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

위서(魏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3권 「명제기(明帝紀)」

조조

조비

조예

4권 「삼소제기(三少帝紀)」

5권 「후비전(后妃傳)」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조방

조모

조환

무선황후

문소황후

문덕황후

명도황후

명원황후

동탁

원소

원술

유표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여포

장홍

공손찬

도겸

장양

공손도

장연

장수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조휴

조진

하후상

순욱

순유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원환

장범

양무

국연

전주

왕수

병원

관녕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최염

모개

서혁

하기

형옹

포훈

사마지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종요

화흠

왕랑

정욱

곽가

동소

유엽

장제

유방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유복

사마랑

양습

장기

온회

가규

임준

소칙

두기

정혼

창자

17권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이전

이통

장패

문빙

여건

허저

전위

방덕

방육

염온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조창

조식

조웅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조앙

조삭

조충

조거

조우

조림

조곤

조현

조간

조표

조정

조림

21권 「왕위이유부전(王衛二劉傳)」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왕찬

위기

유이

유소

부하

환계

진군

진교

서선

위진

노육

23권 「화상양두조배전(和常楊杜趙裴傳)」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화흡

상림

양준

두습

조엄

배잠

한기

최림

고유

손례

왕관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신비

양부

고당륭

만총

전예

견초

곽회

서막

호질

왕창

왕기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29권 「방기전(方技傳)」

왕릉

관구검

제갈탄

등애

종회

화타

두기

주건평

주선

관로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족

선비족

부여

고구려

읍루

예맥

동옥저

마한

진한

변한

}}}||

華陀

(145년? ~ 208년 이전[1])

1. 개요
2. 정사
3. 일화
4. 연의
5. 미디어 믹스
6. 그 외에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로 삼국지의 등장인물. 는 원화(元化)로 본명은 부(敷)다.[2]

신의(神醫)라고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명의로서 또 다른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과 더불어 중국에서 의사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다. 더불어 동 시대의 인물인 장중경, 동봉과 함께 건안삼신의라고 불린다.

워낙 유명한 명의다보니 실제 역사와 관계없는 설화에서도 등장이 잦다. 판본에 따라선 토끼전에 나와 토끼를 놓친 자라에게 만병통치약을 주며 구원하는 역할로 나오는 것이 그 일례다.

2. 정사

사실 화타는 전업 의원이 아니었다. 정사 삼국지의 화타전에 그는 서주의 유명 인사였으며 여러 경전에 통달한 학식있는 유생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양성의 방법에 밝았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화타의 나이가 백 세 가까이 되었지만 장년의 용모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패국의 재상 진규가 화타를 효렴으로 천거하였고, 태위인 황완이 그를 조정에 출사하도록 불렀지만, 화타는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로써 그는 당고의 화와 같은 비극이 비일비재했던 불안정한 중앙정부에서 굳이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까지의 의술은 어떤 병이든 간에 침 혹은 내복약을 사용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화타가 살던 시대는 침구학 및 경혈학 자체가 발전도상에 있는 단계였고, 침구학의 일차적인 완성은 서진시대의 황보밀이 침구갑을경을 저술함에 이르러서이다. 또한 내복약 사용의 일차적 완성, 즉 상한론의 완성은 화타가 사망한 뒤인 210년으로 학자들은 보고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화타는 특수한 탕약인 마비산(麻痹散)이라는 마취약을 사용하고 외과수술을 행하여 병의 근본 원인을 적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전한다. 삼국지 시대에 마취를 이용한 외과수술을 실행한 것이다. 약 먹어 50년 걸릴 병을 한 번 수술에 끝장내니 신의로 추앙받을 만하다.

화타가 실제로 개복 수술정도의 외과 수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존재하는 데, 마비산을 복용시켜 환자의 정신을 잃게 한 후, 복부를 절개하여 장기의 일부를 도려내고 실로 봉합하여 수술을 마친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대의 외과 수술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있다. 하지만 현대 외과 수술의 핵심 중 하나인 소독수혈 부분의 언급이 없어, 실제 화타가 위 내용대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하더라도 사망률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화타가 수술을 어디서 배웠다는 기록도 없고 제자에게 전수되지도 않아 거의 전설적 인물로 추앙된다는 점 또한 화타가 정말로 외과 수술을 하였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다만 이집트, 그리스, 인도 문화권에서도 대마, 아편 등을 이용하여 진통 및 마취를 한 기록도 있고, 인도 경전에 마취, 절개, 봉합의 순으로 이어지는 수술기록이 많이 전해지며[3][4], 남미 등지의 미라에서 외과 수술 흔적이 발견 되는 등, 고대시대에 외과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광범위 하게 발견되는 상황에서 중국 고전에 나와 있는 화타에 의한 수술기록을 완전히 허구라고 단정짓기 어렵기는 하다.

그 외에도 동물의 몸동작을 보고 건강체조를 고안하여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전해지는데, 곰 체조, 호랑이 체조, 사슴 체조, 원숭이 체조, 새 체조 등 다섯 동물의 동작을 본따 오금희라고 한다. 이는 중국에서 아직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화타는 편력의라고 불리는 의사로서, 블랙잭이나 닥터 K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사기 열전의 편작 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5] 각 진영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 물론 실력은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력과 그 이상의 소문이 본인에게 재앙을 불러왔다.

208년 무렵, 조조가 워낙 두통이 심해 화타에게 자신을 치료해달라고 청했으나 그는 한 번 와서 이 질병은 단기간에 치료하기는 어렵고, 장기간 치료해야만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하고 증상을 조금 호전시킨 뒤 다시 돌아가서는 부인의 병환이 위중하여 갈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몇 번을 다시 불러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정확하게는 差라고 쓰였다. 즉 어느 정도 차도를 보였다는 이야기. 꾀에 밝은 조조는 몇번이고 거부받자 이를 수상하다고 여겨 군현의 관리에게 명령하여 화타를 보내도록 했다. 화타는 자신의 본령을 견지하고 다른 사람을 모셔 녹을 먹는 것을 싫어하였으므로 길에 오르지 않았다. 조조는 매우 노하였으며, 사람을 보내 가서 살펴보도록 했다. 만일 화타의 처가 정말로 병에 걸렸다면 팥 열 섬을 내리고 휴가 기한을 더 늘려주도록 하고,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체포하여 압송하도록 했다. 그의 상황을 살피게 했는데, 과연 아프다는 아내는 오히려 말짱하고 화타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화타는 허현의 감옥으로 넘겨졌으며, 심문을 받고 죄를 시인했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그를 즉시 하옥시켰고, 결국 화타는 옥 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의사로서의 재주가 몹시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조조의 일등 모사인 순욱이 재주가 아까우니 "화타의 의술은 확실히 매우 정통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바이니 그를 당연히 용서해야 합니다." 라고 살리자고 탄원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조는 걱정하지 말라며 천하에는 이런 쥐새끼 같은 자가 없어야만 한다고 화타를 가혹하게 고문했다. 화타가 죽으려고 할 때, 책 한권을 꺼내 옥의 관리에게 주고 이 책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고 했지만 옥의 관리는 법을 범하는 것이 두려워 받지 않았고, 화타 또한 강요하지 않고 불을 찾아 태워버렸다. 화타가 죽은 후에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자 조조는 "화타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나의 병을 고쳐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다, 내가 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도 끝내 나를 위해 이 병의 근원을 잘라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아들 창서(조충)가 질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필경엔 조조마저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화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가 가장 총애하던 아들인 조충이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화타를 처형할 때 조충이 앓아눕게 되어 조조가 부랴부랴 처형을 취소했으나 명령이 사형장에 도달하기 직전 화타가 처형당했다는 야사도 있다.

당시 조조의 병은 화타 입장에서는 '치료 불가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후한서에 나오는 조조의 병은 '두풍(頭風)'이었는데, 현대의 삼차신경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전부터 계속 앓아왔고 차도가 있었다면 치료 불가능이 아닐 수도 있다. 삼국지 미디어 매체들이(특히 일본에서) 조조를 냉혹한 초인으로 많이 표현하지만 실제로 조조는 굉장히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치료가 가능하더라도 조조 본인의 성향과 지위를 감안하면 재발이나 악화가 되어 치료한들 무의미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은퇴하여 요양에만 전념할 상황도 아니었다. 한편으로 후한서에서는 '常在左右'라고 하여 그보다는 오만하고 자기 재능을 과신하여 위정자들 밑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니 그냥 조조 밑에서 일하는 게 싫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사실 그 외에도 야사는 무지막지하게 많다. 사실 조조를 고쳐주려고 약을 만들어봤는데 그 약이 극약이라 맛보다 본인이 먼저 가버린 게 왜곡되었다는 이야기따위 말이다. 후한서에는 몇가지 치료 예시가 나온다. 그 중에는 광릉태수 진등이 날생선을 먹고 걸린 기생충 질환을 고쳐준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진등에게 '지금은 내가 있어서 치료를 해줬으니 살았지만, 날생선을 먹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중에 재발하여 요절하게 될 것이다'고 조언했는데, 결국 3년 뒤에 화타가 사망한 뒤 진등은 병이 재발하면서 병사했다.[6]

옥중에서 자신의 의술을 집대성한 책인 청낭서(靑囊書)를 옥리에게 건네 의술을 전하려고 했지만 그가 두려워 받지 않았고 이에 책을 태워버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화타는 실제로 직전제자가 둘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이 이야기는 거짓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둘은 광릉 사람 오보와 팽성 사람인 번아인데, 후한서에는 오보가 오금지희를 전수받고 번아는 침술과 처방 중 일부를 전수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 시대가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완전한 전수인지 아닌지는 의문이다.

그의 저서로는 침중구자경, 관형찰색삼부맥경, 화타내사, 화타방, 청낭서 등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모두 유실되어 일부 내용들만이 다른 의서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진수는 화타의 진료, 두기의 음악, 주건평의 관상술, 주선의 꿈풀이, 관로의 점꽤는 진실로 모두 현묘하고 정교하며 비범한 기술이고 옛날 사마천편작, 창공, 일자의 전을 지은 것은 불가사의한 것을 포괄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며 떄문에 자신 역시 이런 것을 기록하였다고 했다.

3. 일화

  • 그는 약품 처방에도 정통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끓일 경우에는 불과 몇 종류의 약재를 합쳐 끓였으며, 마음속으로 약품의 분량을 가늠하고 다시 저울로 재지 않았다. 끓여서 익으면 환자에게 먹이고 약을 복용할 때의 주의 사항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여 약을 먹으면 병이 완쾌되었다. 불과 한두 곳만을 선택하여 각 곳마다 만일 뜸질을 해야 될 경우라면, 뜸질을 7,8회만 하여도 병세가 사라졌다. 만일 침을 놓아야만 될 경우라면 한두 곳만을 선택하여 침을 놓으면서 환자에게 말한다.

"침은 어떤 장소에까지 찔러야만 합니다. 만일 그곳까지 찔러졌다면 말씀하십시오."그러면 환자는 '벌써 찔러졌습니다'라고 말한다.즉시 침을 빼고 나면, 환자의 병세 또한 차도가 있었다. 만일 신체 내부에 병이 있는데 침과 약으로는 환부에 미칠 수 없어 반드시 절개를 해야만 될 경우에는 환자에게 마취약을 먹여 잠시 취한 듯 죽은 듯 지각하는 바가 없게 하고 환부를 잘라 꺼내었다. 만일 창자 속에 질병이 있다면 창자를 잘라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봉합하여 고약을 붙인다. 4,5일 후면 차도가 있어 통증이 없고, 환자또한 스스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한 달만에 완쾌되었다.
  • 감릉의 상으로 있던 사람의 부인이 임신한지 6개월이 되었는데 복통으로 편안하지 못했다. 화타는 그녀의 맥을 짚어보고 태아는 벌써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시켜 손으로 더듬어 태아의 위치를 살피게 하고, 왼쪽에 있으면 사내 아이이고, 오른쪽에 있으면 여자아이라고 했다. 위치를 살핀 사람이 왼쪽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탕약을 배합하여 태아를 씻겨내리니, 과연 내려온 것은 사내아이의 모습이었고, 즉시 통증이 사라졌다.
  • 현의 관리 윤세는 사지에 열이 나고 입안이 마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소변도 순조롭지 못하였다. 화타가 말했다.시험삼아 뜨거운 음식을 먹어보아 땀이 나면 쾌차하고, 땀이 나지 않으면 사흘이 지난 후에 죽을 것이라고 했다. 즉시 뜨거운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만 땀이 나지 않았으니 장기가 이미 체내에서 끊어졌고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기를 이을 수 있다라고 하니 과연 화타의 말과 같았다.
  • 부(태위의 막부)의 관리 아심과 이연이 함께 화타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두통과 전신에 열이 있었으며, 느끼는 고통이 똑같았다. 화타가 아심은 설사를 해야만 되고, 이연은 땀을 내야만 합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병은 같은데 치료 방법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화타는 아심은 체질이 겉으로 튼실하고, 이연은 속이 튼튼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한다고 했고 즉시 각자에게 약을 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두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어 일어났다.
  • 염독의 엄흔이 몇 사람과 함께 화타를 찾아왔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자 화타가 엄흔에게 당신의 몸은 좋느냐고 질문했고 엄흔은 평상시와 같다고 했다.화타는 화급을 다투는 병이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니.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 엄흔 등은 담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몇 리를 가다가 엄흔이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수레 위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튿날 밤에 죽었다.
  • 이전에 독우(순찰관)를 지낸 돈자헌이 병에 걸렸다가 쾌차하여, 화타에게 진맥을 짚어보게 는데 화타는 몸은 아직 허약하며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았으니, 수고로운 일(방사)을 하지 말라고 했다. 돈자헌의 아내는 돈자헌의 병이 좋아졌다는 것을 듣고 백여 리 밖에서 와서 그를 살펴보고는 밤에 그의 집에 머물며 교접을 하였는데 중간 3일만에 발병하였다. 하나같이 화타가 말한 것과 같았다.
  • 독우 서의가 병이 들었으므로 화타가 가서 그를 진찰해 보았다. 서의가 어제 의조리 유조를 시켜 위에 침을 놓게 한 후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와서 누워서 편안히 잘 수가 없었다고 하자 화타가 침을 위에 찌르지 않고 잘못하여 간을 찔렀습니다. 먹는 것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닷새가 지나면 구할 수 없다고 했고 결과는 화타의 말처럼 되었다.
  • 동양현 진숙산의 작은 아들이 두 살 때 병에 걸려 변을 보지 못해 항상 먼저 울었으며,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화타에게 묻자 이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태아를 자라게 하는 데 양기가 집중되었으므로 모유를 먹는 아이는 어머니의 차가운 성분을 섭취하였기 때문에 나을 수 없다라고 말했으며 화타는 네 가지 물건을 합쳐 만든 여완환을 주었는데, 열흘후에 병세가 사라졌다.
  • 팽성태수의 부인이 밤에 변소에 갔다가 전갈에 손을 쏘여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했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화타는 사람을 시켜 탕약을 뜨겁게 하여 그속에 손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하니 즉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여러번 탕약을 바꾸어 탕약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였다. 날이 새자 쾌차했다.
  • 군대의 관리인 매평이 병에 걸려 업무를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광릉현에 있었는데, 2백 리를 남겨두고 친척집에서 머물렀다. 오래지 않아 화타가 우연히 주인집에 오게 되었고, 주인은 화타로 하여금 매평을 보도록 했다. 화타는 당신이 일찍 나를 만났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질병이 이미 다했으니, 빨리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만나라 닷새후면 죽는다 라고 했다. 매평은 즉시 돌아갔고, 죽은 기일은 화타가 예측한 것과 같았다.
  • 화타는 길을 가다가 목구멍이 막히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음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먹지 못하자, 집 식구들이 수레에 태워 의사에게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화타는 그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고 수레를 멈추게 하고 가서 살펴보고 그들에게 방금 지나온 길 옆쪽 빵을 파는 집에 마늘을 부수어서 시게 만든 것이 있으니 세 되를 사서 그에게 먹이면 병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화타의 말처럼 했더니 환자는 즉시 한 마리를 토해냈다. 토해낸 뱀을 수레 옆에 걸고 화타를 방문하니, 화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 아이가 문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맞이하여 보고 "우리 아저씨를 만난 것 같군요. 수레 옆에 뱀을 매달았네요." 라고 말했다. 환자는 앞으로 들어가 앉아서 화타의 집의 북쪽 벽에 이런 뱀이 수십 마리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 어떤 군의 태수가 병이 들었다. 화타는 그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많은 돈을 받고 치료를 하지 않았으며 오래지 않아 환자를 내버려두고 떠나면서, 태수를 욕하는 편지를 남겼다. 태수는 과연 매우 화를 크게 냈으며, 사람들을 시켜 화타를 추격하여 잡아 죽이도록 했다. 군수의 아들은 화타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수하 관리들에게 쫓지 말도록 했다. 태수는 최대 한도로 분노하더니 검은 피를 토하자 병이 낫게 되었다.
  • 한 사대부가 있었는데, 몸이 불편하였다. 화타는 그대의 병은 깊습니다. 배를 잘라 절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수명 또한 1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니, 질병이 그대를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10년간 질병을 참아낼 수만 있다면 수명과 함께 질병이 다할 것이므로 특별히 절제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고 사대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반드시 절제하려고 했다. 화타는 마침내 수술을 하였고, 환부는 빨리 좋아졌는데, 10년이 지나 결국 죽게 되었다.
  • 조조가 소문을 듣고 화타를 불러 화타는 항상 조조 곁에 있었다. 조조는 두통으로 고생하였는데, 매번 재발할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고 눈이 몽롱했다. 화타는 침으로 횡격막을 찔렀으며, 손이 따라가는 대로 병세가 사라졌다.
  • 화타별전(華佗別傳)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양 다리(兩腳)가 절뚝발이(躄) 되는 병에 걸려 걷지를 못하였기에 수레를 타고 화타에게 가니, 화타가 그것을 멀리서부터 지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몸은 침과 뜸을 사용하고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진맥하지 않아도 된다." 옷을 벗도록 하여 편하게 하고, 등 수십 곳을 점하였는데, 서로 거리가 어떤 것은 1촌이고, 어떤 것은 5촌이어서, 놓인 것이 일정하지 않아 서로 균형되게 어울리지 않았다. 말한대로 뜸이 이처럼 각 10장(壯)이었는데, 뜸의 상처가 낫자 곧 움직일 수 있었다. 후에 뜸을 뜬 곳 협척혈(夾脊穴, 등마루를 끼고 양쪽에 있는 혈) 1촌으로 남아 있는 상처의 모양이 상하)上下_ 행(行)이 바르고 곧았으며, 하나 같이 고르게 있어 마치 포승줄(혹은 새끼줄)과 같았다.
  • 이장군의 부인이 병세가 심각하였으므로 화타를 불러 맥을 짚어 보도록 했다. 화타는 유산이 되었지만, 태아가 모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라고 말했는데 이장군이 유산이 확실하다면 태아는 이미 떨어진 것이라고 들었다라고 했다. 화타는 진맥에 의하면, 태아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라고 했지만 이장군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타는 진료를 멈추고 떠났다. 부인의 병세는 점점 호전되었다. 백여일 후에 병이 재발하였으므로, 다시 화타를 불렀다. 화타가 말하기를 "이 맥의 관례에 따라 판단하면, 태아는 아직 있습니다. 이전에 두 아이가 생겼는데, 한 아이는 먼저 나왔는데 출혈이 매우 많았고, 뒤의 아이는 아직 출생하지 못했습니다. 산모는 자각하지 못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깨닫지 못했으므로 이어서 낳지 않았기 때문에 출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아는 죽었고, 어머니의 혈맥은 다시 태아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태아가 말라서 어머니의 등골뼈에 붙어있기 때문에 등골뼈의 통증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 탕약을 주고, 아울러 한 곳에 침을 놓으면, 죽은 이 태아는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탕약과 침을 모두 사용하자, 부인의 격렬한 통증이 아이를 낳을 때와 같았다. 화타는 이 죽은 태아는 너무 오래 말라 있었으므로 스스로 나올 수 없고 응당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찾도록 해야한다라고 했다. 과연 죽은 한 사내아이를 꺼냈는데, 손과 발이 모두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안색은 검었으며, 몸은 1척쯤 되었다.
  • 처음에, 군대의 관리 이성이 고통스런 기침으로 밤에도 낮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항상 피고름을 토하였으므로 화타에게 물었다. 화타는 그대의 병은 장에 종기가 난 것으로 기침할 때 토하는 피고름은 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두 전의 가루약을 줄테니 두 승쯤 되는 피고름을 토하고 마음이 유쾌해지고, 기를 갖고 자애롭게 한다면 1년이면 건강하게 될 것이며 18년이 지나면 한 차례 작은 발작이 있을 것인데, 이 가루약을 복용하면 또한 병세는 회복될 것이고 만일 이 약을 얻지 못한다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한 후 그리고는 두 전의 가루약을 주었다. 이성이 약을 얻은후 5,6년이 지났을 무렵에 친척중에 이성과 또 같은 병에 걸린 자가 있었는데, 그대는 지금 건강하고,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병이 없으면서 약을 수장하고 장차 올 병에 대비하며 견디십니까?[7] 먼저 나에게 주면 나는 병이 치료될 것이고, 다시 당신을 위해 화타에게서 구해오겠다고 했다. 이성은 약을 그에게 주었고 병이 완치되어 초현으로 갔지만, 마침 화타가 (조조에게) 붙들려 갔으므로 화타에게서 약을 구하지 못했다. 18년후, 이성은 병이 재발했지만, 약을 복용할 수가 없어 죽게 되었다.[8]
  • 낭야 사람 유훈(劉勳)이 하내태수(河內太守)로 있을 때 스무 살 가까운 딸이 있었다. 딸의 왼쪽 다리와 허벅지 안쪽에 창이 있었는데, 가려움이 심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창이 나았다가도 수십일이면 다시 발병하였는데, 7~8년 동안 이와 같아서 화타를 맞이하게 되어 딸의 병을 보도록 하였는데, 화타가 말하길 이런 정도는 쉽게 고칩니다. 쌀겨와 같은 색의 누런 개 한 마리와 좋은 말 두필을 준비하시오"

그리고는 새끼줄을 개의 목에 걸어서 말 한 마리가 개를 끌고 달리게 했다. 말이 지치면 즉시 다른 말로 바꿔서 달리게 했다. 이렇게 말이 끌고 다닌 거리가 30여 리가 되었다. 끌려 다니던 개는 지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다시 사람이 걸어다니며 그 개를 끌고 다니게 하여 총 50리를 끌고 다녔다. 이에 화타는 그 사이 처녀에게 약물을 먹였는데 딸은 편안히 누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그리고 나서 화타는 큰 칼(刀)로 개의 배 근처 뒷다리 앞을 자르고, 그 자른 부분을 창구瘡口를 향하여 두었는데, 2~3촌 정도 떨어지도록 하였다. 잠시 후 뱀 처럼 생긴 것이 창 속에서 따라 나왔는데, 익숙하게 쇠몽둥이(철추)를 휘둘러 뱀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그랬더니 그 뱀은 피부속에서 한참을 꿈틀거리며 요동을 치더니, 잠시 뒤 그 멈추었다. 이에 화타가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자 길이가 3자(尺)가 넘으며 진실로 뱀이었으나, 다만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으나 눈동자가 없었고 또한 비늘이 거꾸로 나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고약을 창병에 바르자 일주일만에 나았다.
  •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가 어지러운 것으로 고통스러워하였는데 머리를 들 수도 없었고 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것이 수년이나 되었다. 화타는 옷을 모두 벗고 거꾸로 매달게 하여 머리가 땅에서 1~2촌정도 떨어지게 하고서는 천을 적셔 몸을 고루 닦게 하였는데 여러 맥을 보니 모두 5색의 빛을 띄었다. 화타는 제자 몇 명으로 하여금 피도로 맥을 갈라 5색의 피가 다하고 붉은 색의 피가 보이고 나서야 내려주고 연고를 바른 이후 덮어 주었다. 땀이 온 몸에서 나고 정력견혈산(亭歷犬血散)을 마시게 하니 곧 나았다. 또한 어떤 부인이 있어 긴 병을 수년동안 알았는데 세상에서 말하길 오한과 발열이 병을 나게 한다는 것이다. 겨울 11월 중 화타는 그녀로 하여금 나무 욕조에 앉게 하여 이른 새벽에 차가운 물로 몸을 적시게 했는데 말하길 마땅히 100번을 채워야 한다고 하였다. 처음 7~8번을 적시자 몸에 전율을 일으키며 죽을 것 같으니 물을 끼얹는 사람이 두려워 멈추고자 하였다. 화타는 그로 하여금 숫자를 다 채우도록 하였다. 장차 80번에 이르러 열기가 뿜어져 나와 효효히(들레는 모양) 높이가 2~3척이나 되었다. 100번을 채우자 화타는 마침내 불을 지펴 상을 따뜻하게 하고는 두텁게 덮도록 했고 오래 지나자 땀이 나왔고 분을 발랐으며 땀이 마르고 나서 곧 나았다. 또 어떤 사람이 있어 배속의 반절이 아파 10여 일 동안 수염과 눈썹이 떨어질 정도였다. 화타는 말하길 '이는 비장의 절반이 부패한 것이니 가히 배를 갈라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는 약을 먹고 눕게 하여 배를 갈라 보니 비장의 절반이 과연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이를 칼로 잘라내 나쁜 살을 없애고 나서 고약을 상처에 바르고 약을 마시게 하니 100일 만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4. 연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태를 치료해주는 장면이 창작되었다. 그런데 죽는 연도가 조조의 사망 부근으로 미뤄졌다.

219년 번성 전투에서 화타가 독화살에 맞은 관우를 치료했다는 일화는 연의의 창작이다. 하지만 치료한 사람이 화타가 아닐 뿐, 관우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수술받았다는 기록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것과 사망년도가 관우보다 나중인 건 연의에서 각색된 내용이고, 관우가 화살에 맞고 수술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태연했던 것과 조조가 화타에게 치료를 의뢰했다가 분노해 그를 가둔 후 처형한 건 사실이다.[9][10]

220년에 조조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고 뇌막염을 치료해주려고 했으나 조조는 이러한 치료법을 믿지 않고[11] 화타가 관우의 예를 들어가며 설득하자 오히려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해[12] 화타는 옥중에서 죽는다. 화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의술을 집대성한 책인 청낭서를 평소에 자기에게 잘 대해 주었던 오압옥(吳押獄)[13]이라는 간수에게 전해 주었고, 오압옥은 이 책을 집에 놓아 두지만 이를 본 오압옥의 아내가 오압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낭서를 불에 태워 버렸다. 오압옥은 아내가 청낭서를 태우고 있는 것을 보고 다급히 불을 껐지만, 책은 이미 몇 장을 제외하고 전부 불타 있었다. 오압옥은 아내에게 왜 책을 태운 거냐고 따졌지만 아내는 제 아무리 신묘한 의술을 배워봐야 결국은 화타처럼 죽기밖에 더하겠냐 라고 대꾸했다고 한다.[14] 결국 이로 인해 화타의 의술은 타다 남은 몇 장에 적힌 가축을 거세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5. 미디어 믹스

6. 그 외에

워낙 의사하면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팀 닥터들이 훌륭한 실력을 보이면 그 팀에 화타가 있다고 표현한다. 물론 아스날 FC와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다. 마피아 게임을 할 때에도 의사 역이 신들린 찍기로 마피아에게 공격 당한 이를 구해낼 경우 화타 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2014년삼성 라이온즈이승엽이 홈런을 치자 병실에 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이 눈을 떴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민화타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간혹 야구 팬들 사이에서 못하는 선수나 팀이 특정 팀이나 선수를 만난 기점으로 실력이 만개하거나 되살아날 경우에도 화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사 삼국지 화타전에 따르면, 화타는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선비로 여겼기 때문에 의원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사실 화타는 효렴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있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평생동안 은사를 자처했는데, 어찌보면 남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난세를 조용히 살고 싶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화타가 의원이라는 직업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일수도 있다. 현대의 의사들이 사회 상류층으로 대우받는 것과는 달리, 전근대의 의원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즉 당시 선비들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에, 선비를 자처했던 화타가 자신의 이름이 선비가 아닌 의사로 알려지는 것을 꺼렸음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중국 역사속의 명의로는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만 하더라도 주태, 관우, 조조 등 숱한 인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가는 등 여러모로 인상적 활약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별주부전 판본 중에서도 화타가 별주부를 돕는 전개가 있을 정도로 매우 오래 전부터 친숙한 인물.

화타는 편작과 더불어 중국사 속에서 의원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곤 하는데, 재미있게도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평생토록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날리며 숱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으나, 정작 자신들은 그 의술 때문에 누군가에게 타살당하는 등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편작과 화타는 모두 당대의 명의답게 치료보다는 예방을 중요시했다. 편작은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는 자신의 재주보다도, 사람들의 병을 미리 예방하는 재주를 지녔던 자신의 형들의 재주를 높이 쳤다.[15] 화타 또한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개선해서 병에 걸릴 확률을 줄이기 위해 직접 체조법까지 고안해내기까지 했다.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선 DDP 요가로 많은 전, 현직 프로레슬러들을 재활시키는데 성공한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가 화타선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1. [1] 후술되었지만 화타의 전기에 조조가 아들 조충이 위독하게 되자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늦어도 조충이 사망하는 208년이나 그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2] 배송지 왈, 옛 부(敷)자는 전(專)자와 서로 비슷하여 글을 베끼는 자가 쉬이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생각건대 화타의 자가 원화임을 고려한다면, 그 이름은 마땅히 부旉(=敷)가 될 것입니다.
  3. [3] 불교 경전의 지바카 코마라밧차의 경우에는 누구에게 배웠다는 내용이나 몸 내부를 볼 수 있는 막대기 등의 내용도 있어 화타의 내용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다.
  4. [4] 인도에서는 수술도구로 추정되는 유물이 상당히 발굴되며, 고대 인도에서 죄를 범하면 코가 잘리는데, 이마쪽 피부를 잘라 이식하여 코를 다시 복원 하는 등 외과 수술이 실제로 수행되었다. 기원전 800년 경에!!(유럽에서는 15세기경 부터 이런 비슷한 수술을 시행하였다.)
  5. [5] 덧붙이면 이 시대에 살았던 장중경도 본업은 의사가 아닌 장사 태수였다고 한다.
  6. [6] 정사 삼국지에는 이렇게 나온다. '광릉태수 진등이 병이 들자 가슴속에 고민이 가득하였으며 안색이 붉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화타는 그의 진맥을 보고 말했다."당신의 위 속에 있는 몇 되의 기생충이 안에서 악성종기가 되려고 하는데, 날 것을 먹어서 생긴 것입니다." 즉시 두 되의 탕약을 만들어 먼저 한 되를 복용하게 하고, 조금 있다가 전부 복용하도록 했다. 탕약을 먹은지 얼마 안 되어서 세 되의 기생충을 토했는데, 붉은 색 머리는 모두 움직이고 있었으며, 반쪽은 아직 물고기를 얇게 저민 모습을 하고 살아있었다. "이 병은 3년후에 또 재발합니다. 그때 훌륭한 의사를 만나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과연 화타가 말했던 기일에 병이 재발하였는데, 그 당시 화타가 죽어서 치료하지 못했다.
  7. [7] (배)송지가 살피기로는, 고어(古語)에서는 장(藏)이라는 의미로 거(去)를 썼다고 했다.
  8. [8] 어떤 사람이 산양태수(山陽太守) 광릉(廣陵)사람 유경종劉景宗을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여러 번 화타를 만났던 것을 이야기했다, 그 병을 치료함과 평맥을 짚어 증상을 살피는 것을 보았는데, 귀신 같았다고 증험하였다.
  9. [9] 이문열은 관우가 화살맞고 치료받은 일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화타에게 치료받았다는 식으로 각색됐지 실제로 관우가 치료받으며 아무렇지 않아했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나자 망신당했다.
  10. [10] 만화 창천항로에선 관우가 이마에 화살을 맞은 상처를 치료하려고 상처부위에 술을 붓고, 꿰매는 일은 부하인 요화에게 맡기는 장면이 나온다.
  11. [11] 사실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정상이었다. 당시에도 믿기 어려웠지만, 뇌를 건드리는 외과수술을 전문적인 설비도 없이 진행한다는 건 현대에서는 더더욱 신뢰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고통은 마취제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자칫하면 감염크리로 사망할 수도 있다. 물론 뇌과수술을 제안한 사실 자체가 연의의 창작이므로, 이쪽에 대하여 아는 게 없었던 나관중이 그냥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12. [12] 과거에 조조는 의원 길평에게 암살당할 뻔한 적이 있다.
  13. [13] 본명은 아니고 성이 오(吳)씨인 옥졸(押獄) 이라는 뜻이다.
  14. [14] 다른 버전에서는 오압옥 본인이 책을 태우고 그의 아내가 이유를 묻는다. 이유도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화타처럼 죽기밖에 더하겠나 또는 이거 읽는다고 화타처럼 될 자신이 없다 또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정도가 있다.
  15. [15] 편작의 형들은 그렇게 뛰어난 명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병에 걸리거나, 중병으로 악화되기 전에 이를 잡아내는 바람에 가벼운 병이나 고칠 줄 아는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의원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73.86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