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자 스토야코비치

이름

프레드라그 스토야코비치
Predrag Stojaković

생년월일

1977년 6월 9일

국적

세르비아[1]

출신지

포제가

208cm(6 ft 10 in)

체중

104kg(229 lb)

포지션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4순위
새크라멘토 킹스 지명

소속팀

새크라멘토 킹스(1998~2006)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6)
뉴올리언스 호네츠 (2006~2010)
토론토 랩터스 (2010~2011)
댈러스 매버릭스 (2011)

등번호

16번

수상내역

NBA champion (2011)
NBA All-Star 3회 (2002–2004)
All-NBA Second Team 1회 (2004)
NBA 3-Point Shootout champion 2회 (2002–2003)
EuroBasket MVP (2001)
Greek League MVP (1998)
Mister Europa Player of the Year (2001–2002)
Euroscar Player of the Year (2001)

새크라멘토 킹스 영구결번

No. 16

NBA 파이널 우승 반지

2011

1. 개요
2. 커리어
3. 플레이 스타일
4. 은퇴 이후

1. 개요

밀레니엄 킹스 주역 중 한명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의 전설이라고 불릴만한 장신 슈터. 새크라멘토 역대 최다 3점 슛 시도/성공 수 보유자이다.

2. 커리어

사실 페자는 축구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계속 키가 자라면서 부적합 하다는 소리를 듣고 농구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리스의 PAOK에 들어가서 활약했다. 인상적인 활약으로,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꼽히는 1996년 드래프트에서 14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와 NBA에 진출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일단 유럽리그에서 좀 더 뛰게 된다. 마지막 유럽팀에서의 시즌에는 그리스 리그에서 평균 23득점, 유로리그에서 20점을 꽂아넣으며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NBA에서는 첫 두해는 그냥 미미했으나, 2000-01시즌에 평균 20점을 꼽으면서 기량발전상 2위를 하더니, 이후로 슈팅을 포함한 여러 공격옵션과 높은 BQ를 통한 플레이를 앞세워서 밀레니엄 킹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나름 2000년대 초반에는 최고의 슈터이자 득점원중 하나로 활약했다.

2002년 피바 세계선수권에서 마지막 유고슬라비아팀의 주 득점원으로 평균 18.2점을 기록하며 토너먼트에서 미국을 꺽고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3-04시즌에는 릭 아델만감독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의 해결사로 거듭나면서 그 시즌 평균 24.4득점에 3점 240개를 만들어내는등 에이스로 맹활약 했다.MVP4위에 까지 오르는 활약이었는데, 하지만 이전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당한 치명적인 무릎 부상에서 시즌 막판 돌아온 크리스 웨버중심으로 팀을 다시 짜면서 상대적으로 밀려나 버린데다, 페자와 웨버가 갈등까지 일으켰다. 웨버가 대놓고 페자를 디스하는등 둘의 관계는 악화 되었다. 게다가 팀내에 같은 유럽계 선수였던 블라디 디박까지 떠나면서 당시 좋은편은 아니었던 멘탈이 흔들렸다고 한다.[2]

게다가 킹스시절 유고 및 세르비아가 미국에 비빌만큼 강팀이어서 계속해서 국가대표에 차출되며 오프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시즌도 여럿 있었고, 최고 시즌이었던 2003-04시즌에도 오프시즌을 제대로 나지 못하면서 발전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밀레니엄 킹스가 해체되면서 래리 버드가 나름대로 탐내다 론 아테스트와 맞바꾸며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했는데, 클러치는 여전했지만 PO무대에서 부상으로 못나오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뉴올리언스 호네츠와 5년 64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첫 해부터 (결국 그의 커리어를 망치게 되는)허리부상에 시달리면서 13경기밖에 못나왔고, 2007-2008시즌에는 그나마 잘했지만 이후로 부상으로 인해 폼이 떨어지고, 계속 부상에 시달리면서 오버페이라는 평가를 가진 1000만달러 이상의 몸값을 가진 짐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다.

말년에는 1500만 달러정도를 받음에도 부상으로 골골대던 페자가 부담스러워 뉴올리언스에서 토론토로 트레이드 시켰는데, 토론토에서도 2경기만 뛰고 바이아웃으로 아웃된것을 캐론 버틀러가 부상으로 아웃당한 댈러스 매버릭스가 채갔는데, 3점 스페셜리스트적인 면모를 발휘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식스 맨으로 활약하면서 우승에 기여해 말년에 우승 반지를 얻게 되었다. 특히 3핏을 노리는 레이커스와의 시리즈에서 전성기가 돌아온 듯한 3점슛을 보여주며 2001년의 복수를 하는데 성공했다. 파이널에서는 매치업 상대인 크리스 보쉬상대로 탈탈 털려서 몇분 뛰지는 못했다. 이후 2010-11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NBA 역대 손꼽힐만한 슈터. 특유의 키를 우위로한 높은 타점과 빠른 릴리즈의 슛으로 많은 점수를 만들어 냈다. 우아하다는 평까지 들은 슛폼에서, 특히 손목스냅은 완벽한 '구스넥(goose neck 거위의 목이란 의미로, 슛을 던진 슛터의 손과 팔 모양이 꼭 거의의 목처럼 생겨서 붙은 표현)'을 보여주었다.

사실 가진 재능이 뛰어난 슛 능력과 슈터로선 큰 키, 대단한 오프볼무브 능력 정도였던 선수인데, 킹스는 딱 그런 재능을 가진 선수가 필요했다. 당시 킹스가 구사하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에선 코트 여기저기에서 노마크 찬스가 생기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을 올려줄 스코오러가 필요했고, 페자는 그것만은 최고였던 선수였다.

캐치앤 슛에만 능한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스텝을 밟은 뒤 슈팅을 해내기도 하고, 신장의 우위로 포스트업을 하는 등 여러가지 득점 루트를 가진 선수였다.[3]

대신 수비력은 그렇게 좋다고는 못하는데, 전성기때도 수비력으로 좋은 평가를 못받았지만 늙고 나서는 아예 느려져서 파워포워드를 상대로한 매치업에서도 빠르다고 할수 없는 레벨이라 마지막 시즌인 11시즌 파이널에서는 보쉬에게 탈탈 털려 몇분 뛰지도 못했다.

4. 은퇴 이후

현재는 선수인사 및 개발 담당과 NBA D리그의 레노 빅혼즈 팀의 GM역할을 겸하며 킹스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1. [1] 해체된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
  2. [2] 디박은 모국인 세르비아 몬테니그로에선 영웅 대접을 받는 선수로,NBA진출에 부담을 느끼던 페자가 리그에 오는 데에 디박의 킹스행도 큰 영향을 주었다.실제로 페자는 디박을 친형처럼 따르고,많이 의지했다.
  3. [3] 초창기 스토야코비치는 뛰어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맨투맨 수비수가 붙으면 무력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인게 바로 레이커스의 릭 팍스에서 거의 지워졌던 2001 플레이오프. http://articles.latimes.com/2001/may/10/sports/sp-61585 그러나 이후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서 1대1 옵션을 추가한 후에는 한때 리그 득점 2위를 할 정도로 (다만 이때는 유독 개인득점들이 저조한 04시즌이라 24점 정도에 불과했다) 득점력이 한층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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