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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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비유적 의미
3. 역사
4. 사례
4.1. 한국
4.2. 중국
4.3. 일본
4.4. 베트남

1. 개요

太上皇, Retired Emperor[1]

제위를 선양하고 물러난 황제를 높여 가리키는 칭호로, 상황(上皇) 태황제(太皇帝), 태상황제(太上皇帝)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아버지아들에게 황제자리를 세습하기 때문에 태상황을 현 황제의 아버지로 아는 경우도 있고 크게 틀린 의미도 아니지만 진지하게 따지면 틀린 표현. 한국에서는 왕 버전으로 태상왕(太上王) 혹은 상왕(上王)이라 불러온 관계로 상왕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태상왕이 상왕보다 더 높은 표현이다. 태상왕은, 태조정종처럼 상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왕이 세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났을때 선왕을 더 높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즉, 태상왕(태조)>상왕(정종)>금왕(태종)의 경우가 있다.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는 정종이 생존하여 상왕이 둘이었으나 나이로는 정종이 태상왕이어야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태종이 더 우위이다 보니 그를 태상왕으로 높이고자 했으나 태종은 사양하고, 정종 역시 그랬기에 태상왕을 따로 존숭하진않고 편의상 정종을 노(老)상왕이라고 하다가, 정종 사후에야 태종을 태상왕으로 존숭하였다.

대원군과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2] 엄연히 다르다. 상왕은 '양위하고 물러난 왕'이고 대원군은 '본인은 왕이었던 적이 없는, 재위 중인 왕의 친아버지'[3]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슷한 이미지가 형성이 되어 있다. 한국에서 상왕 노릇으로 유명한 사람이 조선 태종, 대원군 노릇으로 유명한 사람이 흥선대원군인데 두 사람 모두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치고 군권 등 중요한 권력을 휘어잡고 직접 국정 운영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 듯.[4] 수렴청정과도 얼추 비슷한 느낌으로 통하는 듯.

창작물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는 속성이기도 하다. 잘해봐야 아바타 코라의 전설에서의 주코가 딸에게, 겨울왕국 2에서 엘사안나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상왕이 된 것 정도.[5]

2. 비유적 의미

요즘에도 권력의 배후에서 실세로 군림하는 것을 일컬어 '상왕 노릇' 한다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러나 막상 한국사를 살펴보면 막후 권력을 행사했던 상왕은 끝까지 병권을 놓지 않은 조선태종 단 한 사람 뿐이고, 그 외에는 그냥 '살아있는 전직 왕'으로 여생을 보내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상왕 노릇'이란 건 없었던 셈이지만 태종의 이미지가 워낙 크고 인지도도 높아서 상왕의 이미지가 이렇게 형성되었다.

한국 정계는 독재 정권이 종식된 1988년 이후 30여년 간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를 고수해왔기에 레임덕에 극히 취약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대부분 전 정권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전 대통령을 물어뜯으면서 세를 불리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의 상왕이나 막후 실세 노릇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당장 1988년에 전두환이 물러나면서 전직 대통령이 수장인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이상한 조직을 헌법에 박아놓고, 퇴임 직전에 군 인사를 단행해 전두환계 군인들을 대거 군부 요직에 박아놓아 노태우에 대한 배후 조종을 시도했으나, 노태우는 올림픽 개막식 참석 금지와 백담사 유배로 화답했다.

그나마 '3김'의 일원이었던 김영삼김대중의 경우, 퇴임 후에도 막후 영향력이 작지 않았고 현직 정치인들과의 접촉도 매우 활발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상징성과 명분의 문제였지, 두 사람이 퇴임 후에도 공천권과 같은 정치적 실권을 가지지는 못하였다. 김종필 역시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단순히 정계 원로 인사로서의 상징성만 가졌지 실질적인 권력은 사실상 없었다.

그러기에 전 대통령보단 현 정권의 실세들이 상왕 타이틀을 다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노무현 정부 시절의 노건평과 이명박 정부 시절 이명박의 형인 이상득의 영향력이 굉장해서 상왕이라고 야당에서 마구 깠었다.[6] 이 경우 상왕 대원군 수렴청정 구분 없이 막 갖다써도 뜻이 통하기 때문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은 대원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쪽은 '비선' 문서에도 내용이 나와 있다. 19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네거티브 문구로 철수를 으면 지원이 상왕 된다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반면 일본 정치는 내각제인데다 자민당의 일당 독주가 오래 지속되며 그 기간 동안 착실히 의원 세습이 이루어지다 보니, 굳이 총리직을 앞세워 전면에 나설 필요 없이 계파만 꽉 잡고 당내 실권 및 공천권만 쥐고 있으면 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원래도 모든 일본 정치인들의 로망인 히카루 겐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총리는 4~5년만 하고 자민당 당권을 평생 쥐고 막후 실세로 군림하기 위해 정치력을 당권 투쟁에 쏟아붓는다. 그래서 일본 정치가 '상왕'이 등장하기 좋은 구조인 것. 재밌게도 이는 후술할 과거 일본의 모습과 흡사하다. 세계적인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정치는 어째 영...

중국같은 경우 사회주의 국가로 자신이 퇴임후 핵심권력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하나 가지고 상왕이 되거나 절반이상의 상무위원을 자신의 심복들로 배치하면 끝이다. 실제로 덩샤오핑과 장쩌민이 그예시인데 덩은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를 겸임하지 않고 자신의 심복들에 배치하고 장쩌민은 퇴임뒤 2년 동안 군사위 주석을 지키고 있어 후진타오의 상왕 노릇하고 자신이 속한 상하이방의 출신들을 절반이상 배치해놨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가 상왕노릇을 하여 선임장관과 고문장관이라하여 내각총리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우리나라의 국가원로자문위와 국가정책자문위와 비슷하지만 사실상 실세로 말이 장관이지 사실상 부총리급이다.

러시아에서 차르 푸틴도 대통령직의 8년 임기 마치고 인기가 최상위이고 더 연임하면 독재자라고하여 언론에서 떠드니 차라리 대통령직을 건너뛰고 자신의 심복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을 세웠고 자신은 4년 동안 총리와 통합러시아당 당수를 겸임해 실세 상왕이라 불릴 정도로 권력이 강력했다.

3. 역사

3.1. 중국

기원은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아들 혜문왕에게 양위하고 자신을 군주의 아버지라는 뜻에서 '주부(主父)'라고 자칭한 것이다. 太上皇이라는 표현은 진시황에 의해 추존된 장양왕이 첫 사례이며, 살아서 태상황이 된 최초의 인물은 한고제의 아버지로, 보통 유태공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유방이 초한전쟁 당시 아버지에게 미안한 일이 좀 있어서[7] 깍듯하게 대했다. 기록의 표현에 따르면 황제와 그 아버지의 관계가 아니라 일개 평민의 부자 관계처럼 편하게 대하였단다. 이를 본 유태공의 신하가 '아무리 아버지이어도 상대가 황제이신데 위아래란 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간언했고, 유태공도 이를 받아들여서 이후부터 유방을 만날 때는 황제에 대한 예를 갖췄다. 그러자 유방은 '그럼 아버지가 황제보다 더 높으면 될 거 아냐'라며 즉석에서 태상황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간언을 한 신하에게는 따로 상을 내렸다. 이에 대해 안사고는 한서의 주석에 '천자의 아버지이므로 황(皇)이라 불렀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제(帝)라고 하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황제라는 칭호에서 '황'보다는 '제'가 실권을 가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후대의 태상황 가운데서 황제를 대신해 실권을 갖고 정사를 돌본 경우 태상황이 아니라 태상황제(太上皇帝)라고 칭했다.

남북조시대 북제에서는 고담이 제위를 아들 고위에게 물려주고 고위가 다시 자기 아들 고항에게 제위를 물려줘서 할아버지 고담과 아버지 고위가 동시에 태상황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본래 태상황이었던 고담은 스스로를 무상황(無上皇)이라 칭하고 고위를 태상황이라 했다.

당나라현종은 말년에 암군으로 전락하면서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피난을 갔는데, 분조를 이끄던 신하들이 황태자를 추대했다. 그러자 현종은 본인의 과실을 깨닫고 순순히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반면, 명나라 정통제는 몽골과의 전쟁에서 생포되어 인질이 되었는데, 당시 명 황실에 의해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제로 태상황 자리에 올랐다(…).

3.2. 한국

고구려태조왕이 동생 혹은 장남인 차대왕에게 양위하고 별궁에서 기거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태조왕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다소 논란이 있다). 100세를 훌쩍 넘겨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수명을 비롯한 정황에서 상식적으로 삼국사기보다 중국 후한서의 기록이 더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데, 후한서의 경우는 태조왕이 죽고 나서 차대왕이 즉위한 것으로 쓰고 있다.

신라진성여왕효공왕에게 양위하고 반 년 동안 태상왕으로 있었던 적이 있다.

고려헌종 · 명종 · 신종 · 희종 · 원종 · 충렬왕 · 충숙왕 · 우왕 8명의 사례가 있다.

헌종은 작은아버지 계림공에게 옥좌를 뺐겼다. 그리하여 전왕(前王)으로 불렸다. 명종은 최충헌에 의해 옥좌에서 끌려 내려 왔는데 동문선에 기록된 명종 애책문엔 명종이 태상왕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종은 태자 희종에게 선위하였다. 희종은 최충헌을 죽이려 했지만 실패, 강제로 선위한다. 희종은 태상왕, 혹 상왕으로 불렸다. 원종은 임연에게 협박당해 태상왕으로 밀려나 용암궁에 갇혔다가 다시 복위한다.

원 간섭기에 재위한 충렬왕·충숙왕은 아들에게 양위했다가 복위한 사례라 국왕 재위 순서가 좀 꼬여있다.(원종→ 충렬왕→ 충선왕→ 다시 충렬왕→ 다시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다시 충숙왕→ 다시 충혜왕→ 충목왕)

우왕은 폐위 후 차기 창왕의 아버지로서 태상왕이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실권은 이성계 일당이 쥐고 있어 강화도에서 사실상의 귀양살이를 했고, 1년여만에 아들 창왕과 함께 서인으로 강등당한 뒤 신씨 가짜 왕으로 몰려 살해당했다.

조선에선 태조·정종·태종이 모두 죽지 않고 왕위를 물려줬다(세조, 중종도 그랬지만 딱 하루 뒤 사망하여 예외). 태종 재위 기간에 태조와 정종이 공존했고, 세종 치세엔 정종과 태종이 공존했다. 태조는 상왕으로 2년·태상왕으로 8년을, 정종은 상왕으로 18년·태상왕으로 1년을, 태종은 상왕으로 1년·태상왕으로 3년을 보냈다(정종의 기록은 한국사에서 가장 긴 기록이다). 정종이 사망할 때까지 신하들은 일상적으로 정종을 '노상왕(老上王)'으로, 태종을 '상왕'으로 칭했으며, 정종이 사망한 뒤인 1421년 태종을 성덕신공태상왕(聖德神功太上王)으로 높이기도 했다.

3.3. 일본

정식 명칭이 태상천황(太上天皇), 줄여서 상황(上皇)[8]라고 하는데 이름에서도 감 잡았겠지만 일본사에서 중요한 단어이다. 헤이안 시대 말기, 천황이 황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퇴위한 다음 상황의 지위에 앉아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 중국에서 태상황이 실권을 가지고 정치를 한 경우 태상황제라고 칭했던 것처럼, 태상천황이 실권을 가지고 정치를 한 경우에는 치천의 군(治天の君)이라고도 불렀다. 이 시기는 실질적으로 상황이 실권자이며, 천황은 명목상 임금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황태자 정도의 지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천황들은 빨리 자리를 후계자에게 넘겨버리고 자신이 상황이 되는 게 지상 목표가 되어 버렸다. 덕택에 빨리 황위를 넘겨버리고 상황이 되려고 다들 아등바등해서 동시에 상황이 2인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당연히 천황들의 정치는 제대로 꼬이게 된다. 심지어 아직 한창의 나이인 30~40대에 퇴위하려고 하는 천황들도 있었다. 이에 따라서 당시에는 천황들의 즉위 연령도 매우 어렸다. 이는 동양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왕이 금왕을 살아서 압도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이며, 한국(14명)이나 중국(23명)과 달리 50여 명이 넘는 태상황이 존재했다. 심지어 일시적이기는 해도 1304년에는 동시에 태상황이 5명(...)이나 존재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왕이 금왕보다 큰 권력을 휘둘렀던 경우로 조선 태종-조선 세종 부자와 건륭제-가경제 부자를 들 수 있다.

상황이 출가해 승려가 되면 태상법황(太上法皇), 줄여서 법황(法皇)이라고 불렀다.[9] 물론 출가한 뒤에도 권력을 내놓지는 않았다(…). 심지어 승려이면서 할 거 다 하고 살았다. 그냥 삭발하고 법명만 받은 땡중 수준. 많은 상황들이 이 방법을 애용한 이유는 책임감을 최대한 덜기 위해서였다. 실세로 군림하다가 나쁜 일 생기면 "소신은 그냥 중일 뿐…"이라면서 내빼고, 이에 따른 책임은 주로 아들인 천황이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했다.

또한 조정 위에 인(院)이라는 옥상옥 기관도 있어 상황이 권력을 좌우했다. 상황의 인과 조정의 갈등은 무사들의 시대를 불러온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천황의 실권이 완전히 박탈당하다시피 하면서 이런 관례도 자연스럽게 소멸해버렸다. 허나 에도 막부 초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 자리를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승계한 뒤 오고쇼(大御所)란 자리에 올라 역사를 그대로 반복했고, 이후 '오고쇼'는 사실상 상왕에 해당하는 호칭으로 차리잡게 되었다.

고카쿠 덴노를 마지막으로 약 200년 동안 상황은 등장하지 않았으나, 2019년 아키히토가 퇴위함에 따라 다시 상황이 등장했다. 아키히토 본인은 과거 상황들처럼 막후 정치를 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상황 대신 원황(元皇)이나 전황(前皇)으로 불리기를 원했으나, 2017년 6월 9일 일본 국회를 통과한 "천황의 양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특례법"에서 '상황(上皇)'의 칭호를 사용할 것으로 확정되었다. 단 여기서 상황은 태상천황의 약칭이 아니라, 그냥 정식 호칭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키히토의 퇴위 후 아내인 미치코 황후에게 주어질 칭호는 황태후가 아니라 상황후(上皇后)로 결정되었다.

3.4. 서양

서양에는 본래 태상황 또는 상왕이라는 개념이 없다. 오히려 퇴위한 국왕은 종전보다 격하된 공작 내지 프린스 칭호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에서 왕호나 작호는 '영토'에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통치권을 양위한 자는 더이상 국왕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10] 예컨대 영국윈저 공이나, 네덜란드빌헬미나, 베아트릭스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퇴위한 국왕에게도 왕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바티칸의 군주(Princeps sui iuris Civitatis Vaticanae)에 해당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경우, 퇴위 후에도 추기경이 아니라 전임 교황(Pope Emeritus)이라 불리며, '성하' 경칭이나 교황을 상징하는 흰색 수단 등의 예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벨기에알베르 2세스페인후안 카를로스 1세 역시 퇴위 후에도 국왕의 칭호를 유지한다.

퇴위를 하면 재위중에 했던 피휘가 해제된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경우 His Majesty The King에서 His Majesty King Juan Carlos of Spain로 경칭이 변경.

4. 사례

4.1. 한국

한국

왕조

군주

후임자

관계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사망(나이)

비고

고구려

태조대왕

차대왕

146.

165.

약 19년

165.(119세)

[11]

신라

진성여왕

효공왕

고모

897.07.04.
(진성11.06.01.)

897.12.31.
(효공01.12.04.)

5개월 27일

897.(30대?)

고려

헌종

숙종

조카

1095.11.07.
(헌종01.10.07.)

1097.11.06.
(숙종02.윤02.19.)

2년

1097.(13세)

충렬왕

충선왕

1298.03.02.
(충렬24.01.16.)

1298.09.13.
(충렬24.08.18.)

6개월 11일

1308.(73세)

재즉위(1298.)

충숙왕

충혜왕

1330.02.18.
(충숙17.02.10.)

1332.03.21.
(충숙후1.02.24.)

2년 32일

1339.(46세)

재즉위(1332.)

우왕

창왕

1388.07.12.
(우왕14.06.08.)

1389.12.31.
(공양01.12.14.)

1년 172일

1389.(24세)

조선

태조

정종

1398.10.14.
(태조07.09.05.)

1408.06.18.
(태종08.05.24.)

9년 250일

1408.(74세)

태종

정종

태종

1400.11.28.
(정종02.11.13.)

1419.10.15.
(세종01.09.26.)

18년 325일

1419.(63세)

[12]

세종

백부

태종

세종

1418.09.09.
(태종18.08.08.)

1422.05.30.
(세종04.05.10.)

3년 264일

1422.(56세)

단종

세조

조카

1455.07.25.
(세조01.윤06.11.)

1457.07.12.
(세조03.06.21.)

1년 353일

1458.(17세)

세손-세자--상왕-폐위-복위

세조

예종

1468.09.22.
(세조14.09.07.)

1468.09.23.
(예종즉위.09.08.)

1일

1468.(52세)

중종

인종

1544.11.28.
(중종39.11.14.)

1544.11.29.
(인종즉위.11.15.)

1일

1544.(57세)

고종

순종

1907.07.20.
(융희01.07.20.)

1910.08.29.
(융희04.08.29.)

3년 41일

1919.(68세)

대한제국 태황제

1910.08.29.

1919.01.21.

8년 147일

조선 덕수궁 이태왕

4.2. 중국

중국

왕조

군주

후임자

관계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사망(나이)

비고

장양왕

시황제

-

-

-

BC247.(35세)

추존

전한

?[13]

고제

BC201.

BC197.

4년

BC197.(?)

고제가 존봉

서진

혜제

사마륜

질손

301.02.03.
(영강02.01.09.)

301.05.30.
(영녕01.04.07.)

3개월 27일

301.(?)

복위(301.)

후량

태조

은왕

399.

399.

며칠

399.(63세)

북위

헌문제

효문제

471.09.20.
(연흥01.08.20.)

476.07.20.
(승명01.06.13.)

4년 305일

476.(23세)

모친에게 독살

북제

무성제

후주

565.06.08.
(천통01.04.24.)

569.01.13.
(천통04.12.10.)

3년 220일

568.(32세)

후주

유주

577.02.04.
(승광01.01.01.)

577.02.28.
(승광01.01.25.)

24일

578.(21세)

북주

선제

정제

579.04.01.
(대상01.02.19.)

580.06.22.
(대상02.05.24.)

1년 83일

580.(21세)

양제

공제

조부

617.12.18.
(의녕01.11.15.)

618.04.11.
(의녕02.03.11.)

2개월 24일

618.(50세)

명목상의 태상황

고조

태종

626.09.04.
(무덕09.08.09.)

635.06.25.
(정관09.05.06.)

8년 294일

635.(71세)

측천무후

중종

705.02.21.
(신룡01.01.23.)

705.12.16.
(신룡01.11.26.)

9개월 23일

705.(81세)

예종

현종

712.09.08.
(선천01.08.03.)

716.07.13.
(개원04.06.20.)

4년 36일

716.(54세)

현종

숙종

756.08.01.
(지덕01.07.01.)

762.05.03.
(보응01.04.05.)

5년 264일

762.(78세)

순종

헌종

805.08.31.
(영정01.08.04.)

806.02.11.
(원화01.01.19.)

5개월 12일

806.(45세)

소종

덕왕

900.12.04.
(광화03.11.10.)

901.01.24.
(광화04.01.02.)

1개월 20일

904.(37세)

복위(901.)

북송

휘종

흠종

1126.01.18.
(선화07.12.23.)

1135.06.04.
(소흥05.04.21.)

9년 139일

1135.(54세)

남송

고종

효종

양부

1162.07.24.
(소흥32.06.11.)

1187.11.09.
(순희14.10.08.)

25년 153일

1187.(81세)

효종

광종

1189.02.18.
(순희16.02.02.)

1194.06.28.
(소희05.06.09.)

5년 130일

1194.(68세)

광종

영종

1194.07.24.
(소희05.07.05.)

1200.09.17.
(경원06.08.08.)

5년 266일

1200.(54세)

서요

야율직로고

굴출률

장인

1211.

1213.

2년

1213.(?)

서하

신종

헌종

1224.

1226.

2년

1226.(64세)

영종

대종

1449.09.22.
(정통14.09.06.)

1457.02.11.
(천순01.01.17.)

7년 142일

1464.(38세)

복위(1457.)

고종

인종

1796.02.09.
(가경01.01.01.)

1799.02.07.
(가경04.01.03.)

3년 4일

1799.(89세)

4.3. 일본

일본

시대

군주

후임자

관계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사망(나이)

비고

아스카

지토 덴노

몬무 덴노

조모

697.08.22.
(지토11.08.01.)

703.01.13.
(다이호02.12.22.)

5년 146일

703.(58세)

겐메이 덴노

겐쇼 덴노

715.10.03.
(와도08.09.02.)

721.12.19.
(요로05.12.07.)

6년 80일

721.(61세)

나라

겐쇼 덴노

쇼무 덴노

724.03.03.
(요로08.02.04.)

748.05.22.
(텐표20.04.21.)

24년 87일

744.(64세)

쇼무 덴노

코켄 덴노

749.08.19.
(텐표쇼호01.07.02.)

756.06.04.
(텐표쇼호08.05.02.)

6년 292일

756.(56세)

헤이안

코켄 덴노

준닌 덴노

재종손

758.09.07.
(텐표호지02.08.01.)

764.11.06.
(텐표호지08.10.09.)

8년 158일

770.(53세)

코닌 덴노

간무 덴노

781.04.30.
(텐오01.04.03.)

782.01.11.
(텐오01.12.23.)

8개월 13일

782.(73세)

헤이제이 덴노

사가 덴노

809.05.18.
(다이도04.04.01.)

824.08.05.
(코닌15.07.07.)

15년 84일

824.(50세)

사가 덴노

준나 덴노

823.05.29.
(코닌14.04.06.)

842.04.24.
(조와09.07.15.)

18년 336일

842.(57세)

닌묘 덴노

준나 덴노

닌묘 덴노

숙부

833.03.22.
(텐초10.02.28.)

840.06.11.
(조와07.05.08.)

7년 83일

840.(55세)

세이와 덴노

요제이 덴노

876.12.18.
(조간18.11.29.)

881.01.07.
(간교04.12.04.)

4년 20일

881.(31세)

출가(879.)

요제이 덴노

고코 덴노

종손

884.03.04.
(간교08.02.04.)

949.10.23.
(텐랴쿠03.09.29.)

65년 249일

949.(82세)

최장 기간
상황 재위

우다 덴노

종질

다이고 덴노

재종형

스자쿠 덴노

재당숙

무라카미 덴노

우다 덴노

다이고 덴노

897.08.04.
(칸페이09.07.03.)

931.09.03.
(조헤이01.07.19.)

34년 30일

931.(65세)

출가(899.)

스자쿠 덴노

조부

스자쿠 덴노

무라카미 덴노

946.05.23.
(텐쿄09.04.20.)

952.09.06.
(텐랴쿠06.08.15.)

6년 108일

952.(30세)

출가(952.)

레이제이 덴노

엔유 덴노

969.09.27.
(안와02.08.13.)

1011.11.21.
(칸코08.10.24.)

42년 65일

1011.(62세)

카잔 덴노

이치조 덴노

백부

엔유 덴노

카잔 덴노

숙부

984.09.24.
(에이칸02.08.27.)

991.03.01.
(쇼랴쿠02.02.12.)

6년 159일

991.(33세)

이치조 덴노

카잔 덴노

이치조 덴노

종형

986.08.01.
(칸와02.06.23.)

1008.03.17.
(칸코05.02.08.)

21년 234일

1008.(41세)

출가(986.)

이치조 덴노

산조 덴노

종제

1011.07.16.
(칸코08.06.13.)

1011.07.25.
(칸코08.06.22.)

9일

1011.(32세)

출가(1011.)

산조 덴노

고이치죠 덴노

당숙

1016.03.10.
(조와05.01.29.)

1017.06.05.
(칸닌01.05.09.)

1년 88일

1017.(42세)

출가(1017.)

고스자쿠 덴노

고레이제이 덴노

1045.02.05.
(칸토쿠02.01.16.)

1045.02.07.
(칸토쿠02.01.18.)

3일

1045.(37세)

출가(1045.)

고산죠 덴노

시라카와 덴노

1073.01.18.
(엔큐04.12.08.)

1073.06.15.
(엔큐05.05.07.)

4개월 29일

1073.(40세)

시라카와 덴노

호리카와 덴노

1087.01.03.
(오토쿠03.11.26.)

1129.07.24.
(다이지04.07.07.)

42년 213일

1129.(77세)

출가(1096.)

도바 덴노

조부

스토쿠 덴노

증조

도바 덴노

스토쿠 덴노

1123.02.25.
(호안04.01.28.)

1156.07.20.
(호겐01.07.02.)

33년 174일

1156.(54세)

출가(1142.)

코노에 덴노

고시라카와 덴노

스토쿠 덴노

코노에 덴노

1142.01.05.
(에이지01.12.07.)

1164.09.14.
(조칸02.08.26.)

22년 258일

1164.(46세)

고시라카와 덴노

니죠 덴노

숙부

고시라카와 덴노

니죠 덴노

1158.09.05.
(호겐03.08.11.)

1192.04.26.
(켄큐03.03.13.)

33년 342일

1192.(66세)

출가(1169.)

로쿠죠 덴노

조부

다카쿠라 덴노

안토쿠 덴노

조부

고토바 덴노

니죠 덴노

로쿠죠 덴노

1165.08.03.
(에이만01.06.25.)

1165.09.05.
(에이만01.07.28.)

1개월 2일

1165.(23세)

로쿠죠 덴노

다카쿠라 덴노

조카

1168.04.09.
(닌난03.02.19.)

1176.08.23.
(안겐02.07.17.)

8년 138일

1176.(13세)

최연소 상황

다카쿠라 덴노

안토쿠 덴노

1180.03.18.
(지쇼04.02.21.)

1181.01.30.
(지쇼05.01.14.)

10개월 12일

1181.(21세)

가마쿠라

고토바 덴노

츠치미카도 덴노

1198.02.18.
(켄큐09.01.11.)

1239.03.28.
(엔오01.02.22.)

41년 48일

1239.(60세)

출가(1221.)

준토쿠 덴노

주쿄 덴노

조부

고호리카와 덴노

숙부

시죠 덴노

종조

츠치미카도 덴노

준토쿠 덴노

1210.12.12.
(쇼겐04.11.25.)

1231.11.06.
(칸키03.10.11.)

20년 334일

1231.(37세)

출가(1231.)

고호리카와 덴노

준토쿠 덴노

주쿄 덴노

1221.05.13.
(조큐03.04.20.)

1242.10.07.
(닌지03.09.12.)

21년 152일

1242.(46세)

고호리카와 덴노

종제

시죠 덴노

종숙

고타카쿠라 덴노

고호리카와 덴노

1221.09.03.
(조큐03.08.16.)

1223.06.14.
(조오02.05.14.)

1년 284일

1223.(45세)

출가(1212.)
아들이 존봉

고호리카와 덴노

시죠 덴노

1232.11.17.
(조에이01.10.04

1234.08.31.
(텐푸쿠02.08.06)

1년 288일

1234.(23세)

고사가 덴노

고후카쿠사 덴노

1246.02.16.
(칸겐04.01.29.)

1272.03.17.
(분에이09.02.17.)

26년 36일

1272.(53세)

출가(1268.)

가메야마 덴노

고후카쿠사 덴노

가메야마 덴노

1260.01.09.
(쇼겐01.11.26.)

1304.08.17.
(카겐02.07.16,)

44년 233일

1304.(62세)

출가(1290.)

고우다 덴노

백부

후시미 덴노

고후시미 덴노

조부

고니조 덴노

종조

가메야마 덴노

고우다 덴노

1274.03.06.
(분에이11.01.26.)

1305.10.04.
(카겐03.09.15.)

31년 221일

1305.(57세)

출가(1289.)

후시미 덴노

숙부

고후시미 덴노

종조

고니조 덴노

고우다 덴노

후시미 덴노

종제

1287.11.27
(코안10.10.21.)

1324.07.16.
(겐코04.06.25.)

36년 242일

1324.(58세)

출가(1307.)

고후시미 덴노

종숙

고니죠 덴노

하나조노 덴노

종숙

고다이고 덴노

후시미 덴노

고후시미 덴노

1298.08.30.
(에이닌06.07.22.)

1317.10.08.
(분포01.09.03.)

19년 45일

1317.(53세)

출가(1313.)

고니죠 덴노

종숙

하나조노 덴노

고후시미 덴노

하나조노 덴노

1301.03.02.
(쇼안03.01.21.)

1336.05.17.
(엔겐01.04.06.)

35년 86일

1336.(49세)

출가(1334.)

고곤 덴노

하나조노 덴노

고다이고 덴노

1318.03.29.
(분포02.02.26.)

1348.12.02.
(쇼헤이03.11.11.)

30년 257일

1348.(52세)

출가(1335.)

고곤 덴노

숙부

고묘 덴노

남북조

고다이고 덴노

고무라카미 덴노

1339.09.18.
(엔겐04.08.15.)

1339.09.19.
(엔겐04.08.16.)

1일

1339.(52세)

조케이 덴노

고카메야마 덴노

1383.10.07.
(코와03.09.11.)

1394.08.27.
(오에이01.08.01.)

10년 328일

1394.(52세)

고코마츠 덴노

고카메야마 덴노

고코마츠 덴노

1392.11.19.
(겐추09.윤10.05.)

1424.05.10.
(오에이31.04.12.)

31년 191일

1424.(78세)

출가(1397.)

고곤 덴노

고묘 덴노

1333.07.07.
(겐코03.05.25.)

1364.08.05.
(쇼헤이19.07.07.)

31년 38일

1364.(52세)

출가(1352.)

스코 덴노

고코곤 덴노

고묘 덴노

스코 덴노

숙부

1348.11.18.
(쇼헤이03.10.27.)

1380.07.26.
(고랴쿠02.06.24.)

31년 259일

1380.(59세)

출가(1355.)

고코곤 덴노

고엔유 덴노

종조

스코 덴노

고코곤 덴노

1351.11.26.
(쇼헤이06.11.07.)

1398.01.31.
(오에이05.01.13.)

46년 79일

1398.(65세)

고엔유 덴노

백부

고코마츠 덴노

백종조

고코곤 덴노

고엔유 덴노

1371.04.09.
(오안04.03.23.)

1374.03.12.
(오안07.01.29.)

2년 339일

1374.(37세)

고엔유 덴노

고코마츠 덴노

1382.05.24.
(에이토쿠02.04.11.)

1393.06.06.
(메이토쿠04.26.)

11년 14일

1393.(35세)

무로마치

고코마츠 덴노

쇼코 덴노

1412.10.05.
(에이토쿠19.08.29.)

1433.12.01.
(에이큐05.10.20.)

21년 63일

1433.(57세)

출가(1431.)

고하나조노 덴노

숙부

고하나조노 덴노

고츠치미카도 덴노

1464.08.21.
(칸쇼05.07.19.)

1471.01.18.
(분메이02.12.27.)

6년 152일

1471.(51세)

출가(1467.)

오오기마치 덴노

고요제이 덴노

조부

1586.12.17.
(텐쇼14.11.07.)

1593.02.06.
(분로쿠02.01.05.)

6년 54일

1593.(77세)

에도

고요제이 덴노

고미즈노오 덴노

1611.05.09.
(케이초16.03.27.)

1617.09.25.
(겐나03.08.26.)

6년 141일

1617.(47세)

고미즈노오 덴노

메이쇼 덴노

1629.12.22.
(칸에이06.11.08.)

1680.09.11.
(엔포08.08.19.)

50년 276일

1680.(85세)

출가

고코묘 덴노

고사이 덴노

레이겐 덴노

메이쇼 덴노

고사이 덴노

누나

1643.11.14.
(칸에이20.10.03.)

1696.12.04.
(겐로쿠09.11.10.)

53년 20일

1797.(72세)

고코묘 덴노

레이겐 덴노

히가시야마 덴노

고모

고사이 덴노

레이겐 덴노

1663.03.05.
(칸분03.01.26.)

1685.03.26.
(조쿄02.02.22.)

22년 21일

1685.(47세)

레이겐 덴노

히가시야마 덴노

1687.05.02.
(조쿄04.03.21.)

1732.09.24.
(쿄호17.08.06.)

45년 257일

1732.(78세)

출가(1713.)

나카미카도 덴노

조부

히가시야마 덴노

나카미카도 덴노

1709.07.27.
(호에이06.06.21.)

1710.01.16.
(호에이06.12.17.)

5개월 20일

1710.(36세)

나카미카도 덴노

사쿠라마치 덴노

1735.04.13.
(쿄호20.03.21.)

1737.05.10.
(겐분02.04.11.)

2년 27일

1737.(36세)

사쿠라마치 덴노

모모조노 덴노

1747.06.09.
(엔쿄04.05.02.)

1750.05.28.
(칸엔03.04.23.)

2년 354일

1750.(31세)

고사쿠라마치 덴노

고모모조노 덴노

고모

1770.05.23.
(메이와07.04.28.)

1813.12.24.
(분카10.윤11.02.)

43년 225일

1813.(74세)

고카쿠 덴노

재종매

고카쿠 덴노

닌코 덴노

1817.05.07.
(분카03.03.22.)

1840.12.11.
(텐포11.11.18.)

23년 224일

1840.(69세)

레이와

아키히토

나루히토

2019.05.01.
(레이와01.05.01.)

현임

-

-

4.4. 베트남

베트남

왕조

군주

후임자

관계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사망(나이)

비고

리(李)

혜종

소황

1224.

1226.

3년

1226.(33세)

쩐(陳)

태조

태종

1226.

1234.

9년

1234.(?)

태종

성종

1258.

1277.

20년

1277.(58세)

성종

인종

1278.

1290.

3년

1290.(51세)

인종

영종

1293.

1308.

16년

1308.(51세)

영종

명종

1314.

1320.

7년

1320.(55세)

명종

헌종

1329.

1357.

29년

1357.(58세)

유종

예종

예종

1372.

1395.

24년

1395.(75세)

간황

백부

순종

순종

소제

1398.

1399.

2년

1399.(22세)

호(胡)

국조

호한창

1401.

1407.

7년

1407.(72세)

후 쩐(後陳)

간정제

중광제

숙부

1409.

1414.

6년

1414.(?)

막(莫)

태조

태종

1529.

1541.

13년

1541.(72세)

헌종

조부

후 레(後黎)

신종

진종

1643.

1649.

7년

1662.(56세)

재즉위(1649.)

희종

유종

1705.

1716.

12년

1716.(54세)

유종

후폐제

1729.

1731.

3년

1731.(53세)

의종

현종

1740.

1759.

20년

1759.(41세)


  1. [1] 한자어를 번역한 말로 서양에서는 은퇴한 군주는 군주보다 한 단계 떨어진 칭호를 쓴다. King이나 Queen이 은퇴하면 Prince 혹은 Princess가 되는 식이다. 일본 황실에서 은퇴한 천황은 상황 호칭을, 영어 호칭으로 새롭게 Emperor Emeritus라고 쓰기로 했다. #
  2. [2] 이는 우습게도 유동근씨의 탓도 크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상왕인 태종의 역할과 명성황후에서 흥선대원군의 역할을 모두 맡았기 때문
  3. [3] 조선의 대부분의 대원군들은 왕위에 오른 자신의 아들을 선왕의 양자로 보냈기 때문에 생물학적 친아버지이지만 호적상 아버지는 아니다. 단, 반정으로 왕으로 추대된 정원군의 아들 인조는 선왕의 양자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또한 정원군은 대원군이 되었다가 훗날 원종이라는 묘효를 받은 추증왕이 되었다.
  4. [4] 그래서 한국에서 '상왕 노릇'이라고 하면 얼추 '바지사장을 앉혀 놓고 막후에서 실세로 행세한다' 정도의 뜻이 되는데, 우습게도 한국사에서 '상왕 노릇'을 제대로 한 상왕은 태종 하나뿐이다. 다른 상왕들은 실권을 누리지 못했다. '대원군 노릇'도 마찬가지. 조선에 대원군은 4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3명은 아예 아들이 왕이 되기 전에 죽어서 사후에야 대원군 칭호를 받았고, 살아생전에 위세를 누린 건 한 명뿐이다.
  5. [5] 그나마도 실권을 쥐었다든가 하는건 아니라 나라를 넘겨준 뒤 아예 나라를 떠나 유랑중이다.
  6. [6] 이들은 대통령의 형이라는 점 때문에 왕자에 비견하여 각각 봉하대군, 영일대군이라고도 불렸다.
  7. [7] 팽성대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챙기지 못하기도 했고, 광무대치 시기엔 항우가 태공을 인질로 '네 아비가 삶아지는 걸 볼테냐'라고 협박하자 '우리가 의형제의 연을 맺었으니 우리 아빠가 네 아빠다. 네 아비 국물맛이 참 궁금하니 꼭 한사발 보내다오'(...)로 받아쳤다.
  8. [8] 먼나라 이웃나라의 영향인지 조우고라는 발음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발음은 じょうこう(jōkō)이다. 그리고 한자 두 글자가 모두 장음인데, 일단 장음 표기는 하지 않는 것이 표준 표기법. 굳이 장음 표기를 하면서 한글로 표기하려면 '조오코오'가 될망정, 아무래도 '조우고'는 아니다.
  9. [9]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표현이 우리가 아는 교황(Pope). 요새는 교종이라고 표현을 고치자는 말이 많지만.
  10. [10] 반면, 동양의 경우엔 위의 한고제의 예화에서도 보듯,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왕은 백성보다 높지만, 천륜에 의해 아버지는 아들보다 높아야 하기에, 현직 왕인 아들-지금은 왕이 아닌 아버지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왕의 아버지는 명목상 왕보다 더 높은 칭호를 주자(실권이 있는지와는 별개로)' 라고 퉁친 것이 태상황, 상왕인 것이다.
  11. [11] 삼국사기 기록 근거. 다만 태조왕의 재위기간과 수명에 대해서는 중국 기록 후한서에서는 좀 다르게 전하고 있으며, 일단 현실적인 인간의 수명을 지나치게 상회하고 있어 삼국사기 기록의 사실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12. [12] 공식적으론 가장 오랫동안 상왕으로 군림.
  13. [13] 정사에 태공(太公)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보통 유태공이라고 불리는데, 태공은 이름이 아니라 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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