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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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1920년~1940년대
2.4. 1990년~현재
3. 하위 장르
3.1. 올드 트로트
3.2. 정통 트로트
3.3. 엘레지 트로트
3.4. 발라드 트로트
3.5. 락 트로트
3.6. 댄스 트로트/세미 트로트
3.7. 뽕짝
4. 비판
4.1. 왜색 논란
4.2. 저속함
4.3. 용어 문제
4.4. 낮은 위상, 한정된 소비시장의 한계와 양산형 가수의 문제
4.5. 비판에 대한 몇 가지 반론
5. 향유 계층
6. 트로트 가수
7. 세미 트로트 가수
8. 유명 곡
9. 트리비아

1. 개요

Trot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엔카가 유입되면서 시작된 한국의 음악 장르. 다만 이름은 구미 춤곡 중에 하나인 폭스트롯(foxtrot)에서 왔다. 유사 장르로 뽕짝이 있지만 트로트보다 낮게 취급되거나 하나로 묶여서 취급된다. 신나는 분위기 덕에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곡의 유행 기간이 일반 가요보다 훨씬 긴 것이 특징이다.[1]

음악적으로 엔카의 영향을 받아 ‘파’ 음과 ‘시’ 음을 뺀 도레미솔라의 단조 5음계[2]와 듀플미터(duple metre, 2박 계열 박자)를 사용하는 특징을 가진다. 2박 계열 박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유의 ‘쿵짝’ ‘뽕짝’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음계와 박자에서 오는 트로트만의 특유의 느낌[3]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주만 듣고도 트로트스럽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낀다. 정통 트로트에서 발전한 최근의 트로트 등은 5음계에서 탈피하여 서양 음악의 7음계와 발라드, 락, 댄스 등의 다양한 리듬을 접목하는 추세다.

사랑과 이별, 고향을 그리워하는 등의 한과 애수가 느껴지는 가사가 많지만 대체로 노래 분위기는 아주 신나며 지역적인 가사, 사투리 억양을 연상시키는 음정 등을 사용하여 구수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제목부터도 '트로트스럽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게 많다. 띄어쓰기가 없는 10글자 내외의 짧은 문장 형태의 제목이 많다.[4]

대체로 가사에 추임새, 감탄사가 많고 음의 높낮이 변화가 적으며 길이 변화가 크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장르로는 일본의 엔카와 미국컨트리 뮤직 정도를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일본의 엔카는 트로트와 유래가 같을 뿐만 아니라 음계 및 곡조가 흡사하고, 미국의 컨트리는 한국, 일본에 있는 '뽕끼'라는 특유의 느낌이 없고 감성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점이 바로 문화 차이다.

단 같은 5음계를 공유하는 중국에는 나름 퍼져있다. 유트브에 酒廊情歌,经典老歌 라고 검색해보면 수많은 중국어 트로트를 들을 수 있다. 2018년 전 중국에서 유행했던 夜之光,2019년 현재 유행하는 大田后生仔 역시 뽕끼 를 느낄 수 있다.

중국가수 花姐의 夜之光

林启得 의 大田后生仔, 통기타 곡이지만 5음계를 채용한 뽕끼를 지울 수 없다.

트로트 가사에는 영어가 잘 쓰이지 않는데, 영어가 사용되면 특유의 리듬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의 최신가요처럼 영어가 포함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보기 매우 드물다.[5]

대체로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좋아하며 젊은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느껴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트로트에 대해서는 트로트 메들리 문서 참조.

2. 역사

2.1. 1920년~1940년대

트로트는 일제 시대 일본의 음악 장르인 엔카가 한반도에 도입되면서 최초로 시작되었다.[6] 일본의 엔카는 서양음악인 폭스트롯(Foxtrot)이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일본 민요와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며,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 엔카를 수입했고, 폭스트롯은 한국의 민요와 합쳐져 트로트가 발생하게 된다. 트로트의 자세한 탄생/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트로트 문서블로그 글을 참조하자. 해방 후에도 트로트는 여전히 한국 가요계에 주류로 자리잡았는데,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일제시대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대) 학생들이 민요를 재구성해서 창작곡을 만들자 "어떻게 감히 이화여전이란 곳에서 트로트 같은 음악이 아닌, 민요 따위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 수 있느냐?"란 여론이 터진 적이 있다. 당시엔 트로트가 세련되고 서구적인 느낌인 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출처]

1930년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트로트 문화는 개화하여,[8] 1930~1940년대에 백년설,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이애리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 트로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고급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만큼 음악성도 아주 높았기 때문에, 대중성만을 노린 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트로트 가수들은 대부분 당대의 미성이었으며, 양산 위주의 현대 가요들과는 달리[9] 가사 또한 풍부하고 심미적이었고, 현대의 뽕짝과는 다르게 가요 분위기 또한 흥이 아닌 서정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때의 트로트는 지금과는 다른 장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특히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 등은 지금까지도 명곡이라 불리우는 곡들 중 하나인데, 그런 노래들 중 대부분이 20~40년대에 등장한 트로트다.

2.2. 1950년~196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트로트는 고급 음악의 입지에서 벗어나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박재홍울고 넘는 박달재, 현인신라의 달밤 등 대중들 사이에서 매우 크게 유행했던 트로트가 나온 것도 이때 즈음. 이때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주류 문화였으며, 1970년대포크 음악이 등장하기 전까지 당대 명곡의 태반을 트로트가 차지한다. 특히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트로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1950~1960년대는 이전 반 백년 동안과는 확연히 다른 대한민국의 변화를 겪은 시기인데, 이런 부문을 다른 트로트 또한 많이 작곡되었다. 일례로 박재홍유정천리는 영화 유정천리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은 노래인데, 3.15 부정선거를 풍자하는 곡으로 대구에서 개사되어 불려 또 다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50년대는 트로트가 대중화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년도인데, 누군가는 이를 트로트가 서민의 노래가 되고 향유층이 넓어졌으며, 트로트가 양적으로 많아지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면, 누군가는 트로트의 대중화가 트로트의 질적 저하를 낳고 트로트의 이전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확실히 트로트가 대중화된 기점부터 20~40년대의 질 높은 서정적인 트로트의 색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되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안그래도 이전부터 왜색이 짙다고 민족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은 트로트가, 대중화 되지 않고 그 색을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황성의 달을 모티브로 삼은 황성옛터가 작곡되었을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것을 생각해보자.[10] 50년대부터 트로트는 한국의 정서를 띄게 되었으므로,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의 열화판이 아닌 한국음악의 한 분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대중화가 이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3. 1970년~1990년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포크 음악 등 새로운 장르가 유입된 이래, 한국 가요계에서 트로트는 다양한 장르가 여럿 대중화된 1980년대를 지나며 비주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는 트로트가 급격히 쇠퇴하고 암흑기를 맞이한 시기로 여겨지는데, 유재하를 기점으로 시작된 신파조가 배제된 발라드들이 대거 등장하며, 소위 '뽕끼' 없는 발라드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11] 이후 김현철, 신승훈 등을 거치며 뽕끼와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필도 12집을 기점으로 뽕끼 없는 음악을 제작했을 정도. 더군다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댄스 힙합그룹이 대거 등장하면서 가요계의 판도가 10대~20대 위주로 재편되었고, 결국 트로트는 설 자리를 순식간에 잃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이전까지는 트로트 노래가 가요순위 1위를 독식하기도 했었다. [12]

2.4. 1990년~현재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이후 1993년 가수 김수희의 '애모'가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받은 것이 거의 마지막 가요 차트 1위가 될 뻔했고, 애모 이후 현재까지 대중가요 차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기록은 2005년 1월 MBC 음악캠프에서 통산 2주 1위를 한 장윤정의 《어머나》, 2007년 9월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한 강진의 《땡벌》 두 곡뿐이며, 1위 후보까지 오른 기록은 2009년 2월 뮤직뱅크 1위 후보에 오른 빅뱅 대성의 《대박이야!》와 2014년 11월 MBC MUSIC 쇼챔피언 TOP 10에 오른 홍진영의 《산다는 건》이다. 이렇게 인기가 떨어진 탓에 젊은 트로트 가수의 유입이 끊겨버렸고, 기존에 있던 중년 트로트 가수들만이 남아서 트로트의 명맥을 이어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이유로 트로트는 중장년층이 즐기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그래도 2000년대 초에 등장한 장윤정의 《어머나》의 대히트로 박상철, 박현빈, LPG, 홍진영 등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유입되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숨이 트였다. 기존의 K-POP 가수들도 트로트 음반을 발매하는 일도 생겨났고 예능 프로에 효과음으로 삽입되기도 하며 TV 시장과 대중가요 프로에서 밀려났을 뿐이지 행사무대나 가요무대 같은 트로트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중년 가수들이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9년에는 미스트롯이 10%를 넘기는 등 흥행하고 있다.

3. 하위 장르

3.1. 올드 트로트

Lo-fi192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의 일제 시대~해방 공간에 작곡된 가장 트로트의 원형에 가까운 장르.

3.2. 정통 트로트

엔카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1960년대 트로트.

3.3. 엘레지 트로트

트로트 중 애수(elegy)의 정서를 강조한 곡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미자의 곡들이 유명하다.

3.4. 발라드 트로트

트로트의 음계에 1970-80년대부터 도입된 서구 음악인 포크와 블루스, 클래식의 느리고 서정적인 스타일이 결합된 크로스오버 장르. 조용필의 초기 앨범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3.5. 락 트로트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트로트에 강렬한 드럼, 기타비트 등 락의 요소를 크로스오버한 장르.

3.6. 댄스 트로트/세미 트로트

홍진영의 잘가라. EDM 편곡을 접목하였으며, 멜로디 자체도 트로트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대 들어서 등장한 하위 장르로 엔카의 영향보다는 1990년대 초반 하우스 댄스 가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트로트의 음계나 창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실질적으로 트로트라고 할 수조차 없는 댄스곡을 트로트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멜론의 경우 전형적인 유로 댄스 곡인 하이디의 진이를 트로트 차트로 분류하는 등 트로트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

3.7. 뽕짝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버스[13] 등등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2000년대 초반 트로트.

뽕짝은 1970년대에 트로트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쓰였으나, 이박사를 비롯한 한국의 1980~1990년대 뽕짝 음악을 발굴한 일본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조금 다르게 본다. 1980년대 이후 신스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트로트에 전자음악이 혼합된 것을 뽕짝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1980년대에 무그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뽕짝음악을 들어보면 이건 뭐 크라프트베르크 뺨을 후려칠 수준의 리듬패턴도 종종 보이곤 한다. 최근엔 일부 음반을 제외하면 대부분 반복적 전자음or브라스or브라스밴드+드럼(고음,퍼커션) 리듬패턴을 쓴다. 그리고 민요 메들리의 경우엔 국악기도 쓴다. 허나 최근들어 이런 "뽕짝" 역시 나운도를 위시한 실력파 가수들의 등장으로 그 위상이 예전보다 높아진 상태다. 그리고 의외로 태진아, 송대관 같은 가수들도 이런 "뽕짝 메들리" 앨범을 낸 적이 있다. 흔히 뽕짝(디스코) 메들리로 유명한 가수는 김용임,진성,박구윤등등이 있다.

아니 트로트에 전자음악이 혼합된 것이 뽕짝 맞다.

중국에는 지금도 5음계, 2박자 계열로 이루어진 트로트같은 느낌을 주는 가요가 지금도 많이 작곡된다. 2019년 중국에서 유행했던 음악에 전자음악을 적용하면 위와 같은 뽕작 메들리 느낌이 나는 것이다.

무명 가수, 캬바레 가수, 품바(각설이) 등등이 이런 식으로 메들리 음반(소위 관광디스코, 지루박 등등)을 내곤 하는데 예를 들면 위의 영상에 나오는 사이다텍, 코뿔소 품바단이 있다. 그리고 모 여성 품바는 이런식의 음반과 공연비로 억을 벌기도 했다는 카더라가있다.

최근 이센스, 글렌체크, XXX 등이 소속된 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 소속 아티스트 250이 우리 주변에 스며들어 있는 '뽕'을 찾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를 발표하고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 티저 영상에 테크노 뽕짝의 창시자인 이박사가 출연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으며 올해 발표할 250의 앨범 '뽕'의 제작 과정을 유쾌하게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박사와 인터뷰하고 동묘 악기시장, 전국노래자랑 예선장소, 리듬짝 춤교습소 등을 찾아다니며 뽕의 뿌리를 찾기위한 진지한 행보를 보여 재미를 더한다. 뽕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을 것으로 보여 장르 음악 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뽕을 찾아서

4. 비판

4.1. 왜색 논란

국내에서는 일본엔카에서 유래했고, 음악적 구성이나 스타일도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이것에 대해서는 국어 사전에도 나와있는데, 정형화된 네 박자 리듬에 일본의 엔카에서 들어온 요나누키/미야코부시 음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때문에 소위 왜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트로트를 싫어하거나, 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탄생한 장르이기 때문에 아예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트로트는 한국의 민요에서 발전한 것이다.'라는 반론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작곡가 이호섭[14]이 트로트 일본 기원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특히 이호섭은 트로트를 왜색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언제부턴가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트롯트'를 비하하여 나아가 그분들이 좋아하는 노래 '트롯트' 대신에 신세대 노래를 가르치려고 하는 극히 불손한 기도마저 자행되는 것이 보인다."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다른 민속 음계에도 5음계가 많아서 이들 모두 현대 음악의 조표로 옮겨보면 도긴개긴으로 똑같은 음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트로트와 한국의 민요는 그 근본부터 매우 다르다. 일본 엔카에서 사용된 요나누키의 장음계는 C, D, E, G, A, C로 스코틀랜드 민요에도 쓰이는 펜타토닉 스케일이다. 그렇기에 메이지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창가는 외국 노래에 가사만 바꿔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동아시아 전통 곡조에 사용되던 중국의 궁상각치우, 한국의 중임무황태도 5음계이지만 각 음계 자체의 차이와 화음의 구성까지 따지면 매우 다르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중임무황태의 장음계는 CDEGA가 아니라 GACDE 이다. 이것을 "순서만 다르지 똑같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피아노도-레-미-파-솔-라-시-도를 쳐보고 '레-미-파-솔-라-시-도-레'를 쳐보자. 완전히 달리 들리는 두 음계를 그나마 비슷하게 만드려면 레-미-파♯-솔-라-시-도♯-레가 돼야 한다. 음계의 느낌은 음정의 간격에서 나온다. 이렇게 간격을 같게 해도 첫음이 다르면 들리는 느낌이 매우 달라지기에 두 음계를 별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더 엄격하게 따지면 중임무황태 하나하나가 GACDE에 정확히 대응되지도 않는다. 결국 트로트의 기원은 민요가 아닌 일본 엔카가 근본으로 두고 있는 요나누키 쪽에 훨씬 가깝다는 이야기.

그리고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때에도 트로트란 장르는 엔카에서 비롯한 것이 맞다. 알다시피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엔카를 한국에 들여와 번안한 것이 그 유래. 이에 대해서 한국 가요계, 특히 트로트 계에서는 엔카의 시조인 코가 마사오가 유년시절 한국 민요의 요소를 엔카에 도입한 것이나, 많은 일본인들이 엔카의 뿌리를 한국으로 여긴다는 것[15]을 들어 거꾸로 한국 원조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16] 이는 엄연히 말해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 엔카의 원조가 아니라 엔카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트로트는 1960년대 전까지는 엔카의 느낌이 매우 강했으나 점차 엔카의 전신인 요나누키/미야코부시 음계, 블루노트와 리듬을 무시하고 현대적 느낌의 편곡을 넣거나 한국 특유의 뽕짝을 살리면서 엔카와의 차별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엔카하드록이라면 트로트는 헤비메탈'이라고도 칭한다.[17]

일본어 위키백과를 위시한 일본인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코가 마사오가 한국 음악의 3박자를 베이스로 하는 선율을 엔카에 가미한 이른바 '코가 멜로디'가 한국인들도 무리없이 수용하고 한국어로 번안되어 들어왔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역수입되는 등[18] 한/일간 트로트와 엔카의 수출, 역수입을 반복해 서로 영향을 주는 형태로 발전해 트로트가 한국 대중가요계에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트로트가 모두 엔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음악사의 발전에 일방적인 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19]

결론을 말하자면 트로트는 엄연히 엔카에서 비롯한 장르였지만 이후 트로트만의 독자성을 구축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트로트의 기원과는 별개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트로트가 나쁜 것이라고 볼 이유는 없겠지만, 몇몇 트로트 관계자들이 무리하게 트로트 전통가요론을 밀어 붙이며 사태 왜곡에 나서는 일도 결코 온전한 행위로는 볼 수 없다.

4.2. 저속함

왜색 논란과 별도로 장르 자체에 대한 비난도 길고 길다. 1960~1970년대 탄압 당시에도 왜색뿐만 아니라 통속성, 저급성을 이유로 탄압받았다. 《잘 있거라 부산항아》로 유명해진 백야성도 이러한 이유로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되는 사단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독재정권의 문화적 보수성 탓이기도 하다. 장르 자체가 일종의 하위 장르로 인식되었고 일종의 키치문화로 보자는 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B급 문화라고 보기에는 자본이나 대중성의 측면에서 주류적이었던 문화이자, 한편으로는 민중적인 문화였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적 부분에서도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유치하다 못해 저질인 가사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2008년에는 지나치게 유치, 저속한 가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장윤정, 박현빈 류의 소위 '네오 트로트'는 이전의 전통 트로트에 비해 가사의 깊이도 얕아지고 곡의 완성도도 낮아졌다. 브라스에 퍼커션 적당히 넣어놓은 싸구려 편곡에[20] 가사라고는 허구헌날 '오빠 여보 자기 당신 사랑해요 안아줘요'처럼 트로트의 주 수요층인 4~50대 남성들의 저급한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사나 '힘든 인생길 어차피 한방이야' 등의 인생론만 외쳐대니 수준이 높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윤정이나 박현빈의 노래는 당시에만 히트했을 뿐, 과거의 전통 트로트처럼 오랜 세월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사실 과거의 전통 트로트는 연주, 편곡 등 제법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한맺힘과 민족적인 감성을 잘 담아낸 노래가 많았을 뿐 아니라 민요나 판소리등에서 따온 한국적인 박자나 가락 창법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풍부했다. 이 시기에 나온 트로트 중 꿈에 본 내 고향,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불효자는 웁니다, 비내리는 고모령, 비내리는 호남선, 눈물젖은 두만강,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들어보자. 이 노래들의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아무래도 네오 트로트는 전통 트로트에 비해 깊이가 떨어지는 추세다. 물론 트로트 말고 다른 장르라고 다르냐고 하면 그건 아닌지라, 그냥 감성의 차이일수도?

최근의 네오 트로트는 장르마저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들어보면 이게 90년대 댄스곡인지 트로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곡들도 존재한다. 이런 곡들의 경우 작곡가의 트로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음악의 장르도 고정된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장르의 특성은 명확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뮤지션들의 방향성은 계속해서 바뀐다. 힙합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가사의 주제나 메시지, 사운드의 특징이 다른 것처럼 이를 사용하는 뮤지션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트로트의 경우에도 클래식 취급받는 70년대 히트곡들도 일차원적인 사랑타령에 치중한 노래는 무수히 많았다.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냈느냐에 따른 차이. 오히려 화성악을 비롯한 실용음악적 지식은 최근에 트로트 시장에 진입한 작곡가/가수들이 더 빼어난 경우도 많다. 반대로 '변형'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성이 장르의 도태에 일조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보다는 그 원류라고 하는 일본이 오히려 호평하는 이박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것에서 이미 게임아웃이다.

4.3. 용어 문제

2005년 나훈아는 B급 하위문화로 인식되는 '트로트'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리랑 전통 가요'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트로트가 멸시받는 현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작용한 단순한 열폭이었기 때문에 학계와 음악 관계자들은 당연히 무시했으며, 일반인들도 무리수라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부 방송매체나 음반매장 코너에서는 성인가요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주 소비층이기 때문. 다만, 2000년대에 나온 몇 트로트 곡의 애들이 따라부르기 부적절한 가사 때문에[예] 성인가요로 부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4.4. 낮은 위상, 한정된 소비시장의 한계와 양산형 가수의 문제

누구나 부르기 쉬운 친숙한 음악이라는 이미지지만, 거꾸로 가창력 없어도 대충 부를 수 있는 음악으로 인식되어 고만고만한 양산형 가수가 쏟아져 나오는 장르이기도 하다. 특정 작사가와 작곡가가 만든 같은 곡을 여러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똑같은 수록곡으로 앨범을 낸 사례가 있다. 물론 인기와 판매량은 처참하며 그 양산형 가수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군소 지역축제 정도만 돌면서 무명가수로 가수활동을 마친다. 결국 좋은 트로트 신곡과 좋은 신인을 찾는 것은 모래 속에서 진주찾기보다 어렵다. 최근에는 양산형 가수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오토튠을 쓰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세미 트로트 때문에 생긴 것으로 정통 트로트와는 거리가 있다.

이는 트로트가 가진 낮은 위상과 한정된 소비시장으로 인한 문제다. 2017년 기준 약 5조 원 규모의 전체 국내 음악 산업 시장에서 2017년 가온차트 100위권2016`2017년 장르별 분류에서도 트로트는 100위 권내에 진입하지 못했다.[22]2017년 음악 산업백서 타 장르는 음악시장의 성장으로 해당 장르는 인재와 기술이 집중 투자되었고 그 결과 레드오션이 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가창력과 편곡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뒤쳐지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로트는 90년대 이후 비주류화가 되면서 경쟁 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트로트 음악은 브라스가 주가 되는 유치한 뽕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트로트는 오프라인 피지컬 음반 시장[23]과 디지털음원 시장 모두 미미한 점유율을 보이며 사실상 행사에 의존하는 한정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어 90년대 이후 쇠퇴기로 평가받으며 음악시장의 10% 점유율을 차지하며 5천억 원 정도 시장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이 발간한 2017년 음악 산업백서즐겨듣는 음악(장르별) Top10에서 트로트는 7위로 6위인 인디음악보다도 선호도가 밀렸다.[24] 더 큰 문제는 음원 시장 주류로 변하고 있는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도 소외되어 2017년 스트리밍 시장에서 0.8% 차지하며 2014년 이후 계속 하향추세를 보인다. 타 장르의 시장 독식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태인데 인디음악의 디지털 시장 점유율은 2000년대 초 0.4%에서 2017년 6.3%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트로트 장르 자체의 침체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낮은 시장성으로 새로운 인재의 유입이 적으면서 장르가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박현빈은 트로트 막내 10년 차로 지냈으며 홍진영이 유일한 후배고 바로 위는 사대천왕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인지도 있는 가수만 언급한 방송용의 과장된 발언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장르가수가 매우 한정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물론 취향의 관점에서야 1곡이 수십 년간 유행해도 문제는 없으나 장르 전체의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세대교체가 빠른 아이돌 가수는 인기가 절정인 그룹이 은퇴하거나 해체되더라도 그 빈자리를 다른 가수가 나타나 메꾸고 해당 장르가 매년 성장하고 있으나 트로트는 시장이 정체된 채로 기존의 유명 가수에게만 의존하는 상황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고인 물에 부합하는 상태다. 유명 가수인 설운도(1958년생), 태진아(1953년생), 나훈아(1950년생), 송대관(1946년생), 현철(1942년생)이 60~70대로 가수로서의 남은 수명들이 아주 길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네임드 가수들이 은퇴하면 그 빈자리를 메꾸지 못하고 그만큼 트로트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의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황이 극단적으로 유지되면 양산형 아류 가수들만 남아서 장르의 소멸을 걱정해야 될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공중파 및 방송이나 온라인 매체에서 소외받는 상황에다가 시장의 한계로 매우 낮은 위상을 가지고 있어서 홍진영이나 장윤정 같은 스타 가수도 데뷔 당시 트로트를 하기 싫어 했다는 기사가 존재할 정도다. 본업이 가수가 아닌 개그맨들이 음반을 발매 할 때 주로 트로트를 한다는 것도 장르의 낮은 위상과 낮은 진입 장벽을 반영한다. 한정된 소비시장, 낮은 위상, 낮은 진입장벽이 결합하면서 트로트 장르로 새로 유입되는 가수들 중에는 부업이나 취미에 가깝게 활동하는 경우나 정말 시장성이 없어서 최후의 보루로 트로트를 선택한 경우처럼 기본 역량이 매우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시장성의 한계로 트로트 소속사들도 매우 영세하기 때문에 신인을 발굴하더라도 거대 기획사 같은 시스템적인 관리나 트레이닝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트로트의 검증없는 음원 발매에 대하여 가수협회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양산형 가수가 쏟아지는 것은 거의 모든 장르에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트로트의 경우 위에 언급된 총체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타 장르에 비하여 양산형 가수들의 기본 역량의 한계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통계에서 확인이 되는데 2013년 방송 심의 신청곡 기준으로 트로트 신곡 4000여곡이 쏟아져 나와서 매년 연간 4,000~5,000 곡에 달하는데 2위인 발라드 2,300여 곡, 3위인 댄스 1,600여 곡 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나마 10%의 낮은 시장 점유율을 연간 수천곡의 양산형 신곡이 나눠 가지면서 더더욱 영세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태다.[25]

4.5. 비판에 대한 몇 가지 반론

낮은 시장성의 문제는 인디음악 및 각종 비주류 음악 장르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로 시장성만으로 음악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젊은 가수들의 유입과 미스트롯의 흥행으로 장르의 위상도 다소나마 상승한 상태다. 그리고 K-POP 또한 저속한 가사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트로트는 대중들의 시선과는 달리 제대로 프로답게 부르기 위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테크닉을 소화해야 한다. 그야말로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부르기 힘든 노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성악이나 창에 기반을 둔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어 가수들의 성량이 매우 크고 성구전환 없이 벨팅으로 고음역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음색이 듣기 불편하고 취향을 많이 탔지만, 현재는 세스릭스의 발성법을 필두로 과거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성구전환을 추구하면서도 감정의 표현에 치중하다 보니 정석적인 발성을 구사하는 가수들이 주류가 되어 가며 점차 평균적인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트로트는 태생부터 립싱크 따위는 먹히지 않는 진검승부같은 장르이기 때문에 라이브가 받쳐주지 않는 가수는 있을 수 조차 없다.[26] 실제로 네임드급 젊은 트로트가수들[27]의 경우 타 장르를 선행하면서 가수로서 기본기를 갈고닦아 살아남은 케이스로, 오히려 발성이나 가창력 측면에서 중장년에 접어든 트로트가수들보다 오히려 좋은 기량을 가진 경우가 많다.[28] 대표적으로 걸그룹을 준비하며 연습생 생활을 거친 홍진영의 경우 두성 믹스보이스를 풀톤으로 구사하며, 박현빈 같은 경우도 비음이 트레이드마크지만 발성의 기본은 성악적인 두성이다.

또한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단순히 왜색이라 폄하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절의 고민을 한국적인 색채로 녹여 낸 작품이 없지 않았다. 영화 아가씨에서 주연 배우 김태리가 불러 재조명된 <세기말의 노래>가 그러한 예이다. 링크 거미줄로 한허리를 엃고 거문고에 오르니라는 구절은 문학적 상상력이 빛날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색채도 담고 있다.

트로트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의 세미 트로트에서 기인한다. 댄스 트로트는 트로트 시장을 부흥시키는 데 기여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트로트로서의 정체성도 모호한 데다 편곡, 프로듀싱 등의 기술력도 처참한 수준이므로 트로트에 대한 인식을 질 낮은 음악으로 추락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다시 말하면, 위의 반론들도 정통 트로트에는 해당되지만 세미 트로트에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5. 향유 계층

2000년대 초만 해도 40대=트로트라는 등식이 성립했지만 2010년대에는 40대에 소위 7080 세대가 진입하면서 40대=트로트라는 인식이 상당히 흐려졌다.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승철, 김건모 세대가 40대가 되면서 40대의 탈 트로트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6. 트로트 가수

7. 세미 트로트 가수

8. 유명 곡

9. 트리비아

  • 노래방에서 많이 불리는 노래 장르이기도 한데, 다른 장르의 노래에 비해 기본 음정이 원음정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에픽하이가 2009년에 본인 음반에다 동명의 곡을 수록했다.


  1. [1] 다만, 이것은 트로트가 현대의 한국 가요 장르 중 가장 오래되었고 덕분에 어느 세대에게나 친숙하게 들릴 수 있다는 특징 덕이다.
  2. [2] 국악의 전통 5음계인 궁상각치우도 '파'와 '시'가 빠져 있기 때문에 무조건 엔카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없다.
  3. [3] 뽕끼, 뽕기, 뽕필 등으로 불린다.
  4. [4] 그다음은나도몰라요, 사랑은돈보다좋다 등.
  5. [5] 현철의 "I Love You", 김명성의 "신비한 사랑", 홍진영의 '오늘밤에' 등의 곡에 영어 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마저도 한두 마디의 간단한 표현 정도다.
  6. [6] 물론 원조에 대한 논란은 있다. 단순히 일본의 엔카가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고 원조라고 하지만 초창기 일본 엔카는 지금의 트로트와 다른 민중가요 느낌이었다. 엔카가 일제시대 한국 음악의 영향을 받아 바뀐 부분도 있다. 다만 트로트나 엔카 모두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7. [출처] 7.1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8. [8] 1930년 이전에도 한국의 트로트는 존재했다. 다만 본격적으로 문화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부흥이 시작된 것이 1930년대부터이다.
  9. [9] 그렇지만 아주 양산이 없었던 것 또한 아니다. 당시 유행했던 트로트의 작사, 작곡가 중 대부분에서 호동아, 박시춘 등 특정 인물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같은 사람들이 다른 곡을 쓰려다보니 노래들이 양산되었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당장 남인수만 봐도 당시에 수백 곡의 트로트를 불렀는데 거기서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게 더 이상하다.
  10. [10] 당시의 트로트는 이후 50~60년대의 트로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왜색이 짙었다. 일본의 엔카가 트로트의 원형이란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지만.. 남인수를 필두로 한 친일가수들을 보면 노래에 왜색이 담겨있는 것으로 모자라, 가사도 일본어향이 강했으며, 아예 일본어가 원형인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정서를 띤 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제가 아예 민족말살 통치를 시작한 뒤로는 이러한 노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당대의 유명 트로트 가수인 남인수 등은 그 유명한 혈서지원을 부른 친일가수였고, 목포의 눈물 같은 '민족의 노래'로 유명한 이난영조차 친일행적을 의심받고 있는 중이니.. 이런 시대에 왜색이 짙은 노래가 종종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11. [11] 이러한 과도기에 인기를 얻은 발라드 가수가 변진섭이다. 변진섭의 전성기에 발표되었던 1집, 2집은 적당히 '뽕끼'가 있는 곡들과 그렇지 않는 곡들이 섞여있다.
  12. [12] 다만 이것은 1980년대 후반 주현미,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 현철 등이 활약하며 전에 없는 트로트 전성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3. [13] 제주도에는 음향시설 자체가 없는 버스가 많아서 듣기 어렵다. 이유는 섬지역 특성상 관광이나 여행을 가도 거리가 짧아서 필요성이 적어서 그렇다. 또한 버스 자체 스피커도 음악용도의 음질은 좋지 않아서 쓰긴 힘들다.
  14. [14]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를 만든 인물로, 언변도 뛰어나 각종 행사의 MC, 음악교실 강사로도 활약했다. 심지어는 공중파 아침 방송 리포터로 활약하기도.
  15. [15] 사실 "엔카의 뿌리"는 좀 과장된 주장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엔카가 한국 민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 이는 사실에 해당한다.
  16. [16] 트로트X 방영 전 특집 방송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17. [17] 블루스를 계승한 하드록에서 하드록 특유의 음색을 유지하되, 블루노트와 리듬을 무시하고 빠른 리듬과 기교를 섞어서 만들어진 헤비메탈과의 유사성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엔카와 트로트의 교류가 적지 않아서(이박사의 일본 진출 등) 트로트적인 엔카도 나오는 상황이라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만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화된 헤비메탈 중에서는 좀 더 하드록에 가까운 색채를 띠는 경우도 있어서 아주 안 맞는 것도 아니다. 현대 음악 흐름이 장르의 화합이 대세이기 때문에 장르 구분이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18. [18] 1930년대 당시 이애리수, 김연실, 김정구, 이난영, 박향림등의 가수들이 사실상 엔카 가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계보를 직통으로 잇는것이 1940년대 후반~1950년대의 슈퍼스타 현인이 있다.
  19. [19] 김연자계은숙을 위시한 일부 트로트 가수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엔카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엔카 가수가 한국에 와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 다만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도모또라는 여성 가수가 한국유명곡, 고전곡을 일본어로 번역한 곡, 일본어로된 곡을 한국어로 번안한 곡들을 수록한 앨범을 2장(유튜브 도모또 토픽에 등록된 앨범 기준) 출시한 사례는 있다. 도모또(한국 연가 특선집):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nNronQ7TcMK1edGUaokqHjqAthwBmjviI
  20. [20] 실제 브라스밴드를 쓰는 경우는 요즘 어지간한 가수의 경우는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산 문제로 거의 신디사이저 한두대 정도로 땜빵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21. [예] 21.1 장윤정의 어머나, 박현빈의 샤방샤방 등.
  22. [22] 현재 한국에서 공인하는 오프라인 음반 차트는 가온차트(www.gaonchart.co.kr)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운영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가온차트는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다양한 기준으로 차트를 공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앨범 차트는 국내 주요 음반 유통사와 해외 직배사로부터 받은 자료 중 CD, 바이닐, 카세트테이프 등 오프라인 앨범의 국내 출하량을 순위로 매긴 것이다. 단, 국내 출하량 중 반품량은 제외된다. 출처: 2017년 음악 산업백서 51쪽
  23. [23] 가온 국내 앨범차트 100권 내에 트로트를 찾아보기 힘든데 2015년 100위가 앨범 11,957개 2017년은 30,750개로 매년 1만~3만 개 이상 앨범을 파는 트로트 가수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24. [24] 2017년 음악 산업백서 194쪽
  25. [25] 콘서트가 가능한 유명가수를 제외하면 무명가수들은 사실상 전적으로 행사비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한정된 시장에 공급은 많기에 행사비 단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26. [26] 애초에 트로트 전문 음악 프로그램은 악단을 써서 립싱크를 하기 힘든 여건일 수밖에 없다.
  27. [27]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
  28. [28] 업계 특성상 중장년 나이에 데뷔하는 신인들의 경우 대개 다른 직업군에 종사했거나, 정말 시장성이 없어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데뷔했거나, 혹은 그냥 취미삼아 음반 한번 내본 케이스인 경우가 많다. 반면 젊은 신인들의 경우 처음부터 트로트 가수를 목표로 준비했거나, 다른 장르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트로트로 전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지컬이 좋은 건 둘째치고 일단 음악에 대해 접근하는 자세가 다르다.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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