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

Plaza Accord, Plaza Agreement

1. 개요
2. 배경
2.1. J 커브 효과
3. 합의
4. 합의의 영향

1. 개요

1985년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합의.

뉴욕 플라자 호텔은 영화 나 홀로 집에 2의 바로 그 호텔. 그래서 나홀로 집에 2에 당시 이 호텔의 소유주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카메오로 출연한다.

2. 배경

1970년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 지미 카터 시절 취임)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살인적으로 금리를 끌어올려서 달러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덕택에 196~70년대 당시 서구권으로부터 돈을 끌어오던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소말리아, 이집트 등 수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이 높아진 이자로 인해 외채가 불어나면서 국가파산의 길로 접어들었고, 1980년대 중남미 외채파동의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서구권에서 돈 끌어다가 공장을 지었던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도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아 1989년 동구권 붕괴에도 영향을 끼쳤을 정도였다. 한국도 이 당시에 세계 순위권에 들 정도로 외채가 엄청났기에 자칫 국가파산의 길로 접어들 뻔했다. 예외로 북한은 70년대 초반에 서구권 국가들로부터 상당한 돈을 끌어왔지만 일찌감치 디폴트를 선언했고, 소련으로부터 경제지원까지 강하게 받고 있던 탓에 경제 침체는 일어나도 루마니아처럼 경제파탄이 나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망하기는 했지만.

이때 제3세계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 내에서도 이자율 급등으로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빌려서 쓰는데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었고 대기업들도 사업투자를 하는데 써야 될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통에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어 미국의 제조업은 시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당시의 금리 인상과 직후의 레이거노믹스는 이후 미국 경제구조를 뿌리째 바꾸어 놓아서, 금융 분야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제조업이 초토화되는 결과를 가져와 현재의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단적으로 무역수지만 봐도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던 클린턴 시기를 포함해서(!) 1980년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미국은 공산품에 대한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일본이 이 시기에 서독(!)을 넘어서는 제조업 최강국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크게 늘어난 미국의 대일/대독일 적자는 1982년 들어 금리가 이미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았다.

2.1. J 커브 효과

이때 이론적으로 미국의 환율 약세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텍사스 대학의 스테플 메기 교수가 주장했던 J커브 효과(J-curve Effects)였다. 즉, 환율이 변해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오를 경우 수출/수입의 수량변동이 변하는 속도가 실제적으로는 느리기 때문에 결국 시간이 지나서야 변동이 온다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알파벳 J 모양과 유사하여 J커브 이론이라고 한 것이었다. 환율 수지가 수출입량 변화로 나타나는 이 시간은 대략 6~18개월(0.5~1.5년, 평균 1년(12개월)) 정도로 추정되었다.

반면 이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많았다. 실제로 이 변화가 무역수지와는 별개로 엔화마르크 화의 공세적인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 또 대한민국원화가 좋은 예로, 1980년대 초반 "원저"는 한국 수출에 큰 득이 되지 않았다.

3. 합의

미국 국내 여론은 이런 악화된 무역 수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자동차를 필두로 한 미국 기업들과 농민들은 강한 보호주의 정책을 펴든지 다른 대책을 내놓든지 하라고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고, 이를 버틸 수 없던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재무 장관 회의에서 이 달러 강세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문하였다. 이 재무 장관 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는 환율의 현실화 등으로 이루어졌고 해결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일본은 이 사건을 '미국의 항복'으로 이해했으니, 실제로 당시 대장성대신이었던 다케시타 노보루가 그랬다.

4. 합의의 영향

이후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독일 마르크화는 채택 1주만에 약 7%, 엔화는 8.3%가 각각 상승했고, 이후 2년동안 달러는 30% 이상 급락하게 된다. 이 달러 약세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였고, 미국의 대유럽 무역적자도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엔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50%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일적자는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 무역수지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J 커브 이론의 시한인 1.5년 반을 훌쩍 넘은 2년 뒤인 1987년 말이었다.

이후 엔고 상황에서 엔저를 유도하기 위해 1995년 4월 역플라자합의가 성사 되었다.

여담으로 플라자 합의로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이 반사이익을 보았는데, 일본과 수출 경쟁품목이 많은 상황에서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여 상대적으로 원화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유가하락, 금리인하, 88올림픽으로 인한 투자확대 등이 동시에 맞물렸기 때문에 역사상 최고의 호황인 시기로 보고 있다.

또한 이 합의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썼다. 이 결과 그렇지 않아도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팽창 분위기였던 일본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엄청난 거품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1980년대의 거품경제로 이어진 것.

이 합의에 관한 대책으로 루브르 합의가 나왔으나, 각국의 이해관계의 불일치로 인해 별 소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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