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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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어: Ὅμηρος (호메로스)

그리스어: Όμηρος (오미로스)

영어: Homeros, Homer (호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호메로스의 신격화(L'Apothéose d'Homère)[1]

약 기원전 800년 ~ 기원전 750년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시인. 워낙에 알려진 게 없어 온갖 설이 다 있는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는 설, 심지어는 여자였다는 설도 존재하지만, 편의상 남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를 눈 먼 시인으로 부른 고대의 문호들도 있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이 어근을 따져보면 눈이 멀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는 주로 눈 먼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2] 아르놀트 하우저는 호메로스를 전혀 역사적인 확실성이 없으며 그저 도리스 침공 이전 그리스 궁정에서 형성된 영웅시가 이오니아 시대의 서사시로 발전해나간 과정을 총괄해서 일컫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명한 작품은 오디세이아(Odysseia)와 일리아스(Ilias)가 있다. 그의 출생지나 활동에 대해서는 그 연대가 일치하지 않으나, 작품에 구사된 언어나 작품 중의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앞의 두 작품의 성립연대는 기원전 800년 ~ 기원전 750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성장지로 추측되는 도시가 7군데나 되나[3] 그중 소아시아의 스미르나(현재 이즈미르)와 키오스섬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이 지방을 중심으로 서사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이오스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앞의 2대 서사시 외에 호메로스 찬가라는 일군(一群)의 찬가집(讚歌集)이나 익살스러운 풍자시 마르기테스와서회전(蛙鼠會戰) 등 몇 가지 서사시가 그의 작품이라고 하나 이것도 불명확하다. 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동일인의 작품이냐의 문제로 오래전부터 논쟁이 많았다. 18세기 후반 F.A.월프가 호메로스 서설(序說, 1795)을 발표한 이래, 그의 존재 그 자체와 작품의 성립과정, 2대 서사시의 작자의 진부(眞否) 등 여러 가지 시비가 있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두 서사시가 한 작가에 의해 씌어졌다는 통합론과, 언어, 문체, 사고방식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작가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는 분리론의 논쟁이다. 분리론자 중에서도 영국 작가인 새뮤얼 버틀러 (1835-1902)는 1897년에 "오디세이아의 여성 저자 (The Authoress of Odyssey)"라는 책을 통해 오디세이아가 여성에 의해 씌어진게 아닌가 하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근거로는 오디세이아가 전쟁이나 항해와 같은 고대 남성의 직업 영역에 대해서는 오류가 있고, 가정 생활 등에 대해서는 자세하며, 칼립소, 키르케, 나우시카, 페넬로페와 같은 여성들은 개성있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남성 등장 인물들의 묘사는 상대적으로 단조롭다는 점이다. 이 가설은 당대에도 버나드 쇼 등의 지지를 받았고, 후대에도 콜린 윌슨 등이 지지하였다.

일리아스는 1만 5693행(行), 오디세이아는 1만 2110행의 장편 서사시이며, 각각 24권으로 되어 있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 그 후의 문학 ·교육 ·사고(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고, 로마제국과 그 후 서사시의 규범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도 받았다.

우선 고대서부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사실성에 의문을 던지며 그를 사기꾼이라고 비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데다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부흥기에 호메로스는 더 이상 교육의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며 당시 아테네의 우월성을 주장했으며[4] 중세 당시 제프리 초서는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의 이야기를 쓰며 비기독교적인 호메로스를 비판했다.

즉, 대부분의 경우 호메로스의 비사실성을 비판한 것인데, 이는 오늘날에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가 발굴되고 발굴초기엔 작은 크기로 여겨졌던 트로이가 현재는 발굴 초기보다 약 17배가량 컸던 대도시였음이 알려짐에 따라 학자들 사이에선 호메로스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을 때 주의할 것은 그의 작품은 그의 생존 시의 사람들에겐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이야기라 따로 배경 설명이 필요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독자의 경우 배경지식이 없으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니 주의.

사실 트로이의 존재가 아니라도 호메로스의 저작들은 역사적 가치가 엄청난데, 호메로스의 추정 생존년대가 바로 고대 그리스 암흑시대(Greek Dark Ages)이기 때문이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른 것이 정체와 퇴보 등의 부정적 의미에서 비롯되었다[5]면, 이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약 기원전 1200년대 도리아인들에 의해서 미케네 문명이 붕괴되고, 바다 민족들이 한 번 설치고 지나간 다음에 간신히 폴리스로 유명한 고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기원전 700년대까지의 이 기간 동안 문헌 기록이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심지어 폴리스 인들은 크레타 문명이나 미케네 문명의 유적의 정체를 몰랐다.[6]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암흑시대가 아니라 미케네 문명 시기이다. 하지만 음유시인이지 역사가가 아닌 호메로스는 미케네 문명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해서 작품을 지은 것이 아니라 당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서사시를 지어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왕에 해당하는 바실레오스(basileus)나 왕들 중 연맹장(중국 춘추시대의 패자와 유사)에 해당하는 anax와 같은 정체체제. 귀족들의 집인 동시에 농업 경영의 단위였던 오이코스(Oikos)나 상인들에서 보이는 경제체제, 생활상황, 전쟁모습 등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통해서 말이다. 때문에 이 시대는 이른바 서사시 시대(the age of epic poetry) 또는 좀 더 노골적으로 호메로스 시대(Homeric Age)라고 불린다.

철학계에서도 호메로스의 가치는 대단히 높은데, 아주 예전에는 그리스 고전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것에서부터 철학 공부가 시작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리스 고전 철학자들 모두가 호메로스의 텍스트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고 호메로스를 기반으로 논의나 사고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져, 고전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하는 대신 호메로스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단 우리나라는 철학과에 들어오거나 호기심 삼아 철학 입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서양과 달리 고대 그리스 시대가 너무 생소하기 때문에 호메로스부터 시작했다가는 철학 입문 수업 시간을 많이 날려먹기 때문에 그냥 그리스 고전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한다. 어쨌든 고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해에 있어서 호메로스덤으로 헤시오도스가 엄청난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필히 읽어두어야 한다.

헤시오도스가 신화를 통해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대한 탐구를 보여줬다고 한다면, 호메로스의 가치는 분노와 복수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창작하던 고대 그리스 시대, 제대로 된 법도 없고 문학도 없던 당시 지배층인 귀족계급의 미덕은 오직 싸움이었다. 힘세고 싸움잘하는 것만이 정의였던 시절, 호메로스는 분노와 복수라는 가치관을 도입한다. 일리아스의 수많은 영웅들은 분노에 미치고 복수에 미친다. 그런데 이를 잘 생각해 보면 분노와 복수는 그 안에 정의라는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당했다는 인식이 있어야 비로소 분노가 일어나고, 복수가 따라온다. 즉 정의가 없이는 분노도 복수도 없다. 호메로스의 장엄한 서사시는 문학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완결성,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성까지 더해 힘만이 지배하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 복수, 분노, 정의의 가치관을 깊숙이 불어넣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신을 도입했으며 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영웅들을 도입했다. 비록 필멸자인 영웅들은 신에게 거역할 수 없고 운명에 패배하는 존재들이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서 신과 같은 위엄을 지녔다는 형용사를 달고 신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운명에 도전하는 위치에까지는 올라온 것이다. 또한 이처럼 호메로스에 묘사된 신들이 위의 있는 신이라기보다는 찐따 같은 면이 많으므로, 가면 갈수록 그리스인들은 신을 그저 하나의 은유로 이해하며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간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성향을 갖추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문권에서는 Homeros(호메로스)란 이름말고도 간략화한 Homer(호머)로도 자주 불린다. 호머 심슨이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슬람 세계에선 Umatirash(우마티라쉬)라고도 불렸다.

프랑스의 소설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쓴 유명한 소설 람세스에서는 람세스 궁정의 식객으로 등장한다. 호메로스뿐만 아니라 메넬라오스헬레네도 나온다. 이들이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스파르타로 돌아가던 도중 이집트에 잠시 머물었다는 설정인데 호메로스가 이 일행에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직접 목도하고 일리아스를 썼다는 설정인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미 눈 먼 노인으로 나오며 메넬라오스가 이집트를 떠날 때 따라가지 않고 이집트에 남으며 이후 람세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간혹 람세스의 말상대가 되어 준다. 물론 호메로스가 람세스와 만나 비호를 받는다는 내용은 작가의 가공이다. 호메로스가 실존한다는 가정하에 람세스 2세와 같은 시대 인물로 놓고 카메오 출연시킨 것이다. 어디까지나 소설의 설정일 뿐, 실제로는 시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죽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등장한다. 신비한 강물을 마시고 불사신이 되었으나, 그 운명에 절망해서(라기보단 삶에 무감각해져서) 강물을 마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신줄 놓고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주인공(기원후 2세기 경의 로마 군단장)에게 야만인으로 오해받다가 오랜만에 내린 비를 맞고 제정신을 차리며, 마찬가지로 불사신이 되어버린 주인공에게 그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이후 그와 헤어진 후로는 등장이 없다. 한편 주인공은 오랜 세월 동안 방랑하다가, 19세기가 되어서야 앞서 말한 강물의 해독제인 강물을 발견하고 다시 죽을 수 있게 된다.


  1. [1] 영문위키백과 문서에는 저기 등장하는 사람 하나하나를 집어서 누구인지 설명해놨다. 참고로 습작도 남아있는데, 크기도 훨씬 크고 등장인물도 늘어난다. 습작과 해당작품 모두 루브르 박물관 소장.
  2. [2] 오디세이아를 보면 데모도코스라는 솜씨 좋은 장님 가객이 오디세우스에게서 시인들은 찬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트로이 전쟁을 생생하게 노래해서 오디세우스를 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인물이 바로 호메로스의 오너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3. [3] 그리스 로마신화를 정리한 사람 중 한 명인 토마스 불핀치는 호메로스의 출생지가 불분명함을 설명하면서 한 풍자시를 인용하고 있다. 불핀치의 시대 때도 이미 호메로스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던 것.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유한 일곱 도시가/호메로스는 우리 고장 사람이라고 서로 다툰다/생전에 호메로스는/그곳에 빵을 구걸하며 돌아다녔다.
  4. [4] "따라서 우리는 호메로스나, 그 밖에 그 미사여구가 당장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도 실체적 진실에 의해 허구로 드러나게 될 다른 시인의 찬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5. [5] 물론 현대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단적으로 르네상스만 해도 그렇다. 자세한 것은 해당항목 참조.
  6. [6] 그래서 미케네 문명의 성벽에 대해서 사이클롭스들이 쌓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자기들은 못 만드는 성벽이 이미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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