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 펑크

CM PUNK

1. 프로필
2. 개요
3. 커리어
4. 트리비아
5. 어록
6. 둘러보기

1. 프로필

2011년 7월 ~ 2012년 8월

2012년 9월 ~ 2013년 4월

2013년 6월 ~ 2014년 1월

본명

Phillip Jack "Phil" Brooks

별칭

Straight Edge Superstar / Savior[1]
The Second City Saint / Savior
The Voice of The Voiceless
The Best in the World

생년월일

1978년 10월 26일

신장

185cm

체중

86kg[2]

출생지

미국 일리노이시카고

피니쉬 무브

아나콘다 바이스[3][4]
GTS[5]
펩시 플런지[6]

테마곡

This Fire Burns[7] (2006~2011)
Cult of Personality[8] (2011~2014) (WWE)
(2016 ~) (UFC)

주요 커리어

WWE 챔피언 2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1회
WWE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ECW 챔피언 1회
머니 인 더 뱅크 우승 2회 (2008, 2009)
OV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OVW 서던 태그팀 챔피언 1회
OVW 텔레비전 챔피언 1회
SPCW N.S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SDW 텔레비전 챔피언 2회
ROH 월드 챔피언 1회
ROH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RC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사이버스페이스 태그팀 챔피언 1회
MA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C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A 미드 사우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IWA 미드 사우스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리얼리티 에라의 시작. 2011 머니 인 더 뱅크 vs 존 시나전의 입장씬이다.[9]

2. 개요

It's clobberin' time![10]

The Best in the World

434 days with the WWE Title later — the longest WWE Championship reign in modern history[11]

WWE 소속 프로레슬러이자 UFC 소속의 격투가.

거친 이미지의 프로레슬링과 어울리지 않게 술, 담배, 약물을 안한다는 Straight EDGE라는 기믹을 가지고 있으며 고등학생 시절 하드코어 펑크 밴드 Minor Threat의 콘서트를 갔을 때 들은 노래 "Straight Edg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Straight Edge는 실제로 일상에서 알콜과 약물을 금하는 생활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며 실제 생활에서도 술, 담배, 약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는 준수한 외모와 타고난 경기운영능력, 사람들을 사로잡는 마이크웍 실력, 매니아층과 라이트팬을 모두 사로잡은 메인 이벤터였다. 인디 프로레슬링의 스타에서 메이저 업계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2014년 WWE와의 의료 관련 문제 등 쌓여가는 불만이 터지면서 끝끝내 탈단하고 프로레슬링 업계에 발을 끊은 인물. 당시 펑크의 대우와 선수들의 복지 차원에 대한 어두운 면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해 동정여론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탈단 이후 자신이 이룩했던 업적들과 업계에 대해 모두 부정하고 비난을 퍼부은 것과, 과거 인디 시절 ROH에 있을 때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던 WWE의 상관 마냥 정치질로 신인들을 홀대한 행적이 조명되며 현재의 프로레슬링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팬 이상으로 안티가 더 많은 케이스. 2014년 12월 7일에 UFC와 웰터급 선수 계약을 하며 격투가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두 차례에 걸쳐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UFC를 떠날 것을 권고받았다. 실력은 없지만 인지도는 높은 UFC 격투가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누군가의 머니 파이트를 요구 소식이 뜨면 CM 펑크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12]

잊을만 하면 지금도 전성기 시절이 언급되고, 인디 단체에 등장한다는 루머만 떠도 화제가 되는 그야말로 2010년대 이후 메이저 프로레슬링 업계의 뜨거운 감자와 같다. 즉,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는 많은 의문의 1승을 거두지만 MMA의 세계에서는 많은 의문의 1패를 거두고 있는 인물.

3. 커리어

CM 펑크/커리어 참고

4. 트리비아

  • 그와 그의 절친이었던 콜트 카바나를 조롱하는 캐릭터가 있는데 CP 멍크와 콜트 캐버니이다. CM 펑크가 인디 출전 약속을 잡아놓고 갑작스레 취소하는 바람에 이에 빡쳐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한다. 가끔 이거 때문에 트위터로 안티들과 설전이 붙기도 하는 편.
  • 전 WCW 레슬러 코난이 방송에서 밝히길, 2011년 파이프밤을 터뜨린 후 그의 상품 판매량이 존 시나의 판매량을 넘어섰을 때 WWE는 펑크 관련 상품의 판매량을 제어하기 위해서 존 시나의 상품 디자인을 3배로 늘린 반면 펑크의 두 번째 디자인이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회사 탑페이스의 상품량이 절대적으로 넘버원임을 과시해야 했기 때문. 링크 그러나 이런 루머에 대해 Wrestling Observer의 데이브 멜처는 "왜 이런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아 다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2018년 8월 24일 트윗
  • 여성 레슬러들을 여자친구로 자주 두었다. 인디 시절 WCW 출신의 대프니와 약혼까지 갔지만 트레이시 브룩스와 바람이 나는 망나니짓을 해 대프니는 잠시 레슬러 생활을 접기도 했었고, WWE 입성 후에는 마리아와 사귀었으나 펑크는 마리아가 멍청하다는 이유로, 마리아는 펑크가 잠자리에서 배려심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 격렬하게 디스했고 이 싸움이 악명이 높아 WWE는 RAW에는 펑크, 스맥다운에는 마리아를 두는 식으로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이후 서로의 프로레슬링 사랑에 반했다는 이유로 베스 피닉스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또 결별. 이후 매트 하디의 음해공작으로 리타와 교제 중이라는 루머가 떴는데 말이 씨가 됐다! 실제 리타와는 2011년[13]에 잠깐 이별하기도 했지만 2009년부터 교제를 시작해 2013년[14]까지 오랜 기간 연인사이를 유지했다. 2012년에는 WWE.com에서 둘의 커플 화보를 업로드하며 아예 오피셜화시키기도. 둘은 컵 속에 잔디가 들어있는 커플 문신을 갖고있고, 펑크의 오른팔 팔꿈치 근처에는 리타를 그린 문신이 있기도 하다. 2013년 10월에는 리타가 펑크의 아이를 가졌다는 루머가 뜨기도 했었다.

  • 리타의 임신설이 터지고 한 달 뒤, AJ 리와의 염문설이 터졌다. 근데 재밌는 것은 리타는 어릴 적부터 레슬링을 좋아한 AJ의 우상이었다는 점.[15] AJ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미 무늬가 그의 경기복에서 발견됐다던가, 공항에서 마중나오는 모습이 발견되었다던가 이런저런 사진들이 나오더니, 결국 열애를 인정했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 레슬링 덕후인데다, 근본이 백야드 출신이라 그런지 WWE 바깥의 프로레슬링을 많이 배워 쓰고 그 스타일을 많이 따라하는 편.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레슬러는 피니쉬에서도 볼 수 있듯 프로레슬링 NOAHKENTA를 비롯한 일본 레슬링 쪽. 그렇다보니 프로레슬러로는 상당히 잡탕밥(...) 스타일. 트리플 H한테 근본 없는 길바닥 출신이라고 까이는 세그먼트도 있었다.[16] 그에게 영향을 줬던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고사 이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팔 밴드에 MISAWA라고 써놓고 경기한 적도 있다.
  • 운동 선수에겐 상당히 좋지 않은 탄산 음료, 그 중에서도 펩시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오죽했으면 예전에 쓰던 기술 이름을 펩시 플런지로 지었겠는가...이렇게 설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탄산 음료를 좋아하고 또 이에 못지않게 단 음식을 좋아하는 탓에 운동 선수로써는 어울리지 않게 몸에 군살과 뱃살이 많다. 아예 왼팔에는 펩시 로고를 큼지막하게 문신을 하고 있다.
  • 문신이 굉장히 많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문신을 크게 신경쓰지는 않지만, 앞가슴에 큰 용문신에 팔에도 다양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 전반적으로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진 편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보이듯 인간관계가 좁은 편이고, 그다지 깊은 유대관계는 꺼리는 편인 듯하다. 고집이 세거나 자의식 과잉적인 면모도 보이며 뜻을 굽히지 않는 성격탓에 수뇌부와 부커들과 종종 갈등을 야기했다.
  • 트리플 H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펑크가 2014년 11월에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서로 인간적인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았다고 한다. 둘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늘 좋지 않은 기류가 흐르고, 트리플 H는 펑크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고. 탈단하기로 한 날 RAW의 백스테이지에서 트리플 H에게 '2011년에 내가 당신을 이기는 게 업계를 위해 옳은 일이었다. 난 당신이 내게 잡을 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한다.'고 대놓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인디 시절 피니쉬 무브인 '펩시 플런지'가 트리플 H의 피니쉬 기술인 페디그리랑 겹친다는 점이나, 펑크가 인디 단체 이곳저곳을 전전했다는 점 때문은 아닐까 추측하는 팬들도 있었다.[17]
  • 이후에 트리플 H는 2015년 2월 스티브 오스틴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회사 내부에서도 내가 펑크를 싫어한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퍼졌다. 펑크가 OVW에 있을 때부터 말이다. 하지만 난 그 친구가 메인 로스터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으니 다 지어낸 소리다. 펑크는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한 번은 펑크가 WWE를 그만두겠다고 난리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니까 태연하게 아무 문제 없다고 답하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말했다. WWE 직원이었던 이앤 던스필드에 따르면 펑크가 입사했을 당시 트리플 H는 메인이벤트를 담당해 바빴고, 이후 비즈니스 경영을 위해 자리를 비운 일이 많았으며 펑크의 부상 기간 때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적었다. 때문에 펑크가 WWE에 품던 여러가지 불만에 대해 트리플 H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빈스의 사무실에서 언쟁을 했던 그 마지막 날에 자신의 면전에서 레슬매니아에서의 불만을 토해내자 트리플 H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고 펑크의 행동에 노여워했다고 한다.
  • CM 펑크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14년도 6월에 트리플 H는 펑크에게 대화를 시도했고, 펑크가 '결혼식이 끝나고 허니문을 다녀온 다음에 대화하자'고 답하자, 트리플 H는 펑크의 결혼식 날에 해고 통보를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빈스 맥맨이 이후에 '결혼식 날에 해고 통보를 보낸 것에 사과하고 싶다. 우연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펑크는 'WWE 인사부는 내 와이프 AJ 리가 결혼 때문에 휴가를 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난 트리플 H한테 직접 '결혼식이 끝나고 허니문을 다녀온 다음에 대화하자'고 말했었다. 이래도 우연이라고 주장할 텐가?'라고 반박했다. 데이브 멜처는 종종 'WWE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을 부리는 예로 저 사건을 인용한다.[18]
  • TNA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레슬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TNA 소속 시절 테디 하트와의 설전 때 TNA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해고만 통지하는 무책임적인 처사에 불만을 표현했던 것도 있고, 2008년 겨울 한 라디오 인터뷰에선 "TNA는 그저 WWE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단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근데 2009년 말부터 TNA가 WWE 출신의 레슬러들을 쏟아붓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영입하면서 TNA 팬들에게 "WWE 따라하기"냐는 지탄을 받는 점을 볼 때 펑크의 관점이 맞았다는 분석이 많다. 심지어 2013년에는 TNAWWE처럼 전국 투어 형식으로 TV쇼를 운영하면서 경영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보면 펑크의 디스 그대로 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
  • 위와 연계된게 헐크 호건 디스. 2010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헐크 호건이 TNA에 들어옴으로서 TNA는 제 모습을 잃고 쓰러질 날이 멀지 않았다. 그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했다.# 호건은 '그 녀석이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 나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매진시켰었다. 나는 선수로 계약을 맺은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랄 수 없으면 TNA를 돕는 역할에 만족할 것이다.'라고 대답. 이 발언은 훗날 시청률을 하드캐리하며 많은 분량을 배정받던 넉아웃 디비전이 헐크 호건 영입 후 급격히 축소된 점이나, 문제의 TNA 바운드 포 글로리 VII 이후 재평가받기도 한다.[19]
  • 2011년 1월 16일 하우스 쇼에서 마크 헨리를 이긴뒤 퇴장 중 맹렬히 비난하던 가족 팬과 시비가 붙어 심한 설전까지 갔다가 10살된 부부의 아이에게 내 뺨을 때려봐!라며 도발했고 놀랍게도 아이는 진짜로 뺨을 때렸다. 그러자 화난 펑크가 아이의 옷을 거칠게 잡으며 어디 한번 또 때려보라고 소리치자 아이가 울었고, 격분한 아이의 아버지가 펑크에게 먼저 주먹을 날림으로써 둘은 싸움에 돌입하기 시작했고, 펑크는 눈이 가볍게 긁혔고 아이 아버지도 다쳤다고 하는데...주먹이 몇 번 오고갈 새도 없이 안전 요원들이 둘을 말리고 펑크를 끌고 갔다.
  • 에디 게레로를 존경한다. 2001년경 에디 게레로와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데 에디가 펑크를 꽤나 칭찬해준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후 CZW에 출전했을 당시 사장이자 선수인 존 잔딕이 경기에 대해 핀잔을 줬는데, 펑크는 에디 게레로에게 인정받은 나에게 훈계하지 말라는 투로 말하고 다시는 CZW에 출연을 하지 않았다. 2011년 8월 15일 RAW에서는 케빈 내쉬와의 세그먼트 중 과거 WCW 시절 케빈 내쉬에디 게레로를 'Vanilla midget'이라고 비하[20]했던 것까지 끄집어내기도.[21] 에디의 고향 엘 파소에서 치른 한 하우스 쇼에서 승리한 후에는 "나 말고 에디의 이름을 연호해달라."라는 내용의 세그먼트를 했다.
최근 레이 미스테리오가 인디단체에서 치렀던 에디, 펑크와의 트리플 쓰렛 경기를 회상하며 에디를 추모하자 답글로 자신도 그 경기를 잊지 못한다며 레이와 에디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 스티브 오스틴의 팬이다. 어린 시절 펑크가 오스틴과 사진 찍은 적이 몇 번 있고 'Pipe Bomb' 사건 때도 입고 있던 티셔츠가 오스틴의 티셔츠였고, 어느 하우스 쇼에서는 경기가 끝난후 오스틴 티셔츠를 입고 악역들을 스터너(...)로 털어버리고 음료수 쇼를 했다던가, 거기다 현재 테마곡인 'Cult of Personality'는 2009년 오스틴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당시 프로모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인적도 있다. 2014년 현재 탈단 사건 이후 가장 현실적인 충고를 한게 오스틴이기도 하다.
  • KENTA와 종종 설전이 오가는데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 중인 맷 잭슨의 트위터에 펑크가 "나는 남의 피니쉬 기술을 훔치지 않는다."(...)는 댓글을 달자 이를 본 켄타가 해당 트윗을 인용하여 "그는 진정한 코미디언이다. #GTS"라고 반박한 것이 일의 시발점.# 이후에도 펑크가 트위터로 "켄타, WWE 샵에서 내 상품을 살 수 있다. 켄타에게 내 티셔츠를 사달라. 그는 내 팬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자 켄타는 몇 달 뒤 이를 패러디하여 그대로 되갚아주었다.# 설전이 오갈 때마다 펑크의 피니쉬 무브인 GTS가 본래 켄타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내 레슬링 팬들에게 철면피라며 펑크 쪽이 일방적으로 비난을 당하고 있다. 근데 이 영상을 보면 본인도 "훔친거 맞음 ㅇㅇ."이라 했다. 어쩌면 저 트위터의 발언은 반쯤 개드립일지도.
  • 탈단 이후, WWE 샵 홈페이지에서 CM 펑크로 검색하면 CM 정크(Junk)라는 결과만 나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직역하면 CM 쓰레기. 콜트 카바나도 Cold Albano라는 이상한 검색어로 떴다.# 이 일 이후 일부 국내 안티에게 CM 정크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2010년 경에 CM Junk Rap이라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사람까지 이미 있었던 사실로 보아 영어권역의 안티들이 일찍이 쓰던 표현인 모양. 일상적으로 펑크가 펩시같은 정크 푸드를 좋아해서 붙은 호칭이라는 말도 있다.
  • 레슬러 생활을 오래하지 않을거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레슬링하는 것은 즐겁지만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2015년에 은퇴해 밀린 워킹 데드를 시청[22]할 거라는 루머가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펑크 트위터에 어떤 사람이 근육도 키우고 살도 찌우면 좀더 멋있어질 거 같다고 트윗을 날리자 펑크가 난 2년 뒤에 개돼지가 될테니 그 때 다시 찾아와라.(= 2년후에 은퇴하고 몸관리 안하고 존나 쳐먹고 다닐거임.)고 답했다. 그리고 이 발언은 1년이나 앞선 2014년 1월에 현실화되었다. 뭐 1년 후에 은퇴하고 1년 동안 살찌워서 개돼지가 될 작정인가 보지 하지만 또 뒤로 연장
  • 근력 운동을 하냐는 한 팬의 질문에 '한다. 다만 남들처럼 스테로이드를 하지 않을 뿐'(...)이라고 답했다.
  • 프로레슬링 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 너드로 보인다. MLB 시카고 컵스의 광팬이며 적어도 1년에 5~6회 씩은 리글리 필드를 찾고 있다. 성공한 컶빠 경기장에 갈 때마다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리고, "컵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WWE 활동 중에도 컵스를 따라다니겠다."고 트윗한 바 있을 정도. 그 외에도 시카고를 연고로 하는 NBA시카고 불스NHL시카고 블랙호크스도 열심히 응원한다.[23] 유럽 축구도 보는 듯 한데, 한 팬이 "혹시 응원하는 유럽 축구 팀이 있어요?"라고 묻자, "밀월 FC"이라고 답했다.
  • 라이백이 지나치게 위험하며 그와 경기하면서 부상을 입게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정확한 표현을 옮기자면 "He's very hurty. Sometimes deilberte(그는 굉장히 위험해. 때로는 의도적이야)." 한 번은 라이백이 경기 도중에 뜬금 없이 있는 힘껏 펑크 자신의 배를 걷어차서 갈비뼈가 골절됐다고 말했다. 라이백은 펑크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는줄 몰랐다며 아쉬움과 분노를 표했다. 이후 라이백은 인터뷰에서 펑크의 UFC 활동이 잘 풀리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펑크가 허리디스크로 데뷔전을 연기하자 "미안 내 잘못이야"라며 고소하다는 반응을 했다.

  • 2018년 8월 절친이었던 콜트 카바나에게 고소를 당했다. 두 사람이 WWE와 소송을 벌일 당시 펑크가 카바나에게 자신이 비용 다 지불할 테니 함께하자고 설득해 카바나가 소송에 참전했는데[24] 소송 도중에 펑크가 자신이 절반만 지불할 태니 나머지는 알아서하라는 식으로 통보했다고 한다.[25] 이 때문에 카바나는 약 100만 달러나 되는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할 상황에 놓여 펑크를 고소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펑크에 대한 여론이 엄청나게 안좋아졌는데 오죽하면 프로그레스라고 하는 영국 단체가 미국 원정 투어 중 시카고를 방문해 인사차 CM 펑크의 도시라고 말했다가 시카고 관객들로부터 야유가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아예 콜트 카바나의 이름을 연호하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 위에 나온 고소전은 '펑크가 카바나의 소송 비용을 대주기로 약속한건 사실이지만 법적인 강제력이 있는 계약을 한게 아니니 펑크는 소송 비용을 지불할 법적인 의무는 없다'는 이유로 펑크의 승리로 끝났다. 결국 '돈 내주기로 약속은 해놓고 뒤에가서 '아몰랑 우리가 정식으로 계약한건 아니니까 돈 안줄래'라는 식으로 절친의 뒷통수를 쳐버린것. 트위터로 잘못은 자기가 아니라 카바나가 한거라고 디스하는 건 덤.
  • 프로레슬러 시절 입었던 육망성 4개가 들어간 경기복은 시카고 시의 상징을 응용한 것이다.
  • ROH 시절 라커룸의 정치꾼이었다고 한다. 폴 런던은 자신이 ROH의 라커룸을 찾았을 때 후배인 잭 에반스가 자신에게 하소연하며 말한 발언을 인용해 펑크를 ROH의 트리플 H라고 부르고 OVW에서 훈련은 안하고 부커와 함께 대진표를 짜고 있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비난했다. 또 케빈 오웬스는 ROH에 입성한 시절 티셔츠를 입고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펑크에게 정치질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웬스는 펑크를 밀쳐버릴까 하다가 ROH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분기를 거두고 펑크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 백스테이지의 리더 행세를 하다가 부커 T에게 망신당한 적이 있다. 코디제리코가 팟캐스트에서 푼 썰에 의하면 라커룸의 리더를 자처하며 각자의 쓰레기정도는 줍자는 상식적인 발언을 했지만 부커 T는 일부러 쓰레기를 바닥에 던지며 펑크를 비꼬았다고 한다. 덤으로 코디는 라커룸 리더는 케인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제리코는 케인이 쓰레기를 줍자고 하면 따르겠지만 펑크가 말한다면 무시했을 거라고. 펑크의 인기가 존 시나를 넘보던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의 일로 보이는데도 몇몇 사람외엔 펑크의 발언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실이 다른 레슬러들의 존중을 얻기엔 한참 부족했다는 점을 알 수있다. 다만 부커 T는 그런 행동을 한적이 없고 펑크를 말리면서 말로만 타일렀다고 해명했기에 제리코의 과장인지 부커 T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는 모를 일.
  • 최근에는 다양한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중인데, 아직까지는 그의 격투가로써의 귀추는 불명. 별개로 2019년 개봉 예정인 소규모 영화 'Girl on the Third floor'에 주연으로 분했다.

5. 어록

"In anybody else's hands, this is just a microphone, in my hands, it's a pipe bomb."

"다른 사람의 손에서는 이건 그저 마이크에 불과하지만, 손에 들리면 이건 파이프 폭탄이 된다."

--

2011년 7월 11일 RAW

"Sunday night, say goodbye to the WWE title. Say goodbye to John Cena. And say goodbye to CM Punk!"

"일요일 밤, WWE 타이틀에게, 존 시나에게, 그리고 CM 펑크에게 작별인사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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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RAW

"And right now, this isn't CM Punk talking to Triple H, this is Phil Brooks talking to Paul Levesque."

"이제 이건, CM 펑크트리플 H에게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필 브룩스폴 레베크한테 말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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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2일 RAW

"And there is nobody in the world who will beat me at WrestleMania. I am the one in 20-1."

"레슬매니아에서 날 이길 놈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지. 난 20 대 1의 기록을 세울 거다."

"I'd like to think that maybe this company will be better after Vince McMahon is dead."

"내 생각에 이 회사빈스 맥맨이 죽어야지 그나마 잘 굴러갈 것 같다."[26]

6. 둘러보기

PWI 올해의 레슬러

랜디 오턴
(2010)

CM 펑크
(2011, 2012)

대니얼 브라이언
(2013)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미즈
(2011)

CM 펑크
(2012)

존 시나
(2013)

PWI 선정 올해의 대립

넥서스 vs WWE
(2010)

CM 펑크 vs 존 시나
(2011)

Aces & Eights vs TNA
(2012)

PWI 올해의 선역

랜디 오턴
(2010)

CM 펑크
(2011)

존 시나
(2012)

PWI 올해의 악역

미즈
(2011)

CM 펑크
(2012)

디 어쏘리티
(2013)

PWI 선정 올해의 경기

2011년

7월 17일
머니 인 더 뱅크

WWE 챔피언십
존 시나 vs CM 펑크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대립

크리스 제리코 vs 숀 마이클스
(2008)

제프 하디 vs CM 펑크
(2009)

엘 제네리코 vs 케빈 스틴
(2010)

엘 제네리코 vs 케빈 스틴
(2010)

존 시나 vs CM 펑크
(2011)

타나하시 히로시 vs 오카다 카즈치카
(2012)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기믹

산티노 마렐라
(2007, 2008)

CM 펑크
(2009)

알베르토 델 리오
(2010)

알베르토 델 리오
(2010)

CM 펑크
(2011)

조셉 박
(2012)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인터뷰어

차엘 소넨
(2010)

CM 펑크
(2011, 2012)

폴 헤이먼
(2013)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011년

7월 17일
머니 인 더 뱅크

WWE 챔피언십
존 시나 vs CM 펑크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5성 경기

2004년

10월 16일
ROH

ROH 월드 챔피언쉽
사모아 조 vs CM 펑크

2011년

7월 17일
머니 인 더 뱅크

WWE 챔피언십
존 시나 vs CM 펑크

역대 머니 인 더 뱅크 우승자

미스터 케네디
(2007)

CM 펑크
(2008, 2009)

잭 스웨거
(2010)

WWE 슬래미 어워드 올해의 슈퍼스타

존 시나
(2010)

CM 펑크
(2011)

존 시나
(2012)


  1. [1] WWE 이적 후, 2009년 S.E.S 결성 전까지는 슈퍼스타를 썼고 결성 후에는 세이비어로 살짝 바꿨다.
  2. [2] WWE 시절 프로필상 체중은 99kg(218파운드)였다. 펑크 본인이 Inside MMA와 인터뷰에서 말하길, 처음 UFC와 계약했을 때만 해도 220 파운드 가량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웰터급(77kg) 데뷔를 목표로 하는 중.
  3. [3] 원조는 텐잔 히로요시가 사용한 동명의 기술. ROH 활동 후반부터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실 원조 아나콘다 바이스가 아니라 아나콘다 초크와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였다. WWE에 데뷔 이후부터 제대로 된 형태로 사용했다. WWE에서는 데뷔 초반에만 몇 번 쓰고 그 이후로는 쓰지 않았으나 언더테이커와의 타이틀전을 섭미션 매치로 치르게 됨에 따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 때문에 일부는 야매기술을 자기꺼처럼 썼다고 깠었다.
  4. [4] 또한 WWE 초창기에는 사이드 슬램으로 상대를 쓰러뜨린 후, 아나콘다 바이스로 연계하는 식으로 사용했는데 텐잔의 아나콘다 버스터 - 아나콘다 바이스 연계를 오마쥬한 듯. 하지만 딱히 반응이 좋지 않았고 다시 아나콘다 바이스를 사용할 때는 사이드 슬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5. [5] 원조는 KENTA의 go 2 sleep. CM 펑크는 go to sleep으로 이름을 살짝 바꿔 사용했다. 해설진들이 이것을 GTS로 간략하게 부르면서 GTS로도 자주 불린다.
  6. [6] 탑로프 페디그리. WWE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며 페디그리와 겹치는 것도 있지만 공중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니 부상 위험도 높아서 WWE에서 자연스레 봉인시켰다. 펑크가 일본 선수들 기술을 피니쉬로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다.
  7. [7] 킬스위치 인게이지가 불렀다. 이 테마는 원래 2006년 저지먼트 데이의 테마곡으로 랜디 오턴이 펑크보다 먼저 사용한 적이 있다. 2006년 3월 3일 스맥다운에서 딱 한 번. 원래 Mercy Drive의 Burn in my light를 테마로 썼던 랜디 오턴은 자기 테마를 정말 싫어해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직접 음반가게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이 곡을 찾아 WWE에게 이걸로 써달라고 했다. 문제는 관객의 반응이 시망...그 다음주에 바로 Burn in my light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에 현재의 테마 Voices로 안착. 그리고 랜디가 버린 곡을 펑크가 사용하게 된다. WWE 측에서도 계약이 남았던 건지, 괜찮은 곡이라서 그런지 그대로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WWE가 선정한 위대한 테마곡 21위에 올랐다.
  8. [8] ROH 시절 사용하던 테마로 WWE로 이적하면서 This Fire Burns를 쓰다가 2011년 7월 25일자 RAW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존 시나의 경기가 끝난 후에 엉뚱한 음악이 나오자 당황해하던 팬들이 펑크가 나오자 환호하는 것이 포인트. ### 대중의 무지함과 이들을 주무르는 카리스마적 사회지도자에 대한 반발을 드러내는 가사 역시 안티 히어로 테제를 지향하는 CM 펑크의 정체성과 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곡의 원작자인 밴드 리빙 컬러(Living Colour)는 정말 보기 드문 흑인 메탈 밴드로 유명하다. WWE는 이 테마곡을 그들이 선정한 위대한 테마곡 32위에 올렸다.
  9. [9] 개최지는 바로 펑크의 고향인 시카고.
  10. [10] 펑크가 입장할 때 외치는 문구. 판타스틱 4더 씽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직역하자면 '때려눕힐 시간이다'
  11. [11] 21세기 이후 최장기간 WWE 챔피언이었던 펑크의 434일의 WWE 챔피언 집권 기록. 최장기 월드 챔피언쉽 보유 기록은 WWE 유니버설 챔피언십을 보유했었던 브록 레스너가 2018년에 갱신했다. 다만 풀 타임 레슬러였던 펑크와 다르게 레스너는 파트타이머여서 방어 기록이 1년에 10경기가 안되는 기록이 차이점이다. 구시대의 레슬러들까지 합쳐 최장기간 월드 챔피언십 기록은 브루노 삼마르티노2803일.
  12. [12] UFC에서는 선수의 실력이 대단해도 흥행성이 떨어진다면 파이트 머니를 낮게 준다. 라이트급 챔피언이 된 후 방어전을 하지 않고 돈이 되는 파이트만 노리고 있는 듯한 코너 맥그리거를 비꼬기 위해 맥스 할로웨이가 CM 펑크를 언급한 적이 있다.
  13. [13] 펑크는 리타와 헤어졌던 그 잠깐사이에 다시 베스 피닉스와 두 달 정도 사귀었다...
  14. [14] 곧바로 AJ 리와 사귀긴 했겠지만 적어도 함께 공식석상에 참석했던 홀오브페임, 4월까진 커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 [15] AJ가 꼬맹이였던 시절 리타한테 싸인받고 감동해 찔찔 우는 동영상도 찾아보면 있다.
  16. [16] 여담으로 트리플 H는 킬러 코왈스키 도장 출신의 정통파였으며, 본인도 이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7. [17] 펩시 플런지가 WWE에 와서 봉인되었다는 것은 펑크 본인이 '인터넷에서 지어낸 얘기다'라고 부정했다.
  18. [18] '펑크의 결혼식 날에 해고 통보를 보내고 우연이었다고 주장하는 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었지만 적어도 WWE가 이 경우에서는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는 식의 반례를 드는 경우로.
  19. [19] 스팅의 위상과 기믹 수행, 대립 퓨드를 단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들었던 헬프 미 호건이 나온 그 PPV 맞다.
  20. [20] 케빈 내쉬는 비단 에디 게레로 뿐만 아니라 크리스 벤와나 딘 말렌코, 크리스 제리코 같은 덩치 작은 선수들을 싸잡아 저렇게 부르며 깎아내렸다.
  21. [21] 참고 영상.
  22. [22] 근데 진짜 워킹 데드빠인지 WWE 탈단 이후 첫 스케줄이 워킹 데드가 끝나고 방송하는 토킹 데드라고(...) 홍보 문구도 워킹 데드의 슈퍼 팬인 필 브룩스, 일명 CM 펑크이다.
  23. [23]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2013시즌에 우승하였을 때는 다리에 문신을 새겼다.
  24. [24] 카바나는 그 때 해당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내리면 소송이 취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5. [25] CM 펑크가 보낸 해당 메일 전문을 콜트 카바나가 공개를 한 상황.
  26. [26] CM 펑크 불후의 명언(...). 아마 정말로 빈스 맥마흔이 죽기 전까지 WWE의 비판점을 꼬집을 때 반드시 나오지 않을까 싶은 말로 손꼽힌다. 이는 서양권이건 국내 팬덤이건 동일하며, 분명 이제는 좋은 소리는 못 들을 인물로 평가받는 펑크가 끊임없이 재평가의 이야기가 나오고 열띤 논쟁이 있는 것도 반쯤 이 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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