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연대구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1. 개요
2. 세계적인 모습
2.1. 음악
2.2. 영화
2.3. 게임
2.4. 만화, 애니메이션
2.5. 대량 학살
3. 한국의 경우
3.1. 1980년대 한국의 정치
3.2.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사회
5. 1980년대가 배경인 작품
6.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7.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들
8.2. 이 시대의 유행어
9. 1980년대에 들어가는 해
10. 1980년대생
11. 관련 문서

1. 개요

"격동의 80년대!"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호황을 맞고 있던 시기라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1990년대와 석유 파동을 겪었던 1970년대와 달리 좀 더 밝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영미권에 등장했고, 이에 따라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막을 열었다. 이 시기에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졌기 때문에 이들 정권의 경제적 성과에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최소한 70년대의 인플레는 사라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남미나 동유럽권에서는 1980년대는 매우 암울한 시기로 기억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막대한 외채부담을 져야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경제가 파탄난 나라가 한 두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빚을 갚기위해 긴축정책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국가들이 한두곳이 아니었으며 공산권 가운데서 가장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던 유고슬라비아조차도 이때는 거액의 외채를 지고 있을 지경이었고, 거기에다가 지역갈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였으며, 타 동유럽 국가나 중남미 국가라고 해서 딱히 사정이 다른것도 아니었다. 당시 중남미 국가와 동유럽 국가들이 빚을 갚기위해 필사적으로 재정긴축을 하고 수입을 억제시켜서 매년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데도 하도 이자율이 높다보니, 이자조차도 못갚았다는 슬픈 얘기도 전해져 내려오고,(다만 이들 나라중에서도 루마니아는 그 비싼 이자율에도 어떻게든 빚을 다 갚기는 했다. 덕택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져내려졌지만) 소련은 동유럽 국가와 중남미 국가와는 다르게 일단 채권자에 가까운 위치이기는 했지만 결국엔 소련-아프간전과 유가하락, 체르노빌 사태라는 3중고가 겹치며 재정적으로 궁핍해지는 바람에 결국엔 개혁개방정책을 펴게 되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뭐,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중남미에서 1980년대에 민주주의가 대부분 회복되었으며, 동유럽도 1989년을 기점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한국, 대만, 필리핀이 민주화 된 시기와 비슷하다.

다만 냉전이 마지막 절정기였기 때문에[1] 이에 따른 긴장 역시 풀 수 없었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에서 개방정책을 시도하는 등 냉전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에 걸쳐서 일어났다. 중동의 전쟁이 미국의 국내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중동 문제가 최중요 현안으로 급부상한 시기기도 하다. 이란 콘트라 사건도 그렇고.

80년대 말에는 공산주의가 잇달아 붕괴되면서 자유주의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충격요법을 쓰다가 구 공산당이 재집권한 동네가 한 두곳이 아니라는게...

1986년 ~ 1988년3저 호황으로 세계경제가 황금기에 있던 시기다.[2]

2. 세계적인 모습

Top 10 Trends of the 1980s

NewsChannel 9 - 1980s Video Timeline

2.1. 음악

  • 힙합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 이 무렵에는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힙합밴드의 형태도 존재하였다.
  • 70년대에 태동한 일렉트로니카는 본격적으로 분화되어, 테크노와 신스팝 등의 장르가 주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뮤지션들이 일렉트로니카와 자신들의 음악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2.2. 영화

  • 영화의 경우 특수효과의 사용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이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공 이후 간간히 만들어지던 블록버스터가 보편화 되었다. 다만 CG 그래픽의 십분 활용은 90년대부터 확장되기 시작한다.
  • 잃어버린 10년을 겪기 전인 80년대 일본킹왕짱급 강대국으로 여겨졌었다. 당시 일본은 경제규모 세계 2위였지만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겨졌었다.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3, 떠오르는 태양(라이징 썬), 다이 하드 등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여겼으며, 결국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강국들이 연합하여 플라자 합의에서 일본을 굴복시켰다. 엔화의 파격적인 평가절상을 이끌어낸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성장은 서서히 끝이 나고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했다.
  • 다양한 장르가 성행했던 시기였다. 2010년대부터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가 분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에서 당시 제작비 예산이 블록버스터[3]와 저예산 영화들을 같이 만들어서 다양한 장르가 나올 수 있었다. SF 영화부터 청춘 영화, 슬래셔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고르게 흥행했다. 게다가 시나리오(각본)가 당시 기준으로 신선한 이야기들이 많이 성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흥행의 원동력되기도 했다. 복고풍이 불고 있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 다시 리메이크로 제작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3. 게임

아타리 쇼크라는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비디오 게임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후 닌텐도의 패미컴이 대박을 치면서 일본 제작사들에 의해 시장이 재개편, 2001년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나오기 전까지 콘솔 시장은 일본 제작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횡, 종스크롤 액션, 슈팅게임들이 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80년대 중, 후반엔 일본식 RPG의 대표라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2.4. 만화, 애니메이션

2.5. 대량 학살

전 세계 독재자들이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 대한민국: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전두환 학살 주도, 현장 사망 1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
  • 중국: 톈안먼 사건 - 덩샤오핑 학살 주도, 7000명(나토 추정)~10000명(소련 추정) 사망 추정
  • 시리아: 1982년 2월 2일 하마 학살 - 하페즈 알아사드(당시 시리아 대통령) 지시, 리파트 알아사드(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 주도, 38000명(리파트 알아사드 본인 주장)~4만명(시리아 인권위원회 추정) 사망 / 타드무르 대학살 - 1982년 6월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인 리파트 알아사드가 군대를 이끌고 정치범들이 수용된 타드무르 감옥에 진입, 재소자들 무차별 학살. 수천명 사망 추정.
  • 짐바브웨: 구쿠라훈디 학살 - 로버트 무가베(당시 최고지도자, 짐바브웨 총리) 주도, 1982년~1983년간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2만여명 학살.
  • 이라크: 알 안팔 작전 - 사담 후세인(당시 최고지도자, 이라크 대통령) 주도, 1986~1988년간 18만 2000여명 학살, 1988년 3월 16일에는 할랍자에 독가스를 살포해 5000여명 즉사.

3. 한국의 경우

3.1. 1980년대 한국의 정치

서울의 봄

역사다시보기 - 6월민주항쟁(The June Struggle for Democracy)

1987년 6월 항쟁6.29 선언까지는 5.17 내란으로 유혈 집권한 제5공화국 군사정권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는 보통 "전두환 정권"을 의미한다. 1993년까지 독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정부(흔히 말하는 '6공')의 시대가 뒤를 이었다. 가장 치열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시대였다.

3.2.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사회

1980년대초 고속버스 안내양 멘트

  • 1981년을 계기로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중산층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한국 역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며, 경제 성장과 수출 증가를 거치면서 전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중산층의 비중이 두터워졌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자가용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크게 늘게 되어 '마이카' My Car)가 유행어가 되었다. 1985년의 한국의 GNP는 2310달러였다. 현재가치로 따지면 1만달러 정도다. PPP를 따지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며 이 당시 싼 물가와 집값까지 따진다면.......
  •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에 취업이 잘 되고[4] 공무원도 웬만큼만 하면 쉽게 되는 시절이라 공부를 못해도 웬만하면 다 취업할 수 있어 취업 연령도 가장 빠른 시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공무원 시험은 88년까지는 쉬었으나 89년부터 취업율이 둔화되고 한국 경제가 예전만큼 시원찮치 못하게 되어 조금씩 어려워졌다. 91년 이후 만만치 않은 시험으로 어려워졌는데, 참고로 80년대 후반에 대학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 안가고 7급이라도 시험 쳐서 들어갔다면 들어갔을텐데 5~6년만에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대기업도 대졸자라면 80년대에는 C-성적도 골라서 갈 수 있던 것을 91년 이후에는 성적이 B-이하라면 대기업 들어가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석유 가격도 80년대 중반부터 좀 안정화 되어서 마이카를 일단 사기만 하면 부담 없이 끌고 다니던 시기였다.
  • 전두환 정권의 정책에 따라 통금이 해제되고, 교복이 자율화되었다.얼마 뒤 다시 빽 그리고 일시적으로 개인 과외가 금지됨에 따라 사교육 없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세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래 할 사람은 다 하고 과외 가격만 올랐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란 명분으로 대학 정원도 급속하게 불어났는데, 이것이 결국엔 전두환의 의도와 달리 학생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졸업 못한 사람은 자퇴률 때문에 많지 않았다.

스포츠로 지배하라! 5공 3S 정책(프로야구)

K리그KBO 리그, 민속씨름이 시작되는 등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야구에 있어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 1980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된 해이기도 하며, 1982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를 알림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 유소년층의 인구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을때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제대로 약빨(...)을 받아서 신생아수가 1987년에 62만으로까지 떨어지기까지 했고 출생아수 70만을 다시 넘길려면 1991년까지 기다려야 했다.[5]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출산율 2명대를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컬러방송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컬러방송을 할려고 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흑백방송 보자는 기존의 흑백TV 사용자들을 배려(?)한 정책 때문에 무산됐다. 텔레비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네 번째로 늦게 컬러방송을 개시한 국가다.

80년대 가요톱텐 1위곡 모음

  • 제5공화국3S정책에 힘입어 가요계의 히트곡들은 전체적으로 70년대에 비해서 대단히 분위기가 밝아진다. 또한 조용필이 가요계를 평정했던 시절이다. 90년대를 한국음악의 전성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90년대는 대중음악의 인기가 폭발적인 시기일 뿐, 장르의 다양성과 실험성에 있어서는 차라리 1980년대가 한국대중음악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조용필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들이 활동했으며, 1980년대 초반의 송골매, 1980년대 중후반의 백두산, 시나위, 부활 등의 밴드들의 활동이 돋보였고, 한국 발라드의 뿌리인 유재하도 이 시기에 나온 뮤지션이다. 즉, 좋은 음악들이 많이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땡전뉴스라는 흑역사도 있었으며 그 때문에 80년대 중반에 KBS 시청료 거부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 1980년 코미디언 이주일이 등장하여 전 국민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배를 잡고 뒹굴게 만들었다. 가히 이주일 신드롬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주일의 데뷔는 컬러방송의 시작과 거의 일치한다. 컬러방송, 이주일, 조용필은 당시의 연예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 이때부터 지금의 서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특히 송파구잠실이 더욱 엄청난 속도로 개발되었다.

신데렐라 노래에 뜬금없이 1980년대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4.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1980s Tokyo, Japan - Traffic, Busy Streets, Shibuya Crossing, Rare 35mm Footage

80's Japanese TV Commercials (Part 1 of 4)

  • 거품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라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이 시기에 서브컬쳐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작품들이 자주 제작되었다.그리고 이때에 만들어진 작품들중에서 공각기동대같은 역사에 남을 명작이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 8비트 게임기의 중흥기를 이끌어냈다. 패미컴만 해도 전설의 레전드.
  •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희망적이고 자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6]

1980년

1981년

1982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2,862

3,210

3,345

3,638

4,040

4,346

4,590

4,870

5,252

5,657

일본 전체 명목 GDP

1,086

1,201

1,116

1,218

1,294

1,384

2,051

2,485

3,015

3,017

독일 전체 명목 GDP

826

695

671

669

630

639

913

1,136

1,225

1,21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704

621

589

564

534

559

775

939

1,025

1,031

영국 전체 명목 GDP: G7

542

520

492

466

441

468

570

704

855

865

중국 전체 명목 GDP

309

292

286

307

316

312

303

330

411

459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67

76

81

90

99

103

119

150

202

248

이웃 나라 이야기 1부 불패신화

너무 높은 화폐가치로 인해 쌍둥이 적자[7]에 시달리던 미국은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할 방법을 찾는다. 결국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서독, 일본, 영국플라자 합의를 맺는다. 절상됐던 달러의 가치는 하락했고 독일, 일본의 화폐가치는 상승했다. 일본의 돈은 더욱 부동산에 몰리게 된다.[8]

당시 일본의 경제규모는 미국을 추월할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미국 경제규모 절반에 해당하는 명목 GDP를 달성했다. 그 수치가 1987년에는 51.0%, 1988년에는 57.4%, 1989년에는 53.3%에 달했다. 일본의 남아도는 돈들은 주식과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쏠렸다. 덩달아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불었고 거품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절상된 화폐가치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엔고 불황’을 막기위해 지속적으로 저금리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일본의 부동산거품과 주식거품에 더욱 불을 지르게 된다.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1인당 명목 GDP 흐름

[9][10]/단위: 달러

1980년

1981년

1982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일본 1인당 명목 GDP: G7

9,312

10,217

9,431

10,216

10,786

11,464

16,890

20,367

24,604

24,522

핀란드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1,497

11,198

11,242

10,724

11,074

11,682

15,249

18,949

22,482

24,369

노르웨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5,569

15,307

15,003

14,701

14,737

15,449

18,495

22,020

23,706

23,805

스웨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5,781

14,395

12,672

11,645

12,092

12,643

16,689

20,252

22,761

23,805

미국 1인당 명목 GDP: G7

12,575

13,965

14,410

15,531

17,099

18,231

19,078

20,062

21,442

22,879

덴마크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3,609

11,782

11,513

11,571

11,289

11,974

16,880

20,950

22,075

21,454

프랑스 1인당 명목 GDP: G7

13,111

11,493

10,858

10,329

9,733

10,146

14,003

16,869

18,324

18,324

독일 1인당 명목 GDP: G7

10,699

8,984

8,681

8,691

8,222

8,358

11,929

14,841

15,904

15,632

영국 1인당 명목 GDP: G7

9,629

9,227

8,746

8,281

7,818

8,292

10,071

12,395

15,035

15,171

대한민국 1인당 명목 GDP

1,778

1,968

2,075

2,268

2,474

2,542

2,906

3,627

4,813

5,860

중국 1인당 명목 GDP

313

292

281

298

303

295

282

301

370

407

1980년대 일본은 1인당 명목 GDP에서는 이미 미국을 추월하고 있었다.

1980년대~199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일본위협론'처럼 보이는 사상들이 각종 매체에서 광범위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Robocop 3 Ninja fight (scene)

1993년의 작품이지만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보캅 3[11]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1980년대가 배경인 작품

해당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제외. 가상역사/SF물인경우 ▼.

6.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들을 적을 것.

7.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들

특히 대한민국 물건이거나 대한민국에서 흥한 경우 ●

8.2. 이 시대의 유행어

9. 1980년대에 들어가는 해

1980년 - 1981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10. 1980년대생

1980년부터 198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2018년 현재 모든 80년대생은 30대이다.

1980년~1982년생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1986년~1989년생도 한국식으로 29~32세로 청년기의 막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1990년~1992년 사이 출생한 20대 후반의 동생들 즉 한국 나이로 27~29세들이 이 뒤를 따르며 30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자 기준으로는 1986년~1988년 출생 이후 여성들도 상당수가 기혼자이며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이 나이대에 있다.

여담이지만,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형제 수가 4명이상인 집안이 거의 없으며, 외동이 흔해지는 시기이기도 한다.[29]

2018년 기준으로 1980년~1983년 사이 일명 이해찬 키드들은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이다. TV에서 청년으로 등장하는 세대는 주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즉 1987년~1994년 출생자들로 1980년~1983년생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중견으로 취급 받는다. 실제로 직장 등에서도 어느 정도는 짬이 찬 관리자 정도 직위다. 물론 80년대 후반생인 1986년~1989년생들은 그딴 거 없다. 여성의 경우는 사회진출이 빨라 빠르면 매니저 정도 직급을 달고는 있고 남자는 이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다. 군대의 경우는 대위~소령 사이 계급이 이 때 출생자들이다.

이들 이해찬 키드들의 경우는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이기도 하다. 한창 3저 호황을 누리고 올림픽이 개최되던 시절에 태어났다. 물론 막 성인이 되던 차에 IMF 외환위기가 터진 조금 안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모토 하에 헛된 기대와 함께 널럴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99~02학번들이다.[30]

슈퍼 그랑죠, 피구왕 통키, 나디아, 시간탐험대, 천사소녀 네티, 소년기사 라무, 선라이즈용자물들, 세일러문, 웨딩피치, 레이어스, 원령공주, 슈퍼전대, 울트라맨, 시공전사 스필반 그 외 수많은 일본 애니들을 보고 자란 세대이며 반 평균 30~40명, 학년 평균 10개 정도의 반을 가졌던 학창시절을 보냈고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둘 다 다녔다. 보통 1985년생까진 국민학교 그 이후는 초등학교다.

국민학교이던 시절부터 초등학생시절까지 일부는(특히 시골) 교실 중앙에 땔감을 연료로 쓰는 난로가 있었으며(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그것)교내의 복도는 나무로 되어있어 기름걸레, 왁스 묻힌 손걸레로 광을 내는 것이 주에 한번은 있었다. 어릴때는 동네 놀이터에서 다방구, 얼음땡 등을 즐기고 골목에서 딱지와 줄팽이를 돌리던 세대이며 청소년기에는 방과후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겼다.

더불어 학창시절에 오락실과 피시방을 공유한 세대이며[31]1980년대 초반생들의 경우는 휴대용 카세트와 mp3/cd플레이어를 거쳤고 디스켓이 cd로, 다시 usb로 변했으며 패미컴에서 가정용pc(라 쓰지만 게임기)로의 변화를 겪었다.

또한 TBC 동양방송이라는 채널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들이자 두 개의 KBS 채널을 태어나자마자 접했던 세대들이다. TBC가 KBS에 합병되어 KBS 2TV로 바뀌었기 때문에 KBS 1TV와 2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대에 가서야 SBS를 접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H.O.T, 젝스키스, S.E.S,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 그룹들에 열광했다.

행정적으로 직할시 러시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1981년 경북 대구시, 경기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어 도에서 분리되고 1986년 전남 광주시가, 1989년 충남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직할시 출신들이 생겨난 세대들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전두환, 노태우 단 두 사람이 집권했던 민정당의 보수정권하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이다. 1980년 8월생까지만 최규하 정부 때 태어났다. 1988년 2월 하순 이전생들만 전두환 집권기 때 태어났고 88년 2월 하순 ~ 89년생까지가 노태우 집권기 출신들이다. 이후 1980년대생들이 10대나 유년 시절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겪었고 청소년이나 20대 시절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겪었다. 그러다가 20,30대로 완전히 진입 후 다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현재 30대로 완벽히 진입한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겪고 있다.

정치성향은 1990년대생들보다 진보성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아주 강한 진보성향을 표방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기는 힘들다. 이는 1970년대생들과 마찬가지. 80년대 후반 생들의 경우에는 제법 사안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있다. 80년대 초반생들은 보수정권을 제법 겪었음에도 민주화를 체험하며 진보성향이 많이 강해졌다. 유아, 교육, 사회자산, 부동산, 회사 등에서 낮은 직위에 위치해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열광하고 북한과의 화해 및 반미, 반일 감정 정서가 가장 강하며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한일군사보호협정 등에 반대한 세대도 1980년대생들이 많다. 그래도 한 때 17대 대선에서는 이회창문국현에게 표를 던졌지만 이후 다시 민주당 강성 지지 성향으로 변했다. 특히 대표적 유명한 정치인인 김광진이 있다. 보수 성향 정치인들도 없지않아 있는데 이준석, 손수조 등이 있다.

1998년 부터 시작된 pc게임의 전성기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한민국 인터넷의 1세대를 청소년기에 몸소 겪으며 수 많은 포털등 사이트와 메신저의 흥망을 함께했던 이들이다[32]

그리고 흔히 외계어로 불리는 인터넷 신조어를 처음 사용한 세대이다.

이와 함께 IT기업들이 기존의 물질로서의 재화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여 순식간에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신흥 재벌이 되는 모습을[33]학창시절에 보고 자란 이들로서 현재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을 벌이는 이들이 대부분 이 세대이다.

1980년대 중후반 즉 1986년~1989년 출생자 기준으로 이들이 초등학교 무렵인 1995년~1999년에는 아직 1980년대의 대학 만능주의가 만연했었지만 중학교 무렵엔 대입경쟁과는 모순되게도 열린 교실[34]이라는 모토하에 학생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허나 이는 몇년만에 다시 대입만능론으로 회귀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절에는 인문계와 실업계로 편을 가르며 실업계는 성적이 부족한 학생이나 가는곳으로 가르치는 풍토가 만연했다. 또한 많은 예체능계 신규 대학들이 설립/개편되었다.

더불어 고교 이후 인문계에선 맹목적인 대입만을 가르쳤으나 이미 90년대의 대학=대기업 취직이라는 공식은 깨진 상황, 10여년간 대학만을 가르친 공교육의 피해자가 되었다.

11. 관련 문서


  1. [1] 대표적으로 1983년 핵미사일 오발 직전까지 간 사건.
  2. [2] 3저호황
  3. [3] 당시 블록버스터는 1000만 달러 이상이었다.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2 이후에 들어서서 1억 달러 기준으로 올랐다.
  4. [4] 물론 당시에 대학입학률이 낮았고 대학 진학율은 20%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의 인원이 많으므로 대학 입학생은 연간 40만명에 달했다. 참고로 대학 입학률이 92%로 최대인 2006년에는 67만명이 입학했으므로 아주 많은 차이는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한 가정당 출산수가 5명에 달했던게 1980년대 이후 생들은 1.7명 꼴로 줄였으니 인원 차이가 후덜덜하다. 거기서 밀려난 사람은 자영업이나 사업 혹은 기술직을 하였으며, 정 안되는 경우 공무원을 하거나 했다.
  5. [5] 하지만 그마저도 1996년부터 다시 60만대로 떨어졌다.
  6. [6]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7. [7]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0
  8. [8] 관련 기사
  9. [9]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1인당 명목 GDP 흐름
  10. [10] 북유럽 국가 1인당 gdp
  11. [11]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11817&t__nil_main_synopsis=more
  12. [12] 타임슬립물로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풍자한 일본 영화.
  13. [13] 이 시기의 TV 영상물들을 짜집기해서. 해당 소재가 90년대 초까지 커버하는 경우도 있지만 80년대 영상클립들이 압도적이다.
  14. [14] 초반부는 아니고 64회중 40회정도부터 1980년대로 넘어간다
  15. [15] 2025년의 가상역사와 이어지기도 하고 해서 반쯤은 가상역사. 그리고 고증오류문제도
  16. [16] 대개는 유신을 다루고 있지만 전두환의 집권 과정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5.17 쿠데타가 터진 80년도 4공은 4공이었다. 5공은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이은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1년부터 시작된다.
  17. [17] 전통적 개념의 코스프레는 18세기부터 있었지만, 서브컬쳐계 코스프레는 이 때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정식적으로 대중화가 된건 2000년대 초반.
  18. [18] 80년대를 풍미한 물건은 맞으나 대한민국에서는 구경해 보기는 커녕 그 존재를 아는이들 조차 극소수 매니아뿐이였다. 일본에서나 80년대를 풍미한 물건.
  19. [19] 코모도어64의 경우 또한 국내에서 그 존재를 아는이가 전무하다. 삼성전자의 SPC-1000이나 금성사의 패미콤(FC-100) 정도가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다.
  20. [20] 봉고 트럭의 출시 년도가 1980년인데, 이듬해 나온 코치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기아를 살리는 1등 공신이 되었다.
  21. [21] 현대 소나타의 출시 이전 장관용 차량 4기통 제한등의 대내외적인 호조로 르망과 더불어 대우자동차의 찬란했던 좋은 한 때를 보여주는 자동차.
  22. [22] 맥가이버, 베이워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3. [23]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현대전자에서 북미판 NES를 정발하면서 흥했다. 그 외에도 슈퍼콤 같은 패미클론으로 접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24. [24] 또 다른 패미컴으로 금성사의 개인용 컴퓨터(FC 시리즈)가 오히려 80년대를 풍미했다. 참고로 이 제품의 한글이름은 패미. 닌텐도 게임기 패미컴은 한국기준으로는 앞 주석에서처럼 1990년대에 유명했지 1980년대에는 그 존재를 아는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80년대 물건임은 맞다.
  25. [25]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이르게 잡아도 이들 점프 일본만화들이 3년정도 늦게 알려진편이다.
  26. [26] 호조 츠카사의 만화. 국내에선 주인공 사에바 료가 당시 해적판 만화들의 한국명인 우수한으로 잘 알려져 있다.
  27. [27] 잡지책 소녀시대.
  28. [28] 다만, 이것은 1980년대보다는 1970년대에 더 유명했다. 1970년대 항목으로 옮기는게 맞을 듯.
  29. [29] 산아 제한이 급속도로 성행한 때도 이 시기이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했을 정도.
  30. [30] 사실 1985년 이후 출생자는 대부분 초중고 사이에 IMF를 맞이한 세대이다. 저 얘기는 80년대 극초반의 소위 이해찬 세대 이야기다.
  31. [31] 1990년대 초/중반까진 오락실이 대부분이다가 1998년~1999년도에 전국적으로 pc방이 유행하며 오락실과 경쟁을 거쳐 이후 2000년 초반엔 대세가 되었다. 물론 이때 이들의 주 이용대상은 80년대 후반인 1986년 이후 출생자로 1990년대~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32. [32] 야후 코리아, 라이코스, 엠파스, 드림위즈 지니, 버디버디, 세이클럽에서 싸이월드 그리고 페이스북까지 겪는다!
  33. [33] 야후, 구글, 다음, 네이버, 페이스북
  34. [34] 소위 이해찬 시대. 이때 고등학생이던 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제대로 엿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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