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상호방위조약

  상위 문서: 한미관계

영어: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한국어: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한미동맹 韓美同盟
ROK-US Alliance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 순간[1]

한미동맹 60주년 로고[2]

체결일

1953년 10월 1일

가맹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미합중국

본부

한미연합사령부,(1978~),

모토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병력

총 상비군 2,030,000 명,(2015),
주한미군 37,000 명
보유 전차 11,274 대
보유 장갑차 44,032 대
보유 전투기 8,480 대
보유 군함 2,600 척

1. 개요
2. 체결 과정
3. 조약 전문
4. 의의
5.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
6. 제6조의 해석
7.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9. 어록

1. 개요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근거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 제1공화국미국 사이에 체결 된 군사 동맹. 미국이 주요 동맹국들과 체결한 동맹 중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이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인하였고 1년 후 1954년 11월 18일 정식 발효되었다.

미국과 여러나라 동맹관계가 다양하지만(ex)나토) 상호방위조약으로 얽힌 양자동맹은 대한민국, 일본[3], 필리핀[4] 세 나라뿐이다.[5]

2. 체결 과정

6.25 전쟁이 발발 후 3년을 채워 가는 상황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맥아더가 경질되고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 무의미한 전쟁 질질 끌지 말고 '휴전협정 하고 빨리 끝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국의 이승만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의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외에 간섭을 하지 말자는 고립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미국은 이승만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이승만은 6월 18일 약 25,000명의 반공 포로를 직권 석방시켰다. 이 조치에 크게 놀란 미국은 이승만을 '약속 위반자'라고 비난했고 이승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승만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휴전협상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 1953년 7월 휴전협상이 체결 되었다.

이후 동년 8월 3일 미국과 협상을 시작, 8월 8일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 되었다. 이승만은 여기에 크게 기뻐하며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들은 많은 혜택을 볼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외무부장관 변영태와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조인하였으나 이후 삽입조항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가 심하여 시간을 끌다가 1년 후 1954년 11월 18일 정식 발효되었다.

3. 조약 전문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행사함을 삼가할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6]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이상의 증거로서 하기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한다.

본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문과 영문 두벌로 작성되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변 영 태

미합중국을 위하여 존 포스터 덜레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4. 의의

헌정 사상 가장 강력한 방패로 북한의 적화통일 시도를 좌절시키고, 해외 투자자들이 냉전시대 공산 진영의 턱밑에 있는 한국을 믿고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하여 차관확보를 도와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신

이승만 대통령의 최고 업적

잘 실감이 안 나는 사람들은 6.25 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생각해 보자.[7] 2018년 현재까지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성공작[email protected]로 평가받고 있는데 일단 제2의 한국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즉 조약의 가장 큰 목적인 '전쟁 방지'를 이뤄냈다. 여기에 국방력에 쏠릴 역량을 미군이 부담하여 대한민국은 경제개발에 그만큼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email protected]이다. 즉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여 이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안보적 위기가 높은 국가들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3% 미만으로 세계 평균과 그리 차이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매년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항시 전쟁 재발의 위험이 존재하는 한반도에 '미국이 전쟁을 막아준다'라는 안정감을 제공하여 해외 투자자금의 안정적 유치에 크게 기여해 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이승만의 땡깡에 가까운 승부수에 심히 불쾌함을 내비치면서 마지못해 허락해 준 것이었으나, 한국이 최빈국을 탈출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우리 노선에 참여한 나라는 성공할 수 있다'라는 모범 사례로서 선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조약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일본에서 한반도까지 확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는 중국이 G2로 부상한 2010년대에 들어 더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례로 서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 한미합동훈련을 할 때마다 중국과 북한의 속은 타들어가지만, 수십년간 맺어온 돈독한 한미관계라는 명분이 있어 함부로 항의하기 힘든 상황.[8] 24년만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한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역시 반세기넘게 이어온 혈맹관계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성장한 한국의 발전 사례를 강조했다.

물론 역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적화통일을 좌절시킨 근원이라 볼 수 있다. 휴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보호를 담보하여 북한 수뇌부의 침략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북한 정권과 종북주의자들이 빼놓지 않고 외치는 요구사항 중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폐기'가 있는 것이다.

조약의 내용상 '상호' 방위조약이므로 한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미국이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침략 받았을 때 한국이 도와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일단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럽 지역이나 대서양 지역에서의 사태에는 자동참전의 의무가 없다. 가령 러시아군이 유럽 지역을 침공해서 NATO 및 미군이 방어전을 치뤄야 할 때, 한국군이 자동으로 유럽 지역에 파병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일본 내 미군기지, 미국령 괌이나 하와이 등이 해당되며 사실 조문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전통적 한미관계를 고려하면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도와주기는 할 듯하다. 다만 태평양 지역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총력전 단위로 침략받을 사태가 될 정도면 이미 조약에 따라 한국이 참전해도 의미가 없을 제3차 세계대전급일 가능성이 크므로 사실상 이 조약의 일방적인 수혜자는 가시적으로 유형의 군사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든 조약의 상호방위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려고 미국의 해외작전도 방위조약에 들어간다는 주장을 해 한국의 지원을 요구하고는 한다.

일각에서는 이 조약을 이승만의 선견지명이자 업적으로 평가하는걸 꺼려한다. 본질적으로 외교라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인데 이 조약을 체결할 때 이승만이 던진 승부수에 미국이 말려들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신격화에 가깝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당장 한반도가 공산화되면 일본 방위도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미국 입장에서도 한반도를 무작정 포기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고, 정 안되면 지키지 못할 수 있어도 처음부터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이승만의 요구를 생각보다 쉽게 들어준 것이라 주장하는데, 사실 한반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은 미국 국방부가 아니고 이승만 본인이었다.

사실 미국에게 있어서 한반도의 중요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사실상 이승만이 냉전 초기부터 역설한 한반도 교두보론은 다만 미국으로 하여금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진주만 폭격 전부터 일본의 야욕 그리고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을 자신의 책으로 역설해온 이승만의 행로를 보면 그야말로 한국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약을 팔았다고 보아야 한다. 괜히 한반도 교두보론에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시큰둥해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이 미미하다는 서술은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데프콘(소설)에도 언급되었듯이 한반도가 중립적인 국가로 남아있느냐, 중국, 러시아 등 공산주의 진영으로 편입되느냐, 일본 등 자유주의 진영으로 편입되느냐는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한반도가 자유주의 국가로서 남아있다면, 혹은 남한만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일본과의 연계를 통해 중국은 해상보급을 받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유사시 자유주의 진영이었던 대만과 필리핀까지 연계한다면 중국 측의 태평양 진출은 틈도 없이 막히는 셈. 러시아야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위치라고는 하지만 동북아 지역에 한정지으면 남중국해, 동중국해, 서해, 동해가 모두 봉쇄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목을 조를 수 있다. 게다가 평양에서 선양까지 360km, 선양에서 베이징까지 620km, 총 980km이다. 이것은 6.25 전쟁에서 활약한 M46전차가 속도가 48km/h 까지 나오는데 40km/h로 가정해도 24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반도가 자유주의 진영이라면 베이징까지 전차로 1일 내 도달가능한 사정권에 들어오는데 적국의 기갑전력이 하루 안에 수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위협적인 현실이다.

문제는, 당시 중국은 너무나 약해 빠져서 차라리 항공모함과 전함, 그리고 상륙함대를 이끌고 칭다오를 개박살내고, 항공모함에 탑재된 미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전투기들로 제공권을 장악한 뒤 바로 베이징에 군대를 박아버린 후 보급선이 작살난 한반도나 선양군구를 여유롭게 때려잡아도 되거니와, 이러한 저돌적인 상륙작전으로 인해 생길 손실이 오히려 한반도를 6.25 때처럼 손 써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밀리지 않도록 재건하고, 경제를 살리고, 중국의 3대 정예 군구에 속하는 선양 군구와 베이징 군구를 전차부대로 진격하며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보유한 전차사단의 배치와 주둔비용 그리고 이 전차들을 계속 무리없이 작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의 예비 전차대와 정비창 건설, 소련과 만주에서 날아오는 소련의 미지의 베일에 싸인 최신예 기체들의 공습로부터 전차부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이를 요격할 전투기도 많이 두고, 그 전투기가 착륙하고 발진할 활주로를 중국 현지 점령후 몇시간만에 깔아버릴 수 있을 정도의 공병대를 가지고 있을정도의 정신나간 규모의 미군을 배치하고 그 규모의 미군의 식사와 보급을 모조리 본토에서 가져올 수 없으니 한국에서도 생산이 가능하게 공단까지 지어줄 때 들어갈 돈보다 천문학적일 정도로 저렴하단 것이다. 애초에 그런 이유로 한국을 보호했으면 박정희 대통령이 한창 한국을 재건하느라 차관 빌리러 다닐때 그렇게 매정하게 내쫒을 이유가 있었을까?[9] 오히려 자기들이 발벗고 나서서 공단에 식품공장에 유통시설까지 지어주었어야 한다. 만일 진짜로 후일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육군을 뿌려댈 요충지로 한반도를 상정하고 해당 조약을 체결해 주었다면 말이다. 데프콘은 기껏해야 소설일 뿐이다.

한반도가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가면 큰 손실을 본다는 주장의 요점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줄 자유주의 진영에 있는 국가가 한반도를 제외하면 모두 섬나라라는 것이다. 한반도를 제외하면, 일본, 대만, 필리핀은 모두 섬나라이며,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 육지에 기반을 둔 국가이다. 이것이 무슨 차이냐면, 한반도가 없이는 동북아지역에서 공산주의 국가와 전쟁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륙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 소련을 상대로. 당연히 중국과 소련이 느끼는 부담이 매우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한반도가 중국, 러시아와 같은 진영이면 일본의 안보를 장담할 수 없다. 중국, 러시아를 위협하기 위해서는 일단 상륙을 해야한다는 위험부담을 가지게 되어 중국, 러시아가 방어막을 얻는 격이며,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수도를 하루거리에서 위협하는 이점도 없다. 반면에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를 기점으로 사할린, 제주도 등 어디서든 일본을 압박할 수 있다. 한국군 vs 자위대에서 얘기하듯이 대마도가 한반도에 더 가깝다는 사실도 주지해보자. 여러모로 한반도가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가면 미국으로선 중국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없다.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 말미에 미국이 왜 38선까지 그으면서 소련군의 한반도 전역 진주를 막으려 했는지 생각해보자.

이 주장에 따르면 어찌되었든 미국으로선 한반도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기에 38선을 그으며 소련군의 남한 진주를 막았고, 6.25 전쟁 시 미국 의회 승인도 없이 UN 결의만으로 파병을 결정하였으며, 3년 간이나 남의 전쟁에 와서 피를 흘리며 싸운 것이다. 휴전협상 전략에 있어서 한반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자기 주도로 전쟁을 조기에 결말짓기 위해 한반도를 안지켜준다고 엄포를 놓았을 수도 있는 것이지 한반도가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UN군이 빠지더라도 한국 독자적으로 전쟁을 하다 나라를 잃는 한이 있어도 북진하겠다고 했을때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이다. 이승만이 한반도의 가치를 높여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를 1000만원짜리 금괴인양 팔아치운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의중을 파고들어서 1000만원짜리 금괴를 10만원짜리 동괴 취급하며 너넨 아무것도 없으니 우리 말 들어라 하는 미국에게 그럼 우리 맘대로 태워버릴게 하는 식으로 해서 1000만원짜리 금괴를 그런 식으로 잃어버릴 수 없던 미국을 자극해서 조약을 이끌어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은 결과론적으로 사실이나 이를 이승만이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이었던 것으로 단정적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경제는 제1공화국 자유당 시절에 높은 수준의 성장가도를 밟기 시작했어야 했겠지만 정작 이 시기에는 전쟁피해 극복 수준으로 지지부진했고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건 이승만이 물러나고 2년이 지난 뒤인 1962년부터였다.'

그러나 윗 문단의 모순에 대한 재반박이 없진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지 않았고 2차대전 후 패망한 독일 같이 전부터 손에 꼽히는 강호이자 선진국도 아닌 탄생하기 얼마 전까지만도 식민지로써 착취와 차별을 미친 듯이 받다가 독립한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거기다가 태어나자마자 분단되어 주변이고 먼 나라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끌어들이며 서로 박터지게 싸우던 전쟁이 겨우 방금에, 그것도 불완전히 끝난 상황인데, 또 투자만 하면 다시 굳건히 일어서서 투자자들에게 배의 수익을 올려주리라는 보장을 갖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지금으로서는 민족성이니 뭐니 해서 어차피 발전할 국가였다는 속 편한 말을 하지만, 당시 급격히 확산된 교육 등이 이후의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이승만부터 쫒겨났기에 본인은 어떨지 몰라도 4.19 혁명 그 자체가 사실 6.25 이후 사회를 무척이나 발전시켰다는 반증에 가깝다.[10]

상식적으로 정말로 이 시기가 쓸모 없었으면 그 뒤의 몇 년만에 사회, 경제가 그리 급속히 발달했겠는가? 국가 발전은 몇 푼 내면 앞당길 수 있는 소셜 게임이 아니라,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일에 가깝다.

또 6.25 전쟁 직후의 거지꼴[11]인 휴전 상태인 동북아의 어떤 작은 반도국에 미국의 보증 없이 투자를 한다? 누구라도 당시 한국에 물자를 수송해가며 재건의 발판을 밟아가던 일본에 투자하는 걸 선호했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실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인도적 차원에서든 일본의 부담을 돌리기 위해서든 간에 아무튼 동맹도 체결했겠다, 나름 제1세계 최전방이기도 하니 경제원조나 해서 먹고나 살게 해주자.' 하는 정도로 48억 달러를 '농업' 중심으로 지원하고 원조해줬지, 정작 후일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인 중공업이 아니었고 애초에 박정희 대통령이 중공업 산업의 기본인 제철 관련 단지를 자국화 할 이유로 소박하기 짝이없는 연산 조강 30만 톤짜리 종합제철소인 울산제철을 짓기위해 차관을 빌리기 위해 미국의 AID에 지원을 요청하자 미국은 '그 정도 규모의 제철소를 돌리는 데는 철광석과 석탄 수입에만 연간 3500만 달러가 필요한데 한국은 연간 수출 실적이 1961년 당시 4200만 달러밖에 안 되니 도저히 원료수입을 감당할 수 없다'며 냅다 퇴짜를 날렸다.

하물며 만일 한국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면 누구보다 한국에 가장 투자를 해야할 미국 정부도 이러는데, 민간인 투자자들은 애초에 신문에서 떠드는 한국이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으며, 투자해봐야 인프라고 뭐고 없어서 하지도 못하는데다 수익성이 거의 없는 국가인 농업국가 한국에 대해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이대로면 60년대 말은 커녕 70년대 80년대에도 한국은 지지부진한 개도국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분명 제1공화국의 업적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승만 본인이 수완이 좋아 미국과 한국를 엮어 만든 조약이었다'라고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경제를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수준으로 끌어 올렸을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그 투자자들이 좀 더 안심하고 투자하는 걸 도왔을지는 몰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에 투자한 것은 아니니 사실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국 경제의 발전을 그 자체로써 도모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후세에 큰 영향을 준 본 조약은 치밀한 고려 하에 그 성가를 평가함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의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으므로 실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미국 의회에서 거부한다면 미국이 해당 조약을 무시할 수 있다.[출처] 물론 한국이 자유주의 진영에서 이탈하지 않는 이상, 미국 의회에서 참전을 거부할 리가 없다. 요충지이자 동맹국인 한국을 이유 없이 버릴 수도 없거니와, 동맹국 간의 조약을 쉽사리 무시했다간 미국의 외교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미국 영향 하의 동맹이 삐걱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5.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

미국 영토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지만 한국 영토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된다. 우선 MDL(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 영토라는 데 이견이 전혀 없지만 그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이 상당히 갈린다. 한국은 MDL 이북 지역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북한이라는 독립국가가 점유한 영토이므로 한국과는 별개의 지역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북한에 대한 미수교와는 별도로 북한 자체는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DMZ 이남 지역에 대한 방위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겠지만 MDL을 넘어갈 경우 전시작전통제권을 근거로 한국군의 북진을 막거나, 아니면 한국군의 북진은 용인하되 미군은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고 한국군만 북한군과 맞서게 할 가능성이 높다.[13]

다만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대결이 피할 수 없는 쪽으로 가면서 친중정권 수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주도 하의 통일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최근의 작계에서도 이런 점이 반영되어 미군 역시 북한에 개입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국군 vs 북한군 항목 참고.

6. 제6조의 해석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조인하였으나 즉각 발효되지 않았는데 미국측에서 제6조에 이 조약의 파기요건인 '두 나라 중 한 쪽이 통고하면 1년 후 효력이 자동 상실된다'를 명기하였고 여기에 대한민국 국회가 불만을 표시하면서 발효가 지연되었다. 이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만약 상대방이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조약을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고하면'(notify)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협의고 뭐고 없이 1년 후 자동 폐기라는 점에 유의하자. 조약체결 후 60년간 별 시끄러운 얘기 없이 지내왔기에 두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동맹이 영속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조약은 이 구절 때문에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즉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장치를 해 놓은 그런 상황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양국의 의지가 이 조약을 유지시키는 근본적 힘이다.

물론 한국측은 이 파기조건 부분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현시각까지 해당 문구는 유효하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과거 지미 카터 치세처럼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갈등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조약의 파기 가능성이 언급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 이 조약의 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일부는 아예 폐기까지 주장하며, 미국측에서도 일부 싱크탱크들이나 2016년 대선 이슈인물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처럼 현 한미동맹 관련 조약 내용을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조약은 어느 한쪽이 만약에 마음만 먹게 되면 허무하게 실효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파기조건 문구를 넣은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오직 파이브 아이즈라고 불리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이스라엘은 다른 영연방권 4개국처럼 미국과 특별히 연결된 게 아니라 미국 유대인들의 지원과 대중동 정책의 첨병으로써의 가치 때문에 유지하는 거라 한국이나 일본과 극단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다. 이는 일본이 맺은 신 미일안전보장조약이라 불리우는 《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의 제10조와 동일한 문구라서 한국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만약 파기조건을 삭제하면 한국과 미국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뜻인데 미국의 방향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우리 측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일본, 영국, 필리핀과의 조문에도 1년 기한 원칙이 똑같이 명시되어 있어 한국에만 특별대우를 할 수는 없다.'라는 논리로 우리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7.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조약체결 당시 한국은 북한을 침략국으로 설정하였으나 조약 본문에는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태평양 지역으로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 뒤에 버티고 있던 소련 및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 그리고 정부 고위급 인사들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의 목적을 북한을 막기 위한 것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상 목적은 중-러의 힘을 억누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또한 맞서 싸울 특정 이념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냉전 체제가 끝난 후, 더 나아가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한국을 이용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역시 북한과 통일 후에 북한이란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을 이용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목적은 '한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북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상관없이 타국이 한국을 침략하면 미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만 한다. 허접한 북한군이 침략할때만 도와주고, 정작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침략했을 때 주한미군이 팔짱만 끼고 방관한다는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그러라고 있는 주한미군이 아닐텐데

물론 현실적으로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뜬금없이 한국을 침략할 확률은 낮기에 한미동맹은 북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한국군이 북한군의 전력보다 월등히 우월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단지 북한군때문에 한미동맹이 꼭 필요하다는 사람보다는, 중국,러시아 등의 참전 등 여러 포괄적인 상황에 대한 보험으로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한군 따위야 미군의 도움 없이도 한국군 단독으로 어찌 해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개입했을 때는 한국군 단독으로 맞서서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미군이라는 보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의 국방백서에도 북한이 주적이라는 규정을 삭제했으며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는데, 이 역시 북한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 이로 인해 논란이 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한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에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답하는 등(북한은 33%) 반미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친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북한 주적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 하원의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은 한국이 안보에 대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한국은 누가 적인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적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의 미군 투입을 문제삼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정도로 한미관계가 삐걱대기도 했었다.

2016년 친미정권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이 집권했음에도 박근혜 정부가 장기간 동안 보였던 친중적인 행보와 사드 반대 여론, 미국이 주도하는 한일군사협정에도 반일감정으로 인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미국과 갈등이 있는 와중,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었기에 2017년 한국 대선 결과에서 반미성향의 대통령이 나타나게 될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무조건 보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될수 있을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 조약의 '태평양 지역'에서 보듯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의 가치는 태평양 방어이고 현재 미국의 안보 전략이 국방비 절감 문제로 인해 각 지역마다 대리인을 두는 전략으로 바뀌었는데 아시아 지역의 대리인은 일본으로 결정된 상황이다. 따라서 한미조약을 유지하고 싶으면 일정 부분 일본과도 협력해야 하는데 만약 반미,반일 성향의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서 미국,일본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중국과 더욱 친해지는 상황이 된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사라지게 될수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게 된 것이다.

2016년 4월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의 강의 셰일가스 혁명과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 편을 보자. 결국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신 고립주의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사실 당선 전 한국에서는 트럼프 열풍을 그냥 극우세력들의 득세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조차 슬슬 고립주의 테크를 타는 듯한 성향이 보였는데, 그것이 결국 셰일가스 혁명때문이었다. 오바마조차도 미국이 사활을 걸었던 중동은 물론 전세계에서 슬슬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의에서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나오는데, 셰일혁명으로 포텐이 터진 미국과는 달리 2016년 들어 중국의 경제 성장이 한풀 꺾이면서 주춤하며 미국의 라이벌이 채 되기도 전에 김이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기에 미국에게 있어서 태평양 지역에 대한 중요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과거 냉전시대에는 절대 미국에서 나오지 않았던 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 발언이 나오고 사우디,독일의 미군도 빼자는 학자들도 점차 늘어나는 등 현재는 만약 한국에서 과거처럼 반미열풍과 미군철수 여론이 거세진다면 정말로 미군이 미련없이 떠날 가능성이 예전에 비하면 높아진 상황이다. 다만 저런 발언이 실제 철수로 이어진다기 보다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압박 카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다.

8.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의 차이점

북한중국 역시 한미상호조약처럼 동맹관계 조약을 맺었는데, 조약은 모두 7조로 돼 있는데 이중 핵심은 북중 양국 간 상호 자동군사개입을 규정한 제2조다. 여기에는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 개입과달리 한미상호조약에는 자동개입 문항이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무력공격 발생 시 행동방식과 상호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우호조약의 자동개입 조항과 달리 “유사시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2조에도 외부 침략에 대한 대응양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상호협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즉각적이고 의무적인 대응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주한미군이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사실상의 자동개입이 보장돼 왔다. 이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 병력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14] 두 조약 간 동맹의 영속성 역시 대조적이다. 조중동맹조약 제7조에는 쌍방 간 수정 혹은 폐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영원히 지속되도록 규정하고 있다.[15] 반면 한미동맹은 제6조에 따라 조약 기간이 무기한이지만 일방의 통고가 있으면 1년 후에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냉전 종식과 함께 이 조약은 사실상 무의미로 변해가고 있다.환구시보에 의하면 “2001년 이래 북중간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확대됐고 중국 안팎에서는 조약의 유효성을 두고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행위는 전쟁 위협을 높이는 조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위협이 높이질수록 한미상호조약은 더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 3조를 보면,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명시되어 있는데, 현실의 북,중은 경제적으로는 식량을 구입할 정도로 예속되어있지만, 자신들 주권에 넘보거나,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치, 군사적 대립관계에 놓여있고, 러시아 역시 과거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 조약을 맺었지만 냉전종식과 핵개발로 인해 이 조약을 폐기하고 대신 일반조약으로 대체하였다. 군사훈련 역시 거의 없는 편이라, 중,러훈련은 있지만, 북,중, 북,러 연합훈련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16] 유엔 제재로 무기판매도 금지되어있다.[17]

9. 어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는 것은 일본인이 다시 한국을 병합해도 좋다는 신호로 알기 쉽다.

-변영태 1952년 10월 17일 애치슨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난 변영태 외무부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꺼낸 이야기.

미국에 대한 우리(한국)의 확고부동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과 1945년 한반도의 양분(bisection)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의하여 배신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재개에 대한 아무런 방지책이 없는 정전협정문이란 '한국에 대한 사형집행영장'에 불과합니다.

-이승만 1953년 7월 로버트슨 미국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입니다.

- 이승만, 1953년 8월 8일 조약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된 후 발언.


  1. [1] 경무대에서 열린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을 지켜보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
  2. [2] 한미동맹 60주년 기념선언 전문
  3. [3] 미일안전보장조약.
  4. [4] 미비상호방위조약.
  5. [5] 대만과도 '미중공동방어조약'이란 이름의 군사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다. 그 뒤 대만 대신 중국승인되면서 이 군사동맹은 대만관계법으로 승계되었다.
  6. [6] 참고로, 제4조의 실제적 내용 실현을 위해서 후에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되었다
  7. [7] 애치슨 라인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나 이미 애치슨 라인 이전부터 김일성은 줄기차게 남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8. [8] 미국의 지원으로 키운 일본, 한국, 대만의 대공산권 포위망은 미국의 동북아 외교의 큰 성공사례다. 중동에도 민주주의를 수출해보려했으나 미국의 자신감은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크게 손해를 보면서 꺼지게 된다. 비록 한국의 경우 독재정이었다는 한계가 있으나 어쨌든 한국, 일본, 대만 모두 민족주의와 냉전체제를 바탕으로 강력한 단일 민주정부가 구성된 반면 중동은 민족이나 이념보다 종파가 우선이라 세속적인 정체인 민주정으로 국민들을 통합하기 어려웠다. 당장 알제리부터 오만까지 4억 2천만 아랍인들의 국가만 15개정도 된다.
  9. [9] 심지어 미국의 지미 카터는 1976년에 주한미군 철수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려고 하였다. 물론 미국 의회와 국방부의 반발로 인해 실행하지는 못했으나, 애당초 진짜로 한반도가 버릴 수 없는 곳이라면 그런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는 것도, 그것을 실행하려 시도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10. [10] 물론 발전 만큼이나 부정부패가 컸기에 4.19 혁명이 일어났다.
  11. [11] 이제는 옛말이지만 제3세계의 노인들에겐 지금도 이 이미지가 굳게 남아 있다.
  12. [출처] 12.1 반미주의의 구조적 근간, Bruce Cummings
  13. [13] 6.25 전쟁 당시 중국의 입장도 이랬다. 한국군은 워낙 형편없으니까 북진을 하더라도 재조직된 북한군의 저항 때문에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고 북진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미군이 북진하면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14. [14] 한국을 공격시엔 개입이 아닌 미군 내 기지, 즉 세계 주둔 미군 기지를 공격시 자동개입 한다는 의미.
  15. [15] 다만 조중동맹조약은 1961년부터 20년단위로 자동갱신되는 방식이라 완전하게 유효기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16. [16] 2011년 북-러간의 수색구조훈련은 한적은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처럼 정규적인 훈련은 하지 않는다.
  17. [17] 4차 핵실험으로 인해 소화기, 권총, 중화기, 군용트럭, 수류탄 등 다수 품목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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