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조여정 주역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후궁: 제왕의 첩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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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후궁 제도의 특징
6. 베트남의 후궁 제도
7. 정부와의 비교
8.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후궁들
8.1. 한국의 후궁
8.2. 중국의 후궁
8.3. 일본의 측실
8.4. 유럽의 정부
8.5. 오스만 제국의 후궁
9. 후궁인 가상 인물
10. 관련 문서

1. 개요

後宮

동아시아에서 군주 이외의 여자들 중 내명부의 작위를 받은 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비빈(妃嬪)[1], 빈어(嬪御), 잉첩(媵妾), 빈잉(嬪媵), 궁빈(宮嬪), 궁인(宮人)[2], 내관(內官)[3], 육궁(六宮)[4] 등으로도 불린다.

후궁의 본래 의미는 궁궐의 뒤꼍, 안쪽을 뜻하며, 후정(後庭)·내정(內庭)·내전(內殿)·내궁(內宮)·내조(內朝) 등을 쓰기도 한다. 제왕이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돌보고 의식을 행하는 영역의 다른 호칭인 외조(外朝)·외정(外庭) 등의 반대격으로, 제왕의 사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제왕의 여인(妻妾)이 거처했기에 제왕의 처와 첩 및 시녀(侍女)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쓰이게 됐다.

이후 같은 의미인 내전과 후궁을 분리하여 내전(中殿·中宮·中宮殿)을 제왕의 처(皇后·王妃)로, 후궁을 제왕의 첩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사례가 빈번해 현재 한국의 사전에선 내전(中殿·中宮·中宮殿)을 제왕의 정궁으로, 후궁을 제왕의 측실로 정의하고 있다.

2. 후궁 제도의 특징

일부다처제의 관습이 존재했던 고대부터 있었던 제도였고, 더욱이 한 나라의 주인인 군주가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는 것은 왕실이 가지는 위엄의 상징임과 동시에 군주의 유력 가문들과 동맹을 맺어 손쉽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면 어떨까[5] 얘기를 꺼냈다가는 미친 놈 취급당할 정도로[6]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던 고려에서도 "에이 그래도 왕은 예외죠"라며 후궁을 잔뜩 들였다.멀리 갈 것도 없이 창업 군주인 태조 왕건만 봐도..

또한 위엄과 동맹 외에 계승의 안정성을 위한 요소도 있었는데, 1명의 아내에게서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보장되는 일이 아닌데다가[7], 전근대의 높은 영아 사망률까지 결합되면, 일부일처제와 적장자 상속제의 결합은 굉장히 불안정한 면이 있었기 때문. 실제로 일부일처제를 엄격하게 지키고 사생아의 계승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은 유럽에서, 왕과 귀족 가문들은 급작스러운 사고나 전쟁 같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후계자를 낳지 못했다는 맥빠지는 이유로 대가 끊겨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흔히 서양 역사에 나오는 예를 들어 독일 왕이 스페인의 왕을 겸한다는 식으로 어느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 자리를 겸해서 전쟁이나 합병 같은 것도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그 왕의 시대에만 특정 나라의 영토가 엄청 커졌다든가 하는 일이 발생한 것도 이런 데에 원인이 있었다. 특히 서양 군주는 그 자신의 옥체 보존이 무엇보다 최우선인 동양 군주와 다르게 스스로가 지배하는만큼 전쟁 같은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싸워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직계 대가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후궁과 황후(왕비)를 아우르는 궁중 여관 제도를 통틀어서 내명부라 하는데, 이는 단지 황후와 후궁만이 속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의 여손(女孫)들이나 궁중업무를 보는 궁녀들을 포괄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념적으로는 모든 궁녀들은 군주의 여자들이므로 다 후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궁중업무가 아닌 군주의 첩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여인들만 후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8] 보통 후궁제도라고 하면, 내명부 제도 중에서도 왕의 아내/에 관한 것만을 가리킨다(황후나 왕비도 포함).

후궁은 원칙적으로 남편인 군주가 죽은 다음에는 궁내에서 거주할 자격을 잃는다. 소생이 없을 경우 비구니가 되고, 소생이 있을 경우는 그 집으로 나가 사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후궁 자신의 아들이 군주로 즉위한 경우엔 예외다.[9] 사실 애초에 궁궐에 남아 있어도 모시던 왕이 죽으면 역할이 소멸된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궁궐에 있어도 할 일이 없다. 재정 압박의 문제도 있고, 후궁 개인으로서도 자기 자식의 집에서 부양을 받는 것이 훨씬 편한 인생이다.

3. 한국사의 후궁 제도

문서 참조.

4. 중국사의 후궁 제도

문서 참조.

5. 일본사의 후궁 제도

문서 참조.

6. 베트남의 후궁 제도

가장 최근의 왕조인 응우옌(阮)조에서는 황제의 정처가 살아 있을 때는 단순히 귀비에 봉하였다가, 사망한 뒤에 황후로 추봉하였다.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아내인 남프엉 황후는 제외)

  • 황귀비(皇貴妃, Hoàng Quý Phi)
  • 1계 비(一階妃, Nhất giai Phi)
  • 2계 비(二階妃, Nhị giai Phi)
  • 3계 빈(三階嬪, Tam giai Tân)
  • 4계 빈(四階嬪, Tứ giai Tân)
  • 5계 첩여(五階婕妤, Ngũ giai Tiếp Dư)
  • 6계 첩여(六階婕妤, Lục giai Tiếp Dư)
  • 7계 귀인(七階貴人, Thất giai Quý Nhân)
  • 8계 미인(八階美人, Bát giai Mỹ Nhân)
  • 9계 재인(九階才人, Cửu giai Tài Nhân)

7. 정부와의 비교

동서를 막론하고 왕비는 외모보다는 가문을 보고 뽑았고, 정략결혼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군주는 왕비보다 후궁이나 정부를 더 총애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후궁은 군주의 부인으로서 공식적인 지위가 있었지만 정부는 아니었고, 후궁은 품계를 받기 전에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한 적이 있는 경우는 있어도 품계를 받을 시점에서 군주와의 관계가 불륜인 경우는 없었는데, 정부는 유부녀라서 왕과의 관계가 불륜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후궁은 왕이 죽은 후 자식이 왕이 되지 않은 한 출궁하여 소생에게 부양받거나 비구니가 되었지만 정부는 원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다.

8.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후궁들

8.1. 한국의 후궁

8.2. 중국의 후궁

8.3. 일본의 측실

8.4. 유럽의 정부

8.5. 오스만 제국의 후궁

9. 후궁인 가상 인물

10. 관련 문서


  1. [1] 비(妃)를 왕의 처의 작위로 쓴 한국에선 비빈의 정의가 추가되어 왕의 정궁인 왕비와 빈 이하 모든 후궁을 아우르는 단어로 쓰이거나 왕의 정궁인 왕비와 세자의 정궁인 세자빈을 통합한 단어로도 쓰였다. 중국의 황실과 옛 국가, 고전의 내용을 인용할 때는 후궁의 의미를 띤다.
  2. [2] 조선에서 궁인은 후궁과 왕실 시녀를 모두 아우른다. 그러나 궁중의 여인을 총칭하는 궁녀가 왕실 시녀의 호칭으로 정의되면서 궁녀의 같은 말인 궁인과 내인(內人: 나인)도 왕실 시녀의 호칭으로 이해되고 있다.
  3. [3] 후궁을 내관, 시녀를 궁관으로 구별해 부르기도 했다. 현대 국어 사전에는 내관은 내시를 지칭하는 단어로, 궁관은 궁내직 혹은 동궁 소속 관원으로 정의되고 있다.
  4. [4] 《예기(禮記)》에 “옛날 천자(天子)의 후(后)는 6궁(六宮)·3부인(三夫人)·9빈(九嬪)·27세부(二十七世婦)·81어처(八十一御妻)를 세웠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다. 육궁에 정궁이 포함되어 있어 내명부 후비(后妃: 정궁+후궁)의 다른 말로도 쓰인다.
  5. [5] 당시 고려몽골과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남성이 너무 부족해서 결혼을 못하는 여성이 많았다. 여자가 결혼을 못한다는 건 전근대 사회에선 생존의 위협이 된다.
  6. [6] 대신 박유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면 어떻겠냐"고 왕에게 건의했다가 저잣거리에서 부녀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한다(...).
  7. [7] 당장 현대에도 각종 고부갈등과 고민을 낳는 이유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8. [8] 조선을 기준으로 후궁들도 궁에 살면서 맡은 임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군주 부부의 잠자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왕비의 비서 역할이라던지 왕실 제사나 손님 접객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어서 엄연한 관료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9. [9] 중국에선 이런 경우엔 황후에 준하는 지위를 받을 수 있었고 때로는 수렴청정도 할 수 있지만, 한국, 특히 적서에 엄격한 조선시대엔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무덤이 능보다 한 단계 낮은 원이 되고 사당을 궁으로 불렀다.
  10. [10] 이들 모두 형식상으로는 티글블무드 보른의 연인, 즉 후궁으로 분류한다. 정실은 레긴이다.
  11. [11] 등장 당시에는 성빈이었으며, 홍상학 부녀가 몰락한 후에 중전이 되었다.
  12. [12] 그 동안의 죄가 전부 밝혀져 폐위되었다.
  13. [13] 처음에는 무수리였지만 어쩌다 승은을 입은 후에는 임신하지 않았는데도(나중에 사고로 유산하고 나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낙 초기라 복자 본인도 몰랐던 듯.) 숙원 첩지를 받았다. 삼간택이 다가오면서 소의로 봉해졌고, 인영이 중전이 된 후에는 유일한 후궁인 혜빈이 되었다.
  14. [14] 왕자를 낳은 후 우이가 군후가 되면서 차비가 되었지만 나중에 우이가 사라지면서 다시 군후가 되었다.
  15. [15] 외전에서 그동안 저지른 간통이 밝혀져 내명부에서 제명당한다.
  16. [16] 외전에서 유진과 이혼해 내명부에서 제명된 후, 문관이 되어서 다른 남자와 혼인한다.
  17. [17] 우온이 아들을 낳으면서 정식 군후가 됐지만, 2년이 되지 않아 사라진다.
  18. [18] 호겸(신대욱)과 신유영의 어머니.
  19. [19]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 노수눌의 양녀로 들어가 가례를 올렸다.
  20. [20] 원래는 윤임과 정혼했으나 그와 파혼하고 아버지에 의해 연산군의 후궁 숙원이 되었다.
  21. [21] 서리꽃에서 롱희를 측비라고 소개한 것으로 보아 후에 황후 다음으로 높은 품계를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22. [22]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
  23. [23] 회상에서 이름만 언급되었고 봉오제 사건 이후 황제의 후궁들 중 비와 빈 품계를 받은 이가 롱희 밖에 없어 새 비빈을 들였다는것을 보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24. [24] 현 황제와 오륜공주의 모친으로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다.
  25. [25] 작품 최후반엔 황후로 즉위하고 작약만가 본편에선 태후가 된다.
  26. [26] 출신이 비천하여 성이 없고, 품계 또한 없다. 작중 황제의 후궁들 중 품계가 있는 이는 리빈 하나뿐인데 이 경우는 황제가 불순한 목적으로 품계를 준 것이다. 다른 후궁들은 황제가 관심을 두지 않아 품계가 없으며, 황제가 유일하게 총애하는 삼미랑은 출신이 천한데다 내명부를 관장하는 태후와 사이가 나빠 품계를 받지 못했다.
  27. [27] 당나라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나라가 배경인 원작 소설에서는 대략 60여명의 후궁이,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25명의 후궁이 등장한다.
  28. [28] 과군왕의 생모.
  29. [29] 원작에서는 후궁 출신 황후로 나오지만, 가장 유명한 미디어믹스인 드라마에서는 후궁이였던 적이 없으며 작품 시작 시점 혹은 그 직전에 황후로 즉위한다.
  30. [30]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31. [31] 현비 묘씨와 함께 총애를 독차지하는 순원황후를 질투했다.
  32. [32] 순원황후에게 2시진(4시간) 동안 꿇어앉는 벌을 받고 유산한 후궁.
  33. [33] 드라마에 나오는 흔상재의 원형 중 하나. 원작에서의 행보가 드라마 초반부의 흔상재의 행적과 유사하다. 원작 후반부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견환에 의해 벌을 받아 냉궁에 갇힌다.
  34. [34] 드라마에 나오는 단비 제월빈의 원형 중 하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후궁들 중 가장 선량한 인물이자 모든 미디어믹스를 통틀어서 4~6명 밖에 없는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 중 한명이다.
  35. [35]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황제에게 견환의 대역으로서 사랑받았던 후궁들 중 한명이다. 견환의 대역들 중에서는 가장 큰 총애를 받았다.
  36. [36]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모용 세란여동생.
  37. [37]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견환의 대역인 위균과 견환의 나이를 비교하면서 견환이 늙었다며 조롱했다.
  38. [38]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 견환의 입궁 동기이자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
  39. [39] 드라마에 나오는 흔상재의 원형 중 하나. 같은 궁을 쓰던 기귀인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청해서 견환의 편이 되어 도움을 주었다.
  40. [40] 드라마에 나오는 부찰귀인의 원형 중 하나.
  41. [41] 중국 드라마 후궁견환전의 후속작.
  42. [42] 숭경황태후 뉴호록씨.
  43. [43] 길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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