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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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豪雨

Heavy rain, storm

줄기차게 내리는 큰 를 말한다. 호우~~~!!!

대한민국에서는 장마 기간이나 태풍 상륙시 호우를 동반하기도 한다.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를 집중호우라고 말하는데 12시간 동안 강우량이 80mm에 달하면 호우주의보를 내리고 150mm 이상 비가 내리면 호우경보를 발령한다. 폭염과 함께 동아시아여름을 묘사하는 전형적 특징 중 하나. 여름철 숨막히는 고온 속에 내리는 비는 푹푹찌는 습도를 동반하기 때문에 야외활동을 제한시키고 불쾌지수를 높히는 주범이고 심할 경우 홍수, 침수등을 야기해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반면 동아시아 기후 특성상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1년 강수량의 60~70%을 책임지며 대기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주고[1] 고기값, 계란값을 안정시켜주기[2] 때문에 고마운 존재이기도하다.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 만일 여름철 강수량이 다른 계절과 비슷하거나 적다면 극심한 물부족으로 인간의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야기 했을 것이다.[3]

참고로 본디 우리나라에서는 대우(大雨)라는 말을 썼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친 후부터는 거의 호우(豪雨)라고 쓴다. 반대로 눈은 대설이나 폭설이라곤 해도 호설[4]이라곤 하지 않는데, 울릉도와 강원도 영동을 제외한 겨울 날씨가 기본적으로 맑고 건조한 날씨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현재 대우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많은 비에 관련된 각종 세계기록은 강우 문서를 참고.

1.1. 집중호우

다른말로 장대비라 부르기도 한다. 제한된 지역에서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현상인 집중호우는 강한 상승기류의 적란운이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적란운은 수증기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수증기를 내포한 공기는 산악지형에서 상승하는 일이 잦기때문에 산악지형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에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다. 물론 위의 조건 말고 다른 조건으로도 집중호우가 발생한다. 커다란 공기가 만나는 전선이나 수렴대가 그것이다.

1.2. 대한민국의 호우와 침수

<그림> 12년 7월 3일 대륙발 서울 일점사 (십자포화)

1.2.1. 1925년 대홍수

1925년 7월 11일~9월 6일까지 2달간 4차례에 걸쳐 태풍이 들이닥친 초유의 사례. 발생한 해의 이름을 따서 흔히 을축년 대홍수라고 불린다.

1차 홍수는 7월 6일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이 11일과 12일에 중부 지방을 거쳐 북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발생하였다. 그로 인하여 황해도 이남 지방에 300∼500㎜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한강·금강·만경강·낙동강 등이 범람하였다.[5] 그리고 불과 4일만에 다시 태풍이 중부 지방을 통과함으로서 서울은 완전히 물바다가 되버린다. 최고 600mm의 비를 뿌린 이 태풍으로 인해 한강이 또 범람하면서[6] 인접해 있던 용산·이촌·뚝섬 등은 큰 피해를 입었고, 본래 강북에 붙어있던 잠실·신천 등은 아예 육지와 분리된 섬이 되었다. 심지어 숭례문까지 침수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하지만 이 호우로 인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땅 속에 묻혀있던 암사동 유적지와 풍납토성 등이 이 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차 홍수는 8월 초 중국 장강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관서 지방을 관통하면서 압록, 대동, 청천강 등이 범람했다.

4차 홍수는 8월 말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9월 6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 지방을 관통하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낙동, 영산, 섬진강 등이 범람하게 되었다.

종합적인 피해 상황으로는 64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약 6만 여개의 집들이 침수·붕괴·유실되었으며, 약 1만 헥타르 가량의 논밭이 유실되었고, 피해 금액은 약 1억 300만엔[7]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한편 이때의 일을 교훈 삼아 조선총독부는 한강과 그 주변 지류에 대대적인 제방 공사를 단행하게 된다.

1.2.2. 1984년 9월 서울 대홍수

1945년 해방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가장 강력하고 혹독했던 홍수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수도권 치수(治水) 시스템의 소홀과 일기예보의 오보 등으로 피해를 키웠기에 대표적인 인재(人災)로도 꼽힌다.

1984년 8월 거대한 비구름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준'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경기도, 강원도 등 중부지역에 시간당 50㎜의 집중호우를 뿌렸다. 9월 1일 하룻만에 서울에 298.4㎜의 비가 내려 이 당시 기상 관측 이래 서울 1일 최고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속초에도 이 때 3일간 650㎜의 비가 내리는 등 중부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결국 수압을 못 이긴 한강안양천 등 인근 지류 하천의 수문과 옹벽이 죄다 터지면서 강물이 범람했다. 을축년 대홍수 이후 59년 만에 한강 수위가 10m를 넘었고 그 결과 서울은 또 다시 흙탕물로 가득찬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특히 풍납동, 성내동, 망원동 등은 웬만한 집이 대부분 침수됐고 서울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 홍수로 2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그 중 서울에서만 1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사망 189명, 실종 150명. 또한 침수된 주택의 수는 2만채를 훌쩍 넘어섰다. 전국적으로 추산된 재산피해는 당시 돈으로도 어마무시한 금액인 2502억원.

이 당시 가장 큰 문제점은 서울의 치수 시스템이 주먹구구 식으로 움직였다는 점과 일기예보가 엉터리였다는 점이었다. 특히 9월 1일 새벽 5시부터 1시간동안 5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때까지 서울에는 어떠한 기상특보도 발효되지 않았고 물폭탄이 왕창 쏟아지고 난 뒤에야 호우경보가 발령돼 논란이 됐다.

이 당시 홍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남한이 홍수 피해를 입자 북한 측에서 적십자사 간 소통을 통해 쌀 5만석, 천(옷감) 50만미터, 시멘트 10만톤과 기타 의약품 등 수해 구호물자를 보내줬고[8] 이후 남북관계가 한층 훈훈해진 사례가 있다.[9] 그 결과 1년 뒤인 1985년 9월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상호교환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였다.

반면 당시 정부와 서울시 당국은 '천재'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 탓에 주민들 혈압만 오르게 만들었고,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망원동 주민들이 시당국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1987년 1심을 비롯해 1990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승리를 거머쥐었다.(망원동 수재사건) 이들이 승리하는 데에는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도움이 있었다.

1.2.3.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

1990년 9월 중국에 상륙한 제17호 태풍 '도트'가 서울 상공을 통과하는 저기압과 연결되면서, 9월 9~12일에 걸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이 기간동안 경기도 이천군에는 581mm, 서울특별시에는 486mm의 강우량이 기록되었다. 말 그대로 도트딜

실제로 한강이 범람하여 영등포역 일대까지 물이 가득 차올랐었다고. 당시 잠수교는 13.70m란 수위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고양군 일대에서 발생하였는데, 한강의 수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10]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現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의 한강 제방이 붕괴, 평야지대에 위치한 능곡과 일산(신도시 개발 이전의 옛 일산) 전체가 물에 잠겨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한강 뿐만 아니라 지천에서도 홍수가 발생하여[11], 안양천 쪽의 광명시왕숙천 쪽의 구리시 등 수도권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왕숙천에서 많은 양의 부유물이 떠내려와 당시 건설 중이던 강동대교를 덮쳐, 교량 일부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때 고양군 지역의 한강 제방을 견고하게 복구하면서 고양과 파주 등 경기도 서북지역 개발에 대비하고자 제방 위에 간선도로를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자유로다.

모 선생님 의 수업 도중, 이 때 경험담을 해주셨는데 용산역에 내려보니 대합실까지 물이 차올랐고, 집이 한남동이였는데

집 근처에 가보니 일대가 다 잠겨서 동네 아저씨가 배를 타고 다니더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했다. 서울치아

1.2.4. 1996년 7월 홍수

1996년 7월 26~28일에 걸쳐 경기도 북부(파주시, 연천군 등)와 강원도 북부(철원군, 화천군, 춘천시, 인제군 등)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12]

아무래도 이 일대가 전방지대라 군부대 쪽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특히 군부대가 있는 곳은 대체로 산골짜기 쪽이 많은지라 다수의 군부대 막사가 산사태로 매몰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실종된 군인 수만 60여 명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집중호우가 한탄강임진강으로 흘러들었고, 한탄강 하류에 있던 작은 규모의 연천붕괴되면서 임진강 하류의 문산 일대를 직격했다. 저지대에 시가지가 있던 문산은 3m 깊이로 물에 잠겨버렸고, 시가지 전체가 거의 초토화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산 시가지는 이후 1998년과 1999년에도 홍수로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견디다 못하여 파주시문산역과 시가지 일부를 5m 높이로 올려버렸다.

붕괴된 연천댐은 철거하고, 현재는 그보다 약간 상류에 훨씬 더 큰 규모의 한탄강댐을 건설 중이다(2016년 완공 예정). 다만 댐이 완공될 때가 되니 이번엔 몇 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서(...) 본래 홍수 조절만을 위해 건설되는 댐의 용도를 가뭄 대비도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있다.

1.2.5. 1998년 8월 집중호우

http://www.edit.or.kr/images/edit_award/photo1_kyong.jpg

1998년 7월 31일~8월 1일 사이의 밤중에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최대 300mm에 달하는 기습적인 폭우가 내려 계곡에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 지리산 야영객과 주민 등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리산 폭우 참사 참조. 하지만 이 참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8월 18일까지 집중호우는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 피해가 발생했다.[13] 서울의 경우 8월 4일 211.4mm, 6일 122.9mm, 8일 332.8mm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등[14] 거의 20일간 매일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 해 8월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1237.8mm(...)[15]

전국적으로 사망 및 실종 324명, 재산피해 1조 2487억원을 기록. 이 때의 집중호우는 특히 좁은 지역에 시간당 100mm에 가까운 엄청난 폭우가 단시간 쏟아지는 특징을 보여 게릴라성 집중호우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참고

동일한 시기에 중국 양쯔강 일대도 기록적인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쪽에 폭우를 쏟아낸 비구름대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하며 한국에도 폭우를 뿌린 것(...).

1.2.6. 2010년 9월 광화문광장 침수

광화문광장 문서를 참조.

1.2.7. 2011년 수도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2.8. 2014년 동남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2.9. 2017년 중부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2.10. 2017년 동남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3. 해외

1.4. 관련 문서

2. 감탄사

국어사전엔 없지만 일상에서 안도의 한숨이나 환호성으로 많이 쓰인다.

마이클 잭슨이 추임새로 많이 썼다.

위 움짤은 2014 발롱도르 수상 당시.

아싸 호우랑나비

또한 한국 한정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골 셀레브레이션의 별명이자 아예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선 "호우"로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만, 호날두가 뛰고 있는 스페인에선 "호우"가 아닌 "Siuuuu"로 알려져 있다!

사실 호날두가 의도한 건 SiYes를 의미한다. 그게 워낙 길게 늘여 발음하다 보니 '시우'로 들린 것이다.Cristiano Ronaldo scream during Ballon d'Or speech was a Real Madrid celebration

2017년 챔스 결승전에서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선제골을 성공시킨뒤 선보인 핑거토네이도 호우

진성 호타쿠인 작은형가레스 베일은 심지어 저 유치한 세레머니마저 따라한다!!

따라 할 수도 있지 왜 우리 동생 기를 죽이고 그래욧!

레알 감독이었던 우리 할배카를로 안첼로티도 호날두가 골을 넣자 따라한 적이 있다.

우리 삼촌디에고 코스타도 시전했다.

누구처럼 어설프게 따라하면 이렇게 된다...[16]

이창민도 U-23 알제리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고 따라했다.

레알 마드리드 빠인 루세프도 따라했다

3. 壺杅

그릇을 뜻하는 한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우는 경주시 노서동 고분군에 위치한 호우총에서 발굴된 광개토왕 제사용 호우다. 호우총이라는 이름도 그릇이 발굴 됬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


  1. [1] 강수가 없는 겨울~봄에 매년 황사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
  2. [2] 구제역조류 인플루엔자 문서 참조
  3. [3] 흔히 착각하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폭설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한반도 본토에서 해안가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겨울에 쨍쨍한 햇볕과 함께 사막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여름과 달리 한국의 겨울 일 강수량은 대체로 소숫점 단위인 경우가 많고, 아예 0이 되는 경우도 숱하다. 즉 온도와 강수량이 정비례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4. [4] 일본에서는 니가타, 홋카이도 등에 '호설지대란 단어를 쓴다.
  5. [5] 한강 수위가 10m를 돌파하기도 했다.
  6. [6] 이 때 당시 한강 수위가 사상 최고치인 13.59m를 찍었다.
  7. [7] 당시 1년 예산이 1억 800만엔 정도였다.
  8. [8] 북한의 경제 상황은 1970년대 전성기를 찍었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북한의 경제도 추락하기 시작한다.
  9. [9] 물론 처음부터 전두환 정부가 북한의 대남 수해 구호물자를 곧이 곧대로 받지는 않았다. 물자 지원을 미끼로 나름의 계략을 또 꺼낼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인 만큼 대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수해 구호물자를 받았다.
  10. [10] 을축년 대홍수 이후 최고 기록.
  11. [11] 한강 본류가 불어나면서 지류의 흐름이 본류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범람하였다.
  12. [12] 동일 시기 발생한 북한의 홍수와도 연관이 있다.
  13. [13] 여간해서는 폭우가 내리지 않는 경북 북부지역도 예외가 아니었고, 영동지방 정도만 큰 피해가 없었다.
  14. [14] 이 당시 서울과 2시간 거리인 강화군 일대에 8월 6일 하루에만 무려 619mm의 비가 내렸다.
  15. [15] 평년값으로 서울의 1년 강수량과 맞먹는다!
  16. [16] 시기는 고종수의 세레머니가 더 이르다. 일명 좆레머니(...) 이 세레머니를 하고 고종수는 다리에 쥐가 나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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