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성명

태영호 (太永浩, Thae Yong-ho)

본관

협계 태씨

생년월일

1962년 7월 25일 (57세)
북한 평양직할시 중구역 종로동

학력

국제관계대학 국제관계학 학사 [1]

가족관계

배우자 오혜선[2], 슬하 2남[3], 동생[4]

국적

북한 (1962~2016)

대한민국 (1962~2016~)[5]

현직

남북함께시민연대 대표 (2019~ )

경력

덴마크 북한 대사관 서기관

스웨덴 북한 대사관 서기관

영국 북한 대사관 공사

대한민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6]

블로그 주소

태영호의 남북동행포럼

YouTube 채널

태영호TV

1. 개요
2. 생애
3. 이력
4. 탈북
5. 탈북 이후
6. 기타
7. 저서

1. 개요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太永浩 / Thae Yong Ho[7]

1962년 평양 출생. 본관은 협계이다. 북한의 외교관이었던 인물이자 북한이탈주민으로 주영 공사로 근무하던 중 탈북하여 2016년 8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하였으며, 동년 12월에 주민등록을 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2. 생애

탈북 이전까지는 주영 공사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서열 2위였다. 1996년에 탈북한 잠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 서기관이었던 현성일과 함께 북한 외무성에서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다. 또 대사관 내 당 책임자인 '세포비서'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사상교육 업무까지 관장해 왔다고 한다.

초기에는 언론에 '태용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지만 이는 영문 언론이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태영호의 영문 이름을 간소화하여 표시하면서 일어난 혼동이었다. 북한은 한국과 다르게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기반을 둔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에 따르면 한글 "영"은 "Yŏng"으로 쓴다. 그런데 신문에서 편의를 위하여 반달표를 생략하고 "Yong"으로 표기했고, 이걸 대한민국에서 "용"으로 읽게 된 것이다. 과거에 김정은의 이름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도 한글 "은"을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에 따라 적은 "ŭn"을 단순하게 un으로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김정운"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태씨가 생소한 한국인들이 많을텐데 발해 대씨의 시조 대조영의 후손으로 북한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3. 이력

망명 초기에는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국정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2016년 12월 27일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태병렬 인민군 대장쪽 집안은 아니라고 부정한 바 있다. 태영호의 집안은 엘리트 가문이 아니지만, 부인은 엘리트 가문 출신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백룡의 집안이고, 아버지는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을 지낸 인민군 중장 오기수다. 하지만 오기수는 1990년대에 숙청되어 한직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태영호 자신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장남인 큰할아버지와 달리 땅을 재대로 물려받지 못해 빈농으로 살았지만 북한군이 북중국경으로 후퇴할 때 대부분의 마을 당원들은 같이 후퇴하지 않았지만 태영호의 할아버지는 후퇴하고 돌아와 핵심계층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항상 1-5등을 한 태영호는 출중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8]

열심히 노력한 덕에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그 덕에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얼마 후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되어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9]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2006년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되었다.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40세인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이때 그의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에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유럽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상징체제와 김일성 · 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는 등 북한의 홍보에 적극 앞장섰다.[10] 2015년 5월 김정철이 런던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을 찾았을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4. 탈북

2017년 태영호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일 말기 때부터 북한 정권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은이 승계하자 뭔가 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증언했으며 몇년 간 탈북 준비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이 승계하고 1~2년 정도 뒤에 탈북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영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탈북의 가장 직접적 동기는 아들들의 강제귀국이었다. 북한의 해외파견근무자들은 자녀가 둘이면 하나는 반드시 북한에 두고 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태영호는 그동안 갖은 핑계를 대며 두 아들을 데리고 해외근무를 했지만 이번만큼은 큰아들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탈북을 결심했다고 쓰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낀 태영호는 가족들을 데리고 지난 7월 망명길에 올랐으며, 제3국 망명 신청을 하고 2016년 8월 17일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10년 간의 영국 공사 활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한국으로 탈북한 것이다. 그리고 12월에 있던 국회 정보위에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지만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왜 탈북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북한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영국 대사관[11]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아 황장엽과는 달리 권력투쟁에 밀려서 탈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많이 나오는 추측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탈북했다는 점이다. 또, 대북제재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생활도 궁핍해진 현실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때 추방당한 BBC 기자의 입국보증 담당자가 태영호였고, 그에 따른 문책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출처 태영호 자신에 의하면 노예처럼 살며 김정은이 노예주인 북한 사회에서 벗어나 자식들만이라도 노예 사슬을 끊어주고 싶어 탈북하였다고 한다.[12]

북한 당국의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북한 관계자는 한국 정보당국이 뇌물을 줬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위 사진에서 나온 BAe 146영국항공의 암만에서 히드로로 가는 항공편이 아니라 브리티시 에어로 스페이스라는 항공기 제작 회사의 비행기의 이름이다. 즉 BAe 146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사건 진행을 볼 때 보안 유지를 위하여 영국 공군이 보유한 VIP 전용기인 BAe 146 여객기 4대 중 한 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이후 자세한 내막이 공개되었다.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든 후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뒤, 미국 요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7월 어느날 새벽 영국 공군기지를 떠나 독일의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한국행 A330 여객기를 타고 들어왔다.[13]

탈북 소식을 들은 김정은은 크게 분노하면서 대대적으로 해외에 있는 북한인을 단속하고자 검열단을 급파하였으며, 해외주재 외교관 · 무역일꾼 가족 소환령을 내렸다. 이후 북한 당국은 사건 발표 나흘만에 입장을 발표했다. 태 공사를 배신자라며 비난하는 것은 물론 반공화국 선전을 주장하였고, 심지어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워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는 여론몰이를 보여주었다.이에 대한 친북인사 신은미씨의 입장 VS 탈북자 학교 교사의 글 다만 예전과 달리 이번 탈북이 납치나 강압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데 이전에 탈북한 식당 종업원과 달리[14] 외교관은 국제법상 보호를 받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납치라고 주장했다간 UN 등에서 정식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그랬다가는 북한의 구라가 그대로 드러나 손모가지가 날아가버리는 외교적으로 자살골에 가까운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이 빨치산 가문의 딸이 아니라고 돌기도 했지만 국정원에서 직접 빨치산 가문이 맞다고 했으며, 2남 1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아들만 두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건[15]으로 탈북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태영호 공사 본인이 입국후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 외교관은 주재국의 군사과학기술을 빼내라는 지시를 매년 1회 받긴 하나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기술을 빼내는데 성공하면 표창 등 포상을 받지만 성과가 없다고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며 자신은 실제로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북한 외교관이라서 더더욱 영국 정보기관들의 감시를 받는데 섣불리 움직이다 걸리면 추방당할 위험이 높다.

입국 후의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대북 공세에 대해 NGO에게 맡길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 "북한 주민들이 북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콘텐츠를 만들어야한다."라고 이야기하는 한편 북한이 바라는 것은 제2의 베트남 사태라며 김정은은 얼마를 줘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핵을 완성할 경우 그 핵과 미사일 활동을 동결하는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인데 그러한 제안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2016년 12월 23일부터 조사가 끝나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의 사회 활동에 나서게 된다. 2016년 12월 국방위 의원들과의 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지속적인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하여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기 자신을 두고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다고 비난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망명에 북한 측이 그런 말을 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대사관 내 자금 현황을 문서로 정리하고 그걸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보도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아들 둘만 있고 딸은 없으며 현재 가족 전원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12월 23일, 첫 공식 일정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다. 촛불시위에 대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청문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한다.#, # 2016년 12월 29일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측과의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만세는 노예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서 취한 제스처이며, 원래 공항에서 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말려서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연설단이 없어서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기자 간담회가 있어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만세 이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환영 댓글보다는 공개 장소에서 만세를 한 것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거냐는 내용 일색이라는 것에 제법 놀랐다고 한다.#

5. 탈북 이후

2017년부터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영 대사가 교체되어 최일 외무성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최일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북한 김씨왕조가 핵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유고 내전때 미군이 폭격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급변상황시 이처럼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적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런거고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구조상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는 거의 불가능하고 내부 봉기가 현실성있다고 했다.[16]# 그리고 1994년 북핵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으로 맺은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 빌 클린턴과 김정일의 사기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태영호의 가족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탈북 이후 첫 공식 방미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핵 개발 완료한 다음 미국과 협상을 벌어서 협상 대상 중 주한미군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CNN에 출연했다.#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태영호를 국회로 초청해 강연을 했으며 이 강연을 문제삼아 북한에서는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 그리고 김정은을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를 낸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사직하였다.# #

같은 태씨 5촌 친척과도 만났다고 한다.#

2018년 8월 15일, 보수진영 건국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탈북 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만세를 또 보여주었다.

2019년 남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북한은 지난 30년간 동일한 대화 패턴을 거듭해왔다", "지금으로선 비핵화 의사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2019년 6월부터 국민통일방송태영호의 북한매체 읽기를 주마다 내보내고 있다.

2019년 9월 현재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남북함께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로 대학교, 보수단체, 교회 및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 국가 등을 돌면서 강연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강연활동도 하면서 틈틈이 3층 서기실의 암호의 후속작의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 북한의 주체사상기독교 등 종교와의 공통점을 드러내는 저서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19년 9월 19일, 태영호 前 주영 공사가 대만 타이베이를 찾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관련하여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에서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에서도 20년 내에 홍콩과 비슷한 시위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기사

6. 기타

  • 주영 공사로 근무하던 시절 외교에서는 골프 사교가 중요하다고 하여 골프를 쳤는데,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인의 항의에 골프 대신 테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탈북 때 골프채를 가지고 왔다는 기사가 있었지만, 태영호는 자신이 골프를 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오보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골프채 대신 빵집을 차려서 먹고 살려고 제빵과 관련된 책을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
  • 김정일 사망 때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이 난입,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축하드리며'라는 유인물과 김정일의 영정 사진을 대사관 건물에 붙이고 만세를 부르는 행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직원(문명신 2등 서기관)'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유인물을 떼어내면서 김정일의 사진을 찢고 구겨서 처리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 일로 문제가 생겨서 북한 대사관 내에서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있었는데, 태영호의 강력한 선처 주장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증언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태영호는 김정일 사망시에 북한에 있었고, 2013년부터 다시 대사관에서 활동했다. 또한 문명신이 숙청 당하지 않은 이유로는 모르고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기사
  • 2015년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영국에서 에릭 클랩튼의 공연으로 보러갔을 때, 25년 지기인 현학봉 대사와 함께 김정철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
  •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은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의 일가이며,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의 아들이다. 북한판 성골인 '항일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17] 오혜선은 대외무역 · 외자유치 ·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을 거쳐 런던에 왔다고 한다.
  • 그의 큰 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막 고교를 졸업하고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사족으로 작은 아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를 자주 했다고 하며, 심지어 닉네임은 폴란드볼을 비롯해 영미권 인터넷에서 북한을 비꼬는 의미의 으로 쓰이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라고 한다. 그외에 2017년 1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큰 아들은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고 바로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기에 대한민국에 와서 다시 대학을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 북한 외교관 및 해외 주재원의 탈북 사례는 해당 사건 이전부터 여러차례 있어 왔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부인과 형[18]과 함께 탈북하여 미국에 망명하는 일도 있었으며, 태영호 이전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외교관 출신 탈북자로는 한다면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는 고영환[19]이 있다.
  • 태영호의 귀순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도 되지 않아 유럽에서 북한 자금을 관리하던 한 간부가 2개월 전인 2016년 6월 4천억원을 들고 잠적[20]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를 두고 태영호에게도 빨리 찾으라고 압박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은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이후 25세 이상 해외 거주 외교관 자녀의 평양 소환령이 떨어져 맏아들이 평양에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이자 가족들이 매우 힘들어 한 것이 탈북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원래 외교관은 자녀 한 명만 데려올 수 있었지만 간청으로 두 명 다 해외에 있을수 있었고, 해외 인재를 키우라는 김정은의 명령으로 자녀 모두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2년 만에 조치가 번복되어 소환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 탈북 전에는 북한 대사관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
  • 태영호 탈북 이후 모 학생이 이를 인용해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에 장난전화를 건 사건이 있다. #
  • 한국 드라마 중 불어라 미풍아를 즐겨 보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해당 드라마의 주인공과 출연자들이 같은 외교관 출신의 탈북 가정이기 때문에 동질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이만갑, 모란봉클럽,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배나TV의 몰랐수다 북한수다같은 탈북자 관련 방송도 자주 봤다고 한다. 드라마 같은 TV 프로그램과 달리 탈북자이면서도 대한민국 유력 신문사들 중 하나인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중인 주성하 기자에 대해서 평소에 존경해왔다고 밝히면서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도 꾸준히 읽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6년 12월 29일 동아 미디어 센터에서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여성들 중 하나인 신은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당에서 한국 휴대폰을 경계하여 삼성 휴대폰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평양에서는 한국산 휴대폰은 LG 것도 있다는 것은 몰라서 LG 폰을 사용했다고 한다.#
  •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술이 참이슬이라고 밝혔다. 망명 초기에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이 마셨으나 아내의 만류와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하는 걱정에 요즘은 술을 줄였다고 한다.[21]
  •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전 주영 북한 공사 태영호가 밝힌 바에 따르면 1997~8년 사이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그게 태백산맥이었고 영화 후반부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이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본 김범우(안성기)가 공산주의자인 염상진(김명곤)에게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실패한 거요. 아주 철저히 말이오.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고 일갈하는 장면을 보고,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훗날 "한국으로의 귀순을 결심하는 계기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정작 영화는 물론 원작 소설이 우파 단체들에게 '빨갱이' 소설로 몰리는 것을 넘어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하는 고초를 겪기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암살을 우려해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 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자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왔거나, 올 예정인 공개가 되지 않은 북한 외교관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 BBC 서울-평양 특파원 스티브 에반스가 밝히길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커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뇨병이 있어 난(빵)이나 밥 없이 먹는다고 한다.
  • '감.옥.행'이라는 구 통진당 계열의 종북 대학생 연합단체에서 박상학과 태영호를 잡아서 감옥 혹은 북한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와 인연이 있다.편지 전문

7. 저서

  •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 2018


  1. [1] 북한의 5년제 중앙특수대학이다. 주로 외교관과 외국어 특수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2. [2] 북한 인민군 오기수 중장의 장녀이다.
  3. [3] 장남은 1990년생, 차남은 1997년생
  4. [4] 1967년생이며 성별은 공개되지않았다.
  5. [5] 명목상 출생한 1962년 7월 25일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 대법원 판례에 의해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적을 자연적으로 부여받는 것으로 본다.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상 규율 대상이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 국적이 직접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대한민국 국적 획득은 2016년 12월.
  6. [6] 문재인 정부의 2번째 정상회담이 끝나고 사직.
  7. [7]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과 연관이 있다. 후술. 실제로 이후 태영호가 만든 블로그도 "Thaeyongho.com"으로 활동 중이다.
  8. [8]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중 발췌
  9. [9] 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말하길, 전담통역 후보로 선발되었다는 이는 자신이 아니고 먼저 덴마크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김일성의 덴마크어 통역관이 된 하신국이라고 한다.
  10. [10] 영국의 체제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으뜸으로 내세우며 러시아 2차대전 군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의의 싸움이라는 노래를 영국 반제국주의 모임 강연에서 부르기도 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11. [11] 영국은 서방권 국가 가운데 북한과 상호 대사를 파견한 몇 안 되는 국가다. 그럼에도 6.25 전쟁 때 UN군으로 참전할 만큼 남한과 가까운 나라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외교관을 보내고 있다.
  12. [12] 3층 서기실의 암호 내용
  13. [13] 망명 직후 기사들에는 런던의 테니스 클럽에서 한국 측과 접촉하여 직접 귀순 의사를 표시하여 제3국으로 경유하지 않고 직행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졌다.
  14. [14] 이 사건이 탈북을 주도한 인물에게서 납치(정확히는 유인납치)와 강압의 성격을 띈 기획 탈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 류경식당 종업원 기획탈북설 참조.
  15. [15] 영국 핵전력 기밀을 고작 100만 파운드(14억)으로 알아내라고 했다. 이 정도 돈으로 영국 같은 나라의 핵 담당 장교를 매수하거나 공작을 벌이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16. [16] 배급제가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처절한 생존투쟁에 들어간 북한주민들이 장마당을 시작함과 동시에 돈의 위력을 알게 되고 그 결과로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들이 간간히 전해지고 있다. 일부 대북매체들은 만약 북한정권이 장마당을 폐쇄하려 한다면 그땐 진짜 들고 일어난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이다.
  17. [17] 과거 탈북했던 황장엽의 경우 모스크바 대학교 석박사 등 학문으로 인정받아 권력을 가진 케이스라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다.
  18. [18] 장승호 프랑스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
  19. [19] 탈북 당시 직책은 콩고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관이었다.
  20. [20] 소문으로는 4천억과 함께 잠적한 고위층 간부가 바로 자유조선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21. [21] 실제로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대한민국 공군 대령이 북한의 가족 생각에 술을 먹다가 원인이 되어 2002년 간 기능 부전증으로 사망한 바가 있다.
  22. [22] 임영선은 이만갑 고정 출연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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