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

리즈 시절 자세히 보면 옆에 전창진의 선수시절 모습이 보인다.

이름

한기범(韓基範)

생년월일

1964년 6월 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시

출신학교

명지고 - 중앙대

신체 조건

205cm, 90Kg

포지션

센터

실업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소속팀

기아자동차 농구단(1986~1996)

1989년 농구대잔치 MVP

유재학(기아산업)

한기범(기아산업)

정덕화(기아자동차)

1. 개요
2. 선수 생활
3. 선수로서의 특징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일단 서류상으로는 하승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장훈과 함께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장신 선수. 서장훈과 실제 신장이 205cm로 똑같다. 농구화 벗고 잰 실제의 키다.

2. 선수 생활

순전히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천안에서 농구를 하다가 힘들어서 중도에 그만두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시험으로 북일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막 농구부를 창단한 명지고등학교가 이 키 큰 소년의 정보를 알고 한기범을 설득해 명지고로 전학시킨다. 운동을 쉬었다가 다시 하는 상황이라서 1년 유급을 했는데, 때마침 유급생 출전 정지 방침이 내려져서 명지고등학교 시절에는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는 않았다. 한기범 본인 말로는 농구보다 당구를 더 많이 했던 시절이라고.

명지고등학교를 후원하면서 그들과 인맥을 쌓던 정봉섭 중앙대학교 농구 감독은 한기범을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고, 이듬해 명지고 1년 후배인 김유택마저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다. 중앙대학교에 진학한 이 둘은 대한민국 농구 최초의 장신 더블 포스트를 구축하며 중앙대학교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허재가 입학하기 전에 이미 이 둘만 가지고도 대학 5관왕을 했었을 정도.

한기범은 중앙대학교 시절에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 사상 처음으로 최종 결승전에 진출하며 실업팀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실업팀 선수들의 폭력이나 매한가지인 반칙과 수비에 시달리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졸업 후 당시 새로이 창단된 기아산업에 입단, 유재학과 1년 늦게 합류한 김유택과 함께 신생 팀 기아산업을 실업 3강으로 이끌었고, 이후 중앙대학교 후배인 허재가 합류한 뒤로는 기아자동차 불패 시대를 만드는 데 한 몫 단단히 했다. 1989-1990 농구대잔치 MVP를 차지. 리바운드 1위 역시 한기범의 차지였다.

하지만 MVP를 차지했던 시즌은 한기범이 이미 전성기의 기량을 잃어가던 때였다. 장신인 몸으로 인해 무릎에 부담이 가는 상태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국제 대회용 합숙과 국내 경기 일정은 한기범의 무릎이 쉴 틈을 주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대포주사로 불리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을 맞아 가며 출전을 이어간 끝에 결국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미 한기범은 부상을 달고 살며 전성기의 위력은 잃어버린 선수가 되어 있었고, 1990년이 지나며 한기범은 부상으로 선수 생명 자체가 끝나다시피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한기범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활에 매달린 끝에 전성기의 위력은 잃었을지언정 1992년 농구대잔치에 출전하며 선수로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연세대와의 경기에선 서장훈을 일대일로 수비하는데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이 패배하는 상황에까지 갔었지만, 기아자동차가 정규시즌에서 승승장구하던 고려대학교를 플레이오프에서 격파하고 결승에서 삼성을 격파하고 농구대잔치 총 7연패의 우승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내며 제 몫을 해내였다.

이러한 한기범의 활약은 기아자동차가 최후로 참여한 농구대잔치인 1996-1997 농구대잔치까지 이어졌다. 허재가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선수자격이 정지되고 김유택조차 제 힘을 발휘 못 하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기아자동차의 상황에서 은퇴 직전의 한기범은 만신창이가 된 무릎을 끌고 고군분투, 비록 기아자동차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고 두 시즌정도 탈락했지만 한기범만은 한때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센터였는지를 재기해여 보여줬다.

1996-1997 농구대잔치를 끝으로 은퇴했다. 한기범 본인 말로는 원 없이 많은 농구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후회나 미련은 남지 않았다고 한다.

3. 선수로서의 특징

2미터가 넘는 큰 키를 가졌지만 키만 큰 일반인에 불과했던 이전의 2m대 대한민국 농구 선수들과는 달리, 대한민국 남자 농구에 처음으로 등장한 제대로 된 장신 센터.

농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연습을 죽도록 했다고 하며, 장신 선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요령 자체가 부족했던 대한민국 농구 상황에서 정봉섭방열의 지도를 받아가며 자신의 키를 활용하는 법을 익혀나갔다. 연습 파트너는 김유택. 둘이서 1:1을 하면서 기량을 키웠다고 한다.

큰 키에 비해 힘은 좋지 않았던 편. 대학 때는 80kg대, 죽어라 살을 찌운 게 90킬로그램대의 몸무게에 불과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보다 작은 선수들에게도 힘에서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후일 등장한 서장훈을 상대로도 엄청나게 고전을 했다. 한기범 자신이 꼽은 가장 막기 힘들었던 국내 선수로 서장훈을 꼽기도 했다.

한데 전성기의 한기범에겐 키에 걸맞지 않는 유연함과 스피드, 농구 센스가 있었다. 밀리는 힘을 연습으로 다져진 정확한 중거리슛으로 보완했고, 속공에도 적극 참여하고 속공에서 바로 앨리웁 플레이도 해낼 정도의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게 바로 한기범이란 선수. 전성기가 지나 부상을 달고 살던 상태에서도 속공 상황에서 원핸드 덩크를 시전했을 정도. 거기다 리바운드 후 바로 한손으로 훌쩍 던져주는 아웃렛 패스 역시 한기범의 특기였고, 이러한 한기범의 패스는 바로 허재나 강동희에게 이어져 완벽한 속공 상황을 만들었다.

종합 기량에선 아무래도 김유택에게 밀리고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가 너무나도 짧았지만, 한기범은 대한민국 최초의 제대로 된 장신 센터였던 것이다.

4. 기타

한기범은 상대 선수들의 수비를 빙자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거칠게 대응한 일이 거의 없으나, 1987-1988 농구대잔치에선 두고 두고 회자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결승전을 하던 기아자동차김유택삼성전자임정명 사이에 경기 도중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이 벌어졌는데, 이 때 한기범이 대걸레를 들고 난입하면서 난장판이 벌어진 것. 이 사건은 농구대잔치 시절의 농구 팬들에게서 아직도 간간히 회자되곤 하며, 농구를 소재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1994년작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이 사건을 재연 하기도 했다.[1]

유전병의 일종인 마르팡 증후군[2]을 앓았다. 유전병이라서 아버지와 남동생이 이 때문에 일찍 타계했다고 한다.[3] 본인도 이 때문에 심장 수술을 2차례나 받았다. 다행히 건강이 회복된 편이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코치로의 복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부터 3년간 구로고등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했고, 2000년에 모교 중앙대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했지만, 비록 완치는 되었어도 조심해야 하는 심장 관련 문제를 앓았기 때문에 본인도 코치로서 다시 뛰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병을 극복한 후에 더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간간히 방송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한기범농구교실을 열어 유소년 농구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마르팡 증후군으로 인해 심장수술을 한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한기범희망나눔을 세워 심장병 어린이 돕기와 자선 농구 대회를 열고 있다. 관심있는 위키러라면, 가서 후원 계좌에 신청도 해 보자.

한기범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자신과 같은 병으로 동생을 잃은 전력이 있어서 제발 60살때까지만이라도 살아남는게 평생의 소원이였다.

일찍이 머리숱이 없는 대머리였지만 지금은 모발이식으로 예전에 비해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게 되어 상당히 외모가 젊어 보인다. 장발에 머리를 묶는 헤어스타일을 즐겨 한다.

개그 콘서트에도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 무려 여장을 하고...2005년 2월 27일 봉숭아학당 1분 20초에 등장.

푸른거탑 시즌 2에서 이용주의 친형인 '이기범'으로 나와서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쳤다.

의정부시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1. [1] 사건 당시 한기범의 역할을 담당한 배우는 비중있던 조연인 배우 이종원이다.
  2. [2] 이 마르팡 증후군은 뼈·근육·심장·심혈 등의 이상 발육을 유발하는 선천성 질환으로, 몸 크기와 심장 크기가 맞지 않아서 대동맥의 이상 확대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유전성 질환이다. 마르팡 증후군 보유자의 특징은 한기범처럼 키가 크고 마르며 팔다리가 긴 체형이 많다는 것인데, 키에 비해 매우 말랐다면 이 증상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한때 국가대표 배구 선수였던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센터 김병선 선수도 이 증후군 때문에 1995년 성균관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심장질환을 일으켜 숨졌고,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마르팡 증후군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도 이게 지병이였다.
  3. [3] 2011년 10월 19일 KBS 2TV의 여유만만에 출현해 마르팡 증후군 때문에 자식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밝혔다. 다행이 아들들은 통통한 체형으로 이 증후군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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