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영화부문 작품상

오아시스
(2003)

태극기 휘날리며
(2004)

그때 그 사람들
(2005)

대한민국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순위

16위
택시운전사

17위
태극기 휘날리며

18위
부산행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실미도
(2003, 11,081,000명)

태극기 휘날리며
(2004, 11,746,135명)

왕의 남자
(2005, 12,302,831명)

태극기 휘날리며 (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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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제규

각본

강제규, 한지훈, 김상돈

출연

장동건, 원빈, 이은주, 공형진

장르

전쟁, 드라마

제작사

강제규필름

배급사

쇼박스

촬영 기간

2003년 2월 10일 ~ 2003년 10월 31일

개봉일

2004년 2월 5일

상영 시간

145분

총 관객 수

11,746,135명 (최종)

등급

대한민국: 15세 이상 관람가

싱가포르: M18
미국: R
독일: FSK 16
호주: MA15+
영국: 15

1. 개요
2. 등장인물
3. 줄거리
4. 평가
5. 고증 관련
6. 의의
7. 기타

1. 개요

강제규 감독, 장동건, 원빈 주연의 한국 전쟁 영화. 2004년 2월 5일에 개봉하여 1,174만 6,13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16년 4월 현재, 역대 흥행 11위(한국영화론 역대 10위)에 오른 흥행작이다. 더불어 명량 개봉 전까지 10년여 간 한국 극장 개봉 전쟁영화 최고 흥행작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1]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급 전쟁 영화이며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노렸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의 스토리가 주인공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회상으로 끝이 나는 등,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의 한국 영화들 중 최고 수준의 특수효과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의 제작 스태프들 중 일부는 중국에서 2008년 개봉된 전쟁영화 "집결호"의 제작에 참가해서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평론가들 중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컴플렉스를 가진 영화"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작 스태프들의 인터뷰를 보면 미술과 촬영, 특수효과 등에서 오히려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 감독 장 자크 아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이며 거기에 걸맞게 피투성이의 시체, 지뢰폭발로 인한 다리절단, 제대로된 치료를 못하는 바람에 상처에 난 구더기, 전쟁의 후유증으로 둔영에서 총기를 난사하다 끝내 자기목에 총을 쏘고 자살해버린 공황장애 등 전투로 인한 참상과 주먹밥뿐인 끼니, 불시에 시작될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흙바닥에서 쭈그리고 자는 상황까지 전쟁터의 열악한 환경을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묘사해냈다. 또한 전반적인 영화내용도 화려한 전투씬에 치중하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무너질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무척이나 현실적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개봉 전에는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분들을 위한 특별시사회를 가졌는데,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전쟁 당시를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조성모김재중[2]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조성모는 조선인민군 육군 하전사로 0.5초 정도 나오고 사라지고, 김재중은 초반부 유해조사단의 일원으로 나오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카메라에 나온 장면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병헌이 등장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출연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밝혔다. 김수로최민식은 우정출연으로 등장했다. 김수로는 반공청년단장으로 1분 정도 등장하는데 진태의 약혼자 영신이 반공청년단 때문에 죽게 되는 줄거리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김수로를 보면 출연시간이 지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치는 악역 연기로 미친 존재감을 내뿜는다. 최민식은 평양 전투 당시 북한 인민군 육군 총좌로 잠시 얼굴을 비추었는데, 잠깐 비춘 것치곤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다. 해당 장면만 보면 마치 최민식이 영화 전체의 최종보스 역으로 보일 정도이다.

영화상에 나오는 북한 육군이 악랄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주인공이 대한민국 육군이니 국군 비중이 많아져서 그럴만하다. 다만 이런 점으로 두고 이 영화가 북한을 좋게 묘사한다든지 친북영화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논단남부군, 하얀전쟁과 같이 한국군 비하영화라고 비난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다고는 해도, 15살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 통수치는 인민군 육군 하전사, 아군 진지가 급습당하자 기관총을 난사하여 아군이고 적군이고 구분없이 다 쏴버리는 악랄한 인민군 사수도 나왔으며, 심지어 철수하던 북한군이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시체들의 일부를 쌓아놓고 그 안에 압력식 (또는 시체에 줄을 메단) 부비트랩을 설치해 이를 수습하던 국군 몇명을 사상시킨 모습까지 묘사되었다.[3] 그리고 이를 본 국군들은 "이 새퀴들! 이젠 이런 함정까지 설치해?"라고 분노로 흥분했고 뒤어어 벌어진 전투에서 인민군이 항복하던 말던 마구 쏴죽일 정도로 분노했다. 즉 인민군의 악랄함이 그 수가 적을 뿐이지 인민군이 등장하는 분량과 비교하면 결코 좋게 나온다고는 볼 수 없다. 씨네 21에서는 '이게 친북영화? 극중 북한군 이미지는 1980년대 반공영화에 나오던 이미지랑 차이가 없는데도? 영화나 보고 욕이나 하는 걸까?'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한국 육군들이 북한 육군 포로들을 학대하지만 이걸 주인공이 막게 하고, 왜 막냐고 하던 아군에게 "우리가 이러면 빨갱이 색히들이랑 뭐가 다를 거 있어?"라는 말에 한국 육군이 주저하고 학대를 멈추는 것처럼 한국군의 묘사도 나름대로 고려하고 있다. 극중 "빨간 건 다 싫어한다. 특히 빨갱이 개새끼들"이라던 임 하사라는 인물은 이북에 살다가 온 식구가 몰살당해 홀로 내려와 증오를 가지고 있던 뒷사정도 나온다.

모티브가 된 것은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의 실화와 최승갑 일병의 유품[4]이다. '형제의 상'은 실제 형제였던 박규철 소위(형)와 박용철 하전사(동생)의 이야기다.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 출신인 형제는 이북 땅에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형만 월남하고 동생은 남은 상태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결국 형은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동생은 조선인민군 육군으로 참전했고 원주 치악고개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극적으로 만나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박규철 소위는 무사히 동생을 귀순시켜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테마곡도 유명하다. 은행나무 침대, 유령, 퇴마록, 지구를 지켜라, 쉬리, 7번방의 선물, 포화속으로 같은 영화 음악으로 알려진 이동준이 음악을 맡았다. 현재도 뭔가 국민적 비극이 일어나는 상황이면 BGM으로 깔기도 한다. 그와 함께 관광열차 DMZ-train 차내에서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으로 진입할 때 나레이션과 함께 BGM으로도 사용된다. 유튜브 자동재생

일본에서도 2004년 6월 26일에 원어판과 더빙판으로 개봉했었다. 일본에서는 Brotherhood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2. 등장인물

  • 이진태(장동건)[5]
  • 이진석(젊은시절: 원빈, 노년시절: 장민호)
  • 김영신(이은주)
  • 고영만 일병(공형진):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 주 무기는 M1 개런드 소총
  • 허 중사(안길강): 진태 소대의 부소대장[6]. 주 무기는 M3 기관단총. 1.4 후퇴 할 때 중공군이 쏜 포격에 맞아서 전사한다.
  • 양길섭 중사(박길수): 통칭 양 주사. 진태 소대에서 나이도 가장 많고 가장 오래 복무한 고참 부사관. 주 무기는 M1 개런드 소총. 일반적인 고참병 이미지와는 달리 말도 많고 유쾌한 인물이지만, 기습 작전에서 맨손으로 인민군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창고에 갇힌 진석을 구해주는 등 고참병으로서의 실력은 확실한 인물.
군대 내에서는 멘토 역을 톡톡히 해내며 젊은 병사들에겐 좋은 삼촌과 같은 존재.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고 싶어한다.
  • 김철수 하사: 더벅머리에다가 말이 많은 부사관, 주무기는 M1 카빈 소총. 이진태의 분대원.
  • 임 하사(정진)[7]: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부사관. 원래는 이북에서 살다가 인민군의 손에 처자식을 모두 잃고 홀로 월남한 탓에 인민군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그때의 상처가 어지간히도 컸던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면서 폭격에 오른팔을 잃었을 때도 빨갱이 새끼들을 다 죽여버리라며 악에 받쳐 소리칠 정도. 후반부에 진태의 전향 소식을 알게 됐을 때도 그가 무슨 심정으로 전향했을지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진석이 진태를 설득하기 위해 전선으로 돌아가려 하자 어머니와 영신이 동생들 생각하라면서 만류하나 끝내 돌아가는 진석을 보고 단념하며 그의 행운을 빌어준다. 전쟁이 끝나면 어부가 되고 싶다고 한다.
  • 림태수 일병: 신의주에서 월남한 꺽다리 병사, 지원화기 담당이라 극초반엔 BAR을 들고다닌다. 지뢰매설 작전 당시 기관단총으로 무장하여 국군을 기습한 인민군에 자동화기가 없었던 지뢰매설조원들 중 유일하게 자동화기 사수였던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원들이 복귀할 수 있었다.(전투장면을 살펴보면 BAR을 저속 자동모드로 계속 갈겨대는 임 일병을 볼 수 있다) 후반엔 화염방사기를 즐겨 사용한다. 초반에는 평안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임 하사에게 험악한 눈빛을 받았다. 결혼하여 처자가 신의주에 있다고 하는데 처자들의 운명은 불명.
  • 용구 일병: 서남 방언을 사용하는 병사, 초반 기습작전 때 무려 탄약 상자를 백병전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 무기는 M1 카빈 소총.
  • 조 일병: 통성명 하다[8] 포격 맞고 바로 사망하는 안습한 병사 포격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양주사가 응급처치를하면서 조일병하면서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빠르게 지나가서 찾아보기 힘들다.
  • 강효열 일병(김효열): 진태, 진석이 속한 소대의 무전병, 주무기는 M1 카빈을 사용하나 기습 작전 때 무전기 수화기로 인민군을 두들겨 패다 방탄헬멧을 벗어 그걸로 인민군을 때려잡는다.
  • 이승철 일병(엄성모)[9]: 학도병으로 참전한 어린 병사. 지뢰 매설 작전에 참가했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돼 복부에 총을 맞고 넘어지면서 지뢰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는다. 열악한 전황 탓에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에 공황장애를 일으켜 다른 부상병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자신의 턱에 총을 쏴 자살한다.
  • 대대장(조희원): 진태가 진석을 제대시켜 달라고 하자 다른 부대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입대해서 아들이 제대했다며 어떻게 제대했는지 궁금하냐며 전쟁영웅이 되라고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이에 진태가 목숨을 걸고 태극무공훈장까지 따내어 진석을 제대시키기 직전까지 가지만 혜산진 철수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청년단 사건이 터지면서 형제가 아예 반목해버리고 떨어지게 되면서 생사를 알 수 없게되버려 이마저도 도루묵이 되었다.
  • 용석 (전재형)
  • 어머니(이영란)
  • 진석의 손녀(조윤희): 이름은 이유진. 전화에서 유품 발굴단이 진석이 생존해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서둘러 할아버지께 전화를 바꿔드린다. 이후 할아버지가 큰할아버지 진태의 유골 앞에 주저앉아 형을 부르며 오열하자 눈물을 흘린다. 아마 할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청년단장(김수로)
  • 북한 육군 총좌(최민식)

3.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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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두밀령,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6.25전쟁 참전용사 유해발굴현장. 단원들은 작업을 하던도중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 유해를 하나 발견했고 곧바로 만년필에 새겨진 이름으로 신원조회를 하기 시작했다. 만년필의 주인은 두밀령 전투에 참전했던 제1보병사단 육군 12연대 소속 이진석 하사.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생존자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유해가 나온 걸 의아하게 생각한 단원들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이진석의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다.[10]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있던 백발의 노인 이진석(장민호)은 육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손녀 유진의 말에 다급히 전화를 받는다. 단원들과 자신의 생존 여부에 대한 통화를 하던 진석은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이 사망자 리스트에 오른 것에 의아해하다가 혹시 이진태가 아니냐고 물으나, 자신의 이름이 맞다는 대답과 함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사과를 끝으로 통화는 끝난다. 진석은 어딘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는 직접 현장에 가보기로 결심하며 옷을 챙겨입는다. 나가기 전, 빛바랜 가족사진과 서랍 한켠에 고이 모셔둔 구두 한 켤레를 꺼내보고는 그간 가슴 속에 품어왔던 오십여 년 전 과거를 회상한다.

1950년 6월 서울 종로. 당시 열여덟이었던 이진석(원빈)은 서울대 진학은 미리 따놓은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집안에 기대를 한몸에 받고있는 수재였고 그의 형 이진태(장동건)는 이런 동생을 뒷바라지해주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 일을 하고있었다.[11]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우애가 돈독한 형제였고 국수가게를 하는 언어장애 어머니와 진태의 약혼녀 김영신(이은주), 그리고 영신의 동생들(영국, 영자, 영민)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불행하게도 얼마 안 있어 끝나버리고 말았다.

6월 25일. 그 날도 진태는 친한 동생 용석과 구두를 닦으며 동네 꼬맹이들 재롱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는데 진석이 급히 달려오더니 전쟁이 났단 말을 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거리에는 스피커를 단 군용트럭이 지나가면서 휴가중인 장병들의 복귀를 종용하고 있었고 거리에는 북한이 불법남침을 했다는 신문과 방송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평화롭던 종로는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변해버린다.

그 날 밤, 가족들은 외삼촌 댁이 있는 밀양으로 떠나기로 하고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 물건을 하나도 두고갈수 없었던 영신은 이삿짐싸듯 짐보따리들 갯수를 늘렸고 이를 본 진태는 밀양이 옆동네인줄 아냐며 곧 돌아올거라고 먹을것과 입을것만 챙기라고 한다. 그러다 언제 돌아올줄 알고 그런말을 하냐는 영신의 말에 결국 수긍하고 그녀의 짐들을 전부다 챙긴다.

그 해 7월 대구시. 피난 중이던 진석은 밀양으로 가는 열차를 알아보러, 진태는 동생 영민의 약을 사러가면서 형제는 잠시 흩어지게 된다. 대구역에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있었지만 민간열차는 운행이 전면중지된 상황. 허탕만 치고 돌아온 진석은 진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군용트럭이 달려와 멈춰서더니 헌병이 내려와 '만 18세에서 30세까지의 남자들'은 전부다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12] 말로는 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쟁터에 투입시킬 장병들을 징집하는 것이었다. 진석은 몇살이냐고 물어오는 헌병에게 얼떨결에 열여덟이라고 말해버렸고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영신과 어머니를 안심시키고는 헌병을 따라나섰다.

이후 간신히 약을 구해 돌아온 진태는 진석이 조사를 할게 있다는 군인들을 따라간 후 아직 안돌아오고 있다는 영신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동생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징집 열차까지 뛰어들어온 진태는 열차 한켠에 앉아있는 동생을 데리고 다시 내리려 했지만 이미 열차 양 옆은 군인들에 의해 막힌 상황. 진태는 내리려고 했지만 당연히 군인들은 이런 두사람을 막아서며 열차가 곧 출발하니까 앉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열차를 잘못타서 내릴거라고 정중하게 말로 하던 그는 결국 몸싸움을 벌이지만 되려 군인들에게 제압당했다. 이때 진태에게 얻어터지고 쓰러진 중대장이 "너도 징집 대상이야!"라고 말하는 바람에[13] 결국 진태까지 강제적으로 전쟁터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고 그 순간, 멈춰있던 기차는 출발해 버린다. 그리고 뒤따라온 나머지 가족들에겐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하며 형제는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다.[14]

피를 잔뜩 흘린채 고통스러워하는 부상자들, 주변에 널려있던 시체들을 쌓아 한데 태우는 소각현장까지. 형제가 투입된 곳은 최전선 낙동강이었다. 진태는 장병들을 인솔하는 조교에게 동생이 어린 학생인데다 총도 쏠 줄 모른다며 같이 있게 해달라고 했고 조교는 이를 순순히 들어준다. 이후 인사나 하고 지내자며 먼저 통성명을 해오는 고영만(공형진)을 비롯, 부대 최고참 양 주사(박길수)와 허 중사(안길강), 빨갱이라면 치떨리게 싫어하는 임 하사(정진), 최연소 장병 승철(엄성모)과 무전병(김효열), 신의주에서 내려온 림태수(조운), 조 일병[15]등등 각기 다른 사연으로 전쟁터에 오게 된 다른 장병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장병을 앓는 동생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고생하는걸 볼 수 없었던 진태는 대대장을 찾아가 하라는 건 뭐든 할테니 동생만은 전역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대대장은 지금 부대에는 진석과 같은 처지인 장병들이 한둘이 아니며 하루아침에 병신되고 비실비실 죽어가는 놈이 멀쩡해지는 곳이 전쟁터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형제처럼 강제 징집되어 왔는데 전쟁도중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아 아들을 전역시켜줬다는 이야기였다. 이때부터 진태의 관심은 오직 무공훈장만을 향했다.

진태는 다음날부터 시키지도 않은 지뢰매설 작전에 자원해 훈장을 받기위한 공로를 차근차근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대전차 지뢰 매설을 끝으로 돌아가는 길에 급작스러운 북한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이 와중에 병사 한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또 다른 병사 승철은 배에 총을 맞고 길가에서 괴로워하다 지뢰를 밟는 바람에 발목까지 날아갔다. 다행히도 허 중사와 양 주사가 승철을 길 밑으로 끌어내렸지만 진태는 허 중사의 명령을 어기고 북한군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총격이 그치자 부대원들은 발목이 잘려나간 승철을 의무대로 후송했고, 그 사이 허 중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진태에게 다가와 조금만 늦었으면 승철인 죽었을 거고 오늘은 처음이라 그냥 넘어가지만 한번만 더 이런식으로 멋대로 행동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가 담긴 충고를 한 뒤 가버렸다. 진석 역시 이런 형의 무모함에 분노해 두번 다시 이런짓 하지 말라고 소리치나, 진태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애써 알았다고 대답한다.

그 뒤, 승철은 야전침대에 누워 토까지 하며 하루하루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무렵,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상자들 때문에 의약품은 진작에 바닥난데다 보급로마저 끊겨 병원후송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이에 양 주사가 복부에 감긴 붕대를 들춰보니 그 안에 구더기가 살을 파먹고 있었다. 이에 열받은 양 주사가 의무병을 다그치는 사이[16] 공황장애가 온 승철은 총기를 집어들어 막사 안에 있던 다른 부상자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기 턱에 총구를 들이댄 뒤 자살해버린다.[17]

진태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 역으로 북한군을 몰아내자 선동했고, 이에 상당수의 부대원들이 찬성해 소대급의 야습이 실행된다. 그곳에서 진태는 선두에 서서 기관총 진지 뒤편의 무기고를 터트려 국군을 승리로 이끈다. 한편 전투만 벌어졌다 하면 심장발작을 일으키던 진석은 점차 전쟁터라는 곳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18] 그간 형의 온갖 무모한 행동들이 자신을 전역시키기 위한 무공훈장 수상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는 형 목숨 담보로 훈장을 받아가면 엄마와 영신누나를 무슨 낯짝으로 보냐며 따졌다. 그리고 앞으로 윗사람들한테 전투에서 빼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한편 야습을 승리로 이끌어 영웅이 된 진태는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진석은 무공훈장을 받겠다는 일념하나로 무모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형이 불편하기만 했고 취재와 회식에 참여하느라 가족들에게 편지 부치는 일마저도 미루기까지 하는걸 보고는 원망감이 커져만 갔다.[19] 그래서 지금이라도 무공훈장 생각은 버리고 영신과 가족들만을 생각하는 평소때로 돌아오라고 충고해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10월, 국군들은 평양에서 북한군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던 중 진태는 후퇴하는 몇몇 북한군들을 보고는 장병들을 이끌고 쫓아가려고 했지만 진석은 더이상 저들을 쫓는건 무리라며 만류해봐도 그는 동생을 밀쳐내고 어서 따라오라고 소리치며 앞장서 뛰어가버린다. 이후 북한군들을 쓸어내다 인민군 육군 총좌[20]를 발견한 그는 곧장 달려들어 드잡이를 시작한다. 멀리서 이를 보고있던 영만이 달려와 마주오던 북한군 한명을 사살한 후, 두사람에게 총을 겨누며 꼼짝말라고 소리쳤지만 총좌의 부관이 몸을 움직여 영만의 가슴팍에 총을 쏘고 말았다. 영만은 총을 맞았지만 부관과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총탄 한 발을 더 맞고 쓰러진다. 다행히 뒤따라온 진석과 다른 장병들이 쓰러진 영만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있었던 터라 얼마 못가서 죽어버렸다. 그때까지도 진태는 총좌와 몸싸움을 벌이느라 영만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무튼 국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평양을 수복하였으며, 육군 총좌 생포라는 어마어마한 공을 세운 진태는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무공훈장 수상이 확정됐다. 하지만 진석은 형 때문에 영만이 죽었다며 대체 그까짓 훈장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냐고 따진다. 그리고 형이 자기를 전역시켜주기 위해 싸우는게 아니라 본인의 승진과 명예욕을 위해 싸운다고 여기며 증오심까지 더해졌고 누구보다도 돈독했던 우애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또, 이때부터 극명하게 갈라진 형제의 성격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와중에 북한군이 퇴각하며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것을 본 부대원들이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부비트랩이 시체탑 안에서 터지는 바람에 몇몇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나머진 척 봐도 휴유증을 안고 살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 이에 분기탱천한 부대원들은 뒤이어 벌어진 시가전에서 인민군들이 항복을 하건 말건 쏴죽였다.[21]

이후 방공호로 쓰여지던 탄광 안에 수류탄과 화염방사기를 난사해 북한군 네다섯이 제발로 걸어나오게 만드는데, 이들을 사로잡는 와중에 진석은 이들 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그의 정체는 바로 진태와 함께 구두 수선을 했던 용석.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군의 협박에 못이겨 의용군에 징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태는 이들을 데리고 가봐야 짐이라며 교전 중 사살한걸로 하겠다며 용석을 빨갱이와 한패로 간주했다. 이어 임 하사를 비롯한 다른 장병들 역시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라며 진태의 말에 동의하며 포로들을 죽이려 들었지만 진석은 멀쩡한 포로 전부 다 사살해버렸다고 본대에 보고할테니 쏴보라며 맞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죄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빨갱이들이랑 다를게 뭐냐며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총을 들며 어서 쏘라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자 질려버린 부대원들은 운좋은 줄 알라며 현장을 떠나버렸다.

11월 눈이 쏟아지는 혜산진, 운좋게 살아남은 용석은 국군의 포로로 노역을 하고 있었고 진석은 이런 그에게 남몰래 먹을걸 가져다주며 살뜰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용석으로부터 피난가있던 가족들 소식을 듣는다. 형제와 헤어진 후, 그들은 무사히 밀양에 도착했지만 두사람이 언제 군대에서 돌아올지 모른다며 다음날 다시 서울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 평소에도 국수를 파느라 허리 한번 못 피시던 어머니는 병치례를 하면서 거동이 더 불편해지셨다. 이런 상황에서 아픈 어머니 병간호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영신이 하게 됐다. 그녀는 북한군들의 등쌀 때문에 장사도 할 수 없게 되자 아침부터 밤까지 배급나오는 장소마다 모조리 쫓아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진석은 마음이 착잡해진다.

하지만 이런 동생과는 달리 진태는 사로잡은 북한군 포로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진 사람은 이틀동안 밥을 안준다는 비인간적인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두사람이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자 이틀에서 5일로 늘렸다가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직접 내려가서 두사람 모두를 때려눕히며 이렇게 하는것이라고 가르친다.[22] 이를 보다 못한 진석이 결국 형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고 직접 내려가서 인민군 육군 포로들과 싸우기 시작했다.그날밤, 진태는 고열때문에 앓는 소리를 내며 자고있는 동생[23]의 이마에 손수건을 올려주며 잠시나마 우애를 과시했다.

다음날, 장병들은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방송[내용]을 들으며 드디어 집으로 돌아 갈 수 있게됐다고 기뻐한다. 한편 진태는 무공훈장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진석에게 이를 알린다. 하지만 진석은 평양 수복 당시 영만의 죽음으로 받은 훈장이라고 우겨 결국 형제는 크게 다툰다. 그때 중공군의 개입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국군들은 후퇴를 시작한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해 정신없이 달리는 사이 허 중사가 포탄에 맞아 전사했으며[25] 임 하사가 그만 포탄에 맞아 한쪽팔이 잘려나갔고 그 외에도 곳곳에서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국군들의 주위가 분산된 틈을 타 잡혀있던 포로 한 사람이 버려져 있던 권총을 들고 국군들에게 총질을 하며 탈출을 시도했고 다른 포로는 아예 장병 한명을 붙잡고 인질극까지 벌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국군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용석을 비롯한 다른 포로 세 사람은 연신 주위만 바라보며 어정쩡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장병의 목을 조르고 칼까지 대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북한군 때문에 국군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연하게 총만 겨누고 있을때였다. 진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북한군을 사살했는데 문제는 총을 한번 더 쏘는 바람에 옆에 서 있던 용석까지 얼떨결에 맞고 죽었다. 영만에 이어 용석까지 죽여버린 형을 본 진석은 분노가 폭발해 진태에게 달려들어 미친듯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장병들이 뜯어말리면서 상황은 일단락된다.

결국 국군들은 끝없는 후퇴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피난하는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북한 지역에서 철수하였고, 12월 말 국군과 피난민들은 순식간에 장단군(파주)까지 밀리게 된다.[26]이후 결국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이 후퇴는 서울까지의 후퇴로 이어진다.[27]

그 후 진태는 이전의 공으로 드디어 무공훈장을 수여하게 되는데[28]이 무렵 국군은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대대마다 다른 집결지를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그곳에 모이게 한다. 진태는 모여있던 장병들에게 동생이 어딨냐고 물었는데 양 주사가 말하길 진석은 조금 전 먼저 출발해버렸으며 편찮으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 집에 들렀다 갈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서둘러 동생을 찾아나섰다.

용석의 죽음으로 빈정이 단단히 상한 진석은 홀로 종로의 집에 들러 가족들부터 찾아헤멨다. 그러던 중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영신과 재회한다. 그런데 집앞에 트럭한대가 멈춰서더니 낯모르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빨갱이들을 처단하는 반공 청년단장(김수로)를 중심으로 한 방첩대원들로 이들이 제시한 근거는 바로 보도연맹 목록으로,[29] 배급을 미끼로 목록에 기재된 이름과 주소를 따라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물론 진석이 총을 겨누며 막아섰지만 그들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진석도 수상히 여기며 빨갱이 첩자인지 알아내기 위해 같이 끌고 온다.

반공청년단이 두사람을 데리고 온 곳은 방첩단. 그 곳에는 영신과 같은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을 가차없이 총살해버리고 있었다. 영신도 총살당하기 직전이던 찰나, 어디선가 달려온 진태가 청년단장에게 총을 겨누며 허튼짓 하지 말라고 막아섰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영신과 진석. 이런 두사람을 울며불며 쫓아가는 동생들을 보고는 다급히 방첩단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 무렵, 영신과 떨어져 따로 조사실로 끌려가고 있던 진석 역시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방첩요원을 제압하고는 그를 인질로 끌고 현장에 달려온다. 이후 두사람에게 어서 나가라고 소리쳤지만 청년단원들은 영신에게 "인민군들에게 아랫도리 돌린 년이 누군데?"하고 욕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인민군 간부들 집안일을 좀 해준것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진태에게도 아니라고 울면서 이야기하지만 진태는 정말로 영신이 북한군들과(자의건 타의건을 떠나서) 놀아난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하며 매우 갈등하게 된다. 진석이 진태에게 어서 영신을 데리고 나가라며 소리치고 있던 그때였다.

뜻하지 않은 소란으로 대원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영신과 같이 끌려왔던 양민 둘이 탈출을 시도했고, 다른 대원들이 이들에게 조준 사격을 하자 이를 본 다른 양민들 역시 탈출을 하거나 이 형제처럼 여짜피 죽을 각오로 단원들과 맞서싸우기 시작했고[30] 진태와 진석도 대원들과 맞서는 사이 청년단장은 총을 들고 영신을 쏴버렸다.[31] 그리고는 확인사살을 위해 다가가려는 사이 진석이 달려들어 청년단장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치고 땅바닥에 머리를 계속 박아 기절시켰다.[32] 진태가 영신이 준 손수건으로 지혈하려 하지만 피가 쏟아져 나온다. 영신은 가슴에서 피가 쏟아져내리는 상황에서도 진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뒤 숨이 끊어져버렸고 영신의 죽음을 목격한 진태 또한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두사람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군인과 대원들에게 제압당했고 영신의 시체는 형제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위해 파둔 구덩이에 내던져진다. 이 싸움에서 대다수의 군인과 대원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망자들과 탈출에 성공한 극소수 양민들도 있는 듯 하다.

이 일로 형제는 방첩단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체포당했고, 북한군 포로들과 함께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 와중에 쭈그려 앉아있던 진석은 고개를 들고 진태를 향해 "영신이 누나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니가 죽인거야, 영신이 누나... 니가 죽였어... 니가! 이 미친 새끼..."이라고 나지막하게 말함으로서 이제 형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위사람들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미치광이로 취급했다.

무공훈장 수상 때문에 비교적 일찍 풀려난 진태는 신임 대대장(김해곤)에게 전임 대대장과의 약속을 언급하며 동생을 전역시켜달라고 했지만 그는 청년단원들을 여러 명이나 중상입힌 주제에 군대가 무슨 장사치 소굴인줄 아냐며 묵살해버린다. 진태는 "흥정은 그쪽에서 먼저 한 겁니다."라고 싸늘하게 대꾸하지만 대대장 역시 지지 않고 "어떤 얼빠진 새끼가 그따위 소릴 했는지는 몰라도 나한텐 안 통해!"라고 말하며 밀어붙이며 진태를 도로 창고에 처넣으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1중대의 전화를 받으려던 찰나,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됐다. 게다가 선제 포격이 공교롭게도 본부에 떨어져 부관들을 몰살시키자 그는 죽은 장교의 권총을 집어들어 대대장에게 겨누며 창고에 있던 포로들을 전화로 풀어주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포로들을 전원 소각해!"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에 진태가 총으로 때리며 다시 지시하라고 했지만 포격으로 무전기가 망가지고 만다.

진태는 대대장을 팽개치고 급히 뛰쳐나갔지만 예하 부대원들이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고 있었고, 이를 제지하러 다가가다 포격에 휘말려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깨어났을땐 동생이 갇혀있던 창고는 이미 잿더미가 된 후였고, 창고 안을 살피던 그는 잿더미 속에서 동생 이름이 적힌 만년필과 그 옆에 있는 백골 시체를 발견한다. 그 백골이 동생의 시체라고 여긴 그는 분노가 폭발해 중공군에게 끌려가고 있던 대대장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무참히 살해해버렸고[33] 본인 역시 중공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처지가 된다.

이후 시간은 흘러 1951년 7월 여름. 죽은줄 알았던 진석은 양 주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창고를 빠져나오면서 살아남았지만 빠져나오던 과정에서 총상을 입어 국군대전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고 있었고 의병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34][35] 진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양 주사는 진태가 집으로 편지를 보낸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대로 다시 되돌아왔다며 봉투 한장을 건넸고 진태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진석은 굳은 얼굴로 "관심없다"라며 딱 잘라 이야기한다. 그때 멀리 서 있던 간호사가 상담실로 오라며 진석을 불렀고 진석은 곧바로 간호사를 뒤따라갔다.

진석이 오게된 곳은 사단 정보과. 정보과 사람들은 진석에게 삐라 한장을 건네준다. 거기엔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진태였다. 대대장을 살해한 그날로 중공군에게 끌려간 진태는 북한군으로 전향했고 붉은 깃발부대의 지휘를 맡은 육군 군관(소좌)이 된 것이다.[36] 그들은 국군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하루 아침에 빨갱이가 됐다며 자신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진석까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석은 "제가 아는 이진태는 종로통에서 구두를 닦았고,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끔찍히도 동생을 아끼던 사람이었어요. 무공훈장 받고 깃발부대장 하고 있는 그 사람, 제 형 아닙니다."라며 북한군으로 변절한 진태의 존재를 부정했다.

사단 정보과에서 조사를 받은건 팔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같이 입원해있던 임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사가 끝나자마자 진석에게 달려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는다. 하지만 진석은 태연하게 밥만 먹으며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임 하사가 진태 이야기를 꺼내자 욱해서 수저를 팽개치며 "훈장 못받아서 환장한 인간인데 거기서 중대장, 대대장 시켜준다길래 갔나 보죠. 그 인간 죽든 말든 제 알바 아니에요."라며 말하고는 자리를 치고 나가버린다.[37] 그리고 그 날 밤, 자리에 누운 진석은 낮에 양 주사에게서 건네받은 진태의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어머니 보고 싶어요. 우리 갈 때까지 건강하세요. 내 목숨 걸어서 진석이 살릴 거에요. 전쟁터가 험해도 우리 진석이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영신이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어머니, 이번에 제대해서 돌아가면 꼭 구두가게 열어서 어머니 호강시켜 드릴게요.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가족 다시 만날 때까지 꼭 건강하세요.[38]

편지를 다 읽은 진석의 두 눈은 촉촉히 젖어있었고 전쟁터에 끌려오기 전, 영신과 동생들과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종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형과 화목하게 지냈던 행복한 일상들을 떠올린다.

이후 북한군으로 전향한 형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일념으로 자원해서 전선에 들어간다. 이를 알게된 임 하사는 대전병원에 오는 환자들 절반은 전부 다 전선에서 오는 사람들이며 설령 가더라도 형을 만난다는 보장이 어딨고 다음주 위병제대인데 고향이 있는 어머니와 영신이 동생들 생각도 하라면서 가지말라고 뜯어말리지만 진석은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차에 올라타서 가버린다. 멀어지는 그를 본 임 하사 역시 결국 몸조심 하고 조심히 다녀오라며 단념하고 행운을 빌어준다.[39]

국군 측은 진태가 목격된 전선에 진석을 투입시켜 진태를 회유하려 했지만 미 해군 항공대의 요청으로 공습 시간이 24시간이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원래 작전을 취소하고 선전방송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진석은 방송만으로는 형이 믿지않아서 직접 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작전을 위해선가 형을 구하기 위해선가?"라는 연대장의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린다.

이후 군인들이 일처리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이 혼자남은 진석은 자신들을 감시하던 통신병들을 때려눕힌 뒤 홀로 북한군 진지로 달려가 투항해 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북한군 대대장은 그의 멱살을 잡고는 만약에 아니면 죽을줄 알라고 한 뒤 옆에 있던 부하 통신병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통신병은 진태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동생은 죽고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자 진석은 자기가 직접 통화하겠다며 전화기를 뺏어 형의 이름을 불러젖혔고 대대장은 이런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는 뭘 염탐하러 온 거냐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 와중에 그를 보안대로 끌고 오라는 명령이 내려오면서 끌려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후 감시병을 따라 보안대로 향하던 진석. 그런데 참호를 보강하던 중이던 북한군들이 미 해군 F4U 편대를 발견하고 난리가 났고, 뒤이어 국군들도 전차와 함께 진격해왔다. 한편 기총사격에 감시병이 죽어버리자, 진석은 폭격과 백병전 속에서 형을 찾아다닌다. 이 와중에 누군가가 "깃발부대다! 깃발부대다!"를 외쳤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붉은 깃발을 총대에 멘 북한군들이 고지 밑으로 내려와 국군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고 있었고, 진석은 형을 찾기 위해 난전 속으로 향해 깃발부대의 공격을 막아내던 도중 국군들과 백병전을 벌이는[40]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는데 바로 진태였다.[41][42]

국군 두 명을 참살한 진태는 소중한 동생과 영신을 잃었다는 배신감과 증오와 분노, 원망으로 이성이 단단히 나가버려 동생이 눈 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차없이 죽이려 들었다. 물론 이 와중에 국군 두 명이 진태에게 달려들었지만 역으로 학살당했고, 진석 역시 이런 형을 진정시키기 위해 난투극을 벌였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맞다 총검이 머리에 쑤셔질 위기에 놓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빗나가나 완전히 제압한 뒤 되려 방아쇠를 당기려 든다. 그 때 이런 그를 발견한 국군 한명이 진태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버렸고 진태 역시 품에서 칼을 꺼내 곧바로 그 국군을 찔러죽이고 만다. 진석은 다급히 근처에 널려있던 붕대를 주워와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진태는 그 와중에도 진석의 멱살을 잡으며 증오에 가득 찬 욕지거리만 내뱉을 뿐이었다.[43]

한편 북한군의 공세가 격화되자[44]국군 하나가 "퇴각! 퇴각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총으로 무장한 북한군들이 밀려오면서 국군들은 퇴각하기 시작한다. 진석은 정신을 일깨우려 하지만 하지만 진태는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 한다. 결국 진태를 한 대 때려 기절시킨 진석은 형을 들쳐업고 퇴각하지만 다리에 총상을 입고 더는 그러지도 못하게 되고 만다. 그런 와중에 진석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울부짖으며 어머니와 영신이 누나 산소[45]를 거론한 뒤 나 대학가는 건 봐야 할 거 아니냐고 외치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진태는 눈 앞에 있는 남자가 그토록 아끼던 동생임을 알고는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사방에서는 총질과 포격이 끊이질 않았고, 진태와 진석 둘 다 부상을 입어 걷기가 힘들었던 상황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북한군의 총격 공세로 전세가 국군에게 불리해진 상황. 이를 파악한 진태는 동생에게 어서 가라고 했지만, 진석은 한사코 같이 가야 한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진태는 대학 가면 너 주려고 만든 구두 다 만들기 전까지는 절대 안 죽을 거라며 품 속에서 불에 탄 창고에서 발견된 동생의 만년필을 꺼내 건네준다. 하지만 진석은 나중에 돌아오면 그 때 건네주라며 만년필을 받지 않았고, 꼭 돌아오라는 말을 남긴 후[46] 형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한편, 어느새 북한군은 고지 밑까지 내려와 앞장선 병사의 총격을 시작으로 공세를 펼치며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진석은 눈물을 머금고 형을 남겨둔 채 다친 다리로 절룩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도 형을 돌아보며, 진태 역시 도망치는 동생을 바라본다. 그리고 진석은 잠시 넘어지기는 했지만 국군들과 퇴각하며, 진태는 북한군의 공세가 격해지는 가운데 바로 옆에 방치된 M1917 브라우닝[47]을 장전, 조금 전까지 같은편이었던 북한군과 깃발부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면서 그 자리를 사수한다. 한편 진석은 계속 형이 있는 쪽을 돌아본다.

진태는 재장전도 없이 계속해서 깃발부대와 북한군들에게 총격을 가했고, 그렇게 깃발부대[48]와 북한군들은 큰 피해를 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한 진석은 어느새 형이 있는 위험지대로부터 멀어졌다. 동생이 퇴각한 후에도 진태는 끊임없이 북한군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큰 피해를 입히고, 진석은 형이 남쪽으로 돌아올 거라는 신념을 갖고 계속 퇴각한다. 그리고 진태는 계속해서 총탄이 거의 바닥난 총을 난사하나, 결국 북한군의 총격에 난사당해 자신이 쏘던 M1917 브라우닝과 함께 쓰러진다.[49] 한편 이런 형의 희생 덕분에 진석은 무사히 퇴각하였고, 화면이 교차하여 이를 마지막까지 지켜본 진태는 구덩이 흙바닥에 쓰러져 누운 채 서서히 숨을 거두며 동시에 국군의 재공세 전투가 시작된다.[50][51]

총알 가득한 흙바닥에 누워있던 진태의 모습이 뼈만 남은 유해로 변하면서 시간은 다시 2004년 유해발굴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 날 숨을 거둔 진태는 오랫동안 땅에 파묻혀 있다가 50년만에야 유골로 발견된 것이다. 백발의 노인이 된 진석은 같이 발견된 유품 중 만년필을 보고서 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형의 유골 앞에 쓰러져 오열한다.[52]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이러고 있어요?

뭐라고...말 좀 해요... 5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이 동생한테 뭐라고 말 좀 해요..

그 때 형 혼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형... 형...!!!"

광란의 전쟁으로 뒤틀리던 형제의 운명은 결국 그렇게 50여년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점철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 진석은 형이 옷장 한 켠에 보관해둔 구두를 꺼내보며 눈시울을 붉혔고 이후 극은 진석이 제대한 며칠 전으로 다시 돌아가 서울 종로 거리에서 영신의 어린 동생들과 함께 다시 장사를 하고있던 자신의 어머니와 만나면서 영화는 끝난다.[53]

4. 평가

메타크리틱

스코어 64/100

유저 평점 7.9/10

로튼 토마토

신선도 80%

관객 점수 93%

IMDb

평점 8.1/10

레터박스

사용자 평균 별점 3.7 / 5.0

야후 재팬

네티즌 평균 별점 3.60/5.0

왓챠

사용자 평균 별점 3.9 / 5.0

네이버 영화

기자, 평론가 평점
없음/10

관람객 평점
없음/10

네티즌 평점
9.15/10

다음 영화

기자/평론가 평점
없음 / 10

네티즌 평점
9.18 / 10

흥행과 비평 모두 대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중의 하나이고, 한국 전쟁 영화의 롤모델처럼 인식될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작품 이후로 개봉하는 한국 전쟁 영화들은 모두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될 정도.

또한 강제규 감독은 이 작품을 계기로 '블록버스터의 규모와 스토리 모두를 다룰 줄 아는 명감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 당시 여러 매체에서 이 영화를 맹비난하였지만, 진짜 영화를 보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민군을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싸우는' 군인으로, 주인공 형제를 '부르주아적 환상과 가부장적인 가치'에 매몰된 인물로 묘사하는 등 지나친 억측과 본인의 편향성이 매우 묻어나오는 터라 공감을 사지 못했다. 정말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인가

반면, IMDB 평가에서 8.1 로튼토마토에서 평가지수 80을 받는 등 해외 팬들과 평론가들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잊힌 전쟁이라 할 정도로 한국 전쟁에 대해 잘 모르던 외국인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견하며 호평을 보냈고 영화의 배경이 된 한국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매우 바람직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 배경인데도 미군이 거의 안 나오는 영화'라는 점이 그 쪽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듯.[54]

5. 고증 관련

군사전문 잡지 플래툰의 김세랑 기자가 고증을 담당[55]해 군장이라든지 몇몇 부분에 자잘한 오류가 있으나 한국 전쟁 영화치고는 전반적인 소품 고증이 대단히 잘 된 편이다.

다만 볼거리 외에 극중에서 묘사되는 전술 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를 보였다. 특히 백병전과 근접전 위주의 연출이 매우 자주 등자하는데 총 놔두고 너무 엉겨붙어 싸우는 장면만 자주 나와 고증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편이다. 이런 전술 고증을 비판하는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6.25식 장비를 걸치고 1차 대전식 전투를 하는 영화라고 깐다. 물론 극적 연출로 보자면 격렬함과 처절함을 잘 살려 좋으니 마냥 까기도 곤란한 요소.

강제규 감독은 소품팀에게 배우들에게 M1 개런드, M1 카빈, 스프링필드 M1903, 모신나강 등을 비롯한 소총류만 지급할 것을 지시했지만, 소품팀이 밀덕이었는지 차마 그럴 수 없다면서 평양 전투 씬에서 바주카, , 등 다양한 중화기를 지급했고 후에도 화염방사기 등이 등장한다. 감독은 소품팀의 항명에도 결과가 괜찮아서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또 여담이지만 평양 전투 다 찍고 나오는 길에 엑스트라 한명이 감독의 표현대로 '(나몰라라) 예비군 정신'을 발휘해, 촬영용 소총을 아무데나 짱박아두고 오는 바람에 모든 스텝들이 밤새도록 세트장을 돌아다녀서 간신히 찾았다고 한다.

양덕들이 이 영화에 나온 무기들을 철저하게 고증-분석해놨다.[56] 사진과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무기가 사용되었고 이 영화의 고증이 꽤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한국전쟁 관련물에서는 별 관심도 안 두던 공산권 무기인 모신나강만 해도 3종류나 사용된 걸로 봐서 상당히 신경 쓴 걸 알 수 있다.참고 바람 모신나강 외에도 공산군의 장비들도 이전의 한국전쟁을 다룬 반공 영화에서는 약모(전투모)와 따발총(PPSh-41)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철갑모를 쓴 북한군도 꽤 등장하는 등 제법 고증에 신경을 쓴 편이다.

여기에 쓰인 총기류 소품은 경로가 매우 다양한데 실물 프롭건, 국내에서 새로 제작된 더미건[57], 원래 쓰던 더미건, 일본제 모델건[58] 등이 다양하게 쓰여 당시 총덕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았다. 그 외에도 옛날 교련 때 쓰였던 교련용 고무총도 등장하였는데, 서구권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사격을 안 하는 조연 등에게는 안전이나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고무총을 쥐어주며, 이것만 전문적으로 대여해 주는 업체도 있다.

작중 진태가 인민군 포로들끼리 붙여 놓은 싸움에 진석이 스스로 뛰어들어 난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진석이 "어차피 게임이잖아"라는 말을 한다. '저 시대에 게임이란 단어가 있어?'라는 생각이 날수 있겠지만 사실 1940년대에도 스포츠 경기를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 옛날 신문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1949년 경기여중[59] 학생들도 정구(테니스)대회를 두고 게임이라는 말을 쓴다. 대학 진학을 노릴 만큼 성적 좋은 고등학생이었던 진석이 이 정도의 영단어를 모를 리는 없다. 사실 일상적으로 영단어를 쓰는 것은 20세기 후반부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레디메이드 인생 같은 1930년대 작품이나 당시 신문만 봐도 20세기 초중반부터 간단한 영단어가 꽤 흔하게 쓰였다. 물론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 때문이다.

인민군 육군 소좌가 됐다던 이진태가 군관용 전투복인 키텔 튜닉을 입지 않고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60]과, 군복에 달고 있는 견장이 소좌 견장이 아닌 대위(현 상위) 견장이라거나, 사병이었던 이진석이 육군 보병 장교용 병과 휘장을 달고 있는 등 앞서 언급했던 소소한 고증 오류들이 존재한다.

진태가 최민식이 연기한 인민군 육군 총좌를 대좌라 부르고, 이후 이 생포 작전을 보고받은 대대장도 계속 대좌라 부르는 고증 오류가 있다. 현재 인민군 군관 계급은 '소-중-상-대'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소-중-대-총'이었고, 따라서 영화 속 최민식처럼 좌관급인데 계급장에 별이 4개 붙어있으면 현재 인민군 기준으론 대좌지만 한국전쟁 기준으론 '총좌'이다. 단, 이건 진태에게 먼저 알려 준 한국군 장교가 계급장을 잘못 보고 알려주고 진태도 인민군 계급장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이게 상급부대에서도 행정상 문제로 정정이 제대로 안 되는 등 여러 이유로 계속 "대좌 잡은 건"으로 불리고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 해석하기에 따라선 고증 오류일 수도, 그냥 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상 묘사일 수도 있다. 물론 후자였다 해도 제작진이 한국전 당시의 인민군 계급 체계를 모르고 각본에 저리 쓴 거라면 그건 고증 오류는 아닐지라도 제작진의 사전조사 부족으론 까여야 한다.

작중 진태가 무공훈장을 수여받는 장면에서 고증오류가 등장한다. 대통령을 대신하여 진태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상관이 연도를 “일천구백오십(1950)년”이라고 읽는다. 당시에도 서력을 쓰기는 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이었으므로(오히려 북한이 서력기원을 사용했다) 훈장증과 같은 공문서에 서력기원을 쓸 수는 없다. “단기 4283년”이어야 옳다.[61]

작중 몇몇 인민군 육군들의 머리카락이 긴 경우가 있는데,(대표적으로 인민군 육군 대위라든가, 포로라든가) 원칙적으로 당시 인민군 육군의 두발 규정이 빡빡 민 스타일인 건 맞는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그깟 머리 길이 따위 신경쓰는 지휘관도 별로 없고, 삭발은 육군 하전사에게만 적용되고 군관은 규정상 단정하게 기를 수 있었다. 포로야 관리가 잘 안되니 머리가 긴 경우도 수두룩한 것이다. 게다가 워낙 급박한 전면전 상황이다 보니 아무나 막 잡아다 징병을 해대는데 머리 깎을 겨를조차 없어서 그냥 징병하는 대로 전투에 집어넣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1950년 6월까지 전면전도 아니고 비상경계령 상황만 지속되었을 때에도 장병들이 목욕도 이발도 못할 지경이었다.[62]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인민군 육군이 빡빡이 스타일인 건 맞지만 머리가 길다고 무조건 고증 오류는 아니다. 다음 사진을 보라.

사진

김포에서 미 해병대에 잡힌 인민군 육군소좌 김친수(조수석)

이 인민군 하전사의 머리도 꽤 길다.

극중 진석과 진태가 배치된 부대는 육군 제1보병사단이다. 영화 초반 유해발굴단이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진석의 소속부대가 1사단 제8보병연대[63]로 되어 있는 장면이 잠시 지나간다. 이 장면을 보면 진석이 참전한 전투는 다부동, 평양, 운산, 장진호, 초산, 두밀령 전투다. 이 중에서 두밀령 전투를 제외하곤 모두 1사단이 참여했다. 사실 데이터베이스 장면에는 진석의 제대 날짜가 1951년 8월 30일로 되어있다. 작중 가상의 두밀령 지구 전투에서 다리를 다쳐 의병 전역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진짜 두밀령 전투인 "피의 능선 전투"가 1951년 8월 16일에서 9월 5일까지 벌어진 전투를 감안하면 제작진이 이 전투를 염두에 두었다가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피의 능선 전투가 벌어진 곳의 이름이 두밀령이라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작 중 설정상 두밀령 전투[64]의 공식 명칭은 파주 석현리 전투다. 쉽게 말해 동명의 지명인 것. 참고로 이 사실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할 당시 극장에 배포된 팸플릿, 그리고 아트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前외교관 윤영엽 씨의 실제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은, 영화 속에서는 이진석의 형인 이진태가 죽었지만 실제로는 윤영엽씨의 동생이 폭사를 당했다는 부분이다. 상술되었듯이 모티브는 따로 있기에 그냥 유사 사례이다.해당링크 참조.[65]

대규모 전쟁 영화임에도 국방부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메이킹 북에 그 이유가 서술되어 있다. 전쟁 영화이기에 국방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7개월 간의 접촉 끝에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대한민국 육군 측에서 수십 군데에 달하는 시나리오 수정 요구가 있었고, 제작진은 본질을 훼손하면서 영화를 제작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100% 국방부 혼자만의 잘못으로 당시 국방부는 군대 관련 영화는 오직 배달의 기수전우 같은 영화만 고집하고 그 나머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다 불온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강제규와 국방부가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부분이 이 영화 극초반에 나오는데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진석을 군인들이 나이만 물어보고 조사할 게 있다며 데려가서 징병했는데 이에 진태가 진석을 데리러 갔지만 둘 다 징병대상이라며 열차에서 못 내리게 막는 국군 대위와 병사들에 저항했지만 잡혀서 같이 강제로 입대당하는 묘사이다. 이 부분을 국방부는 진태와 진석이 미치도록 군복무를 하고 싶어해서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군입대를 자원하는 것으로 수정하라고 압박을 가했고 강제규는 사실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고 원래대로 촬영했다.[66]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이유는 보도연맹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형제가 자원 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 징집당한다는 것이다. 본문 내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를 틀어버리면 흥행까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극 자체에 대한 평가가 역대급의 감동 대신 개쩌는 반공영화 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또한 영화가 촬영 중일 때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던 이준 전 장관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국군 영웅이 상관을 죽이고, 인민군 장교가 되는 것도 문제삼았다고 한다. 실제로 국방부에서도 이 두세 가지 요소를 빼는 것을 협조의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강제규 감독이 거부하고 국방부 협조 없이 찍었다. 이처럼 국방부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요소가 몇군데 있어서, 국방부에서 노골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방해하고 휴가장병들에게 이 영화를 보지 말 것을 강요하였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로, 오히려 이 영화가 개봉한 2003년 당시의 국방부 장관인 조영길 전 장관은 장병을 대상으로 무료 시사회를 2차례나 열며 관람을 권장했다.

국방부가 이 영화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에도 사정이 더 있었는데, 2001년 당시 여순 사건을 그린 영화 애기섬에 각종 지원을 했었으나, 흥행은 흥행대로 안되고, 국방부 이미지만 나빠지는 결과가 나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불똥이 튄것이였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예상외로 엄청난 흥행을 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링크 결국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대본이라는 이유로 스폰서를 거부했다가 이 영화 관련된 그 어떤 수익도 상관없게 된 것이다.

피난민들이 기차역에 몰려드는 장면의 증기 기관차는 촬영 당시 직접 제작한 물건이다. 옛 곡성역에서 촬영했으며, 곡성 기차마을에 관광객용 열차로 남아 있다. 그런데 촬영 이후 폐기된 세트를 안 치우고 방치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중에 부랴부랴 제작사에서 회수하여 폐기 처분했다.

작 중 딱 두 번 나오는 공습 장면(개전 당일 조선인민군 공군의 서울 공습과 두밀령 전투 직전의 화력 지원) 중 두밀령 전투 때 나온 미 해군 F4U 콜세어 전투기는 CG인데, 재현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제작진에서 반지의 제왕 CGI 팀을 섭외하다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오자 미국까지 찾아가며 만들어냈다고 한다. 다만 추락 이후 파편씬에서 CG 티가 많이 난다고 까이긴 했다.

평양시가전과 후반부 고지전에 나오는 M4 셔먼은 위에서 서술한것 처럼 국방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제작진이 불도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67].

영화 중반 서울 수복 후, 병사들이 스테인리스 식판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야전 병원에서 진석이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식사를 하는데 그 당시 스테인리스 식기는 있었으나 식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극중 최민식이 탑승한 차량은 구 소련의 GAZ-67이다. 이 차량이 등장하는 영화가 거의 없기도하고 비중이 있는것도 아닌데 이것까지 재현했다.

이외에 소소한 사항으로, 이진태가 북한군에 합류하고 깃발부대가 맹위를 떨칠 때 북한 측이 살포한 유인물에 사용된 폰트가 90년대 이후 컴퓨터용으로 개발된 폰트라는 것이 있다.

6. 의의

이 영화는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 이전까지 전쟁영화는 무조건 반공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담아야 한다는 프로파간다식 제약이 있었고, 그렇기에 작중 등장하는 병력들도 전원 자진해 입대하고, 이들의 소속된 군대 또한 적과 싸우되 무방비의 민간인이나 포로들을 상대로 더러운 짓은 일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간다 성향이 옅은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전쟁을 국가 혼자만의 관점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애환을 그린 최초의 영화라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전쟁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구성원 개인의 애환을 다룬 영화가 참 많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아마도 이 영화의 영향을 2010년 드라마 전우에서 영향을 받아 천성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우, 배달의 기수, 3840 유격대 등등 오직 프로파간다를 위해서만 제작되는 싸구려 전쟁영화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영화이다.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는지에 대한 비중이 훨씬 높은 영화인지라 저런 싸구려 프로파간다 전쟁영화들에 비하면 훨씬 휴머니즘이 넘치는 영화이다. 다만 위에 나온 영화들이나 티브이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 리메이크된 거 빼고) 과거 반공 정책이 엄청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든지 여러 배경을 봐야한다. 전쟁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만큼, 그 시절에 저런 거 없이 만들긴 어려웠고 그리고 저런 시절에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대로 개봉도 투자도 하기 어려웠던 영화이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해병도 저런 싸구려 전쟁영화라고 오늘날에는 오해받고 있지만, 사실 이건 무려 1960년대 영화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전쟁 찬양하니 애국적인 프로파간다보다도 이 영화는 오히려 반전을 넣고 있으며 권선징악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득하던 당시 한국 전쟁영화들에서 전쟁의 참상 속에서 발휘되는 인간애와 전우애를 내용으로 담던 작품이다. 이 영화 감독인 이만희는 이후 어처구니없게도 반공영화임에도 <7인의 여포로>(1965)에서 북한군 장교를 멋지다고 나오는 묘사(고작해야 극중 여군을 강간하려던 중공군을 북한군 장교가 막아줘 고마워하며 하던 칭찬가지고!)등으로 재판을 받고 교도소를 가야했던 시대이다.

7. 기타

영화의 제목은 1955년 작곡된 김동진 작곡의 곡 '조국찬가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장동건은 영화 흥행 이후 자기 휴대폰의 컬러링을 이 곡으로 바꾸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이에 해당되는 패러디가 존재하는데, 엘나스 필드의 히든스트리트 맵 중 왕관을휘날리며라는 맵이 존재한다. 특히 올드비라면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맵 이름답게 몬스터 페페들이 빠르게 달리는게 마치 왕관을 휘날리면서 달린다해서 혹자는 이런 의미를 담지 않았나하는 추측. 관계는 없지만 2004년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개봉 이후 메이플스토리에선 오르비스/엘나스를 첫 선보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온게임넷(現 OGN)에서는 마우스 휘날리며라는 제목의 스타크래프트 1 명경기를 재방송해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었다.

식객에서도 나온다. 성찬김진수가 데이트하러 갈때 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영화는 김수로가 맡은 배역 중 가장 악역이며 김수로는 비록 카메오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악역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미남배우의 대명사격인 두 사람을 주연으로 내세웠다보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드립이 나올 정도의 전무후무한 캐스팅이지만[68] 둘다 영화내내 전쟁터에서 흙탕물 피범벅이 되며 끝장나게 구르는지라 딱히 외모가 돋보이는 장면은 없다. 물론 흙탕물 속에서도 잘생기긴 했지만(...) 그리고 이 두 배우는 훗날 같은 배우인 고소영, 이나영과 세기의 결혼을 했다. 그래도 이런 엄청난 캐스팅 덕에 극중 나이든 이진석의 손녀로 나온 조윤희가 지나치게 예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는 소감에[69], 할아버지가 원빈, 큰할아버지가 장동건이니 손녀가 예쁜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럭키짱으로 유명한 김성모는 이 영화와 비슷한 만화인 태극기 펄럭이며를 그렸다. 묘하게 재미있는 만화다. 그리고 이근이라는 만화가가 학습만화로 2편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비고증 투성이다.

여담으로 조연이었던 공형진과 진석을 처형할 것을 명령하던 대대장 역의 김해곤은 같이 가문의 위기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형제의 소속 대대 전임 대대장을 연기한 조원희씨는 영화 포화속으로에서 3사단장을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서울지역사령관을 연기했다.

리버풀 FC크로아티아인 축구선수 데얀 로브렌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여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70]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15세 관람가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다.[71][72]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리거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해 머리의 반이 날아가는 장면, 돌로 머리를 여러번 찍어 죽이는 장면, 팔이 총에 맞아 절단되는 장면, 마취 없이 복부를 절단해서 장기가 나오는 장면[73], 감염된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잔인한 장면 못 보는 사람들은 감안하기를 권한다. 올드보이와 더불어 후일담을 담고 제작 당시 현장을 담은 컬러 사진이 들어간 책이 나온 바 있는데 분장용 시체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온 몸이 토막나는 시체들이나 얼굴이 터져나가는 시체를 촬영하던 모습도 사진으로 나왔는데 정말 멋모르고 보면 끔살된 시체를 치울 정도로 잘 만들었다. 이거 제작에 참여한 이가 케냐이민가서 살며 책을 냈는데 이거 제작을 회상하며 이 정교한 시체 1개를 만드는데 1천만원이 들어가서 100여개 이상을 만들어 박살내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외국 네티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단 덧글들을 보다 보면 국군 장병들이 미군 옷을 입고 그들의 장비를 쓴다고 미군을 연기하는 한국인(또는 한국계 미군)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영화를 만든 측에서는 '미군의 물자 지원'이라는 고증을 지킨 것 뿐인데 해외에선 이런 사실을 몰랐기에 벌어진 것.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아는 몇몇 네티즌들은 덧글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영화 제목이 '태극기 휘날리며' 이지만 반공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되려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제대로 묘사했다. 그 일례로 반공청년단 단장 역의 김수로는 반공을 빙자한 학살을 자행하며 이덕화도 울고 갈 제대로 된 악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특히 중간 중간 군인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는데,[74] 정작 주인공인 이진태의 행보는 상황에 따라 국군과 인민군을 넘나들며 활약하여 충성과는 거리가 멀고, 같은 국민끼리 총구를 들이대기도 하며, 대부분의 군인들과 관련인물들은 국가의 강요된 충성속에서 비극을 맞이 한다. 이 영화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그 태극기 밑에서 비극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에 가깝다. 즉, 전쟁은 북한이 일으켰지만 비극은 남북한 국민들이 죄다 뒤집어썼다는 역설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 또한, 같은 형제 민족끼리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지 말자는 은유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현재 유튜브 영화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서비스가 중지되어 있다. 이에 대해 유튜브 관계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미국 판권사와는 계약이 체결돼 미국 지역에서 서비스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유통 가능한 판권을 보유한 업체가 확인되지 않아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1. [1] 3위가 웰컴 투 동막골이 거둔 801만 관객이다. 1,108만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가 있긴 하지만 실미도는 휴전 후 남북 간의 대치가 배경이지 전쟁 상황이 아니다.
  2. [2] 아직 동방신기로 데뷔하기 이전이었다고 한다.
  3. [3] 시체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것은 국제 전쟁법 위반이다.
  4. [4] 다부동 전투 당시 369고지를 사수하던 중 전사했는데 유품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삼각자가 출토되었는데 이 순간을 다룬 다큐를 보고 강제규 감독이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5. [5] 이 영화 이전에 해안선(한국 영화)에서 강한철 상병역으로 소초장(소대장)역의 정진과 같이 출연했다.
  6. [6] 소대장은 기습 작전에서 북한군의 기관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후 소대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7. [7] 해안선(한국 영화)에서 소초장(소대장)역을 연기한 배우이며 강한철 상병역의 장동건과 같이 출연했다.
  8. [8] 인사는 무슨 얼마나 볼거라고 라고 이야기한다.
  9. [9] 모를수도 있지만 황산벌(영화)에서 김흠순의 아들 반굴을 연기한 배우다.
  10. [10] 영화 속에서는 이름 한번 치니까 한명의 신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품만으로 참전용사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실제 이름에, 소속까지 병기된 수통을 찾은 적도 있는데 그건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6월 21일자 진짜 사나이에서 6.25 특집으로 유해발굴단 편을 방영하였는데,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전달하기까지 보통 3년은 걸린다고 나온다. 게다가 이진석이란 이름은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정도로 흔한 이름이라 검색 범위가 육군 제1보병사단 내라고 해도 찾는데 몇십 분은 걸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세세한 고증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빠른전개를 위한 허구라고 볼 수 있다.
  11. [11] 그냥 구두만 닦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구두 장인으로 대성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차 정거장에서 하교하는 진석을 맞이하고 같이 돌아오는 장면에서 진석에게 구두의 종류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12. [12] 사실 이 부분에는 고증 오류가 있다. 헌병이 말한 징집 적령기가 잘 못 된 것. 1950년 당시는 그야말로 국군 역사상 최악의 혼란기로 무기도 장비도 훈련 시설도 모든게 부족한 실정이었기에(괜히 학도병들이 철모도 못쓰고 싸운게 아니다) 그냥 좀 늙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무기나 쥐어주고 전쟁터에 투입시킬 수 없었다. 즉 청년 중에서도 완전 건장한 청년이어야 군대에도 갈 수 있었던 것. 그러한 이유로 이 당시는 징집 연령도 만 25세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물론 이때는 오늘날처럼 신원 조회가 쉽게 쉽게 되던 시대가 아닌 만큼 당시의 급박한 전황을 고려하면 일일히 나이를 따질 시간 따위는 없었고 후술하듯이 징집적령기가 아닌 사람이나 군역 면제 대상자도 좀 젊어 보인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어느 정도 전선이 안정화 되었어도 여전히 병력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징집 연령도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이것이 절정에 달한 것은 1952년 중공군과 소모전을 계속할 때로, 이를 충당하기 위해 30세 이상까지 높였다.
  13. [13] 엄밀히 말하자면 때리기 전에 "동생이 기차를 잘못 탔어요. 우린 내릴 거요."라고 말하자 지휘봉으로 누르면서 한 말이다.
  14. [14] 이때는 징병제라는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기 전이었고 그 때문에 젊은 남자들을 거의 사냥하다시피 군대에 끌고갔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를 보면 한 청년이 길을 가다 마주친 군인들에게 그 자리에서 징집을 당했는데 자랑스럽게 면제 증명서를 내보였더니 육군 장교가 그걸 보고는 부욱 찢어버리고 "닥치고 따라와!"를 시전했다고 한다. 이런 오금저리는 일화를 볼때 영화에서처럼 별일 아니라는 거짓말로 낚아서 데려가는건 정말 양반급이다.
  15. [15]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하기 바쁜 다른 장병들과는 달리 "인사는 무슨, 얼마나 볼꺼라고"라는 말을 하며 간단하게 이름만 소개하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후, 포탄이 터지자 그대로 전사하고 말았다.
  16. [16] 소설판에서는 의무병이 '니미... 약은 커녕, 붕대 쪼가리도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고'라고 항변한다.
  17. [17] 이후 얼떨결에 따라왔다 이를 본 고영만 일병이 이렇게 앉아 죽기를 기다리냐며 절망적인 상황을 탄식하다 임 하사와 말다툼을 벌이다 서로 주먹질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임 하사가 왜 빨갱이를 그렇게 싫어하고 증오하는 지가 드러난다.
  18. [18] "넌 아직 학생이잖아"라는 진태의 말에 "지금은 군인이야"라며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이 부분만 봐도 그가 처음하고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수있다.
  19. [19] 물론 진태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게, 취재 때 "백척간두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공산당 아래 신음할 가족때문에 동생과 같이 자원입대하고 싸웠노라"고 거짓말을 했으나, 딱 봐도 원고 보고 국어책 읽기를 시전하는 수준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온 진태는 한글도 제대로 못쓰는 까막눈이었고 그런 그가 백척간두니 공산당이니 하는 단어를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회식의 경우 항목을 참조하자. 100% 강제였을거다. 특히나 상명하복이 확실한 군대인데다가 분위기가 분위기인만큼 더더욱.
  20. [20] 작중에선 대좌라고 잘못 부른다.
  21. [21] 다만 이때까진 진석은 뒤쪽에 벽보만 쏘고 살려주었다. 하지만 진태는 앞장서서 북한군에게 총을 쏘아대고 장교로 추정되는 북한군을 붙잡아 불에다 던지고 짓밟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전투가 끝난 뒤에도 앞장서서 포로들을 쏘아 죽였고, 그런 형을 진석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22. [22] 동생을 제대시킨다는 애초의 목적하고는 거리가 먼 행동. 이 무렵부터 그는 점차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23. [23] 소설판에서는 진석이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이 진석이 아무리 포로들을 패서 쓰러뜨려도 좀비처럼 계속 일어나서 진석한테 다가오는데, 진태는 이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묘사되었다.
  24. [내용] 24.1 전장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국군의 용맹과 희생으로 5개월 간의 짧고도 길었던 전쟁도 마침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 괴뢰 도당은 우리 용맹무쌍한 국군과의 모든 전투에서 패하고 속속 한-만 국경을 넘어 패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맥아더 원수께서는 유엔군 전투대의 신속한 국경 이동을 명령하셨습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노고많았습니다! 드디어 통일이 눈앞에 왔습니다!
  25. [25] 정확히는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포로 한명이 자신의 권총을 탈취해 쏘는 바람에 전사
  26. [26] 이 장면에서 피난민들이 기차에 몰려타는 장면도 나온다.
  27. [27] 1.4 후퇴 후 피난민들이 기차로 몰려드는 장면도 나온다.
  28. [28] 이진태 이등중사(오늘날 병장급)가 받은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나오는 훈장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습이다. 즉, 고증 오류라는 말.
  29. [29] 실제 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말 사상전향자 시설 및 단체인 대화숙(야마토주쿠)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단체였으나 공무원들 실적, 할당량주의에 쌀, 고무신등 주고 주민들 대상으로 가입을 강요했다는 것. 다음이 그 사례이다. 또한 보도연맹 중앙본부 최고지도위원이었던 선우종원(鮮于宗源)도 탈당성명서를 낸 좌익전향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개중에는 공산당 골수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쩌다 잘 못 판단하여 당원이 된 사람과 무지몽매한 탓으로 저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입당한 사람들, 심지어는 무슨 배급을 준다기에 멋도 모르고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준게 알고 보니 공산당 입당원서다는 웃지 못할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라고 밝혔다.(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0. [30] 소설판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양민들과 군인, 단원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고 묘사되었으며, 청년단원을 두들겨 패고 총을 빼앗은 양민이 다른 단원에게 총살당했고 그 단원은 다른 양민의 주먹에 머리가 깨져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싸움에 혼란을 틈타서 군인과 단원들을 죽이거나 때려눕혀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31. [31] 첫 발은 어깨에, 두번째 발은 오른쪽 가슴에 맞아 쓰러진다.
  32. [32] 청년단장이 진석에게 맞아 사망했는지 그냥 기절한 것인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
  33. [33]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두개골이 훤히 다 보인다. 생사가 불명확한 청년단장과 달리 이쪽은 확실히 사망한 듯. 그러나 융통성 없이 꼰대질을 하여 형제의 비극을 가중시킨 결과를 생각하면 작중에서 가장 사이다인 장면이기도 하다.
  34. [34] 방첩대원에게 총격을 가한 진석이 사형당하거나 수감되지 않고 무사한 것을 보면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진석이 벌인 짓에 대한 기록도 누락된 듯 하다.
  35. [35] 양 주사 말에 의하면 그때 날아온 총알이 급소 가까이에 박혀서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한다.
  36. [36] 사실 상관 살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국군에게 오는 순간 빼도박도 못하고 군법재판에 회부돼 총살당할 것이다. 반면 병력난에 시달리는 북한군 입장에선 훈장을 수여받은 뒤 반역자로 찍힌 그를 의사자로 추대해 선전에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37. [37] 그러나 그 때까지 진석이 모르던 진태의 본심을 감안하면 도리어 그런 진석이야말로 그 때 진태를 두고 떠올리는 인간 이하로 전락해버린 꼴이다.
  38. [38] 다만 문맹이라는 설정답게 맞춤법이 하나씩 틀려있다.(예: 걸어서>거러서, 보고싶어요>보고시퍼요, 잘있으니까>잘이쓰니까)
  39. [39] 이 때 임 하사의 모습은 처음의 증오에 가득 차있던 태도와 대조된다. 공산당 손에 처자식을 잃은 후 월남한 뒤 한국군에 입대한 그는 빨간건 다 싫어한다고 말할 정도로 빨갱이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던 사람이다. 자신 역시 처자식을 인민군에 잃고 국군에 투신했기에 국군에게 약혼자와 동생이 살해당한 진태가 복수심에 차서 인민군에 투신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팔이가 되며 반년간 전선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잠시 머리를 식힌 탓도 있을 듯.
  40. [40] 사실 일방적인 진태의 우세로 국군은 진태의 상대조차 되지 못하고 찔려 끔살된다.
  41. [41] 이 때 진태의 모습은 북한군 복장에 어깨에는 소좌 견장, 양 팔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얼굴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얼굴에 진 흉터로 폐인처럼 되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붉은 깃발이 묶인 총검은 덤. 소설판에서는 이 때 깃발부대장으로서의 진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 교통호 바닥으로 가차없이 국군의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르는 인민군, 그의 총검 끝에 묶인 피, 흥건한 인공기 총검 뽑으며 휙 돌아서는 인민군, 얼굴에 진 흉터, 초점없이 매서운 눈
  42. [42] 소좌 계급씩이나 되서 총검돌격을 하는 것을 보면 인민군에서도 이진태의 가치를 별로 높게 잡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가 인민군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이 좋은 선전거리이고 진태 본인의 욱체적 능력이 뛰어나기에 특공대원 정도는 맡길만 하지만 군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구두닦이 진태가 소좌 계급에 걸맞는 지휘 능력을 가졌을 리 없다. 인민군 입장에서는 잠깐 선전용으로 써먹으며 돌격대장으로 써먹다가 죽으면 그만이며 종전까지 살아남는다면 국군 복무 경력을 트집받아 참전 용사임에도 숙청해버릴 수도 있다.
  43. [43] 소설판에서 이 때 진태는 영신이와 진석이의 이름을 부르짖고, 이에 진석은 자신이 한 때 부정한 형의 본심을 비로소 깨닫고 참담한 심정이 된다. 그리고 이후 스스로 형에게 미안하다는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 눈을 못 감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평생을 뿌리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44. [44] 소설판에서는 이때 중공군들이 북한군들 대신 등장한다.
  45. [45] 영신이의 시체는 어떻게 해서 회수한 듯 하다.
  46. [46] 이때 진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참담한 표정이 된다.
  47. [47] 북한군이 노획한 것으로 추정.
  48. [48] 아예 전멸해버린다.
  49. [49] 코믹스와 소설판에서는 기관총의 총알이 떨어지자마자 중공군들의 집단 사격에 맞는데, 소설판에선 "영신아....이젠 네 곁으로 갈게...."라는 독백 속에서 눈을 감는다.
  50. [50] 진태가 그대로 있었으면 살아남아 수십 년 후에 이산가족 상봉 때라도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와 소설의 묘사를 볼 때 북한군과 깃발부대의 탄환(소설판에서는 중공군)이 진석을 비롯해 퇴각하는 한국 육군 장병들에게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있으면 다리에 총상까지 입은 진석은 무사히 피하지 못하고 총에 맞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동생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기관총을 거꾸로 향해 자신에게 시선을 유도한 진태의 선택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무사히 살아서 동생과 같이 돌아왔다 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이진태는 국군 시절 상관을 살해하고 인민군으로 전향한 뒤 이미 수많은 국군 장병들을 살해했기에, 아무리 동생이 살해당했다고 오해했음을 정상참작 하더라도 100% 사형이다.
  51. [51] 작중의 상황에서 두 형제가 모두 살아남아 함께 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진석이 인민군으로 투항하는 방법이다. 인민군 증원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민군 장교인 진태는 진석을 포로라며 보호해줄 수 있었을 것이고 이후에도 인민영웅 대접을 받는 자신의 빽으로 진석이 북한 민간인 신분으로 보내거나 적어도 포로가 아닌 인민군으로 복무하는 정도로는 지켜줄 수 있었을 것이다. 종전 시점까지 형제가 살아남는다면 형제는 어머니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겠지만 진태의 전공 덕에 북한에서 핵심 계층으로 대접받으며 그럭저럭 유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다만 남한 출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숙청당할 위험도 있긴 하다.) 이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결말이 국군 출신 형제가 함께 인민군으로 전향하여 북한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줄거리의 영화는 2004년 당시에나 2019년 현재에나 절대로 한국에서 개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52. [52] 소설판에선 진태의 유골을 보고 그 때 왜 중공군의 총격이 약해졌는지를 깨닫고, 더욱 처절하게 오열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석의 손녀와 유해발굴단들은 눈물을 흘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안쓰럽게 쳐다봤으며 이들 중 고개를 돌리던 자들도 묘사됐다.
  53. [53] 여기서 영신의 동생들과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동생이 "형은 학교 안 가?"라고 묻고 진석은 "형도 이제 학교 가야지."라고 답하며 페이드 아웃 되는데, 마치 전후 끔찍한 고난을 요람삼아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며 학교를 다녔던 재건 세대, 산업화 세대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소설판에서는 순서가 뒤바뀌어 어머니와 동생을 먼저 만난 뒤 집에서 형이 숨겨둔 구두를 보고 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형이 약속을 지킬 차례라며,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 제발 돌아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 희망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염원이라는 걸 50여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걸 감안하면 더더욱 서글퍼질 수밖에 없는 장면.
  54. [54] 미군이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고 극 후반 두밀령 전투에서 미 해병 항공대의 F4U 콜세어가 등장한다.
  55. [55] 단, 무기등 소품의 고증만 담당했고, 스토리 측면에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56. [56]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의 별칭이 잊힌 전쟁일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지만, 참전 규모나 전사자 숫자로만 보면 베트남 전쟁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다. 참전병력 48만 명 대 54만 명, 전사자 수 36,516명 대 58,209명, 더군다나 베트남전은 십수년을 끌었지만 한국전은 단 3년 만에 나온 전사자 수치다. 즉 규모에 비하면 관심이 안습하게 적어서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지만, 현실은 한국전 참전용사를 조상으로 둔 미국인들만 수백만 명, 그 중에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다가 관심을 가지고 파보다가 한국전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밀/역덕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57. [57] 일일이 수제작으로 만드는 것이라 상당히 비쌌다. 제작자는 모 공방을 운영하는 사장이었으나 별세하였다.
  58. [58] 일본 H사의 물건으로 발사 기능은 없고 클립 삽입과 배출, 그외 작동부 가동만 된다.
  59. [59] 1971년 폐교되었고 지금은 경기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60. [60] 키텔 튜닉은 목부분의 카라가 가쿠란과 똑같은 형태인 차이나 카라인데, 영화에서 묘사된 진태의 전투복은 마치 일반적인 셔츠 형태의 카라처럼 되어 있다. 6.25당시의 군관 전투복으로는 키텔 튜닉만이 사용되었고, 그 외의 전투복은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 북한이 사용하는 똥색 인민복식 전투복도 6.25 이후에나 제식화 된 것. 깃발부대 등장 씬 이전의 장면으로, 평양 전투 당시 진태가 생포한 인민군 총좌가 입고 있던 차이나 카라 형태의 전투복과, 진석이 형을 만나기 위해 인민군 진지로 도주해 투항했을 때, 진석을 의심하던 북한군 대대장이 입고 있던 전투복이 바로 키텔 튜닉이다. 이들은 진태가 입은 군복과는 다르게 고증에 맞는 형식의 옷들이다. 그냥 진태가 입은 군관 전투복만 고증오류라 보면 된다.
  61. [61] 서울 현충원에 가보면 6.25 때 돌아가신 분들의 묘비에는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62. [62] 김종오 사단장이 지휘하던 6사단은 6월 25일에도 끝까지 경계령을 유지하려 했지만 참모들과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애들 목욕하고 이발할 시간은 줘야합니다."라고 호소해서(...) 경계태세를 하향조정했을 정도다.
  63. [63] 그런데 전화에서는 '12연대 소속 이진석 하사님 맞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옥의 티이거나 사단 내에서 전쟁 중 재배치된 연대 기준인 듯. 아니면 병원에 있다가 형을 찾기위해 자원했을 때 붉은 깃발부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임시 배치 또는 전출되었을 수도 있고... 12연대 참전 지역을 수색 중이어서 감식반-행정반 간에 소통이 잘 되지 않아 "12연대 전투지에서 발견된 분이니까 12연대겠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64. [64] 피의 능선 전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영화상 벌어진 가상의 전투를 말하는 거다.
  65. [65] 제작사 쇼박스 측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나리오 모티브가 된 "형제의 상"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한편,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분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기 시작했는데, 윤영엽 씨의 사연은 이때에 밝혀진 듯하다.
  66. [66] 이후 영화 연평해전의 사례를 보면 군 내부의 부조리나 북한에 대한 중립적 묘사가 있더라도 군의 지원이 가능해질 만큼 비교적 엄격한 분위기는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주체가 국방부가 아니라 해군이기는 하지만.
  67. [67] 불도저 엔진을 자작한 M4 셔먼 차대에 얹었다고 한다.
  68. [68] 원빈은 당시 영화배우로서 검증된 상태는 아니였긴 하다.
  69. [69] 영화배우가 예쁜게 뭐가 이질적이냐 할 수도 있지만, 조윤희가 등장하는 장면은 액자식 구성의 액자 바깥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조윤희 이외에는 외모 면에서는 평범한 배우들이 등장하였다.
  70. [70] 한국팬들에게 하는 립서비스가 아닌, 전세계 팬들과 트위터로 QnA를 하는 행사에서 그렇게 답한 것이다.
  71. [71]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고, 그 외에도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나라가 많다.
  72. [72]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한국 영등위는 이상하게 전쟁영화들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퓨리같이 미국에서 R등급 받은 전쟁영화들도 한국에선 15세 등급을 받았다. 물론 R등급=청소년 관람불가라고 할 수는 없긴 하지만.
  73. [73] 장기가 튀어나오려 해서 그 장기를 손으로 잡고 집어넣는다.
  74. [74] 다만 이는 군대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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