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2000~2099년까지를 일컫는 2000년대와 유사한 시기(2001~2100년)에 대한 내용은 21세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연대구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1] - 21세기[2]

22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 제3천년기

제4천년기

1. 개요
2.1. 대한민국
2.2. 해외
3.1. 출판계
3.2. 문학
3.3. 음악
3.3.1. 해외 음악
3.3.2. 한국 음악
3.4. 언론
3.5. 방송
3.5.1. 경영/정책
3.5.2. 기술
3.5.3. 드라마
3.5.4. 예능
3.6. 패션
3.7. 영화
3.8. 만화, 애니메이션
3.8.1. 대한민국
3.8.2. 일본
3.8.3. 영미권
3.9. 게임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대한민국
6.1.1.1. 정/관계
6.1.1.2. 재계
6.1.1.3. 사회/문화
6.1.1.4. 스포츠
6.1.1.5. e스포츠
6.1.1.6. 방송 프로그램
6.1.2. 세계 공통
6.1.2.1. 이슈/문화
6.1.2.2. 미디어
6.1.2.3. 정/관계
6.1.2.4. 스포츠
6.2. 유행어
6.2.1. 초반(2000년 ~ 2003년)
6.2.2. 중반(2004년 ~ 2006년)
6.2.3. 후반(2007년 ~ 2009년)
7. 2000년대생
7.1. 초반생(2000년생 ~ 2003년생)
7.2. 중반생(2004년생 ~ 2006년생)
7.3. 후반생(2007년생 ~ 2009년생)
7.4. 사회적 가치관
8.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
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0. 참고/관련 문헌

1. 개요

위 영상은 1990년대 마지막 날(1999년 12월 31일)부터 2000년대 첫날(2000년 1월 1일)까지 진행된 제야의 종 타종식 영상이다.[3]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지막[4]이면서 21세기, 제3천년기의 시작[5]이고, 서기 2000년 ~ 2009년까지이다.

21세기 첫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다, 2000년 1월 1일이 아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첫 시작이 AD 1년 1월 1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0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세기의 시작과 끝도 1년부터 100년이다. 다만 100년 전 20세기의 시작을 놓고 독일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새로운 세기를 알리는 행사를 1900년에 실시한 전례가 있다. 반면 영국은 독일의 20세기 시작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1901년에 따로 거행했다.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개시를 앞두고 세계시간의 표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2001년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6][7]

이 시기에 학교에 다녔던 세대는 대부분 1982년생 ~ 2002년[8]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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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기점으로 창씨개명 피해자들이 모두 노인이 되었다.

2. 정치, 경제, 사회

2.1. 대한민국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함으로서, 2008년 2월 말 까지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이 10년 간 여당으로 집권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보수야당 한나라당이 영남 유권자들의 힘으로 울산 동구 1석을 뺀 64석을 독식했으나,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으로 낙천/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떨어지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사태를 계기로 DJP연합은 깨졌고, 거기에 이용호 게이트 등 비리사건들이 터져나오면서 DJ정권은 레임덕 상태로 치달았다.

2002년에도 두 아들 김홍업과 김홍걸, 권노갑 등의 비리로 레임덕 현상은 심화되어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을 나갔고, 이회창 후보의 약진으로 정권은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노무현 후보를 믿고 관료와 전문가 출신을 주로 내각에 기용하여 성공적으로 정권 재창출과 임기 마지막 시기를 잘 마무리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행동하는 네티즌'들의 지지의 힘입어 이회창 후보를 박빙 대결 끝에 역전해 당선했다.

2003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은 16대 대선 들어 '탈권위주의'를 천명하여 국회와 여당에 자율권을 부여했고, 사법부에 대한 압력을 없애고 권한이 부여된 책임총리제가 출현했다. 또 선거에서 금권을 배제하고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한 후, 국정원과 검찰, 경찰의 중립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더 나아가 언론의 자유도 더욱 확대됐다. 취임 초기에는 검란 파동과 대선자금 의혹, 이라크 파병 찬반논쟁, 대통령 측근비리, 민경찬 게이트, 굿모닝시티 사건 등으로 혼란이 있었고 2004년에는 한나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 사태가 있었으나, 시민들의 촛불 파워로 탄핵마저 잠재웠다.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10년간(1998년 ~ 2008년) 집권했던 시기로서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2003 ~ 2008)에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386세대들이 17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중앙정계에 대거 진출하였고,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등 1980년대에 형성된 자신들의 이념을 2000년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최초의 원내 진출을 이루어내는 등 이전까지 강력한 사회적 반공 분위기 속에 기를 펴지 못 했던 진보세력이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및 386세대 정치인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경제 문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4년에 최홍재와 허현준 등 NL 운동권 출신 전향파들이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한 후 신보수를 자처하는 '뉴라이트 세력'이 대두하면서 이들의 도전에도 시달렸다.

2007년 12월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BBK 사태와 자녀 불법입학 의혹 등에도 불구, '뉴타운 공약' 등을 내세워 뉴라이트와 수도권 신흥 부유층들의 지지를 받아 5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정치 지형은 보수 강세로 다시 변하게 된다. 보수 강세 외에 2000년대 후반의 중요한 정치적 흐름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정치 불신이다. 17대 대선에서 총 투표율은 63%에 그쳤으며 특히 20대의 투표율은 40%대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의 남북정상회담, 반미 열풍과 노무현 열풍 등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국사회의 열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2000년대 후반 경제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와 냉소적인 정치불신으로 차갑게 식고 만다.

MB정권은 취임 첫 해 미국과 맺은 쇠고기 협정이 광우병 파동으로 번져 정권 존립에 위기에 처했고, 5월부터 여중고생들이 촛불 시위를 시작해 전국적으로 또다시 '촛불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놀란 MB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철회하긴 했으나, 이를 '4대강 사업'이라고 교묘히 바꿔 재개했다. 반면 MB는 전임 참여정부의 비리 의혹을 캐내고자 공권력을 동원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그는 2009년 5월 23일에 고향 봉하마을에서 비극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소식이 국민들 사이에 급속히 전해져 전국 각지에서 노무현 추모 물결을 불러일으켜 백범 이상의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와는 별개로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경제상황이 악화되어 당초 내걸었던 '747공약[9]'은 헛것이 됐고, 경제성장률도 7% 근처에 못 갔다. 이 와중에 MB는 민주당계 정부 때 했던 성과를 돌려놓고자 언론이나 공권력 등을 권위주의 중심으로 바꿔서 경찰과 검찰을 이용해 공안통치를 부활시켰고, 국정원, 기무사, 대통령실 등을 동원해 민간인 사찰을 시도했다. 그 결과 2011년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격하시켰고, 언론자유지수도 홍콩과 함께 70위를 찍었다.

또 경제정책을 재벌 중심으로 개편했으며 교육현장에 뉴라이트 성향 강사들을 투입시켜 우익사관 중심으로 세뇌교육을 시켰고, 역사 교과서에 대한 난도질도 일삼았다. 심지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해 3.1운동 정신을 위배하기도 했다.

2000년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반전을 이룬 한 해였는데,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 악수를 해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져 동월 15일에 '남북공동선언'을 체결해냈다. 8월 15일에는 15년만에 서울과 평양에서 대규모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9월에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송되기도 했다. 북미관계에선 전년도 '페리 프로세스'를 계기로 압박에서 대화를 중점으로 이뤄져 조명록 특사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등의 방북으로 이어졌다.

남북관계의 역전으로 금강산 관광 확대와 개성공단 조성 등의 남북교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동족, 통일의 대상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이미 1999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때 미군의 학살 정황이 폭로된 걸 비롯해 2000년 매향리 미군 공군사격장 사태와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탈냉전 시대 이래 반공을 과거 독재정권의 낡은 이념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의 화해를 역사적 과제로 여겼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한국 말고도 다른 동맹국에도 그 여파가 컸고 정작 과거 공산권이었던 베트남과 중동유럽은 오히려 미국과 관계를 본격적으로 강화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이 문화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1년 부시 행정부 집권 후 북한에 대해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유지함에 따라 핵실험 문제 등으로 한반도 긴장상황이 더 고조됐고, 2002년 제2차 연평해전까지 터지면서 또다시 긴장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2001년 만경대 방명록 사건과 2003년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남남갈등까지 심해졌으며, 보수/극우세력들은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극도로 폄훼하고 욕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2006년 1차 핵실험 등으로 서서히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도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육로를 통해 만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반전을 시도했으나,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비핵-개방-3000원칙'을 세워 햇볕정책 자체를 버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가 경색돼 2008년 박왕자 피살 사건을 비롯해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사회 내의 인식은 극도의 증오와 불신이라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변하는가 하면, 극우 세력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전쟁까지 하자고 선동했다.

경제적으로는 IMF 사태 이후로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현재 상상하기 힘든 웰빙 열풍이 나타나는 등 체감경기는 2010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단순히 단어 하나로 시대상을 평가하기에는 무리다. 경제 문제는 정권 이양을 야기시킨 주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도입으로 인해 IMF 사태 이전에 비해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어 OECD 1위 수준의 높은 자살률 문제 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의 정치인 김근태는 이를 두고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더욱 강경해졌으나 회사와 정부는 이에 유혈진압으로 대응했다. 대표적으로 2000년 롯데호텔 및 사회보험노조 파업, 2001년 대우자동차 총파업, 2006년 포스코 건설노조 파업, 2007년 이랜드 사태,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등이 있다. 이에 따라 구속 노동자 수도 더욱 증가해 DJ정권 5년 동안 총 892명, 참여정부 동안 총 1,052명 등으로 각각 늘어났는데, 특히 참여정부 때는 비정규직이 구속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었다.

2.2. 해외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IT 버블 붕괴로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적으로는 호황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으나,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정치계에선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총 득표수로 압승해서 클린턴의 뒤를 이을 뻔했으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 수로 우세해서 역전하여 민주당 8년 집권기를 끝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전년도 대선 때 선거후유증에 시달리다가 9.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면을 전환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2002년에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이 있는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2003년에는 '대량살상무기 근절'을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벌여 빈 라덴을 지지하던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을 끌어내렸으나, 정작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명분 없는 전쟁'이란 오명을 들으며 제2의 베트남전이 터지지 않을까 우려되었고,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으로 미국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는 '경제 회복'을 내세운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돌풍으로 고전했으나, 박빙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테러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2기 재임기 동안 2005년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터져 미국의 도덕성에 더 먹칠을 했다.

일본은 2000년 오부치 총리 급서 후 모리 요시로 총리의 어중간한 시기를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이끄는 자민당이 승리해 자민당 집권기가 더 이어졌다. 그해 9.11 테러를 계기로 2003년에 '유사법제 3법'을 통과시켜 전쟁 등 유사시 자위대 투입을 허용하는 길을 마련했고, 이는 군사대국화 급진전의 한 계기였다.

(2000~2009)브릭스G7의 명목 GDP 흐름[10]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

10,284

10,621

10,977

11,510

12,274

13,093

13,855

14,477

14,718

14,418

중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1,192

1,317

1,455

1,650

1,944

2,287

2,793

3,504

4,547

5,105

일본 전체 명목 GDP: G7

4,731

4,159

3,980

4,302

4,655

4,571

4,356

4,356

4,849

5,035

독일 전체 명목 GDP: G7

1,891

1,882

2,013

2,428

2,729

2,771

2,905

3,328

3,640

3,30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1,372

1,383

1,505

1,851

2,126

2,207

2,327

2,666

2,937

2,700

영국 전체 명목 GDP: G7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

1,107

1,124

1,229

1,517

1,73

1,789

1,874

2,130

2,318

2,116

브라질 전체 명목 GDP: 브릭스

644

554

506

552

663

882

1,089

1,366

1,653

1,622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

739

732

752

887

1,018

1,164

1,310

1,457

1,542

1,370

인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476

493

523

618

721

834

949

1,238

1,223

1,365

러시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259

306.

345

430

591

763

989

1,299

1,660

1,222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561

533

609

680

764

898

1,011

1,122

1,002

901

같은 시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 불리는 4개 국가들이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특히 2001년 이후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불과 8년만에 4배의 성장을 기록하는데, 이 때 중국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한국에는 엄청난 중국발 초미세먼지를 동반하게 되고 2010년대 이후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00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연합도 이 시기에 크게 팽창했다가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아 그 후 유로화 사태를 초래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이 되는 다음의 10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신흥공업국이었던 70~8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수배씩 경제규모가 커지던 고도성장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핸드폰 등의 IT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경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 시기로서 오늘날 피쳐폰이라 불리는 형태의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2010년대와는 구별되는 아날로그의 정점 2000년대 고유의 풍경 중 하나다.

2002년 인도네시아 치하였던 동티모르가 21세기 최초로 정식 독립을 했다. 다음으로 2006년에 세르비아에서 빠져나온 몬테네그로, 그리고 2년 후 독립한 코소보가 있으나 코소보는 미승인 국가이다. 이라크도 2003년 미군에 의해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의 길이 마련되었으나,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권력다툼, 미군과 미국인에 대한 테러행위 등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3. 문화

대한민국은 1990년대 막판 최악의 IMF 외환위기의 아픔을 뒤로하고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11][12][13] 이로써, 1990년대 문화계와 세기말 분위기는 완전히 끝났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전 분야의 걸쳐 발전을 이뤄냈으며 지금도 화자되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등의 명작들이 탄생했으며 게임계는 넥슨, 엔씨, 넷마블 ,한게임 등, 음악계는 JYP, YG, SM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대중문화 기업들도 생겨났다.[14] 출판만화는 정부의 철퇴와 스캔본 등의 문제로 몰락했지만, 대신 그 인력들이 아동서적으로 흘러들어가 WHY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걸출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2010년대 초반에는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등 여러 분야에서 진일보가 있었다. 덕분에 이시기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은 세계 유소년처럼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현실에 따라 성인이 된 뒤에는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게 된다.

3.1. 출판계

2000년 들어 가장 크게 불거진 문제는 바로 '도서정가제 문제'였다. 문화관광부가 9월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담은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해당 제도의 핵심 문제는 '온라인 서점의 할인을 인정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란 문제였는데, 논란 끝에 10%까지 허용하는 걸로 결론이 나 2002년 초부터 실시됐다. 당년 초부터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e북이 7월부터 첫 선을 보였다. 예스24는 첫 e북 상품으로 이순원 소설작품 <모델>을 내놨고, 9월에 구효서의 <정벌>, 백민석의 <러셔>가 각각 이어서 나왔다. 이에 골드북닷컴은 이인화 소설 <려인>을, 에버북닷컴은 이문열의 소설 <하늘길>을 각각 e북으로 내놨다. 동년도 최대 베스트셀러는 1~3위를 석권한 <해리포터> 시리즈였으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 <가시고기>,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국화꽃 향기>도 뒤이어 50만 부 이상을 기록해 베스트셀러 지위를 굳혔다.

2002년 출판계 화제는 바로 MBC <느낌표> 코너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코너였는데, 해당 프로에 소개된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대다수가 밀리언셀러 지위를 얻었고, 타 도서들도 수십만 권씩 팔려 'TV 매체의 위력'을 선보였다. 느낌표 선정도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자 출판계에선 이 프로그램을 두고 찬반논쟁이 치열했으나, 국민적 도서 열풍을 조성하는 데 공헌했다. 그 외에도 KBS1 <TV, 책을 말하다>, MBC <행복한 책읽기> 등 책 소개 방송 프로그램의 확대, 일간신문의 북 섹션 안정화, 시민단체들의 독서운동 확대 등에 힘입어 출판시장이 오랜만에 활성화됐으나, 그 이면엔 출판사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게다가 같은 해 종로서적이 부도를 내 충격을 안겨 준 반면, 온라인 서점은 나날이 급성장했다. 이들은 할인판매 등으로 정가제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매출을 늘렸지만 대다수는 적자만 냈다.

2003년 들어서도 출판계는 여전히 불황에 시달렸다.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출판시장 위축이 뚜렷이 드러나 전년도에 비해 5.1%로 줄었고, 분야별로는 아동 및 총류가 큰 감소세를 보였다. 거기에 논란이 됐던 도서정가제가 2월 27일부터 시행됐으나 마일리지 등 변형된 할인제가 성행했다. 당시 인기도서로는 '10억 만들기'나 '부자되기', '청년 창업' 등 재테크 관련 도서가 강세를 보였으며, 인터넷 소설 및 카툰 에세이 역시 인기를 끌어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나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은 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2004년 들어서 출판계에서 두드러진 걸로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추리소설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더한 '팩션' 류가 인기도서 목록 윗자리를 차지했는데, 이들 중 <다빈치코드>가 단연 돋보였으며 <천사와 악마>, <단테클럽>, <진주귀고리 수녀>, <4의 규칙> 등도 서점가를 휩쓸었다. 심지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열풍에 힘입어 김훈 소설 <칼의 노래>나 <이순신의 두 얼굴> 같은 소설들이 연속으로 나와 서점가에도 때 아닌 '이순신 열풍'이 불었다. 그 외에 땅 투자와 관련된 실용서들이 인기를 끌었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중국 관련 책들도 나왔다. 2003년 11월에 나온 학습만화 <마법천자문>이 2백만 부나 팔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를 이어 주었다.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치르느라 바빴는데, 출판계 내부적으론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대형서점의 등장과 온라인 서점의 할인경쟁으로 동네 중소 서점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으며 출판사들도 대형 출판사들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해외 저작물들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양극화가 가속화됐다. 이 시기 처세/취미/실용도서나 경제/경영서가 인기를 끈 반면, 인문/사회과학은 위축됐다. 이들 중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가 100만 부 이상 출고되면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블루오션 전략>이 사회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자 베스트를 기록했다.

2006년 들어서 유명인을 내세운 대리번역 논쟁이 안팤의 관심을 끌었다. 이밖에 인문학 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에 이은 출판사 대표들의 인문서적 위기 선언, 동화서적 폐업 중단, 그린비의 공개 리콜 실시 등도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출간도서 중엔 <행복>, <행복한 이기주의자> 등 '행복'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이 나와 인기를 끌었고, 성공 우화의 경제학, 20대 여성의 자기계발서/자녀교육서, 논술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 책이 주목받았다.

2007년 출판계는 제도적 차원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과 도서정가제 유지 등으로 관련법이 개정되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경향에 따라 경제경영서가 강세를 보이는 중에도 더 폭이 넓어졌다. 예컨대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던가 토마스 윌리스의 <영혼의 해부> 등 뇌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에 관심을 갖는 책들이 주목받았고,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 니콜 하워드의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 등 책 자체에 화두를 던진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노년 대비 지침서, 시니어 마케팅을 다룬 책, 불신의 시대에 자꾸 의심해보라는 메세지를 던져보라는 회의주의적 시각을 강조한 책, 자기계발서 <시크릿>처럼 행복을 넘어 현명성을 추구하는 책 등이 인기를 끌었다.

2008년 상반기 들어 촛불시위로 광우병이 이슈화되면서 관련 서적들의 매상이 올라갔고,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수많은 출판사들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문을 닫았으며 인터넷서점 매출도 30~40%에서 10%로 하락했다. 게다가 국방부 불온도서 선정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도 크게 제기되었다. 서적들 중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책 매출이 하락한 대신 경제위기 관련 서적 매출이 올라갔다.

2009년 들어서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등 유명인들의 사망으로 서점가에까지 추모 분위기가 퍼져 <바보가 바보들에게>, <동행>, <후불제 민주주의>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나 구혜선의 <탱고> 등 연예인들이 쓴 에세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동도서는 일제고사와 신종플루 등으로 매상이 줄어들었으나 예림당 학습만화 <Why?> 시리즈가 2천만 부를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서구권에서 유행한 전자책 상용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삼성전자나 아이리버 등이 전자책 단말기를 출시했고, 교보문고 같은 인터넷 서점들도 전자책 서비스를 위한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또 대형서점들과 출판사들이 합작해 '한국이퍼브'를 세우기도 했다.

3.2. 문학

2000년 들어서도 한국 문학은 IMF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고,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문자매체의 위기감을 실감케 했다.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될 정도로 문학의 비중은 양적으로도 두드러졌다. 이 와중에도 이문열의 <아가>, 최인호의 <상도>, 김원일의 <가족>,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 중견작가들의 건재함이 돋보여졌고, 특히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상도>는 출간 석달 만에 50만 부를 팔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 순수문학 쪽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문열이나 신경숙, 황석영 책이 10만 권을 넘었을 뿐 다른 작가들은 1만 권을 넘기 힘들었다. 대신 <해리포터> 시리즈나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등 대중소설들이 인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 '문학권력 논쟁'도 이슈가 되었는데, 근원은 일부 문학동인과 출판사에 의한 파벌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특히 <조선일보>가 주최한 '동인문학상' 논쟁은 문학권력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황석영 작가가 그의 작품 <오래된 정원> 후보 등재를 거부해 파문이 확산됐다. 다만 이문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이 상을 받으면서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한편 신예 평론가 이명원은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쓴 평론문이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 평론문과 유사하다고 비판을 제기해 표절 문제가 불거졌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대학사회에 고착된 가부장적 도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까지 확장됐다.

2001년 들어 황석영이나 김원일 등 중견 작가들이 원숙미로 건재를 과시했는데, <손님>이나 <슬픈 시간의 기억>이 그 예였다. 30대 작가 김연수와 김운하도 치밀한 고증력과 형식파괴 실험으로 <굳빠이 이상>이나 <137개의 미로 카드>를 각각 내 주목을 받았고, 오수연 연작 장편 <부엌>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시에선 대산문학상을 받은 이성부(지리산), 동서문학상의 허수경(내 영혼은 너무 오래 되었으니),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나희덕(어두워진다는 것), 김수영문학상의 이정록(제비꽃 여인숙) 등이 호평받았다.

문학권력 논쟁은 전년도에 이어 더욱 가열되어 문학평론가 권성우의 <창작과비평>에 대한 상업주의 비판, 그리고 <문학동네> 편집위원 남진우 시인의 권성우 비판으로 격렬히 진행됐다. 이명원은 권성우와 함께 <사회비평> 가을호에서 <창작과비평>에 대해 진보 권위주의, 진보 상업주의, 기회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며 혁신을 촉구했다. 이러한 비판은 그동안 쉬쉬하던 진보 문학계의 '문학권력화' 논란이 수면 위에 오른 것임을 의미하며, 더 이상 비판에서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영상 등 대중매체 확산으로 문학에도 대중화가 가속도를 더해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감성적인 소녀풍의 시들이 인기를 얻으며 정통 시집들을 밀어냈다. 다만 김춘수나 고은, 신경림, 마종기, 도종환, 김지하, 강은교 등 중견 및 원로 시인들이 여전히 창작을 계속했는데, 특히 신경림은 시집 <뿔>을, 고은은 전집 38권을 각각 냈으며 김지하도 <화개>로 만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해 뒤늦게나마 문단으로부터 대우받았다. <화개>는 미발표작 100여 편 모음집으로 "이념이나 사상보단 병고를 거친 반독재 투쟁가의 외로운 내면을 서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계에선 1990년대를 주도했던 여성작가들이 위축된 반면, 중진작가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김주영은 <홍어>에 이어 <멸치>를 내놓아 김동리문학상을 받았고, 한승원 작가도 고향 전남 장흥 해안가를 소재로 한 <물보라>를 내놓았으며, 딸 한강과 함께 어른을 위한 동화 <우주 색칠하기>와 <물보라>를 각각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박상륭 작가도 캐나다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해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로 특유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선보였으며 박영한 작가도 자신의 가족사를 토대로 한 소설 <카르바>를 내놨다. 이 외에 김원우는 <객수산록>으로 대산문학상을, 김원일은 중편 <손풍금>으로 황순원문학상을 각각 수상해 저력을 보여줬다. 또 2002년경에는 조세희 소설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50쇄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당대 신예 작가 중 권지예가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전혜성이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 장편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으로 각각 주목을 받았다. 또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자로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을 내 데뷔한 정미경 작가도 장편 <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스타 반열에 들었다. 또 성석제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동인문학상을, 은희경은 소설집 <상록> 수록작품 '누가 꽃피는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각각 냈다. 김하기도 출소 후 <복사꽃 그 자리>를 냈고, 하성란, 조경란, 이혜경 등이 소설집을 냈다.

2002년 시공사 계간잡지 <문학인>은 한국문예창작회와 공동으로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 선정을 겨울호에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 한국 문학사 100년 간 특기할 만한 문학적 사건과 소설작품을 선정키 위해 대학 국문학과 및 문창과 교수, 문학평론가 등 관계자 109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조사 결과 작가 중 1등은 황석영이고, 최고 문제작은 조세희의 <난쏘공>이었다.

2003년 신진 여성작가 정이현의 데뷔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개인주의적 글쓰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 외엔 김영하의 <검은 꽃>, 박만규 데뷔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각각 주목을 받았다. 또 이청준, 송기숙, 박상륭, 윤흥길, 이경자, 최윤 등 중견 작가들도 건재를 과시했다. 젊은 작가들 중에는 <무서운 밤>의 임영태, <이발소에 두고 온 시>의 김형수, <토란>의 이현수, <새는>의 박현욱,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의 김경욱 등이 대표적이었고, 시에서는 정현종, 이성복, 김광규 등 중견들이 시집을 내기도 했다. 또 시인 겸 작사가 조명암과 이찬 등 월북 문인들의 시집이 나오면서 그동안 묻혀왔던 월북 문인들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같은 해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재야 문인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가두행진 등을 통해 반전 여론을 설파했으며, 특히 시인 오수연과 박노해가 전쟁터까지 직접 나서 현장소식을 전했다.

2004년 들어 김영하는 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산문학상 트레블을 달성해 문단계에 폭풍을 불어일으켰으며, <오빠가 돌아왔다>나 <보물선> 등의 단편을 내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았다. 50대 중반 들어 문단에 늦게 데뷔한 김훈도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을 내 신선함을 선사했다. 또 창비가 주관한 제19회 만해문학상에서 북한 작가 홍석중[15]의 장편 <황진이>가 처음 수상작으로 선출됐는데, 이는 남북교류가 활성화된 데 따른 상징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창비 측은 금강산에서 상금 1천만 원을 수상자에게 직접 전달했고, 해당 소설은 남한에서 편집되어 2권으로 나왔다.

소설계에선 박완서, 이청준, 김원일 등 중견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는데, 특히 박완서 작품 <그 여자네 집>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정도상도 연작소설 <실상사>를 냈다. 정찬은 서구 종교와 신화를 파고 든 <빌라도와 예수>를, 임철우도 <봄날> 이후 6년 만에 근현대사의 100년의 아픔을 함축한 <백년여관>을 각각 냈다. 시에서도 김지하가 9번째 시집 <유목과 은둔>을 낸 걸 비롯해 신달자, 문정희, 정호승, 백무산 등이 여전히 시집을 냈다.

2005년 7월 20일부터 5일 간 북한 평양, 백두산, 묘향산을 오가며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가 개최됐다. 이 대회는 2004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정치상황이 경색돼 무기한 연기됐다가 이때 열린 것이다. 행사 기간에 남측의 고은, 황석영, 백낙청 등 10여명이 북한 작가 오영재, 홍석중 등과 백두산 천지에서 해맞이를 하며 민족 문학과 통일을 기원했다. 같은 해 김별아가 역사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받았고, 김원일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다룬 소설 <푸른 혼>을 지어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또 조세희의 <난쏘공>이 출간 27년만에 200쇄를 돌파했고, 성석제, 공지영, 윤대녕, 이승우 등 중견작가들이 여전히 활동했다.

시에선 전통적 서정성이 강세를 이뤘는데, 문태준이 <누가 울고 간다>로 미당문학상을 받았으며 강화도에 거주하는 함민복도 <말랑말랑한 힘>으로 박용래문학상과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장석남도 5번째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를, 박형준 역시 4번째 시집 <춤>을 각각 냈다. 여러 문인들과 출판사들도 침체된 문학을 살리기 위해 재정지원을 받았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복권기금 52억 2천만원을 확보해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해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에 42억,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에 3억 2천만, 우수문예지 구입과 배포에 6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2006년엔 '주제의 무거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파격적인 작품들이 연속으로 나왔다. 특히 박민규의 <핑퐁>은 왕따 중학생들이 핑퐁으로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얘기이며, 김종광의 <낙서문학사>는 한국 문학계 자체를 표적으로 삼았다. 조정래도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을 소재로 다룬 <인간연습>을, 최인호도 가야사를 복원한 <제4의 제국>을, 복거일도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보이지 않는 손>을 각각 냈다. 같은 시기 공지영의 눈부신 활약도 부각됐는데,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가 각각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 특히 <우행시>는 영화로도 나올 정도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북한 핵실험 여파에도 남북한 문인교류는 지속되어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공식 출범됐으며, 고은 시인도 2005년 및 2006년에 각각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는 연작시집 <만인보> 21~23권과 <부끄러움 가득>을 각각 내 건재를 과시했다. 2007년 11월 8일부터 7일 간 전북 전주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AAIF)'을 개최해 한국 문학의 위상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떨쳤고, 한중작가회의, 한중문학인대회 등으로 중국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성화됐다.

2007년은 역사소설이 다시 인기를 구가한 해이기도 한데, 김훈의 <남한산성>을 비롯해 신경숙의 <리진>, 김별아의 <논개>,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김탁환의 <열하광인> 등이 대표적이고, 박완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황석영의 <바리데기>,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각각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에는 한국 최초의 현대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나온 지 100주년을 맞는 터라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고,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세계화 등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한국작가회의'로 단체명을 변경했다.

2008년 문학계에선 박경리 작가 타계라는 슬픈 소식이 있었으나, '인터넷 연재소설'과 '청소년 문학'이 큰 주목을 받은 기쁜 때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김려령의 <완득이>, 배유안의 <스프링벅>,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 전아리의 <직녀의 일기장> 등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소설 역시 각광을 받아 사계절의 '1318 문고', 창비의 '창비 청소년 문학'에 이어 문학동네도 '원더북스', 문학과지성사도 '푸른문학' 등을 각각 신설했으며, 작품 중에는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외수 작가도 문학 외에 방송, TV광고 등에 출연해 '라이터테이너'로 각광받았으며,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가 쓴 소설 <당신들의 조각들>이 히트쳐 기성 문인들에 맞섰다. 무명작가 인아 역시 2년 전에 낸 <아내가 결혼했다>의 영화화로 단숨에 스타 작가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발매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해 '엄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인터넷 소설의 강세도 여전해 공지영의 <도가니>, 김훈의 <공무도하>,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히트를 쳤으며, 용산 참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등 정치/사회적 이슈로 문학인들의 사회참여도 두드러졌다. 그해 11월 서울 연희동 시사편찬위원회 건물에 '연희문화창작촌'이 개설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의 경우 서정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기존 시의 문법을 파괴하거나 탈피한 시인들이 소위 미래파라 불리며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이에 해당하는 시인들은 황병승, 김경주, 이장욱, 장석원 등이었다. 사실상 한국 현대시의 문을 열었다고 불리는 시인들.

3.3. 음악

3.3.1. 해외 음악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 에 잠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포스트록의 열풍이 불었으나, 90년대의 그런지브릿팝등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형화된 음악적인 흐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는 다시 말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무렵부터 인디 음악이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케이드 파이어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거대 그룹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흥행한 뮤지션들은 오히려 90년대에 음악적 기반을 둔 콜드플레이 같은 포스트 브릿팝 그룹들이었다.

2000년대에는 이모셔널을 섞은 뉴메탈포스트 그런지의 전성기였다. 락 씬 전체적으로, 멜로디컬하거나 리드미컬하면서 '리릭'에 방점을 많이 둔 대중적 뉴메탈포스트 그런지 록 음악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락 차트들과 락 판매량들과 락 콘서트들과 락 페스티벌들은 주로 린킨파크, 파파로치, 푸 파이터스같은 밴드들이 휩쓸었던 시절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고의 아이돌로서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다. 그녀의 라이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메리칸 아이돌 초대 우승자인 켈리 클락슨은 2000년대 중반을 완전히 휩쓸며 메가히트곡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브릴 라빈은 독보적인 컨셉으로 2000년대 초중반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미지 변신 후에도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를 지배했다.

다만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의 주류는 락을 중심으로 한 백인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솔로데뷔를 한 비욘세는 말그대로 '아이콘'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겪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힙합과 R&B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한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건재했으며 빌보드를 지배했다. 이 시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Jay-Z, 칸예 웨스트,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이 있다. 또한 장르에 있어서도 0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의 올드 스쿨, 붐뱁 장르가 아닌 사우스 힙합을 기반으로 한 트랩뮤직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R&B 장르의 성장 역시 두드러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이 소울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타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마크 앤소니, 샤키라 등의 라틴팝이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2000년대 였다. 이후 라틴팝은 그 자체보다는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시작된 옛 것을 가져다가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복고 열풍은 현재까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문화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는 방구석 인디 밴드라고 해도 자신들의 음악을 당시 흥했던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올리는 것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엄청난 데뷔 시절 인기를 보여준 악틱 몽키즈. 또한 DAW나 신디사이저의 발전 등으로 개인이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개성있는 소규모 그룹 혹은 원맨 밴드 등이 인디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디 신의 성장을 바탕으로 피치포크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199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피지컬 앨범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엔 자주 나오던 3천만장 돌파앨범도 단 1개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대 초반의 디지털 시장 황금기의 기반이 다져진 시기이기도 하다.[16]

일본 대중음악(J팝)은 에이벡스 계열의 위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00년대 중반까지 J-힙합, J-레게 등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GReeeeN, FUNKY MONKEY BABYS, 케츠메이시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2000년대 에는 음반 시장의 쇠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로 인해 J팝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다.

3.3.2. 한국 음악

2000년 대중음악의 아이콘은 조성모의 독주, 서태지 컴백, 일본 대중음악 3차 개방, 중국행 한류열풍 등이다. 조성모가 9월에 낸 <아시나요>가 190만 장, 이에 앞선 리메이크 앨범 <가시나무>가 165만 장을 각각 기록해 독주해왔고, 4년여 간 은둔해 온 '문화대통령' 서태지도 그해 8월 29일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귀국해 9월 초에 정규 6집을 냈다. 반면 <Sad Salsa>로 인기를 얻은 백지영의 비디오 사건으로 인터넷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클론과 안재욱, NRG, H.O.T.도 전년도 홍콩 및 대만에 이어 중국에도 진출해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에는 음반판매의 부진으로 침체기를 보여줬는데, 기존 음반시장이 쇠퇴한 대신 mp3 등 디지털 음악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god, 조성모, 김건모, 브라운아이즈, 쿨, 왁스 등이 나름 활약했고, 장르 중에서 R&B가 약진했다. 그 와중에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연예계 노예계약' 파문을 보도하자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소속 회원들이 MBC 출연을 거부했고, 걸프렌드의 대리녹음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성행하던 립싱크에도 메스가 가해져 MBC <생방송 음악캠프>가 올라이브 무대로 전환했으며 타 방송사 음악프로들도 라이브 비율을 늘렸다.

2002년 한 해 동안 국내 음반시장은 침체기였다. 홍보비 파문에 따른 검찰 수사와 소리바다 파장 등이 일면서 전체 음반시장 규모가 줄어버린 데다가, 전년도만 해도 밀리언셀러가 3개나 됐으나 당년도에는 쿨의 정규 7집이 65만장을 기록한 게 최고 기록이다. JTL, 코요태, 장나라, 보아, 성시경, 왁스, 윤도현, 신승훈, 이수영, S.E.S., 자우림 등이 40만장 이상을 기록했다. 다만 해외 음반시장에선 일본 시장을 노린 보아가 그해 3월 정규앨범을 처음 발매해 일본 음반판매 1위를 기록해 승전보를 울렸다. 반면 신화는 싱가포르, 조성우는 미국, 윤미래는 일본 등지에 각각 진출했다. 또한 중국 인민라디오방송(CNR)과 일본 스카이퍼펙 TV 등지에서 한국가요 전문 프로그램이 전파를 탈 정도로 한국 가요의 위상이 드높아졌다.

2003년에도 가요계는 여전히 불황이었다. 당시 음반시장에서 김건모 8집이 52만장으로 최고치였고, 그 뒤는 이수영 5집(42만 5천장), 조성모 5집(39만 8천장), 휘성 2집(36만 8천장)이 각각 뒤따랐다. 음반업계의 불황에 따라 온라인 음악사이트에 대한 저작권 관련 법적대응이 두드러졌는데, 법원의 판결은 음반업계에 유리했음에도 해결책은 없었다. 같은 시기 아이돌 멤버들의 솔로 전향과 연기자 전업이 전보다 더 두드러졌는데, S.E.S. 멤버 전원이 솔로로 전향하는가 하면 핑클, 신화 등지 멤버들도 개인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들 중에는 이효리가 화제가 됐다. 발라드 가수 이수영이 앨범 2장으로 66만장을 팔아 개인 판매량 1위를 기록했으며, 보아도 한일 양국을 왕복하며 가교 역할을 했다. 또 김건모, 세븐, 조성모, 빅마마, 휘성 등도 최선을 다해 활약했다. '가왕' 조용필도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어 매진을 달성해 건재를 과시했다.

2004년에도 대중가요 음반 중 50만장을 기록한 게 하나도 없었다. 서태지 7집이 48만 2,066장으로 최고를 기록했고, 이수영의 리메이크 앨범인 5.5집 <클래식>이 38만 868장으로 2위, 이승철 7집도 35만 2,323장으로 3위를 각각 찍었다. 유명 음원사이트 벅스와 한국음반제작자협회 양측은 음원을 유료화하기로 합의했고, 소리바다도 2005년까지 유료화하는 데 합의했다. 같은 시기 국내 가요계에선 '7080 열풍'과 함께 기존 히트곡들의 리메이크 열풍도 같이 불었는데, KBS1 <열린음악회> 1월 25일자 방송분 '7080 추억의 그룹사운드' 및 3월 2일 방송분 '7080 보고싶다'가 각각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해당 에피소드 2편은 DVD로 발매되기도 했다.

2005년 1월 저작권법 개정에 따라 음원의 유료화 움직임이 점진적으로 진행돼 가요시장이 회생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음원의 불법 사용에 대한 저작권단체의 법적 소송, 이동통신사의 온라인 유료 음악시장 가세 등으로 온라인 음원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이에 이동통신사들도 온라인 음원의 중요성을 깨달아 음악펀드를 조성했고, 이 자금이 가요계에 유입돼 신인과 기성 가수들의 음반이 쏟아졌다. 해외에선 비, 세븐, 장나라 등이 아시아의 스타로 거듭났고, 국내 무대에선 SG워너비, 버즈, 김종국 등 발라드 가수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윤도현, 조성모, 테이, 신혜성, 휘성 등도 같이 최선을 다했다. 전년도에 장윤정이 트로트곡 <어머나>로 스타가 된 걸 계기로 한물갈 줄 알았던 트로트도 경쟁력을 다시금 얻었고, 이루 같은 신인들도 트로트 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다.

2006년 가요계에선 발라드 편중 현상이 일어났는데, 백지영의 <사랑 안해>를 시초로 발라드 곡이 대거 쏟아졌으며 손호영, 김태우 등 아이돌 출신 솔로들도 맹활약했다. 10~11월에 걸쳐 비, 세븐, 동방신기, 신승훈 등 톱가수 수십 명이 음반을 내 '별들의 전쟁'이 터졌다. 이와 더불어 음반에서 음원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돼 CD가 아니라 디지털 싱글로 신곡을 내는 사례가 많았다. 그에 따라 CJ뮤직, SK텔레콤, KTF 등이 온라인 음악시장에 뛰어들어 디지털 음악시장이 3천억원 규모를 뛰어넘었다. 반면 음반시장은 갈수록 쇠퇴해 동방신기 3집이 34만 9,317장, SG워너비 3집이 31만 1,642장으로 30만을 겨우 넘었고, 이수영 7집 및 신화 8집이 20만장을 넘었다. 같은 시기 가수 비가 미국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동양인 가수로서 최초로 단독 공연을 열었으며, 그해 5월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박진영도 미국 뉴욕에 체류하며 아시아를 넘어 팝의 본고장에 진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2007년 가요계에선 판매량 20만장을 찍은 음반이 한 개도 없는 반면, 디지털 싱글이나 싱글/미니음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장르별로는 빅뱅과 원더걸스 등 아이돌 세대가 대세를 이뤘고, 박진영, 윤상, 토이 등 8090 세대 스타들이 컴백해 건재를 과시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도 데뷔 15주년을 맞아 라지 피자박스 크기의 CD 10장짜리 기념 앨범을 내 광속 매진을 기록했으며, 매진 후 옥션 같은 경매사이트에서 몇십, 몇백만원까지 부를 정도로 희소가치를 기록했다. 또 하반기 들어서 원더걸스의 '텔미춤'이 국민 응원춤으로 격상했다. 이는 미국에서 음반작업을 하던 박진영이 원더걸스에게 보낸 '원격 안무지도' 동영상이 기폭제가 돼 폭발적 인기를 불러왔다.

2008년에는 아이돌 홍수 속에서도 서태지가 4년만에 <Atomos Part Moai> 등 싱글 3장을 내 폭발적 인기를 불러와 이듬해까지 '서태지 신드롬'은 식지 않았고, 신승훈도 2년만에 프로젝트 앨범 <Unexpected Twist>를 내 건재함을 과시했다. 다른 한편 비의 <Rainism>, 동방신기의 <주문 - MIROTIC> 등 일부 곡이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고, N.EX.T의 <아! 개한민국>, 마이티마우스의 <꽐라송>, 엄정화의 <Kiss Me> 등 많은 노래들이 무더기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주 고객인 청소년과 음반사들이 성토했고, 표현의 자유 논쟁도 또다시 불거졌다. 상반기부터 원로가수 나훈아의 야쿠자 신체훼손 루머가 퍼진 데다 포크그룹 '산울림'의 드러머이자 막내동생 김창익을 비롯해 먼데이키즈 멤버 김민수, 거북이 메인보컬 터틀맨, 엠스트리트 멤버 이서현, 스튜디어스 출신 가수 이라 등의 안타까운 사망 등 안 좋은 이슈들이 많았다.

2009년 가요계는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들이 많았는데, 디지털 음악시장의 활성화로 싱어송라이터가 몰락했으며 지드래곤의 표절 논란도 있었고, 2PM 멤버 재범의 탈퇴 파동도 있었다. 동방신기도 멤버들 간의 불화로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아이돌의 세대교체도 이 때부터 일어났는데, 2002년을 끝으로[17] 1세대 아이돌들이 물러가게 되었고 한동안 공백상태이던 가요계를 브라운 아이즈를 시작으로 SG 워너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테이, 씨야 등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18], 버즈를 위시로 한 비주얼계 락발라드 장르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해체 또는 침체기를 맞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여자 솔로 가수들의 전성기였으며 장나라, BoA, 이효리, 이수영 등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나마 남자 솔로 가수는 와 남자 아이돌들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등이 데뷔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시기에 걸그룹 시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그나마 남아있었던 게 쥬얼리 정도이며 아이돌 공장이라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마저 걸그룹 히트에 연달아 실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열풍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7년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같은 추억보정을 얻고 있지만 소몰이창법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가요계는 식상하다, 감정을 낭비한다 등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매 곡마다 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도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음반 시장은 몰락한 가운데 아직까지 음원 시장이 제대로 커지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시장성에 있어서도 크게 위축되었던 암흑기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2007년, 상반기엔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포문을 열었고, 이어서 나온 원더걸스Tell Me가 엄청난 반응과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제2세대 아이돌 시대를 열게 되며 이후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들이 미디엄 템포 발라드, 락발라드 가수들을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2차 아이돌 전성시대가 2000년대 후반경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2007년 ~ 2008년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요계의 색채가 다양했던 시기인데 바로 소몰이 창법과 발라드의 마지막 전성기와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교차하던 과도기여서 음악장르가 다양했었다. 이 시기에는 아이돌 음악과 발라드가 1위를 양분했지만 소녀시대 Gee 열풍 이후인 2009년부터 아이돌 후크송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발라드가 아이돌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가요계 구도가 자리잡혔다.

인디 음악계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기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카우치 사건으로 한번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2000년대 후반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등 2세대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인디 신 자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하였다.

민중가요계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운동권의 몰락으로 침체기에 빠졌는데, 대다수 대학 노래패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해산하거나 대중가요를 부르는 밴드가 됐으며 '조국과 청춘'과 '천리마' 등은 활동을 중단하거나 해산하기도 했다.

다만 한선희, 백자, 강상구 등이 결성한 '우리나라'와 남총련 노래단 '한반도'가 집회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꽃다지와 소리타래, 희망새 등도 건재를 과시했다. 윤민석이 2002년에 지은 <Fucking USA>가 당대 반미 열풍을 타고 빠르게 유명세를 탔고, 2005년에 박성철이 짓고 부른 <맥아더>도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논쟁과 맞물려 파장이 일었다. 심지어 피엘송닷컴, 밥자유평등평화, 송앤라이프 등 인터넷 민중가요 사이트들도 생겨 중년이 된 386 세대들의 향수를 자극시켰다.

그동안 동요로 취급받으며 찬밥신세가 된 애니송 분야도 서서히 '대중가요'의 범주에 들기 시작했는데, 온미디어 공채 5기 성우 이용신이 <달빛천사>, <캐릭캐릭 체인지> 등지의 주제곡을 불러 '한국의 미즈키 나나'로 등극했고, 유정석이 부른 <쾌걸 근육맨 2세> 주제곡 '질풍가도'도 2000년대 후반 야구장 등지에서 응원곡으로 널리 불리며 재조명됐으며 2007년 SBS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박신양이 <파워레인저 매직포스> 주제곡을 불러 화제가 됐다. 버즈나 동방신기, SS501, 이수영, 이소은, 쥬얼리, 파란 등 대중가수들도 전과 달리 애니송 시장에 활발히 뛰어들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 전까지 간헐적으로 시도해 본 남북한 음악교류도 더욱 활성화됐는데, 1999년 12월에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 이어 2003년에 KBS1 인기프로 <전국 노래자랑>이 '평양 노래자랑'이란 명칭으로 북한 평양에서 최초로 현지 녹화방영됐으며, 2005년에 조용필 콘서트가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려 화제가 됐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수립 후 남북관계가 경색돼 한동안 음악교류가 끊겼다. 반면 2000년에 배우 길정화가 '통일소녀'란 예명으로 <휘파람>을 불러 '미지의 영역'이던 북한 노래에 대한 관심이 한때나마 형성되기도 했다.

이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 테이프CD음반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소리바다프루나, 당나귀로 대표되는 불법 P2P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2000년대 의 타격과 연이은 아이리버, 코원, YEPP, iPodMP3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2000년대 이 되면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 CD로 음악 듣는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난다. 물론 2020년대를 향해가는 지금도 CD 판매고를 차트 산정의 주요 척도로써 인정하고는 있지만, 1990년대의 판매량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몇몇 아이돌 그룹이 기록하는 음반 판매량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 그룹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팬들의 화력지원일 뿐, 실질적으로 CD로 음악을 듣는 팬들은 몇몇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음원 판매량도 음반 판매량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에, 어차피 CD를 샀더라도 음원을 구입하게 되므로 굳이 귀한 CD를 개봉하여 상품성을 낮추느니 음원으로 듣는 게 훨씬 속 편하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음반 제작사에서는 음반을 구매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각종 특전(예를 들어 화보사진 카드나 보너스 트랙 같은)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3.4. 언론

1990년대 내내 '밤의 대통령'이니, '무관의 제왕'으로서 마음껏 위세를 떨치던 언론권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2001년 상반기에 터진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조사 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에서 7년 전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급하며 "언론의 존립이 위협받는 결과가 나왔으며, 세금의 일부를 징수했다."고 하며 권언유착 의혹이 나왔으나, 국세청은 23개 중앙언론사를 상대로 조사인력 400여 명을 투입하며 이중 15개 언론사는 조사기간을 30일간 더 연장해 6월 19일까지 했다. 당초 국세기본법 등에 따라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으나 언론계와 정치/시민사회단체,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증폭되자, 국민의 알 권리와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오해를 배제한 채 공개 관행의 범위 안에서 23개 언론사 및 계열사, 대주주 등에 대한 조사 결과 총 탈루소득액 1조 3,594억원과 탈루법인세 5,506억 원을 공개했으나, 이는 조중동, 대한매일, 한국일보, 국민일보 등 6개만 공개했지 나머지 17개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공개된 6개 언론사들의 추징액이 사주 부분을 포함해 총 3,048억원에 달하는 등 전체 조사대상 언론사의 추징세액 중 60%를 차지함으로써 조사 자체에 대한 찬반 양론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기돼 온 거대언론의 병폐 및 부도덕성이 폭로됐다. 이후 6개 법인과 사주 3명이 검찰에 고발돼 김병관, 방상훈, 조희준이 구속됐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13개 언론사에 대해 조사 후 과징금 242억원을 부과했다. 민언련 등 시민사회단체 측은 언론사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과거사를 씻고 반성을 촉구했지만, 일부 언론재벌들은 '언론 탄압'이라고 비난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후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정부와 적대적 긴장상태를 내내 유지했다. 이들은 참여정부의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일부를 빼곤 대다수 사안에 대해 반대 스탠스를 취했고, 기회를 노려 비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정정보도 및 반론 요청, 언론중재위원회 중재 요청, 나아가 법적 대응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러한 대응은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직설적이고 감정이 앞선 스타일에서 연유했는데, 그는 언론에 대한 타협을 떳떳하게 거부하고 정정보도부터 최대 법적대응까지 요구하는 그런 식이었다. 이러한 참여정부와 보수언론 간의 대립이 오히려 보수언론의 위상만 높여줬다는 비판점도 있는데, 그냥 무시해도 될 것을 사사건건 대응하다 보니까 본질에서 벗어난 지엽적 문제까지 논란이 됐다. 또한 어떤 경우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나은 것도 보수언론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대응논리를 하다 자기 성찰이 부족해진 면도 있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2005년에 이를 '몰입의 위험성'이라 봤다. 아무리 보수 신문들이 찌라시 수준으로 노무현 정부를 헐뜯었다는 건 사실이라 쳐도, 정부 역시 보수언론과 감정적으로 일일이 맞서서 힘을 낭비하지 않는 것도 필요했다.

2000년대 내내 보수언론들은 찌라시 수준이 됐지만, 인터넷 매체들의 등장과 활약, TV 등 방송의 영향력 때문에 영향력은 미미했다. 특히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등 영향력 있는 인터넷 신문들의 활약과 온갖 인터넷 매체의 활동으로 언론의 영역이 더욱 확장됐다. 이들의 활약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 무효화 촛불문화제 등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성과 정치활동'이 사회의 한 부분을 만들어냈다.

뉴스통신 분야에선 2001년에 뉴스공급업체 뉴시스가 3년여 간의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승소를 얻어내 뉴스통신 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해 '연합뉴스 독주'를 깼고, 1990년대 말부터 논의돼 온 '연합뉴스 소유구조 개편'도 2003년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돼 현실화됐고, 2년여 간의 산고를 거쳐 2005년 법 제정 후 '뉴스통신진흥회'가 구성돼 연합뉴스의 새 대주주가 되어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위를 따냈다. 한동안 뉴미디어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언론재벌들도 2006년 헌법재판소의 '신방겸영 금지' 합헌 판결로 방송업계 진출이 수포로 돌아갈 듯했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 '미디어법'이 여야와 언론계에서의 치열한 대립 끝에 통과돼 종합편성채널 탄생의 토대를 구축했다.

3.5. 방송

3.5.1. 경영/정책

2000년에 구 방송법과 종합유선방송법을 통합한 개정 방송법(통합방송법)이 제정되자, 방송위원회와 종합유선방송위원회 2개 심의기구에서 '통합 방송위원회'로 일원화돼 일관된 방송심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울러 문화관광부가 갖던 방송정책 결정권도 회복해 명실상부 방송계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 지상파 영화, 외화, 애니 등 일부 프로그램에 먼저 등급제가 도입됐고, 이후 드라마로 확장됐다가 2007년부터 시사/보도를 제외한 전 프로그램에 등급제가 완전 도입됐다. 아울러 2004년에 화면해설방송을 개시해 시각장애인들도 TV 시청의 수혜를 얻기 시작했다.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공영방송 사장 내리꽂기에 도전이 가해진 것도 이 시기인데, 2001년에 방송문화진흥회가 청와대의 입김을 받지 않고 진보 언론인 김중배를 MBC 사장으로 자체 선임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 집권 후 KBS에선 언론인 서동구가 사장직에 임명됐으나 그가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소속됐다는 이유로 노조가 반발해 파업을 벌여 서 사장을 퇴진시켰다. 이후 KBS 이사회는 언론단체, 노조,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진보 언론인 정연주를 사장에 선임했다.

2008년 상반기 이전까지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에서 <미디어 포커스>를 비롯해 <인물현대사>, <생방송 시사투나잇>,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세계와 나 W>, <돌발영상> 등 성역에 도전하는 진보적인 프로그램들이 보수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편성돼 '관영방송'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듯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하반기부터 또 다시 공영방송사에 낙하산 사장들을 내리꽂아 방송장악을 단행하면서 비참하게 끝나버렸다.

3.5.2. 기술

임창정 - 소주 한 잔 SBS 인기가요 라이브 (2003.06.08)

버즈 - 가시 MBC 생방송 음악캠프 라이브 (2005.05.28)버즈 - 겁쟁이 KBS 뮤직뱅크 라이브 (2005.03.11)[19]

스카이라이프 CF - 전인권 편(2003)

2002년 한국에서 스카이라이프지상파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을 끝내고 본격적인 디지털방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방송방식을 DVB VS ATSC 논쟁때문에 시청자의 HDTV 전환시기를 놓치게 했으며 사람과셈틀을 공중분해되게 만들었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UHD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HDTV의 활성화가 되지 않아(2002년 HDTV 보급률은 2%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TV방송장비 분야에서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날로그 테이프가 취재용으로 간혹 쓰였었는데 2005년경에는 완전히 디지털화되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의 경우도 2004년 전후로 아날로그 오픈릴 테이프에서 디지털 테이프리스 시스템으로 물갈이되었다.

일본에서도 2000년에 BS디지털이라고 위성방성을 이용한 디지털방송이 시험방송되었다. 이때부터 인텔 펜티엄4 시리즈[20]와 nVIDIA Geforce FX또는 ATi Radeon 9500의 보급으로 720P영상[21]컴퓨터로 볼수 있었고 H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6:9모니터와 디지털방식의 TV[22]도 같이 보급이 이루어 졌다.

HD로 인한 와이드 스크린 열풍때문에 16:10모니터도 나왔을 정도이며 부작용도 생겼는데 배우의 얼굴에 잡티까지 나와서 HD방송을 위한 화장법(?)도 생겨났다. 케이블 방송도 2005년에 CJ헬로비전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들어 모든 사업자가 디지털 채널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2006년에 다채널방송(MMS)[23]을 시험방송하면서 위 영상의 화질은 물건너 갔다 카더라. 휴대전화에서도 2005년도에 DMB라는 규격이 개발되어[24] 언제 어디서든지 TV를 볼수있다.

3.5.3. 드라마

2000년대의 한류열풍을 이끈 겨울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쾌걸춘향, 소문난 칠공주, 거침없이 하이킥, 미우나 고우나, 베토벤 바이러스, 아이리스 등이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막돼먹은 영애씨를 제외한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같은 경우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였다. 아직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30-50%에 달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드라마들의 특징으로는 첫째, 명대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 "애기야(파리의 연인)"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특히 초중반의 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이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환생, 기억상실, 죽음, 재벌 등 주인공들은 평범하기보다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다.[25]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 전개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며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감 및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OST가 삽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명곡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천국의 계단보고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눈의 꽃, 쾌걸 춘향응급실[26],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 등이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의 명작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명대사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OST까지 명곡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에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는 2000년대와 같은 무거운 정통멜로보다는 잔잔한 일상을 다루거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시트콤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00년대 초중반에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순풍 산부인과의 뒤를 이었고 논스톱 시리즈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좋은 인기를 얻었고, 00년대 중후반은 하이킥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논스톱은 당시 대학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10대에게 쓰잘데기 없는(...) 대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다들 대학가면 조인성, 현빈, 한예슬 같은 사람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후 레인보우 로망스에도 청춘 시트콤에 대한 영향을 주었으나, 이는 흥하지 못했고, 그 이후 나온 거침없이 하이킥은 말 그대로 초대박. 가족 시트콤이지만 러브라인도 갖춰져 있고, 내용들도 한편한편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레전드 시트콤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작보다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매우 흥했다.결말이 이상해서 그렇지

3.5.4. 예능

2000년대 초반에는 짝짓기 예능이 단연 흥했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연애편지, X맨을 찾아라 등등 커플이 되어 게임을 하는 스튜디오 예능들이 평정했다. 이로 인해서 생겨난 폐해들도 많은데, 당시는 팬덤 문화가 지금처럼 성숙하지 않아서, 짝짓기 예능에 우리 오빠(...)와 커플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던 일부 빠순이들이 상대 여성을 테러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강은비. 당시 X맨에서 시아준수믹키유천의 호감을 받았단 이유로 미니홈피는 고사하고 인터넷에 강은비의 루머를 퍼뜨리며 온갖 테러를 단행했다. 심지어 본인들의 오빠들이 먼저 좋다고 한 건데도 먼저 꼬리를 쳤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27] 이로 인해 강은비는 연예계에 발도 디디지 못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려서 자살생각까지 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당시의 무개념 빠순이들의 만행을 짐작할 수 있다. 짝짓기 예능뿐만 아니라 쟁반노래방, 야심만만 등 토크쇼 예능들도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는 스튜디오 예능이 대세였던지라, 야외에서 하는 예능들은 정말 손에 꼽았을 정도인데, 이 예능의 판도를 바꾼 것이 무한도전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취지로 스튜디오보다는 직접 야외로 나가 몸을 쓰는 모습들로 많은 사랑을 받자 이후 예능들도 우후죽순처럼 야외 예능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1박 2일 이라는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가 생겨나면서, 스튜디오 예능에서보다 친근한 모습의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60대 이상의 노년층에게까지 어필했다. 당시 무한도전이 10~30대의 젊은 세대의 지지층이 두터웠다면, 1박 2일은 연령을 불문하고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재석vs강호동의 국민 MC 대립구도가 팽팽했는데 타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들을 각자가 진행하면서 라이벌 기믹이 생겼고, 실제로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무한도전 빠들과 1박 2일의 빠들의 의미없는 경쟁이 판을 쳤다.[28] 두 개의 예능프로그램이 흥하면서, 개나소나 리얼버라이어티를 들고 나왔지만 대부분 도태되었다. 그 덕분에 스튜디오 예능은 손에 꼽다시피하고, 토크쇼 형식의 예능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1999년부터 KBS2에서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성공으로 공개 코미디 열풍이 불자 MBC도 2000년에 <코미디하우스>, SBS도 2003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각각 방영해 맞불을 놨다. <개그콘서트>는 '사바나의 아침' 성공 이후 잠깐 MBC에게 밀렸으나, 2001년에 '박성호의 뮤직토크', '수다맨', '꽃봉오리 예술단' 등 히트작들을 양산하여 다시 반등했다. 2002년 '갈갈이 삼형제'의 성공을 계기로 박준형, 정종철, 이승환 등 '갈갈이 패밀리' 사단을 중심으로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하위권에 머무르던 SBS도 2003년에 <웃찾사>를 편성하면서 박성호, 김대희, 심현섭 등 초기 개콘 멤버들을 끌어들여 기틀을 다졌다가, 2004년 들어 김기욱, 정만호, 박상철, 김필수, 김형인 등 '박승대 사단'과 컬투를 중심으로 '그런거야', '그때그때 달라요', '행님아' 등 히트작들을 내놓아 개콘에 도전장을 던졌다.

3.6. 패션

국내에서 '일본 스타일'이 대놓고 유행했던 유일한 시절이기도 하다. [29] 니뽄삘이라는 식의 드립도 흥했다. 심지어 국내 연예인들도 일본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참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구제 패션, 일본 액세사리, 일본 화장품등이 옷가게와 온라인에서 특수를 누렸던 시기.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한류의 부흥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 트렌드를 선도하게 됨에 따라 일본식 패션은 이제 오히려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2000년대는 남녀 불문하고 샤기컷울프컷이 유행이었다. 당시 동방신기, 이준기, 민경훈 등 젊은 스타들의 머리들도 전부 이 머리였다. 소위 말하는 여자 일진들은 앞머리를 눈썹이 보일 정도로 짧게 자른 후, 샤기컷을 한 다음 볼륨을 한껏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역시 유행이 바뀐 후대 기준으로는 일본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패션 스타일은 얼짱출신인 반윤희가 유행시킨 스포츠 브랜드 티셔츠+카고바지 스타일링이 유행이었다. 스키니진은 2009년 ~ 2010년 즈음 되어서야 유행이 되었고, 그 전에는 교복바지를 줄여입는 경우를 제외하면[30] 거의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다녔다. 가수들의 패션들도 유행이었는데, 2003년 ~ 2009년 초반에는 힙합 패션, 2009년 봄 ~ 2010년 사이 이후 부터 2016년까지 소녀시대 gee 열풍으로 인한 컬러 스키니진 패션이 유행이었다.[31] 2005년 이후 EPL 등 해외축구의 대중화로 학교 운동장 등지에서 맨유 등 축구팀 레플리카나 바람막이를 입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0년대 초반의 화장법은 1990년대의 과감한 메이크업에 대한 반동으로 진한 화장을 촌스럽게 여기고 자연스럽고 옅은 화장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파우더처럼 뽀얀 피부 표현과 색조가 강하지 않은 립글로스를 사용한 '투명 메이크업'이 대세가 된다. [32] 그러다 후반부인 2009년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이 유행시킨 진한 스모키 화장이 열풍이었고 이것이 2010년대의 스타일로 이어진다.

2000년대부터 로드샵이 대거 생겨나면서 화장품 가격대가 저렴해졌고 자연히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대도 낮아지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층에서 소위 '얼짱 메이크업'이라 불리는 화장법[33]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재밌게도 이 얼짱이란 용어는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한류를 타고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서양권에서도 ULZZANG라며 한국식 메이크업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3.7. 영화

2000년에는 전년도 <쉬리>의 성공으로 인한 비약적 발전을 발판삼아 질과 양 모두 안정기로 돌입했다. 동년도 국산영화 제작편수는 57편, 시장점유율은 32%였다. 비록 시장점유율은 전년도에 비해 떨어졌으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굉장했다. 이 해를 대표하는 작품은 9월 9일 개봉된 <공동경비구역 JSA>인데, 한국 영화 역사상 최단기간인 개봉 보름 만에 서울관객 100만명, 10월 26일 200만명을 각각 넘었고, 2001년 1월 4일에는 244만 8천명을 찍어 <쉬리>의 기록을 깼다. 냉전시대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난 <쉬리>와는 달리 <공동경비구역 JSA>는 대중적 재미와 남북 화해를 동시에 다룸으로써 의미가 더 컸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영화적 요소 외에 사회적 요인도 컸는데,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서울에선 40개 이상의 개봉관을 지닐 수 있었으며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진 것도 이에 한몫했다.

위와 같은 약진으로 금융자본의 영화투자도 더욱 활발해졌고, 7월 22일에 북한 SF영화 <불가사리>가 분단 55년만에 합법적으로 개봉됐다. 비록 서울관객 283명에 그쳤으나 처음으로 정식 상영한 북한 영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1년 한 해 동안 국산 영화가 시장점유율 46.1%, 1천만 관객, 해외수출고 1천만불을 각각 찍어 전성기에 돌입했다. 상반기부터 <친구>가 전국 820만명이란 대기록을 세운 후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등이 흥행 행진을 벌였다. 다만 흥행이 이어간 몇몇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고양이를 부탁해> 등 저예산 영화들이 개봉 1주일만에 간판을 내리는 등 영화계의 '빈익빈 부익부'가 더 부각됐다. 그 증거로 국산 영화를 본 서울 관객 약 1,600만명 중에 53.7%가 상위 5위권 안에 영화를 본 걸로 나타났다.

동년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바로 '조폭'인데, <친구>를 비롯해 <파이란>,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등 흥행 영화 상당수가 조폭을 소재로 했다. 이는 경제침체 및 정치 혼란 등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면도 있지만, 진부한 기획과 인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업주의 등 한국 영화계의 잘못된 현실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했다. 반면 해외진출도 활발해 베니스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송일곤 감독의 <꽃섬>과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이 각각 초청됐고, 송일곤 감독은 감독상을 받았다. <나비>의 주인공 김호정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도 영국 리즈 영화제에서 국제신인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쉬리> 외에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돼 흥행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한국 영화의 성공신화는 계속됐는데, 특히 해외 영화제에서 크게 드러났다. 5월 말에 열린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을 만든 임권택 감독이, 9월 초엔 <오아시스>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천만영화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살인의 추억올드보이가 해외에서도 비평적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모두 해냈다. 내수 시장점유율도 45.2%를 기록해 여전히 순항했으며, <가문의 영광>을 비롯해 <집으로...>, <광복절 특사> 등이 각각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집으로...>는 개봉 초기에 흥행에서 망할 것이 예상됐으나,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와 따뜻한 시선으로 전국 413명을 동원했다. 같은 시기 관객 1억명 시대가 되면서 극장시장의 경쟁력은 치열해졌고, 21세기 들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해 개정 영화진흥법 시행에 따라 '제한상영가 제도'가 도입돼 70대 노인들의 사랑과 성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논란이 됐다. 결국 이 영화는 3차례에 걸친 심의 끝에 '18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개봉됐다.

2003년에는 <실미도>의 첫 천만관객 돌파로 내수 점유율이 전국 51.6%, 서울 49.97%를 각각 기록해 처음으로 전국에서 50%대를 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까지 내수점유율 50% 이상을 각각 기록했으며 2004년에는 최고 66.8%를 찍기도 했으나, 2008년에는 스크린쿼터 축소의 여파 등으로 40%대로 회귀했다. 2008년 이전까지 한국 영화가 반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인 1차 요인은 영상세대의 등장 때문인데, 2000년대 내내 천만관객 이상 영화는 <실미도>를 비롯해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 <괴물(이하 2006)> 등 4편이며 500만명대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이하 2000)>, <가문의 영광(2002)>, <살인의 추억(2003)>, <웰컴 투 동막골, <가문의 위기 - 가문의 영광 2(이하 2005)>, <투사부일체>, <타짜(이하 2006)>, <화려한 휴가>, <디워(이하 2007)>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반면 손익분기점인 2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손에 꼽는다.

두 번째 요인은 토종 영화업계가 치밀하게 구축해 놓은 영화제작/공급 시스템인데, 이는 감독, 배우, 스태프, 시나리오 작가 등 영화의 질을 담보할 만한 풍부한 인적 자원 덕에 시장점유율 확충이 가능했다. 영화제작에서 예술/기술적 외에 산업적 측면에서 뒷받침할 자본의 참여가 있었다. 제작비가 1백억원을 상회하는 영화가 즐비한 상황에서 CJ나 오리온 같은 대기업의 직접참여가 없었으면 대형 영화는 꿈도 못 꾼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배급망을 갖추지 못하면 실패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산업으로 보고 접근한 영화자본은 제작 외에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 참여, 배급망 확충 등에 기여하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대등히 겨룰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스크린쿼터 같은 보호장치 덕인데, 이 제도가 성공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미국의 거대 영화자본들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해줬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선 1990년대 이래 스크린쿼터 제도 자체를 좋지 않게 여겼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게 노무현 정부 출범 뒤부터인데, 2003년 초부터 스크린쿼터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관료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퍼졌다. 미국도 당연히 WTO 서비스분야 양자협상이나 한미 재계회의 등지에서 압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이에 영화인들과 시민사회단체가 7월 '영화인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전면투쟁에 나서자 정부도 11월에 한발짝 양보했다. 문화관광부도 대안책으로 점유율과 연동해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결정하자며 불씨를 살렸으나 이마저도 영화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정부는 2006년 1월 26일부터 한미 FTA를 앞두고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인다고 발표하자, 영화인들이 격렬히 반대운동을 전개했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정부도 7월부터 스크린쿼터 축소를 시행했다. 굳이 스크린쿼터 축소 때문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0%대로 하락했으며, 여러 측면에서 한국 영화의 위기 징후들이 나타났다.

그 외에도 한국 영화계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론 국제적 위상 상승이다. 이 시기 동안 한국 영화계는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많은 수상작들을 탄생시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외국인들도 한국 영화에 관심을 보여 세계 각국에서 한국 영화들을 활발히 수입하여 한국은 영화 수출국으로 점차 변모해나갔다. 이에 따라 한국 영화계도 흥행 외에 예술적 측면에도 집중하며 온갖 장르의 영화에도 관심을 지니는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들의 성공적인 개최도 이에 한몫했다.

2003년에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을,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산 세바스타인 영화제 및 토리노 영화제, 도쿄영화제 등을, <바람난 가족>도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문소리) 및 촬영상, 플랑드르 국제영화제 감독상, 베르겐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각각 석권했으며, 전년도 작품 <집으로...>도 블라디보스토크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004년에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베를린영화제 및 베니스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아 '3대 영화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심지어 성백엽 감독의 극장애니 <오세암>도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한국 영화들은 영화 319편이 해외 영화제에 824회나 출품돼 66개가 수상작에 올랐다. 같은 시기 한류 열풍이 불면서 일본에서 배용준, 최지우, 이병헌 등이 스타로 등극했고,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 작품 <밀양>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이는 1987년 <씨받이>의 주연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 20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다만 위와 같은 한국 영화의 성공 뒤에는 그림자가 있는데, 초대형 성공작의 상영관 독점과 저예산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의 개봉기회 박탈, 안정적인 영화 제작/배급 시스템의 문제,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부작용, 유명 스타들의 과도한 개런티와 제작비 상승, 묻지마식 투자와 제작 및 극심한 경쟁에 따른 수익률 저하, 영화 시나리오의 원천 콘텐츠 부족, 극장 수입과 DVD 판매 등에 의존하는 수익구조 등 적지 않은 문제가 산재해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한 영화배우 송강호, 최민식 등은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르며 인기를 누렸다. 강제규, 곽경택 등의 1세대 감독에서 봉준호, 나홍진, 박찬욱 등 2세대 감독들로의 세대교체도 진행되는등 인재풀도 상당했다.

80~90년대 최고 부흥기를 누렸던 홍콩 영화가 빠르게 몰락했던 이유는 영웅본색이후의 양산형들로 인해 영화들 자체가 식상해진데다 1997년 홍콩 반환 때문에 홍콩 영화계 전체가 혼란스러워진 탓인데, 반면 90년대 말까지도 질적으로 암담했던[34] 한국 영화계는 쉬리 이후부터 이 시기에 대폭 성장하여 스릴러, 액션, 로맨스, 사극 등 장르의 다양성을 겸비하여 현재까지도 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 외에도 2004년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서비스를 시작해 종전에 극장별로 집계했던 관람객 집계시스템을 일률적으로 통일시켜 한국 영화산업의 투명성을 더 높이도록 했고, 같은 시기에 인터넷의 발달로 P2P나 웹하드를 통한 영화의 합법/불법공유가 성행하기 시작했으며 아마추어 자막러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에는 외국영화 최초로 아바타가 천만관객을 동원기도 했다.

3.8. 만화, 애니메이션

3.8.1. 대한민국

한국 만화계에선 출판만화 시장이 쇠퇴한 대신 실험 단계였던 웹툰이 발달했다. 2000년에 라이코스코리아가 최초로 무료 온라인 만화방을 개설한 후 '네이버 웹툰', '다음 만화속세상', '야후! 카툰' 등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대원씨아이 등 기존 만화출판사들도 만화잡지를 줄이는 대신 '캔디33' 같은 유료 만화사이트를 열고 네이트 툰도시 등 포털사이트나 휴대폰 무선인터넷 등지에 유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기도 했다. 학습만화계에선 <살아남기 시리즈>를 비롯해 <무서운 게 딱! 좋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Why? 시리즈>, <마법천자문>, <코믹 메이플스토리> 등 불후의 명작들이 쏟아져나왔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2001년에 동우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유니미니펫>이 SBS를 통해 방영되면서 같은 방송사의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을 추월해 KBS2 <파워디지몬>에 이은 시청률 2위를 차지해 저력을 보였고, 이후 아이코닉스 등 각 애니 제작사들도 용기를 내어 <올림포스 가디언>, <뽀롱뽀롱 뽀로로>, <선물공룡 디보>, <냉장고 나라 코코몽> 등을 제작해 중흥기를 맞이했으며, 2000년 <알렉스의 모험>을 시초로 해외 합작애니 제작 편수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특히 완구업체 손오공은 <탑블레이드> 한일합작을 계기로 애니메이션 제작 노하우를 쌓아갔다.

이 당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이 투니버스를 통해 활발하게 더빙 방영이 되기도 했으며, 무디 신동식을 필두로 신길주, 최방옥, 김이경 등 걸출한 더빙 PD들이 활약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애니 제작사 대원C&A홀딩스도 2001년 자회사 대원디지털방송을 세워 2002년 '애니원', 2005년 '챔프'를 각각 개국해 투니버스의 독주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특히 대원은 '일본애니 자막방송'을 타 채널보다 먼저 시작했다. 2006년에 일본 애니채널 최초로 '애니맥스'가 한국에 진출했다.

거기에 니켈로디언이나 카툰네트워크, 디즈니 채널 등 영미권 애니채널들이 블록 등의 형태로 한국시장에 진출했고, 어린이 교육채널 재능TV와 대교어린이TV도 애니 편성을 늘려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클럽박스나 프루나 등 인터넷 웹하드 및 P2P의 활성화로 합법/불법공유가 늘기 시작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국들은 2005년 애니메이션 쿼터제 시행을 계기로 애니메이션 시간대를 줄이고, 해외 애니 대신 국산 애니로 채웠다.

3.8.2. 일본

일본 만화계에서는 1990년대의 전성기를 이어받아 <이누야샤>, <강철의 연금술사>, <하야테처럼!>, <레이브>, <금색의 갓슈> 등의 명작들이 나왔다. 특히 소년만화계에서 주간 소년점프가 <원피스>, <테니스의 왕자>, <나루토> 등에 이어 <블랙캣>, <블리치>, <아이실드 21>, <데스노트>, <은혼>, <디그레이맨>,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켰으며, '원나블' 라인업도 이 때 편성되었다. 당시 잡지만화계에서 비주류였던 4컷 만화계도 <아즈망가 대왕>과 <딸기 마시마로> 등의 애니화 성공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계에선 2006년에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오란고교 호스트부, 데스노트,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등의 인기작이 연달아 나오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라고 불렸으며, 건담 시리즈에서는 기동전사 건담 SEED 시리즈, 기동전사 건담 00의 연달은 성공으로 비우주세기가 부흥하게 된다. 2000년대 후반부에는 러키☆스타, 케이온! 등의 흥행으로 모에에 치중한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며 이런 경향은 2010년대에 더 커지게 된다. 반면 <아따맘마>나 <개구리 중사 케로로>, <프리큐어 시리즈> 등 대중적인 애니메이션들도 여전히 나왔다.[35] 극장 애니 분야에선 지브리 독주 속에도 신카이 마코토호소다 마모루 같은 신예 애니제작자들이 나왔다.

3.8.3. 영미권

영미권 애니메이션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등 후발 주자들과 지브리 등 일본 애니의 약진으로 쇠퇴를 거듭해 2004년 <카우 삼총사>부터 2009년 <공주와 개구리> 이전까지 2D 애니메이션 제작이 중단됐고, 대신 픽사 합작 애니가 상승세를 더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다. TV 애니계에선 니켈로디언이 <네모바지 스폰지밥>,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도라도라 영어나라>, <천재소년 지미 뉴트론>, <대니 팬텀>, <아바타 아앙의 전설> 등을 히트쳤고, 카툰네트워크도 <벤10> 등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3.9. 게임

2004년 E3 당시 닌텐도 DS 발표영상

콘솔게임계에서 닌텐도의 경우 이 시대 부활했고 이시대에 출시된 신작들은 전작들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 왔던 시대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시리즈엑스박스 / 엑스박스 360이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니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경우 초반부의 전성기중후반의 암흑기를 동시에 겪었던 시대다.

한국 PC게임계는 단연 '온라인 게임의 황금기이자 독무대'라 할 수 있는데, 1999년 ADSL 보급으로 인터넷이 대중화됨에 따라 온라인 게임이 기존 패키지 게임과 ARS 게임 시장을 압살했으며, 특히 게임업체 중 넥슨-한게임(NHN)-넷마블(CJ인터넷) 3파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 네오위즈, 엠게임, 윈디소프트, 구름인터랙티브, 이플레이온, 라온엔터테인먼트, 나우콤, KTH(파란), SK커뮤니케이션즈, 조이온, 그라비티 등 국내외 CD 게임개발사나 포털업체 등 후발주자들도 온라인 게임시장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였다.

콘솔 게임계는 2000년 일본문화 3차 개방 후 일본산 게임 수입이 허용되어 2002년 들어 SCEK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플레이스테이션2 등 해외 게임기들을 정발하기도 했다. 반면 닌텐도는 2002년 대원씨아이를 통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DS 등을 수입했으나, 한글화 미비에 경쟁사들의 텃세,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의 인기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6년에 게임기 수입권 등을 신설법인 한국닌텐도에 넘겼다.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방송광고 사전심의 제도: 2008년 위헌 판정을 받았다.
  • 지상파 애니메이션 방송: 2000년 ~ 2004년까지는 황금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 주었으나 2005년 애니메이션 쿼터제 실시로 투니버스 등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으로 히트작이 넘어가게 된다.
  • 교련
  • 김해국제공항제주국제공항을 제외한 지방공항들 : 경부고속철도 개통 및 고속도로망 확충에 따른 국내선 항공수요 감소 및 지방권에서 인천국제공항 접근성 개선으로 직격탄을 맞는다.
  • 단파방송, 단파수신기
  • 블루스크린 : Windows 95Windows 98에 비해 안정적인 NT 커널 기반 Windows XP의 도입 및 컴퓨터 성능의 향상에 따라 블루스크린 및 시스템이 다운되는 일이 극히 줄어들게 된다.
  • 비둘기호: 이미 1990년대부터 장거리 편성들이 자취를 감추다가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선선 구간의 비둘기호가 운행을 종료한다.
  • 분당선 오리행 열차: 2009년부로 오리행이 죽전행으로 바뀌었다.
  • 새마을호: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등급의 열차라는 상징성이 강했으나, KTX의 개통으로 최고 열차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노후화 때문에 점점 편수가 줄어들고, 2014년 이후 ITX-새마을로 거의 대체되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30일에 퇴역하였다.
  • 세리에 A: 2000년대 들어 각 클럽들의 재정난, 파산,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쇠퇴했다.
  • 시내버스의 승차권 : 1990년대 거스름돈 지급기의 도입으로 이미 대도시에서는 승차권이 도태되기 시작했으나 이 시대에 들어 교통카드 사용의 보편화와 시계외요금 축소폐지에 따라 전국적으로 시내버스 승차권이 폐지된다.
  • 오락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PC방의 부흥으로 인해 시망크리를 탔고, 결정적으로 오락기를 가장한 도박기계가 나오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 카세트 테이프: CD의 등장으로 쇠퇴하였다.
  • 패키지 게임: 한국중국에서[40] 온라인 게임불법 공유, 그리고 무분별한 게임잡지 번들 공급으로 인해 몰락했고 스팀이 나오면서...
  •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 2001년 알루미늄 방패 도입 이후 의경 및 경비중대 중심으로 쓰이다가 2006년 '평화방패' 보급으로 폐지됨. 다만 교도소 및 구치소에서 여전히 사용중이다.
  • 프로씨름(민속씨름): 2005년 이후 사라졌다.
  • 플로피 디스크
  • 영상물 등급보류 제도: 2002년 영화진흥법 개정으로 폐지된 후 2008년에 위헌 판정을 받았다.
  •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의 탈퇴로 해체
  • 전통상례, 장의사: 장례식장의 지방 침투, 상조업체의 확산 등으로 점차 사라졌다.
  • 통일호: 2004년 KTX의 개통으로 완전히 폐지. 이제는 사진이나 박물관에 가서 봐야 한다.
  • FRP 진압방패: 1997년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 도입 이후 일선부대에서 사용률이 서서히 줄어 경찰학교로 보내지거나 단셋 중심으로 쓰다가, 2006년 단셋 해체로 사라졌다.
  • MBC 대학가요제: 2000년대 들어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3년 폐지되었으나 2019년에 부활하였다.
  • MBC 창작동요제: 2000년대에 어린이 방송계 진출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시청률 하락 등의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1년에 폐지되었다. 위의 MBC 대학가요제는 2019년에 부활하였는데 MBC 창작동요제는 부활 논의나 계획조차 없다.
  • 생방송 음악캠프: 2005년 7월 말 카우치 노출사고 때문에 폐지 크리.
  •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로 급격히 쇠퇴하였다.
  • VHS: DVD의 보급 및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2009냔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 윈도우 95, 윈도우 98, 윈도우 ME: 2006년에 함께 지원이 종료되었다.
  • 콩코드: 2003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운항 종료.
  • 축산업협동조합, 삼림협동조합 : 2000년 7월 농협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도 일부는 축협이라는 단위를 쓰나 농협 마크로 통일되었다.
  •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 : 2000년에 센트럴 시티로 전환되었다.
  •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했던 영동선 고속버스 노선 : 2000년 7월에 경부선터미널로 이전하였다.
  • 진회색 기동복: 경찰청에선 2000년, 소방본부에선 2001년, 법무부 교정국에선 2006년에 각각 사라짐.
  • 조흥은행 / 서울은행 / 주택은행 : 2000년대 들어서 타 은행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되었고(2006년)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었고(2002년)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 합병되었다(2002년). 주택은행의 주택예금과 복권사업은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41]
  • 초기 구형전동차: 1974년부터 1985년까지 제작된 전동차들이 대다수인데 밑에 초저항과 초퍼제어 초기형이 해당한다.
    • 초저항 : 철도박물관에 정태보존중인 대한민국 철도청의 1x01편성이 1999년에 퇴역하는 것을 시작으로 41개 편성이 모두 퇴역했으며 서울지하철공사(現서울교통공사)의 초저항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로 대체되면서 16개 편성이 모두 퇴역했고 사라졌다.
    • 초퍼제어 :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여전히 열차의 주류로 있었으나, 2007년부터는 차츰 퇴역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2008~2009년까지는 제법 남아있었으나 점차 퇴역을 한다. 2009년 말 쯤 되면 초창기 초퍼제어들은 모두 거의 사라진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여전히 후반기 초퍼제어들은 많이 남았다. 2호선 초기형 멜코초퍼 25개 편성은 2007년 9월부터 2008년 9월까지 대량으로 폐차되었고 2호선 초기 GEC초퍼 17개 편성(광폭형 GEC 초퍼 2개 편성 포함)은 2008년 6월부터 2010년 4월까지 모두 폐차되었으며 3호선 초기형 GEC초퍼 또한 2009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모두 폐차되었다. 남은 부수객차들은 개조되었다.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7월 개편 이전) : 2004년 7월 1일 대중교통 개편화에 따라 입석, 좌석버스가 폐지되고 간선, 지선, 광역, 순환버스로 전환되었다.
  • 서울 - 경기, 서울 - 인천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입석버스 기준) : 2004년 7월 1일부로 전면폐지되었다.
  • 어린이 드라마 : 2000년대 중반까지는 나름 인기를 누렸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한다.
  • 가연재 전동차 :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내장재 개편으로 인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2005년 이후에도 1985년 이전 제작된 전동차에는 가연재 칸이 남아있었으나, 전동차가 신형으로 대거 교체되면서 200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함. 2호선은 2009년 2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했고 3호선은 200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함. 세부적으로 보면 2호선 멜코초퍼 가연재는 2008년 9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했으며 2호선 GEC초퍼 가연재는 2009년 2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했고 3호선 GEC초퍼 가연재는 200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함. 폐차 전에 3호선은 14개 편성이 가연재를 포함했지만, 2호선은 40개 편성이 가연재를 보유하면서 절반이상이 가연재를 보유했음.[42]
  • 준법서약제도: 2003년 폐지됨.
  • 노동쟁의 제3자 개입금지 제도: 1997년 '노동쟁의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정 후에도 제40조(노동관계의 지원) 2항에 '당년도 행정관청 신고자'만 개입토록 했다가 2006년 폐지됐다.
  • 보호감호: 2005년 사회보호법 폐지로 사라졌다.
  • 구 서울역사: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지어져서 2003년까지 쓰였다가 2004년 1월에 서울역 민자역사가 신축되면서 기차역의 역할이 중지되었다. (1925년 9월~ 2003년 12월 31일까지 운영)
  • 고소음 콤프렛샤(피스톤식 공기압축기): 1,2,3호선의 초퍼제어, 저항제어에 쓰였지만[43] 1,2호선은 고소음 콤프렛샤로 인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여러 불편으로 인해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순차적으로 저소음 콤프렛샤(스크류식 공기압축기)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2호선 초창기 전동차나 3호선은 폐차 직전까지 쓰였다.

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대한민국

6.1.1.1. 정/관계
6.1.1.2. 재계
  • 강덕수 STX그룹 회장
  • 강병중 넥센그룹 회장
  •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 구본무 LG그룹 회장
  • 구자홍 LS그룹 회장
  •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
  • 김영수 신창건설 회장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
  •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
  •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두산을 소비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 손경식-이재현 CJ그룹 회장
  • 송자 대교 회장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 신영환 신성건설 회장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이구택 포스코 회장
  •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 이용경 KT 사장
  •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 이원보 계룡건설 회장
  •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
  • 이철우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대표이사
  •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
  •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
  • 임병석 C&그룹 회장
  •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 정몽윤 현대해상그룹 회장
  • 정몽진 KCC그룹 회장
  •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주수도 JU그룹 회장
  • 천호균 쌈지 대표이사
  • 최태원 SK그룹 회장
  • 허영인 SPC그룹 회장
  •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
  •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창수 GS그룹 회장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6.1.1.3. 사회/문화
  • 스타크래프트: 2000년대의 상징 그 자체이며 이 게임 덕분에 e스포츠프로게이머가 생겨났으며 게임 자체는 1998년 3월 31일에 나왔으나,[44] 2000년대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 버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전성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넘사벽 인기로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그의 노래들은 아직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손꼽힌다.
  • 리니지 - 리니지 2: 리니지는 1998년에 나와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2003년 10월에 정식 상용화된 속편인 리니지 2로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 시장을 호령했다.
  • 4LEAF
  • 메이플스토리: 2003년부터 정식 서비스된 이후 1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간 검색어 순위 10위 이내에 자주 등재될 정도로 대표적인 국산 2D MMORPG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 바람의 나라
  • 노스페이스: 2000년대 중반부터 2014년까지 전국적으로 제2의 교복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 뇌구조
  • 네이트온: 현재는 사용자가 거의 없다.
  • 단셋: 2000~2006년까지 존속했던 전의경 정예부대. 보통 서울지방경찰청 1001~3 중대를 지칭한다.
  • 도서대여점 & 비디오 대여점
  • 버디버디: 2000년 1월에 처음 서비스된 이래로 2009년까지 훗날 다른 경쟁사 메신저의 영향력이 커지기 직전까지는 한때 독보적인 인스턴트 메신저였다.
  • 반미
  • 소몰이창법: 2003년 ~ 2008년
  • 세이클럽
  • 싸이월드
  • 아이러브스쿨
  • 야후 - 야후꾸러기: 당시에는 네이버의 쥬니어네이버와 경쟁을 치렀으나, 201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야후코리아가 폐쇄되었다.
  • 양판소
  • 엽기
  • 엽기송
  • 엽기토끼: 2000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마시마로의 숲을 통해 알려진 이후로 본명보단 엽기토끼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 외계어
  • 웰빙: 참여정부 시기(2003년 ~ 2008년)
  • 인터넷 소설
  • Windows 98 SE: 1999년 10월에 시작된 국민PC의 보급으로 2000년대 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OS.
  • Windows 2000: 기업용 및 서버용에 많이 쓰였던 OS. 반 년 뒤에 나온 Windows Me의 혹평으로 인해 가정용으로도 사용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 Windows XP: 2010년대 초반까지 사용
  •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 조삼모사: 만화가 고병규가 2006년에 만든 두 컷 만화로 수많은 패러디가 나왔다.
  • 조폭 코미디
  • 졸라맨: 2000년 엽기토끼와 함께 어도비 플래시로 제작된 웹 애니메이션 중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
  • 태권브이 활동복: 물론 얼마 안 가 떡볶이로 다시 교체되기는 했다.
  • 판타지 개그
  • 패밀리 레스토랑: 경양식집의 후계자로 보다 다양한 메뉴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해 쇠퇴했다.
  • 포트리스 2 블루 아케이드
  • 포트리스3 패왕전
  • 풀빵닷컴: 디시인사이드와 웃긴대학에 이어 2000년대 중반 국내 3대 유머사이트로 군림했다.
  • 플래시 사이트
  • 피처폰: 피처폰의 일종인 흑백 혹은 안테나 폴더형 휴대폰이 2000년 ~ 2005년을 휩쓸었다면, 또 다른 종류인 가로본능과 얇은 슬라이드, 폴더형은 2006년 ~ 2008년에 인기를 끌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디자인이 예쁜 폴더폰과 터치폰의 유행,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과도기를 거치고 난 이후인 2012년 이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현재 모습이되자 사용자는 많이 줄었지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한 학생들이 임시 기기로 사용하는 모습이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모습은 간간히 볼 수 있다.[45]
  • 원더걸스텔미 열풍
  • 투니버스(2000년대): 투니버스에서 방영해준 소위 추억의 애니들은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합성-필수요소 갤러리(현 합성 갤러리): 2000년대 중반까지 보면 존재감 없는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이나, 2008년 빠삐놈 발표 이후 합성물들이 대거 생산됐다. 그 위상을 발휘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의 유행어 몇몇이 합성요소 속 인물의 대사인 것이다.
  • 햇볕정책
  • 허무개그
  • 허무송
  • 힐리스: 2003년부터 반짝 인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지상파 DMB: 2005년 12월 1일 개통 이후로 전철 탑승객들이 대부분 지상파 DMB를 감상하는 진풍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중.
  • PMP: 200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직전 2012년까지 동영상 감상용 플레이어로 많이 사용된 휴대용 전자 기기.
  • 닌텐도 DS: 현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기가 식었지만 2006년 7월 한국닌텐도의 공식 출범 이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가 되었다.[46]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닌텐도 DS만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2007년 4월 가격 인하 발표 덕분에 닌텐도 DS와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들어 한때 고사양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도 했었다.[47]
  • 플레이스테이션 2: 일반 가정용뿐만 아니라 업소용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게임기이자 거치형 콘솔 게임기로써는 마지막 리즈시절이었다.
  • WAP: 물론 비싼 요금 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았다.[48] 하지만 중, 후반부터 범국민 데이터 요금제라던가 무게타라던가 프리존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는 쓸만해졌다.
  • Fimm 240 무제한 프로모션/june(Data) 무제한 프로모션: 그 당시 스마트폰사용자들에겐 상징과도 같은 요금제였다.
  • KTF: 원래 1997년에 창립된 한국통신프리텔로 출발했던게 2001년 5월부터 사명이 변경되어 2009년 6월 1일 KT에 흡수되기 직전까지 사용되었다.
6.1.1.4. 스포츠
6.1.1.5. e스포츠
  • 선수
    • 신주영
    • 이기석
    • 국기봉
    • 최연성
    • 임요환
    • 이윤열
    • 마재윤
    • 박성준
    • 신정민
    • 홍진호
    • 박정석
    • 변은종
    • 이병민
    • 변길섭
    • 박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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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수
    • 박명수
    • 신희승
    • 강도경
    • 장진남
    • 기욤 페트리
    • 베트트랑
  • 지도자
    • 주훈
    • 정수영
    • 조규남
    • 이재균
    • 김민기(당시 김은동)
    • 이유찬(당시 이명근)
    • 송호창
    • 조정웅
    • 김가을
    • 하태기
    • 이지호
6.1.1.6. 방송 프로그램
  • 시사교양
    • 생방송 세상의 아침
    • VJ특공대
    • 무한지대 큐
    • 찾아라! 맛있는 TV
    • 생방송 심야토론: 정관용 진행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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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세계 공통

6.1.2.1. 이슈/문화
6.1.2.2. 미디어
  • 드라마
    • CSI 시리즈
    • 로스트
    • 닥터후: 9~10대 닥터 시기.
    • 고쿠센
    • 노다메 칸타빌레
  • 예능: 해당 프로들은 한국에서 케이블 채널 및 인터넷의 활성화,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 Man vs. Wild: 베어 그릴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다.
    • 아메리칸 아이돌
    • WWE 스맥다운
    • WWE 히트
    • WWE 벨로시티
    • WWE RAW
    • 뮤직스테이션
    • 기묘한 이야기
    • 엔타노카미사마: 진나이 토모노리와 안잣슈의 활약으로 유명세를 탔던 프로그램이다.
    • SMAP×SMAP
  • 애니메이션
    • 네모바지 스폰지밥
    •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 벤 10
    • 틴 타이탄
    • 아바타: 아앙의 전설
    • 엘리의 야생탐험
    • 대니팬텀
    • 빛의 전사 프리큐어
    • 꼬마 마법사 레미 시리즈
    • 개구리 중사 케로로
    • 아따맘마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아즈망가 대왕
    •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 기동전사 건담 SEED ~ 더블오
    • 유희왕: 듀얼몬스터즈 ~ DX
    • 포켓몬스터 AG ~ DP
    • 디지몬 어드벤처 ~ 파워디지몬
  • 출판만화: 한국에선 일본 문화개방 진전과 애니판 인터넷 공유로 수요가 점차 늘어 일본 만화책을 찾는 팬들이 늘었다.
    • 테니스의 왕자
    •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누린 주간 소년 점프 계열의 만화 3 작품을 일컫는 말. 이 중 원피스와 나루토는 1990년대에 연재를 시작했으나 1990년대 후반부인 시점이었고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것은 2000년대이다.
      • 원피스 1부: 특히 알라바스타 편 및 워터세븐 편이 부각됐다.
      • 나루토: 1부 나뭇잎 부수기 편 및 2부 아카츠키전 파트가 주목을 받았다.
      • 블리치 1부: 소울 소사이어티 편에서 전성기를 펼쳤다.
    • 디그레이맨
    • 무적코털 보보보
    •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바리아~미래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 하야테처럼!
    • 메이저
    • 따끈따끈 베이커리
    • 딸기 100%
    • 캐릭캐릭 체인지
    • 이누야샤
    • 로젠메이든
    • 코바토
    • 쵸비츠
    • 데스노트
    • 은혼
    • 무장연금
    • 레이브
  • 소설
    • 해리 포터 시리즈: 정확히는 90년대 후반에 등장했으나 2000년대에 영화의 개봉으로 전세계적인 열풍으로 확대되어 그 시대를 풍미했다.
6.1.2.3. 정/관계
6.1.2.4. 스포츠

6.2. 유행어

6.2.1. 초반(2000년 ~ 2003년)

6.2.2. 중반(2004년 ~ 2006년)

6.2.3. 후반(2007년 ~ 2009년)

7. 2000년대생

서기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을 말한다. 또한 이들은 밀레니얼 Y세대와 Z세대, 그리고 알파세대이다.[51] 2020년 기준 이들은 대학교 2학년(성인)[52]~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제 이들은 모두 청소년, 성인 초반의 나이가 되었다. 2000년생을 제외한 모든 2000년대생은 21세기, 제3천년기 첫 태생이다.[53]

사회적으로는 저출산 시대[54]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60만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가 즈믄둥이로 불리는 2000년을 정점으로 2001년에는 50만대로 확 떨어지고, 2002년부터는 40만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카드대란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계속 떨어져서 2005년에 1.08명이라는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다가, 2007년 들어 황금돼지해로 잠시마나 오르기는 했다. 그리고 2008년 들어 또 황금쥐띠해로 잠시마나 2007년을 유지했다. 다만 이후에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주춤해졌다.

이런 이유로 이 세대는 형제가 없는 외동인 사람이 많이 있으며 외동이 적은 그 윗세대인 1990년대[55]과 세대차이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형제가 대여섯명이었던 기성세대와는 완전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이들이 사회에 나올 2020년대부터 인구 절벽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헬게이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때문에 이 세대들이 일본같은 사례처럼 인구 감소로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까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는 2020년대 중후반~2030년대 초반(대졸 기준)에는 많은 노동이 자동화되어 일자리가 더 부족해질 수도 있고 자동화가 의외로 그리 많은 노동을 대체하지는 않아서 줄어든 인구 덕에 취업이 원활해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 역사처럼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이 사회에 나올 때쯤에는 우리나라 현재 가장 큰 인구를 차지하는 586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취업현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는데 내수가 큰 비율을 차지하지 않고 수출이 주인 우리나라 특성상 인구감소로 인한 일자리 감소 비중이 적어 청년실업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들은 혼혈이 급증하던 시기이기 때문에[56] 혼혈에 의한 차별도 혼혈이 극소수인 그 전세대에 비해 덜 한편이다. 대표적으로 전소미(2001년생), 한현민(2001년생), 낸시(2000년생), 사무엘(2002년생), 황민우(2005년생) 등이 있다.

2019년 기준 이들도 아이돌이나 가수 데뷔가 시작되었다. 2019년 기준 나이로 2000~2005년생들은 14세 이상으로 일부는 사회에 첫 발을 내밀 시대로 데뷔 등이 활발하게 시작되지만 2006~2009년생은 10~13세로 아직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1~2학년의 나이로 아직 어려서 대부분이 아역배우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2019년부터 그레타 툰베리를 필두로 한 환경운동, 홍콩 범죄인 인도조약 반대 운동을 이끄는 고등학생들이 사회에 등장하면서 기존과 다른 면모의 세대 주역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7.1. 초반생(2000년생 ~ 2003년생)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00년생 ~ 2003년생의 경우 급변했던 시대를 경험한 탓에 구분짓기가 매우 어려운 세대이다. 이들은 1990년대생과 같이 날로그 + 디지털 = 아지털 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1년 8월 24일생 ~ 2003년생은 IMF 외환위기가 끝난 후에 태어나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86세대(1960년대생)의 자녀이기도 하다.

이들은 태어난 시기에 타이틀이 항상 붙는데

라 불린다. 이들은 2020년 기준, 대학교 2학년[59](성인) ~ 고등학교 2학년이다.[60]

이들은 1990년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세대라, 대부분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고 평가하여 1990년대생의 연장선 세대라고 평가한다. 그러한 이유여서인지 1990년대생들과 2000년대생들의 문화를 동시에 공감해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립적인 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좌측통행을 2010년 7월 1일 이전까지 마지막으로 배웠다. 2015학년도엔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따라 도입 시 정부가 가르치는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을까봐 우려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중학교에서 자유학기/학년제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세대이다. 2013년 2000년생부터 시범 적용되긴 하였으나 극히 소수의 학교 이야기여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2016학년도에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해 이해 중학교 입학자인 2003년생 이하부터 전면적으로 시작했다.

유치원 시기부터 고등학교 졸업 시기까지 6차 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2009 개정, 2009 개정 각론(2011 개정), 2015 개정을 접한 세대이다.

정확히는 2000년생 ~ 빠른 2002년생은 7차 교육과정 ~ 2009 개정 각론(2011 개정), 나머지 2002년 ~ 2003년생은 2007 개정부터 2015 개정까지를 겪는다. 또한 거기에서 예외적으로 2009년 초등학교 신입생까지(대부분 2002년생까지)는 유치원에서 6차 교육과정을 겪었다. 한편 2017년에는 2002~2003년생부터 고교학점제를 배운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했지만 이후 더 늦춰져 일부는 2006년생, 완전히는 2009년생부터 배우게 되니까 이들은 고교학점제에 대해서 상관이 없다.[61] 2000년생 ~ 2003년생은 교육과정 개편이 매우 잦은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많은것을 접한 유동적인 세대인지라 이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듯하다. 이들은 2010년대에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1990년대생과 마찬가지로 1998년 김대중 - 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일본문화 대개방에 따라 국산 애니 세대인 이전 이후 세대와 달리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 문화 컨텐츠를 접하여 유년시절 동안 즐겨본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며, 전 세계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디즈니와 니켈로디언 등의 한국 정착으로 미국 애니에도 손을 뻗기 시작했다만,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2016년 말부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개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2017년 3월에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정보에 따르면 IT업계와 언론계 또는 윗세대들은 2000년 이후 출생부터는 스마트폰유튜브, SNS 등 디지털 매체들을 태어났을 때부터 접하여 익숙하게 경험한 세대인 Z세대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며 선을 긋는데, 이유는 이들이 태어난 연도 숫자가 2000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생들까지는 출생년도 숫자가 그들보다 더 윗세대들과 같이 1900년대에 속하기 때문에 아날로그를 경험했다고 대부분 인식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면 새로운 천년생이라는 타이틀과, 디지털을 본격 경험한 세대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생들의 비중이 2000년대 초반생보다 인구 비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저절로 같은 세대라고 인식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생 ~ 2000년대 초반생[62]은 상당히 애매한 세대이지만 유년기와 학창시절 12년동안 디지털로 변화하는 것을 포함한 세상이 변하는것을 경험한 세대이기에 겉과속이 심하게 다르다. 겉모습을 보면 윗세대들은 이들이 그냥 실제 지금 어린 아이들처럼 처음부터 스마트폰만 사용한 어린아이로 보일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으면 출생년도를 포함해서 경험을 강조하여 언급하는 것이 효율적일 세대이다. 오죽하면 2000년대 초반생은 2000년대 중반생, 후반생 이미지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통계기준, 이들은 Z세대와 알파세대로 분류되지만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은 Z세대에 포함되지만 1980년대생인 Y세대로 분류되기도하여 겹치는 세대로 사실상 YZ알파세대이다.

쉽게 말해, 노선을 여러 번 갈아탄 세대인지라 태어난 연도 숫자는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같은 2000년대생이지만, 실제 경험은 1990년대생과 비슷한 세대이므로 겉과 속이 달라 폭이 넓고 다원적인 세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7.2. 중반생(2004년생 ~ 2006년생)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2004년생 ~ 2006년생들의 경우 2020년 기준 고등학교 1학년 ~ 중학교 2학년이다. 또한 대부분 X세대(1970년대 초 중반생)의 자녀이다.[63] 아날로그 감성을 마지막으로 겪기는 했지만 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64]에는 모두 디지털로 변화했다.

이 세대는 과도기. 마지막과 시작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이다. 우선 시작의 경험을 보자면,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좌측통행우측통행로 바뀐 뒤였고, 2011년에 초등학교 저학년 무상 급식이 시행되었고, 이듬해 초등 전학년으로 확대되어서 이들은 초등학교때 무상으로 급식을 먹었다. 그리고 2004~2005년생은 2007 개정이 아닌 처음부터 2009 개정(총론)/2007 개정(각론)을 배웠다. 즉, 이들부터 초등학교 수학익힘책만화가 들어 있는 것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2006년생은 입학 때부터[65] 2009 개정 교육과정만 배웠다. 즉, 2006년생은 2007 개정(각론)도 배우지 못하였다.

또한 2018학년도 부터 코딩 교육 의무화,[66] 중학교자유학기(학년)제도 처음으로 경험했다.[67][68] 초등학교 때는 6년 내내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배웠다.[69] 역사를 5-2학기, 6-1학기로 배운 세대이다. 그리고 2003년 시범 시작한 교복 무상이 2004년생부터 고등학교 전면 무상교복으로 이들은 고등학교 교복을 부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다만 중학교때는 전면으로 무상교복을 안해서 돈 내고 교복을 구입했던 학생들도 많으며, 이들 아래 세대부터는 중학교 전면 무상 교복이나 교복 자율화가 시행 될 수도 있다.

반면 변화 전 마지막으로는, 2012년에 놀토가 사라졌다.(2004년생까지 경험) 2013년에는 우리들은 1학년, 즐거운/슬기로운/바른 생활이 없어졌다.(2005년생까지 경험)

이들의 경우는 마지막으로 초등학교때 전면 9시 등교가 시행되기 전에 재학해서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8시 30--40분까지 등교했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입학할 경우 이들은 처음으로 고교학점제를 겪게 된다.

2006년생 한정으로 일부 고교학점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이들은 입시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바뀔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들의 경우 세는나이 4살부터 유치원을 다닌다고 할 경우 이들은 2000년대 말기에 유치원 입학, 201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 입학, 2010년대 후반에 중학교 입학을 했으며, 202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2019년부터 전부 중학교 이상이 되었다.

7.3. 후반생(2007년생 ~ 2009년생)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07년 ~ 2009년생들은 대부분 X세대(70년대 중후반생)의 자녀이기도 하다. 이들은 2020년 기준 대부분 중학교 1학년 ~ 초등학교 5학년이다.[70] 2003년생을 제외한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교 재학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로 아날로그 문화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태어났기에 이들은 아예 아날로그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설령 알더라도 경험이 거의 없다. 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때는 완전히 디지털/스마트폰 시대로 뒤바뀐 뒤이다. 2000년대 초반생과 함께 Z세대의 주류이기도 하다. 이들의 경우 남학생들은 변성기가 오고 있다.

이들이 초등학생때는 2009 개정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두 개를 배우며, 중학교때는 전면 2015 개정을 배운다.[71]. 한자 병행, 실과 소프트웨어가 2018년 3~4학년, 2019년 5~6학년 순서대로 개정된다. 2009년생 한정으로 안전한 생활을 겪었다. 또한 중학교 때는 전면 자유학년제, 무상교복이 예상된다. 다만 이들이 중고등학교 시절때는 교복 자율화때문에 무상교복 대신 아예 교복을 입지 않을 수도 있다.

2008년생부터 고교학점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 이들은 입시제도에 대해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유치원 입학부터 2010년대였으며, 2010년대 중반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학생 신분에 들어갔고, 2020년대 초반에 중학생 신분에 오를 것이다.

7.4. 사회적 가치관

2000년대생의 경우에는 급속한 탈민족주의, 개인주의화로 인해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이전세대 보다는 좀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쉽사리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비율이 강세를 보인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직접 경험했거나 그 여파가 남아 있던 시대를 살았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이미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위 갤럽의 조사결과로는 현재 10대인 2000년대생들은, 대한민국 전 세대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중도 성향의 강세를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 무당층 비중이 높은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보편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위 조사만으로 2000년대생 전체의 정치성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들은 현재, 대부분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장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젠더, 세대 갈등에 대해서도 1980, 1990년대생들에 비하여 덜 극단적이고 중도적인 성향을 띤다.

실제로 어느정도 정치에 관심이 생기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행어들을 보면 좌우가리지 않고 돌려까는 유행어가 많이 탄생하는데 기존 우파세력을 돌려까는것에서 파생된 동년배드립, 좌파세력을 돌려까는것에서 파생된 ‘이 시국에’ 드립을 정치성향과는 별개로 저런 드립들을 재미를 위해 사용하는것을 보면 진영논리나 정치극단주의의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다 중도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유튜브, SNS, 커뮤니티 사이트 등 인터넷 사이트로 정치를 접하기 쉬워지는 만큼 극단주의에 빠질 확률이 높기도 하다.

90년대생들보다도 이전의 산업화 세력 vs 민주화 세력의 구도에서 10년대생만큼은 아니겠지만 자유로운 세대일 것이며 독재, 친북, 친일 등과 같은 과거의 제국주의와 냉전기에서 파생된 이념대립보다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이슈들이 이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18세 유권자 지역구 투표 정당

연령대

민주

통합

격차

만 18세

62.3%

24.6%

+37.7%p


18세 유권자 비례대표 투표 정당

연령대

시민

미래한국

정의

격차

18세 전체

38.2%

17.2%

15.6%

+21.0%p

18세 남성

34.5%

21.3%

14.1%

+13.2%p

18세 여성

41.6%

13.7%

16.9%

+27.9%p

그러나 21대 총선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결과에 의하면 10대는 전체 연령대중에서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고 가장 진보적 성향인 세대 로 확인되었다. 비례대표 지지율에서 미래한국당이 17.2%로 15.6%를 득표한 정의당에 한자리수로 따라잡혔고, 지역구 투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의 득표율 격차가 37.7%로 모든 연령대중 최대격차로 나타났다. 특히 19~29세 남성에 비해 18세 남성은 오히려 30대와 유사한 지지양상을 보였다.[72] 더불어시민당과 정의당 수치의 합산이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투표자의 수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

10대 유권자들의 경우 선거 이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게 나타난 세대이기도 했지만, 모름/무응답 역시 23%의 응답률을 기록하며 평균치인 8%의 세 배 이상이 나타난 세대이기도 했다. 위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높은 모름/무응답 응답률 만큼 실제 어디에 투표할지 역시 예상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는 친 여당 성향을 보였다. 이 중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정의당에 대한 지지가 15%가 나왔다는 점이다.

사실 위 조사결과는 선거 당시 만 18세(2001년 4월 ~ 2002년 4월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2000년대생 전체의 정치성향을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2000년대생들은 초등학생~고등학생으로서 아직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

9.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0. 참고/관련 문헌

  • 대한민국사: 1945~2008 - 임영태 저. 들녘. 2008.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 서중석 저. 웅진지식하우스. 2005(초판)/2013(개정판).
  •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노무현 시대의 명암(전 5권) -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11.


  1. [1] 2000년 한정
  2. [2] 2000년을 제외한 모든 2000년대 연도.
  3. [3] 진행자 손석희가 "여러분,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인데 잘 알아두자.
  4. [4] 2000년
  5. [5] 2001년 ~ 2099년
  6. [6] 그러나 2000년에 시행한 밀레니엄 행사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주요 인사들도 참가했다.
  7. [7]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의시작 (매일경제, 매경닷컴)
  8. [8] 조기입학한 2003년생까지
  9. [9] 경제성장률 7%, GDP 4만불, 세계 7대 경제대국 입성이 목표였다.
  10. [10] (2000~200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11. [11] IMF 관리 체제 종료는 2001년 8월 23일에 끝났다.
  12. [12] 첫 시작은 2002년이고, 두번째는 2006년, 세번째는 2007년이다.
  13. [13] 다만 그래도 1990년대에 유행하던 것들이 그대로 계승되어서 즐거운 분위기였다.
  14. [14] 언급된 기업들은 다들 90년대 말에 설립되긴 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대형 기업이 된건 2000년대부터 이다.
  15. [15]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
  16. [16] 물론 디지털 시장도 유튜브의 엄청난 성장과 스포티파이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7. [17]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H.O.T.는 2001년 2월 해체, 젝스키스 2000년 5월 해체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과 S.E.S의 경우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18. [18] 소위 소몰이창법으로 유명한 R&B색깔이 가미된 웅장한 발라드
  19. [19] 뮤직뱅크는 2007년에 HD화가 되었다.
  20. [20] 팬티엄 3에서도 메모리빨로 재생된다는 소리가 있다.
  21. [21] 이때는 720P영상을 제대로 돌리기가 무리였고 대다수 영상들은 아날로그 방송을 녹화하거나 480p급으로 다운스케일링을 해서 시청하였다. 이건 당시 나왔던 DVD디코더의 영향도 있다. 본격적인 720P동영상 열기는 NVIDIA Geforce 6시리즈와 ATi Radeon R400계열의 보급, YouTube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성능상 720p동영상만 재생이 가능했지만 2010년쯤 인텔 코어i 시리즈가 출시되자 1080p동영상도 재생할수 있었다.
  22. [22] 디지털방식 말고도 HDReady라고 디지털방송은 지원하지 않지만 HD영상은 지원하는 TV도 판매되었다.
  23. [23] Multi Mod Service의 약자, 유럽에서는 Multiplex를 줄여서 MUX라고 한다.
  24. [24] 개발까진 아니고 DAB를 뜯어 고친거다.
  25. [25] 당장 위에 언급된 대표작들만 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위의 요소들이 하나 이상씩은 꼭 들어가 있다. 특히 천국의 계단,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이러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드라마다.
  26. [26] 특히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손꼽힌다!
  27. [27] 물론 예능으로 짜고 쳐서 상대방을 선택한 것이므로 오해하지 말 것.
  28. [28] 진짜 의미가 없었던 것이, 무한도전은 토요일에 방영되었고, 1박 2일은 일요일에 방영되었다.
  29. [29] 물론 그 전에도 일본 스타일은 한국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대중문화 개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향은 한정적이었다.
  30. [30] 교복바지와 치마는 2000년대 초중반에도 이미 일진이나 패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딱 붙게 줄여 입었다.
  31. [31] 일명 소시지(소녀시대+gee)룩.
  32. [32] 이 투명 메이크업의 창시자는 정샘물이다.
  33. [33] 일자로 그린 눈썹, 눈꼬리를 쭉 내려서 그린 검은색 아이라인, 빨간색 틴트가 특징이다.
  34. [34] 그 당시 국내 영화는 대중들 사이에서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 아깝다는 정서가 만연 했을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고, 왕가위같은 홍콩 영화 스타일을 표절할만큼 수준 저하가 심했다.
  35. [35]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아동용 애니나 대중적인 애니가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36. [36]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뒤를 잇는 2000년대 휴대용 게임기의 대표 선두주자였다
  37. [37] 물론 정액제는 있었다. 문서 참고.
  38. [38] 2년 전인 1998년 안산 경원여객에서 먼저 시험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2000년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보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9. [39] 2004년부터 시행.
  40. [40] 전세계 시장은 콘솔이 주류다
  41. [41] 2002 월드컵 은행도 주택은행이 선정되었으나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
  42. [42] 2005년 내장재 개조 이후에 2호선 초기형 멜코초퍼는 4량이 가연재였고, 2호선 초기형 GEC초퍼는 2량 또는 8량이 가연재였으며 3호선 초기형 GEC초퍼는 6량이 가연재였음.
  43. [43] 그 소리들이 민방위훈련 사이렌소리와 흡사했다.
  44. [44] 한국에서는 1998년 4월 9일에 정발되었다.
  45. [45] 피처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HD 해상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2년 초반부터다.
  46. [46]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인기가 식기 시작한 것은 닌텐도 3DSWii U 출시 이후인 2012년부터다. 그리고 2014년에는 Wi-Fi 커넥션까지 지원이 끝났다.
  47. [47]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PSP의 인기가 하락했으며,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능 향상으로 인해 고사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다. 물론 게임 자체의 평균 퀄리티는 후계기인 PSVITA가 나오기 이전에도 PSP쪽이 당연히 우세였다.
  48. [48] 요금제는 거의 홍보를 안 했다. 자살 사례도 있었을 정도(...). 이것 때문에 알요금제 같은 청소년요금제에서는 데이터 통화료가 포함돼서 소진된다.
  49. [49] 2000년대 최고수입의 운동선수는 거의 이 선수 차지였다.
  50. [50]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
  51. [51] 2000년대 초반생은 1990년대 이전생과 함께 밀레니얼 Y세대로 분류되기도 하여 Y세대와 Z세대 그리고 알파세대까지 모두 겹치는 세대가 된다.
  52. [52] 다만 군필이나 군대를 원하는 미필 남학생은 이제 휴학하고 군대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53. [53] 2000년은 20세기의 마지막해이다.
  54. [54] 엄밀히 따지면 초저출산이다. 인구대체율 이하인 2.1명은 1983년에 이미 깨졌고 2002년부터 시작된 건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초저출산이다.
  55. [55] 참고로 더 윗세대인 1980년대생에 비하자면 형제가 없는 외자식인 사람이 조금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해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올랐기 때문.
  56. [56] 이미 1990년대부터 농촌총각 장가가기 프로젝트를 열었으며 그 이후인 90년대 중, 후반부터 국제결혼이 급증하였다.
  57. [57] 다만 이 세대까지 20세기 출생자이다.
  58. [58] 동시에 IMF 외환위기 당시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이다. 2001년 1월 1일생 ~ 2001년 8월 23일생 한정.
  59. [59] 빠른00년생을 포함하면 대학교 3학년. 다만 군필 남학생은 이제 군대에 갈 수도 있다.
  60. [60] 사춘기가 끝났고, 거의 성숙해졌다.
  61. [61] 다만 일부 학교에서는 부분 도입(연구, 선도학교)를 하고 있다.
  62. [62] 김대중 정권 때에 태어난 1998년 2월 25일생 ~ 2003년 2월 24일생, 참여 정부때에 태어난 2003년 2월 25일생~ 2003년 12월 31일생
  63. [63] 2020년 기준 이들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거의 다 성장했다.
  64. [64] 2011년~2013년
  65. [65] 2013년 초등학교 입학생부터 2009 개정 교육과정만 적용된다.
  66. [66] 다만 준비가 덜 돼 1년 미룬 학교가 대다수라 사실상 2005년생부터 코딩교육을 받는다고 봐도 된다.
  67. [67] 따지고 보면 2003년생부터 경험했지만, 자유학기제가 아닌 자유학년제는 2004년생부터다. 또한 전면 시행은 2020년부터이므로 2007년생부터 겪기 때문에 서울 등에서는 자유학년제 경험이 쉽지 않다.
  68. [68] 경기도, 강원도는 2004년생,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는 2005년생, 충청북도는 2006년생부터 전면 시행했다.
  69. [69] 2004~2005년생들은 2007 개정(각론)도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같이 배웠다.
  70. [70] 2020년 기준 이들도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71. [71] 2005년~2006년생도 포함이지만 이들은 역사는 2009개정으로 배운다.
  72. [72] 20대 남성의 비례대표 지지율이 기사에 뜨지 않아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지역구 투표에서 나타났듯 20대 남/녀간 성차가 크기 때문에 18세 남성의 한국당 지지율이 20대 평균보다 낮은 건 20대 남성에 비해 크게 낮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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