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미 공군의 장거리 정찰기에 대한 내용은 U-2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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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투
U2

멤버

보노, 디 에지,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입성 연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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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4년 헌액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 섀도우즈
1960년대: 비틀즈, 롤링 스톤스
1970년대: 밥 말리,
1980년대: 마이클 잭슨, 마돈나
1990년대: U2, 로비 윌리엄스

2005년 헌액

핑크 플로이드
유리드믹스
아레사 프랭클린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조이 디비전 / 뉴 오더
더 후
킹크스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

2006년 헌액

제임스 브라운
레드 제플린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윌슨
본 조비
프린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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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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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3년 등재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4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1975)

2005년 등재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Pet Sounds> (1966)
존 윌리엄스,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Nevermind> (1991)

2006년 등재

뮤지컬 '쇼보트(Show Boat)' 앨범 (1932)
데이브 브루벡,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 앤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Daydream Nation> (1988)

2007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Burnin'>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8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핸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Thriller> (1982)

2009년 등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7)
더 후, <My Generation> (1966)

2010년 등재

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9)
빌 에반스 외,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7월 25일 녹음)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2011년 등재

캡틴 비프하트, <Trout Mask Replica> (1969)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2년 등재

부커 T.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Purple Rain> (1984)

2013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1977)

2014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Volumes 1 and 2)> (1954)
본 미더, <The First Family> (1962)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79)
U2, <The Joshua Tree> (1987)

2015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더 도어스,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6년 등재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Abraxas> (1970)
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2017년 등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People> (1964)
데이빗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Remain in Light> (1980)
N.W.A,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8년 등재

메를 트래비스, <Folk Songs of the Hills> (1946)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Rumours> (1977)
Run-D.M.C., <Raising Hell>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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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
Grammy Award for Album of the Year
1980년~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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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 1979년

2000년 ~ 201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빌리 조엘

크리스토퍼 크로스

존 레논 & 오노 요코

토토

마이클 잭슨

52nd Street

Christopher Cross

Double Fantasy

Toto IV

Thriller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라이오넬 리치

필 콜린스

폴 사이먼

U2

조지 마이클

Can't Slow Down

No Jacket Required

Graceland

The Joshua Tree

Faith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보니 레잇

퀸시 존스 & Various Artists

내털리 콜

에릭 클랩튼

휘트니 휴스턴

Nick of Time

Back on the Block

Unforgettable... with Love

Unplugged

The Bodyguard: Original Soundtrack Album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토니 베넷

앨라니스 모리셋

셀린 디옹

밥 딜런

로린 힐

MTV Unplugged

Jagged Little Pill

Falling into You

Time Out of Mind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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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
Grammy Award for Album of the Year
2000년~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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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산타나

스틸리 댄

Various artists(사운드트랙)

노라 존스

아웃캐스트

Supernatural

Two Against Nature

O Brother, Where Art Thou? soundtrack

Come Away with Me

Speakerboxxx/The Love Below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레이 찰스

U2

딕시 칙스

허비 행콕

로버트 플랜트 & 앨리슨 크라우스

Genius Loves Company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Taking the Long Way

River: The Joni Letters

Raising Sand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테일러 스위프트

아케이드 파이어

아델

멈포드 앤 선즈

다프트 펑크

Fearless

The Suburbs

21

Babel

Random Access Memories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브루노 마스

Morning Phase

1989

25

24K 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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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그래미 시상식[2]

올해의 레코드상

제42회
(2000년)

제43회
(2001년)

제44회
(2002년)

"Smooth" - 산타나 & 롭 토마스

"Beautiful Day" - U2

"Walk On" - U2

제43회
(2001년)

제44회
(2002년)

제45회
(2003년)

"Beautiful Day" - U2

"Walk On" - U2

"Don't Know Why" - 노라 존스

올해의 노래상

제42회
(2000년)

제43회
(2001년)

제44회
(2002년)

"Smooth" - 산타나 & 롭 토마스

"Beautiful Day" - U2

"Fallin'" - 앨리샤 키스

제47회
(2005년)

제48회
(2006년)

제49회
(2007년)

"Daughters" - 존 메이어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 U2

"Not Ready to Make Nice" - 딕시 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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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출신

아일랜드 더블린

장르

록 음악(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펑크

활동

1976년 ~

소속

머큐리 레코드, 인터스코프 레코드, 아일랜드 레코드

왼쪽부터 애덤 클레이튼, 보노, 디 에지, 래리 뮬렌 주니어.

1. 소개
2. 활동
2.1. 초창기
2.2. 80년대, 성공을 달리다
2.3. 90년대, 실험에 나서다
2.4. 2000년대, 왕의 귀환
2.5. 2010년대
2.6. 그 외
3. 음악적 성향
4. 영향
5. 콘서트
6. 내한
8. 수상

1. 소개

아일랜드의 고공 정찰기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록 밴드 중 하나이자 현대 록 음악의 거장

얼터너티브 록 음악의 시발점

U2는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음악적으로도 수많은 성취를 이끈 레전드 밴드이자 아일랜드의 음악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며, 전 세계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밴드 중 하나이다.

대표곡으로는 'With or Without You',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One', 'Sunday Bloody Sunday',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Pride (In the Name of Love)', 'Beautiful Day', 'Vertigo' 등이 있다.

전 세계 인류 역사상 단일 투어로 110회의 공연하여 100% 전석매진에 1회 공연당 평균 67,000명을 운집시켜 총 730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는 가수는 U2만이 유일무이할 것이다.[3][4]

2. 활동

2.1. 초창기

왼쪽부터 래리, 에지, 보노, 애덤.

1976년 9월 25일, 더블린의 마운트 탬플릿 고등학교[5]에서 지금의 멤버들은 물론, 기타리스트인 딕 에반스(Dik Evans, 1976–1978)[6], 이반 맥코믹(Ivan McCormick, 1976-1976), 피티 마틴(Peter Martin, 1976-1976)과 함께 7인조 밴드로 결성되었다.

몇 주 후, 이반과 피티가 탈락한 뒤에 밴드 이름을 피드백(Feedback)으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이름이 U2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년 뒤인 1977년, 그들은 밴드 이름을 다시 하이프(The Hype)로 변경하고 그 다음해인 1978년에 또 다시 "U2"란 이름으로 재변경하여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CBS의 눈에 띄어 1979년에 데뷔 EP Three를 발매하여 아일랜드 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0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아일랜드(Island) 레코드와 계약하고 데뷔 앨범 Boy를 발표했고, 다음 해에는 두 번째 앨범 October를 냈다. 이 시절의 대표곡으로 "I Will Follow"가 있다.

초창기에는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이트하고 둔탁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밴드였다. 이 시절 평론은 그럭저럭 좋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해 비운의 밴드가 될 뻔했다.

1집과 2집은 당시 유행하던 락의 느낌과 아일랜드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반항기 어린 가사들이 섞여 있다.

즉, 전체적으로 반항기 어린 보이밴드의 느낌이 강했다.

2.2. 80년대, 성공을 달리다

왼쪽부터 래리, 보노, 애덤, 에지. 세월의 풍파를 어떻게 맞은거야...

1983년 낸 앨범 War가 영국차트 1위에 올랐고, 이후 투어에서 매진 공연을 잇따라 만들어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War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반전주의의 메시지를 담은 "Sunday Bloody Sunday"[7]를 비롯한 여러 명곡들을 수록했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를 만나 작업한 앨범 The Unforgettable Fire로 미국에서 차트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이 앨범은 예전에는 다른 앨범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U2의 다른 명반들에 견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시원시원한 분위기가 특징인 밝은 포스트 펑크 넘버 "Pride (In the Name of Love)", U2 팬들이 최고로 치는 곡들 중 하나인 "The Unforgettable Fire"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85년에는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해 존재감을 발산했다. 유투는 원래 "Sunday Bloody Sunday" "Bad" "Pride (In the Name of Love)" 세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보노가 Bad를 부르던 중 객석으로 내려가 여러 여성과 춤을 추면서 "Sunday Bloody Sunday" 와 "Bad"만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여자들은 객석에서 뒤의 사람들에게 밀려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보노가 이를 보고 몸짓으로 여성들을 구하려 하였지만 스태프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결국 직접 내려가 여성들을 밖으로 데려와, 위로하고 껴안아 주며 음악에 맞춰 좌우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에게 U2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불후의 명반 The Joshua Tree를 내놓았다. 전작들에 비해 더 잔잔하고 차분해졌으며,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하면서 세계적인 밴드로 떠오르게 된다. 앨범에 수록된 "With Or Without You"는 세계적인 명곡으로 자리잡았고 그 후로도 널리 불려지는 U2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뿐만 아니라 또다른 빌보드 넘버원 히트곡인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이자 U2 팬들에게는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등의 곡들도 수록되었으며 이 앨범을 통해 U2는 명실공히 80년대 최고의 록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어진 The Joshua Tree 투어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스타디움 공연에 나섰고, 밥 딜런과 같은 다른 뮤지션들과 같이 연주했다. 이 때 미국 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늘 날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라이브 앨범-영화 Rattle And Hum이다.

1988년 The Joshua Tree의 Live 실황과 미국 투어에서 얻은 영감이 담긴 오리지널 곡이 포함된 Rattle And Hum 앨범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 또한 The Joshua Tree에 이어지는 곡조와 분위기등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U2의 인기를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The Joshua Tree 투어 실황과 특설무대에서 공연 모습, 그리고 "Desire", "Angel of Harlem" 등의 연주장면도 포함되었있다. 특히 현악 세션을 도입한 아름다운 발라드곡 "All I Want is You"가 영국 차트에서 4위에 오르면서 히트하게 된다.

라이브 실황은 레파토리로 꼭 들어가고 사랑받는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와 "Pride (In the Name of Love)"등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흑백으로 담긴 카우보이 모습, B.B. King과의 멋진 무대를 보여준 "When Love Comes to Town"은 지금까지도 명 앨범 - 명 실황영상으로 불리우고 있다.

2.3. 90년대, 실험에 나서다

왼쪽부터 애덤, 에지, 보노, 래리.

그러나 이후 멤버 간 음악적 견해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 보노와 에지는 좀 더 세련된 팝을 원했던 반면 애덤은 본연의 둔탁한 하드 록과 포스트 펑크를 원한 것이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One"을 녹음하며 갈등을 봉합하고 1991년 Achtung Baby를 내놓는다.[8]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는 얼터너티브 록일렉트로니카 , 인더스트리얼, 매드체스터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또 이때부터 활발한 사회 활동도 시작했다.[9] 앨범의 대표곡으로는 아름다운 가사와 잔잔한 멜로디로 U2 최대의 명곡으로 자주 꼽히는 "One", 특유의 강렬한 베이스라인이 인상적인 "Mysterious Way", U2의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등이 있다.

1993년 내놓은 Zooropa 앨범은 평은 괜찮았지만,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적인 성공에도 실패하면서 U2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10] 하지만 이 앨범에 Stay (Faraway, So close!) 라는 명곡이 숨어 있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독했던 빔 벤더스가 작업했는데,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모티브로 작업한 명작이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 없이 작업한 1997년 작 Pop 앨범은 차가운 외면을 받았으며 이때가 U2 최악의 슬럼프라고 볼 수 있다.

2.4. 2000년대, 왕의 귀환

왼쪽부터 에지, 애덤, 보노, 래리.

이를 의식했는지, U2는 실험을 끝내고 2000년대에는 다시 본래의 록 사운드로 돌아갔다. 마법의손브라이언 이노음악치트키가 다시 참여한 2000년 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은 U2 본연의 밝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록을 더 현대적으로 이끌어 낸 개성있는 사운드가 특징으로, 그래미상 주요 부문을 휩쓸었고, 22개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대표곡인 "Beautiful Day"도 크게 히트하며 각종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평단도 호평 일색으로 정상으로의 귀환을 축하했다.

2002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연을 열었다. 2004년에는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발표하였다 투어를 통해 전세계의 돈을 쓸어갔다. 팬들에게는 U2의 현대 앨범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이 앨범은 거친 얼터너티브 트랙 "Vertigo", 조용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발라드곡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U2 본연의 사운드를 들려준 "City of Blinding Lights" 등의 곡들을 수록하며 역시나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건재한 판매량을 보여주며 상업으로도 전작을 성공을 이어갔다.

그 유명한 "Live Aid"의 20주년이기도한 2005년에는 "Live 8"를 진행하는데 주축이 되어 공연을 성공리에 진행하였다. 1985년 당시 갓 주목 받던 밴드에서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된 덕분에(?!) 폴 매카트니경과 함께 시작을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비틀즈의 명곡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듀엣으로 열창하였다. 폴 매카트니경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보노가 인상적이다

2005년에는 로큰롤 명에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9년에는 No Line on the Horizon을 내놓았다. 앨범의 "No Line on the Horizon"은 파격적인 얼터너티브 트랙으로 평가되었고 전체적인 작품성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전과 같은 상업적 성공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는 360°투어를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큰 공연무대를 만들어 엄청난 조명놀이를 벌였다.

2.5. 2010년대

왼쪽부터 애덤, 에지, 보노, 래리.

2013년 말에는 1978년부터 35년간 함께한 매니저 폴 맥기네스가 떠났다. 그리고 마돈나의 매니저로 유명한 가이 오시리가 새 매니저가 되었다. 그의 영향인지, 유투는 공식 SNS 계정을 활성화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위터 공식 계정을 U2.com에서 U2로 바꾸어 팬들의 의견을 물은 뒤 반응을 리트윗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텀블러 계정을 만들고 움짤을 올리기도 했다.

한동안 새 앨범 발매 소식이 없었는데, 새 앨범이 정말 뜬금없이 발표되었다. 2014년 9월 9일에 itunes 독점으로 새 앨범 Songs of Innocence를 무료로 뿌렸다! 정식 앨범 발매 예정일은 2014년 10월 13일.그리고 아이튠즈는 지워지지 않는 스팸을 보낸다고 까였다. 이후 수정으로 해결. 앨범의 평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편이고, U2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련되고 모던한 트랙 "Sleep Like a Baby Tonight"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Songs Of Experience라는 새 앨범을 준비중이였는데 U2가 싫어하는 그 미국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바람에 연기가 되었다고..

2017년에는 The Joshua Tree의 30주년을 맞아 투어를 돈다. 51개 공연을 3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전석매진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새 앨범과 새 투어 일정을 공개했다... 새 앨범인 Songs Of Experience는 2017년 12월 1일 발매하고, 투어는 2018년 5월부터 시작한다. 이번에도 한국은 안오겠지

2.6. 그 외

애덤 클레이튼(Adam Clayton)은 한때 유투에서 제일 사고를 많이 치기로 유명한 멤버였다. 음주운전에,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으며, 슈퍼모델인 나오미 켐벨(Naomi Campbell)과 짧은 약혼을 하기도 했으나 얼마 못가 파혼하였다.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사고 안 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초기의 진보적 성향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2009년 초에는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으나, 3월 발매한 No Line on the Horizon이 빌보드 1위에 랭크되면서 싸악 묻혀버렸다.

앨범이 나왔다 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쓸어가는 밴드이다. 지금까지 총 6회의 시상식에서 수상했고, 3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2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2006년에는 최우수 록 앨범상, 록 부문 최우수 보컬상, 올해의 노래상 등 5관왕을 석권했다.

여담으로 더블린에서 결성은 됐지만 보노와 래리만 아일랜드 사람이다.

미션 임파서블 영화 1편에서 시리즈의 테마를 멤버인 래리와 애덤이 연주했다.

의외로 글래스톤베리에는 딱 한번만 섰다. 이것저것 잘 안 맞아서[11] 출연을 안하고 있다가 2011년에 헤드라이너로 섰는데 그 당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전세계 록팬들은 흥분했고,[12] U2도 굉장히 흥분하여 굉장한 무대를 선보였다.

3. 음악적 성향

이나 라디오헤드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U2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많이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데뷔 이후부터 The Joshua Tree까지는 비슷한 음을 반복하는 단순한 기타 연주와 보노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특징이었고 포스트 펑크에 기반을 두었으며 이 시기의 대표곡으로는 I Will Follow, Pride (In the Name of Love), Sunday Bloody Sunday,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등의 곡들을 들 수 있다. 이때까지는 흔히 조슈아 트리로 대표되는 U2스타일을 큰 변화없이 좀 더 성숙하게 다듬어가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Rattle and Hum 앨범부터는 차츰 곡들의 사운드나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90년대에 발표한 세 앨범들인 Achtung Baby, Zooropa, Pop에서는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들을 융합하여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다. 시원하게 내지르던 보노의 보컬은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였고 기타 역시 기존에 비해 더 어둡고 탁한 소리로 변했으며, 이 시기 대표곡들인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Mysterious Ways, Stay (Faraway, So Close!) 등의 곡들을 들어보면 기존의 U2가 보여주던 것과는 다른 독특한 색깔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Pop 앨범이 대중적으로 실패하고 많은 골수팬들이 등을 돌리자 이를 인식한 U2는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80년대 앨범들처럼 밝은 분위기와 대중적인 스타일을 띠고 있지만, 초기 U2의 아이덴티티인 쟁글거리는 일렉 기타 사운드와 특유의 둔탁함에서 벗어나 얼터너티브 록, 모던 팝 등을 접목시켰고 더 넓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그 후에는 90년대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앨범마다 장르를 조금씩 바꿔가며 크고 작은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다. Beautiful Day, Walk On 같이 대중적인 곡들도 있고, Vertigo 같은 하드한 얼터너티브 곡도 있으며, Ordinary Love 같은 몽환적인 모던 록 트랙이나 Moment of Surrender 같은 가스펠 분위기의 대곡들도 존재한다. 이 시기 U2의 장르를 보통 얼터너티브 록, 팝 록으로 분류하지만 하지만 많은 장르들을 포용하고 있는 만큼 뚜렷하게 어느 장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이처럼 시대마다 계속해서 음악 스타일의 변화를 겪었지만 그 속에서도 U2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고, 실험적인 밴드와 대중적인 밴드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것이 U2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사 역시 U2 음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인데, One 같이 아름다운 내용을 담은 곡도 있고, Sunday Bloody Sunday 같이 사회적인 아픔을 거칠게 토로하는 곡도 있다. 음악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13] 가사 면에서는 록 밴드들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곡들 하나하나의 내용적 의미가 깊은 밴드이다.

4. 영향

현재 음악계에 가장 영향을 준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 많은 음악인들에게 무수한 영감과 파급력을 준 밴드.

좀 과장하자면 소위 모던 록을 구사하고 있는 밴드들 중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밴드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특히나 각국의 인디 씬에서 주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모던록 밴드들 중에서는 U2와 거의 똑같은 스타일을 구사하는 밴드가 많다.

미국 출신인 더 킬러스라이브가 이들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존경의 표시를 하기도 했으며, 최근 밴드들 중에서는 콜드플레이 음악적 성향이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4]

오아시스의 멤버였던 노엘 갤러거는 U2의 사회활동을 비꼬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U2의 음악은 넘사벽이며 비틀즈의 음악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물론 그 와중에 원쑤같은 동생놈디 에지문서를 보면 알 수 있는 엄청난 이펙트 중심의 사운드를 깐다. 뮤즈도 2010년 글라스톤베리에서 U2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를 초청해서[15]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불렀다. 30 Seconds to Mars의 경우에도 정규앨범 This Is War로 U2의 영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으며, MTV Unplugged 라이브에서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커버했다.

멤버들이 음악활동 외에도 인권 및 반전운동,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가이다. 대표곡들 중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 많이 있으며, 보노는 매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에서는 안습이지만, 락음악을 하는 많은 뮤지션에게는 영향을 끼쳤는데 한국의 보노라고 불리는 이승열이 대표적이고, 윤도현도 영향을 받았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가끔 With or Without You 등을 어쿠스틱 연주하는 U2의 팬이다. 박정현은 R&B 요정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락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좋아하는 락밴드로 항상 U2를 꼽는다. 나는 가수다에서 편곡해서 부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 U2의 색체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5. 콘서트

U2를 최고의 밴드로 올려놓은 데에는 물론 노래도 있었지만, 공연이 엄청난 공을 세웠다. 공연에 있어서 대단한 혁신을 가져왔는데, 특히나 공연용 조명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일으켰다. 각 투어를 간단히 읊어보자면

Zoo TV Tour - U2가 본격적으로 스타디움을 돌기 시작한 첫 투어. 36대의 대형 LCD 스크린을 설치했다.

Popmart Tour - 초대형 곡면 LED 스크린을 설치했다.

Elevation Tour - 무대 바닥에 조명을 설치한 하트모양 무대에 위에는 각 멤버들은 띄워주는 4대의 스크린을 설치했다. 슈퍼볼을 출전한 것도 이 투어.

Vertigo Tour - 북미 투어에서는 LED 발광 커튼을 설치한 타원형 무대를 사용했다. 유럽 투어에서는 평범한 스테이지를 사용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U2 360° Tour - 360도 회전하는 다리를 갖춘 초대형 원형 무대 위에 가변형 디스플레이가 달린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서트 투어로, 매출액이 7억 달러가 넘는다.

등이 있다. 이러한 무대는 전부 윌리 윌리엄스라는 무대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그는 War Tour 이후로 U2의 모든 투어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멤버들도 그에게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360° Tour 이후로는 비주얼 아트와 무대장치를 적극 활용하여 단순한 노래부르고 즐기는 콘서트가 아니라 뮤지컬 같은 종합예술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6. 내한

지금까지 단.한.번.도 내한을 한적이 없고 록 팬들 사이에선 통일한국이 되지 않는 이상 안올거라는 말이 있다. 한 때 콜드플레이와 함께 내한 오기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졌으나, 콜드플레이도 2017년 내한이 성사되면서, 사실상 내한 오기의 최종보스로 남았다.

내한 오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 말이 있는데, 일단 한국에서 U2의 인지도는 안습이다. 그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U2는 한국에서 맞지않는 포스트 펑크 장르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인적이 없어 한국에서는 U2는 아는 사람만 겨우 아는 록밴드가 되었다.콜플은 한국팬 만나서 이야기 하기라도 했지 이런 상황인데 U2가 손해를 감수하고 팬들을 만나러 올리가 없다. 한국에서 록의 인지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처참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활동하는 '밴드' 중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임에도 인지도가 바닥을 기어다니는 것이 신기할 정도. 또, 만약 손해를 매울려면 공연기획사는 공연장에서 광고등을 해야하는데, U2가 공연장 무 광고 원칙이 있어서 기획사들이 섭외를 더 안하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큰 문제는 공연을 할 공연장이 없다는거다. 일본엔 도쿄돔등 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수 있는 돔이 꽤 있지만 한국엔 공연용으로 쓸수있는 돔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U2의 개런티는 30억 이상인데,[16] U2가 듣보잡인 한국에서의 공연으로 그것도 공연티켓만으로 비용을 메꿀수없다. 그리고 관객이 충분해도, 그 인원을 수용할 돔이 없다. 결국...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예전에 U2 매니저가 한 말을 보면

매니저: 아시아에서는 우리들이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없다. 하지만 이 아시아 안에 '일본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 말을 보면, U2는 일본은 아시아와 다른 개별시장이고, 한국은 그냥 아시아국이라고 인식한다는걸 볼수있다.[17] 따라서 이분들은 아예 생각이 없는 거다.그냥 마음 편하게 일본 가서 보자[18] 물론 일본 공연문화 특성상 방방뛰는 건 불가능할 지도...

7. 음반

U2/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

8. 수상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3년 등재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4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1975)

2005년 등재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Pet Sounds> (1966)
존 윌리엄스,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Nevermind> (1991)

2006년 등재

뮤지컬 '쇼보트(Show Boat)' 앨범 (1932)
데이브 브루벡,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 앤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Daydream Nation> (1988)

2007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Burnin'>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8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핸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Thriller> (1982)

2009년 등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7)
더 후, <My Generation> (1966)

2010년 등재

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59)
빌 에반스 외,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7월 25일 녹음)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2011년 등재

캡틴 비프하트, <Trout Mask Replica> (1969)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2년 등재

부커 T.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Purple Rain> (1984)

2013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1977)

2014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Volumes 1 and 2)> (1954)
본 미더, <The First Family> (1962)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캐스팅 앨범 (1979)
U2, <The Joshua Tree> (1987)

2015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더 도어스,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6년 등재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Abraxas> (1970)
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2017년 등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People> (1964)
데이빗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Remain in Light> (1980)
N.W.A,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8년 등재

메를 트래비스, <Folk Songs of the Hills> (1946)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Rumours> (1977)
Run-D.M.C., <Raising Hell>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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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
Grammy Award for Album of the Year
1980년~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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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 오노 요코

토토

마이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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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Cross

Double Fantasy

Toto IV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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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리치

필 콜린스

폴 사이먼

U2

조지 마이클

Can't Slow Down

No Jacket Required

Grac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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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 존스 & Various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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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휘트니 휴스턴

Nick of Time

Back on the B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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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니스 모리셋

셀린 디옹

밥 딜런

로린 힐

MTV Unplugged

Jagged Little Pill

Falling into You

Time Out of Mind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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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
  2. [2]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3. [3] 당장 이 밴드의 오프닝으로 서는 밴드가 스노우 패트롤, 뮤즈, 인터폴, 아케이드 파이어 등이다... 신인 때 오프닝으로 섰었다는 게 아니라 전부 성공한 후인 2009년 이후의 이야기다.
  4. [4] 현재에 들어서는 U2보다 음반이 많이 팔리는 가수도 있고, U2보다 평론이 좋은 가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U2만큼의 관중동원력을 가진 가수는 없다.
  5. [5] 정확히는 세컨더리스쿨로 우리로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섞인것이라보면된다. 당시 U2 멩버들의 학년은 한국으로 치자면 고2-3정도.
  6. [6] 디 에지이다.
  7. [7] 피의 일요일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 해당 문서 참조.
  8. [8] 갈등은 봉합하고 불화는 벗어나지만 음악적 주도권은 전반적으로 보노와 에지에게 넘어갔다. 그전까지 간단하지만 개성있던 베이스와 드럼 라인은 이후 근음/비트 셔틀로 상당히 간소해지게 된다. 초기 U2를 좋아하던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
  9. [9] 이 시기의 사회 활동으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작업한, 보스니아 내전을 비판한 "Miss Sarajevo" 싱글 발매가 있다. 1997년 Popmart 투어 때는 직접 사라예보로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10. [10] 실제로 이 당시 앨범은 실패했지만 투어는 돌아야겠는데 Zoo Tv Tour는 당대 최신 기술의 집합이라 당시 밴드가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11. [11] 1982년에 나오기로 했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공연 직전 취소.2010년엔 원래 헤드라이너로 확정이 되있었지만 보노의 허리 통증으로 취소되고 고릴라즈로 대체됐었다.
  12. [12] 글래스톤베리 측에서도 U2를 위해 특별히 캣워크를 설치했다.
  13. [13] 특히나 골수 메탈 팬들 중에 U2의 노래가 재미가 없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14. [14] 주로 조니의 기타가 디 에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5. [15] 원래 U2가 첫째날 헤드라이너 였지만 보노의 허리 통증으로 인해 캔슬되고, 고릴라즈로 대체됐다. 뮤즈는 둘째날 헤드라이너였다.
  16. [16] U2급의 아티스트를 섭외하려면 현대카드 정도밖에 없는데, 현대카드조차도 최대 20억을 쓴다고 알려져있다...
  17. [17] 사실 이건 U2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견해가 그렇다. 실제로 일본의 음악시장이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다.
  18. [18] 이 말도 의미가 없는 것이 현재는 일본에도 10년 넘게 안 오고 있다. 매진조차 안 될지도 모르는 아시아 몇개국을 위해 태평양까지 건너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음악 시장이 가장 크고 U2의 인기도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일본조차 POP MART 투어 당시 도쿄돔 매진 실패했으며, 이후 몇몇 투어도 3만석 내의 작은 규모로 진행했다. 당시 이미 스타디움을 전석매진시키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이던 것에 비해 초라한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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