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씨족

칭기즈 칸의 후손을 일컫는 말. 정확히는 보르지긴 가문 중 칭기스칸의 직계 후손에 국한되는 범위다. 족보학 등이 발달한 농경민족이 혈통을 더 중시할거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유목민족들이 더 혈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1] 칭기즈 칸이 유목 세계를 한번 통일하고 난 뒤 그의 혈통은 황금씨족이란 이명으로 몽골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대대로 중시되었다. 황금씨족은 모계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오직 부계만 인정받았는데, 몽골 이후 나타난 유목세계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황금씨족에 속하지 않는다면 황금씨족의 여자들과 결혼해서 어떻게든 연관성을 만드려는 시도들이 많았다. 대표적인게 티무르. 그리고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인 충선왕 역시 황금씨족으로 몽고 황실 황족들의 회의체인 케식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청나라 황제 또한 황금씨족 여성을 황후로 맞는 등 황금씨족과의 연결성을 유지할려고 노력하였다. 다만 티무르나 고려왕과는 다른점은 몽골 정복을 통해 대칸의 직위를 획득하여 합법적으로 세습이 가능해 졌다는 점이다.

칭기즈 칸 이후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등지에서 이라는 칭호는 오직 황금씨족만이 독점적으로 칭할 수 있었다. 이 룰을 어긴 사람도 있었지만, 초원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는 황금씨족이 아니면서 칸을 자칭했기 때문에 부하의 반란으로 살해되었으며, 모굴리스탄 칸국의 찬탈자 카마르 웃딘은 칸을 참칭한 자를 벌한다는 명분으로 티무르에게 침략받았다.

티무르의 경우 원 멸망 이후 몽골계로서는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인물이었지만,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칸이라고 자칭하지 못했다. 다만 황금씨족의 왕녀와 결혼해 부마를 자처하며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했다.


  1. [1] 칭기즈 칸이 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능력 이전에 그가 몽골의 칸이 될 수 있는 하얀뼈 씨족이었기 때문이고 자무카가 치노스 족 남성 학살같은 잔혹행위를 했던 것도 그가 아무리 능력 좋아도 칸이 될 수 없는 검은뼈 씨족이었기 때문이다. 골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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