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

영어: Panama Canal

스페인어: Canal de Panamá

1. 개요
2. 역사
2.1. 근세
2.2. 근대
2.3. 현대
3. 통행 방식
4.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
5. 기타
6. 창작물의 파나마 운하

1. 개요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 건설된 길이 약 82km의 운하로, 대서양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 대륙의 경계의 기준이 된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위 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하는 화물선의 운항시간 단축에 큰 획을 그은 운하. 다만 요즘은 워낙 배들이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긴 하다. 4번 문단 참고. 파나막스니 포스트 파나막스니 하는 선박의 사이즈별 구분은 다 이 운하의 항행 가능 폭을 상정해 두고 만든 것이다.[1]

운하 서쪽에는 태평양, 동쪽에는 대서양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지형이 좀 미묘한 관계로[2] 운하 북쪽에 대서양(과 연결된 카리브해), 남쪽에 태평양이 있다.

2. 역사

2.1. 근세

개념 자체는 이미 16세기의 스페인 초대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그 유명한 카를 5세가 친히 주목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었다. 152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가 그 필요성을 역설하자 이걸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프랑스오스만 제국과의 전면전이 있었는데(둘 모두 승리/격퇴했다), 이때 막대한 전쟁비를 안 들였더라면 이때부터 진짜로 추진되었을지도 모른다. 추진한다는 얘기지 성공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처럼 일찍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서부 지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해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의 끝인 드레이크 해협까지 간 다음 혼 곶을 찍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거리도 더럽게 멀고, 폭풍을 만나기 쉬운 데다가 시간도 더럽게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해상무역은 계속 GG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중국에서 도자기비단을 수입해서 마닐라로 가져오고, 마닐라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운송한 다음 거기서 육로로 베라크루스까지 화물을 운송한 다음에 거기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마닐라 갤리온' 무역로를 사용했는데, 도로사정이 워낙 병맛이고 정글까지 펼쳐져 있어서 아카풀코에서 베라크루스까지 별로 멀지 않은 육상운송에서 꽤 많은 손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드레이크 해협이 어떤 곳이냐면... 동영상 참고 여기에 유빙도 더해질 때가 있다.[3]

2.2. 근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과정에서 주목받은 곳이 바로 파나마 지협이었다. 약 80km 정도를 미친듯이 삽질해서 물길을 만들면 양쪽으로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운하를 파기에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대공사를 벌일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1880년 프랑스총대를 메고 나서기 전까지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입으로 떠드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수에즈 운하 개통을 지휘한 기술자이자 외교관인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1805~1894)가 이끄는 프랑스 공사팀이 맡을 당시에는 세계 여론은 수에즈 운하 개통의 기술 경험을 가졌기에 파나마 운하도 문제없으리라 봤다. 하지만 이게 워낙 난공사였고 사고 및 질병으로 사망하는 인부들이 무려 2만 2천 명이나 되면서 결국 프랑스도 9년만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물러났으며 책임자인 레셉스는 막대한 빚을 지며 파산하여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늘그막을 비참하게 지내며 죽는다. 또한, 1892년 프랑스에서는 이 운하 때문에 대규모의 정치 스캔들이 폭로되었다.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대계 금융자본가를 내세워 복권부사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매수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수많은 국회의원 및 전직 장관들이 퇴진했고, 프랑스 정치계에 큰 불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4]

당시 가장 많은 사망 원인은 모기였다. 애초에 그 지역이 말라리아 창궐지역으로 악명 높은 데다가 운하 판답시고 구덩이까지 파게 되자 거기 찬 물에 모기들이 자라 모기가 무진장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에 인부들 사이에는 말라리아를 개미가 옮긴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 있어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개미를 막겠답시고 침대 다리마다 양철 그릇을 놓고 거기다가 물을 담아 놓았었는데, 그 물 담긴 그릇에서 모기가 더 맹렬히 번식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마를 때마다 침대를 들어서 물을 비우기 귀찮으므로, 수위가 내려갔다 싶으면 그냥 웅덩이 물을 퍼다가 부어넣기만 해서 물은 썩어들어갔고, 모기가 번식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숙소에 말라리아 병원균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생물학적 무지가 낳은 비극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저 위치가 나쁘다는 주장도 많아서 파나마가 아닌 니카라과새롭게 운하를 만들자는 주장도 많았었다. 그런 주장이 타격을 받은 건 1902년에 벌어진 마르티니크 섬의 몽펠레 화산폭발 대참극이었다. 3만에 가까운 섬인구가 죽어간 이 참극의 여파로 화산재 영향이 위치, 바람이나 여러 모로 위험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니카라과 운하 계획은 파기되고 그대로 파나마에서 운하를 만들자고 한 의견이 자리잡게 된 거였다. 거리는 2,500km나 떨어져 있지만, 위도가 비슷하고 풍향이 맞아 떨어진 탓에 니카라과에 화산재가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이후에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필리핀을 획득하게된 미국미합중국 해군 함대의 신속한 전개를 위한 전략적 목적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파나마 운하가 없으면 미 해군은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가 상호 연계나 전력 재배치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가 조건을 세게 부르자 파나마를 부추겨 독립시키기도 했다. 남미에서는 운하가 국가를 만듭니다!

공사 중인 파나마 운하(1904년)

1908년 공사 당시

미국이 공사하는 동안(1910년대)에는 말라리아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이 밝혀져, 모기를 적극 구제한 덕분에 인명 피해가 대단히 많이 줄었다. 윌리엄 크로포드 고르거스(1854~1920) 미합중국 육군 소장의 지휘하에 공사를 맡은 미 육군 공병대는 정면으로 이 위협에 맞섰는데, 공사 지역마다 신선한 물을 공급할 시설을 건설하고, 공사 지역 내의 건물이란 건물은 살충제로 가득 채우고, 특히 모기의 서식지가 될 연못이나 웅덩이마다 석유를 부어서 모기의 번식을 원천봉쇄했다. 심지어 고인 물이라는 이유로 성당에 들어가서 성수마저 엎어버렸다.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을 취하는 데에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고르거스 장군의 상관들은 "모기 한 마리 잡는데 10달러를 쓸 셈이냐."라고 투덜대었지만, 고르거스 장군은 "그럼 그 10달러짜리 모기가 장군님을 물면 어쩌시렵니까?"라는 말로 불평을 모두 잠재웠다. 사실 고르거스 장군은 이미 1900년대 황열병 전염에도 모기가 큰 매개체라는 걸 알고 같은 방법으로 중미 여러 곳에서 황열병을 크게 줄인 활약을 하여 이 공로로 장군까지 오르고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고르거스 장군은 그 스스로가 초급 공병장교 시절 황열병에 걸려 죽을 뻔 했었다. 당시 간호사가 헌신적으로 간호하여 운 좋게 살 수 있었는데, 고르거스 장군이 황열병에서 치료되자 이번엔 이 간호사가 황열병에 걸려버린다. 미안한 마음에 고르거스 장군은 이 간호사가 황열병이 나을 때까지 잘 대접했고 이 인연으로 둘은 결혼하게 된다. 황열병으로 맺어진 집안 하지만 황열병에겐 가차없다 말라리아 문제를 해결한 미국은 당시에는 생소하던 전기까지 끌어와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1914년 8월 15일에 완공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시킨 미국도 약 6천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내면서 마무리했다. 즉 이 운하 개통공사 과정에 총 2만 8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2.3. 현대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5] 실제 파나마 운하로 재미를 본 곳은 미국이었다. 그 때문에 20세기 내내 파나마 정부와 운하 소유권을 놓고 마찰이 빚어졌으며, 파나마 운하는 1999년 12월 14일에 정식으로 파나마로 이양되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였다. 권한 이양식 때 미국 현직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미국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기네들이 만든 것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리고 102년만에 확장 개통되었다.

3. 통행 방식

파나마 운하를 통과 중인 아이오와급 전함

파나마 운하의 높이는 해수면보다 수십 미터 높다.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간 뒤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만들 경우 그 당시의 기술력(지금도 마찬가지지만)으로는 천문학적인 공사금액과 시간, 인력이 소모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것처럼 통과속도가 느리고 복잡한 갑문시설이 추가되며 운하의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정하는 댐도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해서, 만일 댐이 무너지거나 폭파되면 수위조정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비유하자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비록 갑문식이라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10,000km 이상 삥 돌아서 최소 몇 주 이상을 가야되는 거리를 불과 하루면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이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고,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4.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

운하를 통행하는 물동량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파나마 공화국은 운하 확장공사를 계획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2006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2007년 공사를 시작하였다.[6] 초기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운하 확장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지연되어 2016년 6월 26일 개통하게 되었다. 100년만의 파나마 운하 확장개통 관련된 사진은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왼쪽이 기존의 파나마 운하, 사진 우측이 현재 건설된 신 파나마 운하

가동 중인 신 파나마 운하

이 운하 건설로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는 의의가 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 자체가 미 해군의 신속한 전개를 목적으로 만든 거였다. 다만 운하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함선의 폭을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야만 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함선의 크기나 배수량 면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냥 맘 놓고 군함을 크게 설계를 못한 것뿐이지 전투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며 영향을 받은 대상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일부 대형 전함항공모함으로 한정된다. 일단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전폭이 33미터로 제한되는데, 미 해군 최대의 전함인 아이오와급의 전폭은 32.97미터로 통과 가능하다. 하지만 폐기된 전함 계획인 몬태나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덩치를 키울 계획이었다.[7] 그리고 현대의 항공모함, 특히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현대의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무리 없이 통과가 가능. 그리고 확장공사로 이제 니미츠급도 지날 수 있게 됐다!

파나마 운하 통과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 사이즈로 지은 배를 "파나맥스"(Panamax)급 선박이라고 부른다. 통상 폭 32미터, 만재배수량 9만톤 내외의 선박이 이에 해당. 현재는 파나맥스 규격을 뛰어넘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을 많이 건조해서 배 자체가 파나마 운하를 넘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파나마 운하의 통행량 자체도 포화상태이다. 하루에 30여 척에 불과한 운하 통행[8]을 기다리느라 바다에 투묘[9]한 채 시간을 보내는 선박이 많다.[10]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파나마 운하의 북쪽 가까운 곳에 폭이 2배 정도 되는 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새로운 파나마 운하는 대략 폭 49미터, 12만톤급 선박도 통항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미 각국 조선소에서는 새로운 네오 파나맥스(Neo-Panamax) 규격에 맞춰 선박을 열심히 팔고 있다. 가툰 호수의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호수의 확장공사도 했다.

5. 기타

개통된 지 100여 년이 되었지만 운하 운행이 중단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미국이 1989년 12월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기 위해 침공했을 때 한 번. 그나마 전쟁 상황에서도 단 6시간 멈췄을 뿐이다. 나라가 망해도 돈은 돈다 그 다음에는 2010년 12월 폭우로 인해 운하를 약 17시간 동안 폐쇄했다.

통행료는 선박의 길이와 화물 적재량 혹은 승객 수 등에 의해 차등이 심하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간다. 평균 비용은 5000만 원선. 가장 많이 낸 경우는 259m 길이의 "디즈니 매직 크루즈 라이너"라는 배로 2008년 5월 16일에 통과할 때 33만 1,200달러(우리나라 돈 약 3억 4600만 원[11])였다. 반대로 가장 적게 낸 경우는 1928년에 리처드 핼리버튼이라는 미국 모험가가 이 운하를 수영해 지나갈 때로 36센트를 냈다(...). 수영해서 지나간다는 것도 충분히 비범하다 운하 유지에는 해마다 1500억원 정도 들어가지만 연간 수입이 2조 원 규모에 달해 여러모로 파나마 재정의 중요한 요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북극항로가 개통되면 파나마 운하는 수요 면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6. 창작물의 파나마 운하

맥스 페인 시리즈 중 3편의 챕터 11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챕터 11 한정으로 등장하는 적들인 콜롬비아의 무장단체 AUP가 이곳에서 해적질을 하는 장소. 해적질에 참가했던 AUP는 전원 끔살당했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AUP에게 살해되어 맥스 페인에게 또다른 트라우마를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시간상 그 이후인 챕터 5의 뉴스를 보면 여전히 파나마 운하 주변에서 민폐를 끼치고 다닌다고 나온다. 맥스는 술에 취해서 자고 일어나보니 요트가 AUP에게 점거당한데다 겨우겨우 밖까지 나와보니 파나마 운하인 상황이라, 자신이 자는 사이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해 맥스는 '이것 참 대단하군. 나중엔 자는 사이 달까지 갈 수도 있겠어'라고 독백한다(...).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중 수에즈 운하와 같이 건설가능 디시전으로 존재한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했던 골드 러쉬!에서도 등장한다. 독사를 주의해서 지나가야 하는 스테이지다.

문명 6의 2번째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에 운하가 추가되면서 파나마 운하도 불가사의로 등장했다. 입지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지라 파나마 운하를 길게 건설하는 업적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렇게 길게 지으면 다른 나라가 뺏어간다.

대체역사소설 더 퍼거토리에서 노왕,대진국 정부측에서 추진중인 공사로 나온다. 프랑스의 무리한 개통시도를 모티브로 따온듯하다.

6.1.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의 등장

대항해시대 2에서도 포르토벨로, 파나마 등 파나마 인근 지역 항구에 기항하면 NPC 중 한 명이 "여기에 운하가 있었으면…."이란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삥 돌아가야 되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캐공감. 지금 운하가 있기 때문에 저런 대사가 삽입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술했다시피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16세기 카를 5세 때부터 제시되고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배경도 딱 그 시점이니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육상탐험이 가능하여 그리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거기에 추가로 원양항해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교역의 중요성은 줄고 그래서 굳이 태평양을 횡단해야할 이유가 무대륙 찾을때 아니면 없었다) 그래도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와 이구아나나 이스터섬의 모아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무대륙같은 발견물을 찾기 위해선 마젤란해협을 건너야 했기에 이 때는 꽤나 절실했다.

대항해시대 4에서도 자동항해 기능의 강화와 신대륙 서해안에 단 하나의 정식항구를 두지 않을 정도로(페르남부쿠 아래로는 아예 정식항구는 없고 죄다 보급항만 있다)신대륙 서해안을 홀대한 탓에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 몇몇 아이템의 경우 서해안에서 탐색해야 했기에 이때만큼은 절실해졌다.[12]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2, 3, 4 시리즈를 통틀어 운하 떡밥이 많았는데, 파나마 또는 인근 항구에 투자를 해서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실제로 운하가 개설되는 20세기까지 플레이하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100% 구라[13]. 단, 대항해시대 4에서는 어떤 유저가 운하를 구현한 모드가 있긴 하다. 그리고 2012년 경 어떤 용자가 지도 파일의 헥스 데이터를 뜯어 고쳐서 대항해시대 2에서도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뚫는 쾌거를 이룩했다! 진정한 신세계의 개척자

이후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드디어 게임속에 구현되었다(!). 역사적 사실과는 반대로 업데이트하다보니 수에즈 운하보다 먼저 구현되었고,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양대 운하로 활약하고 있다. 패치 이전까지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10분 전후로 길었고, 통행료도 100만 두캇 약간 안 되게 비쌌지만, 패치를 통해 통과 시간이 사라지고 통행료도 대폭 감소되었다. 초창기 등장한 컨텐츠답게 여러 제약이 있는데 일반적인 상태로는 교역품을 싣고 통과할 수 없으며, 시간제한이 있는 퀘스트를 받은 상태에선 이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틀란티스 업데이트 이후 등장한 포세이돈의 가호 아이템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동안 교역품을 싣고 운하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실의 파나마 운하가 물류 수송을 위해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교역품 수송이 안 된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한 부분.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 현실과는 다른 제약을 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 자체가 매우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대양 항해가 굉장히 편해진다.

대항온은 전체적으로 고증을 중시한 게임이지만 게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고증오류가 있는데, 사실 별도의 동력이 없는 범선은 태평양과 대서양과 호수의 수위 문제 때문에 예인선 없이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현대에도 범선은 세계일주 시에 파나마 운하를 사용하지 못하고 혼 곶 남단으로 다닌다. 이를 클리퍼 루트라고 하며, 대략 40도 전후의 위도에서 강력한 서풍을 타고 다닐 수 있다.[14]

대항온의 파나마 운하는 오랜 시간 대서양-태평양 이동의 중추를 담당하였으나 시간이 지나 북미 대륙 횡단 철도가 등장하면서 그 위상이 많이 바래졌다. 교역품 수송도 가능하고 훨씬 더 빠른 철도 이용 루트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 대륙 횡단 철도는 보스턴-오마하-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 루트를 거쳐 이동이 가능한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없다보니 파나마 운하보다 훨씬 시간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북미 대륙의 너비를 생각하면 이동에 시간이 안 걸리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편의를 위해 이동 시간을 생략하다보니 횡단 철도가 운하보다 더 편리해진 것. 카리브 섬들이 산재해 있어 루트를 계속 손봐줘야 하는 운하와 달리 망망대해를 지나 보스턴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횡단 철도 루트가 가는 것도 더 편하다.[15]

이렇다보니 대항온에서는 철도 이용이 물류 수송의 주역이 되고 운하가 찬밥이 되어버리는 현실 역사와는 정반대인 상황이 나타났다.[16] 게임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선박들이 캐릭터와 함께 움직이고 보스턴에서 물자를 가득 실은 배들이 단순히 캐릭터가 정반대편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고 해서 그대로 샌프란시스코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인 것. 현실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고 이게 안 되니까 물자 수송을 위해 파나마 운하가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나 기묘한 현상이다.


  1. [1] 그 밖에 다른 기준이 되는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가 있다. 이 쪽의 명칭은 수에즈막스. 이 급의 선박은 통상 120,000~160,000DWT의 톤수에 선폭 약 70m 정도의 규모를 가진다. 수에즈 운하 문서에 가 보면 놀랍게도 항공모함이 떠 다니는 사진이 있다.
  2. [2]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자
  3. [3] 어니스트 섀클턴은 이런 곳을 작은 조각배 타고 지나가서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갔다. 저 아저씨가 대단한 거다.
  4. [4] 1912년 모리스 르블랑아르센 뤼팽의 다섯 번째 단행본인 "수정마개(Le Bouchon De Cristal)"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다루게 된다.
  5. [5] 이 때문에 국가와 속령의 코드를 규정한 ISO 3166에서는 과거 파나마와 별도로 파나마 운하에도 코드를 할당했었다. 현재는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이 파나마로 이양되었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에 할당됐던 코드가 삭제되고 파나마의 코드로 병합되었다.
  6. [6] 이 소식을 들은 이집트가 곧바로 수에즈 운하 확장에 들어가 2015년 먼저 개통했다.
  7. [7] 다만 이 당시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계획된 상태여서 공사가 끝나면 통과가 가능해질 전망이었다. 나중에 이 공사계획도 취소.
  8. [8] 운하 자체는 24시간 신나게 돌리고 있으나 갑문식이므로 물을 채우고 비우고 하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9. [9] anchoring, 投錨, 닻을 내리고 정박함.
  10. [10] 보름에서 한 달씩 기다리는 일도 흔하다. 운행이 늦어지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인건비도 계속 나가지만, 돌아가는 것 보다는 빠르니까(...). (+연료도 절약된다)
  11. [11] 이때 당시 환율이 약 1045원/달러 정도였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계산한 값이다.
  12. [12] 다만 교역이 목적이 아니라 탐색을 목표로 한 경우에는 의외로 일본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이, 카리브해에서 남미대륙 남단을 거쳐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다.
  13. [13] 요즘(2000년대 중반 이후)라면 인터넷 검색만 해 봐도 이런게 구라라는 걸 알 수 있겠지만... 인터넷의 대규모 보급 이전이던 90년대에는 이런 헛소문이 퍼질 여지가 상당히 많았다. PC통신등의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외에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창구는 게임잡지 아니면 (당시 학생들로써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던) 공식 핸드북 정도 뿐이었는데... 이런 창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적었을 뿐 아니라, 설령 이쪽에서 정보를 얻는다 해도 수 많은 사람들이 정보공급자 역할을 하면서 '그거 구라임. ㅋㅋ'라고 설명해 주는 사람도 나오는 2000년대 중반 이후와는 달리 공략집 같은 스타일의 자료라면 모를까 썰 하나하나를 짚고 사실인지 아닌지 설명해주는 자료는 얻기 힘들었던 것. 이 때문에 할일없는 꼬꼬마가 헛소문을 퍼트리면 주변에서 그걸 믿어버린 사람이 다시 퍼트리면서 구라가 널리 퍼지고, 이를 믿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태가 종종 벌어졌다.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2의 경우 한국에서 앤트워프(쉽 건조할 수 있는 항구) 다음으로 상업치/공업치 1000을 많이 찍은 도시는 아마 파나마일 것이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 유명한 인터넷 밈인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를 보면 알 수 있듯, 조조전이 유행한 90년대 말엽~2000년대 초반까지가 이런 구라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런 구라의 경우 사실은 달성조건이 유치하면서도 턱없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경우가 많아, 성인의 판단력을 가졌다면 '이건 어린애가 구라친 거구나' 라고 눈치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14. [14] 하지만 게임 상의 지리가 메르카토르 도법을 기준으로 해서 남극해 근처로 갈수록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멀어지는 관계로 실제 범선의 루트대로 움직이기는 힘들다. 대신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 고위도 원양 해역에서는 속력 보너스가 많아진다.
  15. [15] 단, 철도 또한 운하처럼 기간제 퀘스트를 받았을 때는 이용할 수 없다.
  16. [16] 현실의 철도도 물류 수송에 이점을 주니까 상관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항해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현실로 따지면 선박이 직접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보스턴에서 물류를 하역하고 철도로 실어 보낸 다음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선적하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 선장이 기차타고 북미 대륙 반대편으로 갔다고 배도 따라와 있는 건 덤

분류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115.12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