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구제사업

1921년 경주시 대덕산에서 사살된 호랑이. 기록상으로는 가장 유력한 남한 내의 마지막 야생 호랑이 중 하나이다.[1]

1. 개요
2. 상세
2.1. 야마모토의 원정사냥
3. 일제의 행위가 정당했는가
4. 기타
5. 관련 문서

害獸驅除事業

1. 개요

해수구제사업은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총독부가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는 해수(害獸)를 사냥한다."라는 명분으로 한반도 내의 호랑이, 표범, , 늑대 등의 크고 작은 포식동물들의 남획을 주도 및 장려하여 해당 동물들의 절멸에 이르는 원인이 된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사냥들을 이르는 표현이다.

2. 상세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 시기의 남획으로 인해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표범, , 늑대, 스라소니, 승냥이 등의 한반도 내 개체군이 사실상 멸종되었다. 여우 같은 경우는 이때는 주된 표적이 아니어서 살아남았으나 한국전쟁으로 서식환경이 파괴되고 이후 대대적인 쥐 잡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쥐약 먹은 쥐를 잘못 먹고 죽는 바람에 결정타를 맞았다.

1917년 야마모토 정호군을 조직해 한반도로 호랑이 사냥을 떠난 일본 제국의 사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山本唯三郎)(우)와 조선인 포수 최순원(崔順元)(좌)

일제의 이러한 사업은 당시 항일의병 결성을 막기 위해 총기소지가 제한되어 호환 등 맹수의 공격에 대처하기 어려웠던 조선인들의 환대를 받았고, 여러 이름난 조선인 포수들이 사냥을 나서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들로 야마모토 타다사부로의 원정 사냥을 지원한 포수인 최순원, 강용근, 이윤회 등이 있다.

한반도로 원정 사냥을 나선 사업가 타다사부로의 사례처럼. 이러한 사냥은 일본 제국 고위층, 부호의 유희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강인한 맹수를 사냥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기개를 과시할 수 있었고, 호랑이, 표범의 가죽 등 사냥의 부산물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늑대 같은 경우에는 약 1,400마리가 포획되었다. 호랑이는 기록상 100마리도 채 안된다고 하나, 기록에 남지 않은 사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또한 토목공사나 삼림벌채로 인한 서식지의 파괴도 컸다. 곰 역시 약 1,000마리 가량이 포획되었다. 표범 또한 이 사업으로 인해 남한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수구제사업에서 사냥 대상이 된 동물들이 이 사업만으로 완전히 멸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해방 이후 한국 전쟁으로 인한 산림훼손과 무분별한 밀렵, 환경 파괴와 쥐약 등의 약물 살포 등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여우와 반달가슴곰은 소수가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서식 흔적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오고 실제로 포획되거나 촬영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허나 반달가슴곰여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에 사육되는 개체들도 있어 야생이라고 보고된 개체들이 알고보니 우리에서 도망친 사육개체로 밝혀진 사례도 있었다. 사육개체는 국내에서 자생하던 종류들과 유전적인 차이가 있지만 외형만으로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해수구제사업 이후에도 소수의 표범들과 늑대, 여우, 반달가슴곰이 살아남았으나, 최소한 남한에서는 산업화 시기 이후로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생존해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검토가 필요하며,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도 자연적인 개체군을 유지할 정도에 미치지는 못한다.

2.1. 야마모토의 원정사냥

일제강점기 당시에 시행된 사냥중 유명한 것으로 사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의 대규모 원정사냥을 꼽을 수 있는데, 타다사부로는 사냥뿐 아니라 호랑이 등 포획한 동물들을 요리해 정치계 인사들을 초청한 두 차례의 시식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사냥에 대해 조선의 일제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하는 제국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등, 일제의 야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세한 내용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 문서 참조.

3. 일제의 행위가 정당했는가

이를 통해 호환 등이 없어졌으니 잘 된 일이라곤 하나, 단점으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먹이사슬이 완전히 깨져버려 한국의 생태계가 혼란해져 환경단체 등 외부의 도움이 필요해졌고, 생태계가 매우 단순해 졌다.한편 멧돼지노루, 고라니, 들개 같은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 동물들에게 부상당한다거나, 농작물 피해를 입게 되는 등 여러 피해가 급증하게 되었으나 이는 엄밀히는 덫, 올무, 사냥을 금지했기 때문이며, 해수구제사업만의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이 있긴 있지만, 해수구제사업은 국가기관이 담당하는 치안 유지 행위였다고 볼 수도 있다. 맹수가 서민들에게 끼치는 피해는 꽤 심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은 굳이 일제가 아니었어도 강력해진 무기와 인력만 제공된다면 규모는 약하더라도 당시의 정치인과 치안담당자들이 시도했을 만한 정책이었다. 당장 조선만 하더라도 초기부터 호랑이를 사냥을 전문적으로 하는 부대인 착호 갑사를 운영하여 호랑이에 대응했었다. 일부 국토 면적이 넓은 국가들은[2] 면적이 넓은 만큼 자연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을 설정해서 동물과 인간의 거주지를 분리하여 동물을 보호하거나 야생 생태계와 공존 할수 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에서조차 종종 보호구역에서 탈출한 맹수가 사람을 죽이거나 잡아먹어 결국 죽여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2016년만 해도 미국에서 곰에게 8명이 잡아먹혀 곰들은 사살당하거나 마취약으로 잡혀서 식인 여부가 드러나자 독극물로 죽였다. 하물여 이렇게 넓은 나라들도 이러거늘 한반도는 그러기엔 국토 면적이 지나치게 좁아, 수천만명이나 되는 인간 및 맹수가 공존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3]

만일 호랑이가 전 국토에 퍼져 있을 경우 멧돼지, 노루, 고라니 문제로 고생할 일은 없겠지만 잊을 만하면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었다, 물어 죽였다는 기사를 접하게 될 것이다. 심할경우 호랑이, 멧돼지, 들개 모두에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인도인도네시아, 네팔 같은 현재 호랑이가 서식하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은 아직도 인간이나 가축을 물어죽이거나 잡아먹는 호환 피해가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또한 이러한 육식 맹수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가장 크게 고생할 사람들은 바로 군인 특히 산골 깊숙한 곳에서 근무할 대한민국 육군 병력들이다. GOP에서 복무를 하다가 노루나 다람쥐, 멧돼지가 아닌 호랑이나 표범이 소초에 내려왔다고 생각해보면 가히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멧돼지만 해도 충분히 충격과 공포인데.... 국지도발이나 숙영등의 야간에 산에 틀어 박혀 있어야 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면 전 병력들에게 실탄을 지급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총기 오발 사고나 심하면 프래깅까지 벌어질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야산 위에 방공포병이나 레이더 기지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 공군 격오지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백두대간 일대를 산행하는 것은 엽총 한두 자루를 갖춘 네다섯 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이 야간에도 돌아가며 보초를 서면서 맹수를 경계해야만(전부 같이 잘 수가 없다. 그럼 불시에 습격당할 때 대책이 없으니) 가능할 것이고, 산간 마을은 고령화가 심각해서 군부대나 경찰이 아예 마을에 상주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컨테이너로 성벽을 쌓던지, 아니면 마을 전체에 철조망을 두르든지 해서 호랑이도 넘어들어올수 없을 정도로 마을을 요새화 하면 적어도 마을내에서는 별다른 경비 병력없이 안전할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게 평온한 삶은 아니지 않겠는가.(...) 미국의 총기 소지에 대한 긍정론에는 , 퓨마, 늑대, 악어 등과 같은 미국에 실존하는 맹수들에게서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논리도 있다. 실제로 로키산맥이나 알래스카에서의 총은 필수품이다.

실제 일제에 침탈당하기 이전 조선왕조 때도 사람이나 가축을 해친 호랑이를 잡으면 나라에서 상을 주었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에선 지휘관과 40인의 포수로 구성된 범잡이 전문조직을 창설했으며 지방에도 착호군을 두어 호랑이를 잡도록 했다. 때문에 조선 군인들은 호랑이 사냥에 몰두했으며, 심지어 구한말에 한국[4]을 찾은 일부 외국인들은 "한국 군대는 해적이 나타나도 쳐다보기만 하고 호랑이 잡으러 간다."고 비아냥거릴 정도[5]였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일제의 만행이 아니라, 인간과 맹수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이 시기는 환경보존이나 동물보호의 개념은 가히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호랑이를 사살한 네덜란드인 사냥꾼.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같은 다른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도 해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인도,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신나게 사자호랑이, 표범, , 코뿔소, 코끼리등을 비롯해 식민지의 여러 야생동물들을 사냥해 수를 엄청나게 줄여놓았으며,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들도 자국의 야생동물들을 마구 사냥하여 멸종 직전까지 몰아간 사례도 많다. 그리고 그 일본 또한 홋카이도늑대일본늑대를 해수라면서 마구 잡아 멸종시켰다. 그리고, 미국도 1920년대만 해도 코요테나 늑대, 퓨마 같은 맹수들을 무분별하게 사냥[6]다가 생태계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어야 했다.

4. 기타

2009년 말,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인 헌터스가 이를 재현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이미 MBC 등에서 관련 시위를 열었고, 사냥 위주였던 헌터스 프로젝트 1은 비판때문에 4주만에 종영했다. 이후로는 생태계 회복을 주제로 한 그리고 재미없게 변한 새로운 헌터스를 방영한바 있다. 하지만 이 프로는 이미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해수중의 해수인 멧돼지를 숫자를 줄이는 사냥을 하는 것 뿐이었는데, 그러한 해수구제조차도 동물보호라는 미명하에 동물권 단체들이 섣불리 비판했다는 역비판도 제기된바 있다

호랑이와 표범의 남획, 그리고 해방 이후의 표범들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서적으로 일본의 작가 겸 동물연구가인 '엔도 키미오(遠藤公男)'의 저서,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한국의 마지막 표범' 이 있으며, 두 권 모두 번역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또다른 서적으로 원정 사냥을 나섰던 야마모토 타다사부로가 야마모토 정호군의 1917년 11월 12일부터 동년 12월 10일까지의 행적을 정리하여 집필한 '정호기(征虎記)' 가 있는데, 이 또한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일제시기의 남획 대상 중 하나였던 아무르표범이 북한지역에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러시아북한에게 보호를 위한 협력을 요청한 일도 있었다. 러시아와 북한이 개체 보전을 위해 공동조사를 벌이기로 하였으며, 한국과도 협력한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한국범보전기금과 러시아의 표범의 땅이라는 국립공원간 실무회담에서 협력의정서가 체결됐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1] 사진 기록으로 남은 것 중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호랑이는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사살된 것이다. 관련 기사
  2. [2] 미국이나 인도,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립공원을 생각해보면 된다.
  3. [3] 맹수의 활동영역은 매우 넓다. 곰 중에선 작은 체구에 초식에 가까운 잡식인 지리산 반달가슴곰만 해도 복원사업과정에서 자문을 구한 해외 전문가들에게 그렇게 좁은 면적에서 어떻게 곰을 복원하냐며 말도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반달곰도 이럴진데 몸집이 더 크고 오직 육식만 하는 호랑이나 불곰은 말 할 필요도 없다.
  4. [4] 대한제국으로 명칭이 바뀐 뒤이다.
  5. [5] 하지만 제보당의 괴수같은 사건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러한 유럽이나 백인들도 해당 국가에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식인 맹수를 잡고자 군대를 파병한다든지 골머리를 앓았던 게 있었다.
  6. [6] 덤으로 미국은 이런 맹수들이나 심지어 사자나 호랑이까지 주에 따라 자유롭게 키우고 사거나 판다....아닌게 아니라 현재 자연 말고 호랑이와 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내에서 동물원이나 보호시설이나 개인이 키우는 사자와 호랑이가 2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전세계 야생 호랑이와 사자보다 많다... 영국만 해도 1970년대에 이런 맹수 새끼들을 백화점에서 팔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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