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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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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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대표

비대위
인명진

대행
정우택

초대
홍준표

대행
김성태

비대위
김병준

새누리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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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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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2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1대
김병규

2대
김철수

3대
문시환

4대
양성봉

5대
이상룡

6대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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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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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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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대
김혁규

32-33대
김태호

34대
김두관

35-36대
홍준표

37대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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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원내대표

14대
안상수

15대
홍준표

16대
안상수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제16대 후반기
송훈석

제17대 전반기
홍준표

제17대 후반기
이경재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

제17대 후반기
김효석

제18대 전반기
홍준표

제18대 전반기
안상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송파구 갑)

제14대
조순환

제15대
홍준표
[1]

제15대
이회창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제13~16대
김영구

제16~18대
홍준표

제19·20대
민병두



}}} ||

35-36대 경상남도지사
홍준표

이름

홍준표(洪準杓, Hong Junpyo)

개명 전 본명

홍판표(洪判杓)[2]

출생일

1954년 12월 5일 (64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3]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4]

신체

167cm, 62kg, A형

가족

배우자 이순삼, 슬하 2남

최종 학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학사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병역

육군 이병 소집해제(방위병)[5]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9151E; font-size: .8em"

자유한국당}}}]]

현직

홍준표법률사무소 변호사[6]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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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4 3(사실상)

의원 대수

15[7], 16, 17, 18

약력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제15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구 갑)

제16, 17, 18대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

제17대 국회 상반기 환경노동위원장

제18대 국회 상반기 운영위원장한나라당 원내대표[8]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대표[9]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10]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자유한국당 대표

자유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

약칭

}}}

1. 개요
2. 생애
3.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5. 저서
6. 여담
7. 선거 이력
8. 소속 정당
9.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전직 정치인, 현 유튜버. 모래시계 검사로 처음 유명해져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4선 국회의원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 대표를 거치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제35, 36대 경상남도지사를 지냈다. 대선 출마를 위해서 36대 때 도지사 직을 중도 사퇴한 이후 대선에 출마했고, 이후 자유한국당의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같은 당의 대표를 각각 이명박정부 시절 여당일 때 한 번, 문재인정부 시절 야당일 때 한 번 지낸 것이다.[11] 종합적으로 볼 때 현존 보수계 정치인 중 커리어가 가장 좋은 사람 중 하나다.[12] 굵직한 것만 봐도 서울시내[13] 4선 의원 + 원내대표 + 재선 도지사 + 제1보수당의[14] 대선 후보 + 당 대표 2회다.[15]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에 경남도지사까지 역임했지만 정치적으로 PK보다는 TK 계열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본인도 스스로 TK의 성골은 아니라도 진골은 된다고 주장했다. 경상남도 출신이지만 중/고등학교를 당시 경상북도였던 대구시에서 다니며 성향과 인맥이 형성된 전두환(경상남도 합천군)과 비슷한 케이스.[16]

2. 생애

2.1. 초년 시절

1953년, 호적상 1954년 12월 5일[17]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2남 3녀 중 넷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때 이름은 홍판표. 그의 아버지는 무학에다 소작농으로 경제적으로 무능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18]문맹이었다. 어머니가 고리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잡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창녕군합천군, 대구시 등지를 전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6군데나 전학을 다닐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사귈 수 없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했고 초등학교에서도 1등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영양 부실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몸이 야위었고, 초등학교 졸업 당시 키가 124cm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도시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해, 고향에 있는 중학교가 아닌 대구시 영남중학교에 진학했다. 숙식은 대구 직물 공장에 취직한 누나 방에 얹혀 살며 해결하기로 했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아버지와 8km를 걸어 대구행 버스를 탔는데, 무거운 지게를 진 아버지 뒤에서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절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대구 대명동 사글세방에서 누나들이 싸주는 꽁보리밥 도시락을 먹고 공부했다. 그나마 도시락도 없이 혼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홍준표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결국 대구광역시로 이사왔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셋방 단칸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사과 행상을,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하루 4~5시간만 자고 공부해 영남중학교(대구)에서도 1등은 그의 차지였지만 명문 경북고등학교가 아닌 영남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경북고는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경북의 일류 명문이고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본인에게 컴플렉스였고, 출세에도 핸디캡이 됐다. 심지어는 대학 첫 소개팅 자리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이 나왔는데 그녀가 "집이 어디냐?", "대구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냐?"[19], "영남고다" 그랬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이때 받은 상처로 이후로 미팅 종류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밑에 첨부된 그의 대학 시절 사진만 보더라도, 그의 지인들은 당시 홍준표 하면 그가 늘 신던 검정 고무신을 떠올리곤 한다. 소개팅녀의 행동이 혹시 영남고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패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출신고를 묻는 그녀에게 순간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출신 고교에 대한 컴플렉스는 검찰 생활에까지 이어졌는데,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등학교 출신들이 즐비한 검찰 조직 내에서도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명문고 출신 동문들끼리 밀어주는 문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비주류의 설움을 느껴야만 했고, 원래 잘나가는 집안도 아니었고 찢어지게 가난한 흙수저 출신인 것까지 더해서 검찰 내에서도 그야말로 개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는 커리어에서 평생 아웃사이더 또는 비주류를 자처[20]했는데, 그 원인으로 출신고등학교에 대한 열등감, 자신의 가난했던 집안 배경 등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꼽는 사람도 있다.

원래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원래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다고 한다. 경북대가 국립대라서 학비가 저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아버지가 일체의 학비와 생활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라고 해서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되고자 했다.# 육군사관학교는 국가에서 모든 부담을 했기 때문에 사관학교 특성상 학비가 안 든다는 점도 주요한 고려 요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대구광역시 토박이가 아닌 아버지가 시장통에서 무시당하는 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21]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검사(법조인)[22]되기로 결심했다. 이에 1972년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23]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현재 고려대 행정학과는 정경대 소속이지만, 당시는 법과대 소속이었다.

대학 시절 때는 공부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5층 여관집에 출퇴근 가정교사를 하면서 1살 많은 제자의 유혹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연전 축제조차 딱 한 번 갈 정도로 바빴다. 그 와중에도 2학년 때인 1973년 동아일보 광고 사태 때 선후배들과 중지를 모아 동아일보 격려 광고를 처음 낼 만큼 정의감이 강했었다. 때문에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고. 대학은 어떻게든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이상 시국 행동은 못했다. 강희락 경찰청장,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이승재 해양경찰청장, 김성곤(1952) 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송하진 전북도지사 등이 고려대학교 동기다.

그의 진학 후 더 이상 대구광역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뒷집에 불이 났는데 가족들 집까지 다 타서 가족들은 때마침 부친이 현대조선소의 경비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울산으로 옮겨갔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어느 겨울 밤,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 아버지[24]가 목욕탕에나 봄직한 플라스틱 샤워의자에 앉아 칼바람 부는 바닷가 모래밭에 불을 쬐고 있던 모습을 봤는데[25], 그때 "불공평한 세상 한 번 바꿔보자"고 다시금 결심했다. 대학교 2학년 당시 부친이 추운 모래밭에서 근무하니 회사에서 술이라도 먹고 버티라고 막소주를 줬다고 한다. 그래서 부친은 10개월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역시도 "세상이 디비졌으면.." 하는 생각을 지닌 운동권이었고 박정희 유신반대 학생운동을 하며 총학생회 지하유인물을 작성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엄청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문제적 인간, 홍준표 그러나 더이상 강성으로 나가지는 않았고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성북경찰서에서 풀려나면서 고시공부를 하러 절에 들어간다.

사법시험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72학번인 그가 6년이나 병역도 미루고 졸업도 미뤄가면서 고시 생활을 이어가던 중(1차는 붙은 상태였다), 고려대학교 부근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서 일하던 여자 은행원 이순삼에게 반했다.[26]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숫기는 물론 땡전 한푼 역시 없었지만, 같은 은행에 다니는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데이트를 하고선 "나는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 나와 앞으로 살 생각이 있으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도서관 4층으로 찾아와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월요일 저녁에 그 여인은 정말로 도서관으로 찾아왔고[27] 홍준표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불문곡직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같이 살자"는 말로 프로포즈를 했다.

전북 군산시에 살고 있는 장인, 장모될 분들을 만나러 둘이 내려가서는 인사를 드렸는데, 홍준표가 마음에 안 들었던 장인은 뒤에서 딸에게 "그거 구름잡는 놈이다. 택도 아닌 놈이다. 그런 놈이 고시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했다고. 장모는 "사람 착해 보이니 잘 해봐라" 그랬다며, "어떠셨대??" 하고 묻는 그에게 이순삼이 솔직히 털어놨단다. 그 덕에 "장모는 혹 용돈을 드려도, 장인어른은 용돈은 커녕 26년간 내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고 훗날 2017년 자유한국당 후보 군산 유세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정작 마지막에는 홍준표가 장인 모시고 와서 병수발하고, 임종도 지켰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장인이 "옛날에 잘못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사과하자, 이에 홍준표는 "잘못한 줄 이제 알았습니까. 편하게 가시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가 홍준표는 그녀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신접 살림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 7동 지하 단칸 셋방이었다.[28]

하지만 그 뒤에도 사법시험에는 계속 떨어졌고, 결국 군대에 복무하게 되었다 당시 몸무게가 48kg으로 워낙 말랐기 때문에 방위로 근무하게 됐는데, 사법시험에 붙지 못해 고향에 가기 창피했던 그는 처가가 있던 전라북도 부안군의 해안초소에서 복무하였다.[29]

그렇게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아내의 5년에 걸친 헌신적인 뒷바라지 끝에 30살, 호적상 29살인 1982년, 드디어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30]

2.2. 검찰 근무 시절

  하위 문서: 홍준표/검사 경력

2.3. 정계 활동

자존심 하나로 사는데, 아바타 정치는 안 한다!

2017년 4월 1일, 조선일보 <홍준표 후보가 걸어온 길> 中, 선정민 기자

“저는 ‘독고다이’지 독불장군은 아닙니다.”

2017년 8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중에서

  하위 문서: 홍준표/정치 경력

3.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3.1. 친홍

  자세한 내용은 친홍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김영삼

검찰에서 쫓겨나다시피하고 변호사를 개업해서 힘겹게 살아가던 홍준표를 정계로 부른 인물이다. 사실 홍준표 본인도 정치에 뜻이 있어서 노선을 정하기 위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김영삼이 직접 전화해서 "문민정부에서 큰 사람이 왜 야당으로 가려 하느냐"라고 하며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고려대 선배였던 이명박,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거목이었던 이재오, 김문수 등과 인연을 맺게 된다.

원래는 민주당에 입당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의 전화에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공직(검사)에서 물러난 지 얼마되지 않은 데다, 대통령의 전화에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전화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전화에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반세기 전인 그시절에 대통령의 권한과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 당시만 해도 참여정부[31] 이후의 한국 정치에서는 어느정도 정립된 당정분리, 당청분리가 저 때는 되어 있지 않아서[32]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여당 내의 당직[33] 인선, 각종 선거 공천에 대놓고 직접 관여했다.[34]

입당 직전 노무현 변호사가 찾아와서 자신과 같이 민주당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자 실망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이들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준표는 상도동계는 아니지만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YS키즈에 속한다.

홍준표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로 특별히 누구의 계파라고 자임한 적은 없지만, 1997년 대선 이후 이회창 총재가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장악한 이후에는 상도동계, 민주계로 분류되어서 이회창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줄곧 정치를 하면서 김영삼에 대한 존경은 계속해서 표현했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한 뒤 상도동을 찾아 YS에게 인사를 할 때도, “저희들이 다 ‘YS키즈’”라며 “제가 장인, 장모님도 안 계시고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밖에서 큰절하는 데는 각하밖에 없다”고 말했다. YS 또한 “장하다. 압도적으로 이겼다“며 “내가 역시 공천을 잘했다”고 말할 정도로 홍준표를 아끼기도 했다. #1 #2

자유한국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에는 중앙당사 및 전국 시도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더불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도록 하기도 했다. 홍준표는 보수 우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본당으로서 건국시대의 상징인 이승만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시대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3.3. 나경원

나경원 원내대표에 원정출산 의혹을 밝히라는 기사

한때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건 사태에 대해 나경원 의원이 무상급식 반대를 당론으로까지 이어가자는 견해를 표명하자 유승민 의원을 비롯 한나라당 내부에서 강하게 비판 받을 때 비호를 해주었던 홍준표이지만, 2019년 현재 정계 역학관계 때문인지 홍준표 본인이 내부적 비판을 자주 표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여러 의혹에 대해 보수당도 같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나경원 원내대표를 상대로, 이중국적자인 나경원 아들에 대해 원정출산 의혹을 해명하라고 강권하였다.

3.4. 노무현

노무현 정부 시절 "여권 저격수"로 활약한 바 있다. 특히 국무총리였던 이해찬과의 설전은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 노무현 사후에도 노무현과 친노 진영을 건드리는 발언을 자주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고, 19대 대선 때는 이게 정점을 찍어서 그 유명한 자살 검토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역시 운동권이었으며, 특히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으며 여권의 중심을 지켰던 김근태와는 서로 격려를 주고받는 등[35] 친노 계열 정치인들과도 친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박근혜처럼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댔던 인물은 아니라는 거다.[36]

또 본인이 민자당→신한국당에 들어가기 전 날에 노무현이 찾아와서 꼬마민주당 입당을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에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고 "홍 검사, 그렇게 살면 안 돼요!"라고 화냈었다고 한다. 당시 꼬마민주당에서는 홍준표이회창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후에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진 노무현의 수사에서 검찰을 향해 구속할 거면 빨리 구속하든가 모욕만 준다고 검찰을 디스했는데, 이 발언은 전직 검사 출신으로서,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막장 행각을 많이 봤고, 본인도 그에 대한 피해를 많이 입어 검찰 옷을 벗어야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검찰의 행동에 열 받아서 했던 소리로 보인다.

2017년 대선출마를 앞두고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의 회동에서 문재인을 비판할 때에 "민주당 1등 후보즈그 대장이 뇌물먹고 자살한 사람입니다."라고 노무현을 비하했으며, 대선 유세 중에는 "대법원 유죄판결시에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겠다."라는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그리 평가가 박하지 않은데, 본인의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TV에서 솔직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적인(안좋은) 감정은 없었다고 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와의 합방토론 홍카레오에서도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괴롭혔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3.5. 이명박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같이 거물급 정치인으로 큰 사이이다. 1996년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그의 부탁을 받아 장외변론을 맡아주는 것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이명박은 국회의원직을 더 추해지기 전에 사퇴해버리고 미국 워싱턴으로 연수를 떠났으며, 이후 1999년 홍준표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서 똑같이 정치 백수가 된 후 워싱턴으로 갔고, 미국에 체류하는 7개월 동안 서로 교류하며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한다.[37] 이명박 집에 불쑥 찾아가 이명박의 아내 김윤옥에게 "행수, 내 밥좀 도" 라며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귀국 후에도 가깝게 지냈지만 2006년 서울시장 경선 때 이명박이 홍준표가 아닌 오세훈을 후보로 밀어주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이후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만나서 BBK 등 이명박의 여러 의혹들을 막아주면서 활약했다.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법무부 장관직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돌아온 것은 뜬금없는 환경부 장관 .... 그러다 홍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홍준표: 너 혹시 "타타타"라는 노래 들어보셨습니까?

비서실장: 아니요.

홍준표: 그 노래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

훗날 19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유세 현장에서도 MB에 대한 서운함을 언급하여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듯 했으나, 그 와중에도 MB의 사무실을 예방하는 등 교류는 여전히 하고 있으며 MB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자 정치보복특별위원회도 신설해서 형식적으로나마 대응하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패하고 당대표를 사퇴한 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구치소 접견을 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까지 하는 등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6. 문재인

아니 유 후보 지금 주적은 문재인 후봅니다. 문재인 후보한테다가 공격을 하셔야지 저한테 하면 안 됩니다.

문 : "뼛속까지 서민. 그건 저하고 같은데. 같은 흙수저 처지에, 왜 제가 주적입니까?"

홍 : "그건 친북 좌파기 때문입니다."

홍 : "내 나라 국민은 바른정당하고 뭐뭐뭐 자유한국당은 적폐니까 청산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주적이죠''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특히 홍준표가 정권 출범 이후부터 문모닝으로 일관하며 계속 비판하면서 더더욱. 대선후보 당시에도 서로 개인의 행적 관련된 비판적인 논평을 한 것은 물론,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한데 한 살이 많네 적네 하는 유치한 신경전도 있다.[38] 노무현 문제를 놓고도 자주 논쟁하였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 둘만큼 사이가 좋지 않은데, 각종 유치한 이유는 물론 음모론 가지고도 홍빠들과 문빠들이 싸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드루킹 게이트 문제 때문에 여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둘 사이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다만, 상기의 짤에서도 보이듯이, 문재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젠틀맨이라고 하는 등, 정치적인 문제 빼고는 딱히 사람 자체에 대한 비난을 하진 않는다. 그저 정치적으로 다를 뿐이라서 비판하는 거지, 박근혜친박처럼 주적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즉, 정치인 문재인으로써는 이념/생각 등이 다르게 때문에 비판 하는것이고 인간 문재인은 크게 비판하지 않는다.

3.7. 박근혜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처벌받은 과거가 있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던 시절의 혁신위원장이 홍준표였고, 이 시기에 불협화음을 빚기도 했다. 홍준표가 당대표였을 당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일 때문에 반년만에 홍준표 체제가 무너지고 박근혜가 당권을 차지했던 악연도 있었다. 또한 홍준표는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친박 복당파와 박근혜의 앞마당 멀티인 친박연대가 사사건건 반대만 날리거나 야당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기에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2011년 전당대회에서 홍준표는 친박계의 지원을 받던 유승민을 꺾고 당대표가 되었기에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 끝내 2011년 무상급식 파동으로 한나라당 홍준표 체제가 무너진 뒤 당권을 잡은 박근혜는 홍준표를 그야말로 문전박대했고 홍준표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지역구를 빼앗겨야 했다.[39] 이후 그는 경남도지사 취임 이전까지 야인으로 살아간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도 홍준표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에는 리스트에 있던 친박들은 다 빠져나가고 본인과 박근혜에게 찍힌 이완구만 기소되는 등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당권을 잡은 홍준표는 박근혜를 19대 대선에서 지지율 끌어올리기[40]에 이용한 다음,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하자 김무성과 친무 이외의 여타 비박계에게 자유한국당 복당을 요청한 후 친박 세력을 견제했고, 당 대표 직권으로 강제로 출당시켰다. 인생사 새옹지마. 당장에 홍준표가 박근혜랑 관계가 나빴다는 것을 감안하면 홍준표가 당 대표 직권으로 박근혜를 제명시킨 것이 비난받을 행위는 아니었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계에 물러나는가 싶더니, 전당대회 때 복귀를 선언했었다가, 친박으로 분류되는 황교안이 출마를 선언하고 계속해서 친박 행보를 보이는 황교안에게 오세훈과 함께 불출마를 거부하자, 홍준표는 끝내 불출마를 선언했다.관련기사

3.8. 추미애

홍준표가 제1야당의 대표이던 당시 추미애가 여당대표였으니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견원지간. 특히 드루킹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서로 살벌한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이며[41] 같은 영남 출신이다.사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행사장 등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2017년 7월 25일 KBS 2TV에서 방연했던 이경규냄비받침에 출연하여 밝히기를, 과거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말했던 데 대해 공식 사과하며, 추미애 대표와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미인이었다. 그런데 2년 동안 쑥쓰러워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3.9. 김무성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홍준표[42]

김무성은 상도동계 직계 정치인이고, 홍준표는 YS키즈라는 차이가 있고, 정계 입문 시기도 홍준표가 약간 늦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김무성과 홍준표는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고, 이후 이들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까지 같은 행적을 보이면서 서로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43]

시간이 흘러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의 당권은 대부분 친박에게로 넘어갔고, 이 와중에 옥새런 같은 사태까지 터지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직후 김무성 등을 비롯한 비박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새누리당에 잔류했던 사람들은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 친박이 숫자가 더 많았음에도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당선되었고, 홍준표는 김무성에게 복당을 요청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친무계가 김무성만 제외하고 바른정당 1차 탈당사태를 일으키며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는데, 이로 봤을 때 이미 이 시기에 김무성과 홍준표가 물밑 협상으로 합의를 봤던 듯 하다.

2017년 10월에 이르러서는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에 취임한 직후, 친홍계를 내세움과 동시에 복당한 친무계의 도움을 받아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홍준표는 박근혜를 자유한국당에서 강제로 추방하면서 잔류해 있던 김무성과 바른정당,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한 비박계에게 다시 한번 자유한국당 합류를 요청했고, 김무성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현재 홍준표는 김무성의 조력까지 받아 친박들을 궁지에 몰아 넣고 서청원, 최경환을 탈당 권고 징계를 내린 다음,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완전히 거머쥐었다.

김무성, 홍준표는 똘똘 뭉쳐있지만, 추후에 갈등이 일어날지 계속 유지할지도 자유한국당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경우 TK, 노년층, 강성 보수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민심이 떠난 상태이지만.

결국 홍준표가 당대표직에서 사직하고, 김무성도 당협위원장직 사퇴와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동반으로 정치은퇴를 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홍준표는 정계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3.10. 유승민

홍: "시중에서는 (유승민이) 강남좌파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 "좌파는 아니고요. 저는 새로운 보수가 나가야 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홍: "내참... 꼭 이정희 보는 것 같아서, 주적은 저기입니다."

2017년 4월 19일 KBS TV 대선토론에서 유승민을 향해서 한 말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나란히 1위, 2위를 했었고, 경선과정과 경선이후 지도부에서도 대립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패배 및 중앙선관위 및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디도스 공격 사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 해체를 주장하면서 대립하게 된다. 이때 유승민이 기습적으로 최고위원 총 사퇴를 가장 먼저 결의했고, 원희룡, 남경필 등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가세하여 홍준표는 타의에 의해서 대표직을 잃은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홍준표의 19대 총선 낙선과 야인생활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셈(...) 그리고 19대 대선에서 후보로 나오면서 서로를 "무자격 후보", "배신자"라고 비난하면서 맞섰고 김무성을 필두로 한 친무계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면서 또 한 번 날 선 각을 세우기도 했다. 바른정당국민의당과 합당한 이후에도 저 당은 위장야당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엄청난 보수 측의 공공의 적을 앞두고 야당끼리 필요에 따라서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이번엔 두 사람 다 대표직을 헌납하게 되었다.

3.11. 안철수

19대 대선 토론 때 같이 출마했으나 사실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보수 표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상대이기도 하여 안철수에 대해 그다지 좋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 "민주당 2중대"라든지 "이당에서 나오고 저당에서 나오고"라며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야당으로서 드루킹 게이트를 계기로 어느 정도 동맹하고 있다.

3.12. 오세훈

오세훈서울시장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성장하길 기대했던 오세훈 前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투표율 여부로 시장직을 거는 등 무리한 행보를 이어가자 홍준표가 공사 구분 없이 다독여주고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 찬반 투표율이 과반이 안 나오자 당 지도부가 한사코 말렸음에도 진짜로 사퇴를 해버렸고 이에 대해 홍준표는 극도로 분개하고 길길이 날뛰며 크게 실망하였다. 홍준표 입장에서 오세훈은 차후 당의 지도부에 있을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자꾸 정치인생을 건 도박을 자의적으로 하니까 아쉬웠던 것.

오죽하면 오세훈이 홍준표 자택을 찾아가도 문전박대하면서 전화기도 꺼놓고 연락을 씹을 정도였다. 이 사건 자체가 보수당의 향후 운명을 뒤틀었던지라 오세훈에 대해 강하게 비판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에 대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18년 전국 동시지방선거 때 오세훈의 서울시장 재출마를 굉장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오세훈은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여 또 한번 홍준표를 실망시켰다. 현재는 서로 의절한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표의 험난한 서울시장 후보 찾기(feat. 오세훈)/비디오머그" 영상

3.13. 류여해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이후 발굴해서 키워주고 밀어주던 인물로 알려졌으나, 사실 대표 취임 이전부터 경계를 했고 류여해의 각종 막말과 친박 행보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홍준표의 막말이 반대 진영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과격한 언행을 통해 지지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계산된 발언이다. 실제로 "5.18 가산점에 동의하면서 왜 군 가산점은 반대하냐"며 문재인을 공격하고 이후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극우 유권자에겐 "부마항쟁이든 광주항쟁이든 어떤 것이 더 위대하다고 우위를 가릴 수는 없다"며 그 유권자를 질타하는 행보를 보였다. 반면에 류여해의 언행은 계산되었다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홍준표가 적당히 하라며 막말을 제지했는데 카메라가 돌아간 틈에 왜 말 끊냐며 적반하장식으로 화를 냈다고 한다.

3.14. 안상수

보온병 포탄과 낙지로 유명한 그 안상수가 맞는다. 같은 검사출신임에도 사이가 안 좋은데 2010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서로를 개로 비유하며 치열하게 싸웠고, 안상수가 옆집의 개소리가 시끄럽다고 옆집 주인에게 소송걸어버린 것도 까발렸다. 결국 당 대표에는 안상수가 선출되면서 최고위원이었던 홍준표가 살짝 아래 위치에 서게 되었다. 2014년에는 현역 도지사인 홍준표에게 안상수가 도전장을 내면서 다시 한번 맞붙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안상수가 또다른 경쟁자인 박완수 전 창원시장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자[44] 창원시민은 포탄껍질과 보온병의 차이를 안다며 조롱조로 저격하기도 했다. 이후 상하관계가 역전되어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으로 만났는데, 여기서도 계속 싸웠으며, 안상수 창원시장이 광역시로 경남에서 독립하려 하자 홍준표 지사가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안상수가 행불상수라는 멸칭이 붙여진 이유가 전당대회 때 홍준표의 말 덕분이었다. 안상수의 병역기피 사유 등을 다 얘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문재인보다 사이가 안 좋다.

경남지사 시절, NC 다이노스의 홈구장 신축에 대해서 도비를 주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창원시장안상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광역시장 재선을 했고 3선 의원을 지내고 있는 동명이인 안상수 의원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3.15. 친박

자유한국당 대선토론 경선 토론회 때 친박 김진태가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논란에 대해 비판하면 좌파의 논리라고 하자, "아무데나 갖다대면 다 좌파논리냐"면서, "이건 국가 정신의 문제입니다. 나라 정신의 문제입니다."라고 분노를 쏟아냈다. 즉 문재인 정부보다 더 싫어한다.[45]

3.15.1. 조원진, 우리공화당(舊 대한애국당)

조원진: 탄핵 주도세력 중에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 김성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제명시켜 버린 홍준표 이 다섯 사람만 정치를 떠나면 보수대통합 빨리 될 수 있다.

- 조원진, &quot;보수대통합 불발 시 애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전 지역구에 후보자를 공천하겠다&quot;고 엄포를 놓으며 언급한 말#

조원진: 홍준표한테 한마디 했습니다. 까불지 말란 말이야! 자신있으면은 조원진이를 고발하란 말이야! 바로 영창에 집어넣어 버리겠어! 어딜 건방진 XX가 말이야 자기가 했던 일들도 잊어버리고 감히 대한애국당을 이러쿵저러쿵 박근혜 대통령을 이러쿵저러쿵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 ...(중략)... 그래도 자신있으면은 한번 떠들어 보란말이야! 다시 한번 더 홍준표한테 경고한다고, 까불지마라, 그 입 다물라. 홍준표가 거론할 지금의 시대가 아니에요. 지금의 시대는 그렇게 경망스럽게 체제에 대한 이념도 가지지 않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뭔지도 모르고 경망스럽게 떠드는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나라가 다 망했는데 무슨 놈에 앉아가지고 홍카콜라인가 ㅈㄹ같은 걸 하고 있냐고, 용서하지 맙시다.

- 조원진, 2019년 06월 08일 제127차 태극기집회에서 홍준표를 비난한 내용 (9분 30초부터 참고)

조원진대한애국당(現 우리공화당)세력의 경우 홍준표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며[46], 태극기 집회에서 보수 우파의 배신자 역적 세력이라고 언급하면서 처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47] 또한 홍준표의 경우 이전부터 친박들을 양박[48], 바퀴벌레라고 비판해 왔으며, 페이스북에서 "거리에서 돈통 놓고 박근혜 팔아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는 양아치같은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 보수 우파들은 참으로 순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탄핵당하고 구속당하고 아직도 핍박을 받는 것이다.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네티즌들과 극우 세력들의 추측으로 봤을 때 조원진을 저격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4. 논란

홍준표/논란 문서는 그 안에서도 세분화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홍준표/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저서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 - 1996년

이 시대는 그렇게 흘러가는가 - 2000년

나 돌아가고 싶다 - 2005년[49]

변방(이제, 중심을 꿈꾸며 힘들었던 삶의 가장자리를 이야기하다) - 2009년

홍준표가 답하다(변방에서 중심으로) : - 2017년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 - 2017년

6. 여담

  • 홍준표의 부친은 힘이 장사였지만, 본인은 어려서 가난 때문인지 7살까지 엄마 젖을 먹을 정도로 유약했다. 적은 몸무게 때문에 방위병으로 입대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그래서 영남중학교(대구)에 다닐 때부터 태권도를 열심히 배웠고, 4년 동안 대구시의 무덕관을 다녔다. 초단 실력으로 몇 년 전에는 24~25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2009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선거 당시 끼어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총재에 외국인이 필요하다'고 하셨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발언하며 외국인 후보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며 욕을 배부르게 잡쉈다. "이젠 대통령이 멋대로 선거에 끼어드네?", "이명박의 스피커냐?" 등의 욕만 실컷 먹었고, 선거 결과 조정원 후보가 총재가 되어버려 태권도연맹 간부직에서 사실상 매장되면서 망했다. 사실 정치인들이 각종 스포츠 단체 간부직으로 들어가는 건 흔한 일이지만, 홍준표는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에 욕을 더 먹은 측면이 있다.
  • 경남 FC 구단주를 지냈다. 당시 여러 언행으로 관심과 논란이 있었다. [50]해당 기사
  • '답십리'라는 동네와 인연이 상당한데 그 이유는 홍준표가 동대문 을 지역구에 4번 나와 3번 당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표는 대부분 답십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19대 대선 때는 답십리 1동과 2동 모두 안철수에게도 밀리는 20%대 초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이것도 옛날 이야기일 듯. 심각한 일도 하나 있는데 답십리에 성완종의 경남기업이 있다.
  • 이경규랑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히 보면 김창완도 조금 닮았다. 실제로 가장 닮은 연예인은 박상원(?!)으로 그래서 모래시계에서 홍준표의 포지션이라고 하는 해당 인물의 배역을 박상원이 담당했다.
  • MBC 개그맨 공채를 응시를 했었다. 응시 원서까지 냈는데 유신 체제 발동으로 인해 (아마도 계엄령으로 추정된다.) 시험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머감각이 타고났다. 심지어 엄숙한(?) 제19대 대선 토론장에서도 유머를 자주 보였는데, 본인이 웃기려고 한 말인지 진지하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대선 이후 출연한 냄비받침에서 밝히길 그때 MBC 개그맨 공채가 되었다면 김병조, 이용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그맨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51]
  • 개그맨 공채시험 지원자답게 예능감이 매우 탁월하다. 19대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빛을 발했었고 대선 이후 출연한 냄비받침[52]에서도 이경규 뺨치는 예능감을 선보였다. 강적들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예능감각을 발휘했다. 고정패널 전원책경상도 사투리 콤비를 결성해서 케미가 폭발하는 바람에 중간에 껴있던 김성경이 들러리가 되어 버렸다.
  • 19대 대선 전까지 홍준표 하면 가장 유명했던 식사준표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친이계의 자리인 클린정치위원장 자격으로, 당시 이명박 후보의 큰 이슈였던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박근혜 후보 및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면서 붙었다. 클린정치위원회는 김경준과 이명박 후보가 주고받은 편지와 자필 메모를 공개하며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은 (BBK 설립 이후에는) 2000년에 만났다."는 주장을 했는데[53], 이에 대해 기자들의 반박 질문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말을 돌리려고 "식사하셨어요?" 드립을 날리면서 식사준표라는 가장 유명한 별명을 얻었다. 그에 이어 경상남도 무상급식 강제중단 파문으로 또다시 식사준표가 나오게 되었다.
  • 기본적으로 말빨막말로 유명한 정치인이니 우파정당에서 오래 활동해왔음에도 항상 비주류 아웃사이더였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혁신위원장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반면 이런 이력 때문인지 야권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편이다. 대표적으로 박지원과는 형님, 동생하는 친한 사이이고, 과거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상대당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의원 등과도 가까웠다.
  • 다소 의외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딴지총수 김어준과도 친분이 있다. 일단은 서로 동향 사람이고 정계와 별개로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고 한다. '나는 꼼수다' 때문에 한참 한나라당이 고생하던 시절 당대표 자격으로 출연하여 김어준과 토크를 했을 정도. 정작 그 나꼼수의 효과였던 오세훈의 무상급식 스캔들 때문에 당 대표 자리를 날리다시피 했으니 이가 갈렸을 듯.[54] 그럼에도 아직 김어준과 서로 정치 노선이 다름에도 친하게 지내는 듯. 당장 오세훈 사퇴 이후 9개월 남짓 지나서 홍그리버드 영상을 찍었는데 &quot;나꼼수의 으준아 니도 한 번 해봐라.&quot;라는 말을 남기기도. 과거 나는 꼼수다에서의 언급과 김어준의 얘기들을 듣다 보면, 홍준표는 김어준을 편하게 부르고, 김어준도 홍준표에게 '형님', '홍반장'이라 부를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파진영으로부터는 대체로 좋지 못한 인식을 받고 있는 손석희 JTBC 사장과는 비록 때로는 티격태격한 적도 있지만, 손석희 사장에게 호감을 표하기도 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당 대표로서 서울시장 후보로 손석희 영입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고, 2017년 제19대 대선 JTBC TV토론회에서는 JTBC토론이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생방에서 말한 적이 있으며, 2019년 손석희의 폭행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그를 위로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 “한국도 (자신과 같은) ‘우파 스트롱맨 시대’를 해야 도널드 트럼프와 맞짱 뜰 수 있고, 시진핑과도 맞짱 뜬다”는 발언을 했다.#
  • 홍준표의 연관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오거돈양산시 부산 편입을 언급하자 &quot;부산의 상수원을 틀어막겠다&quot;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55]
  • 정통시사토크쇼를 표방하였던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 2009년 1월 11일자 방영분에 여당 원내대표로서 출연하였다. 박중훈 쇼의 해당 회차는 당시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동시에 초청하여 서로 지갑 내용물을 공개하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한 야심적 기획이었으나 시청률 6.6%로 신통치 않은 결과만 가져왔다.
  • 2011년 한나라당 대표시절의 어느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소개팅 경험담을 얘기해서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 2015년 12월 22일, 경남선관위에게서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관련 허위서명에 가담한 것으로 홍준표 측근이 고발되었다. 서명운동본부는 이듬해 1월 자진해산 했으며, 2016년 7월 8일 검찰에 징역이 구형되었다.# 측근의 허위서명이 드러나면서 항의농성을 하는 정의당 여영국 도의원에게 "한 2년간 단식해봐. 쓰레기가 단식해봐야"라는 막말과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
  •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막말 정치인이 아니라 소박한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성완종이 살아 있었으면 무조건 성완종을 고소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quot;너무나 억울해서 미치겠다. 마치 노상 강도를 당한 기분이다. 곧 항소하겠다.&quot; 그리고 &quot;저승에 가게되면 성완종에게 꼭 따지겠다&quot;라고 말했다.
  • 성완종 리스트로 대법원에 상고된 것과 관련해 &quot;없는 사실을 또 지어내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해보겠다.&quot;라는 막말을 날렸는데 당연히 대부분의 언론에선 싸늘한 논조로 비판했다.
  • 2017년 2월 1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 이상주)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 12월 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 누나가 둘이 있었는데, 큰 누나는 결혼했지만 남편이 사망하여 과부가 됐다. 작은 누나는 홍준표보다 더 똑똑해 아이큐가 158까지 나왔으나[56][57] 공장을 다니며 홍준표를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누나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58]
  • 슬하에는 아들만 둘을 뒀다. 큰아들에게 기대가 많았는지 꽤 엄격하게 길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큰아들은 고시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국내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작은아들은 학교에서 "홍준표의 아들이냐?"고 물으면 동명이인이라고 답할 정도로 독립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실제로 방학이 오면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매사에 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특히 해병대 자원 입대할 당시 에피소드가 많았다. 수송 병과로 가기 위해 대형 1종 면허를 취득했지만, '아버지가 홍준표'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수송병과를 가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가정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 2017년 3월 경선토론에서 보수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유로 바른정당과의 연합을 찬성했다.#
  • 19대 대선 구호로 "준표 어야 유대한민국 킵니다"를 내걸었는데, 공간 제약상 네 줄로 나눠서 쓰다보니 각 줄의 앞 글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졸지에 19금 세로드립이 되고 말았다(...). 당 차원에서도 뒤늦게 이를 알아차렸는지 마지막 "지킵니다"를 옆으로 밀어서 홍찍자로 무마하려 했지만, 가뜩이나 돼지발정제 논란이 돌고있었기에 인터넷이 한바탕 뒤집어지면서 홍준표의 별명이 "홍찍자지"가 된 것은 물론이고, SNL 미우프는 물론 SBS 인터넷 뉴스에서까지도 패러디당했다.
  • 19대 대선 선거운동 도중에 양화대교 아치 꼭대기에서 사법고시 폐지에 반대하면서 농성을 벌이던 사법 고시생을 설득해서 구조될 수 있게 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고시생은 구조된 뒤에 신촌에서 열린 홍준표 후보의 유세에 참가했다.
  • 2017년 4월 11일 대선 선거 유세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보수대통합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중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부패한 보수를…" 이라고 해서 웃음을 주었다.
  •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패했다. 그래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망하기 직전의 당을 이끌고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를 이기는 기염을 토했으며 낙선한 후보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기뻐했다. 기뻐한 이유라는 게 "그래도 우리 당은 살려내서 다행이다."라 말했다. 박근혜가 죽인 보수를 홍준표가 살려냈고 홍준표는 이걸 기뻐하는 것이다. 사실 썰전에서의 나경원 의원을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지만 19대 장미대선에서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전략적인 허세가 담긴 발언들과는 별개로 승리할 것이란 장담을 전혀 하지 않았다. 16% 이하의 지지율임에도 불구하고 궤멸 직전의 보수를 목소리는 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니 자화자찬이 아니라 실제로도 꽤나 선전한 셈이다.[59]
  • 위와 마찬가지로 홍준표 본인도 강적들 216화(2018년 1월 3일 방송)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어차피 내가 떨어질 줄 알고 나갔다고 밝혔다. 보수 우파 궤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밝혔다. 탄핵당하고 망한 정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 소멸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밝혔다. #
  • 새누리당 때 당색이 빨간색으로 바뀌기 전에도 빨간색 넥타이를 애용해 왔다. 이는 2010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호법제 강연회에서 "고대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고대의 상징색이 빨간색이다. [60]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은 레드준표 정이랑과 직접 만났다. 본인의 분장을 한 레드준표와 나란히 서서 선거 유세를 보러온 시민들에게 재차 "내가 진짜 이 사람하고 닮았어요?"라고 물어보고, 정이랑과 악수를 나눴다.[61] 정이랑은 대선이 끝나고 몇 달 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홍준표에게 돼지흥분제 논란 등 악재가 터질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고 밝혔다.
  • 19대 대선 기간 중 한국일보의 '대선주자 악플을 읽어봤다' 기획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유일한 인물이다. 어차피 안 찍을 사람들인데 뭐하러 읽느냐는 반응. 다만 이 때문에 욕을 먹었다.
  •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캐릭터가 모래시계(드라마)의 강우석(박상원 분)이다. 아버지가 비료 도둑 누명을 써서 검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 은행원 아내를 만난 것, 슬롯머신 수사 등 강우석은 명백히 홍준표가 모델이며 제작진도 이를 공인한 바가 있다.
  • 그 외에 감독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선 내부자들(영화)의 장필우(이경영 분)의 모델로도 추정된다. 장필우는 빠찡코 깡패들과 결탁한 자기 상관을 구속했다가 검찰에서 옷 벗고 정계에 입문한 사람이라는 게 그 이유. 다만 장필우는 검사 시절 강직함을 버린 비리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여담으로 홍준표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재벌혐오에 정치혐오, 검찰혐오, 언론혐오까지 보태어 한국사회 리더 그룹들을 모두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며 혹평을 했다. 정황상 자기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인데, 대놓고 인간쓰레기로 묘사했으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자신은 처음부터 로스쿨에 반대했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사시를 존치하고 로스쿨을 폐지하겠다는 식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홍준표는 정작 변호사시험법 제정 당시에는 "혹시 법조인 여러분들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찬성해 주셔야지 법학대학원이 순조롭게 갑니다."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62]
  •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실제로 유세현장에서는 그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고 또 가창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지금은 목소리가 갔지만 젊었을 때는 훨씬 잘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약사가수' 주현미에 대항마로 '검사가수' 홍준표(...)로 데뷔할 뻔한 전력이 있었으나 아내의 강한 반대에 무산되었다고...
  • 보수당 대표임에도 어째 현재 여당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논란을 만들 때마다 '종신 대표하셔야....'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며 단순히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박범계 의원도 페이스북에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글을 게시할 때도 '종신 대표하셔야 한다' 는 표현을 썼다. 어느 민주당 의원은 석가탄신일 등불을 달면서 만수무강을 빌었다나 뭐라나.
  • 의외로 가정적인 듯 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현재 각시를 만난 것'을 뽑기도 했고 관련 행사에 함께 참여한 모습을 보면 시종일관 편안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부부 관계도 좋은 편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에 가 있는 첫째 아들과 매일 아침마다 영상 통화를 한다고 토크 콘서트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홍준표 본인은 여성비하 관련 논란을 굉장히 많이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본다면 아이러니하다.
  • 이경규뿐만이 아니라 박명수와도 상당히 닮은 꼴이다. 막말, 험한 인상, 흙수저 출신, MBC 개그맨 공채 지원 경력(...)[63], 의외의 패밀리가이, 업계 최다 별명 보유자[64] 라는 점까지...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판문점 선언에 대해 "위장평화쇼"라며 이전의 6.15 남북공동선언 등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후퇴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당 지지자들은 물론 당내에서도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남북정상회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제발 오버 좀 하지 마시라"면서 홍 대표를 질타했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볼 때 자유한국당 대표로서 보여온 행보는 좋지 못하다는 평이 많았다. 단순 언론에서 언급되는 문제 뿐 아니라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 후보들이 홍 대표와 슬금 슬금 거리를 두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위에 언급되어 있는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이 "제발 오버하지 말라"며 홍 대표를 질타한 사건이나 경남지사로 출마했음에도 그와 거리를 두고 있는 김태호 전 경남지사 그리고 당초 현직 시장의 성공적인 시정으로 손쉽게 재선이 예상되었던 울산광역시 조차 홍준표와 장제원의 막말로 선거전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지자체장 후보들이 홍 대표의 지원을 꺼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는 "○○에서 지면 ○○강에 빠져 죽겠다"라는 식의 발언만 계속하며 유권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이대로가면 대권 도전이나 친박 청산은 커녕 당권을 지키는 일 조차 힘들게 됐다. 정두언 전 의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에 가면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 홍준표는 당대표로는 맞지 않다고 한다.[65] 또한 제7회 지방선거에서 6곳을 수성하지 못 하면 모든 책임을 진다며 사퇴를 시사했는데, 정말 선거 참패가 확정되었다. 개표 당시 페이스북에 해리 트루먼의 좌우명인 The buck stops here!를 써놨고 다음날 사퇴를 선언했다.
그 뒤로 2019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대해서 출마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불출마를 선언하자, 또 다시 스파이설이 돌았다.
  • 위에 나온 웃는 표정 덕분에 이런 짤방도 나왔다.

  • 뜬금없이 미국 서부의 국밥을 디스했다.
  • 지지자들이 연 홍카콜라 채널에 출연하고 있다.
  • 다른 우파 유튜버들과 다르게 5.18이 민주화 운동임과, 전두환이 독재자란 사실 자체를 부정 하지 않는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김영삼계 인사라면 해당하는 사실이기야 하지만, 최근 활동하는 우파 유튜버들 대다수가 5.18을 폭동이라고 왜곡 하기 때문에 이 점은 긍정적으로 봐야할 것이다. 애초에 비박계인 데다 이를 보면 말을 거칠지언정 극우인사는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 단어 선정 자체는 상당히 거친 편이나, 알맹이만 보면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소신있는 발언도 많은 편이다. 특히 정유라 사건 때와 달리 조국 논란엔 침묵하던 내로남불의 연예인들[66]에게 '얼치기 좌파 전위대'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어도 내용 자체는 맞는 발언이었는지라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듯 홍준표 자체가 검사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데,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게 이 케이스이다.
  • 전교조와 민주노총 타파를 강하게 주장하는 정치인이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 갑)

신한국당

41,257 (43.28%)

당선 (1위)

초선[67]

2001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동대문 을 국회의원)

한나라당

32,095 (50.6%)

당선 (1위)

재선[68]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

한나라당

37,058 (42.67%)

당선 (1위)

3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

한나라당

37,618 (56.83%)

당선 (1위)

4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

새누리당

36,182 (44.52%)

낙선 (2위)

2012

하반기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새누리당

1,191,904 (62.91%)

당선 (1위)

초선[69]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새누리당

913,162 (58.85%)

당선 (1위)

재선[70]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7,852,849 (24.03%)

낙선 (2위)

[71]

역대 선거 벽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추가바람

15대 총선 (서울 송파구 갑)

2001 하반기 재보궐 (서울 동대문구 을)

17대 총선 (서울 동대문구 을)

18대 총선 (서울 동대문구 을)

19대 총선 (서울 동대문구 을)

2012 하반기 재보궐 (경남도지사)

6대 지선 (경남도지사)

19대 대선

}}}

8. 소속 정당


  1. [1]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 [2] 청주지검 초임 검사이주영 당시 청주지방법원 판사(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와 지검장의 권유로 개명했다. 개명 이유는 이름에 들어가는 判(판단할 판)의 刀(칼도방)이 좋지 않고 발음도 어려워서 바꿨다고. 그래서 準(평평할 준)과 麟(기린 인) 중에 준(準)자를 택하여 그날 오후에 바로 절차를 밟아 바꿨다. #
  3. [3] 현재는 남지읍. 박원순과 같은 창녕인데, 박원순은 남지읍 바로 옆동네인 장마면 출신이다.
  4. [4] 남양 홍씨 당홍계 34세손 '杓'자 항렬이다. 같은 당 국회의원 홍문표, 홍일표, 라이벌 정당 정치인 홍익표, 홍영표, 전 부천시장 홍건표와 같은 항렬이다. 박연차 게이트로 인해 노무현 前 대통령을 수사했고 정운호 게이트로 인해 복역 중에 있는 홍만표 전 검사와도 같은 집안에 같은 항렬이다.
  5. [5]
  6. [6]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한 것을 책임지고 자유한국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변호사 재개업 신청을 하였고, # 2018년 6월 21일 개업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정식적으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7. [7]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8. [8]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2008~2009년에 맡았다. 그리고 알려져있다시피 통상 여당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을 겸한다.
  9. [9] 2011년 여름즈음부터 맡았으나,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의 패배 및 디도스 사태로 중도사퇴.
  10. [10] 2012년 12월 19일에 대선과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
  11. [11] 권한상의 차이는 컸다. 전자는 여당시절이었지만 집단지도체제라서 대표의 권한이 작았고 또한 박근혜라는 0순위 차기 대선주자가 존재했기 때문에(이미 김태호 전 지사의 총리후보 낙마 후 박근혜의 차기 주자 지위는 완전히 공고해졌었다.) 범친이계였던 홍준표는 더더욱 권한이 작았다. 오히려 야당이었음에도 후자가 단일지도체제라서 권한이 더욱 컸다. 얼마 전 대선의 패장이라지만, 탄핵정국에서 선거운동 초반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24% 득표율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게 고스란히 힘이 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
  12. [12] 의원 선수 등은 서청원, 김무성 등이 앞서지만, 대선 후보를 해봤다는 점은 홍준표에게 웃어주는 부분. 더구나 요새 선거흐름을 보면 의원직을 그만두고 시도지사를 나가는 경우는 상당히 많지만 그 반대는 없다. 기초단체장을 그만두고 총선에 나가는 경우라면 여전히 꽤 있지만. 그래서 지선이 열리는 해에 동시 시행되는 국회의원 재보선의 규모가 다른 해보다 월등히 크다. 즉 정계의 일반적인 인식이 시도지사 > 국회의원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2회 도지사 커리어의 값어치도 재선의원 이상이라는 것으로서 매우 높다. 그 외의 인물들이야 원유철, 정갑윤처럼(둘다 5선) 의원선수는 높아도 그뿐, 커리어가 비교가 안 된다.
  13. [13] 민심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즉 공천=당선이 아닌 지역이며, 전국 방방곡곡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서 민심의 바로미터다. 그래서 지방, 특히 텃밭 지역의 동일 선수 의원보다 더욱 높게 친다. 물론 험지는 당연히 제외.
  14. [14] 3당합당 이후 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으로 이어지는 영남 베이스의 보수1당. 즉 충청계 지역정당, 군소정당 등을 배제한다.
  15. [15] 흠이 있다면 내각경력이(총리 포함) 없는 것. 사실 홍준표 본인이 포항 대선 유세에서 밝혔던 거지만 환경부 장관직을 MB가 제의했는데 그런 권한 없는 부처 장관을 맡느니 내 안 한다는 생각으로 고사했다고 한다. 청와대 내부 직책(수석, 비서실장)이야 사실 여당 내 직전 총선 낙선/낙천자들 중 능력이 있거나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주로 들어가는 곳이니 제외.
  16. [16] 창녕은 지리적으로 부산보다 대구에 가깝기 때문에 대구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보면 대구가 경북권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남쪽 끝에 있어서 벌어진 일. 더구나 조선시대 경남 경북의 구분이 없이 그냥 경상도였을 때에 대구에 감영(現 도청)이 가장 오랫동안 소재해 있었다. 즉 경남까지도 포괄했었던 입지였던 만큼 경북권역만 따지면 남쪽에 치우칠 수밖에.
  17. [17] 1953년 1월생인 문재인과의 토론 당시 문재인에게 하대를 하여 논란이 있었다. 홍준표 본인은 문재인과 동갑(1953년생)이라고 주장했다.
  18. [18] 1996년 4월 작고
  19. [19] 아예 그럼 경북고 몇 기냐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20. [20]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상승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에는 4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혁신위원장, 원내대표, 당대표를 맡았고 경남지사에 두 차례 당선되는 등, 보수 진영의 중심적인 인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른바 '비주류' 출신이어서 그 과정에서 설움을 받기도 했고, 특정 계파에 소속되어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익이 따른 것은 사실이었다.
  21. [21] 마을 곳간의 훔친 비료를 샀다는 장물취득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2년 뒤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조합장이 비료를 빼돌린 뒤 경찰과 짜고 아버지에게 덮어 씌웠다고.
  22. [22] 너무 억울해서 친구들에게 경찰을 잡으려면 뭘 해야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검사를 추천해 줬다고 한다.
  23. [23] 당시 육사를 준비하던 홍준표(당시 자연과학부)가 갑자기 선생님에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할 거라 했는데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보낸 적이 없는데 그냥 육사를 가지 그러냐 내가 너 합격하면 장을 지진다"라고 했다고 한다
  24. [24] 24,000원의 월급에도 못미치는 박봉. 당시 공장노동자 월급이 8만원 정도였다고.
  25. [25] 왜 경비원이 순찰은 안하고 바닷가에서 모닥불 쬐고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당시 현대 조선소에는 담이 없고 철조망만 대충 쳐놔서 잔뜩 쌓아둔 철근 등의 자재를 노리는 도둑들이 많았다고 한다. 홍준표 부친의 일은 밤새 칼바람이 부는 백사장에 앉아 자재들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
  26. [26] 당시 이순삼은 20세였다.
  27. [27] 월요일에 왔다는 것을 말하면 부인이 자존심이 상해 수요일로 박박 우긴다고 한다.
  28. [28] 충청남도 도고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고급 호텔에 처음 들어간 신혼부부는 새벽 1시가 되도록 이불도 없이 히터도 되지 않는 방에서 덜덜 떨었다고 한다. 화가 나서 프런트에 항의하자, "경대 앞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난 삼아 눌렀던 버튼이 히터 차단 단추였던 것이다.
  29. [29] 아내 이순삼의 고향이 전라북도이라, 영호남 부부가 되었다. 그로 인해 1987년에는 대선 지지후보를 둘러싸고 저녁마다 논쟁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이혼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험악한 상황으로 발전됐다. 지지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두 사람은 결국 제3의 후보를 고르기로 합의했으나, 아내는 약속을 어기고 김대중 후보를 찍었다. 이 사실을 8년 후 알게 된 홍준표는 심한 배신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30. [30] 정치인으로서의 홍준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리나,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오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만큼은 충분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31. [31] 노무현 대통령의 당청분리는 본인 대에는 처음 해보는 실험적인 것이라서 그런지 열린우리당과 정권(청와대)이 공조가 잘 안 되어 고생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제왕적 총재였던 이회창이 대선 2연패로 물러났겠다, 또한 권위적인 당의 이미지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열린우리당을 따라서 총재 명칭을 없애고 대표로 바꾸었고, 정권교체 이후 보수정부 시절에도 그 당청분리의 기조는 그대로 이어져 2010년대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정계의 상식이 되었다.
  32. [32] 2018년 기준, 자유한국당이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당 재산이 민주당(천억원대)에 비해 서너 배, 수천억 원 단위나 되는 이유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 근 40여 년 동안 보수정권이 장기 집권 했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후신이 현 자유한국당이다. 당.정.청 분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을 시절이라, 정부의 자산, 즉 세금과 예산을 자연스럽게 스리슬쩍 여당의 당 자산으로 유용할 수 있었다. 2016년 말 탄핵 정국에 김무성 전 대표가 말했던, '지금 새누리당 자산은 전두환 독재 시절에 재벌들 등쳐서 쌓아놓은 것이 그 기반이라, 불법 / 탈법적인 것이라서, 국고에 지금이라도 헌납해야 한다'라는 주장과도 논지가 통한다.
  33. [33]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등. 그래서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임기 1년) 임기 몇 달 만에 반 강제로 쫓아냈던 것이 시대에 맞지 않게 비상식적이고 구태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34. [34] 오늘날의 정치 풍경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치 지망생들에게 전화해서 '우리 여당으로 오라' 이렇게 할 수 있는 풍경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그러면 정치중립을 위반해서 큰 일 난다.
  35. [35] 사실 홍준표는 김근태를 고문했던 이근안에 대한 검거 작전을 주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36. [36] 참고로 박근혜 같은 경우, 참여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김근태 장관에게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었다. 하지만, 홍준표는 원색적 비난 따윈 하지 않았다. 그만큼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었다는 것.
  37. [37] 이 시기에 199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손학규도 함께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워싱턴 오리알 3인방.
  38. [38] 문재인이 한살 더 많다.
  39. [39] 결국 19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동대문구 을에 전략공천 되지만, 친이계 원내대표, 당 대표였던 홍준표가 당선될 확률은 희박했다.
  40. [40] 이를테면, "대통령 되면, 석방시키겠다."는 드립을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박근혜를 사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41. [41] 홍준표가 4살 많다.
  42. [42] 페이스북에 올린 마지막 막말 中
  43. [43] 또한 이 둘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전방에서 대여 공격수 역할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친이계들과 더불어 4대강 사업에 찬동한 바 있다.
  44. [44] 안상수가 도지사 출마를 포기하고 박완수를 지지하는 대신 박완수의 원래 자리인 창원시장에 출마하는 것. 당시 홍준표는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당 대표 출신이 전임 기초자치단체장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창원시장이라도 해먹어야겠다는 식의 마인드라며 맹비난했다. 고향인 함안군을 놔두고 경남의 3분의 1이 넘는 창원시의 시장자리를 노린다며 대놓고 저격하기도 했고 경남도당 당원들은 물론 같은 당 출신 선배 정치인들에게도 모양사납다며 비판을 받았던지라 결국 박완수 전 시장이 경선에서 떨어지면서 경남지사 자리는 홍준표에게 넘어간다.
  45. [45]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문재인과는 단순히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해 대립 하는거지만, 친박의 수장인 박근혜가 홍준표에게 손해를 입힌 적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더 홍준표로선 더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보수라 내심 표걱정을 하기도 해서 끌어안으려고 하기도 하지만.
  46. [46] 조원진과 우리공화당 세력이 가장 증오하는 보수 우파 정치인인 김무성유승민급으로 홍준표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47. [47] 김무성과 유승민 등 비박세력의 경우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져서 조원진이 배신자로 규정한 것이고, 홍준표의 경우 바른정당계 정치인들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시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유한국당에서 출당시켰기 때문에 배신자 역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48. [48] 양아치 친박
  49. [49] 돼지발정제 논란이 나왔던 바로 그 책이다.
  50. [50] 경남 FC구단주는 경상남도 도지사가 겸임한다.
  51. [51] 홍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차라리 개그맨 시험을 다시봐서, 개그맨을 해서 개그맨이 되는게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52. [52] 유력 정치인 및 각 당의 대표들을 이경규가 직접 만나서 1대1 인터뷰를 하는 자리였다. 참고로 홍준표 대표 이전에, 유승민 의원, 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표, 더불어민주당추미애 대표 등이 출연했었다.
  53. [53] 이때 경선장에서 편지를 흔드는 홍준표의 모습도 나름 유명세를 얻었다.
  54. [54] 물론 이것은 오세훈 자체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고 봐야한다. 상술한 오세훈과의 관계 참조
  55. [55] 근소한 차이로 서병수가 당선되어서 이 일은 일단락 되기는 했다.
  56. [56] 그래서 작은 누나는 늘 홍준표에게 "네가 남자라서 우리 집 대표선수로 공부하는 것이다"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57. [57] 실제로 이렇게 딸들이 국내외적으로 희생된 케이스는 그 당시에 매우 매우 흔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서 공장, 안내양, 식모 등의 일을 하여 오빠나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장가 보내고, 집안에 돈을 보태는 여성들이 많았다. 가난하기도 했거니와, 남존여비가 심해 여자가 공부하면 뭐하냐는 인식도 강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좀 나아진 후로도, 아들은 대학에 보내지만 딸은 여상까지만 보낸 후 취직하게 하는 가정이 많았다. 또한 그다지 가난하지 않은 가정이라도,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토가 강하던 시절이라, 딸에게는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는 집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그 당시에 대부호로 유명했던 육종관의 딸인 육영수도 대학교를 다니려고 했으나 친정아버지인 육종관이 끝까지 반대했으며. 에디슨의 라이벌로 호각을 다투었던 세르비아의 천재적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누나인 밀카와 안젤리나도 대학교까지 진학하고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발명가 과학자로 성공한 남동생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 하고 일찍 시집을 가서 모국인 세르비아에 남아 가정주부로 생을 마쳤다.
  58. [58] 물론 이게 아들로 태어난 홍준표의 잘못이 아니다.
  59. [59] 한가지 변론을 하자면 압도적인 표차이로 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심해까지 추락한 2017년 초 한국당의 지지율 상태에서는 어떤 후보를 내놓아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국민들은 좌우 가리지 않고 친박이라면 이를 갈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력이 대선후보급이면서도 박근혜 정부 내내(김두관의 사퇴로 생긴 재보선이 18대 대선과 같은 날에 동시실시했다.) 경남지사로 있어 중앙정치와 거리가 있었던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소속임에도 24%라는 지지율을 받을 수 있었던 것.
  60. [60] 게다가 본인의 성인 洪씨의 발음이 紅과 같은 점도 묘하게 작용하는 듯.
  61. [61] 이날 미우프에서 모두 각자 해당후보를 직접 만났다.
  62. [62] 위 발언은 법무부의 변호사시험법안에 찬성하는 것이 당론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홍준표의 신신당부가 무색하게도, 문제의 법안은 강용석이 일장연설로 대거 이탈표를 발생시키는 바람에 부결되고 만다(...).
  63. [63] 박명수는 합격했지만 홍준표는 원서만 내고 유신사태로 인해 실기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64. [64] 홍준표 본인도 이제는 별명이 안 생기는 게 희망사항이라 말할 정도.
  65. [65] 검사시절이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나 자세히 살펴보면 뚝심이나 추진력은 좋은 편이지만 유독 2번의 당대표 경력을 살펴보면 본인의 망언이나 통제력 부족으로 대표직을 날려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쉽게 말해 법조인이나 행정가가 지녀야 할 능력은 좋을지 몰라도 다른사람을 통솔해야 하는 자리에는 맞지 않다는 의미이다.
  66. [66] 유병재 등
  67. [67] 1999년 2월 의원직상실(선거법 위반)
  68. [68] 16대 총선 해당 선거구 원당선자의 위장전입으로 선거무효 판결로 인한 재보궐선거
  69. [69] 전임자 김두관 2012년 7월 지사직 사퇴(대통령 선거 출마)
  70. [70] 2017년 4월 9일 제19대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
  71. [71]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 역대 주요 보수정당 후보 중 최저 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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