심은 모스크바노브고로드를 비롯한 러시아 북동부로 이동하게 된다. 키예프 루스국의 전성기가 끝난 후 각 대공들간의 소모전으로 인해 쇠락한 경제가 미처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몽골-킵차크인들이 강제 징수를 일삼자 루스인들은 무거운 부담을 안고 말았다.

2.2. 통치

킵차크 칸국의 기반을 이룬 주치와 바투의 원정군은 몽골인이 적고 튀르크인이 많았다. 특히 타타르인들의 조상인 튀르크계 킵차크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킵차크 칸국과 그 후계 국가를 타타르라고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획득한 영지도 원래 킵차크인의 거주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튀르크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몽골과 튀르크의 문화가 섞였다.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우즈베크 칸이 즉위한 이후로는 사실상 튀르크족의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칸의 후예답게(...) 기존 가톨릭동방정교회에 매우 관대하였다. 심지어 우즈베크 칸은 교황으로부터 관대한 기독교 정책에 대한 감사편지를 받았고 우즈베크 칸 또한 교황에게 답신을 보냈다. 그의 아들 자니베크 칸이 정교회의 모스크바 대주교를 불러 자기 아내의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킵차크 칸국은 루스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공국들을 칸국의 속국으로 편입하였다. 루스인들은 일정 부분 자치를 인정 받은 대가로 종주국인 킵차크 칸국에게 의무적으로 공물을 납부해야 했으며, 칸이 요구하면 군대까지 지원해야 했다. 이렇게 1240년부터 1480년까지 칸국의 지배를 받은 기간을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몽골-타타르의 멍에[1]라고 부른다.

킵차크 칸국이 제대로 정착한 이후에는 털어먹을 것이 별로 없던(...) 동유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남쪽의 일 칸국과 티격태격해댔다. 여기에는 일 칸국이 들어선 영역이 몽골의 전통으로는 칭기스 칸의 장자 주치의 땅, 곧 '주치인 울루스'로 여겨졌던 탓도 있다. 초창기 칸들이 오고타이 칸국을 지원하면서 원나라와는 긴장관계를 유지했지만, 카이두 사후 그럭저럭 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친선관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크림 반도제노바인과 제휴하여 크림 반도에서 볼가강 하류,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교역 루트를 장악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는데, 당시 융성한 모습은 킵차크 칸국의 수도 사라이 베르케를 방문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묘사에 잘 드러나 있다.

몽케 칸을 찾아간 뤼브룩의 기욤이나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특사 카르피니도 이 루트를 통해 카라코룸에 도착했다.

킵차크의 칸들은 루스의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루스 도시 지배자들과의 알력을 이용하였다. 이 중 가장 충실한 심복(...)은 모스크바 대공으로 이반 1세부터 본격적인 대공의 지위를 받아 징세관 역할을 수행하였다. 때로 모스크바 대공들은 자신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도시들이 칸을 섬기지 않는다며 칸에게 일러바쳤고(...) 그때마다 킵차크 칸들은 징벌 원정을 통해 도시들을 황폐화시키고 종주권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모스크바 대공이 칸에게 호출당했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사망하기도 했다(...).

2.3. 쇠퇴와 멸망

킵차크 칸국은 흑사병의 유행과 더불어 우즈베크 칸의 후계자 자니베크 칸이 1357년 암살당하면서 삐끗하기 시작했으며, 마마이 칸 재위 시절에 벌어진 쿨리코보 전투(1380)에서 모스크바 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이끄는 러시아 제후 연합군에게 개발살나면서 체면을 구겼다. 패배한 마마이 칸은 처형되고, 그 뒤를 이은 토크타미쉬 칸이 즉위하여 모스크바를 털면서 간신히 체면을 세웠고 러시아에 대한 종주권은 다시 인정받았지만,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동맹 관계에 있던 티무르 제국이 손에 넣은 페르시아를 탐내 타브리즈를 약탈한 것을 계기로 동맹은 결렬됐고, 여기저기에서 티무르에게 갈리다가 결국 수도 사라이 베르케까지 털렸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티무르 제국으로 끌려간 것을 계기로 킵차크 칸국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킵차크 칸국이 전통적으로 일 칸국의 영토를 자기 것으로 주장해온 것을 감안하면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인간흉기 티무르에게 도전한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이후 칸에서 쫒겨난 토크타미쉬는 예전부터 킵차크 칸국과 키예프 루스 등 우크라이나 일대를 놓고 경쟁해오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망명해서, 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과 함께 킵차크 칸국을 공격했다. 리투아니아의 팽창은 1399년 보르스클라 강 대전투에서 리투아니아군이 궤멸되면서 멈췄지만, 이미 킵차크는 리투아니아에게 우크라이나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겼고 리투아니아의 흑해 진출을 허용했다. 이후 주치의 첫째 아들 오르다의 후손과 토크타미쉬의 자손들이 번갈아 각축을 벌이며 킵차크 칸국은 소리 없이 무너져 갔다. 결국 15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카잔 칸국, 크림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우즈베크 칸국[2], 카자흐 칸국[3]으로 분리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이 칸국들이 떨어져가고 남은 킵차크 칸국을 이흐 칸국이라고도 한다.

마침내 아메드 칸 재위시절인 1480년 러시아 제후국들을 하나씩 통합하고 있던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크림 칸국과 제휴하여 "우린 너네 종주권 인정 안 해"라고 선언하였다. 이로써 240년에 달하는 몽골-타타르의 지배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아메드 칸은 이를 응징하기 위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고 모스크바 대공국 및 크림 칸국을 압박하였지만, 아메드 칸이 사망하고 그 아들이 물려받은 시기에는 모스크바와 크림 칸국의 공세에 밀리게 되어 결국 1502년 크림 칸국과 모스크바 공국에게 정복당하면서 망했어요(...).

킵차크 칸국의 영향으로 러시아 문화는 한동안 튀르크 유목민의 색채를 띄고 있었다. 이걸 완전하게 엎은 사람이 200년 뒤인 18세기 로마노프 왕조표트르 대제.

3. 역대 칸 목록

  • 바투 칸(Батый) (1237-1255)
  • 사르타크 (1255-1256)
  • 울락치 (1256?)
  • 베르케 칸(Берке) (1256?-1266)
  • 멩구티무르 칸(Менгу-Тимур) (1266-1282)
  • 투다멩구 칸(Туда-Менгу) (1282-1287)
  • 탈라부가 칸(Талабуга) (1287-1291)
  • 토흐타 칸(Тохта) (1291-1312)
  • 우즈베크 칸(Узбек) (1312-1341)
  • 티니베크 칸 (1341-1342)
  • 자니베크 칸(Джанибек) (1342-1357)
  • 베르디베크 칸(Бердибек) (1357-1359)
  • 이후 약 20년간 킵차크 칸국은 약 20명의 칸들이 쟁탈전을 벌인다.
  • 마마이 칸(Мамай) (1362-1380)
  • 토크타미쉬 칸(Тохтамыш) (1380-1395)
  • 테무르 콰틀루크 칸(1395-1401)
  • 샤디베크 칸(Shadi Beg) (1401-1407)
  • 푸라드 칸(Pulad) (1407-1410)
  • 테무르 칸(Temür) (1410-1412)
  • 잘랄 앗딘 칸(Jalal ad-Din) (1412)
  • 카림 베르디 칸(Karim Berdi) (1412-1414)
  • 케베크 칸(Kebek) (1414-1417)
  • 자바르 베르디 칸(Jabbar Berdi) (1417-1419)
  • 울루그 무한마드 칸(Ulugh Muhammad) (1419–1421, 1428–1433) 카잔칸국 시조
  • 데브레 베르디 칸(Dawlat Berdi) (1421–1422)
  • 바라크 칸(Baraq) (1422-1428)
  • 셰이드 마흐메드 칸 (1433-1435)
  • 쿠춤 무한마드 칸(Küchük Muhammad) (1435–1459)
  • 마흐무드 (1459-1465)
  • 아메드 칸(Ahmad) (1465-1481, 1498-1502) 모스크바 독립
  • 쉬야크 아메드 칸(Shaykh Ahmad) (1481-1498)

4. 멸망 이후

5. 역사보기 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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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Монголо-татарское иго. 간단하게 몽골의 멍에, 혹은 타타르의 멍에라고도 부른다.
  2. [2] 티무르 왕조를 중앙아시아에서 쫓아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모태.
  3. [3] 우즈베크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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