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야

왼쪽부터 순서대로 류은주(서브보컬), 김지혜(리더), 안진경(리드보컬).

1. 소개
2. 활동 내역
2.1. 결성, 데뷔 과정
2.2. 일본 데뷔
2.3. 한국 데뷔와 1집 활동
2.4. 갑작스러운 해체
2.5. 해체 이후
2.5.1. 슈가맨 출연

1. 소개

To-ya[1]

대한민국걸그룹. 2001년 기획사 에이스타스(前백기획) 소속으로 데뷔해 2002년까지 활동한 그룹. 리더 김지혜, 메인보컬 안진경, 서브보컬 류은주로 구성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였고 대표 곡으로는 "봐"와 "가" 등이 있다.

2. 활동 내역

2.1. 결성, 데뷔 과정

이 글에 쓰여진 대부분의 내용은 활동 당시 투야 멤버들이 작성한 스타 고백을 기반으로 서술되었다.

1990년대 이영애, 이나영, 김현주, 한고은, 송윤아, 김정은, 안재욱등의 톱급 배우를 배출한 백기획은 정상급 스타들을 거느리며 연예계의 대형 기획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1998년, 백기획은 회사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리기로 하는데 이때 소속사에 있던 탤런트 김지혜를 주축으로 가요계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김지혜는 초등학생때 우연히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는데 중학생때부터 여러 잡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1997년 백기획의 러브콜을 받아 연예계로 진출하게 된다. 김지혜는 당시 하이틴 스타로 각광받아 각종 잡지를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투입되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인형같은 외모와 큰 규모의 기획사를 바탕으로 1998년 인기 그룹 젝스키스 주연의 영화 "세븐틴"에 출연해 스크린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김지혜는 젝키의 멤버 강성훈의 여자친구 역으로 등장하여 더 유명세를 떨친다.

영화 '세븐틴'에 출연하여 강성훈의 상대역으로 유명세를 떨친 김지혜의 배우 시절 모습

그러나 인기 정상 아이돌의 여자 친구로 등장한 김지혜에게 일부 젝스키스 팬들은 협박을 가하는 등 여러 비난을 퍼부었고 근거없는 루머까지 양성되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들 눈에 가시가 될만큼 김지혜는 아주 인형같은 외모를 자랑해서 10대 남학생들에게는 여신같은 존재로 통하기도 했다. 이 시절 대표작은 '세븐틴'뿐이었고 이후 배우로서도, MC로서도 인상깊은 커리어를 쌓진 않았지만 워낙 미모의 임팩트가 강렬해서 90년대 후반 학생들에게 웬만한 여성 그룹의 센터 멤버들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된다.

이렇게 탤런트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김지혜는 돌연 백기획의 야심찬 1호 가수로 노선을 변경하여 모든 활동을 뒤로 한 채 1998년부터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2] 그러나 백기획은 그녀를 솔로 가수보다는 그룹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하는데, 잡지 모델과 꽃게랑, 롯데 음료수 광고 모델로 활동하던 김지혜보다 두살 동생의 10대 탤런트 김현지를 멤버로 영입시켰고, 이후 1200:1의 경쟁률을 뚫고 리드 보컬로 선발된 안진경까지 총 세명으로 최종 결성하여 1999년 3월에 공식적인 데뷔 발표를 한다.

유일한 신인이었던 안진경은 충주에서 가수를 지망하던 가수 지망생이었는데 데모 테이프 만드는 방법도 몰라서 여러 소속사에 사진만 겨우 보냈고, 백기획에서 이 프로필을 본 뒤 모델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편지를 받은 안진경은 용돈을 탈탈 털어 일단 무작정 오디션 장에 도착했고 관계자들 앞에서 모델 오디션 대본을 내려놓더니 자신은 당당하게 가수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말했으며 이내 오디션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미 투야 공식 오디션을 통해 1000명 가량을 오디션한 상태였지만 느닷없이 모델 오디션에서 가수하겠다고 당당히 밝히는 안진경의 용기를 높이산 백기획은 원래 예정에 없던 안진경을 투야 멤버로 발탁한다. 실제로 그의 가창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1999년 투야의 기획 초반 멤버 구성(왼쪽부터 안진경, 김지혜, 김현지)

10대 탤런트로 유명세를 떨치던 김지혜의 갑작스런 가수 데뷔는 꽤 이슈였는데, 원래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지만 공식 기자회견 이전에 한번 흘러나온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지혜가 일본에서 가수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놀란 팬들이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온 적도 있었다고. 이들은 99년 3월 29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일본에 태극기를 꽂고 오겠습니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며 가수 데뷔 준비에 돌입한다.

투야는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활동하던 S.E.S.를 벤치마킹하여 아시아 시장의 중심인 일본에서 우위를 지키고 장기적으로 국제무대에서 기반을 잡겠다는 의도로 제작된 팀이었다. 그래서 결성되자마자 기자회견 후 일본으로 넘어가 현지 언어와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이색적인 준비 기간을 보내게 됐고 멤버 안진경은 멤버 언니들을 비행기에서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로 일본 활동에 포커스가 맞춰진 당시 기준으로 앞서간 그룹이었다. 국내 잡지 및 방송에도 이들의 데뷔 준비기가 자주 소개되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이 공개되는 등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2000년 3월 일본 데뷔 준비 중반, 한국 방송 출연 모습

원래 이들은 99년 7월께 데뷔 싱글을 한-일 시장에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체계적인 준비를 위하여 긴 시간 트레이닝을 받기로 한다. 현지에서 직접 트레이닝 및 합숙 생활을 하면서 데뷔를 위해 부던히 노력했는데 언어 습득도 안된 상태에서 매니저 한명과 현지에서 생활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경험이었다. 그러던 중, 김현지는 2000년 4월 데뷔를 포기하고 데뷔도 전에 팀에서 멤버가 탈퇴하는 위기가 찾아온다.

위에 링크된 예능 프로그램은 MBC 목표달성 토요일 프로 중의 하나로, 한일신인 대탈출이라는 타이틀로 양국의 신인 가수가 상대국에 데뷔해 적응 과정을 보여주는 코너였는데 방송이 시작된지 한달만에 김현지가 4월 1일자로 돌연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 것. 다시 말해, 저 방송이 김현지의 탈퇴 직전 모습이었다.[3] 김현지가 탈퇴하자 프로그램에도 우려가 되었지만 봄 개편을 하면서 코너가 아예 사라졌고 바로 뒤 김현지의 빈자리를 일본 현지에서 Cawaii 잡지 모델로 활동하던 류은주가 대신한다. 그리고 김현지는 학업을 이어가며 사실상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2000년 재정비 된 투야 최종 데뷔조 멤버(왼쪽부터 안진경, 김지혜, 류은주)

류은주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7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 일본어학과 2학년 재학중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으로 학사 경고장을 받게 되었고 우울증에 시달려 큰 인생에 대해 갈등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일본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좋은 기회가 생겨 투야에 합류하게 된 것. 훗날 슈가맨에서 밝히기를, 당시 소속사 사장이 "넌 그냥 옆에서 대충 흔들거리고 있으면 돼"라는 식으로 말했기에 큰 걱정 없이 합류한거라고 말했다(...).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투야의 합류가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한 바 있었다.

당시 류은주에게 내건 소속사의 계약 사항 중 하나가, 나머지 멤버 둘과 융화되지 않으면 그 즉시 계약이 취소된다는 조건이었고[4] 이후 일본 생활을 함께 하면서 우정을 다지게 된다. 하루는 멤버들끼리 슈퍼마켓에 가다가 류은주가 피로 누적으로 한복판에서 졸도한적이 있는데 이때 지혜가 은주를 업고 병원에 달려간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쯤 이들은 어렴풋이 '우정'이라는 걸 깨달아가면서 비로소 3인이 한 그룹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2.2. 일본 데뷔

류은주가 합류한 투야는 5개월간 하루 종일 지옥훈련에 버금갈 정도의 트레이닝을 이어간다. 이들은 일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렇게 총 20개월 동안의 일본 트레이닝을 마친 투야는 현지 유명 음반사 Victor 엔터테인먼트과 계약을 맺게 된다. Victor사는 일본의 그 유명한 SMAP이 소속된 레코드 회사로 S.E.S.의 일본 진출과는 다르게 계약 조율을 잘 했는지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출범한다. S.E.S.의 경우에는 애시당초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맺으려다 양쪽의 의견 차이로 중소 규모의 작은 레코드 사와 계약을 맺은것이 이들의 일본 성공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5]

2000년 9월에 데뷔 싱글 작업을 진행한 투야는 2000년 11월 1일, R&BJ-POP이 가미된 데뷔 싱글 'are you...?'를 발매하며 일본에서 먼저 정식 데뷔한다. 커플링 곡은 'Get Set'으로 힙합 리듬이 가미된 곡이었다. 전체적으로 당시 유행하던 R&B를 차용해 다크한 분위기로 데뷔 싱글이 제작되었다. PV(뮤직비디오)와 자켓 역시 강한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여담이지만 이 시절 일본 관계자들이 안진경의 가창력만큼은 인정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안진경은 어린 나이에도 다양한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다.

2000년 11월 1일 발매, 1st Single <are you...?>

대부분의 프로모션은 라이브 이벤트나 라디오를 위주로 이루어졌고 별도의 음악 방송 프로모션은 없었던것으로 보여진다. 대형 음반사에서 출범되긴 했지만 일본 측 기획사에서는 이들에게 큰 푸쉬를 행하지는 않았다. 신인 가수들한테도 당연히 붙는 작은 타이업[6], 조차 붙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기획사 측은 노래만 적당히 잘 뽑아주고 방목해버렸다.

그렇게 긴 준비 기간끝에 발매한 데뷔 싱글은 오리콘 차트에 진입하는데 실패하며 사실상 망해버렸다. 이때만 해도 일본에 진출한 한국 가수가 인기를 끄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으며 결국 투야도 변변치 못한 성적을 기록한 것.[7] 또 당시 멤버들에게 너무 노숙한 스타일링과 대중적이지 못한 음악을 선곡했다 보니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기 힘든것도 있었다. 특별한 대형 프로모션이 있지도 않았으며 이때만 해도 전혀 한류 열풍은 없었기에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로 홍보했어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 흔한 음악 방송 출연 모습 하나 남아있지 않은것도 소극적인 프로모션을 했기 때문.[8]

일본 활동 시절 투야의 모습

그래도 이들은 싱글 발매 이후 약 4개월 동안 일본 전국 프로모션 투어와 TV, 라디오 등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등 향후 한국 활동을 위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일본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직접 음반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고, 제작사에 오디션을 보러다니는 열정을 보였으며 특히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4개월간 '핑크 파파라치'에 출연했다. 이 방송은 24시간 카메라가 팔로우하며 각종 미션을 하는 방송이어서 쉽지 않은 방송이었지만 성실하게 해내어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고 지하철에서 투야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거나, 넥타이 부대 팬클럽이 생겨나는 등 소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의 일본 프로모션 마지막 일정으로, 일본 활동 최대의 과제이자 첫 단독 공연을 진행하게 된다. 그것도 신인들에게 꿈의 무대로 알려지는 시부야 AX에서였다. 이들은 공연을 위해 직접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도 본인들이 하면서 말 그대로 한국의 "게릴라 콘서트" 못지 않은 공연을 펼치게 되었는데 신인 가수가 서기에는 규모가 컸기 때문에 초조함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날 공연에서 1,500명을 모으며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었고 여러 신문에 보도되는 등 소소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날 멤버들은 개인 무대도 펼쳤는데 류은주는 평소 동경하던 아무로 나미에의 곡을 열창하기도 했다고.

이후 잠시 일본 활동을 중단한 투야는 2001년 2월 한국으로 귀국해 한국 데뷔 앨범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었기에 한국에 돌아왔을때 이미 유수의 작곡가가 선사한 곡이 여덟곡 정도 준비가 되어있었으며 한국 데뷔 음반 녹음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한국 데뷔를 위해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투야

2.3. 한국 데뷔와 1집 활동

투야 1집 앨범 Look (2001.07.01)

트랙

곡명

01

02

03

Runaway

04

Touch

05

그렇게 넌

06

Crazy

07

Summer Love

08

천사의 눈물

09

Myself

10

한번만

11

I'll Be There

마침내 7월, 투야는 한국에서 데뷔 앨범 'Look'을 발매하면서 박근태가 작곡한 타이틀 곡 '봐'로 한국 무대에 등장한다. 당시 이들은 귀여움과 청순함이 득세하던 여성 그룹시장에 드물게 레게 장르와 신비로운 컨셉 등을 차용하여 호평을 받았고 거기다 이미 얼짱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지혜까지 더 해져 순조로운 데뷔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데뷔 앨범은 박근태, 주영훈등의 메이저 급 작곡가가 참여해 화제를 낳았고 회사의 여유로운 자금 상황으로 모든 작업과 활동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데뷔도 전에 일본에서 활동한 리얼리티 영상 자료를 공식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하는 등, 당시 인터넷 문화의 과도기 시절이라 일일히 동영상 VOD 서비스를 스트리밍하는 경우는 서버의 비싼 트래픽 비용 등의 큰 투자가 필요했고 SM엔터테인먼트같은 대형 기획사 아닌 이상 흔치 않았던 VOD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대형 기획사 답게 데뷔곡의 뮤직비디오는 헝가리에서 올로케 촬영을 했으며, 뮤직비디오에서 안무를 광장에서 추는 장면에 대해 당시 케이블 채널에서 밝히기로는 시간당, 땅 1평당 촬영료를 책정하더라고 밝히며 이 장면의 비용이 꽤 들었다고 밝혔었다. 중간에 랩 코러스는 바비킴이 하는 등 타이틀 곡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타이틀 곡 <봐>는 2001년 5월부터 케이블 음악 채널을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다.

1집 타이틀곡 <봐> 뮤직비디오

1집 타이틀 곡 <봐> 활동 초반 컨셉 무대.

1집 타이틀 곡 <봐> 라이브 무대.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봐>는 90년대 인기 여성 듀오 비비의 2집 앨범 수록곡 "예전처럼"를 리메이크 한 곡이다. 사실 작곡가가 박근태로 같기 때문에, 같은 노래를 두 가수한테 준 것. 투야의 "봐"는 "예전처럼"의 멜로디와 같지만 편곡과 가사는 다르다.[9]

활동 초반에는 안무와 컨셉이 조금 더 독특한 편이었지만 중반에 안무가 홍영주가 안무를 한 차례 변경하여 무대에 올려보내고 의상 컨셉도 한 차례 바뀌면서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기도 했다. 초반 무대 컨셉이 더 곡에 어울리고 개성있었는데 바뀐게 아쉽다는 평. 활동 초반에 뮤직비디오와 무대 컨셉이 호평받던 와중에 갑자기 컨셉이 바뀌어 더 히트할 수 있었는데 괜히 바꾼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고. 컨셉 변경 이후에는 거의 한 컨셉의 의상을 줄창 입어대면서 무대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뮤직비디오 공개가 2001년 5월 말이었는데, 앨범 발매 및 방송 활동은 7월부터 시작해서 초반 관심도가 오를때 방송 홍보를 하지 않은 마케팅 오점도 제기된적이 있다.[10] 초반 프로모션에 잡음이 있었음에도 데뷔 곡은 가요 차트 20위권안에 머물렀고 큰 히트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각종 예능과 음악 방송에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팬층을 쌓았다. 활동 중반에는 탤런트 소지섭과 해태 음료 "쥬디"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어 CF 모델로 활동하는 등 인지도를 넓혔다.

한참 1집 앨범으로 활동하고 있던 와중, 모 신문사에 보도된 "대리 녹음 걸그룹"에 지목되기도 했지만 그 주인공은 투야가 아니었으며, 같은 멤버수였던 모 그룹이었다. 초반 이 그룹과 라이벌 구도도 있었지만, 이 그룹은 논란속에 해체되고 투야의 경우 일본 활동 당시에도 가창력으로 호평받은 안진경을 필두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며 메인 보컬의 가창력이 호평받기도 했다.

1집 후속곡 <가>

타이틀 곡 활동이 끝난 뒤 후속곡 '가'로 2002년 초까지 활동했으며 이 곡 역시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2달간 활동했다. 후속곡 역시 초반 컨셉은 베이비복스를 연상시키는 강한 여전사 컨셉이었지만 이후 수트 컨셉으로 변경하여 활동했는데 이 곡의 경우에는 오히려 바뀐 컨셉이 더 호평받았다. 초반 무대

'가'로 한참 활동하던 10월에는 가수 안재욱의 중국 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몇 차례 중국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대만이나 홍콩 등지에서도 활동 계획이 있었다. 특히 홍콩의 유명 가수 여명이 중국 난닝에서 열린 국제 가요제에 참여한 투야를 보고 호감을 느껴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중화권에서 러브콜도 있었던 모양.

1집 활동 도중 뉴 논스톱이나 몇몇 시트콤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고, 각종 케이블 방송 VJ로 활동하며 여러 행사, 음악 방송을 도는 등 아주 바쁘게 활동했으며 활동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투야는 당시 1집을 낸 갓 신인으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당연히 2집이 나오는 분위기였지만(...)

2001년 10월 20일 중국 쿤밍 안재욱 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했을 당시 모습비쥬얼 리즈시절

1집 앨범은 최종적으로 3만여장의 판매량을 올려 체감 인기에 비하면 적은 판매고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블랙비트다나 등과 비슷한 판매량이었고 해당 가수들도 1집때 적당한 인기도를 누린것을 생각하면 이 해에 우후죽순으로 데뷔한 신인들 중에서 중위권 정도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두었다고 보면 된다.[11]

이후 2001년 서울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차세대 걸그룹으로 기대를 모으는데 멤버 본인들도 앨범 반응이 좋았다고 회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나름 성공적인 데뷔 신고식을 마친다. 1집 활동이 마무리 될 즈음이던 12월 30일에 팬클럽 '투유' 1기 창단식을 마치고, 곧바로 2집 녹음 작업에 들어갔으며 당시 2002년도 4월 발매를 목표로 2집 준비에 돌입하고 있었다.[12]

2.4. 갑작스러운 해체

하지만 이들은 한 순간에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 되어버린다. 1집 활동 이후 2002년 3월부터 Etn의 음악 방송 MC를 맡을 당시만 해도 2집 앨범 작업이 마무리 되고 있음을 밝혔으며 2집 발매 계획을 하고 있을 때가 4월이었는데 이때가 월드컵 기간과 제대로 맞아떨어져 발매 시기를 늦추게 된다.

그 뒤 갑작스럽게 소속사였던 백기획(에이스타스)[13]의 상황이 안좋아지더니 급기야 얼마 뒤 경영 부진으로 도산되면서 2002년 말에 결국 해체되고 만다. 마지막까지 투야 멤버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서 회사가 완전 가루가 되기 전까지 개인 스케쥴을 하며 끝까지 투야 컴백을 준비했음에도 결국 소속사가 망해버리면서 투야도 본인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해체를 해야만 했다.

1집 활동 종료 후부터 백댄서 팀이 사라지더니, 샵에도 못가는 상황이 초래되어 멤버들이 직접 화장하며 행사를 다녀야 했고 거기다 합숙하던 숙소의 가스가 끊기고, 전기도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해산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임이 나중에 밝혀져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데뷔 초창기 때만 해도 투야의 소속사는 직원 200여명에 각종 스타급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어 회사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본적인 뼈대가 없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내에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몸집만 커지다 보니 01년 10월부터 회사 사정이 급격히 안좋아졌으며 거기다 소속사 사장이 각종 비리 사건으로 연루되자 2002년 10월 회사가 간판을 내리게 된다. 결국 회사 사정을 모르고 짜여진 스케쥴대로 움직이고 있던 투야는 실질적인 해체 무대가 됐던 라디오 공개 방송에서 백댄서도, 스탭들도 없이 세명만 덩그러니 무대에 올라가야 하자 결국 눈물을 흘리며 노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거짓말처럼 투야의 마지막 무대가 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투야의 짧은 활동 기간을 편집해 만든 1집 수록곡 <천사의 눈물> 뮤직비디오

2.5. 해체 이후

해체 후 멤버들 중 가수로서의 열정이 유달리 컸던 안진경은 2005년 오민진, 양은지[14]와 함께 '지니스'를 결성했다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베이비복스 리브의 멤버로 활동했다. 2010년 '못된 사랑', '사랑이 딱해'로 솔로 활동을 벌인 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중화권에서의 배우 활동을 거쳐 현재는 바디프렌드의 홍보 모델 겸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SNS를 통해 심심치 않게 근황도 확인할 수 있다. 개별 문서가 만들어지면 비공인 틀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토론을 해야 될 정도...

안진경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유부녀가 되었는데 김지혜는 2007년 '핑크 루'라는 예명으로 솔로 활동을 한 뒤 연예계를 떠나 현재는 쇼핑몰 루룸의 CEO유부로 활동 중이고 2013년 10월에 결혼했다. 류은주는 해체 후 2006년 말 재일교포 사업가와 결혼하여 현재는 일본에 거주 중이고,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고 한다.

비록 발표한 음반은 단 한 장뿐이었지만 시대를 앞서간 감각적인 노래 퀄리티나 멤버 구성이 워낙 좋게 평가된지라 노래는 꾸준히 회자되고 있었다.

2.5.1. 슈가맨 출연

그러던 2016년 4월 5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재석팀 슈가맨으로 해체 14년 만에 완전체로 출연했다. 슈가송은 데뷔곡 "봐"였다.

저 외모가 30~40대라니 덜덜덜

슈가맨에 출연하기에는 활동 기간도 턱없이 적었기에 이들의 등장은 의외였고, 슈가맨 불 수도 적게 들어온 편이었지만 워낙에 넷상에서 꾸준히 회자되던 이들이었기에 동영상 조회수도 1주일만에 70만건이 넘어가는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날 방송에서 투야 멤버들은 해체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일화를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이내 김지혜가 돌연 김이나의 "겨털이 진짜 없느냐"는 황당한 돌발 질문에 당당하게 화답하고 아주 의욕적으로 참여해 제작진들도 가장 기억에 남는 슈가맨이었다고 밝힐 정도였다.

투야는 나중에라도 꼭 기념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지만 유부녀가 두명이라 현재까지도 별 소식이 들리고 있지 않다.


  1. [1] 람세스의 어머니 이름에서 따온 그룹명이다.
  2. [2] 당시 김지혜는 말그대로 비쥬얼 하나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등장하고 있었다.
  3. [3] 이 날 방송을 보면 게릴라 공연에서 'Knock on'이라는 아주 요상한 미발표 곡을 부르고 있는데, 당시 일본 데뷔를 위해 녹음했던 여러 곡들중 하나로 보이며 발매되지 않았지만 그게 다행일정도로 아주 형편없는 곡이다(...)
  4. [4] 이 부분이 god의 김태우와 비슷하다. 원래 혼성그룹으로 준비하며 생고생 다 했던 god지만 앨범 작업 직전 여성 멤버(김선아)가 프로듀서 의견으로 하차하고 김태우가 들어오게 되자, 프로듀서였던 박진영은 김태우에게 god 멤버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그 즉시 합류는 취소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5. [5] 물론 그런 셈치고 S.E.S는 투야보다 일본에서 더 성공한 편이었다.
  6. [6] 크게는 영화 혹은 드라마, 광고의 주제가로 삽입되는것을 일컫는다. 일본은 대부분 이런 타이업이 기본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타이업을 잘 받으면 프로모션에 크게 일조한다. 신인 가수의 경우에도 아주 작은 방송 프로그램에라도 타이업하는것이 대부분인데 이것 조차 안한것을 보면 거의 버리는 카드로 쓴건 아닐지(...).
  7. [7] 1년 뒤 보아가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등장하자, 한국의 언론은 그의 성공을 대서특필할 정도로 그 시절은 오리콘의 위상은 대단했다. 그럴만도 한게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음반 시장 규모는 차이가 컸고 일본 시장이 세계 2위이다 보니.
  8. [8] 일본의 새벽 음악방송이나 케이블 음악방송에 나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오래전이라 자료가 남아있지도 않고, 흔적 조차 없다.
  9. [9] 여담으로 이 비비의 2집은 여러 곡이 커버되었는데 투야가 리메이크 한 "예전처럼"을 비롯해, 대표곡 "하늘땅 별땅", 그리고 "사랑할 때 까지"라는 곡은 베이비복스가 4집에서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당시 그 바닥에서 이 앨범에 괜찮은 곡들이 있었다고 소문이 났는지 여러 그룹이 리메이크 해 간 모양.
  10. [10] 그러나 같은 전략으로 뮤직비디오먼저 내놓고 음반&방송을 뒤늦게 했던 가수도 대박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프로모션만을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1. [11] 같은 해 데뷔해서 최상위권의 반응을 얻은 가수는 장나라, 성시경, 왁스, 브라운 아이즈 등이며 이들은 데뷔 앨범으로 수십만장을 팔아치운 바 있다. 투야와 비슷한 판매량을 기록한 블랙비트는 MKMF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다나 역시 비슷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오히려 이들보다 곡 체감 인기와 차트 순위가 높았던 웃기네의 하늘같은 경우는 음반 판매고가 1만장에 그치기도 했다. 투야 같은 경우는 여러 방면에서 고른 밸런스를 갖춘 케이스.
  12. [12] 녹음 작업도 50% 가량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나 회사 사정이 안좋아지면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13. [13] 설립자 백남수 대표는 2013년 9월에 대장암으로 사망.
  14. [14] 탤런트 양미라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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