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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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Magyarország
Hungary

국기

국장

국호

헝가리(머저로르사그)
Magyarország

수도

부다페스트

상징

국가

Himnusz

국화

튤립

국조

까마귀

국가 코드

HU

자연환경

면적(영토)

93,030km²[1]

인문환경

인구

9,787,905명(2017 통계)

공용 언어

헝가리어

종교

기독교 52.7%(가톨릭 약 40%, 그 외 개신교 종파), 기타 종교 약 2% 등

정치

정치체제

의원 내각제

대통령

아데르 야노시

총리

오르반 빅토르

경제

명목 GDP

1,326억 $, 1인당 13,487$(2016)

GDP(PPP)

2,650억 $, 1인당 26,941$(2016)

공식 화폐

포린트 (Ft)

ccTLD

.hu

단위

시간대

중앙유럽 표준시 (UTC+01:00)

대한수교현황

1989년

국제연합(UN) 가입

1955년 12월 14일

위치

1. 개요
2. 국호
2.1. '마자르'를 어원으로 하는 명칭
2.2. 훈족을 어원으로 하는 명칭
3. 국기
4. 국장
5. 역사
6. 기후
7. 행정 구역
10. 대한관계
11. 경제
12. 사회
15.2. 기타 스포츠
16.1. 초/중등 교육
16.2. 고등 교육
16.4. 수학의 나라
17. 기타
18. 관련 문서

1. 개요

Isten, áldd meg a magyart! [2]

하느님, 헝가리를 축복하소서!

중앙유럽의 동남부에 위치한 국가. 수도부다페스트. 면적은 약 93,000㎢이다.

전 세계에 헝가리인은 약 1,300만 명에서 1,470만 명 정도 있으며, 그 중 850만 명에서 980만 명 정도에 해당하는 인구는 헝가리 본토에 있다. 약 220만명의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해체되기 전에 헝가리 왕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현재 이 지역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이다. 따라서, 지금도 헝가리 주변국인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에 꽤 많은 헝가리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1인당 GDP는 1만 3,171달러이며,[3]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는 1만 9,754달러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기계와 장비가 53%, 그외 다른 제조품들이 30%를 차지하고 수입품 역시 기계, 장비 등의 제조품이 70%를 차지한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힌다.

2. 국호

이 나라에서는 자국을 Magyarország, 즉 머저로르사그라 부른다. 이는 '머저르인(Magyar)의 나라(Ország)'[4]라는 의미이며 '머저르'는 헝가리에 있던 부족 중 하나인 magyeri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ㅓ' 발음은 중세 국어의 아래아 발음과 유사하다. 2012년 이전에는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 머저르 쾨즈타르셔샤그)이라고 했다.

한국어에서 사용하는 이름 '헝가리'는 영어 명칭 Hungary에서 유래한 것이다. 첫 글자인 h는 훈족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부분은 이 지역에 정착했었던 튀르크계 민족 연맹체인 On-Ogur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2.1. '마자르'를 어원으로 하는 명칭

2.2. 훈족을 어원으로 하는 명칭

3. 국기

가로형으로 된 삼색의 국기로 빨강, 하양, 초록으로 그려졌다. 빨강은 국력, 하양은 성실, 초록은 희망을 상징한다. 왕제 시절에는 왕가의 문장이 새겨졌고 공산화 당시에는 공산주의 문장이 새겨지기도 하였고 1989년 민주화 때 삭제되었다.

4. 국장

15세기 폴란드와 헝가리의 왕이던 브와디스와프 3세(또는 울라슬로 1세)(재위 : 1440~1444)와 헝가리 왕 마차시 1세(재위 : 1458~1490)가 고안하여 17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티아스(또는 마차시 2세)(재위 : 1608 ~ 1618)의 치세 대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문장이다. 1990년 민주화된 헝가리의 국장으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산화되기 직전 잠시 사용하고 1956년 반 소련 봉기를 일으켰을 때 사용하던 문장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으나 보수적이던 헝가리 정부는 구 왕국 시절의 것을 채택하였고 이 것이 그대로 수용되었다.

적백의 줄무늬는 헝가리 왕국의 초대 왕조인 아르파드 왕조의 상징이며 대주교 십자가는 12세기 말 헝가리의 명군인 벨러 3세가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으로 이후 헝가리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십자가와 왕관 밑의 3개의 봉우리는 헝가리 왕국에 존재하는 3개의 산맥인 타트라, 파트라, 마트라 산맥을 가리킨다. 20세기에 헝가리 왕국의 영토가 갈기갈기 찢어진 결과 마트라 산맥만 헝가리 영토 내에 있으며 타트라와 파트라 산맥은 슬로바키아 영토 내에 있다. 대주교 십자가와 3개의 봉우리는 수백년 간 헝가리의 일부였던 슬로바키아의 국기 밑 국장에도 그려져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왕관의 십자가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교황청에서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재위 : 1000~1038)의 즉위를 축하하면서 왕관을 보냈는데, 왕관을 담은 상자가 왕관 치수보다 작아서 뚜껑을 닫다가 그만 꼭대기의 십자가기 짓눌려 버렸다고. 이걸 고쳐야 하나 어쩌나 논의를 했지만, 국왕이 "교황께서 보낸 건데 손대지 말고 그냥 쓰자"...라고 해서 오늘까지 저 모양대로 남았다. 왕관은 국왕의 이름을 따서 '성 이슈트반 왕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헝가리에서 이 '성 이슈트반 왕관'의 상징성은 실로 대단해서, 다른 왕관처럼 단순히 헝가리의 국왕의 왕관 수준이 아니라 아예 헝가리의 국권 그 자체를 의미하는 물건이 되었다. '대타협'을 통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수립되었을 때도 헝가리 영토의 공식 명칭은 '성 이슈트반 왕관의 땅'이었으며, 이중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가즉위할 때도 이 왕관을 쓰는 대관식을 따로 행할 정도였다. 이 왕관은 2차대전소련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미군에게 맡겨 포트 녹스의 금괴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가 1978년 헝가리로 돌아왔다. 이후에는 헝가리의 국권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보관하고 있다.

5. 역사

헝가리의 역사
Magyar történelem

고대

중세~근세

근대

현대

판노니아

로마제국

마자르족

대공국

중세 왕국

오스만

오스트
리아 제국

오스트
리아-헝가리

제1공화국

근대 왕국

제2공화국

인민
공화국

헝가리

합스부르크

동헝가리

6. 기후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며 연평균 기온은 10.5℃, 연평균 강우량은 600㎜다. 겨울 평균기온은 -2℃~2℃이고 여름 평균기온은 23℃~25℃다.

7. 행정 구역

가장 큰 단위는 19개의 주(헝가리어로 메제-megye)인데, 일반적인 주 외에 주 안에 속한 광역시 개념의 도시주(메제이 바로시-megyei város)도 주와 동급으로 친다. 도시주는 주 별로 하나씩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절러나 죄르-모손-쇼프론, 촌그라드, 페예르 같이 두 곳이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주나 도시주가 아닌 특별시급 지자체로 별도 분류된다.

주 이름

도시주들

노그라드(Nógrád megye)

셜고터랸(Salgótarján)

바츠-키슈쿤(Bács-Kiskun megye)

케치케미트(Kecskemét)

버러녀(Baranya megye)

피츠(Pécs)

버슈(Vas megye)

솜버트헤이(Szombathely)

베스프림(Veszprém megye)

베스프림(Veszprém)

비키슈(Békés megye)

비키슈처버(Békéscsaba)

보르쇼드-어버우이-젬플린(Borsod-Abaúj-Zemplén megye)

미슈콜츠(Miskolc)

서볼츠-서트마르-베레그(Szabolcs-Szatmár-Bereg megye)

니레지하저(Nyíregyháza)

쇼모지(Somogy megye)

커포슈바르(Kaposvár)

야스-너지쿤-솔녹(Jász-Nagykun-Szolnok megye)

솔녹(Szolnok)

절러(Zala megye)

절러에게르세그(Zalaegerszeg)/너지커니저(Nagykanizsa)

죄르-모숀-쇼프론(Győr-Moson-Sopron megye)

죄르(Győr)/쇼프론(Sopron)

촌그라드(Csongrád megye)

세게드(Szeged)/호드메죄바샤르헤이(Hódmezővásárhely)

코마롬-에스테르곰(Komárom-Esztergom megye)

터터바녀(Tatabánya)

톨너(Tolna megye)

섹사르드(Szekszárd)

페슈트(Pest megye)

에르드(Érd)

페예르(Fejér megye)

시케슈페히르바르(Székesfehérvár)/두너우이바로슈(Dunaújváros)

허이두-비허르(Hajdú-Bihar megye)

데브레첸(Debrecen)

헤베슈(Heves megye)

에게르(Eger)

큐레이터는 한수연(배우)이다.

8. 군사

헝가리군 문서 참고.

9. 외교

슬로바키아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헝가리 정부의 슬로바키아인 탄압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다.심지어 헝가리 왕국 시절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던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을 침공하기도 했다.그런데 어떻게 독일과 동맹을 맺었을까 2010년, 헝가리 의회가 헝가리에 살고 있지 않은 헝가리인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려 하자 슬로바키아 정부가 반발한 적도 있다.[7]

그러나 슬로바키아의 형제국인 체코와는 사이가 좋은 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헝가리가 슬로바키아를 통치했던 것과는 달리 체코는 오스트리아 관할이었던데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에 막혀 있는 만큼 체코에 대한 감정은 딱히 나쁠 이유가 없다.

루마니아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 헝가리의 루마니아 지배와 1, 2차 대전 때 루마니아에게 빼앗긴 트란실바니아 등 영토들을 둘러싼 영유권 갈등으로 인해 서로 굉장히 싫어한다. 트리아농 조약으로 인해 루마니아 영토 내의 헝가리인들이 영토 변화로 고립되었는데, 그들이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차별받는다고 해서 불만이 크다.

러시아와도 역사적인 이유로 관계가 좋지 않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45년간 공산권에 편입되면서 경제 격차가 서방과 상당히 벌어진 전력이 있고. 또한 1956년 소련헝가리 침공으로 민주화 운동이 실패한 이래로 헝가리 국민들의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매우 나쁘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오르반 총리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친러정책을 취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정치적인 면에서 러시아를 높게 평가하는 발언도 했다.# 그리고 헝가리의 외무장관도 러시아 제재가 오히려 EU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고,# 러시아 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지하고 있다.# 2017년 2월 2일에 러시아와 헝가리는 정상회담을 하면서 원전건설에 드는 추가비용을 러시아가 100%빌려줄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와는 정치적으로도, 시민 인식으로도 매우 사이가 좋은 편이다.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동군연합 제국 시기를 거치며 오스트리아와 매우 많은 교류가 있었고[8], 이러한 역사적 동질감에 더불어 냉전 시기를 거치며 엄청난 격차로 벌어진 경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동경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두 나라의 정치인들도 서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다. 물론 사이가 안 좋은 경우도 있는데 이는 동군연합 이전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와의 대립 또는 분쟁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군연합 이후에는 좋아졌지만 헝가리 입장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지배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폴란드와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역사적으로도 서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9] 그리고 폴란드가 사법개혁으로 EU의 비판을 받자 헝가리측은 폴란드를 지지하면서 EU를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와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에는 우크라이나의 갈리치아가 헝가리쪽 영토에 속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자카르파탸 주에는 헝가리계 주민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헝가리어는 우크라이나의 지역공식어로 지정되어 있지만, 최근(2017년)에 우크라이나가 자국어강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민족언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반발했다.

10. 대한관계

우리나라 문헌에서 헝가리라는 나라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책에서이다. 이 책의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는 동남아와 서구 여러 나라의 지리적 위치나 민족, 토산물 등을 한시로 읊은 것인데, 그 중 헝가리에 대한 시 한 편이 있다. 여기서는 '옹가리아 翁加里亞'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헝가리의 영어 발음에 거의 근접한 음역어로서 이유원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전별 선물로 받은 황청직공도(皇淸織貢圖)에 나오는 한자 표기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1892년에 조선과 수교한 바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이 끝난 후 1989년 2월에 대한민국과 수교했다. 현재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과거 공산권 국가로서는 대한민국과 최초로 수교 관계를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는 북한의 동유럽 외교에 치명적 일격을 가한 사건이기도 하였다. 북한은 동유럽외교의 간판이었던 김평일 주헝가리 대사(김정일의 이복동생, 현 주체코 대사)를 소환하면서 공관도 대사대리(참사관)로 격하시켰다. 이듬해 7월부터 모든 동유럽권 유학생들의 철수가 단행되었다.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다.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 졸탄 코다이의 첫 번째 제자가 안익태다. 1956년 소련의 간섭에 시민들이 봉기, 5000명 가량이 사망하는 모습을 본 충청도의 한 초등학생이 유엔에 영문 편지를 보내 항의를 했는데, 그 학생이 지금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이런 인연으로 반 사무총장은 헝가리 봉기 50주년 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에도 헝가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북경까지 찾아와 의열단에 고성능 폭탄을 제공한 외국인 협력자가 헝가리인으로 추측된다. 그에 대해서는 마자르라고 불렸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진짜 헝가리 사람인지, 그 정체는 무엇인지 온갖 다양한 설이 난무하는 미스테리한 인물.

11. 경제

12. 사회

인텔의 회장인 앤드루 스티븐 그로브(Andrew Stephen Grove)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유대인(Zsidók)이다.[10] 그로브의 헝가리식 이름은 '그로프 언드라시 이슈트반(Gróf András István)'. 볼펜을 발명한 헝가리인 기자인 비로 라슬로 요제프(Bíró László József)도 유대인이다.

이 나라도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나라로 타 동유럽 국가들은 동구권 체제 붕괴 이후에 인구 감소가 시작한 반면에 헝가리는 이미 1981년에 고점을 찍은 이후로부터 현재까지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나라다.[11] 그래도 이민오는 사람은 많아서 세르비아루마니아보다는 인구감소폭이 덜한 편이다.

헝가리는 1980~90년대까지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아 거의 세계 1위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이후 한국이 자살률 1위를 하게 된 2000년대 이후로는 점진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하여 2010년대 들어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아무튼 1990년대 초반까지는 자살률이 높아서 타 유럽인들에게 전반적으로 우울한 나라라는 관념이 자리잡아 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글루미 선데이(Szomorú vasárnap) 같은 노래가 괜히 나온 나라가 아니다. 노래 자체도 우울하고[12] 도시전설이 조금 섞여 과장되었지만 노래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12.1. 종교

헝가리의 종교 지도 (2001년 기준). 적색과 오렌지색은 가톨릭(적색은 라틴 교회, 오렌지색은 동방 가톨릭 교회), 청색은 개혁교회, 녹색은 루터교회, 갈색은 기타 종교가 우세한 지역이다. 종교적 분포가 크게 동서로 나뉘는 모양새다.

  • 가톨릭

헝가리는 동로마 제국 시대에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10세기의 왕이었던 성 이슈트반이 스스로 교황에게서 세례를 받고 교구를 설립하면서부터, 이 나라는 체코, 폴란드와 함께 중부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헝가리는 중세에 오스만 제국이슬람 세력에게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당해, 교회도 백성도 2등 시민(딤미) 내지는 식민지 상태의 오욕을 겪어야 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물러가자,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일궈내서 1차 세계대전까지는 중앙 유럽의 강자로 위세를 떨치며 살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는 현재의 4배 이상이었고 교회도 강성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2차 대전 이후에는 헝가리가 공산주의 블럭에 속하게 된 후 교회에 대한 제한과 핍박이 시작되었고, 헝가리 가톨릭은 다시 고난의 시기를 맞게 된다.

헝가리식 공산주의는 과거 동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한이나 루마니아에서는 수천 수만 명의 군중집회, 집체예술, 일체의 종교 금지로 상징되는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헝가리는 동독처럼 형식적으로는 법적 자유를 인정하는, 우리에게는 낯선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당시 부다페스트에는, 중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유대교랍비 신학교가 운영되어 랍비들을 길러냈고, 가톨릭 미사나 신학교도 허용되었다. 이렇듯 표면적으로는 종교인들에게 아무런 사회적 차별과 구속이 없었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탄압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주교들은 자유롭게 전례를 집전하고 사제관에서 살 수 있었지만, 실제 많은 주교들이 사제관과 성당 외에는 일체 외출할 수 없었고, 모든 편지와 만남이 철저히 감시되는 식이었다. 공산주의 혁명 전에는 전국 중고등학교의 70% 이상을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지만, 혁명 후에는 전국에 8개만 남기고 모두 국유화되었다. 미사와 신학교는 허용되었지만, 성당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행사는 금지되었고, 성당의 개축을 위한 예산집행도 불가능했다. 열심한 종교인들은 이따금 공산주의 정권 당국으로부터 개인당 20kg 이하의 짐만 꾸려서 저 멀리 시골 마을로 신속히 이사하라는 사실상의 추방 명령을 받곤 했다.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인민들이 ‘자유’를 외쳤던 “프라하의 봄”보다 정확히 12년 전, 헝가리에서는 그런 인민들의 저항이 있었다. 그 인민봉기도 소련의 탱크에 짓밟히고 진압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와 공산당 붕괴를 외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등장했던 민드센티 요제프(Mindszenty József) 추기경이 1956년 구속되어 감금되자, 헝가리 교회와 공산정권의 관계는 급속히 나빠졌다. 공산주의 정권은 감옥에 갇혀 헝가리 인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민첸티 추기경을 함부로 처단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서구의 외교적 노력에 힘입어 20년 뒤인 1976년 국외망명길에 오른다. 이 사건은 공산주의 정권도 결국 추기경을 꺾을 수 없었다는 의미로 헝가리 인민들의 가슴에 남게 된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로는 완전한 수준의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었지만, 이내 유럽을 휩쓴 세속화 열풍과 핍박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난점이 매우 많다. 헝가리 가톨릭교회도 현재 성소가 턱없이 모자라서 고민 중이다. 특히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이지 못해 고민이다. 오랫동안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들인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리 지식이 거의 없고, 교회는 아직 이런 큰 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큰 문제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 돌보지 못한 건물과 문화재를 관리할 재력과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명목상 신자 수도 계속 줄고있고 교리교사, 신학자 등 교회의 일꾼들도 크게 모자란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다. 최근 헝가리 교회는 독일처럼 종교세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가난한 나라의 아무런 강제조항이 없는 세금인지라 아직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가지 반가운 희망의 징조는 이 종교세를 내는 평신도들의 숫자와 금액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난다는 일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견뎌낸 고난과 지켜낸 도덕성에 대한 보답에서인지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는 헝가리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한다. 현재 통계는 인구의 약 40%가 가톨릭 신자이고, 1990년 공산주의 붕괴 당시 전무하던 교회 계통의 초중고 교육기관이 급속히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헝가리 최초의 왕인 이슈트반 1세는 가톨릭 성인이고,[13] 헝가리의 마지막 왕인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더 유명한 카로이 4세는 가톨릭의 복자이다. 다시 말해, 헝가리 최초의 왕과 마지막 왕이 나란히 가톨릭의 성인과 복자라는 것. '성 이슈트반 왕관의 영토'라는 옛 명칭이 아깝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개신교

개혁교회와 루터교 신자 비율은 각각 11%, 2% 정도다. 체코의 개신교가 합스부르크 지배와 공산 정권을 거치며 사실상 거의 영향력을 잃은 것을 감안하면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개신교가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미 16세기에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았고, 헝가리 개혁교회가 설립되었을 정도. 그리고 이들의 절반 이상이 데브레첸을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에 대부분 몰려있다. 옆동네인 루마니아와도 연관이 있는데, 트란실바니아 지역이 대부분 과거에는 헝가리 땅이었다가 1차대전이 끝나고 트리아농 조약으로 루마니아에 할양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개신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들은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초기에 가톨릭 성직자들이 피신한 공백을 개신교 목사들이 차지한 것이었고, 오스만 측에서도 가톨릭보다는 개신교가 말도 통하고 통제하기도 쉽다고 생각했는지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스만의 지배를 벗어난 뒤에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겪게 되면서 한때 강경하게 탄압을 받거나 여러 모로 차별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나중에 역시 개신교에 유화적인 자세로 돌아서면서 한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개신교 지분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많은 지역 상당수가 졸지에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로 들어가 버리고 데브레첸 등 소수 지역만이 온전한 헝가리 영토로 남게 된 것이다.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루마니아트란실바니아 지역이나 슬로바키아에 거주하는 헝가리계 주민들 사이에서는 헝가리 본토인들보다 개신교 신자 비율이 상당히 높다. 루마니아 거주 헝가리인들의 경우 47%까지 올라갈 정도. 그리고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있는 개신교 예배당들을 가보면 대부분 헝가리 국기를 걸어놓고 현지어가 아닌 헝가리어 위주로 예배를 진행한다.

현재 헝가리 개혁교단은 타 국가의 칼뱅주의 교회와 달리 중앙집권 성향이 강한 감독제이며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성향과 다르게 역사적 이유로 세속적 윤리에 대한 관점이나 정치적 스탠스는 생각보다 반공 보수적인 편.[14] 아예 요빅과 개인적으로 발이 닿아있는 목사들도 많다.

13. 언어

헝가리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15] 헝가리 안에도 다른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인, 집시, 루마니아인 등도 대부분 헝가리어를 구사할 줄 안다. 주요 외국어는 공산정권 시절에는 러시아어였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16]

14. 문화

헝가리의 농촌 풍경은 동양과 매우 유사해 '1989년' 이후의 유럽 민속학자와 풍속연구가들에게 흥미있는 연구 사료였다. 이는 마자르인의 이동 이후 천 년이 넘도록 헝가리인이 아시아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헝가리인들의 아시아적 특성이라면 그들의 언어에도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랄어 혹은 핀-우고르어파에 속하며 언어체계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와 매우 유사한데, 날짜 표기를 유럽권에서 널리 쓰이는 '일월년' 방식이 아닌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는 '년월일' 방식을 쓰며,[17][18] 실제로 헝가리인들은 '이름'은 동아시아의 나라들처럼 '성'이 먼저 오고 '이름'이 나중에 온다. 물론 유럽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그들도 필요에 따라 '명名+성姓'의 방식을 드물게 쓰기도 하지만 '성+명'의 방식이 공식적이자 일반적인 이름 표기 방식이다. 주소를 적을 때도 일반적으로 작은 행정 구역에서 큰 행정구역을 적는 서구권과 달리 동양처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이런 식으로 큰 곳에서부터 작은 곳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상반되게 또 한편으로 헝가리는 타타르의 침공,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에 맞서 비(非)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유럽과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감내했다는 점에 대해서 유럽인으로서의 역사도 가지고 있다.

이 마자르인들은 정착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종상으로는 주변 유럽민족(주로 게르만, 슬라브 등)으로 동화됐는데, 서기 1000년 경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유럽 문화에 편입된 이후부터 1100년 동안 유럽의 한 일원으로 존재해 오고 있다. 헝가리어나 헝가리식 이름도 보면 게르만계통의 언어들과 비슷한 단어들이 많은데(혹은 소수의 단어들은 슬라브어계통과 비슷한 단어도 보인다) 이 역시 헝가리에 있었던 게르만이나 슬라브 등 백인계 민족과 융화되어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19]

헝가리의 예술품과 건축물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아르누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음악에 있어서는 프란츠 리스트, 벨라 바르톡, 리게티 죄르지, 치프라 죄르지, 페렌츠 에르켈 등의 세계적인 음악가가 있다.

문학은 허세 부리는 송가, 자유를 갈망하는 시, 대담한 리얼리즘 이야기, 귀에 거슬리는 논쟁 등이 알려져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와 현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방문객>의 콘라드 죄르지 등의 작가가 유명하다.

크진 않지만, 나름 유명한 영화와 영화 감독들을 배출한 나라기도 하다. 미클로쉬 얀초, 일디코 옌예디, 코르넬 문드럭초, 벨라 타르, 라즐로 네메스 등 동유럽 영화계에서 의외로 비중이 있다. 한국에서도 간간히 소개되는 편이다. 토리노의 말이라던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사울의 아들, 화이트 갓이 대표적.

헝가리의 전통의상은 지역마다 조금씩 무늬와 특징이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헝가리의 전통의상은 화려한 색체로 옷에 수놓아져 있는 꽃문양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의상은 크게 백성층과 왕족 및 귀족층의 의상으로 나뉘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통의상의 대부분은 백성층의 의상이라고 보면 된다. 한복이나 치파오처럼 전통의상 자체를 칭하는 단어는 없고 특정 지역 명칭 다음에 헝가리어로 전통 의상을 뜻하는 NÉPVISELET(네프비셸레트)를 붙인다.

인구의 대부분은 헝가리인이지만, 독일인 17만명, 슬로바키아인 12만명 등도 거주하고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는 사이에 공산 정부가 무너진 이후 1999년 NATO, 2004년 EU에 가맹해 현재는 서방권에 있다.

14.1. 요리

와인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화이트 디저트 와인인 토카이 아수(Tokaji Aszú) 와인이 있는데, 당도에 따라 별 3개에서 6개(정확히는 사용된 Putton의 양)로 등급을 나눈다. 별이 많을수록 달고 비싸다. 별 6개보다 높은 등급은 Aszú-Eszencia와 Eszencia가 있으며, Eszencia가 최상급이다.

레드 와인으로는 에그리 비커베르(Egri Bikavér)가 유명하다. 뜻을 직역하면 Bull's Blood. 오스만 제국쉴레이만 1세가 헝가리를 정복하기 위해 침공했을 당시, Eger 성에서 공성전을 벌일 때 오스만 제국 병사들 사이에 헝가리 병사들이 마시는 와인에 황소의 피가 섞여있어서 지치지 않고 저항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헝가리 장병들은 이 와인을 얼굴에 바르고 싸웠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Eger 성이 함락되었고, 헝가리는 정복당했지만, 당시 대 제국에 저항해 맞서 싸웠던 조상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와인에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밖에 팔린커(Pálinka) 라는 술 또한 유명하다. 알콜도수는 40도에서 70도까지 다양하며, 과실주를 증류해서 만든 브랜디의 일종이다. 살구, 사과, 자두, 체리 등의 과일향이 첨가되어 있으며, 특징은 고량주와 같이 독하면서 금방 술이 오르지만, 금방 깬다. 고량주와 차이점은 뒷맛이 고량주와 같은 독특한 향이 없고 깔끔하다. 유럽의 알아주는 주당 헝가리 사람들이 우리나라 소주처럼 즐기는 매우 인기있는 술이며, 토커이 어수는 한국에 수입이 되지만 팔린커는 수입해서 파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헝가리를 갈 일이 있으면 꼭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

헝가리의 전통 수프굴라쉬[20] 는 유럽 전역에서 유명한 요리다. 어째선지 한국에서는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 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굴라쉬 외에 파프리카가 잔뜩 들어간 수프로는 헐라슬레(halászlé)가 있으며 특히 버여(Baja)란 마을에서 즐겨먹는다고 한다. 재료나 조리법에서 매운탕이 연상되지만 당연히 덜 맵다.

또한 윈터 살라미를 비롯한 돼지고기도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헝가리에서는 멍걸리처라는 품종의 돼지를 기르는데, 일반적인 돼지와 다르게 털이 북실북실한 것이 특징이다.

헝가리는 질 좋은 식재료가 풍부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 때문에 단순한 고기나 감자 요리도 재료맛으로만 먹을 수 있을 정도이며, 실제 과일 맛이 나는 과일 주스나 셔벗도 굉장히 다양하다. 헝가리에 가면 꼭 치즈나 유제품으로 만든 디저트, 고기를 먹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헝가리 음식들은 어째서인지 엄청난 소금간(..)때문에 조금 먹기가 괴롭다. 현지인들이 가는 레스토랑 중에서는 1인분에 징그럽게 많은 양을 주는 곳도 꽤 있다. 헝가리인들은 그 정도 먹는듯. 사실 이런 식습관 때문인지 2013년 OECD 자료에 따르면 비만율이 굉장히 심각한 편으로 나왔다. 영국을 제치고 유럽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OECD/보건의료 항목에서도 암으로 인한 사망률 1위는 헝가리로 나왔는데, 이 역시 식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2010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이마트 피자의 박스에 원래 이탈리아 국기를 넣어야 하는 걸 세로방향으로 들어가야 할 줄무늬가 가로무늬로 들어가는 바람에 졸지에 헝가리 국기가 돼서 피자가 이 나라 전통 음식이라는 개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그외 유럽연합의 지리적 표시와 전통 특산품 제도에 등록된 식재료는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 항목 참조.

15. 스포츠

작은 나라지만, 스포츠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15.1. 축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38년1954년월드컵 준우승을 했을 정도의 강팀이었다. 1950년 6월 ~ 1956년 2월까지 A매치 50경기에서 42승 7무 1패로 가히 유럽 최강이라고 불릴만 했다. 저기서 유일한 1패는 슬프게도 1954년 월드컵 결승전 서독과의 경기다. 1953년 11월, 홈구장인 런던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던 잉글랜드를 6:3으로 개박살을 내버렸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상 첫 상대가 바로 헝가리다. 이날 헝가리의 9:0 승리는 월드컵 최고 점수차 경기로 남게 되었고 28년 후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엘살바도르를 10:1로 이기면서 기록을 하나 추가한다. 50년대 황금기 팀을 이끌었던 핵심 선수는 페렌츠 푸스카스, 산도르 코츠시스, 난도르 히데쿠티 등이었고 이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푸스카스다. 당시 이들의 별명이 매직 마자르였는데 이에 걸맞는 별명이었다는 평가.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상 첫 실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국제축구연맹 FIFA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인 푸스카스 어워드의 이름이 바로 이 선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더 자세한 것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15.2. 기타 스포츠

중소국이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는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올림픽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시절, 1896 아테네 올림픽부터 독자적으로 참가하여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인 1920 앤트워프 올림픽[21]과 동구권이 보이코트한 1984 LA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동하계 올림픽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헝가리는 동구권 공산국가가 스포츠 분야에서 주목을 나타내기 전부터 이미 스포츠 강국으로 알려져,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도 종합 3위의 위업을 달성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다른 동구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산권 방식의 스포츠 육성정책을 병행하여 작은 나라이면서도 메달 종합순위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의 위엄을 자랑하였다. 때문에 헝가리는 역대 하계올림픽에서 모두 167개의 금메달을 획득, 세계에서 8번째로 하계 올림픽 금메달을 많이 딴 나라다.# 강세종목으로는 펜싱, 수영, 카누, 근대5종, 수구 등이 꼽히며, 특히 근대 5종과 수구는 헝가리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다. 내륙국인데도 수영, 카누, 수구 같은 물에서 하는 종목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동구권 붕괴 후 다른 공산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예전의 스포츠 육성 프로그램도 붕괴하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개에 그치며 종합순위 21위까지 떨어졌으나,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펜싱, 카누, 수영 등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며 금메달 8개에 종합순위 9위로 다시 10위권에 복귀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8개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로 종합 12위를 기록했다.

동계스포츠는 다소 부진한 편이다. 국토 전체가 평탄하여 알파인 스키를 즐기기에는 부적합하고[22], 눈도 많이 안와 노르딕 스키도 잘 안하는 편이라 그런듯 하다. 빙상 종목도 육성할 듯 싶으나, 여의치 않은 듯하다. 역대 동계올림픽에는 빠지지 않고 모두 참가했으나, 피겨스케이팅 한 종목에서만 은메달 2개와 동메달 4개를 획득한 데에 그쳐 하계올림픽에 비해서는 훨씬 부진한 편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결국 첫 금메달을 따냈다. 종목은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1986년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F1 대회가 헝가로링에서 개최되고 있다.

야구도 한다. 헝가리 야구 국가대표팀 참조.

16. 교육

16.1. 초/중등 교육

초등교육은 6~14세까지 8년과정의 기초교육을 받게 된다. 우수한 학생은 6년과정을 마치고 바로 상급학교로 진학 가능하다.

중등교육의 경우 14~17세까지 4년과정의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인문계 학교와 실업학교, 산업체학교, 중급직업학교로 진학 등이 있다.

외국어 과목은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이 있고 독일, 오스트리아와 가까워 제2외국어로 독일어가 선호될 정도.

16.2. 고등 교육

3~4년과정의 전문대학과 5~6년과정의 University로 구분되는데 University의 경우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졸업학위를 받은 뒤 바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수 있다.

16.3. 의과대학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헝가리 유학 중에 가장 유명한 코스. 2010년 즈음부터 시작된 유학 열풍으로 인하여 헝가리 총 4곳의 의대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꽤 많다. 부다페스트 세멜바이스 대학, 데브레첸 대학, 페치대학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선택하는 코스는 영어 코스이다. 당연하게도 헝가리어 코스도 있고 인접한 나라들이 사용하는 독일어 코스도 있다. 학비는 아무리 동유럽이라도 유럽이라는 네임에 비해서 생각보단 비싸지 않다. 2014~15학년도 기준으로 1년 학비는 $17,500(한화로 약 2천만원 정도 된다)정도 되지만 물가가 아주 저렴한 나라도 아니고 아예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이고 먹거리 조달등도 쉽지 않아 생활비까지 거의 두세 배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다만 교수들의 억양에 헝가리어나 독일어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공부하는에 에로 사항이 있다. 알아듣기 쉽지는 않다고 하지만, 몇몇은 차라리 그래서 알아듣기 쉽다는 학생들도 많다.예를들어 w를 v처럼 발음한다거나 j를 y로 발음한다거나

이곳에서 딴 학위는 유럽 연합 곳곳에서 인정된다.

하지만 문제는 인정된다고 해도 의사 활동을 하는 것과는 매우 별개이다.

당연히 국적이 없는데 개업 혹은 고용 허가를 내줄 리가 만무하다. 온갖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캐나다만 해도 의사로 일하려면 최소한 영주권을 가진 상태여야만 하고 아예 의대 입학이 영주권자 이상이 아니면 매우 힘들다. 게다가 역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에게 영어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그 의사를 찾아갈 리도 만무하며 병원에서 그 의사를 고용할 리도 만무하다. 영주권이 있어도 해당 국가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거의 일자리를 못 구한다고 봐야 한다. 독일 같이 의사가 부족한 나라에서 원하는 레벨도 유럽언어기준 C1이다. 쉽게말해서 10년정도 그 나라 교육과정을 이수한 모국어 화자에 비해서 약간 떨어진 수준이어야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영어가 된다고 영국이나 아일랜드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의사를 하겠다는 것은 특히나 더욱 불가능한데, 영국은 국가에서 거의 엄격하게 의료 자원[23]을 관리하니 들어갈 틈이 거의 없고, 아일랜드는 국영의료체계는 없지만 의사들 내부에서의 장벽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결국 돌아돌아 USMLE를 따는 방법 밖에 없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미국 영주권 이상이 아닌 이상 굉장히 힘들고 외국 영주권을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의료 인재들과 경쟁해서 제대로 된 병원에 매칭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ECFMG 자격을 획득하고 아주 이름 없는 병원에서 수련한 뒤 USMLE step3까지 마치고 이름 없는 시골이나 한인 타운을 상대로 개원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헝가리에서의 공부 + 헝가리 의사시험 + USMLE + 영주권 획득 + 매칭 + 수련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강도를 들여야지, 가능하다.

차라리 이런 노력으로 헝가리 의사 할 바에야 한국에서 수능을 5수쯤 해서 의대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실상을 낱낱히 까보면 헝가리 의대 유학이라는 달콤한 말로 학생들을 꼬시지만 대학에서는 학위 장사이고 도피 유학에 가깝다. EU의 시민권이 있거나 미국의 시민권자라면 헝가리 의대로의 유학도 나쁘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한국 국적자들이다 이런 경우 한국 복귀를 꿈꾸는 경우들이 많은데 세멜바이스와 데브레첸의 경우 한국에서도 의사 예비 시험 자격 요건이 되며 이를 통해 세멜바이스 대학 졸업 후 한국 의사 자격을 인정받아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의사 예비 시험이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의대로 인정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일하기 적합한지 따지는 시험 제도로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한창 때는 수백 명이 시험 봐도 일 년에 2~3명 합격하는 수준이었다. 위에 소개된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경우 솔직한 말로 수능을 의사 예비시험을 합격 정도로 공부했다면 차라리 의대도 들어갔을 만한 수준으로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확실히 합격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이후 국가고시 또한 한국 의대생들에 비해 턱없이 힘들다고 느끼고 그 국시장벽을 뚫고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수련을 위해 들어간 병원에서의 고립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한국 리턴이 가장 어렵고 고되다. 2015년에 페치 의과대학이 국시 인증대학에 추가되었다.

16.4. 수학의 나라

예로부터 존 폰 노이만, 에르되시 팔(Erdős Pál) 등의 대가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컴퓨터와 연관된 이산수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가다. 그 외에 함수해석학의 개척자인 리스(Riesz), 조합론, 확률론 등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포여 죄르지(Pólya György), 수학의 노벨상인 울프상 아벨상 수상자인 로바스 라슬로(Lovász László), 세메레디 엔드레(Szemerédi Endre) 등 수없이 많은 수학자들이 있다.

헝가리안 표기법으로도 유명하다. 프로그래밍에서 변수나 객체 등의 이름에 접두어를 사용하는 방식인데, 헝가리 출신의 프로그래머가 이 방식을 사용하여 효율적인 프로그래밍을 한 데서 유래한다.

17. 기타

  • 한국어 공식 국가명 중 유일하게 'ㅎ'으로 시작하는 국명이다. 국가/목록 참고. 즉 국가목록 전체에 수동으로 수정을 가하면 이 항목이 마지막이다.
  •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는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이라는 피아노곡집을 냈다. 그 중에서 2번이 대중적으로 유명하다(헝가리 광시곡 2번).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도 21곡의 "헝가리 무곡"(Hungarian Dance) 관현악곡을 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5번이다.
  • 헝가리의 댄스그룹 '뉴튼 패밀리'의 노래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이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빅히트했다. 헝가리 대중가요가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았던 모양. 이를 계기로 '뉴튼 패밀리'는 1986년 MBC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뉴튼 패밀리'의 보컬 에바 선은 그 서울국제가요제에 초대된 독일 밴드 '칭기즈 칸'의 드러머 레슬리 만도키와 커플이 되었다. 참고로 레슬리 만도키도 헝가리인이다. 레슬리 만도키는 에바 선과 서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Korea'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고, 레슬리 만도키와 에바 선이 함께 부른 '코리아'는 우리나라와 헝가리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3인조 여성 그룹 '소녀대'가 '코리아'를 리메이크한 것도 상당히 히트를 쳤다.동영상 참조
  • 미남미녀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수퍼모델급의 미녀들이 많이 발굴된다. 바바라 팔빈도 이 나라 출신.
  • 그래서인지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권의 포르노가 유명하다는데 엄밀히 말하면 배우 풀이 넓고 다양하다. 결코 좋은 의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가별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가 무엇인가'를 이미지화한 해당 인포그래픽을 보면 빼도박도 못하는 결과가 나와있다(...).[24]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 결과를 산출했는지는 해당 기사를 참고.
  • 아우디가 헝가리 북서부의 죄르(Győr)에 현지공장을 갖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골프 기반의 전륜구동 경량 스포츠카인 TT와 소형 세단/해치백인 A3를 생산 중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헝가리 중부의 케치케메이트 현지공장에서 CLA클래스를 생산 중이다. 독일의 유명 변속기 제조업체인 ZF도 헝가리에 현지공장이 있다.

1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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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브렉시트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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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남한에서 충청북도를 제외한 정도의 크기
  2. [2] 헝가리 국가 Himnusz의 첫 소절
  3. [3] 전세계 50위권.
  4. [4] 헝가리어로는 러시아터키, 프랑스 같은 나라도 Oroszország, Törökország, Franciaország이라고 쓴다. 이 역시 러시아인(Orosz)이나 터키인(Török), 프랑스인(Francia)의 나라(Ország)라는 의미.
  5. [5] 첫 음절에 강세가 들어가기 때문에 a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실제 대화 시에는 hungry와 굉장히 비슷하게 들린다.
  6. [6] 우크라이나어에서의 щ는 러시아어와 달리 ш+ч가 혼합된 음이다.
  7. [7] 슬로바키아에는 8% 정도의 헝가리인들이 살고 있다.
  8. [8] 하이든 등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유명한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 역시 원래 헝가리 귀족이다.
  9. [9] 헝가리와 폴란드는 한때 같은 왕을 모셨는데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폴란드의 야기에우워 왕조는 리투아니아, 보헤미아, 헝가리까지 통치하였다고 한다.사실상 폴란드에 헝가리가 종속되있다.
  10. [10] 율리시스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는 1928년 부다페스트를 여행하곤 "여긴 유다페스트(Judapest)다."라고 글을 남긴 바 있는데. 여기서 유다는 Jew(유대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만큼 유대인이 많은 곳이라고 쓴 것으로 유대인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앤드루 그로브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달아나야 했다.
  11. [11] 1980년대 헝가리의 출산율은 대략 1.7-1.8정도를 기록하는 수준으로 아주 낮은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인구감소가 시작된건 1960년대에 이미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였기 때문(1.7-1.8명대.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낮은건 아니지만 당대 기준으로는 매우 낮은 수치다).
  12. [12] 원곡은 가사가 없지만 그 뒤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헝가리어 가사는 연인이 일요일에 죽어서 늘 일요일만 되면 슬퍼하다가 결국 일요일에 자살하는 내용이다
  13. [13] 참고로 헝가리 정교회에서는 2000년 8월 21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 이슈트반 성당에서 성 이슈트반을 정교회의 성인으로 인정하였다. 이로써 성 이슈트반은 그리스도교가 가톨릭과 정교회로 분리된 1054년 이후 가톨릭의 성인이 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공식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되었다.
  14. [14] 차우셰스쿠를 끝내 벌집으로 만든 루마니아 혁명도 헝가리인 교회를 건드린 게 시발점이었다.
  15. [15] 헝가리어는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에도 사용자가 존재해 있다.
  16. [16] 반면, 반러 감정 때문에 러시아어는 배우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러시아가 큰 나라기 때문에 주요 외국어로는 배우고 있다. 영불독어 중에서 독일어가 인기로, 독일어는 할 줄 알지만 영어는 못하는 사람도 많다.
  17. [17] 유럽권에서 '년월일' 방식을 주로 쓰는 나라는 헝가리 외에 리투아니아 정도이다.
  18. [18] 그런데 국제 표준인 ISO 방식으로는 사실 'YYYY-MM-DD' 방식이 표준이다.
  19. [19] 이는 헝가리 뿐 아니라 같은 우랄계 민족에 속했던 핀란드에스토니아도 마찬가지이다.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권과 융화를, 에스토니아는 발트 지역 및 슬라브 등과 융화되었다.
  20. [20] 일반적으로 굴라시라 알려져 있지만 헝가리어 본토 발음은 '구야시(Gulyás)'. ly의 경우 l은 묵음.
  21. [21]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8년 동하계 올림픽에는 참가했다.
  22. [22] 헝가리에 사는 사람들은 아예 스키를 타러 차 타고 오스트리아까지 원정을 갈 정도. 부다페스트에서도 자가용으로 2시간이면 오스트리아에 닿을 정도이니.
  23. [23] 의사도 의대도 의료 자원이다. 돈만 자원이 아니다.
  24. [24] 이전 버전에선 취소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실제로 통계적인 뒷받침도 되어 있다. 2013년 자료인데, 업계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인물들의 출신지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 바로 아래 순위가 이 분야 인재풀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체코 공화국이다. 그만큼 업계에서 눈독들이는 체형과 미모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뜻이겠지만 이 바닥이 원체... 참고로 이탈리아에서 국회의원까지 했던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도 사실 헝가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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