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JAPAN

X JAPAN

밴드명

X JAPAN

레이블

EMI

소속사

William Morris Endeavor Entertainment

발생지

일본 지바다테야마

활동시기

1982년 ~ 1997년

2007년~현재

장르

록 음악

메탈

발라드

멤버

YOSHIKI (드럼 & 피아노)

Toshl (보컬)

PATA (기타)

HEATH (베이스)

SUGIZO (기타 & 바이올린)

HIDE (기타)

TAIJI (베이스)

공식 사이트

The Official X Japan Website

1. 소개
2. 멤버
3. 패션 컨셉
4. 음악 특징
4.1. 한국에 준 영향
5. 일대기
5.1. X
5.1.1. 인디즈 시절
5.1.2. 메이저 데뷔
5.2. X JAPAN
5.3. 해체에서 재결성 이전
5.4. X JAPAN의 재결성 이후
5.4.1. 2008~2014
5.4.2. 2014~2017
5.4.3. 2017~현재
6. 대마신오인조(大魔神五人組)
7. 디스코그래피
7.1. 정규 앨범
7.2. 싱글
7.3. 라이브 앨범
7.4. 컬렉션 앨범
7.5. 리마스터 앨범
7.6. 사운드 트랙 앨범
8. 라이브 콘서트 투어

1. 소개

1990년의 X

일본의 록 메탈계를 대표하는 레전드 밴드일본의 비틀즈 퀸

1982년 일본 치바에서 결성돼 1997년 밴드 해체를 거친 이후 2007년 영화 쏘우 4에 수록된 OST 곡 I.V 를 발표하며 재결성하였다. 밴드명의 유래는 당시 긴 이름의 밴드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기 위해서 짧은 이름을 택했으며, X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1992년에 세계 진출을 선언하면서 동명의 이름을 가진 밴드가 있었기 때문에 HEATH의 가입과 동시에 X JAPAN으로 개명했다.

이들에 대한 대중의 평은 실제 이상의 과대평가와 그로 인한 반동에서 비롯한 과소평가의 양극단을 오가지만 헤비메탈이란 장르를 일본의 메이저 음악 시장에 올[1]리고, LUNA SEA, GLAY의 신인 밴드들을 발굴하면서 비주얼계라는 일본 록 특유의 성향을 개척했다는 점, Dir en grey부터 나이토메아 등 수많은 후배 밴드, 팔로워를 양산해내고 있는 점, 메탈 밴드로서 밀리언 셀러를 달성[2]하고 1992년에는 일본인 아티스트 최초로 3일 연속 도쿄 돔 콘서트를 성사시킨 일화[3] 등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일본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 이다. 또한,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열고 이어나가게 되는데 크게 기여를 한 밴드이다. 그 당시 일본 문화에서는 충격 그 자체라고 불리기도 한다.[4]

기본적인 구성은 트윈 기타로 기타 솔로부분을 두 기타가 나누어서 연주하며, 보통 파타가 백킹 부분을 히데가 리딩 부분을 연주하였다. 근데 배킹과 리딩이 분명 따로이긴 한데, 딱히 내용상 큰 차이를 가지지는 않는다. 단 곡에 따라 차이는 존재한다.

국내에선 90년대 당시 반일감정과 함께 퍼진 루머로 인해 태극기를 찢고 태웠다는 루머가 퍼졌고 현재에도 믿는 사람이 많다. 방송에서 대놓고 그러한 발언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믿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과방송을 여러 번 했음에도 진짜처럼 퍼졌다. 관련기사 당시 퍼졌던 영상. 확연하게 태극기가 아님을 볼 수 있다.

2. 멤버

멤버 일람

드럼

피아노

보컬

베이스

기타

기타

바이올린

현 멤버[5]

YOSHIKI

Toshl

HEATH

PATA

SUGIZO

HIDE

전 멤버

ATSUSHI

TERRY

EDDIE

HIKARU

TOMO

HALLY

JUN

ZEN

KERRY

SATORU

ISAO

멤버 변동 내역[6]

드럼

피아노

보컬

베이스

기타

기타

바이올린

1982년

YOSHIKI

Toshl

ATSUSHI

TERRY

1984년

YOSHIKI

Toshl

ATSUSHI

TERRY

TOMO

1985년 6월

YOSHIKI

Toshl

ATSUSHI

TERRY

EDDIE

1985년 10월

YOSHIKI

Toshl

TAIJI

JUN

HALLY

1985년 11월

YOSHIKI

Toshl

TAIJI

JUN

1986년 1월

YOSHIKI

Toshl

HIKARU

ZEN

1986년 4월

YOSHIKI

Toshl

HIKARU

JUN

1986년 11월

YOSHIKI

Toshl

TAIJI

KERRY

1986년 12월

YOSHIKI

Toshl

TAIJI

KERRY

SATORU

1987년 1월

YOSHIKI

Toshl

TAIJI

ISAO

HIDE

1987년 4월

YOSHIKI

Toshl

TAIJI

PATA

HIDE

1992년 1월

YOSHIKI

Toshl

공석[7]

PATA

HIDE

1992년 8월

YOSHIKI

Toshl

HEATH

PATA

HIDE

1998년 1월

X JAPAN 해체

2007년 10월

YOSHIKI

Toshl

HEATH

PATA

공석[8]

2009년 5월

YOSHIKI

Toshl

HEATH

PATA

SUGIZO

2.1. YOSHIKI

YOSHIKI

본명

하야시 요시키 (林 佳樹)

출생

1965년 11월 20일, 일본 치바현 타테야마시 (52세)

공식 사이트

Yoshiki Official Website

본명은 하야시 요시키(林佳樹). X 원년 멤버로서 토시와는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의 오랜 친구[9]로 밴드 내에서의 포지션은 드럼과 피아노. 9세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작해 [10] 10세부터는 트럼펫, 11세부터는 드럼을 시작했다. X JAPAN의 리더의 포지션으로, 메인컴포져로서 역대 멤버들 중 가장 많은 작/편곡 담당하는 한편, 여자보다 여자 같은 비주얼, 과격하고 화려한 솔로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어필하면서 코어팬층을 형성한 멤버이기도 하다. 또한 직접 자주 레이블인 Extasy Records 설립하여 밴드의 비지니스적인 부분을 전담하였다. 적극적인 미디어 노출과 프로모션으로 X JAPAN 의 상업적 성공을 이끈 한 축으로 평가되나, 지나친 상업주의적 노선으로 동종 업계나 팬들의 찬비양론을 불어일으키기도. 과거의 파천황적이고 독단적인 행보와 그의 사업가적 면모에 코어 팬 못지 않은 안티를 양산기도, 이로 인해 Yoshiki 본인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달리는 편이다.[11]

어려서부터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아오는 등, 클래식음악은 그의 음악에 큰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데, 피아노나 스트링스 등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편이다. 그에 따라서 그가 작곡한 Endless Rain, Unfinished, Say Anything .. 등 발라드 넘버에 대한 평가가 높은 편이다. 멜로디 메이킹에 있어서는 탁월한 센스를 발휘한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여담이지만, 작곡 시 악기를 쓰지 않고, 전 파트를 보면에 쓰면서 작곡을 한다고 한다. 덕택에 X JAPAN 의 악곡은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고、hide 같은 멤버가 초창기에 Kurenai 같은 악곡을 소화하지 못해 고생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철저한 보컬 위주의 작곡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따라 X의 곡 대다수가 보컬인 Toshi의 키에 맞춘 D# 스탠다드 튜닝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보컬위주의 작곡 스타일로 인해, 1997년에 보컬인 Toshi가 탈퇴를 선언할 때, X JAPAN의 해산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헤비 메탈 곡조에선 비교적 부족한 면모를 보인다는 평가도 많다. 멤버 타이지와의 탈퇴 이후 작/편곡을 두루 전담한 X JAPAN 시절의 곡들은 요시키 작곡에 타이지-히데 편곡의 X 시절을 지지하는 팬에게선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한국 팬들 사이에선 Yoshiki 의 편곡 능력에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12] 하지만 이와 같은 평가가 Yoshiki 란 인물에 대한 개인적 호오가 섞인 기술이 많기에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밴드음악이란 것이 멤버 간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것이에, 편곡 크레딧만을 가지고 편곡 실력이 낮다느니 음악적 역량을 평가하기엔 논리적 비약이 많다.

실력적인 측면에서도 평가도 많이 엇갈리는 편인데, [13] 정상급 테크니션이라기에는 부족하지만 X JAPAN 의 악곡의 높은 난이도를 생각할 때 프로뮤지션에 걸맞는 드럼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드럼 실력에 관한 눈에 띄는 큰 단점이라면 곡을 연주함에 있어서 드럼이 가져가야할 가장 중요한 기본기인 균일한 BPM 유지하지 못 한다는 점이 있다. [14] 피아노 실력도 솔로 아티스트로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을만큼 준수한 실력이다. X 라이브에서도 화려한 피아노 퍼포먼스를 보이는 건 물론이고, Yoshiki Classical 이란 타이틀로 단독 투어를 돌 정도. 일본 덴노의 즉위 10주년 축전에 아티스트로 초청되어, 특별히 작곡한 Anniversary 를 연주하기도. 물론 극악의 스케줄로 몸을 혹사한 탓에, 측간판 헤르니아, 건초염 등의 질환을 앓으면서 실력적 역량이 보다 축소되긴 했다.

인터넷 상의 실력적 논란과는 별개로, 일본 세간에선 헤비메탈의 투 베이스 드럼의 화려한 플레이를 널리 알린 드러머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비주얼계 드러머 사이엔 Yoshiki 를 롤모델로 언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편. [15]

현재는 과도한 상업성의 추구와 고질적인 신보의 발매 연기[16] 로 인해, 팬들의 원성을 많이 사는 편이다. 결국 2017년까지 발매는 불투명한 미궁 속으로. 연내 발매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지만, 현재 5월 SNS나 여러 인터뷰에서의 코멘트를 볼 때 발매 연기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

이런 저런 논란에 휩싸이는 인물이고, 밴드 운영에 있어서 독선적이다란 평가를 받지만. 아래 문단의 팀 보컬이자 자신의 소꿉친구인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을 당시 오랜 기간 동안 그를 설득시켜 사이비 종교에서 빼내어 재기를 도와준 인물이기도 한데, 이처럼 리더로서 멤버에 대한 애정과 의리를 가끔 보여주기도 했다. 설득 당시 "토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무대 위의 마이크 앞이야" 라는 말이 토시가 재기하는데 결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X JAPAN의 곡에서 작사가 白鳥 瞳(시라토리 히토미), 白鳥 龍(시라토리 류), 橘 朋実(타치바나 토모미), 五十嵐 美由姫(이가라시 미유히메)는 전부 요시키가 작사를 할 때 쓰는 가명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2. Toshl[17]

Toshl

본명

데야마 토시미츠 (出山 利三)

출생

1965년 10월 10일, 일본 치바현 타테야마시 (52세)

공식 사이트

Toshl Official WEBSITE 武士JAPAN

본명은 데야마 토시미츠(出山利三). X의 원년 멤버로서 요시키와는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의[18] 오랜 친구로 맑고 깨끗하면서도 특색이 강한 미성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데 처음 소년기에 요시키와 밴드를 결성하던 시절에 담당하던 포지션은 기타리스트였지만 중학교 재학 중 본래 보컬을 담당하던 멤버가 사정이 생겨 밴드를 나가게 되어, 이를 계기로 요시키의 권유를 통해 보컬로 전향하였다.[19]

1987년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특유의 맑고 깨끗하면서도 특색이 강한 미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동년 가을경 X가 본격적인 밴드 활동에 앞서 팀의 재정비에 돌입한 뒤 1987년 겨울 X의 활동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기존의 맑은 미성에 허스키함을 가미하는 쪽으로 변화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와 더불어 X의 음악, 특히 요시키의 요청에 따라 토시는 그가 만족할 때까지 레코딩에서도 라이브에서도 있는대로 목을 혹사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활동 양상으로 말미암아 토시의 목에는 심대한 무리가 작용하였고 결국, 1995년 겨울 달리아 투어를 통해 X JAPAN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이르러서는 음역의 하락과 동시에 과거 컨디션이 호조일 시에 보이던 특유의 시원 시원하던 매력 역시도 상당 부분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후 1997년 라스트 라이브와 뮤직 스테이션 및 홍백가합전에서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1998년 히데의 장례식에서 연주한 마지막 진혼가를 끝으로 X JAPAN과는 결별, 이후 사이비 종교 HOH의 교주 MASAYA의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사이비 종교 HOH의 광고탑으로서의 활동을 개시, 이로서 보컬로서의 기량은 점차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X JAPAN의 해체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X JAPAN의 재결합 이후 2008년 3월에 있었던 도쿄 돔 3 Days 공연이나 동년 5월의 히데 추모 공연에서는 지난 10년에 이르는 공백으로 말미암아 생긴 기량의 쇠퇴로 인하여 X JAPAN 시절의 곡들은 부르는 것 조차도 버거워 할 정도의 처참한 모습을 보였지만 2008년 3월 도쿄 돔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20] 1년이 지난 2009년에 이르러서는 일단 마구 질러대는 식으로나마 어찌 저찌 X JAPAN 시절의 곡들을 부를 수는 있게 되었고,[21] 2008년 12월 31일 아카사카 블리츠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 2010년 후반기 이후, 2011년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본 기량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22] 2011년 8월 서머소닉 페스티벌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기부금을 전달한 적이 있다. 일본의 유명 그룹의 보컬로써는 대단한 행보이다. 2014년 8월에는 SMAP나카이 마사히로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인 킨스마(金スマ)에 출연, 공중파 방송을 통해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이자 한편으론 가해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해 상세히 밝히기도 하였는데 사이비의 종교의 위험성과 그로서 말미암은 고난의 세월들이[23] 여실히 방송을 통해 전달이 되었는 바 시간이 남아도는 잉여로운 위키러들이라면 한 번쯤은 진득하니 시간을 내 해당 영상을 봐 보도록 하자.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영상이 저작권 문제로 차단되어 잘 정리된 글을 링크한다.

2.3. PATA

PATA

본명

이시즈카 토모아키 (石塚 智昭)

출생

1965년 11월 4일, 일본 치바현 치바시 (52세)

공식 사이트

PATA Official Website

본명은 이시즈카 토모아키(石塚 智昭). 깁슨 레스폴을 애용하는 기타리스트.[24] '파타'라는 예명은 마야 미네오의 만화 파타리로에서 따왔다고 한다.

존재감이 심히 안습하다. 단순 라이브에서의 존재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밴드에 가입하게 된 계기도 요시키의 트윈 기타 라인업 고집으로 인하여 헬퍼로 가입한 것이었고 밴드 운영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요시키와 타이지의 불화 사이에서도 그냥 가만히 있다가 히데의 설득으로 겨우 타이지 편을 그나마 들어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밴드 내에서의 불화를 그나마 중화 시켜주던 실질적 리더 히데나 항상 많이 싸웠던 요시키와 타이지, 그리고 신임임에도 불구하고 요시키에게 히데 사후 반박을 했던 히스 조차도 못할 정도로 밴드 활동 내에서도 거의 발언력 등은 제로. 말 그대로 거의 밴드 내에서는 기타 치는 존재. 나름대로 자기 스스로 터득한 생존법일수도 있다. 파타가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찌보면 파타같은 사람이 요시키에게는 가장 죽이 잘맞는(?) 사람이라 볼 수 있으나,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점은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기타만 치는 세션이 아니라 엄연히 밴드의 멤버인 점을 감안하면.. [25]

플레이 스타일은 리듬파트와 옥타브유니즌 플레이시 저음부를 주로 담당했다. 어떤 의미에서 엑스음악의 기초공사를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좀처럼 나서지 않는 이미지와 기타리스트로서의 기대값 때문에 실력이 상당히 저평가되있는데, 절대 못하는 기타리스트가 아니다 특히 큰 무대를 수십번이나 소화한 연주자인데. 오히려 이미지만큼이나 안정적인 연주력을 보유했는데, 기본에 충실한 블루지한 프레이즈와 특히 리듬리프를 박자 저는일 없이 깔끔하게 소화한다. 이런 부분이 음악교육을 받지 못 한 일반인 눈에는 아무것도 안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칼박이야말로 연주인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기이다.[26] 요시키와 히데의 시도때도 없이 저는 연주에 반해서 오히려 이런 부분은 파타만의 강점이였고,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음악의 안정제 역할을 수행했다. 한마디로 매력과 엣지는 없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연주자... 음악적으로 블루스와 아메리칸 헤비메탈 취향이라 타이지와 함께 하던 시절에는 음악적으로 꽤 죽이 잘 맞는 동료였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실력은 평범한 수준으로 흔히 같은 팀 내의 히데보다 낫다 못하다를 논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 히데 생전 두 사람간 연주를 비교해 보면 서로가 선호하는 바에 대한 차이점은 있었을지언정 현격한 실력차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으나[27] 해체 이전의 마지막 라이브였던 THE LAST LIVE 〜最後の夜〜 공연에서 만큼은 아티스트로서 성장하여 다방면으로 걸쳐 신경이 분산돼 기타리스트로서의 기량은 하락되어 있던 히데에 비해서는 비교적 더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준 적이 있긴 했다. 그 당시 공연을 자세히 들어보면 히데는 연습 부족 [28]으로 자꾸 운지가 나가고, 박자가 절리는 걸 들을 수 있었던 반면 파타는 그에 비해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팬들에게는 멤버들 중 제일가는 애주가로 꼽힌다. 인터뷰에서 받고 싶은 생일선물이 매일 줄지 않고 술이 펑펑 뿜어져 나오는 술병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연주 앨범이었던 요시키의 솔로 앨범인 Eternal Melody와 더불어 솔로 앨범이 먼저 한국에 발매된 멤버 중 하나이기도 하다. 1집과 2집 모두 한국에 발매되었는데, 참여했던 보컬리스트가 하우스 오브 로즈(House Of Lords) 출신의 제임스 크리스찬이었던 지라 일본어 가사의 앨범이 국내에 수입 및 라이센스 금지가 되던 시절에도 영어 가사라는 이유로 멀쩡히 발매가 되었다.[29] 앨범 스타일은 엑스 시절과는 정반대 스타일인 아메리칸 하드 록 스타일. 평상시 그의 존재감 만큼이나 엑스 골수팬이 아니라면 발매 된 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참고로 전곡의 작곡은 파타가 했지만, 히데와는 다르게 기타밖에 칠 줄 몰랐기 때문에 나머지 악기에 대한 편곡은 거의 세션 멤버들에게 맡겼다. 앨범 자체로만 보면 다른 멤버들처럼 솔로 뮤지션으로써의 실력을 보였다기 보다는 그냥 엑스 스타일 이외의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시험삼아 녹음해 봤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30] 그 이외에는 솔로 활동 대신에 히데 밴드에 세션으로 참가하면서 히데와 함께 행동했다.

여담이지만, 요시키에게서 처음 밴드가입제의를 받았을때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요시키에게 '너나 우리 밴드 들어오지 그래?' 라고 하였다고 한다.현재 존재감이라곤 전혀 없는 파타가 정말 그런말을 했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2.4. HEATH

HEATH

본명

모리에 히로시 (森江 博)

출생

1968년 1월 22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50세)

공식 사이트

HEATH Official Website

본명은 모리에 히로시(森江 博) 1992년 1월 베이스 주자였던 타이지의 밴드 탈퇴 후 약 반년간의 공백을 거친 뒤 새로이 영입된 멤버로 히데의 전 여자친구의 애인이라는 인연이 주효하게 작용해 밴드 X JAPAN에 가입하였다. 타이지의 후임을 뽑는 베이스 오디션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덤덤하게 베이스를 연주한 일화는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밴드 가입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밴드내에 끼쳐온 영향력은 전임자였던 타이지와는 다르게 매우 적었다. 화려한 테크니컬 플레이를 선보이는 등 X 내에서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타이지와 비교되게 베이스 실력 자체가 평가 절하되기도. [31] X JAPAN의 후임 베이스 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소화해 내는 데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고 평할 수 있다.[32] 엄연히 완벽주의로 유명한 요시키가 정식으로 주최한 오디션에서 합격한 베이시스트임을 생각할 때, 실력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기에 힘들다고 평가된다. 다만 타이지가 편곡 부분에 있어서 높은 참여도를 보이는 등,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확실히 어필했던 것에 반해, 자신만의 음악적 어필이 부족하고 세션 베이시스트의 인상이 짙은 히스에겐 아쉽다는 평가가 많은 듯. 타이지 탈퇴 전후로 사운드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애초에 타이지와 요시키의 음악적 갈등은 작편곡권 쟁탈전 양상이였고 사운드가 달라진 문제는 오히려 타이지 탈퇴 후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은 요시키가 하고 싶은대로 자신의 음악을 강력하게 하게된 이유가 크다. (히스는 말그대로 신입사원이고 '시켜만 주십쇼' 의 위치인데 당시의 요시키사장님에게 감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취향을 어필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합을 맞추느라 늘 요시키 쪽을 바라보면서 연주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던 이전의 막내 시절과는 달리 재결성 이후로 제법 관록이 붙은 모습이 되었으며 이전보다 뚜렷하게 들리는 베이스 사운드로 팬들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요시키, 토시에 비하면 비중이 여전히 적은 편이지만 이전에 파타와 세트로 공기 취급 당하던 시절보다는 나은듯. 2009년에는 히데에 대해서 요시키와 설전이 있었으며 탈퇴 소동이 일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 밴드내 존재감이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스기조까지 가입하면서 17년만에 막내 탈출.

X JAPAN으로서의 활동외에는 솔로로서의 활동 및 파타, 히데 밴드의 I.N.A와 함께 도프헤즈(DopeHeadz)라는 밴드 결성 활동한 바가 있다.

2.5. SUGIZO

SUGIZO

본명

스기하라 유네 (杉原 有音)

출생

1969년 7월 8일, 일본 가나가와하타노시 (48세)

공식 사이트

SUGIZO Official Website

LUNA SEA의 멤버이자, X JAPAN의 재결성 후 히데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타와 바이올린 포지션으로 합류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6. HIDE[33]

HIDE

본명

마츠모토 히데토 (松本秀人)

출생

1964년 12월 13일, 일본 가나가와요코스카

사망

1998년 5월 2일, 일본 도쿄도 (33세)

공식 사이트

hide official web site [hide-city]

본명은 마츠모토 히데토(松本秀人). 기타리스트. 페르난데스의 시그내처 모델이 따로 있으나 실제 레코딩에서는 깁슨 레스폴을 애용했다고 한다. 멤버들 중 최고의 개념인이자 요시키에 이은 밴드의 2인자.[34] 본인의 영문이름을 밴드에서는 대문자로 표기하고, 솔로활동을 할 때에는 소문자로 표기했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연주력은 극찬받고있다. 음악가로서의 역량과 그것을 관철키 위한 대중에게의 어필 능력과 같은 연예인으로서의 수완은 모두 다 고루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이로서 X JAPAN의 기타리스트로서만이 아니라 솔로로서의 활동에 있어서도 확실한 성공가도를 걷던 인물이었다.(솔로활동을 통해서 직접 노래를 불렀는데 이 당시 히데의 곡은 오리온차트 1위에 올랐었다. X JAPAN내에서 토시뿐만 아니라 히데의 가창력도 인정받았다.)

전에 활동하던 그룹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를 접고 미용사가 되려던 참에 요시키에게 설득되어서 가입했다…는데 한국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잡지 락킨F 1998년 11월호에서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 시절 동료였던 키쿠치(드럼), 쿄(보컬)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해산 이후에도 한동안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의 히데라는 명함을 사용했었다.(히데가 살아있었을 당시 X JAPAN의 의상이 화려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히데가 작업한 것이다.)

요시키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묵묵히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요시키의 독불장군 기질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던 모양으로, X JAPAN 해체 무렵에 방영되었던 NHK 특집 프로 '엑스 저팬의 궤적'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짜증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외에 X JAPAN의 상업화 러쉬에 열받아, "우리들이 1회용 장기말이냐!"며 술 취해서 롯폰기의 길에서 소리지른 적도 있다. 그래도 밴드에 애착이 깊었는지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어 밴드를 탈퇴하고 싶다고 말하자 갑자기 '토시의 목소리 없는 X JAPAN은 상상할 수 없다'며 밴드를 해체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요시키에게 반발하며 밴드의 완전 해체를 끝까지 막으려고 한 멤버이기도 했다.

X 가입 당시 원래 베이스를 맡으려 했으나 타이지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기타로 바꾸었다고 한다.[35] 초기 X의 캐치프레이즈였던 "Psychedelic Violence/Crime Of Visual Shock"는 히데의 작품. 93년을 기점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해서 솔로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솔로 시절에 X JAPAN 시절보다 더 대단한 음악을 보여줬으나 아쉽게도 1998년 5월 2일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사로 사망.

1999년 GMV의 요시키 인터뷰 내용을 보면, 히데 생전에 뉴 X JAPAN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보컬은 기타리스트 히데가 겸할 예정이었으며 4인으로 컴백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당시 요시키에 대한 발언과 X JAPAN에 대한 회의적인 발언을 볼 때 신빙성은 전혀 없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7. TAIJI

TAIJI

본명

사와다 타이지 (沢田泰司)

출생

1966년 7월 12일,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

사망

2011년 7월 17일, 미국 북마리아나 제도 사이판 섬 (45세)

본명은 사와다 타이지(沢田泰司). 멤버들 중 연주력에 있어서 가장 좋은 평을 받았었고 히데와 함께 X의 비주얼에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X 시절 트레이드 마크인 '노발'도 그의 작품이라 한다.[36]

X 시절 명곡이라 불리는 곡들은 거의 TAIJI가 손을 댔다. 요시키의 멜로디 메이킹 감각도 타이지의 편곡능력이 없었다면 빛을 못 보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매우 지배적.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긴 러닝타임의 곡들에 엄청난 몰입도를 부여한 것은 타이지의 편곡이다. 요시키의 원곡에 비해 화려하고 정교해진 I'll kill You와 紅(쿠레나이)가 대표적이다.[37]

엑스 재팬의 노래는 요시키의 멜로디 작곡 능력과 요시키의 멜로디를 락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가 있는 리프로 다듬는 히데의 기타 리프 메이킹 능력, 토시의 특색있는 보컬 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의 벨런스를 적절히 조절하고 정돈하는 타이지의 편곡 능력이 조화되어 널리 사랑받을 수 있었다.

슬랩, 태핑 등 다양한 테크닉을 사용하면서도 이러한 테크닉들이 따로 놀지 않고 곡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뛰어난 베이스 플레이어이며[38], 원래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음악 인생을 시작해서 그런지 클래식 기타 연주에도 실력이 있어서 기타 세션까지 할 정도이다.[39] 엑스 시절 히데와 파타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도 했을 정도로 기타 실력이 뛰어나다. 그의 실력은 엑스의 탈퇴 직후 곧바로 일본의 전설적 헤비메탈 밴드 Loudness에 곧바로 가입했을 정도. 라우드니스의 기타리스트인 타카사키 아키라가 TAIJI를 눈독 들여 놨었다가 탈퇴(사실상 요시키의 해고) 일주일만에 곧바로 데려와 버렸다. 타이지는 타카사키 아키라와 개인적인 친분도 꽤 깊다. 애용하는 모델은 킬러의 Dagger, Impulse 모델을 사용하다가 시그내처 모델인 Phoenix 베이스를 사용한다. 물론 레코딩시에는 펜더 프레시전 베이스를 애용.

요시키의 독재적인 밴드운영에 가장 반발을 심하게 했던 멤버였다. 가입 초창기에는 트윈 기타를 고집하는 요시키에 반발하여 밴드를 일시 탈퇴하기도 했으며 Endless Rain이 발라드와 락의 절묘한 궁합으로 히트하고 멤버들이 발라드 곡 작곡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40] 요시키가 '앞으로 앨범에 들어가는 발라드 곡은 항상 자신만이 작곡한다.'라는 의견에 반기를 들어 <Voiceless Screaming>이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또한 멤버들의 참여를 균등하게 하기 위하여 본래 요시키의 곡으로만 채워질 예정이었던 Blue Blood 앨범에 히데의 곡 <Celebreation>, <Xclamation>을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멤버들 중 가장 창작에 비중이 적었던 토시를 위해서 자신이 작곡한 곡은 항상 토시가 작사를 하게 하였다.

결국 요시키와 잦은 마찰을 겪으며 1992년 도쿄 돔 콘서트를 마치고 해고. 공식적인 이유는 음악성 차이였지만 사실은 Yoshiki의 권고라 쓰고 통보라 읽는다로 인한 해고성 탈퇴였다. 요시키가 혼자 다른 멤버의 두 배가 넘는 인세를 차지하는 데 대하여 항의했던 것이 그 직접적인 이유. [41] 이미 JEALOUSY 앨범 녹음 들어갈 때부터 사실상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의 계약처분을 받았다. '스튜디오 뮤지션'이란 말 그대로 앞으로는 X JAPAN의 정식 멤버가 아닌 세션 뮤지션 취급을 하겠다는 것. 인디 시절 부터 함께 밴드를 이끌던 타이지의 입장에서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을 철저히 붕괴시키는 계약이었을 것이다. 즉 인세문제가 나왔을 당시에 이미 요시키는 타이지를 해고처리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타이지의 문제도 있었다. 약물, 알콜 중독 문제가 있었고 X의 연습을 빠지고 라우드니스친목질을 하러 놀러간 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 도쿄 돔 공연에서도 요시키가 타이지에게 "너는 하루만 무대에 오르고 다른 날은 다른 세션 멤버를 쓰겠다"고 했다가 히데가 요시키를 설득하고 타이지 또한 "도쿄 돔 공연 만큼은 3일 전부 무대에 설 수 있게 해다오"라고 부탁해서 겨우 무대에 섰다고 한다. 이후 벌인 해고 소송에서 패배, TAIJI는 LOUDNESS를 거쳐 Cloud Nine등등…. 헤메고 헤메이다 D.T.R의 실패로 생활고를 겪다가 이혼까지 당하고 홈리스 생활을 전전하다가 불량 청소년들에게 홈리스 사냥을 당하면서 턱이 마비되고 치아가 4개나 부러지거나,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많은 고생을 겪었다.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비운의 천재.

히데의 죽음으로 많은 것을 깨달아 재활 후 2000년에 자서전 '전설의 밴드 X의 생과 사'를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복귀했다. 2005년에 교통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제대로 못 쓰게 되었지만, 이후 자신의 밴드인 D.T.R을 재결성하여 음악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2011년 7월 14일. 미국 사이판으로 향하던 비행기 내에서 여승무원을 폭행하고 기내 좌석과 창문을 발로 차는 등 난동을 부려 체포되었다가 유치장 안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 병원 중환자실에 긴급 후송되었다가 17일에 사망했다. 한때 일본 락계에서도 칭송받던 베이시스트의 허무한 죽음이였다. 여성 매니저와 관련된 음모론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유족 중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친동생이 있는데 정글은 언제나 하레와 구우 애니메이션판 주제가[42]마법전대 마지렌쟈의 엔딩곡을 담당한 Sister MAYO다.

3. 패션 컨셉

그들의 기괴한 화장은 당시 일본의 헤비메탈 붐으로 인해 우후죽순격으로 난무하던 밴드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시도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밴드 KISS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설도 있긴 하지만[43], 사실 이미 일본에선 '세이키마츠' 라는 밴드가 이런 분장을 했었다. 어쨌든 간에 이 화려한 화장과 염색은 대단한 호응을 얻었고, 이는 이후에 후배밴드들이 이어받아 비주얼계라고 하는 일본 록 일부의 독특한 경향성을 형성하게 된다.

*당시 히데가 미용이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맴버들의 스타일을 꾸며주었다.

4. 음악 특징

음악적인 스타일은 유럽의 파워 메탈을 많이 참고하되, 일본식 멜로디와 편곡이 가미된 음악이 되었다.[44]

유럽 파워 메탈의 사생아라고 혹평받기도 하지만, 유럽 쪽에서는 X JAPAN 특유의 스타일로 인정받기도 했다. 유럽의 유명 밴드인 아노렉시아 널보사, 드래곤랜드[45], 소나타 아티카 등이 X JAPAN의 곡을 리메이크했던 게 대표적인 예.

반대로 allmusic.com같은 영미권 평론 사이트에서는 그들의 기타리프나 악곡면에서 자신들만의 것은 별로 없으나 괜찮은 밴드라는 애매한 평가를 내린다.여기서도 중립적인 척 사실은 특정한 '방향'을 고수하는 올뮤직의 성향이[46]

이들의 음악의 장르는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곡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뚜렷한 스타일은 존재하는 편이다. 최소한 리더 요시키가 작곡한 곡들에서만큼은 스피디한 곡과 발라드곡 모두에서 서정성(혹은 뽕끼라고 부르는 동양적 멜로디)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스타일을 발견해낼 수 있다.

다만 요시키가 작곡한 곡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비판도 존재한다. 덧붙이자면 X JAPAN의 노래는 메탈 아카이브에서는 Heavy/Progressive/Power Metal로 구분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 바로크메탈 계열에서 파생된 멜로딕 파워 메탈 쪽으로 구분하고 있다. '바로크 메탈'이 언급되는 것은 멜로딕 스피드쪽이 기타리스트의 잉베이 말름스틴화, 밴드의 메탈리카화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은 공연을 매우 조용히 감상하는 특성이 있어서 메탈리카, 마릴린 맨슨 등도 '일본에서 공연은 그다지… 한국에서 공연하는게 훨씬 즐겁다'는 요지의 말들을 한 바 있는데, X JAPAN의 공연만큼은 그런 일본인치고는 열광적인 호응이 있는 편이다. 특히나 X JAPAN의 X라는 노래의 후렴부분에서는 모든 관중들이 손으로 X표시하면서 점프하는게 압권이다.

과거 십여년 전 국내 팬덤들 사이에서는 X JAPAN에 관해 부풀려진 소문들이 꽤나 돌았었는데, 예를 들면 블루 블러드 앨범이 일본에서 네 가구당 한장씩 팔렸다는 얘기나[47] 요시키가 세계 드러머 3위라는 얘기같은게 있었는데[48] 이런 허황된 소문들이 퍼지는 현상들이 벌어진데에는 당시 일부언론(잡지)사에서 한몫한[49] 경향이 컸다.

당시는 일본문화개방전이었기 때문에 일본문화에 무지한 팬들은 그런가보다 할수 밖에 없었다.

시기 상으로 영미권 메탈이 전성기에 있을때 일본 내에 등장했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으나 음악적으로는 자신들만의 특출난 메탈 리프나 사운드를 가지지는 못했다. 특히 메탈의 인기가 완전히 꺾인 90년대 중반에는 메탈이 거의 배제되고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DAHLIA를 들고나오기는 했지만 작품 활동은 왕성하지 못했고 발라드로서 인기를 끌었다.

4.1. 한국에 준 영향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음악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표절을 당한 밴드 중 하나일 것이다.[50] X의 최고 명곡 중 하나인 ENDLESS RAIN은 국내의 많은 락발라드곡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Don't Cry 등. 코드 진행은 물론 중간의 나레이션이 나오는 부분까지도 비슷하다.

그 외에 SAY ANYTHING같은 곡들도 신문에 언급될 정도로 국내에서 많이 인기를 끌었다. [51] 국내에서는 X JAPAN의 활동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문화 수입을 금하고 있었던 사정도 있고 해서 소수의 팬들에 의해 불법 수입 되었었다. 이 때문에 X의 노래를 듣는 것에서 우월감을 느끼곤 했던 힙스터들이 있었다. 지금에야 일본 문화 개방이 이루어져서 X JAPAN의 음악을 듣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역시 한국 X JAPAN 팬덤의 흑역사인 것은 분명하다.

1993년 발매한 "tears" 라는 곡은 멜로디에 한국 가사만 붙여 M.C the max잠시만 안녕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참고로 저 tears라는 곡은 X JAPAN의 역대 싱글들 중 가장 크게 히트한 곡이다.

참고로 X JAPAN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밖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은 밴드 중 하나였다. 일본 내에서만 보자면 B'z, 미스터 칠드런, 사잔 올 스타즈등 저들보다 훨씬 롱런하고 판매량도 더 우수했던 밴드들이 제법 있었지만 해외에서의 인기는 X JAPAN이 저들보다 더 많았다. 단적인 예로 유튜브에서의 X JAPAN관련 영상이나 곡들의 조회수와 댓글 비중이 일본보다 외국이 더 많을 정도. 참고로 유튜브에서는 일본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AKB48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가요 그룹들은 자신들의 영상이나 곡들의 조회수와 댓글 비중은 일본이 해외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X JAPAN은 이런 경향이 비교적 없는 편.

한국 연예인 팬으로는 서태지,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엑소의 찬열, 슈퍼주니어의 김희철,부활의 김태원, 배우 배두나, 이민정, 이동건, 전지현이 x japan의 팬으로 알려져있다.여담으로 얼마전 세상을 떠난 샤이니의 종현도 중학교때 x japan과 너바나의 노래를듣고 작곡가가 되고싶다고 결심한걸로 알려졌다.

2017년 앨범이 홍콩, 핀란드, 영국(!!) 차트에서 순위권에 든것만 봐도 외국에서의 인기가 상당히 좋은편이다.

5. 일대기

5.1. X

5.1.1. 인디즈 시절

인디 시절의 끝자락이자, 실력적으로 최고상태 시절의 SONY CBS AUDITION 영상

85년부터 도쿄로 올라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인디즈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본격적인 멤버가 자리잡히기까지 2년동안 TAIJI의 탈퇴 후 재가입을 포함해서 12명의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다.

당시에는 X를 가타카나로 エックス라 표기했다. 수많은 레코드사로부터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리더인 Yoshiki가 세운 자주 레이블 Extasy Record를 통해 VANISHING VISION을 발매하고 이 앨범은 오리콘 차트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는 당시 메이져 레코드사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것으로 꽤 화제를 모았고, 이 기록은 디르 앙 그레이의 I'll이 발매되기 전까지만 해도 인디즈 앨범이 메이져 차트에 올라간 최고의 기록이었다. 현재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17만 2천장 가량.

이후 Extasy Record를 통해서 GLAYLUNA SEA, Zi : Kill등 수많은 거물급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냈다. 실질적으로 거의 대부분 히데가 픽업을 한 것이고 ZI:KILL의 경우 요시키의 말도 안되는 처분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못하다.

X의 총 판매량에 대해서는 왕창 부풀리거나 왕창 줄이는 등 극과 극을 달리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일단 공식적 오리콘 통계에서는 총 판매량이 약 1,117만장 정도로 추정된다.

5.1.2. 메이저 데뷔

1989년 4월 'BLUE BLOOD'라는 앨범으로 SONY RECORD를 통해 메이져 데뷔. 연말에는 최우수 신인상 등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그 해를 장식한다.[52] 'ENDLESS RAIN', 紅 등 X JAPAN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곡들이 많다.

1991년 7월, 두번째 앨범 'Jealousy' 발매. 이 앨범부터는 메탈리카블랙 앨범을 녹음했던 LA의 레코드실[53]에서 녹음함으로써 음질이 대폭 상승했다. BLUE BLOOD에 요시키의 색채가 진했다면 Jealousy는 멤버 개개인의 색깔이 잘 혼합된 느낌. 당초에는 30분에 달하는 대곡 'ART OF LIFE'라는 곡과 함께 2장의 CD로 발매하려 했으나 요시키와 토시의 건강 문제, 음반사의 실적 평가 등의 여러 문제가 겹쳐서 1장만으로 발매했다. 요시키가 아직 미완성이라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음반사 측 사람들에게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진 일화가 있다.[54]

1992년 1월 5, 6, 7일, 역사적인 도쿄돔 3 Days 콘서트. 지금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당시에는 롤링 스톤즈마이클 잭슨같은 외국의 거물들에게나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이었다.[55] 그도 그럴 것이 도쿄 돔의 수용인원은 4~5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데뷔하기 전에 "우리는 도쿄 돔에서 공연을 할 거다!"라고 TV에 나와서 떠들었다가 또라이 취급을 받았던 X는 1992년 도쿄돔 3일 연속공연이라는 위업을 달성해 낸다. 사실 지금도 도쿄 돔에서 3일 연속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5.2. X JAPAN

이후 세계 데뷔를 준비하며 이름을 X에서 X JAPAN으로 개명. 미국에 이미 동명의 밴드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초에는 X from JAPAN이었으나 이 이름은 얼마후 바로 흑역사에 묻히고 X JAPAN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HEATH를 영입.

92년 이후부터 전체적인 활동이 줄어들며 TOSHI의 MADE IN HEAVEN을 시작으로, 93년에는 HIDE가 솔로 데뷔를 하면서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개시되었다. X JAPAN의 싱글이 하나 하나 발매되기는 하였으나 활동은 많이 미비하였다.

1993년 8월, 29분짜리 한 곡이 실린 앨범 ART OF LIFE 발매. 삶과 죽음을 주제로한 Yoshiki의 반생이 담겨있는 곡. 곡 구상을 위해 2주간 어둠속에 자기 감금을 시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나온 곡이며 가사는 모두 영어. 가사에 일본어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X JAPAN의 앨범 중 이 앨범이 가장 먼저 정발되었다. '자살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으로 18세 미만금지로 판매되고 있다.[56]

1993년부터 매년 12월 30일, 31일 토쿄 돔 2일 공연. 토쿄 돔 공연부분에서 X JAPAN은 일본 최다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해외 아티스트들과 비교해도 3위이다. 현재는 토쿄 돔 연말공연 바통을 이어받은(?) KinKi Kids에 의해 깨진지 오래. 10년 넘게 연 3회씩 토쿄 돔 공연을 치뤘으니 버틸 재간이 없다.

1995년을 전후로 YOSHIKI와 TOSHI가 머리를 자르면서 탈 비주얼을 시도했다. 이 시기부터 상징이었던 '노발'[57]을 풀고 화장이 옅어지면서 음악적으로도 당시 유행하던 인더스트리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1996년, 3번째 메이져 앨범 DAHLIA 발매. 전작 Jealousy로부터 5년이나 걸린 풀 앨범이었으나, 이미 곡들이 대부분 싱글 컷 되어 먼저 릴리스 되었기 때문에 꼭 BEST ALBUM같은 인상도 든다. 앨범 전체에 요시키표 발라드의 비중이 커졌다. 초창기에 X가 가지고 있던 격렬한 느낌이 사라지고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발라드 곡이 많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취향이 갈리기도 하였다. 작곡가인 Yoshiki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라드가 많이 나온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1996년 DAHLIA Tour를 돌던 요시키가 스테이지 위에서 쓰러진후 이후의 모든 스케쥴이 취소, 연말의 토쿄 돔 콘서트에서야 부활하게 되었다. 팬들도 멤버들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건만...

왠지 주욱 조용하다가 1997년 9월 해산 선언. 보컬인 TOSHI가 음악성의 차이를 이유로 탈퇴를 원했기 때문.[58] TOSHI가 탈퇴를 표명한 것은 1997년 4월이었으며, 그 동안 1993~96년 도쿄돔 콘서트의 라이브 앨범 작업을 하던 Yoshiki는 X JAPAN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보컬은 TOSHI밖에 없다는 생각에 9월 22일 기자회견에서 해체를 선언한다. 이 기자회견에 TOSHI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X JAPAN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Yoshiki가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

1997년 12월 31일, '최후의 밤'이라고 명명된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다.[59]

5.3. 해체에서 재결성 이전

멤버였던 hide가 1998년 1월부터 솔로활동을 하다 5월 2일 오전 8시 51분에 사고로 사망했다. 히데의 장례식에는 엄청난 인파가 집중되었다. 당시의 집계로는 미소라 히바리 이후로 가장 많은 인파였다. 히데를 따라 자살한 사람도 생기면서 요시키가 따라서 자살하는 행동은 자제할 것을 공식적으로 당부했다. 미국의 TIMES 지에 히데의 부고가 실리기도 했다.

토시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힐링음악으로 활동했으며 또 다른 멤버였던 히스와 파타는 Dope Headz라는 밴드를 결성했었다. 리더였던 요시키는 2002년도에 코무로 테츠야가 리더인 globe에 가입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각트와 S.K.I.N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는데 멤버 라인업이 굉장했다.

5.4. X JAPAN의 재결성 이후

5.4.1. 2008~2014

해체한지 10년만인 2008년 X JAPAN이 재결성됐고, 영화 SAWⅣ의 엔딩테마 I.V를 발표한다. 2008년 3월에는 부활공연으로 도쿄 돔에서 3일간 공연을 했다. 같은해 요시키가 월드 투어를 결정했으며 동남아권으로 프로모션을 다녀갔었고 한국에도 같은 해인 2008년도에 한국공연을 위해 방한했다.

재결성의 계기는 바로 돈이 필요했던 토시가 요시키를 찾아가 부탁했기 때문. 그러나 이는 사이비 교주인 마사야의 계략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요시키는 이를 알고 있었고, 오랜만에 재회한 토시를 반갑게 맞이하고 함께 어린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며 배려해주면서 토시의 사이비종교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토시는 요시키의 도움으로 2010년경 완전히 사이비 종교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러다가 한국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멤버의 탈퇴 위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국내 연예기획사와의 마찰로 인해서이다. 한국 공연은 파토났는데 도쿄돔 공연과 타이페이 공연은 SUGIZO까지 가입한 상태로 진행된다.

2009년 5월 1일. HIDE의 11주기를 앞두고 히스와의 갈등이 해결되었음과 SUGIZO(元LUNA SEA)가 정식으로 가입함을 알렸다.

2010년 파칭코화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범인은 산쿄. 공식 홈페이지

2010년 8월 닛산 스타디움 라이브에 전 멤버였던 타이지까지 스테이지에 등장하면서 사상 최초 7인의 X JAPAN이라는 내용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는 가운데 Headwax사(HIDE의 회사로, 현재는 그 동생인 히로시가 사장)로부터 HIDE의 초상권 사용으로 20억엔을 요구해서 서로간에 소송을 하네마네 이전투구중. 정말 고인이 보면 하늘에서 통곡을 할 일이다. 아울러 아직 향후 계획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LUNA SEA 역시 REBOO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HIDE의 초상권 문제와 SUGIZO의 거취에 따라서 팬들의 염원이던 활동 재개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최근에 EMI의 북미 법인과 3년 계약에 성공했다. 북미 한정으로 3월 15일 싱글 JADE 발매 예정. 본 계약은 미국 법인과의 계약이고 일본 쪽 담당인 EMI 뮤직저팬과는 계약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 일본 국내의 레이블과도 계약이 없는 상태라서 발매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그나마 일본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무기한 중단되었다.그러나 워낙 발매 연기와 취소가 반복되던 밴드라 팬들도 안티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아니 자연재해가 아니었더라도 연기되지 않았다면 더 이상했을 거라는 분위기랄까? 참고로 JADE 싱글의 편곡자로 David Campbell을 영입했는데 그는 X 시절의 명곡인 "Say Anything"의 현악 편곡에도 참여했으며 이승환의 "천일동안",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의 편곡을 담당한 바로 그 거물급 프로듀서다.

결국 2011년 6월 29일자로 유럽-동남아-남미 아이튠즈에서 JADE가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

2011년 10월 2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요시키가 골든글로브의 OST를 작곡하면서 미국에서 최우수 해외 밴드상을 받기도 했다. 참고

요시키가 페이스북에 꾸준히 곡을 레코딩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Born To Be Free와 JADE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젠 팬들조차 믿지 않는다 2012년 10월 9일에는 요시키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Art of Life 2를 작곡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2020년 발매? 2014년 "HERO"로 컴백예정. 8월 17일 신주쿠에서 뮤비 촬영겸 공연을 했다.

세계적인 밴드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이 Forever Love를 커버해서 불렀다. 링크

신곡은 그 나이대의 밴드들이 다들 그렇듯이 창작력 면에서 한계가 있고, 하다못해 옛날 곡이라도 잘 부르면 좋으려만 재결성 후의 X JAPAN은 곡 사이의 인터벌이 너무 길어졌다. 덕분에 예전 세트리스트의 90%를 그대로 연주하는데 공연 시간은 4시간을 육박한다.

2013년에 요시키가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해서 Forever Love의 뮤직 스테이션 버전을 연주했는데, 오오시마 유코가 감동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꽤나 난리였다.

https://www.facebook.com/XJapan.International/videos/10151721416292426/

5.4.2. 2014~2017

2014년 6월 17일 워너 뮤직을 통해 The World ~X JAPAN 첫 전세계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미 그 이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 FAN'S SELECTION이 8만 장 정도로 그치는 부진한 판매량을 보였는 바[60] 이 앨범 역시도 그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11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콘서트를 했다.

이 콘서트 때문에 9월 30일-10월 1일에 이루어졌던 일본 콘서트에서 보컬 토시가 목을 아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했다 ... 그냥 힘들어서 그런 듯

기사에는 열정적으로 19곡을 연주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별로 한 곡은 없고 중간중간 피아노 솔로, 바이올린 솔로 등을 한 곡으로 취급해서 그렇다. 실제로는 14곡 수준. 여러모로 안습. 공연 시간은 역시 거의 약 4시간.

2014년 11월 말, 요시키가 인터뷰로 앨범이 80%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이 때 하는 말이 "4월 완성 예정이지만 아무도 저를 믿어주지 않을 것 같네요"이다. 자기도 욕을 먹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이건 애초에 본인 잘못이라 뭐 딱히(...)

2015년 2월 25일 밤 요시키가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Master Album Sequences 2.24.15라고 적힌 CD 사진을 올렸다. 과연 신보가 그의 말대로 4월에 완성될까?

참고로 12개의 트랙이 나와있으며 1번 트랙은 The Last Song 2번 트랙은 Jade 3번트랙은 Beneath the skin 4번 트랙은 Hero로 예상되는데, 이럴 경우 신곡과 예전곡이 섞인 또 하나의 지겹다 정말 베스트가 아닐까 예상된다. 링크

그리고 역시나 4월에 내온다던 앨범은 한동안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포기하면 편해.

그러던 중 2015년 6월 22일에 XDAY IS COMING이라는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신곡이 약간이지만 배경음으로 깔려 있었다. 매우 가까운 시일에 깜짝 소식이 있다고 하는 걸로 보아, 20년만의 앨범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The Last Song'같은 기존의 곡들도 포함되긴 하지만, 사실 이 곡은 앨범에 속해 있지 않은 싱글로만 발매된 곡이었고 또한 마지막 곡이라는 뜻의 곡이 앨범의 첫 트랙이 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재결성한 다른 밴드들이 앨범을 내는 것을 보고 고통받던 X의 팬들이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새로운 앨범의 발매 일자는 기존에 말해 온 2015년 연내가 아닌 2016년 3월 11일로 정해졌다. 또 통수를 쳤다. 이에 팬들은 앨범이 나온다는 기쁨과 함께 또 미뤘다는 데에 분노하였다. 예전 jade 때도 3월 11일 발매였으나 미뤄졌던 전례가 있어 걱정하는 중이다. 영원히 고통받는 엑스의 팬들.

2015년 8월 20일 요시키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투어 라이브를 발표했는데, 이는 DAHLIA TOUR 이후 약 20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투어에 관심있는 위키러들은 참고해도 된다.

그리고 2016년 3월 11일 앨범 발매 후 다음 날 영국 웸블리 아레나 라이브와 같이 공개될 X JAPAN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트레일러가 공개 되었다.

2016년의 앨범에 앞서 2015년 10월 23일 싱글 앨범이 나온다고 덧붙였는데 요시키 본인이 레이블과의 계약으로 인해 곡명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하면서, 새 앨범에 수록될 것으로 예상되는 곡인 KISS THE SKY, HERO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특히 기자회견을 통해 요시키가 새 앨범 제작에 관해 대답한 바, 레코딩은 한창 진행중이라고

본인이 웸블리 아레나에서의 라이브는 기본적으로 20년만의 새로운 앨범 발매 기념이기 때문에, 스스로 데드라인을 그어놨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본인도 앨범을 계속 미루던 과거사가 존재하다보니 이번에도 안나오면 본인은 업계에서 확실히 묻혀버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팬들 두번 죽일 일 있냐 특히 많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X JAPAN이 여러가지 안 좋은 사건으로 인해 공백 기간이 길었지만 그 기간이 무색할만큼 최고의 앨범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2015년 11월 6일에 첫번째 싱글 Born to be free가 발매된다고 요시키가 SNS를 통해 알렸다. 앨범 커버가 야하다 이 놈들 앨범 커버는 왜 다 이래[61]

어째서 1st Single로 표기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JADE가 디지털 싱글이라 싱글로 치지 않는 듯 하다.

2015년 11월 26일,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출장이 발표되었다. 1997년 이후 18년만의 홍백가합전 출장.

2015년 12월 1일, 일본 투어 요코하마 공연에서 신곡 Angel의 일부가 공개되었다.

일본 투어 공연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팬들은 이젠 그냥 살아서 라이브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하긴 이제 나이가 거진 50줄들이니 연예계 은퇴를 안하고 있는 것만으로 놀라울 따름

토시의 경우 세뇌시절 다친 허리의 후유증으로 인해 히로시마 라이브에서 아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요시키는 건초염으로 인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인 만신창이 상태로 라이브에 임하고 있다.

멤버들도 이젠 그저 돈 때문에 한다기보단 비장함이 묻어나오는 상황. 요시키의 멘탈이 많이 성장하기도 해서 예전처럼 욕도 먹지 않는다.

물론 파타가 연습을 제대로 안 해서 자꾸 연주를 틀리거나, 앨범 레코딩이 심각하게 오래 걸리는 건 좀 짜증난다는 반응...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기가 건재하다. 무서운 밴드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요즘 TV출연이 잦은 탓에 젊은 층의 반응이 많다. 대체로 무서울 줄 알았지만 친근함에 놀랐다는 반응. 라이브도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칸쟈니 팬이 테레아사 드림 페스티벌에 출연한 X JAPAN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신을 보았다면서 글을 쓴 것이 요시키의 RT 덕분에 일본 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었다. 가창력이나 연주력 등이 뛰어난 가수들은 많지만, 엑스 멤버들의 연주는 카리스마 그 자체여서 분위기게 압도당한다고......

우리 나라에서는 90년대에 퍼진 빠들의 엄청난 과장 덕분에 안티가 늘어서 X JAPAN은 90년대에나 유명했지 그 이후부터는 인기 하나도 없는 퇴물 밴드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 TV출연이 잦은 엑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무서운 이미지의 밴드라는 이미지는 있어도(...).

사실 십수년전 엑스재팬에 관해 국내에 퍼졌던 이야기들 중에는 극성 팬들의 과장섞인 내용들이 많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엑스재팬이 싫다는 측 역시도 극성 팬들의 그것에 못지않게 과장되고 허황된 비방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반일 감정으로 인해 밴드 이름부터 재팬이 들어가 있는 밴드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태극기를 태웠다는 루머가 퍼진 것이 대표적. 어디까지나 루머이긴 했지만.

오히려 젊은 층의 팬들이 늘어난 추세이다. 물론 아이돌 가수의 팬층과 같은 열광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 각종 페스티벌에서 엑스의 공연을 본 젊은 사람들이 엑스의 카리스마에 반해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엑스가 TV출연이라도 하는 날에는 일본의 트위터가 대부분 X 관련 내용일 정도.

현재 일본의 가수들이 엑스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방송 중 관중석에 가서 공연을 보거나 해서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아라시의 멤버들조차 관중석에 나가서 봤다고 고백하고, 다른 밴드의 멤버가 엑스 공연에 난입해서 같이 뛰어 다니거나 하는 일이 벌어졌다.

2015년 크리스마스, 뮤직 스테이션 슈퍼 라이브에 출연해서 Born to be free와 X를 연주하였다. 쟁쟁한 아티스트들을 물리치고 10여분 동안의 엔딩 무대를 맡았는데, 엄청난 포스로 또 일본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아이돌 팬이 많아서 10대~20대의 여성 관객들이 많았는데[62]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던 관객들도 다같이 X점프를 하며 흥분된 분위기였다. 게다가 무려 첫 곡인 Born to be free때는 산타 복장을 입고 연주했다(...).

2015년 12월 31일,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백팀으로 출전하여 Forever Love와 Born to be free를 연주하였다. 아울러 요시키의 피아노 옆에 타이지의 베이스와 히데의 기타를 함께 놓아 두었다.

그러던 중 2016년 1월 18일, 파타의 건강이 갑작스레 악화되었다는 발표가 났다. 팬들은 파타를 걱정하면서도 또 앨범 발매와 콘서트가 뒤로 밀리는 게 아니냐 하는 불안감에 걱정하고 있다.

결국 새 앨범과 웸블리 공연이 연기되고 말았다. 공연은 2017년 3월 4일로 미뤄졌고 앨범 발매는 잠정 보류. 엑스 팬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면 의도적인사건이 터졌기 때문. 물론 이번 상황은 파타가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2016년 3월 17일에 이르러서야 중환자실에 입원했었던 파타가 비로소 퇴원했음을 알렸다. 요시키의 인터뷰에 따르면 파타는 안정을 취한 후, 8월 경에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발매 예정이었던 새 앨범에 대해서는 빠르면 가을, 어떻게든 연내에는(...) 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2016년 7월 말에 Jealousy 앨범을 Blu-Spec CD로 리마스터링해서 새롭게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5.4.3. 2017~현재

결국 연내에는 내겠다던 신보는 단지 신곡 <La Venus> 1곡만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는 정도로만 그친 채 감감 무소식이 되었고, 2017년 3월에 이전곡들과 또 다시 재탕한 앨범을 냈다. 다만 정규앨범은 아니고 "We are X" OST 앨범이다. 이 앨범은 Without you, La Venus을 어쿠스틱 버젼으로 녹음한 음원이 수록되어있다. 설마 이걸 뉴앨범이라 퉁치지는 않겠지 영국의 'UK Top 40 Rock Albm' 차트1위를 차지(!!) 영국전체 앨범차트에서도 27위를 차지했다. 홍콩,핀란드 아이튠즈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17년 2월말에는 영국 공연을 앞두고 슈퍼라이브를 제외하고 21년만에 뮤직 스테이션의 레귤러 방송에 출연하여 La Venus를 열창했다. 영국 웸블리 아레나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요시키의 공식 SNS를 통하여 2017년 월드투어 WE ARE X의 일본 일정이 발표되었다. 요코하마 아리나에서의 라이브는 4일 연속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3월 17일에는 1988년 이후로 29년만에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어서 4월 1일에는 또다시 앨범 발매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요시키채널에 등장한 요시키는 피아노 연주를 시전하다가 갑자기 연주를 끊고는 중대선언을 하겠다면서 2017년 6월 30일에 뉴 앨범을 발매한다는 폭탄 발언을 한 것. GLAY의 히사시, LADIES ROOM의 죠지를 비롯한 패널들은 뜬끔없는 폭탄 발언에 아연실색하자 요시키는 '만우절이니까~'(.....). 그러나 곧이어 구체적인 앨범 내용에 대한 소개까지 덧붙이면서, 신곡 13곡 사이에 오프닝 곡으로 'The Last Song' 그리고 엔딩곡은 'Art of Life'로 과거의 X JAPAN이 감싸는 듯한 구성[63] 을 했다고 언급. 타이틀명은 셀프 타이틀임을 밝혔다. 그리고 7월에 시작될 월드 투어는 뉴 앨범을 위주로 곡을 구성할 것이라 올해 들어 누누히 밝혀 왔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21년만에 신보인 셈.

그러나 5월 말, 요시키의 경추 디스크가 재발해 LA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밝혀지면서 새 앨범 발매에는 또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6월에 들어서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는 보고가 올라와 일단 스케쥴에는 지장이 없는 듯 하다. 그런데 새 앨범 발매일이 다가오는데 아무런 홍보가 없는걸 보니 또..

그리고 6월이 아무 소식 없이 지나갔다..

오리콘과의 인터뷰에서는 6월 30일 발매는 어렵지만 2017년 내에는 무조건 냅니다(...)데자뷰 라고 했다고. 연내에는 무조건 낸다 = 안낸다

수술 때문에 드럼을 칠 수 없는 상태이며, 월드 투어 역시 어쿠스틱 투어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연말부터 2018년초 TV방송에 요시키가 출연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히데의 기일인 5월 2일까지는 앨범을 발매하고 싶다고 에둘러 말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5월 2일도 역시나 아무 소식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6. 대마신오인조(大魔神五人組)

엑스 시절에 팬 서비스로서 이벤트성으로 결성한 파트 체인지 밴드. 1988. 12. 31. 엑스타시 서밋, 1989년 8월 28일 오사카 비밀라이브, 1991년 10월 19일 닛신파워스테이션, 1991년 11월 17일 시부야 에그맨 1992년 1월 5일 파멸을 향하여에서 선보였다.

  • 파트 A
  • 파트 B

7. 디스코그래피

7.1. 정규 앨범

VANISHING VISION》(인디 앨범) (1988년 4월 14일)

BLUE BLOOD》 (메이저데뷔 앨범) (1989년 4월 21일)

Jealousy》 (1991년 7월 1일)

ART OF LIFE》 (1993년 8월 25일)

DAHLIA》 (1996년 11월 4일)

X JAPAN》(가제) ( 2017년 연내 2018년 예정)

7.2. 싱글

《I'LL KILL YOU》 (1985년 6월 15일)[64]

1. I'LL KILL YOU (요시키 작사, 작곡)

2. BREAK THE DARKNESS (요시키 작사, 작곡)

《オルガスム》 (1986년 4월 10일)[65]

1. オルガスム (요시키 작사, 작곡)

2. Time Trip Loving (요시키 작사, 준 작곡)[66]

3. X (요시키 작사, 작곡)

》 (1989년 9월 1일)

1. 紅 +YOUR VOICE -1989.6.10 日比谷野音ライブより収録- (요시키 작사, 작곡)

2. 20th CENTURY BOY -1989.6.10 日比谷野音ライブより収録- (마크 볼란 작사, 작곡)

ENDLESS RAIN》 (1989년 12월 4일)

1. ENDLESS RAIN (요시키 작사, 작곡)

2. X -Live Version- (요시키 작사, 작곡)

《WEEK END》 (1990년 4월 21일)

1. WEEK END (요시키 작사, 작곡)

2. ENDLESS RAIN -LIVE VERSION, Recorded at NIPPON BUDOKAN 1990.2.4.- (요시키 작사, 작곡)

《Silent Jealousy》 (1990년 4월 21일)

1. Silent Jealousy (요시키 작사, 작곡)

2. Sadistic Desire -재녹음- (요시키 작사, 히데 작곡)

《Standing Sex / Joker》 (1991년 10월 25일)[67]

1. Standing Sex (五十嵐美由姫 작사, 히데 작곡)

2. Joker (히데 작사, 작곡)

《Say Anything》 (1991년 12월 1일)

1. Say Anything (요시키 작사, 작곡)

2. Silent Jealousy -Live Version- (요시키 작사, 작곡)

Tears》 (1993년 11월 10일)

1. Tears -X JAPAN Version- (白鳥瞳&요시키 작사, 요시키 작곡)

2. Tears -Classic Version- (요시키 작곡, 조지 마틴 편곡)

《Rusty Nail》 (1994년 7월 10일)

1. Rusty Nail (요시키 작사, 작곡)

2. Rusty Nail (Original Karaoke)

《Longing 〜跡切れたmelody〜》 (1995년 8월 1일)

1. Longing 〜跡切れたmelody〜 (요시키 작사, 작곡)

2. Longing 〜跡切れたmelody〜 (Original Karaoke)

《Longing 〜切望の夜〜》 (1995년 12월 11일)

1. Longing 〜切望の夜〜 (요시키 작사, 작곡)

2. Longing 〜切望の夜〜 (Original Karaoke)

3. Longing 〜切望の夜〜 (The Poem)

《DAHLIA》 (1996년 2월 26일)

1. DAHLIA (요시키 작사, 작곡)

2. TEARS -'93 TOKYO DOME LIVE VERSION- (白鳥瞳&요시키 작사, 요시키 작곡)

《Forever Love》 (1996년 7월 8일)

1. Forever Love (요시키 작사, 작곡)

2. Forever Love (Original Karaoke)

《CRUCIFY MY LOVE》 (1996년 8월 26일)

1. CRUCIFY MY LOVE (요시키 작사, 작곡)

2. WEEK END -'95 TOKYO DOME LIVE VERSION- (요시키 작사, 작곡)

《SCARS》 (1996년 11월 18일)

1. SCARS (히데 작사, 작곡)

2. White Poem I -M.T.A. Mix- (요시키 작사, 작곡)

《Forever Love (Last Mix)》 (1997년 12월 18일)

1. Forever Love -Last Mix- (요시키 작사, 작곡)

2. Longing -Bootleg- (요시키 작사, 작곡)

《THE LAST SONG》 (1998년 3월 18일)

1. THE LAST SONG (요시키 작사, 작곡)

《 I.V.》 (2008년 1월 23일/iTunes 한정 발매)

1. I.V. (요시키 작사, 작곡)

《Scarlet Love Song -BUDDHA Mix-》 (2011년 6월 8일)

1. Scarlet Love Song -BUDDHA MIX- (요시키 작사, 작곡)

《Jade》 (2011년 6월 28일)

1. Jade (요시키 작사, 작곡)

《BORN TO BE FREE》 (2015년 11월 6일)

1. BORN TO BE FREE (요시키 작사, 작곡)

7.3. 라이브 앨범

《On the Verge of Destruction 1992.1.7 Tokyo Dome Live》 (1995년 1월 1일 발매)

《LIVE LIVE LIVE TOKYO DOME 1993-1996》 (1997년 10월 15일)

《Live Live Live Extra》 (1997년 11월 5일)

《LIVE IN HOKKAIDO 1995.12.4 BOOTLEG》 (1998년 1월 21일)[68]

《ART OF LIFE LIVE》 (1998년 3월 18일)

《The Last Live》 (2001년 5월 30일)

7.4. 컬렉션 앨범

《X SINGLES》 (1993년 11월 21일)

《B.O.X ~Best Of X~》 (1996년 3월 21일)

《BALLAD COLLECTION》 (1997년 12월 19일)

《Singles ~Atlantic Years~》 (1997년 12월 25일)

《Star Box》 (1999년 1월 30일)

《PERFECT BEST》 (1999년 2월 24일)

《X JAPAN BEST ~FAN'S SELECTION~》 (2001년 12월 19일)

《THE WORLD ~X JAPAN 初の全世界ベスト~》(2014년 6월 17일)

7.5. 리마스터 앨범

《BLUE BLOOD (리마스터링 재판매반)》 (2007년 2월 14일)

《Jealousy (리마스터링 재판매반)》 (2007년 2월 14일)

7.6. 사운드 트랙 앨범

《We Are X》 (2017년 3월 3일)

8. 라이브 콘서트 투어

타이틀

일자

장소

비고

{{{+1 NOISE }}}

1980년

NOISE Live

3월경

다테야마 제1중학교

졸업 파티 라이브

NOISE Live

?

치바 시민 센터

1981년

NOISE Live

?

치바 아와 고등학교

학교 축제

1982년

EAST WEST JAPAN AUDITION

여름 이전[69]

EAST WEST JAPAN

콘테스트

{{{+1 X }}}

X Live

9~11월경

치바 아와 고등학교

학교 축제

1983년

X Live

?

치바현 모처

YAMAHA East West Contest

?

EAST WEST JAPAN

콘테스트

X Live

9~11월경

치바 아와 고등학교

학교 축제

1985년

X Live

2월 25일

카구라자카 EXPLOSION

첫 도쿄 공연

X Live

3월 24일

HEAD POWER

X GIG (vs RAP)

5월 20일

시부야 야네우라

X GIG (vs TILT)

6월 11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X Live

6월 17일

요츠야 FOUR VALLEY

X GIG (vs ABUSE)

6월 20일

시부야 야네우라

X Live[70]

6월 26일

카구라자카 EXPLOSION

X Live[71]

10월 4일

카구라자카 EXPLOSION

X Live

11월 20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X Live[72]

12월 3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1986년

X Live

1월 10[73],31일

요츠야 FOUR VALLEY
카구라자카 EXPLOSION

총 2회 공연

X Live

4월 2,6일

시부야 LA-MAMA
치바 TADAYA

총 2회 공연

オルガスム 발매기념 GIG

4월 10,12일

요코하마 7TH AVENUE
우라와 NARCISS

총 2회 공연

X Live

4월 14,16일
5월 1일

치바 DANCING MOTHERS
마에바 RATTAN
요츠야 FOUR VALLEY

총 3회 공연

X Live

5월 13,15,17,18,19일

BAHAMA
CANDY HALL
YANTA 로쿠메이칸
사카이 JURI
CENSUS HALL

첫 간사이 공연

총 5회 공연

X Live

6월 5,8,19,20일

시부야 LA-MAMA
고쿠분지 MORGANA
메구로 로쿠메이칸
우라와 NARCISS

총 4회 공연

X Live

7월 30일
8월 2,10,14,16,18,20,23일

각기 다른 장소

총 8회 공연

X Live

9월 5,9,20일
10월 6,8,25[74]
11월 12일

각기 다른 장소

총 7회 공연

폭발직전 GIG (w/ DEMENCIA)[75]

11월 16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METAL SHOP:HARD NIGHT (w/ CASBAH 등)

11월 24일

오미야 FREAKS

이벤트

ALL NIGHT GIG 'SUPER-METAL REVOLUTION VOL.2-ROCK THROUGH THE NIGHT-[76]

12월 30일

오사카 CANDY HALL

이벤트

1987년

폭발직전 GIG[77]

4월 10일

카구라자카 EXPLOSION

이벤트

SKULL THRASH ZONE 발매 기념 GIG

4월 14일, 5월 17일

토시마 공회당
나고야 FLEX HALL

총 2회 공연

JUT OUT (w/ DEMENTIA)

4월 18일

메구로 LIVE STATION

INTERNATIONAL POPULAR MUSIC FESTIVAL BAND EXPLOSION '87

6월 7일

다테야마 상공 회관

콘테스트

ONEMAN GIG

7월 25일

메구로 LIVE STATION

Xclamation 무료 배포 GIG

8월 6일, 8월 29일

오사카 BOURBON HOUSE
메구로 로쿠메이칸

총 2회 공연

ROCK MONSTER AUGUST

8월 30일

스포츠 밸리 교토

이벤트

1987 WINTER TOUR

11월 23,29,30일
12월 2,3일

각기 다른 장소

총 5회 공연

SKULL THRASH ZONE 발매 기념 GIG

4월 14일, 5월 17일

각기 다른 장소

총 2회 공연

CBS / SONY AUDITION '87 결전 대회

12월 26일

콘테스트

HEAVY METAL DAYS EXTRA

12월 23일

사이타마 회관 대강당

이벤트

DAYNAMITE YEAR END PARTY

12월 29일

메구로 LIVE STATION

이벤트

ALL NIGHT METAL PARTY '87 to '88

12월 31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1988년

METAL INDIES 2

1월 10일

도쿄 나카노 공회당

이벤트

VANISHING TOUR '88 SPRING

3월 22일~4월 3일

각기 다른 장소

총 7회 공연

VANISHING TOUR SPECIAL

5월 5일, 6월 10일

도쿄 나카노 공회당
오사카 미도 회관

총 2회 공연

VANISHING TOUR VOL.2

6월 2일~7월 26일

각기 다른 장소

총 23회 공연

HEAVY METAL DAYS VOL.7

8월 27일

사이타마 회관

이벤트

X at SPORTS VALLEY KYOTO

9월 4일

스포츠 밸리 교토

제1회 EXTASY SUMMIT

9월 30일

오사카 BOURBON HOUSE

BURN OUT TOUR '88 OCT.

10월 8일 ~ 30일

각기 다른 장소

EXTASY SUMMIT

11월 6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STREET FIGHTING MEN

11월 12일

MZA 아리아케

이벤트

ALL NIGHT METAL PARTY '88 to 89

12월 31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1989년

BLUE BLOOD TOUR

3월 13일~6월 13일

각기 다른 장소

총 14회 공연

THE 4TH FLOWER FESTIVAL
X COMING HOME.
돌아간다! 기합을 넣고 기다려라!

3월 25일

다테야마 FAMILY PARK

CLUB WONDERLAND

3월 29일

INK STICK 시바우라 Factory

이벤트

5시 SAT ROCK WAVE '89

4월 30일

나가시마 스파 랜드 점보 해수 수영장 특설 무대

이벤트

EXTASY SUMMIT VOL.II

5월 2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BLUE BLOOD TOUR SPECIAL BIG GIG

6월 5,6일

아이치현 근로회관
오사카 후생연금회관 중 홀

HEAVY METAL DAYS VOL.8

7월 22일

사이타마 회관

시크릿 게스트

JR 동일본 POP ROCKETS '89

7월 30일

유자와마치 중앙 공원 야구장

이벤트

Kirin Sound Together POP. HILL '89

8월 12일

이시카와현 삼림 공원|이벤트

THE ROCK KIDS '89

8월 19일

후지큐 하이랜드 코니퍼 포레스트

이벤트

Rock'n roll Olympic'89

12월 31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SECRET GIG 대마신오인조

8월 28일

오사카 amHALL

시크릿 라이브

EXTASY SUMMIT in ClubHouse

8월 29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ROCK MONSTER "X" SPECIAL

9월 17일

스포츠 밸리 교토

EXTASY SUMMIT SPECIAL ~장외난투 편~

9월 28일

시부야 공회당

이벤트

ENFENT TERRIBLE ~무서운 녀석들~

12월 3일

시나가와 테라다 창고 F호

이벤트

1989~1990년

Rose & Blood Tour

9월 29일
10월 1,2,4,5,10,12,14,19,21,26,27,30,31일
11월 2,5,7,8,11,13,14,16,22,23,25,27,29
12월 21,22,24,26,27일
2월 4일~5월 17일

각기 다른 장소

총 35회 공연

10월 30일 YOSHIKI 컨디션 불량으로 연기

11월 8,14,16일 YOSHIKI 탈진으로 중단

11월 23일~12월 27일 YOSHIKI 과로신경순환무력증으로 연기

1990년

5시 SAT ROCK WAVE '90

4월 29일

나고야 쇼나이 녹지회관 육상 경기장

이벤트

1990 X FILM GIGS
~피와 장미 투성이가 되어~

12월 8,9일

도쿄베이NK홀

필름GIG
총 2회 공연

1991년

X FILM GIGS
~피와 장미 투성이가 되어~

2월 3일~4월 6일

각기 다른 장소

필름GIG
총 39회 공연

JT SUPER SOUND '91 Have a Joyful Time

7월 31일

오니코베고원 센다이 리조트 파크 오니코베

이벤트

Violence In Jealousy Tour 1991
~꿈속에서 살아가며~

8월 6,8,15,16,23일
9월 8,9,14,15,24,28일
10월 5,24,25
11월 12,13일

각기 다른 장소

총 16회 공연

10월 24,25일 연기

X PRODUCE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X가 파워 스테이션을 전세냈다!~

10월 17일
10월 18일
10월 19일

"X와 친구들" 닛신 파워 스테이션
"조용한 X" 닛신 파워 스테이션
"이상한 X" 닛신 파워 스테이션

총 3회 공연

EXTASY SUMMIT 1991
"무적이라고 쓰고 엑스터시라고 읽는다.
무모라고 쓰고 YOSHIKI라고 읽는다."

10월 29일

일본 무도관

이벤트

SECRET GIG

11월 17일

시부야 EGG-MAN

시크릿 라이브

X, 마침내 풀 오케스트라와 협연
X with ORCHESTRA

12월 8일

NHK 홀

이제 마지막인가!?
Violence In Jealousy Tour 1991 Final
FILM GIG SPECIAL

12월 20일

일본 무도관

ALL NIGHT METAL PARTY '91 to 92

12월 31일

메구로 로쿠메이칸

이벤트

1992년

도쿄돔 3DAYS ~파멸을 향하여~[78]

1월 5,6,7일

도쿄돔

총 3회 공연

{{{+1 X JAPAN }}}

EXTASY FAN CLUB 무적 PRESENTS
EXTASY SUMMIT 1992
모두 무명이었다. 하지만... 무적이었다.

10월 29일
10월 31일

오사카성 홀
일본 무도관

이벤트
총 2회 공연

1993년

X JAPAN FILM GIGS 1993
~VISUAL SHOCK 공격 재개~

7월 1일~9월 10일

각기 다른 장소

필름GIG
총 47회 공연

X JAPAN FILM GIGS
~VISUAL SHOCK 공격 재개~

9월 24일~10월 19일

각기 다른 장소

필름GIG
총 7회 공연

신형 엑스 제1탄 일본 직격 카운트다운
X JAPAN RETURNS

12월 30, 31일

도쿄돔

총 2회 공연

1994년

GME '94
~21세기에 음악유산을 목표로~
AONIYOSHI

5월 21, 22일

도다이지 대불전 앞마당

총 2회 공연
이벤트

X JAPAN TOKYO DOME 2DAYS

12월 30일
12월 31일

'푸른 밤' 도쿄돔
'하얀 밤' 도쿄돔

총 2회 공연

1995년

X JAPAN PRESENTS KOBE RETURNS

12월 24일

오사카성 홀

1995~1996년

DAHLIA TOUR 1995-1996

11월 29일
12월 3,4,20,21,30,31일
1월 14,31일
2월 7,8,23,24일
3월 13,14,23,27,28,30

각기 다른 장소

총 11회 공연

12월 20,21일, 1월 14일 연기

3월 14,23,27,28,30일 요시키의 지병인 추간판 헤르니아의 발병 이후로 투어 중지

1996년

DAHLIA TOUR FINAL 1996
TOKYO DOME 2DAYS

12월 30일
12월 31일

'부활의 밤' 도쿄돔
'무모한 밤' 도쿄돔

총 2회 공연

1997년

THE LAST LIVE ~최후의 밤~[79]

12월 31일

도쿄돔

해산 콘서트

2002년

X JAPAN FILM GIG
~X JAPAN의 궤적~

1월 13일~2월 3일
2월 3일(대한민국)

각기 다른 장소
서울'88 체육관(대한민국)

필름GIG
총 12회 공연

X JAPAN FILM GIG
~X JAPAN의 궤적~VERSION2

4월 20,21일

도쿄베이NK홀

필름GIG
총 2회 공연

2003년

X JAPAN FILM GIG '03
featuring ART OF LIFE

9월 21일

일본무도관

필름GIG

2008년

X JAPAN 공격재개 2008 IV
~파멸을 향하여~

3월 28일
3월 29일
3월 30일

'파괴의 밤' 도쿄돔
'무모한 밤' 도쿄돔
'창조의 밤' 도쿄돔

부활 라이브
총 3회 공연

hide memorial summit

5월 4일

도쿄 스타디움

이벤트

X JAPAN WORLD TOUR Live in PARIS

7월 5일

파리 노르빌 펀트 전시 회장(프랑스)

YOSHIKI의 지병 재발로 연기

X JAPAN WORLD TOUR Live in TAIPEI

8월 2일

타이페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대만)

YOSHIKI의 지병 재발로 연기

X JAPAN WORLD TOUR Live in NEW YORK

9월 13일

메디슨 스퀘어 가든(미국)

YOSHIKI의 지병 재발로 연기

X JAPAN WORLD TOUR Live in PARIS

11월 22일

베르시 다목적 스포츠 센터(프랑스)

YOSHIKI의 지병 재발로 재연기

X JAPAN with Orchestra

12월 24,25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YOSHIKI의 지병 재발로 연기
총 2회 공연

X JAPAN COUNTDOWN GIG
~초심으로 돌아가서~

12월 31일

아카사카 BLITZ

2009년

X JAPAN WORLD TOUR LIVE IN HONG KONG

1월 16일
1월 17일

'파괴의 밤 Extra' ASIA WORLD EXPO(홍콩)
'파괴의 밤 in HONG KONG' ASIA WORLD EXPO(홍콩)

총 2회 공연

X JAPAN WORLD TOUR Live in BANGKOK

1월 31일

Impact Arena(태국)

태국의 정치 상황에 의해 연기

X JAPAN WORLD TOUR Live in TAIPEI

2월 14일

타이페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대만)

HEATH 탈퇴 문제 및 내진 구조 문제로 재연기

X JAPAN WORLD TOUR Live in KOREA

3월 21일, 22일

올림픽 제1 체육관(대한민국)

HEATH 탈퇴 문제 및 국내기획사와의 마찰로 연기
총 2회 공연

X JAPAN WORLD TOUR Live in TOKYO
~공격속행중~

5월 2일[80]
5월 3일

'무적의 밤' 도쿄돔
'18번째의 밤 SPECIAL' 도쿄돔

총 2회 공연

X JAPAN WORLD TOUR Live in TAIPEI
~진심으로 저지르는 밤~

5월 30일

타이페이 현립 반차오 경기장(대만)

X JAPAN FILM GIG ~스즈카의 밤~

8월 22일

스즈카 서킷

필름GIG

X JAPAN WORLD TOUR Live in PARIS

10월 10일

베르시 다목적 스포츠 센터

YOSHIKI의 지병 악화로 인한 경추 추간공 절제 수술로 재재연기

2010년

THE YOSHIKI FOUNDATION AMERICA KICKOFF PARTY

6월 1일

Club Nokia(미국)

Lollapalooza 2010

8월 8일

Grand Park(미국)

락 페스티벌

X JAPAN WORLD TOUR Live in YOKOHAMA 초강행돌파 칠전팔기 ~세계를 향하여~

8월 14일
8월 15일

'재회의 밤'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
'한여름 밤'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

총 2회 공연

X JAPAN WORLD TOUR Live 2010
North American Tour

9월 25일~10월 10일

각기 다른 장소(미국)

총 7회 공연

2011년

ASIA GIRLS EXPLOSION

3월 6일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1체육관

이벤트

X JAPAN WORLD TOUR Live 2011
European Tour

6월 28일(영국)
7월 1일(프랑스)
7월 2일(네덜란드)
7월 4일(독일)

Shepherds Bush Empire(영국)
Le Zenith(프랑스)
Tivoli(네덜란드)
Columbiahalle(독일)

총 4회 공연

SUMMER SONIC 2011

8월 13일
8월 14일

마이시마 섬머소닉 오사카 특설 회장
치바 마린 스타디움 & 마쿠하리 멧세

락 페스티벌
총 2회 공연

a-nation 10th Anniversary for Life Charge & Go! 위다 in젤리

8월 27일

도쿄 스타디움

이벤트

X JAPAN WORLD TOUR Live 2011
South American Tour

9월 9일(칠레)
9월 11일(브라질)
9월 14일(아르헨티나)
9월 16일(페루)
9월 18일(멕시코)

Teatro Caupolican(칠레)
HSBC Brasil(브라질)
Teatro Colegiales(아르헨티나)
Scencia Hall(페루)
Circo(멕시코)

총 5회 공연

X JAPAN WORLD TOUR Live 2011
Southeast Asian Tour

10월 28일(대한민국)
10월 30일(상하이)
11월 2일(베이징)
11월 4일(홍콩)
11월 6일(대만)
11월 8일(태국)

올림픽 제1체육관(대한민국)
상하이 체육관(상하이)
MasterCard Center(베이징)
Asia World-Expo(홍콩)
TWTC Nangang Exhibition Hall(대만)
Impact Arena(태국)

총 5회 공연
베이징 공연 중지

2014년

게릴라 라이브

8월 17일

신주쿠 스테이션 스퀘어

시크릿 라이브

X JAPAN LIVE AT YOKOHAMA ARENA

9월 30일
10월 1일

요코하마 아레나

총 2회 공연

X JAPAN LIVE
AT MADISON SQUARE GARDEN

10월 11일

Madison Square Garden(미국)

2015년

LUNATIC FEST.

6월 27일

마쿠하리 멧세

락 페스티벌

TV 아사히 드림 페스티벌 2015

11월 23일

국립 요요기 제1체육관

이벤트

X JAPAN JAPAN TOUR 2015

11월 28일~12월 15일

각기 다른 장소

총 15회 공연

2016년

X JAPAN LIVE AT WEMBLEY ARENA

3월 12일

WEMBLEY ARENA(영국)

PATA의 중환자실 긴급 입원으로 인한 연기

VISUAL JAPAN SUMMIT 2016

10월 14,15,16일

마쿠하리 멧세

락 페스티벌
총 3회 공연

2017년

X JAPAN LIVE AT WEMBLEY ARENA

3월 4일

WEMBLEY ARENA(영국)

X JAPAN WORLD TOUR 2017 WE ARE X

7월 11,12일
7월 14,15,16,17일

오사카 성 홀
요코하마 아리나

총 6회 공연
(추가중)


  1. [1] 메탈이란 장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듣는 사람만 듣는 서브컬쳐에 가깝기에 본질적으로 대중문화계에서 메인스트림이 되기 힘들다. 이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록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한국보다 인기가 더 있고 고정 지지층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건 맞는 데, 소프트한 록 음악이 아닌 메탈 범주에 들어가는 록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 사례는 일본에서조차 드물다. 당장 애니메탈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본 록 메탈의 암흑기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메탈로 훌륭하게 편곡해 선보여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받는 1집 판매량이 고작(?) 30여만장 수준이다.
  2. [2] X의 음반 가운데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음반은 메이저 2집 <Jealousy>와 싱글 컬렉션인 <X SINGLES>가 있다. 과거 90년대 한국에서 X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를 받다가 00년대 이후 그 거품이 걷히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한동안 많은 비판에 직면했는데, 그때 보면 전성기 때도 음반 판매량이 겨우 백만장을 한두 번 정도 넘긴 밴드가 무슨 일본을 대표하는 밴드냐는 식으로 까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실 그 정도면 메탈 음악으로서 매우매우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게 맞다. X 보다 음악적으로 더 높게 평가받고, 실제로 음악적 커리어가 더 대단한 LOUDNESSANTHEM, VOW WOW 등 일본 메탈계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레전드 메탈 밴드들도 달성 못한 게 밀리언 셀러다.
  3. [3] 1992년 1월의 도쿄 돔 3 Days 라이브 뿐만 아니라 1991년 2월부터 4월까지 진행되었던 첫 필름 기그 투어에서 동원한 관객수와 동년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었던 바이올런스 인 젤러시 투어에서 동원한 관객수까지 전부 다 합산하면 근 1년간 동원한 관중의 수가 거의 3~40만명에 이른다. 물론 이것 역시도 일본 음악계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그리 대단하다 볼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메탈 밴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기록이라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4. [4] 일부 국내 네티즌들은 X는 거품이고 라우드니스가 일본 현지에서 훨씬 유명하고 대단하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상술했듯 대중적 인지도는 X가 훨씬 높다. LOUDNESS야 일본 메탈계의 레전드이니, 음악성이나 커리어에 있어선 LOUDNESS가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X가 라우드니스보다 대중적 인지도에서 밀린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X는 대중적인 멜로디 구사와 매스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매우 이례적인 방식으로 대중에게 메탈을 어필했지만, 이런 대중적 행보 때문에 오히려 메탈씬에서는 그 음악성이 평가절하됐던 밴드였다. 누누이 강조했듯 메탈 음악의 인기는 일본 역시 제한적이다. 흡사 아이돌 가수 같은 인기를 누린 전성기 때 X는 메탈 밴드의 테두리에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게 맞다.
  5. [5] 이미 고인이 된 HIDETAIJI 마저도 X JAPAN 맴버들은 그 상징성을 감안하지만, 사실상 정식 맴버에 포함된 고인은 HIDE뿐. 다만 라이브 스크린뷰어에 HIDE와 같이 TAIJI도 띄어주고있다.
  6. [6] 1987년 밴드 X의 5인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에 X를 거쳐갔던 멤버들은 정확한 가입시기 및 탈퇴시기를 알 수가 없어 그 당시에 개최되었던 각 공연별 연주자 기록을 참고로 하여 임의로 표를 작성하였다.
  7. [7]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의 별도 계약을 거쳐 끝내 YOSHIKI로부터 탈퇴 의사까지 종용받은 TAIJI가 1992년 1월, 도쿄 돔에서의 무대를 끝으로 X를 떠난 이래 해당 파트는 쭉 공석으로 남아 유지되고 있었다.
  8. [8] 이 시기의 SUGIZO는 X JAPAN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
  9. [9] 두 사람은 스미레구미(제비꽃 반)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을 엮는 단어로 '스미레구미'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10. [10] 음대 입학을 고려했을 정도로 꾸준히 레슨을 받아왔으며, X로 음악신에 데뷔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고교시절 소위 질 나쁜 학생과 어울리면서도 레슨만큼은 빠지지 않았다고.
  11. [11] 특히 타이지히데 팬덤이 강한 한국에서의 평가가 매우 박한 편이다.
  12. [12] 혹자들은 이 리스너들의 판단을 두고 곧 일반 대중의 판단과 혼동하여 말하곤 하는데 타이지의 탈퇴 이후 X JAPAN의 인기가 사그라든 건 엄밀히 말해 밴드 자체의 응집력이 떨어져 눈으로 보이는 활동량 그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지 절대 음악성의 변화, 음악이라는 것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보편적인 대중의 안목은 X의 음악과 X JAPAN의 음악간의 차이를 구별하고 그 호오를 따질 만큼 그리 민감하고 깐깐하지 않다.히스 영입 이후 신체제에서 제작한 「DAHLIA」 앨범 자체로 오리콘 주간 1위, 골든디스크 플라티나를 기록하면서 세일즈적 면에서 인기 저하를 평가하기 힘든 부분도 존재한다.
  13. [13] 이러한 논란은 한국 웹에서 인터넷 상에서 Yoshiki가 세계 3대 드러머로 꼽힌다는 식의 루머성 글이 퍼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14. [14] 해외 유수의 드럼 테크니션들은 확실히 격렬한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비트가 흔들리지 않는 연주자들이 많긴하지만, 과연 그들이 요시키만큼 피아노를 칠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반박하자면, 어쨋든 피아노를 잘 치므로 '어, 너 드러머 인정'이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당장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울리히도 균일하지 못한 BPM때문에 프로드러머들에게 드러머로써 인정받지 못한다
  15. [15] DIR EN GREY 의 Shinya.
  16. [16] 요시키 본인의 프로젝트인 VIOLET U.K.의 신보 발매 연기와 재결성 X JAPAN의 신보 발매 연기를 합산하면 그 총합이 무려 10년 이상. 특히나 2015년에는 연초부터 내일이라도 당장 앨범을 내겠다는 듯 분위기를 잔뜩 띄워 놓고서는 “올해 안에 반드시 앨범을 내겠습니다”라던 말이 “올해에는 앨범이 나오리라 생각한다”라고 말이 바뀌더니 약속의 때가 되자 보란듯이 앨범의 발매일을 또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미뤄버렸다. 그리고 2016년에는 멤버 파타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활동 자체를 잠정중단해버렸다.
  17. [17] 2010년까지는 TOSHI라는 명의를 사용했으나 이후 개명. 참고로 Toshl의 마지막 알파벳은 대문자 I가 아니라 소문자 L이다.
  18. [18] 4살 때 유치원에서 같은 스미레구미(제비꽃반)에 속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요시키와 토시를 묶어 스미레구미라고 부르는 것을 밀고 있는 듯.
  19. [19] 여담이지만, 이 당시부터 요시키는 교내에서 안좋은 소문이 자자해, 토시의 부모님은 그와 친해지지 말라면서 '그가 너의 인생을 망칠것이다.' 라고 했다고... 그러나 오히려 엑스가 잘되고나서 이 부모라는 작자들이 토시의 돈과 유명세를 빌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팬들에게 토시의 어린시절사진을 돈받고 파는 일까지 해서, 상처받은 토시가 사이비종교에 가입하는 계기'중' 하나가 된다. 누가누굴 망친다고? 오히려 요시키가 더 망가질뻔한걸 구했다.직접적인 계기는 아니다.
  20. [20] 발라드 곡을 부른 예로서는 이 영상을 볼 것
  21. [21] 길었던 공백으로 말미암아 쇠퇴된 기량과는 반대로 목에 가해지던 부담 역시도 줄어 있었던 바 목의 상태 자체는 매우 좋아져 한순간이나마 질러대는 고음의 음역대나 파워만큼은 87~88 인디 시절이나 앨범 젤러시의 발매 직후였던 1991년, 토시 본인의 최전성기 시절과도 견줄만한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22. [22]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면이 없지는 않은 것이 2008년 재결성 이후 2017년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저음부쪽에서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이 잘 되어지지가 않고 있고 고음부쪽에 있어서는 현재 밀고 있는 세트리스트의 주요 곡들 중에서는 ENDLESS RAIN, Silent Jealousy, 紅, Forever Love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들은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가 가능하며 ART OF LIFE는 목 상태에 따라 완창이 가능할 때가 있고 불가능할 때가 있는 정도이지만 X의 경우 만큼은 부르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 들어서는 썩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23. [23] 장장 12년에 걸친 세뇌와 착취로 인한 정신적 피해와 한화 100억원 이상에 달하는 금전의 손실 그리고 X JAPAN Toshl의 이름을 빌어 사이비 종교의 광고탑으로서 활동하며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양산하는데 일조했던 명백한 과오와 그로인한 명예의 실추 등
  24. [24] 한정 수량밖에 생산이 안돼서 가격이 엄청 비싼 1959년깁슨 레스폴 커스텀 모델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히데도 하나 갖고 있다.
  25. [25] 달리아 레코딩 당시의 험악한 녹음실 분위기 속에서도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였다.
  26. [26] 참고로 어떤 드러머는 4/4 기본박자를 한치 오차도없는 칼박으로 유수의 명문음대를 입학했다는 악기계의 전설이 있다
  27. [27] 두 사람이 가장 취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부분중 하나가 X의 솔로 부분으로, 이 부분만큼은 두 사람 모두 음 하나 안 나가는 클린으로 넘긴 예가 거의 없었는데 1992년 도쿄 돔 라이브를 비롯한 X 시절은 좀 나은 편이었으나(이마저도 일단 실수 없이 연주를 하는 것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았고 실상 Stab Me In The Back이나 SADISTIC DESIRE에서처럼 매끄러운 연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달리아 투어 시기에 이르러서는 히데나 파타나 매 라이브마다 거진 음 하나씩은 꼭 나가기가 일쑤가 되어 히데가 클린일 경우 파타가 미스, 파타가 클린일 경우 히데가 미스 아니면 아예 둘 다 미스, 늘 이런 식이 되었다.
  28. [28] 개인 음악 작업, 연예 활동
  29. [29] 비슷한 시기에 함께 한국에 라이센스 발매된 음반인 스기조의 SOUNDTRACK 앨범이나 엑스의 BEST OF X 앨범 등은 일본어 가사라는 이유로 연주곡을 제외하면 당시 곡들이 모두 잘렸다.
  30. [30] 실제 히데는 기타와 베이스 이외에 다른 악기에도 관심을 많이 보이며 공부했다고 전해지며, 타이지는 기타와 베이스 모두 수준급으로 연주하고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31. [31] X의 악곡에서 베이스가 비교적 쉽다고 기술되어있으나, 실제 X의 악곡에서 베이스 파트는 어려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X의 악곡이 빠른 템포의 메탈이고, 긴 러닝타임 동안 리듬을 유지하면서 중간 중간 멜로디컬한 베이스 라인을 넣어주어야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물론 X JAPAN 체제로 재편되면서, 베이스 파트의 존재감이 줄어들고 기본적인 리듬 파트이라는 베이스 파트 본연의 역할을 보다 충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난이도가 낮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부분. Drain 이나 Scars 같은 악곡에선 인트로의 베이스 파트가 돋보인다.
  32. [32] 물론 극히 일부 구간에서나 발생하는 문제라고는해도 Silent Jealousy에서의 솔로 파트라던지 X에서의 솔로 파트 연주분들과 같은 경우들은 누가 보아도 문제가 꽤나 심각하다,
  33. [33] 밴드 활동으로는 대문자를 쓰지만, 솔로 활동으로는 hide라는 소문자를 쓴다.
  34. [34] 음악적으로 핵중의 핵이란 말은 잘못된 것이다. 요시키 개인의 성격이 어땠든 밴드에서 최중요 멤버는 메인 송라이터이기 때문. 대중들이 엑스 재팬 하면 떠올리는 것은 요시키가 작곡한 발라드와 스피디 넘버이지 히데의 곡이 아니다. 히데의 곡들은 요시키 노래 위주의 앨범에 일관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로 들어가는 경우기 때문에 사이드킥(?)이 맞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프 메이킹이나 편곡도 작곡 못지 않게 중요한 분야긴 하지만 극단적으로 설명한다면 작곡된 것이 없으면 편곡할 일도 없고 리프를 만들 수도 없다. 이 문서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본인의 생전 성격이나 밴드에서의 위치도 딱 그 정도의 2인자. 물론 비주얼이나 인간관계면의 핵이긴 했다.
  35. [35] 반대로 타이지는 요시키가 타이지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경력을 들먹이며 기타리스트로 포지션을 바꿀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베이시스트로 명성을 얻고 있었고 가입 초기부터 요시키가 트윈 기타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밴드를 탈퇴했다가 히데가 베이스 자리를 양보하고 "우리가 작심하고 같이 힘을 합치면 밴드는 반드시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설득하여 밴드에 재가입하게 된다.
  36. [36] 잘못 알려져 있는 사실 중 하나가 X JAPAN의 비주얼은 모두 히데가 담당했다는 것인데 오히려 X 초기 인디 시절에는 히데가 음악적 부분을 담당했고 타이지가 X의 비주얼을 담당했다. 이것은 타이지의 자서전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공식 팬클럽이라는 Weekend에도 히데의 작품이라고 적어 놓는 오류를 범했다
  37. [37] Vanishing Vision 당시 인터뷰를 보면, 히데가 X에 가입한 후 요시키에게 '이 곡 왜 연주 안 해? 나 되게 좋아했는데' 라는 식으로 말한 것을 계기로 타이지와 히데가 설득하고, 그들이 멜로디 라인과 드럼 솔로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편곡하기까지 한다. 결국 타이지와 히데의 판단은 적중해서 紅는 그들의 대표곡이 된다.
  38. [38] Rose of Pain의 태핑부분은 굉장하다.
  39. [39] Jealousy앨범에 수록된 Voiceless Screaming에서 그의 클래식 기타실력을 잠시 맛볼 수 있다.
  40. [40] 본래 요시키는 Endless Rain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했으나 타이지가 '그럼 다른 멤버들은 네가 피아노 칠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고? 그리고 매탈 밴드가 기타 솔로도 없는 발라드 곡을 연주하냐' 라면서 락 발라드 형식으로 편곡하여 앨범에 들어가게 된다.
  41. [41] 당시 타이지는 결혼 비용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42. [42] 애니메이션 전체 시리즈 오프닝, DX에서는 오프닝/엔딩
  43. [43] 실제 요시키와 토시, 히데가 KISS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위쪽에 서술되어있듯이 엑스제팬 특유의 빗자루 머리를 만든 멤버 타이지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 듯 하다.
  44. [44] 인디즈 앨범 부클릿에는 스래시 메탈이라고 써있기도...
  45. [45] 이 경우는 트리뷰트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보컬 요나스가 팬 서비스로 한 곡을 불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46. [46] 리뷰란에 네티즌들이 직접 리뷰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한 이후에도 어떤 경우에는 리뷰를 통째로 지워버리기도 한다.
  47. [47] 이 소문이 퍼진 첫 시발점은 당시 언론사들의 오보였다는데 아마 엑스 재팬 앨범 총판매량을 블루 블러드 앨범 단일 판매량으로 잘못 써낸듯한 이 오보를 철썩같이 사실이라 믿은 당시 엑스 재팬의 팬들과 팬사이트들을 중심으로 이 허황된 루머가 널리 확산되었다
  48. [48] 이전 버전에는 이 요시키 드러머 순위 얘기도 엑스 재팬 팬덤들이 주도해서 퍼뜨렸다고 써놨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엑스 재팬의 팬까페들에 남겨진 글들을 보면 블루 블러드 앨범 판매량 얘기완 달리 이 요시키의 드러머 순위 얘긴 진짜 엑스 재팬의 팬들 사이에선 그렇게 많이 언급되지도 않았고 이런 내용을 조직적으로 널리 퍼뜨리려 한적도 없었다
  49. [49] 앞에서 쓴 일본에서 네 가구당 한 가구꼴로 블루 블러드 앨범을 가지고 있다 같은 잘못된 기사를 내보내거나 하는 식의... 요시키 드럼 얘기같이 근본도 없는 경우완 달리 블루 블러드 앨범 얘기 같은 경우는 한때 뉴스기사로까지 뜬 검증이(??)된 내용이라서 사실을 바로 얘기해줘도 설마 뉴스까지 뜬 내용은인데 이게 거짓이겠냔 식으로 바로 잡히지가 않았고 오히려 바른말을 해도 역으로 욕만 먹고 뭍히기가 일쑤였다
  50. [50] 사실 그 시절의 일본음악은 모든 한국 작곡가들의 표절의 대상이였기도 하다. 업계에서 어떻게 하면 티안나게 사운드를 카피해 올까에 대한 염치없는 고민도 많았으니...
  51. [51] SAY ANYTHING과 ENDLESS RAIN은 일본 가라오케 내에서도 X JAPAN의 곡들 한정으로 제일 인기가 많은 곡들이다. 참고로 일본 가라오케 순위가 가장 높은 곡은 Rusty Nail이다.
  52. [52] 단 1989년에 실질적으로 일본 대중들에게 히트했던 곡은 걸즈 록 밴드 PRINCESS PRINCESSDiamonds였다.
  53. [53] 후에 요시키가 사들였다가 다시 매각했다.
  54. [54] ART OF LIFE의 락 부분 편곡은 타이지가 마지막으로 편곡을 담당한 곡이다.
  55. [55] 그렇다고 도쿄돔에서 라이브를 개최한 록밴드가 X가 최초라는 말은 아니다. 도쿄돔을 개장했던 해인 1988년에는 BOØWY가 4월 4, 5일에 이틀 연속으로 해체 라이브를 개최했었고, 다음 해인 1989년에는 BUCK-TICK이 라이브를 했었다. 도쿄돔에서 라이브를 개최했었던 아티스트들 목록 참고.
  56. [56] 단 한 소절때문이라고 한다.
  57. [57] 초기부터 94년까지 세운 머리
  58. [58] 사실 사이비 종교단체인 홈 오브 하트의 압력에 의해서였다.
  59. [59] 여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12월 31일 이날은 故신해철을 주축으로 1990년대에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밴드 N.EX.T가 1997년 11월에 해체를 발표하고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마지막 고별공연을 가졌던 날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이 시차가 없으니 N.EX.T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X JAPAN은 도쿄돔에서 사실상 거의 같은 시간에 공연을 행한 셈이다.
  60. [60] 애초부터 악곡의 수가 턱 없이 적어 베스트 앨범을 가지고는 별다른 재미를 못 보고 있었는 바 이 점에 대해서는 BALLAD COLLECTION 53만 장, PERFECT BEST 25만 장을 제외한 거진 10만 장 이하를 밑도는 부진한 판매량이 증명한다.
  61. [61] 사실 예전에는 요시키가 직접 누드 커버 모델을 했는데 JADE 이후 모두 여성이라...
  62. [62] 우리나라 드림 콘서트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이돌 팬클럽 단위로 관람
  63. [63] 기존에 발표한 앨범 미수록곡들까지 다 들어가면 실질적인 신곡은 5곡인 것이 함정(.....). DAHLIA 앨범하고 다른게 뭘까..하지만 발매라도 하는 것에 감사하자
  64. [64] 인디 최초의 싱글. 1000장 한정 발매
  65. [65] 인디 두번째 싱글. 2500장 한정 발매
  66. [66] 인디 시절의 멤버가 작곡한 유일곡
  67. [67] 앨범 미수록 곡이다.
  68. [68] 부틀렉은 휴대용 녹음기로 공연 음원을 도청하는 불법 행위이지만 요시키는 이를 역이용해서 앨범으로 발매했다(...).
  69. [69] 여름에 X로 명칭을 변경함
  70. [70] 이 라이브를 끝으로 TOMO가 해고, EDDIE가 가입
    EDDIE 그리고 원년 멤버이자 같은 학교 출신인 TERRY, ATSUSHI가 탈퇴
  71. [71] TAIJI와 HALLY의 가입. 이 라이브를 끝으로 HALLY의 탈퇴하고 JUN이 가입한다
  72. [72] 이 라이브를 끝으로 TAIJI, JUN의 탈퇴, ZEN이 가입
  73. [73] 이 라이브를 끝으로 ZEN이 해고되고 HIKARU가 가입, JUN이 재가입
  74. [74] 이 라이브를 끝으로 SHU(JUN), HIKARU가 탈퇴, KERRY가 가입. TAIJI에게 재가입을 권유
  75. [75] TAIJI가 재가입 후 첫 라이브
  76. [76] SATORU의 가입날이기도 하지만 실력이 어설퍼 라이브 직후 해고, KERRY의 탈퇴
  77. [77] ISAO의 가입 후 HIDE의 합류, ISAO의 오토바이 사고로 탈퇴 후 PATA가 합류, YOSHIKI, TAIJI, HIDE, TOSHI, PATA의 라인업이 갖춰짐
  78. [78] 이 공연을 끝으로 TAIJI가 탈퇴
  79. [79] HIDE의 마지막 라이브
  80. [80] SUGIZO의 정식 가입 이후 첫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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