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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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山 申氏
평산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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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황해도 평산군

시조

신숭겸(申崇謙)

집성촌

황해도 금천군
경기도 이천시
평안북도 영변군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남도 서천군, 예산군
전라북도 임실군
경상북도 칠곡군
경상북도 문경시
경상남도 밀양시, 남해군, 거창군
전라북도 군산시

인구

563,375명(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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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신씨대종중

1. 역사
2. 분파
3. 항렬
4. 유명인물
4.1. 역사인물
4.2. 31세손
4.3. 32세손
4.4. 33세손
4.5. 34세손
4.6. 35세손
4.7. 36세손
4.8. 37세손
4.9. 38세손
4.10. 불명

1. 역사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본래 이름은 능산(能山)이며, 전라도 곡성현(谷城縣) 출신이다. 태봉의 장군으로 있다가 배현경(裵玄慶), 홍유(洪儒), 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태조(太祖) 왕건에게 평산에서 신(申)씨 성을 사성(賜姓)받았다. 927년(태조 천수(天授) 10) 팔공산에서 견훤과의 전투 중 태조를 대신하여 전사하였다. 이에 태조 왕건은 순절한 신숭겸에게 벽상호기위태사개국공삼중대광의경대광위이보지절저정공신(壁上虎騎衛太師開國公三重大匡毅景戴匡衛怡輔砥節底定功臣)을 추봉하였다. 시조 신숭겸의 묘소인 신장절공묘역(申壯節公墓域)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고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한다. 시조 신숭겸이 고려 왕조에 이어 조선 왕조에서도 충(忠)의 상징으로 받들어진 까닭에 평산 신씨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명문가 중 하나로 조선시대 정승 8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186명, 무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였다. 시조인 신숭겸을 비롯해서 신립, 신각, 신돌석[1] 등 전통적으로 무인들을 많이 배출한 무인 가문이기도 하다.[2]

2. 분파

신성부원군파(信城君派)[3], 군수공파(郡守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판윤공파(判尹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이상공파(貳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제정공파(齊靖公派), 온수감공파(溫水監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사간공파(思簡公派), 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정언공파(正言公派), 문희공파(文僖公派), 장령공파(掌令公派), 봉상윤공파(奉常尹公派), 밀직공파(密直公派) 등 19개 분파가 있다.

평산 신씨에서 분적한 본관으로는 삭녕 신씨(朔寧 申氏)와 아주 신씨(鵝洲 申氏)가 있다.

3.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32~36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4]

31세손

○희(熙), ○상(相), ○수(秀), 태(泰)○

32세손

○균(均), ○규(圭), ○노(老), ○곤(坤)

33세손

현(鉉)○, 언(彦)○, 윤(允)○, 종(鍾)○

34세손

○철(澈), ○식(湜), ○순(淳), ○영(泳)

35세손

동(東)○, 상(相)○, 영(榮)○, 주(柱)○

36세손

○섭(燮), ○용(容), ○항(恒), ○환(煥)

37세손

재(載)○, 숙(璹)○ 기(基)○, 배(配)○

38세손

○호(鎬), ○진(鎭) ○일(鎰), ○련(鍊)

4. 유명인물

4.1. 역사인물

  • 신각
  • 신개
  • 신사임당
  • 신립
  • 신명인 - 기묘8현 중 1인. 스승인 김식이 기묘사화로 잡혀들어가자 유생 1,000명을 데리고 궐문을 박살내는 유혈 사태까지 벌어지며 스승을 풀어달라 요구했으나 실패. 이후 평생 과거와 단념하는 삶을 살았다.[5]
  • 신흠
  • 신돌석
  • 신점

4.2. 31세손

4.3. 32세손

4.4. 33세손

4.5. 34세손

4.6. 35세손

'신동X'이라는 이름의 십중팔구는 이 쪽이다.[13]

4.7. 36세손

4.8. 37세손

4.9. 38세손

4.10. 불명


  1. [1]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신돌석은 아명(兒名)이다. 평민출신 의병장으로 유명하며 태백산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있다. 신분은 평민이지만 부친이 재산을 많이 모아 지역 유지였으며, 덕분에 양반들과 같은 서당에서 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훗날 집안 재산을 털어 의병활동을 시작한다. 본래 윗대는 지방 향리직을 맡는 양반이었으나 조부때 쯤부터 잔반(殘班)이 되어 평민으로 신분이 강등되었다 한다.
  2. [2] 무인과 더불어 신사임당, 신위 등 유명한 문장가와 예술가들도 배출한 것을 보면 예체능 계열에서 고루 두각을 나타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3. [3] 조선후기 단양 사족의 동향과 평산 신씨의 향촌사회 활동 논문과 집에 있는 족보 참고
  4. [4] 특히 그중에서도 35세손이 압도적으로 많다.
  5. [5] 출처: <우리겨레 위인이야기> - 윤승운
  6. [6] 본래는 신x상으로 "상"자가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상"자가 가운데로 빠졌다. 신상옥은 나중에 개명한 이름이고 옛 이름은 신태서(申泰瑞) / 신태익(申泰益)이며 형제들도 이름이 '신태O'이다. '태(泰)O'자 돌림을 쓴 것.
  7. [7] 본래는 신현x로 "현"자가 가운데에 들어가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자가 뒤로 빠졌다. 후술할 신중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8. [8] 라디오 스타에서 부친이 32세손 "均"자 항렬이라고 언급했었다. 고로 원래는 33세손 "鉉"자 항렬이지만 항렬자 를 쓰지 않은 케이스.
  9. [9] 전술한 신의현의 경우처럼 본래는 신현x로 "현"자가 가운데에 들어가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자가 뒤로 빠졌다. 하지만 아들인 신대철, 신윤철, 신석철이 모두 평산신씨 34세손이니까.....
  10. [10] 과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뛰었던 동명이인의 축구선수가 1명 더 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다.
  11. [11] 본래는 신x순으로 "순"자가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순"자가 가운데로 빠졌다.
  12. [12] 아버지가 '鉉'자 항렬이다.
  13. [13] 대신 이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애당초 본관과 한자가 다른데, 본관은 평산 신씨가 아니라 영산 신씨이며 한자는 펼 신(申)자가 아니라 매울 신(辛)자를 쓴다.
  14. [14] 본명 신동윤.
  15. [15] 신정환과 마찬가지로 항렬자를 쓰지 않은 케이스.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 부친이 34세손 "澈"자 항렬이라고 언급했었다. 고로 원래는 35세손 "東"자 항렬이다. 당시 진행자로 활약하던 신정환에게는 항렬상 손자뻘이 되는 셈. 그래서 신정환이 말 놓아도 되냐고 농담했을때 신승훈이 발끈하면서"야...!"라고 응수했다. 가수 커리어로 치면 당연히 신승훈(1990년 데뷔)이 신정환(1994년 데뷔)보다 선배다. 진지하게 따져보면,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어도 항렬이 높으면 존댓말을 쓰는게 원칙이지만 상대방 역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므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16. [16] 본래는 신x용으로 "용"자가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용"자가 가운데로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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