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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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팔만대장경

1. 개요
2. 역사
4. 기타
5. 창작물에서의 해인사
6. 관광 관련
7. 교통
8. 관련 문서

1. 개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 사적 제 504호

순천시송광사, 양산시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법보(팔만대장경), 통도사는 불보(진신사리), 송광사는 승보(수계사찰) 사찰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부산광역시범어사, 구례군화엄사 등과 함께 5대 사찰로 꼽히기도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대한민국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팔만대장경이 보관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역시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이 보관 중인 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유네스코 소속 관리자가 엄격하게 막고 있으니 눈으로만 보자.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의 완공/제작 연도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분명히 다르다. 본래 강화도에 보관하던 대장경을 조선 태조 때에 옮겨오면서 장경판전이 내부에 지어졌다. 해인사 자체는 신라 시대에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편찬이 됐지만, 이를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조선 시대에 지어졌기 때문인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낚시 문제로 나온 적도 있다.

2. 역사

신라 애장왕 3년(802) 창건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착하게 살던 노인이 떠돌이 강아지를 데려다가 정성껏 키웠는데, 사실 그 강아지는 용왕의 딸로 잘못을 저질러서 강아지가 되어 속죄하던 중이었다. 속죄를 마친 용왕의 딸은 용궁으로 돌아가 자신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용왕에게서 도장을 노인에게 주었다. 그 도장은 원하는 것을 쓰고 도장을 찍으면 적은 것이 실현되는 도장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도장을 쓰지 않고, 오히려 도장을 사용해 을 세우는 비용을 댔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 해(海)와 도장 인(印)을 써서 해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943년 이후 기술했다고 추정되는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를 참조한 듯한 다음과 같은 전설은, 《거제현우두산현암선사중수기(巨濟縣牛頭山見庵禪寺重修記)》에 기록되어 전한다.

애장왕대의 승려 순응(順應)[1]이 766년 당나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깨우침을 얻던 도중 보지공(寶誌公)의 제자를 만나 《답산기(踏山記)》를 얻은 뒤 보지공의 묘소에서 7일간 법(法)을 구하였는데, 그때 묘문이 열리면서 보지공이 나와 설법하고 의발(衣鉢)과 신발을 주면서 우두산(牛頭山) 서쪽 기슭에 절을 세우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한 순응은 가야산에 들어가 사냥꾼의 도움으로 현재 해인사 자리에 암자를 짓고 그곳에서 지냈다. 그때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어떠한 약도 효력이 없어 고승들의 도움을 받으려 사람들을 풀었다. 가야산으로 간 왕의 사신이 몸에서 빛을 발하는 순응을 발견하고 왕궁으로 청했으나, 순응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왕후의 병난 사연을 듣고는, 오색실을 주면서 실의 한쪽 끝을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쪽 끝을 아픈 곳에 대면 나을 것이라 하였다. 사신이 돌아가 왕에게 이를 알리고 그대로 시행했더니 배나무는 말라죽고 왕후의 병은 나았으므로,[2] 왕이 고맙게 생각하여 순응의 원에 따라 애장왕 3년(802)에 해인사를 지을 때 인부를 동원하여 일을 도왔다."

해인사 묘길상탑기[3]에 따르면 후삼국시대의 혼란 때는 도적들이 해인사를 습격해 56명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이후에도 계속 중요한 사찰로 기능해서, 고려실록조선왕조실록을 수도 이외에 사본을 보험용으로 보관해두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에 따라 화재로 인해 총 7차례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마지막 중수를 마쳤다. 신기하게도 화재 때마다 장경판전은 화마를 피해 갔다. 화재가 하도 많이 일어나다 보니까 화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해마다 단오날이 오면 해인사 남쪽에 있는 매화산 남산제일봉 정상 및 절 경내 다섯 곳에 소금을 단지에 담아 묻는 행사를 한다. 남산제일봉이 화기의 형상이라 여기서 화기가 날아들어 해인사에 불이 자주 나기 때문에 바닷물로 불길을 잡겠다는 의미라고.

6.25 전쟁빨치산들이 잠시 머무르며 싸울 거처로 삼는다는 이유로 폭격대상으로 지정되었으나, 김영환 장군(1921-1954)을 비롯한 파일럿들이 명령을 거부하고 상부를 설득하여 가까스로 폭격을 피했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해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따라서 2002년 이후로 해인사에서는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연다.

3.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대한민국 국보 제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자세한 내용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을 참조.

4. 기타

현재 대한민국 조계종에서는 출가하여 스님이 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는데, 그 홈페이지에서 처음으로 행자교육원을 소개했던 MBC 다큐멘터리를 해인사에서 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면서 조계종에서 중시하는 지눌과 관련된 교학을 승려 기초 교육 시 가르치지 않는데, 이는 이곳에 계셨던 성철스님이 "지눌은 마구니다" 라고 하면서 불교 내의 대논쟁을 일으켰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철지눌과 관련된 것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게 발단이 되었다. 성철 스님에 따르면 지눌은 돈오점수를 주장했는데, 성철 스님은 수행이 필요하다면 이미 깨달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돈오돈수'를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은 사찰인데,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독실한 불교 신자로[4]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해인사에 머무르던 조계종 법전(法傳) 종정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5]라는 법명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동안 세 번 해인사를 찾았다.[6] 2005년에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에 봉안된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 현존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불상임이 확인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휴가를 틈타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우리 제품을 잘 팔아달라"고 기도하면서 대비로전 건립에 30여억 원을 국고 지원하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고, 2007년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7] 이런 인연 덕분에 노 전 대통령 사망 당시 해인사에서 하안거 중이던 승려 300명이 하안거를 깨고 봉하마을의 빈소를 찾았다고.# 여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약속했던 30억 원의 특별 국고 지원금으로 대비로전을 수리하면서 화재에 대비한 재난대비장치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단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화재발생시 4분여 에 지하 6 m로 대피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되었다고 한다.

2012년 5월 17일엔 해인사 주지스님이 보증을 섰다가 100억 원대의 빚을 지게 되어 불상까지 압류당했다는 기사가 났다. 아이고 그놈의 보증

2014년 11월 24일 경내 전각에서 낙서가 된 것이 발견되었다. 주요전각 17곳의 벽면에 천도교에서 사용하는 삼칠주(三七呪)를 한자로 적어두었다. 다행히도 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최제우가 지은 삼칠주를 천도교 등 동학계 종교단체만이 아니라 증산계통 종교에서도 사용하는데, 증산계 종교에서는 천도교 등과 달리 주문의 선후를 바꾸어 외운다. 전각에서 발견된 낙서는 증산계통 종교의 순서를 따라 썼기 때문에 범인이 그쪽 종교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있었다. 나중에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범인은 삼칠주를 적으면 귀신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했다고 한다.

2017년 10월 16일 15세기 목조아미타불좌상 내부에서 고려 우왕 1년(1375)에 인출(印出)한 서적 '성불수구대다라니'와 고려 후기에 고려대장경으로 찍은 '대방광불화엄경' 28책이 발견되었다. 또한 목조아미타불좌상과 함께 삼존불(三尊佛)을 이루는 좌우의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을 X레이로 촬영한 결과 지장보살입상에서는 금속장식이 있는 족자형 사경(寫經·손으로 베껴 쓴 경전)이 발견되었고 관음보살입상에서는 종이 뭉치와 경전 사이에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책인 절첩본(折帖本)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

5. 창작물에서의 해인사

홍길동전에서 홍길동 일당에게 털리는 절로 나온다. 땡중고기를 처묵처묵하는 놈들이 승려로 있는 절인지라 의적들이 해인사를 털고자 해도 마땅한 지략이 없어 어려워하던 형편에, 홍길동이 해인사를 털어버릴 기막힌 묘책을 수립한다. 양반집 아들이 공부를 하러 절에 온다는 거짓 소식을 절에 전하자, 절에서는 손님맞이 준비에 난리가 났다.

드디어 홍길동이 부하들을 이끌고 해인사 레이드를 하기로 한 날, 당당히 들어가 음식을 대접받는 자리에서 일부러 모래를 입 안에 넣은 다음 큰 소리로 깨물어서 소동을 일으키더니, 음식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트집을 잡아 절 안의 중들을 모두 묶어놓고는 말끔하게 털어갔다. 여기서 '홍길동합천 해인사 털어먹듯'이라는 속담이 유래하였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하인샤 대사원이 여기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한의 사하촌에 나오는 돈 많은 절이 해인사라는 설이 있다. 작가 자신은 부정했지만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이 작품이 나오자 해인사라는 소문이 퍼지고, 작가에 대한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실제로는 부산범어사가 아닌가 추정된다. 이 또한 김정한 작가는 부정했지만, 작가 자신이 살았던 동네가 부산인데다 소설 속 묘사가 상당수 맞아떨어져 최소한 모델이 된 것으로 추측. 그래서 이 항목에 있는 테러라는 건 실제로 범어사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김정한의 집으로 몰려가서 드잡이질을 한 것(…).

어느 전래동화에서는 해인사와 송광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해인사의 가마솥은 엄청나게 크고 송광사의 변소는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작중 해인사 스님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그 솥에다 팥죽을 끓였는데 몇 사람들이 거기다 배를 놓고 노를 저어(...) 갔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안 돌아왔다고 한다.(...)

실제로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타고 노를 저어 갈 정도로 크진 않지만, 굉장히 큰 구리 가마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마솥은 주지가 팔아먹었다고... 가마솥을 팔아먹은 주지는 곧 다른 스님들과 신자들에게 쫓겨나 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6. 관광 관련

해인사가 전국적,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탓인지 해인사 주변에 각종 음식점과 숙박 시설 등이 즐비하다.[8] 호객 행위도 역시 무시무시하다.[9] 흔히 보는 산채비빔밥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은 기본이요, 관광 호텔, 유스호스텔이 있다.

7. 교통

자가용으로 갈 경우 광주대구고속도로 해인사IC가 가장 가깝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 서부정류장[10]에서 해인사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해인사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에서는 식권과 비슷한 승차권을 발매하며, 당일 어느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로 구매할 수 없으며 출발지에서 왕복 승차권을 구매할 수도 없으므로, 해인사에 도착하면 즉시 현금으로 승차권을 미리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 외에 고령군의 고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약 40분 간격(약 3~40분 소요)으로 해인사행 버스가 운행한다.[11]

8. 관련 문서


  1. [1] 최치원이 지은 전기(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에 따르면 옛 대가야 왕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2. [2] 왕비의 등창에서부터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와 실을 타고 배나무로 기어가고 있더라고...
  3. [3] 후삼국시대의 발단기였던 진성여왕 9년(895) 전란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해인사 경내에 세운 묘길상탑(대한민국의 보물 제1242호) 안에 있던 글.
  4. [4] 노무현 자신은 특별히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5. [5]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다.
  6. [6]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으로 꼽힌다.
  7. [7] #
  8. [8] 김종국(고향이 멀지 않다고)의 친척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한두 곳이 아닌 듯…….
  9. [9] 원래 관광 명소가 다 그렇긴 하지만 여기는 그 규모가 다르다.
  10. [10] 1일 21회(06:40부터 20:00까지 40분 간격, 1시간 30분 소요)
  11. [11] 대구서부정류장에서 출발한 차량이 고령을 경유한다. 참고로 고령~해인사 구간은 국도로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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