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대한제국)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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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1. 개요
2. 상세

1. 개요

학부3(學部)

4 .<역사> 대한 제국 때에,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고종 32년(1895)에 학무아문을 고친 것이다.

조선 말에서 대한 제국 시기에 학무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대한민국 교육부의 기능을 담당했다. 1894년(고종 31년)에 예조의 소관 업무를 계승하였던 학무 아문을 1895년(고종 32년)에 학부로 개칭한 것으로 교육 행정 외에도 천문·기상 및 역서 조제 등의 일을 관장했으므로, 구 교육과학기술부, 일본문부과학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2. 상세

소속 관서와 부속 기관으로는 대신관방·학무국·편집국·관상소·성균관·한성 사범 학교·외국어학교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관원으로는 대신, 협판, 관방장 각 1명, 국장 2명, 참서관 4명, 과장 3명, 주사 11명을 두었다.

학부는 1910년 8월 중순 한일 합방이 체결되면서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아래는 학부에 대한 소속 관서와 부속 기관에 대한 설명이다.

  • 대신관방: 공립 학교 직원의 신분에 관한 사항, 교육의 검정에 관한 사항, 학부 소관의 경비 및 제수입의 예산·결산 회계에 관한 사항, 학부 소관 관유 재산 및 물품 장부에 관한 사항 등을 관장하였다.
  • 학무국 : 소학교 및 학령 아동의 취학에 관한 사항, 사범 학교에 관한 사항, 중학교에 관한 사항, 외국어학교 및 전문 학교·기술 학교에 관한 사항, 외국에 파견하는 유학생에 관한 사항 등을 관장하였다.
  • 편집국 : 교과·도서의 편집·번역 및 검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 관상소 : 천문 ·기상 및 역서 조제를 관장하는 관서로 소속 인원은 소장·기사 각 1명, 기수·서기 각 2명을 두었으며, 1897년 기사 2명을 증원하였다. 본래 예조에 속해있던 관상감이었으나 1894년에 학무 아문 소속의 관상국으로 바뀌고, 다시 1895년에 학무 아문이 학부로 바뀌면서 관상소로 되었고 1907년(융희 1년) 측후소로 고쳐 학부의 편집국에 편입되었으며, 실질적으로 통감부에 예속되었다.
  • 한성 사범학교 : 1895년 4월 갑오 개혁의 일환으로 ‘한성 사범 학교 관제’를 공포하고 7월 ‘한성 사범 학교 규칙’을 공포, 수업 연한 2년의 본과와 6개월의 속성과를 둔 한성 사범 학교를 서울 교동에 설치하였다. 또한, 수업 연한 3년에 보통과와 고등과로 된 부속 소학교도 설치하였다.

입학 자격은 본과가 20세 ~ 25세, 속성과가 22세 ~ 35세, 정원은 본과 100명, 속성과 60명으로 하고, 시험과 학교장 인정에 의한 무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였다. 본과의 학과목은 수신·교육·국문·한문·역사·지리·수학·물리·화학·박물·습자·체조를, 속성과는 수신·교육·국문·한문·역사·지리·수학·이과·습자·작문·체조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 교육 과정에서 한학에 집둥되어 다른 과목은 소홀해지고, 학교 운영도 부실하여 점차 유명무실해지다가, 국권 피탈 후인 1911년 '조선 교육령'이 공포되면서 관립 경성 고등 보통학교의 사범과 또는 교원 속성과로 개편되었다.

학부 청사가 있었던 곳은 조선 시대 이조 청사가 있었던 자리로 지금의 주한 미국 대사관과 KT 광화문 지사 사이에 걸쳐 있으며 대부분의 권역이 도로가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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