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

黄河, Yellow River

1. 개요
2. 특징
3. 반전
4. 몰락
5. 노력
6. 그외

1. 개요

칭하이성(青海省, 청해성) 쿤룬 산맥(곤륜산맥)에서 발원하여 칭하이성(青海省, 청해성), 쓰촨성(四川省, 사천성), 간쑤성(甘肅省, 감숙성) ,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영하회족자치구) , 내몽골자치구(內蒙古自治區, 내몽고자치구) , 산시성(陝西省, 섬서성), 산시성(山西省, 산서성), 허난성(河南省, 하남성), 산둥성의 9개성 및 구(區)를 지나 최종 산둥성(山東省, 산동성) 둥잉시(東營市, 동영시)에서 보하이만(渤海灣, 발해만)으로 유입되는 전장 5,464㎞의 강으로 유역면적은 752,443㎢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장강(長江) 다음으로 길며, 세계 5위의 강이다. 중요한 지류로는 시안 근처를 지나가는 웨이수이(渭水, 위수)가 있다. 황해의 물을 노랗게 만들고 황해를 잠수함들의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주범이기도 하다.

일단 이 설명만으로는 그냥 큰 강이다는 느낌 밖에는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하(河)라는 말 자체가 원래 황하의 본명이었다가 큰 강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될 정도로[1] 황하는 여러가지 특징을 가진다. 또 고대 중국의 하북,하남,하동,하내 같은 지명들의 '하'는 이 황하를 말하는 것으로, 황하를 기준으로 지어진 지명들이다.

2. 특징

황하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이름 그대로 물이 황토색으로 흐리다.

게다가 그냥 흐린 수준이 아니라 흙탕물 수준으로 심하면 황하중 물이 아닌 부분이 50%에 육박할 수준이다. 이미 격언에도 물 1말에 진흙 6되일 정도라고 기록될 정도니... 한마디로 말해 흐르는 진흙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황하가 이름 그대로 황토빛이 된 이유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중원지역의 자연파괴로 인해 토사의 유출이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황하가 크게 굽이쳐 흐르는 황하만곡부 지역의 상당수가 황토고원지역이라 상황을 악화시켰다. 종합하자면 거대한 인재로 인해 엄청난 양의 토사가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1년에 13억 8,000만톤의 진흙이 하류로 운반되고 있어 세계 제일의 기록을 달성했다. 오죽하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하여 황하가 맑아지길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정도로 불가능하다는 사자성어가 있을 지경이다.

이는 후술할 각종 문제점을 만들어내는데다가, 다른 강과 달리 댐을 만들기 매우 어렵다. 토사량이 너무 많아서 댐을 건설하면 바로 토사가 댐을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하는 양자강과는 달리 본류 자체에 의미있는 수준의 거대한 댐을 만들기 힘들어서 수자원 관리가 어렵다.

  • 유역의 변동과 유량의 증감이 심하다.

쉽게 말하자면 가뭄일때는 말랐다가 홍수가 나면 쉽게 넘치고, 뻑하면 제방이 붕괴되는 등의 이유로 강의 물줄기 자체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역 주변에 피해가 심하다. 당장 과거 3,000년 동안 범람과 제방의 파괴는 1,500회 이상. 2년에 한 번꼴로 범람한 거다. 하도(河道)의 변천은 26회에 이르고 특히 큰 하도 변화도 9회나 된 기록만 봐도 황하가 다스릴 수 없는 강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 이해가 갈 지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황하의 특징인 엄청난 토사의 유출현상 때문이다. 안그래도 물반 진흙반인 상태라서 조금만 흐름이 늦어지면 강바닥에 토사가 쌓이는 일이 발생하는데, 주변 지역이 평야지대가 되는 뤄양근방부터는 주변 농토보다 강바닥이 더 높은 상황인 천정천(天井川)이 발생하게 되고, 이걸 간신히 주변의 제방이 막고 있는 상황이라 홍수가 한번 나면 강의 흐름이 아예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는 것이다.

시기에 따른 황하 유역의 변동. 하류의 방향을 가로막은 것 처럼 보이는고지대가 보이는데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태산'이다.

뤄양 이후로부터는 심하면 수년에 한번씩 황하의 흐름이 바뀌며, 이 때문에 북으로는 베이징까지, 남쪽으로는 회수양쯔강과 합류할 정도로 유역변경이 잦다. 현재의 황하 하구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7년에나 확립되었다. 그 전에는 산둥 반도 남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황하 하구에 만들어진 삼각주도 황하신삼각주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점을 이용해서 황하의 둑을 일부러 터뜨리는 것이 전술로 사용되기도 했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장개석국민당군이 허난성(河南省) 화위안커우(花園口:鄭州市 부근)의 제방을 파괴했는데, 일단 추격하던 일본군이 사단단위로 물에 갇혀서 대본영에 구원을 요청하는 바람에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냈지만, 황하가 유역을 변경하면서 이재민 1,250만 명, 사망자 9만 명에 달하는 대피해가 발생했다.(1938년 황허 홍수)

또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간쑤성에서 내몽골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지점인 오르도스라 불리는 곳이다. 지도를 보면 이 곳은 상류가 하류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해빙기에 하류보다 상류가 먼저 해동되며 폭풍같은 물줄기가 얼음 위에 덮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매년 인민해방군 공군을 동원해서 얼어버린 하류에 폭격을 가해서 얼음을 깨버린다(...).

  • 크기에 비해 수운에 제약이 심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시로 강바닥에 토사가 쌓이므로 알려지지 않은 얕은 지역이 불특정하게 존재하며, 물까지 흐려서 육안으로 판단하기 힘드니 좌초하기 딱 좋다. 그렇지 않더라도 황하에는 잘 알려진 급류지역이 있어서 일정 크기 이상의 선박은 더 이상 상류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는 양쯔강이 삼협댐 건설 전에는 쓰촨성의 충칭까지 중형선박이 왕복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것이다. 그런데 대항해시대 2에서는 배수량 몇백톤 짜리 배로도 장안까지 올라갈 수 있다. 흠좀무

종합하자면 크기만 엄청나게 컸지 뻑하면 홍수나 일으키고, 토사유출이나 하는 답이 없는 강이다. 덤으로 치수가 매우 힘들다는 것까지 합쳐지면 정말 답이 없다.

3. 반전

놀라운 것은 이렇게 험악한 강이 황하 문명의 탄생 및 유지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일단, 황하는 홍수가 나면 주변을 박살내지만, 그 후에는 상류에서 끌어온 많은 토사를 주변 농토에 뿌려주는데, 거기 농사지을 사람까지 같이 쓸어가서 문제긴 하지만 이게 자연적으로 비옥한 비료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척박하고 건조한 중원지역에 부족하나마 수자원을 제공했다. 또한 치수를 위해서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비옥한 토지에 대규모의 사람들이 살고, 이를 체계적으로 묶을 정치제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홍수가 난 후에는 다시 토지구획을 정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문서기록과 측량 등의 각종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2] 이런 이유로 인해 황하에서 발생한 문명은 상대적으로 볼 때 더 나은 환경인 장강에서 발생한 문명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전해서 결국 장강에서 발생한 문명을 흡수하고 주변을 정복하여 중국문명으로 가는 기초를 닦게 된다. 이는 한자의 구성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다스리다'란 뜻의 治(치)는 본래 물(水)을 조정한다는 뜻으로 치수를 뜻했다. 즉 물을 다스린다는 뜻이 곧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개념 자체로 확장된 것. 법(法)자도 본래는 물이 가는 것(去)을 조정한다는 뜻이었는데 이것이 사람을 다스리는 본래의 법(灋)을 대신하여 쓰이게 되었다. 법률과 통치란 개념이 물에서 나올 정도로 황하의 중요성은 지대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황색을 황제의 색으로 지정할 정도로 숭상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황하 주변은 북송 시절까지 중국의 중심지역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황하를 통해 하류로 대량으로 공급되는 황토고원의 고운 흙은 질 좋은 벽돌기와를 만들기 적합하여 황하유역 근처의 중국 건통건축은 다양하고 화려한 벽돌과 기와를 사용하는 건축기법이 크게 발달하였다.

4. 몰락

그러나, 황하의 특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일단 황하가 된 것 자체가 일종의 인재였으므로 계속 이렇게 좋게 나갈 수는 없었다. 당장 토사유출이 지속되는 것 자체부터 큰 문제였으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홍수가 잦아지고, 홍수 후에도 도움이 되는 황토가 깔리는 것이 아니라 모래밭이나 진흙밭으로 농토가 바뀌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비해 여전히 치수가 어려운 황하는 점차 도움을 주는 존재에서 피해를 주는 존재로 위상이 바뀌게 된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인해 중원지역이 건조해지면서 황하 주변의 곡물생산능력이 크게 저하되기 시작하자 중국의 정치, 경제의 중심도 황하유역에서 장강유역이나 해안가,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황하 유역은 그 이후로 중국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도 저력이 남아있어서 기본적인 곡물생산능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중요한 강으로 계속 대접받고 있지만, 중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황하 유역의 주요 도시들의 수자원 요구량이 늘어나자 평시에도 강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걸 단류(斷流)라고 한다. 1972년부터 시작된 단류현상은 해가 갈수로 심해져서, 지금은 1년 평균 45일 동안 물이 흐르지 않는 강이라는 불가사의한 일은 기본으로 벌어지고, 1997년은 226일간 단류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기간도 길어지고, 구간도 늘어났다. 그 이유는 본래 물반 진흙반인 상태에서 주변 도시들이 물을 끌어다쓰니 강이 도처에서 끊어지고 일부 구역은 홍수시에만 물이 흐르는 마른강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주변 지역을 사막화하고 지하수를 고갈시키는 등 매우 심각한 문제지만 중국의 수자원 요구량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서 다른 대책이 없다.

대신 홍수가 잘 나지 않고, 나더라도 피해가 줄긴 했는데, 이게 평소에는 가뭄이 심하고 수자원을 마구 사용해서 물이 잘 흐르지 않기 때문에 홍수의 흐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에 기인하는데다가, 일정 수준 이상의 홍수가 나면 강줄기 중간중간에 쌓인 물 흐름을 가로막는 토사덩어리 때문에 물길이 가로막혀서 주변 둑이 터지는 등의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인재를 인재로 해결하는 위대한 중국

5. 노력

일단 황하가 다스릴 수 없는 강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만큼 치수가 힘든 강이지만 중국이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1955년 중국정부는 황하강의 수해를 근절하고 황하강의 수리를 개발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국영공사로 황하강 중류부에 계단상의 댐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하남성 정주에 삼문협(三門夾)댐을 건설하였고, 130km 하류에 하남 제원시 소량저(小凉底)댐을 건설하였다.

이를 조수조사(調水調沙)사업이라고 통칭한다. 뜻은 퇴적된 모래를 물로서 다스린다는 공사이다. 원리는 아래와 같다.

  1. 댐을 막아 하류로 내려가는 모래를 댐 안에 가둔다.
  2. 댐의 수문을 한꺼번에 열어 급류를 이용하여 댐안의 퇴적물을 하류로 흘러 보낸다.
  3. 일정한 거리의 하류에 또 댐을 건설하여 퇴적된 황토를 상류의 댐의 물을 부어 하류 댐의 토사를 씻어낸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막대한 토사로 인해 댐을 건설하자마자 댐의 용량이 급속도로 줄어들어서 진흙만 담는 댐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수십 번의 실험을 하여 조수조사 사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흙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황토고원지대의 수토보유(수토 유실 방지) 공사를 확대 실시하여 황하강의 물을 맑게 하고 홍수를 없애는 동시에 발전(發電)ㆍ관개(灌漑)ㆍ주운(舟運)에 이용하는 대사업에 착수하였다. 이는 제1기 공사 완성까지 50년 이상을 필요로 하는 대공사이다. 그 결과, 황하강의 홍수조절 기능은 강화되고, 관개 효과도 높아지고 있다. 하구부에는 광대한 국영농장과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황하강의 유량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화베이 지방의 관개에 필요한 수량(水量)에는 미치지 않는데다가 앞서 설명했듯이 황하가 흐르는 주요 도시의 수자원 요구량도 날로 증가하고 있고, 평상시에도 황하 중류가 4급수가 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양쯔강과 그 이남의 하천의 물을 북으로 공급하는 남수북조(南水北調) 계획도 크게 3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추진되고 있다.

  • 서부선(西部線)은 서하원 댐에서 황하 상류로 유입시키는 공사, 즉 양자강 상류와 황하의 상류를 연결하는 계획이다.
  • 중부선(中部線)은 양자강 지류인 한수, 호북성의 단장코(丹江口, 290억톤) 댐에서 북경으로 송수를 하는 천황공정(穿黃工程)이다. 직경 20m나 되는 터널을 황하 밑 50m를 통과하여 황하를 가로지르는 20km 구간의 공사였다. 이를 통해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양자강 물을 주요 수자원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 동부선(東部線)은 장영에서 양자강의 지류를 이용하여 운하, 폭 100m 깊이 10m, 길이 1,200km의 규모로 건설 중이다.

일단 이 공사가 완료되면 어느 정도 황하 유역의 수자원 부족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양자강과 그 이남의 하천의 수량도 화수분이 아닌데다가 앞으로 황하 유역에서 요구할 수자원의 양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서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6. 그외

이 강을 딴 외국 노래가 존재한다. 1970년대의 Christie라는 가수의 Yellow River라는 노래이다. 정작 뮤직비디오는 영국 런던에서 촬영했다(...)

이 노래는 꽤 경음악으로써 유명했는데, 국내에선 일양약품노루모 소화제 광고음악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1. [1] (江) 역시 원래는 장강(양쯔강)의 본명이었다. 고유명사가 일반명사화된 대표적 사례. 비슷한 예로 나일 강이 있다.
  2. [2] 이것은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에서 발생한 이집트 문명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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