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샬

프란츠 샬(Franz Schall : 1918. 6. 1~1945. 4. 10)

1. 소개
2. 독일 공군에 자원한 오스트리아 청년
3. 동부전선
4. 서부전선
5. 서훈

1. 소개

출생 :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격횟수 : 550회

격추수 : 133기

소속 : JG 52, JG 7

최종 계급 : 대위

사망 : 독일 Parchim

2. 독일 공군에 자원한 오스트리아 청년

2차 대전 후반기 동안 독일 공군에서 전투조종사로 복무한 프란츠 샬 대위는 550회나 실전 출격을 거듭하며 확인 격추 133대라는 대단한 무공을 거둔 에이스 파일럿이었다. 1918년 6월 1일에 오스트리아 동남부의 그라츠에서 태어난 프란츠 샬은 장성한 후 다른 많은 오스트리아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제3제국과 하나가 되는 안슐루스를 크게 환영했다. 그가 21세가 되던 해인 1939년 9월에 히틀러 총통폴란드를 침공하며 역사상 초유의 전쟁에 불길을 당겼고, 청년 프란츠는 독일군에 입대할 것을 결심했다. 공군에 들어간 그는 1941년 9월 1일에 첫 자대로 대공포 부대에 사병으로 배치되었지만, 곧 파일럿을 지망하여 비행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가 모든 비행훈련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한 것은 1943년 2월로, 이때만 하더라도 독일 공군은 매우 효율적이면서도 엄격한 훈련 과정이 유지되고 있었고 숙련된 비행교관들도 남아있던 시기였다.

3. 동부전선

곧바로 러시아행 열차를 타고 동부전선으로 파견을 가게 된 프란츠 샬 소위는 폴란드 남부의 크라쿠프에 주둔하고 있던 제52전투항공단 예하의 제3비행중대장(Staffelkapitän)에 임명되었다. 프란츠 소위는 5월 6일 나간 오후 출격에서 900m 고도로 수평비행 중이던 LaGG-3 전투기에 뒤로 접근하며 사격을 퍼부었고, 난생 처음으로 적기를 격추시키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그달 30일에는 같은 공역에서 또다시 LaGG-3를 격추시켰고, 6월 11일에는 지상군을 공격하던 슈톨모빅 1기를 지면에 처박았다. 프란츠 샬은 이 소련제 공격기가 매우 튼튼하고 후방 사수 때문에 뒤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신의 꼬리날개가 방해가 되어 직후방에서는 반격을 할 수 없다는 약점을 깨닫곤 집중적으로 IL-2를 노려 연달아 제물로 삼았다. 43년 한 해가 저물 때까지 샬 소위는 26대의 소련 공군기를 때려잡았지만, 숱한 에이스가 즐비하던 당시 루프트바페에서 이 정도 전과로는 아직 눈에 띄는 명인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그의 격추율이 치솟기 시작한 것은 정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1944년 1월부터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하루에 3~4대씩 잡는 날이 늘어나며 킬마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같은 해 8월 12일에는 74번째부터 76번째 제물이 되는 3대를 한 번의 교전으로 잡아냈고, 24일에도 3대, 그리고 26일에는 6대의 슈톨모빅을 포함하며 하루에 11대나 격파하는 신들린 격추 행진을 기록했다. 샬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31일에 또다시 11대의 IL-2를 포함해 무려 13대를 하루만에 격파하는 대단한 솜씨를 보여주게 된다. 이로 인해 샬 소위는 독일 공군에서 81번째로 격추수 100대를 달성했으며 국방군 보고 방송에도 그의 이름이 거명되는 명예를 얻었다.

4. 서부전선

같은 해 12월에 프란츠 샬은 본국으로 돌아가 제국 수도인 베를린의 북부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제7전투항공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발터 노보트니 소령이 지휘관을 맡고 있던 JG 7은 제트 전투기 Me 262를 갖춘 항공 사상 첫 실전 제트전투기 부대로 오라니엔부르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에서 샬 중위는 10월 7일에 마그데부르크 상공에서 미군의 B-24를 Me 262로 잡아내는 것을 스타트로 14대의 전과를 보탰는데, 이것은 제트 에이스로서는 3번째로 높은 대기록이다.

10월 28일에는 쾨스펠트(Coesfeld) 상공에서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던 P-51을 격추시킨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어보였다. 11월 6일에 또다시 1대의 머스탱을 잡은 그는 이틀 후에 오스나브뤼크(Osnabrück)를 공습하던 폭격기들을 엄호하던 미 육군 제359전투비행단(359 FG) 소속의 머스탱 대편대를 맞닥뜨렸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3대나 격추시키는 쾌거를 거둔다. 안그래도 뛰어난 에이스였던 프란츠 샬 중위가 엄청난 고속에다 뛰어난 상승률을 자랑하던 Me 262를 타게 되자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에서 지고 있더라도 개인의 전투에서는 승승장구하던 프란츠 샬이었지만, 계속 죽음을 뿌리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1945년 4월 10일, 자신의 133번째 전과이자 최후의 격추 기록이 된 P-51 한 대를 잡은 그는 위에서 급강하하며 덮친 또다른 적기에게 엔진이 피탄되었고, 할 수 없이 파르킴(Parchim) 비행장으로 내려가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활주로에 터치다운한 그의 탑승기는 무사히 택싱하는가 했더니 곧 폭탄이 파헤쳐놓은 화구로 빠져버렸고 그가 탄 Me 262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버려 프란츠 샬은 즉사하고 말았다.

동부전선에서 116대를 격파하고 서부전선에서 중폭격기 6대를 포함해 17대를 잡아낸 그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곡엽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으나, 전황이 악화되며 훈격에 관한 행정 처리가 늦어지면서 프란츠 샬은 결국 기사철십자훈장에 머물렀다.

5.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급 철십자 훈장

공군 명예컵 (1944. 2. 22)

독일 황금십자장 (1944. 3. 20)

기사철십자 훈장 (1944. 10. 10)

국방군 보고 언급 (194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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