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형

1. 개요
2. 시행 사례들
3. 조선의 팽형
3.1. 개관
3.2.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집행 방식과 취급
3.3. 비슷한 사례
3.4. 정말로 시행되었는가?
4. 가상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烹刑. 고대의 형벌 중 한 가지.

말 그대로 죄인을 가마솥에 넣어 삶아(烹) 죽이는 형벌로, 살아있는 인간이나 기름, 동물 지방이 있는 가마솥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 끓이거나, 끓고 있는 상태에서 강제로 밀어넣어 서서히 고통을 느끼게 하며 죽여버리기 때문에 그 잔혹함이 화형을 넘어섰다.

실제 중국에서는 팽형에 사용되었다는 솥이 발굴된 적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피부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열로 인해 파괴되면서 신경세포도 파괴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뜨거운 물에 의한 고통은 꽤나 길다. 사람의 몸은 물이 70% 가량이 차지하고, 물은 비열이 높아서 온도변화가 느린 편이다. 이러한 몸에 함유된 물 때문에 열이 피부심층까지 폭발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므로 순식간에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엄청난 고열이라면 고통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온도를 자랑하는 화형을 당해도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이 나오는 상황에서 열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전해지면서 고통받는 시간이 증가하는 팽형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시행 전 미리 불을 지펴서 끓고 있는 상태로 만든 후 그 상태에서 넣어 죽이는 방법과 그냥 보통의 상태에서 시작해 끓여 죽이는 방법 모두 공존했다. 당연히 후자가 더 고통스럽다. 서서히 올라가는 온도를 느끼면서 죽어야 하니... 다만 둘의 방식이 엄격히 구분되어 시행되었다는 근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말로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하여 '정확(鼎鑊)의 형벌'이라고도 불렸다. 그 때문에 엄청난 중죄인, 가령 대량의 재물을 수탈한 탐관오리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던 역적 등의 죄인들만이 이러한 형벌을 당했다.

워낙 끔찍한 형벌인 데다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며 내부에 있는 사람이 반항해도 열리지 않는 거대한 가마솥을 준비하는 등(물론 뚜껑을 잡고 있어도 된다.) 형벌을 위해 준비해야 할 특수도구가 필요하며, 가마솥에 기름이나 물을 넣고 끓이는 등 미리 준비해야 하는 작업도 많고 더불어 기름을 사용할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대에서야 기름이 흔하니까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기술의 발달이 미흡했던 고대엔 소금과 더불어 기름도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삶아진(또는 튀겨진) 시체 처리도 곤란해지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데다가 다른 형벌과는 달리 처리 속도까지 늦어지므로 후대로 갈수록 팽형에 처해질 죄의 기준을 상향해서 최대한 집행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기피되거나 아예 다른 형벌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형을 가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여서 자백을 받아내거나 겁을 주어 외교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삼국지에서도 촉의 사신으로서 오나라에 간 등지를 손권이 압박하기 위해 근위병을 둘러세우고 큰 솥에 기름을 끓이는 팽형 퍼포먼스로 압박하려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굳이 팽형을 가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상술한 여러 문제점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죄인이 고통 속에 죽는 것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고 해석되므로 이런 형벌이 자주 가해지면 폭군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었다.

2. 시행 사례들

잔혹한 형벌로 악명높았던 상나라에서는 인신공양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데 별의별 방법을 다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팽형도 시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을 멸망시키고 들어선 주나라 시절에도 이 형벌은 사라지지 않고 제애공이 참소를 받고 끌려와 팽형에 처해지는 등의 기록이 남아있다.

춘추전국시대초의 혼란기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흔하게 사용되었는지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송양공이 회맹에 늦은 제후를 삶아 죽인 일이라든가, 악양이 삶겨죽은 아들을 끓인 국물을 마셨다는 일화, 전국시대 의 경우 즉묵이란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와 뇌물 받아 먹은 관리들을 세트로 전부 끓는 가마솥에 던져버렸다든가 하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금의야행의 고사에서 항우를 가리켜 "초나라 놈들은 원숭이 새끼가 갓 쓴 거나 똑같다더니 진짜인 듯(楚人 沐猴而冠)"이라고 비난한 한생이 기름에 튀겨져 죽은 일이 있고, 세객 역이기가 제왕을 설득시켜 무장해제시키고 항복 문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에서 공을 빼앗기게 됨을 시기한 한신이 제를 쳐들어가자 역이기는 정확히 이 형벌을 당했다.

이시카와 고에몽이 기름 끓는 가마솥에 던져져 최후를 맞았다고 하는 기록을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시행했던 형벌로 보고 있다. 사츠마류큐 왕국을 침공하여 복속시킬 때,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던 류큐의 대신 쟈나 웨카타 리잔(謝名親方利山)을 팽형에 처했다.

일본에서 직접적인 처형은 아니고 고문의 형태로 이뤄지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할 때 쓴 방법 중 하나가 끓는 온천수에 신자를 넣었다가 빼는 걸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지고쿠 세메'(地獄責)라고 부른다. 온천으로 유명한 나가사키현 운젠에서 이런 고문이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헨리 8세 치세에 통과된 "독을 이용한 범죄에 대한 처벌법(An Acte for Poysoning)"에 따라 시행되었다. 첫 사형수는 리처드 루즈라는 이름의 요리사로 가톨릭 세력의 사주를 받아 성공회 주교와 그 가족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대역죄를 적용 받고 팽형에 처해졌다. 실제로 주교의 집에 온 손님과 하녀가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고 죽었고, 주교는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아 살 수 있었다. 리처드 루즈에 이은 2번 째이자 마지막 희생양은 역시 독으로 사람을 죽인 마가렛 다비라는 여자였다. 이후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자 곧바로 폐지된다. 이 나라에서는 1790년에 위폐범 처벌 방법이 참수형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위조지폐범을 끓는 기름에 넣고 튀겨 죽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공식적인 처벌은 아니지만 사례가 있다. 2002년에 우즈베키스탄의 무자파르 아바조프는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된 후 끓는 물에 담겨지는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그의 사체는 온 몸에 화상을 입은 건 기본이고 머리 뒤에는 피투성이의 거대한 상처가 있었으며 손발톱은 모두 빠져 있었고 이마와 목은 멍들어 있었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는 팽살과 관련된 도시전설이 있다. 중국 삼합회이탈리아 마피아가 한창 세를 다투던 시절에 어느 아침 차이나타운과 이탈리아타운의 경계에 거대한 솥이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마피아들이 호기심에 열어보니 행방불명이 되었던 모 마피아 행동대원이 잘 삶아진 채 들어있었고... 대륙의 포스에 데꿀멍한 마피아가 삼합회에게 세를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3. 조선의 팽형

3.1. 개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사료에는 단 한 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티비에서는 종종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를 처벌할 목적으로 중국처럼 팽형을 했지만 조선의 팽형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명예형의 개념이라는 이야기가 방영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근거가 되는 사료의 제시는 없으며 유일하게 확인되는 사료는 조선총독부 관료가 정리한 조선의 형벌체계에 관한 짤막한 에세이 하나가 전부다. 자세한 건 아래 내용으로.

어쨌든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스펀지[1]지식채널 e[2]에서 한 번씩 다뤄진 적이 있으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에피소드 하나를 할애해 따로 다룬 적이 있다.[3]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에서도 다룬 적 있고, 이규태[4] 역시 따로 언급한 적이 있다.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 157화에도 문제로 나왔다.

3.2.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집행 방식과 취급

지금까지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되었던 조선식 팽형의 집행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포도청 앞의 혜정교에 커다란 가마솥을 설치하여 형을 준비한다. 죄인을 그 가마솥 앞에 앉혀놓고 "팽형을 하겠다"고 선고한 후, 가마솥을 내 오면 집행인들이 죄인을 가마솥에 넣고 잠깐 끓이는 척했다가 도로 꺼낸다.

이 부분에서 묘사가 많이 갈리는데,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는 척한 뒤에 아무 것도 없는 빈 가마솥에 죄인을 잠깐 넣었다가 뺀다, 미지근한 물을 적당히 채우고 죄인을 잠깐 넣었다가 뺀다, 종이 한 장 넣고 태운 다음 그 재가 남아 있는 가마솥에 죄인을 잠깐 넣었다가 뺀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때 죄인의 유가족들은 정말 상을 당한 것처럼 열심히 통곡해야 하며, 죄인을 가마솥에서 꺼낸 후부터 그 죄인은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사망자로 취급한다.

한마디로 이 형벌이 집행된 시점에서 이미 산송장 신세다. 그래서 죄인의 유가족들은 죄인을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일 수 없는 건 물론이며, 장사도 치러야 하고 시묘살이도 해야 하며 매년 제사도 지내야 했다.

당연히 죄인도 고인으로 간주되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며 식사도 몰래 알아서 해결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자기 집의 방 한 칸에 사실상 감금되어 살면서 어떠한 편의 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을뿐더러, 대놓고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받으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부인과 정을 통해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되며, 조선 말기에는 몰래 돌아다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경우라면 그 누군가에게 진짜로 살해당할 수도 있었는데, 어차피 공식적으론 죽은 사람이기에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데다 이 형을 받은 사람들 전원이 악질 탐관오리였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명예가 현대 이상으로 중요했기에 이 형벌을 받은 사람들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거의 100%가 차라리 죽는 쪽이 나았을 거라며 후회했다고 하며, 팽형을 선고받았을 때 자살하면서 명예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 쪽에 비하면 상당히 온건하지만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운 형벌이다. 사회로부터 죽은 사람으로 간주되니 당연히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어도 고인 취급. 누군가에게 피살돼 진짜로 죽어도 살인죄가 성립되지도 않아 죽인 자는 형을 받지 않는다. 주변인들은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이지 않는데다 가족들도 관심 안 가져주고 사회에서도 사람 취급도 안해주니 남은 평생이 심리적 고문이다.

3.3. 비슷한 사례

이러한 취급은 고대 중국에서 행해졌던 궁형과 비슷하다. 당시 이 형벌을 받은 죄인은 궁형과 대벽(참수) 중 어떤 형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전자는 고자가 되고 생은 포기하지 않는 대신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리는 형벌이었고 후자는 생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형벌이었다. 즉, 궁형과 마찬가지로 팽형도 죄인에게 "생명과 명예 중 하나 골라 포기해라"고 선택권을 주는 셈이다. 팽형은 죄인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모든 명예를 포기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다. 다만, 사마천이 궁형을 받고도 사기를 써서 남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대우면에서 궁형은 그래도 팽형보다는 취급이 한참 낫다.

또한 죽이진 않아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는 점에서 파문하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숙청 중에서도 죽이거나 형별을 주지 않는 단계의 가벼운 숙청도 이와 비슷하다. 일례로 소련이나 북한 등에서의 숙청은 죽이거나 교화소를 보내는 사례가 많지만, 숙청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죽이거나 형벌만 보내는 것은 아니고 강등 또는 좌천되거나 직위해제당하는 수준도 포함해 숙청이라 한다.[5] 이렇게 살아서 숙청당하는 경우는 자신이 쌓아 온 영예를 모두 삭제당하는 기록말살형까지 같이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죽지만 않는다 뿐이지 살아도 산 게 아닌지라 조선시대의 팽형과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별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이 힘들게 쌓아 온 영예를 모두 말살당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참을 수 없는 치욕이며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3.4. 정말로 시행되었는가?

팽형에 처했다는 미디어 방영은 상당히 많은 데 비해 조선왕조실록에 실제 집행한 사례로 기록된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다. 실록에서 팽형과 관련된 기사는 춘추전국시대 당시 탐관오리를 팽형에 처했다는 고사를 들먹이며 부정한 관리를 처벌하라는 주청 정도가 대부분. 실록에 처음 팽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단종실록으로, 상벌에 대해 논하면서 제나라 위왕이 팽형을 시행했음을 예시로 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후로도 팽형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이 패턴을 따른다.

연산군이 진짜 사람을 삶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역시 연산군일기에는 팽형과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지 않으며, 엉뚱하게도 영조실록에 관련된 내용이 존재한다. 사간원의 사간 조태언이 상소문에 영조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해 대노한 영조가 팽형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때는 미디어에서 말하는 명예형이 아닌 진짜로 삶아 죽일 것을 전제한 발언이었다. 그나마도 신하들의 계속된 상소로 유배 정도로 그쳤으며,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또한 한국 인터넷에 널리퍼진 '우포도청 앞 혜정교의 거대한 가마솥' 이야기와 명예형으로서의 팽형에 대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는 없다.

한국 모든 인터넷에서 말하고 있거나 일부 매체에서 말하고 있는 '조선말기 외국인의 목격담'은 모두 조선총독부 관료인 나카하시 마사요시(中橋政吉)가 집필하여 1937년에 조선총독부 법무국 치형협회(朝鮮總督府法務局內 治刑協會)으로 출판한 약 24쪽의 에세이인 조선 옛시절의 형벌행정(朝鮮舊時の刑政)[6]에서 기록된 걸 근거로 하고 있으며 본문에 따르면 나카하시 마사요시는 직접 팽형을 목격하여 서술한게 아니며 단지 본문의 가장 말미에 '참고'로서 "생명형도 신체형도 아니고 오히려 웃긴 일에 비등한 것"이라고 최근 한국 인터넷에 널리 퍼진 명예형으로서의 팽형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해당 에세이는 조선시대의 형벌(참형, 능지처참, 교형 등)을 가볍게 소개하는 글인데 논문이 아닌만큼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정확하지 않은 기술이 많으며 저자 본인이 조선시대에는 조선에 온 바도 없으니 직접 조선시대 형벌을 목격한 바도 없는만큼 전부 역사기록을 예시로 조선시대 형벌을 소개하고 있다(예를 들어, 목을 졸라 죽이는 액형을 설명하면서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신하를 처형하는 기록을 예시로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도대장까지 몸소 참관할 정도로 큰 이벤트라는 걸 감안하면(포도대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위직이다) 아무리 부실한 고종실록이라고 해도 일절 기록이 없다는 건 상당히 수상하다. 물론 일본에서는 실제로 사람을 기름에 끓여 죽인 예가 많았으므로 조선의 팽형이 그보다 훨씬 신사적인 명예형이란 걸 알고서 은폐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위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명예형으로서의 팽형을 소개하는 사료는 오직 나카하시 마사요시의 기록 하나 뿐이며, 나카하시 마사요시는 팽형을 신사적이라고 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긴 일"이라고 팽형을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일제시대 고문과 인권탄압으로 악명높았던 서대문형무소 소장을 역임한 나카하시 마사요시가 명예형을 '신사적인 것'이라고 여겼을 근거도 없다. 팽형의 신사적인 모습을 일본이 의도적으로 은폐하였다면 반대로 흔히 알고 있는 잔인한 팽형이 실재했다고 기술한 동국여지승람이나 한경지략 같은 조선시대 사료의 신뢰성이 올라간다는 문제가 있다.

정리하자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실제 시행 사례가 없으면서도 명예형으로서의 팽형은 오직 서대문 형무소장을 역임한 조선총독부 관료의 기록 하나만 전해지는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이 확실하게 진위여부를 고증 해 줘야 할 텐데 관련 움직임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셈.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공 교수들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는 카더라도 많이 돌고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마저도 제대로 된 출처가 없다. 방송에도 자주 나왔고 만약 사실이라면 한반도의 법률 역사에 있어 꽤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 뻔한 컨텐츠인데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인데다 잘못된 정보들이 대놓고 방송을 타는데도 별다른 해명 움직임이 전혀 없는 상황.

그 이유조차 아무도 모른다는 해괴한 상황이 거의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전문가들도 기다 아니다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역사학법학의 경계에 놓인 법사학의 영역이라[7] 조선시대 팽형 구전의 사실 여부를 판별하기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말 가족조차 죽은사람 취급하는 극형이 가능했을지, 그리고 그것을 당시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도 의문이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정말 죽은사람취급하는지는 감시를 붙이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으며 감시가 철저해도 사실상 알아차리기 불가능하다.

오히려 가족들의 보호하에 그럭저럭 살아갈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유형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듯이 외딴 곳에 유배된, 특히 극심한 죄를 지은 자일수록 아는 사람도 없이 외출조차 못하며 거지처럼 살다 시름시름 앓다 생을 마감하는 일이 허다했다. 유배보다도 못한 상황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팽형이라는 특이한 형벌에 대해 간단한 논의조차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나 자식이면 그 어떤 인간말종이더라도, 사회적으로 말살되었더라도 귀히 대접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인간이고 당시 효가 강조된 사회에서 이를 더 강하게 인식하면 했지 모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가상매체에서의 등장

삼국지연의에서 진짜 사람을 삶아 죽이는 묘사가 나오며, 창천항로를 보면 이 솥과 똑같은 양식의 대형 솥으로 동탁이 나체의 죄인들을 손발을 자른 뒤 삶아서 곰탕을 끓여먹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보보경심에서도 윤사, 윤제의 끄나풀이었던 것이 걸려서 팽형을 당하는 궁녀가 나왔다.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동료 궁녀로 자매처럼 지냈기에 이 사건 이후 멘붕했다.

이대근이 나온 연산군 작품에서 충신 하나가 이러한 식으로 팽형을 받는다. 원래는 실제로 삶으려는데 그 의기가 가상하다고 해서 이러한 식의 팽형으로 감형했더니 충신이 자결했으며 통곡하는 연산의 연기가 일품.

1994년 KBS1 설날 특집극 이선풍 저승 유람이라는 단막극 사극에서도 이를 다룬 적이 있는데 팽형을 당한 인간의 안습한 삶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참고로 이 사극에서 팽형당한 주인공은 상투도 못하게 한 건지 머릴 풀어헤치고 다니며 이마에는 죽을 사(死) 자가 찍혀 있었다.[8] 이때 이선풍 역은 김갑수가 맡았다.

영화 혈의 누에서 과거 강객주의 일가가 조선의 5가지 극형을 받아 처형된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그중에 하나인 육장(=팽형)의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피살자가 나왔다.

아일랜드-캐나다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한 번 묘사되었다. 위에 서술된 리처드 루즈 사건이다.

드라마 칭기즈 칸에서도 나온 적이 있으며 테무진과 사이가 틀어진 자무카가 사로잡은 포로들을 전부 팽형에 처하는 장면으로 나왔다.

원피스에서 포네그리프를 만든 코즈키 가문의 코즈키 오뎅쿠로즈미 오로치에 의해 처형당했을 때 쓰였다.

의외로 동화에서 많이 나오는 형벌이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하녀 모르지아나가 항아리 안에 끓는 기름을 부어 그 안에 숨은 도적들을 조용히 끔살시킨 장면도 그렇고, 헨젤과 그레텔 또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빌런이 솥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도 마찬가지. 당연히 고증을 따지자면 40인의 도둑처럼 조용히 끔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나 아기돼지 삼형제의 늑대처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처절하고 끔찍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뉴 단간론파 V3에서 누구를 처형할 때 사용되었으며 상술했던 이시카와 고에몬의 형벌의 패러디다.

데모노포비아에서도 데드신중 하나로 등장한다. 아주 끔찍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자 마법사 메데이아이아손의 원수인 펠리아스 왕을 토막내어 솥에 삶아 죽였다. 구체적으로는 늙은 양을 토막내어 솥에 삶자 어린 양으로 변해서 나오는 마법을 보여준 다음, 같은 방법으로 펠리아스를 회춘시켜 주겠다고 꼬드겨서 펠리아스의 딸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토막내어 솥에 삶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마법은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펠리아스는 그대로 고깃국 신세가 되어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1. [1] 124화 분량.
  2. [2] 방영분량을 재편집한 자료에 나왔으며 이후 이때의 자료들을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에서 그대로 써먹었다.
  3. [3] 여기서는 맨 마지막에 이시카와 고에몽의 삽화를 집어넣는 병크를 저질러 욕을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4. [4] 단, 이 사람은 일제강점기 이후 세대고 전문적으로 민속학이나 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었다. 해방 후 잠깐 퍼진 부분적인 악습을 마치 조선시대 때부터 전해온 전통이라 포장한 경우는 물론, 굉장히 고증을 어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할 것. 씨받이 항목 등을 비롯하여 실제와 다른 서술이 많았다.
  5. [5] 이렇게 좌천되는 방식의 숙청을 당한 사례 중 하나가 심영이라고 한다.
  6. [6] 中橋政吉, <朝鮮舊時の刑政>, 朝鮮總督府法務局內 治刑協會, 1936, 179-203면.
  7. [7] 게다가 현재 우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 체계에 뿌리를 둔 법 체계로 갈아탄 지 오래라 조선시대 법 체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조선시대에 대한 역사학적 이해, 법 체계 일반에 대한 법학적 이해, 게다가 한문이두에 대한 이해까지 갖춘 상태에서, 제한된 사료들을 가지고 잊혀진 법 체계와 실제 적용 사례들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건 전문가라도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8. [8]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허구의 묘사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자자형은 애당초 다른 형과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옳은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본문의 팽형이 허구일 가능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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