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리예 지방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

하바롭스크 지방

사하 공화국

아무르 주

사할린 주

캄차카 지방

유대인 자치주

마가단 주

추코트카 자치구

프리모리예 지방
연해주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Primorskij kraj

주도

블라디보스토크

인구

1,912,118 (2018)

면적

164,673㎢

인구밀도

11.61명/㎢

시간대

UTC+10

연해주의 위치(붉은 색)

1. 개요
2. 역사
3. 지정학적 위치
4. 인구 구성과 지역 경제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 Primorskij kraj)는 러시아 원동 지방에 있는 크라이()이며 줄여서 프리모리예(Примо́рье / Primorʹe)라고 한다. 프리모리예는 '바다에 접한'(연해)이라는 뜻이다. 한국일본에서는 한자로 의역해 연해주(沿海州)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빈해변강구(滨海边疆区)라 하며, 영어에서도 더러 번역해 Maritime Territory라 하기도 한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러시아령이라는 뜻으로 노령(露領)이라고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백인 문화권 지역으로[1], 남서쪽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인접한다.

면적은 165,900km², 인구는 195만 6497명 (2005년 기준)이다. 223,348km²인 한반도보다는 작지만 남한 지역 100,210km²보다는 크다.

주도는 동해에 면한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이다. 중심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나홋카 등. 현 크라이 지사는 블라디미르 미클루셰프스키이다. 어업광업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고 러시아의 제1간선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이자 극동 최대의 항구도시로서 무역, 해운업 역시 발달했다.

이곳이 여행유의 지역인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이 곳은 북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납북의 위험이 있어서 여행유의지역이다.[2] 그 외의 위험요소는 네오나치 외에는 없다.

2. 역사

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역의 변방으로서 북방 이민족들의 영토였다. 상고시절의 연해주는 숙신인들 같은 퉁구스계 종족의 땅이었다. 이후 고구려[3] 발해의 영역이었다가 발해가 멸망하고 요나라금나라, 원나라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았다. 이후 명나라 시기 초기에는 여진족 치하에서 명목상 명나라에 속해있었다가 다시 왕조국가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나 청나라에 의해 다시 왕조국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쪽의 원주민은 만주 일대에 걸쳐 사는 여진족-만주족이다.

한편 동유럽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작은 소공국들을 통합하여 성립된 루스 차르국은 점점 세력을 넓혀 시베리아를 넘어 결국 동아시아의 끝자락인 이 지역까지 다다랐고 청나라 역시 자신들의 원류인 만주의 배후지인 이 지역을 쉬이 넘겨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청나라에겐 러시아의 우수한 무기가 버거웠고, 러시아 역시 소수의 탐험대와 변방인들로 청나라의 대군과 싸우는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청과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고[4] 그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나라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백여년이 지나 청나라의 국력이 쇠한 가운데 제2차 아편전쟁의 중재를 하는 와중에 러시아 제국은 중재의 대가로 연해주를 요구, 결국 1860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여 청나라가 연해주의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의화단의 난에서 20만의 병력을 진주시켜 만주를 점령하여 극동총독부를 설치하였으며, 또 동만철도가 있는 북만주와 하얼빈을 차지하고 송화강과 고비 사막을 러시아-청의 경계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하여 팽창이 정지되었으며 국공내전에서 동청철도 및 다롄과 하얼빈 조차지에서도 물러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지정학적 위치

지리, 인문학적으론 만주의 일부인 외만주로 치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대만과 더불어 고토로 치고 있는데, 청나라 말기에 다른 열강들도 대영제국홍콩웨이하이를, 포르투갈마카오[5], 일본 제국다롄대만, 독일 제국칭다오 등을 빼앗아갔지만덕분에 맛 좋은 맥주가 하나 나왔다. 현재는 모두 중국에 반환되어 중국 영토가 된 홍콩과 마카오, 칭다오, 웨이하이, 다롄과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다시 일본으로부터 되돌려 받았으나 국공내전 이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정부를 이전하면서 사실상 분단국가가 되어버린 대만을 제외하면 연해주만은 영구히 남의 나라인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제정 러시아 시절 중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 폐기/이권 포기를 선언한 카라한 선언에도 이 지역은 포함되지 않았다.[6] 러시아가 소련 시절보다 아무리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절대 중국이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는 아니고, 또한 연해주는 자원, 유사 부동항 등으로 인해 러시아에 중요한 지역이다.

일단 연해주 상실로 중국동해로 나가는 출구를 잃었으며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한반도는 러시아와 직접 연결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러일전쟁 직전까지 한반도의 부동항을 노리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했다. 반면 중국은 고작 수 km 차로 동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를 잃었고, 이제 라선(청진)항을 빌려 발판으로 삼고 있는 시점이다.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땅이란 이야기.

동해 지역에서는 중국 선박이나 어선의 활동이 활발한데, 중국은 연해주를 통과하는 두만강을 이용해 어선 등을 동해상으로 내보내며 최근 울릉도는 두만강에서 출항한 중국 어선의 피항지로 애용된다. 현재 우호적인 중러 관계 덕에 중국은 두만강과 연해주, 러시아는 요동을 통해 각자 동해황해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4. 인구 구성과 지역 경제

인구의 92.5%가 러시아인이며, 우크라이나인(2.8%)이 그 뒤를 잇는다. 고려인 강제이주가 없었다면 고려인 인구는 약 20% 정도였겠지만 현재 고려인 비중은 1%에 불과하고, 극소수의 중국인(0.2%)이 있다. 그 외 우데게족이나 나나이족, 오로치족 등의 원주민들의 비중은 거의 없다. 다만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이,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자국민 우대정책으로 인해 탄압을 받아서 도로 연해주로 이주해 오기도 한다. 러시아 정부에서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고려인들의 재이주를 어느 정도 지원하고 있다.

일단 2010년 인구통계[7]에서는 아직 러시아계가 92.5%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 그러나 1989년 2,258,391명이던 인구는 2010년 1,956,497명로 대폭 줄어든 상태이고, 중국인 혹은 중국의 이 지역에 대한 경제진출은 대단히 활발하다. 연해주에 직접 거주하지 않지만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중국인은 아주 많다. 연해주 자체가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고 주로 일본, 한국, 중국 등에서 소비재를 수입하는 사업으로 먹고 사는 상황이라 연해주 전체에 외제품이 넘실거린다. 연해주 어디를 가도 일본제 승용차, 한국제 버스, 중국제 식료품(특히 과자)은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식료품 부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지역은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사회주의 시절 설계된 중앙집중적인 경제시스템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어서 대부분의 소비재가 생산→모스크바→각 지역 순으로 이동하는데, 이렇다보니 유럽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잡는 각종 해산물들도 항구에서 바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단 모스크바에 올려보냈다가 다시 내려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블라디보스토크 대부분의 지역에서 러시아제 과자는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라벨 하나 붙여놓은 쿠키나 비스킷 정도가 대부분이고 소도시에만 가도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죄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중국제 과자 아니면 음료수들이다. 연해주에서는 베이징모스크바보다 가깝다.

그러나 2014년 루블화 가치가 확 떨어져서 수입품의 가격이 수십%이상 상승하는 바람에 자국산 식품이 더 저렴해지고 보기 쉬워진 상태이다.

5. 기타

2012년 6월,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루스키 섬 사이의 연륙교 건설을 '경제성이 전무함에도'[8] 밀어붙이고, '극동발전 장관'직을 신설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조금과 직업을 주며 이주시키고, 최신예 핵잠수함을 태평양 함대 배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 지역 내에서 급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동진'을 상징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돌아오는 고려인이나 남한에서 진출하는 한국인 등이 있어 한국계가 약간 살고 있으며,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사할린과 함께 한국어가 비교적 통용되는 지역이다. 취업 등의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인도 타 지역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면적은 넓은데 인구는 희박해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시호테알린 산맥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남한에서 절멸한 호랑이를 비롯한 대형 육식 포유류를 비롯하여 온갖 야생동물들의 천국.

러시아의 비밀의 땅, 연해주 1

러시아의 비밀의 땅, 연해주 2

러시아의 비밀의 땅, 연해주 3

러시아의 비밀의 땅, 연해주 4

6. 관련 문서


  1. [1] 직선거리로 보면 서울에서 오사카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가깝다.
  2. [2] 중국의 지린 성랴오닝 성, 헤이룽장 성도 같은 이유로 여행유의 지역이 되었다.
  3. [3] 2009년 연해주 크라스키노 지방에서 530년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석성이 발굴되었다.
  4. [4] 조선군과 러시아군이 충돌한 나선정벌도 이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5. [5] 마카오를 포르투갈이 처음 획득한 것은 17세기 명나라 때부터이지만 실질적인 지배권은 중국이 가지고 있었고 완전히 중국으로부터 뺏어 식민화한것은 아편전쟁 이후부터이다.
  6. [6] 러시아가 청나라에서 떼어간 땅은 이곳만이 아니라 탕누 우량카이(이후 투바 인민 공화국), 이리(중앙아시아 이리강 유역)도 해당된다. 러시아의 후원으로 인해 독립한 몽골까지 합치면 가히 한반도 10배의 영토가 러시아에게 뺏긴 셈.
  7. [7] http://en.wikipedia.org/wiki/Primorsky_Krai#Contemporary_demographics
  8. [8] 2010년 기준 루스키 섬의 인구는 5천 명 남짓이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