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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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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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바
ABBA

멤버

비에른 울바에우스, 벤뉘 안데르손,
앙네타 펠트스코그, 안니-프리 륑스타

입성 연도

2010년

후보자격 연도

1999년

후보선정 연도

2003년, 2010년

}}}

ABBA

출신지

스웨덴

멤버

벤뉘 안데르손
Göran Bror Benny Andersson
예란 브로르 벤뉘 안데르손

1946년 12월 16일~

보컬·피아노·키보드


비에른 울바에우스
Björn Kristian Ulvaeus
비에른 크리스티안 울바에우스

1945년 4월 25일~

보컬·기타

애니 프리드 린스태드[2]
Anni-Frid Lyngstad
(애칭: "Frida" 프리다)

1945년 11월 15일~

보컬

앙네타 펠트스코그
Agnetha Åse Fältskog
앙네타 오세 펠트스코그

1950년 4월 5일~

장르

, 디스코

활동기간

1973년~[3]

데뷔

1974년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
1973년 앨범 Ring Ring

링크

공식 사이트 ABBA The Museum

1. 개요
2. 역사
3. 여담
4. 디스코그래피
5. 외부 링크

1. 개요

1972년부터 활동한 스웨덴의 4인조 혼성 팝 그룹. 전성기 때 인기는 말 그대로 1970~80년대의 세계 음악계를 휘어잡은 전설이었으며 당시에 스웨덴이 자랑하는 네 가지가 비에른 보리, 볼보스카니아 그리고 아바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발라드 노래도 있지만, 1970~1980년대에 보니엠과 함께 유럽 이지 리스닝 팝 씬을 양분한 전설적인 디스코 그룹이기도하다.

후기의 히트곡들이 대부분 여성 보컬 곡들이라 남성 멤버 두 명은 병풍에 불과한 존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바의 히트 곡들은 대부분 남성 멤버인 벤뉘 안데르손과 비에른 울바에우스 두 명이서 공동으로 작곡했다.

"ABBA"라는 이름은 자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이니셜로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룹 결성 당시 그룹 이름은 4명의 이름을 모조리 나열한 Björn, Benny, Agnetha & Anni-Frid로, 이 이름은 1973년 첫 앨범 Ring Ring에 쓰였다. 이런저런 서류에 그 긴 이름을 적다가 지친 그들의 작사가이자 매니저인 스틱 안데르손은 멤버 이름의 머릿글자만 따서 ABBA로 적었고, 결국 그룹의 이름으로 굳어져 1974년부터 ABBA란 이름을 내걸게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당시 스웨덴에서 가장 큰 통조림 회사(아바 해산물)[4]의 이름과 우연히 같게 되었고, 결국 그 회사와의 협상 끝에 이 이름을 그룹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 역사

남성 멤버 비에른과 벤뉘는 이미 1966년에 듀오를 이루어 활동한 전적이 있었고 둘은 스웨덴에서 나름 인기를 누렸었다. 이후 비에른과 벤뉘는 당시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던 비에른의 부인인 앙네타의 앨범 녹음에 참여하였고 앨범의 여성 코러스를 맡았던 프리다와 벤뉘가 연인 사이가 되면서 아바가 탄생한다.

1973년 "Ring Ring"이란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예선에 응모했으나 탈락했고, 1974년에 또다시 "Waterloo"로 다시 출전, 우승하여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74년을 기점으로 2014년을 맞아 데뷔 40주년이 되었다. 74년 당시만 해도 신인그룹이었던 아바는 이후 SOS의 성공으로 인지도를 완전히 굳힌다. 이후 1977년, 4집 "Arrival"에서 대박을 터트리게 되는데, 그 주역이 바로 "댄싱퀸(Dancing Queen)"이었다. 미국에서 내내 고전하던 아바가 유일하게 빌보드 1위를 거머쥔 곡이다.

아바의 곡은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아바의 노래 24곡을 사용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2008년에 개봉한 아만다 사이프리드, 메릴 스트립 주연의 동명 영화도 흥행에 성공함으로서 아바의 인기가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아바가 해체한지 얼마 안된 1980년대 중반, 벤뉘와 비에른이 아바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곡들과 활동 당시의 곡들, 새로 작곡한 곡들을 이용해 유명 작사가 '팀 라이스'와 손잡고 만든 "체스"가 있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급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이 싫어할 만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결과적으로 망했어요가 돼 버렸다.

81년, 자녀 양육문제로 비외른과 앙네따가 이혼하면서 벤뉘와 안니-프리도 갈등을 겪고, 결국 ABBA는 해체하고 만다. 해체 이후에도 다들 잘 활동하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2016년 6월에 맴버들이 30년만에 다시 모여 현역시절의 The Way Old Friends Do를 불렀다. 영상이 올라온 직후 한동안 불가능할 거라 여겨 잠잠했던 재결합의 목소리가 현재까지도 끝임없이 늘어나고 있는등 웹에선 맴버들의 행보에 대해 기대가 날로 커지고 있다.

결국 35년만에 재결합했다. 곧 2곡의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링크 2018년에 발매 예정이었으나 그룹 사정으로 2019년 가을로 연기되었다. #

3. 여담

  • 디스코그래피를 차례대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활동 초기에는 남성 멤버 비에른이 자주 리드보컬을 맡거나, 듀엣을 하기도 했는데, 후기로 나아갈수록 여성 멤버들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 작곡 듀오인 벤뉘와 비에른은 악보를 쓸 줄을 몰랐고, 오직 앙네타만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1981년 'Dick Cavett'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그들이 사용한 악기들은 실험적이었고 즉흥적이었으며, 또한 스튜디오에서 반주녹음에 노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훗날 뮤지컬 '맘마미아 !'를 제작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먼저 음악이 완성되고 나서 다른 음악가들이 참여한 후 음악을 듣고 악보에 기보를 하고 가사를 추가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후반작업에 6개월 이상이 소요되었고, 작곡가들 또한 벤뉘와 비에른이 음원을 먼저 만들고나서 후에 가사를 추가했었다고 밝혔다.
  •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어, 전세계적으로 무려 2억장 가량의 앨범이 판매 되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한데,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세친구 오프닝으로 'I Do, I Do, I Do, I Do, I Do'와 'Honey Honey'가 쓰였다.
  • 허나 미국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편. 아바의 음악 중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노래는 Dancing Queen 한 곡 뿐이다.
주 이유 중 하나는 가사는 영어인 반면, 그 당시 멤버들이 영어를 거의 몰랐던 것이 크다. 덕분에 TV등에 나와 공연을 하는 내내 외운 가사에 집중하느라, 초긴장 상태로 마네킹처럼 서서 노래만 줄창 불러대다보니 노래 외의 퍼포먼스는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 국내에서 다른 가수의 노래가 아바의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One Summer Night"과 "Summer Night"는 아바의 곡인 "Summer Night City"과 헷갈려서, "Sugar Sugar"는 가사 초반의 "Honey Honey"가 아바의 대표곡 "Honey Honey"와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꼭 한번씩 들어보고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
  • 아바의 멤버들이 살인적인 스웨덴의 세율을[5]피해 국적을 옮겼다식의 잘못 알려진 적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는데도 스웨덴 국적을 유지하여 그 많은 세금을 다 냈다. 나름대로 애국자라면 애국자랄까 스웨덴 국적을 포기한 것은 프리다(노르웨이 출신의 갈색 머리 여성) 뿐이고, 그 이유도 세금 문제가 아니라 아바가 해체한 이후에 프리다가 스웨덴-스위스 혈통의 독일 귀족으로 로이스 대공 겸 플라우엔 백작인 하인리히 루조 (Heinrich Ruzzo Prinz Reuss, Graf von Plauen)와 재혼하면서 독일 귀족의 규칙으로 인하여 독일로 귀화한 것이다. 세금 덜 내고 싶으면 독일이 아니라 모나코로 갔겠지... [6] 덕분에 그녀의 공식 호칭도 Anni-Frid Lyngstad Prinzessin Reuß von Plauen(독일어)(스웨덴어: Anni-Frid, Prinsessa av Reuss, Grevinna av Plauen, 영어: Her Serene Highness Princess Anni-Frid Synni Reuss, Countess of Plauen)이라는 엄청난 길이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며, 스웨덴 왕가와의 친분도 생겼다고 한다. 하인리히 루조는 1999년에 스톡홀름에서 병사함으로서 프리다와 사별하게 된다.
  • 당시 기준으로 매우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공연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정말로 빡빡했던 당시 스웨덴의 세금제도 하에서 합법적인 세금 공제를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해진다. 간단히 요약하면, 실생활에선 도저히 입고 다니기 힘든 무대의상정도 돼야 공연활동을 인정받아 비용처리가 가능했기 때문. #
  • 1999년 스웨덴에서 4인조 혼성 그룹인 A*Teens(초기에는 ABBA Teens)가 아바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데뷔한 바가 있다. 이후 해체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는 "Upside Down"이 있다. 한국에서는 장나라성시경의 듀엣곡으로 번안되기도 했다. 그 외 북유럽 팝으로 유명한 경우는 제2의 ABBA에 가장 가까웠던 Ace of Base아쿠아(Aqua)가 있다.
  • 2013년 5월 스톡홀름에 아바 박물관(ABBA The Museum)이 생겼다.공식 홈페이지 아바 멤버들에 관한 자료나 소장품이 상당히 많아 관광객들의 필수 체크 코스로 급부상 중이라 카더라.
  • 일본에서 몇 차례 공연을 가졌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내한 공연은 커녕 방한조차 한 적이 없다. 나름 인기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7]
  • 1994년 호주 영화 뮤리엘의 웨딩에도 내내 아바의 노래가 나온다. 주인공이 친구와 아바 코스프레를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압권.
  • 소설&영화 마션의 등장인물인 멜리사 루이스 (Melissa Lewis)가 ABBA의 열성적인 팬으로 나온다.[8] 남편이 ABBA의 1978년도 오리지널 미개봉 앨범을 입수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활동 당시 아바의 앨범은 CD로 나오지 않았다. CD가 상용화된 것이 80년대 초이기 때문. 미개봉 LP판을 구했다니, 크게 기뻐할 만도 하다. 물론 이후에 앨범은 CD로 리마스터링되어 다시 나오긴 했고, ABBA Gold 같은 편집 음반은 CD로 나왔다.
  • 멤버들 중 안니프리 륑스타는 레벤스보른 출신이다. 노르웨이에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할머니와 어머니가 일찍이 스웨덴으로 이주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프리다는 한동안 아버지(나치 독일군 장교였다고 한다)가 군함 침몰로 사망한 것으로 듣고 자라다가 아바로 유명해진 뒤 독일 잡지 'BRAVO'에서 사실이 폭로(?)되었고 그제서야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참고) 이 부분은 2016년 4월 2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4. 디스코그래피

5. 외부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스웨덴인인 다른 멤버들과 달리 노르웨이인이다. 다만 노르웨이 국적은 두번째 남편인 노르웨이 귀족과 결혼하면서 취득한 것으로 원래는 스웨덴인이다.(다만 후술하듯이 어머니가 노르웨이인이라 노르웨이 혈통이 반 섞여있다.)
  3. [3] 1982년에 해체했지만 2018년에 재결성했으며 2019년 하반기 목표로 앨범 발매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4. [4] 주요 생산품은 칼레스 대구(어류)캐비어와 감자, 토마토 퓌레를 섞은 생선 알 튜브형 스프레드. 마치 우리나라 명란젓을 빵 위에 뿌려먹는 거와 같다.
  5. [5]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최고소득세율이 87%였는데 1970년대 초반의 90%대 세율에 비해서 낮아진 것이 이 정도. 다만 이건 스웨덴만이 특별한 건 아니었고, 사실 미국이나 영국도 1970년대까지는 최고 소득세율은 80-90%대 정도로 고세율 정책을 유지했다. 이렇게 세율이 낮아진 것은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양 콤비 덕택이고, 만약 레이건이 인기가 없었거나 마가렛 대처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맥없이 패배하거나 아니면 포클랜드 전쟁 자체가 터지지 않았으면 세율이 이처럼 낮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6. [6] 그도 그럴 것이 독일도 세율이 꽤나 높다.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도 원래는 독일에서 살고 싶었으나 세금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서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고 할 정도...
  7. [7] 한창 인기 있던 70년대 말-80년대 초 당시, 국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미)다큐멘터리 영화 ABBA (1977)가 개봉한 일은 있다. 외국 음악인의 영화, 특히 전기 영화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극장 개봉까지 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 당시 아바의 내한 공연도 추진되었는데, 제주도를 달라고 했다가 무산되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
  8. [8] 설정상 옛날 구닥다리 디스코를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는 디스코 장르를 굉장히 싫어한다.남은 음악이 디스코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난처해하는 게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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