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역대 하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름

황영조(黃永祚, Hwang Youngcho)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70년 3월 22일, 강원도 삼척시

학력

궁촌초등학교[1]
근덕중학교
강릉명륜고등학교
경주대학교
고려대학교[2]

종목

육상

주종목

마라톤

종교

170cm, 68kg

종교

불교

링크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4. 기타
5. 수상 기록

1. 소개

몬주익의 영웅

한민족 역사상 두번째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3]

손기정 이후 올림픽을 제패한 대한민국 마라톤을 상징하는 인물. 1970년 3월 22일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후임으로 동갑내기 마라토너 이봉주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봉주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 마라톤계는 이봉주 이후의 후계자는 안타깝게도 나오지 않고 있다.[4]

마라톤 관련 그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뛰어난 폐활량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심폐지구력. 물론 훈련을 해서 얻었겠으나, 훈련을 해도 늘릴 수 있는 양은 사람마다 선천적인 한계가 있는데 그는 일반적인 선수들 범위보다 훨씬 뛰어났다. 해외 탑급 마라토너들에 비해서도 약간 더 큰 폐활량[5]을 가진 선수로 심폐지구력이 세계 최고급이라는 것은 마라톤에 매우 유리한 재능이기에, 올림픽 전에도 원래부터 마라톤계에서 세계적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었다. 이봉주조차 황영조의 엄청난 폐활량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할 정도였다.

2. 선수 경력

경주대학교 재학 시절인 1991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3위로 입상하면서 마라톤에 데뷔했다. 같은해 여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마라톤 출전 2번째만에 금메달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2년 초에는 일본 벳푸의 벳푸 오이타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2시간 10분의 벽을 깨고 2위로 입상했다.

마침내 수 개월 지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1936 베를린 올림픽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적을 내걸고 획득한 사상 첫 마라톤 금메달이자 올림픽 육상에서의 대한민국 소속으로 딴 유일한 금메달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주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통하여 2·3위로 뒤쫓아오던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독일 선수 프라이강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고 1위로 골인한 뒤 쓰러진 일화로 인해 '몬주익의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라톤 결승전 영상(HD)

특히 이날 경기장에는 손기정이 직접 참석하여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컸다. 당시 손기정 옹은 마라톤 경기일이 56년 전 자신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와 같은 날짜임을 알고서, 각별한 기대를 안고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던 것이다.[6]

3. 은퇴

흔히들 황영조를 바르셀로나 금메달과 히로시마 금메달 이후 전성기를 오래 누리지 않고 빠르게 은퇴해 버린 한량으로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후술할 자기관리 부재로 인한 추문이 있었기 때문에 게으른 천재유리멘탈 취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평을 듣는 이유가 후술할 은퇴 이후의 사건사고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거기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봉주의 성실함과 긴 커리어에 더욱 대비되기도 하고... 물론 황영조가 이른 은퇴를 한 건 그의 멘탈이나 성실성과는 다른 문제인 고질적인 발 부상 때문이었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올림픽때도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었다. 황영조는 경기당일 아침 기상을 했을때도 통증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속팀의 회사인 코오롱 스포츠에서 거액을 들여 개발한 마라톤화와 아식스에서 만든 마라톤화를 두고 고민했는데 결국 아식스 제품을 신고 경기에 나갔는데 상당수가 코오롱제품을 신고 금메달을 딴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족저근막염이라는게 심각하지 않을 때는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심하다가 운동을하다보면 통증이 가라앉는데 황영조도 그러했다고 한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올림픽이 끝나고 휴식과 회복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육상연맹이나 언론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고 결국 족저근이 찢어지는 사달이 나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서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도 제패했는데 정말로 황영조가 음주가무에 찌들어 나태한 상태였다면 발바닥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재활에 성공하고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1996년 족저근막염 재발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여러문제로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이봉주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해서 꾸준히 선수생활을 했지만, 황영조는 그러지 못했다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족저근막염은 애초에 사람이 두발로 걸어 다니는 이상 그리고 재활기간 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지 않는 이상 반드시 재발할 수 밖에 없는 평생 병이며, 한번 찢어져서 수술 받은 부위가 또 심각하게 손상돼서 재수술을 받게 된다면 평생 제대로 걷는게 힘들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은퇴를 결심한 황영조이니,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4. 기타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등장한 공식적인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로서 많은 영예를 누렸으나, 영 좋지 않은 사생활음주운전 등 자기 관리 문제로 인해 숱한 질타를 받았고, 이로 인해 상술했듯이 평가가 나빠졌을 뿐더러 육상 영웅으로서의 위상도 많이 실추되었다.
  • 고등학생 시절 구간마라톤 대회때 학교 홍보를 위해 1주자로 내세워 1구간 내내 방송에 나갔다고 한다.
  • 2014년 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고, 2015년 11월 1일에는 JTBC의 중앙서울마라톤 대회 중계방송 해설로 참여했으며, 2016년 3월 20일 채널A의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중계방송 해설로 참여했다.

5.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마라톤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마라톤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1991 셰필드

마라톤

6. 대한민국 역대 하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서 참조.


  1. [1] 2011년 3월 1일자로 근덕초등학교 궁촌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
  2. [2] 3학년 때 편입하였다.
  3. [3] 첫 번째는 1936 베를린 올림픽의 故 손기정 선수다.
  4. [4] 안 그래도 남자 마라톤은 아프리카 계통 선수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 지 오래 되었다. 황영조 이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이탈리아 인이 1명 있고, 나머지는 다 아프리카 선수들이다. 애초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동양" 선수는 손기정·황영조 단 두 명 뿐이다.
  5. [5] 혹자는 황영조의 모친이 해녀 출신이었던 게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6. [6] 바르셀로나 현자로 중계를 간 최우철 앵커 대신 손석희 앵커가 서울 스튜디오에서 백업을 들어갔는데, 이 사실을 짚어주는 코멘트로 그 날 아침 MBC 뉴스와이드 오프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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