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모바일 미러 (일반/밝은 화면)

[image]

오른쪽이 2014년 모습.

1. 소개
2. 생애
2.1. 만화가가 되기까지
2.2. 데뷔
2.3. 둘리의 아버지가 되다.
2.4. 그 후
3. 이모저모
4. 검열과의 전쟁
5. 활동 목록
5.1. 주요 작품들
5.2. 기타 활동

1. 소개

金水正

1950년 7월 31일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 진주금성초등학교[1], 진주동명고등학교 출신. 일명 둘리 아빠. 한국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만화가. 대표작으로는 아기공룡 둘리, 일곱 개의 숟가락 등이 있다. 이 이름으로 남자다. 절대 필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물론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충격받을 수도 있을 내용. 비슷한 사례로 이진주가 있지만, 이쪽은 필명이다.

어린이 만화의 선두주자로 현재 본인의 작품 제작과 캐릭터 라이센스를 관리하는 업체 (주)둘리나라의 대표이기도 하다. 어린이 명랑만화가로 주로 알려졌지만 서민들의 모습과 전쟁의 아픔, 사회적 이슈 등을 특유의 서글서글한 그림체로 꼬집어내는 작가로 아기공룡 둘리 연재 당시 일어난 걸프전에 대한 에피소드는 슬프기까지 하다.[2] 이외에도 현실비판적이거나 시궁창스러운 슬픈 이야기 등을 작품에 종종 집어넣는 스타일의 작가였다. 날자 고도리나 다른 작품을 봐도 그저 웃으며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둘리 자체도 겉은 명랑만화지만 머리 굵어지고 다시 보면... 또한 자투리반의 덧니들은 30여년전에 츤데레 및 여러 오덕적인 재미를 넣은 작품이기도 하다.

2. 생애

2.1. 만화가가 되기까지

1950년 7월 7일 경남 진주에서 5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사고로 다치시자[3] 어려웠던 형편으로 신문팔이, 껌팔이, 아이스케키 장사 등 날품팔이를 하던 시절을 겪었다. 그 와중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소재로 한 52쪽 짜리 만화책 <저 언덕을 넘어서>를 그려 만화와의 인연을 시작해 중~고교 때는 <금발의 토이>, <아라비안 나이트> 등을 그리는 한편 습작을 거듭해 꿈에 차근차근 나아가게 되었다.

그 시절 만화가를 한다고 했다가 큰 형과 말다툼하여 나중에는 죽어라 얻어맞았던[4] 적도 있다. 이로 인해 가족들과의 불화가 심했고 두 차례 가출을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왔으나 역전에서 깡패들을 만나 포기해 버렸고, 둘째는 김기백 화백[5]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다 집을 못 찾아 포기한 것이었다.

[image]

60년 초반에 나온 동물야구왕[6]이란 만화책에 나온 독자 코너에 어렸을 적 김수정이 보낸 그림(출처는 2012년 6월 8일자 VJ특공대에 나온 고전 희귀만화를 3천 권이상 소장한 수집가 오경수가 모은 책).

결국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경상대학교를 중퇴하고 군 생활을 거쳐 겨우 1975년에 합동과 만화 독점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던 소년한국일보 공모전에 낸 <폭우>가 당선되어 만화가로 데뷔했으나 도무지 벌어먹을 길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신촌 대통령이라는 악명으로 유명하던 이영래가 만화가들을 대충 부려먹으면서 공장만화 체제를 갖추며 합동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만화계를 독점하던 시기였는데, 김수정도 여기로 갔으나 무시당했고, 그나마 편집장이 고향이 같은 강철수를 문하생이라도 하려고 소개시켜줘서 강철수를 찾아갔지만 강철수는 김수정의 그림을 보곤 그림은 40점, 글은 60점이라며 나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며 거부했고, 김수정도 격분하여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지금도 강철수와는 그다지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1978년경에 생계를 위해 윤성실업이란 애니메이션 하청업체에서 일하나 창의성이 결여된 제작 환경에 환멸을 느껴 전기인두를 파는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나마 기본급으로 월 10만원을 받았으니 표절 공장 만화가 때보단 훨씬 생활이 나아졌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길, 세일즈맨으로서 재능은 최악이었단다(…) 회사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공책으로 그림을 그리며 연습을 했는데, 친하게 지내서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던 후배 세일즈맨이 이걸 보고 그림이 아깝다면서 형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몇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회사 술자리와 개인적으로 김수정에게 찾아와 한잔할때도 간곡하게 권유했다고. 결국 김수정은 3달만에 세일즈맨을 때려치고 만화가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 후배와 종종 만난다고 한다.[7]

당연하게도 가난은 늘 붙어있었다. 결국, 생활고를 못견디고 결혼을 약속했던 동거녀(전 아내)는 처가인 부산으로 돌아갔고 김수정은 겨우 차비를 빌려서 아내의 친정집으로 갔다. 그러자 아내의 오빠되는 이가 나와서 "돈도 못 버는 만화가 때려치지 않으면 내 동생 못 데려간다!"고 일갈했다고 한다. 이에 김수정은 "당신 동생은 포기해도 만화는 포기못한다"며 그냥 나와버렸고 집으로 올 차비도 없어서 노숙을 해버렸다고 한다. 결국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 1,000원으로 서울까지 돌아올 차비 700원을 쓰고 300원으로 라면을 사서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어쩌면 이때의 갈등이 나중에 이혼 및 여러가지 가정적 일을 예고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고 속에서 틈틈히 만화를 그렸지만 겨우 연재를 해도 원고료조차 못 받기 일쑤라서 돈이 없으니 당시 쌍문동 공동묘지 앞에 자리잡은 달동네같은 곳에서 살아야 했다. 그 와중에 동갑내기 친구이자 만화가 동료인 김동화(본명:김종철)를 알게 되었다. 둘 다 턱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한잔 할 돈도, 커피 한잔 살 돈도 없어서 어찌 시간이 나면 찾아온 김동화와 같이 공동묘지 근처 풀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만화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반대로 김수정이 김동화가 살던 곳으로 찾아갈 때도 마찬가지라서 마포의 한 쪽방을 빌려 겨우 살아가던 김동화는 맞이할 곳이 없으면 근처 아파트 단지 풀밭 위에 누워서 서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김동화가 회고하길, "당시 수정이에게 하늘 바라보면서 '배고프고 돈 없을 땐 만화가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란 말을 하자. 수정이는 피식 웃으면서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야, 돈을 보면 돈밖에 안 보이지만 작품은 계속해서 기억되기 마련이야' 지금 생각하니 그놈 참 명언 잘 남긴 거다."

2.2. 데뷔

결국 어찌어찌하여 1979년에서야 결혼을 치루고, 비로소 자신의 첫 작품[8]이라고 할 1남 4녀 막순이를 연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만화를 연재할 당시 대선배인 만화가인 故 길창덕 화백이 만화가들 모임에서 그를 보더니 차갑게 "자네, 일본 만화 어느 걸 베꼈지?"라고 물었고, 이 말에 김수정은 베껴 그릴 바에야 만화가를 때려쳤을 겁니다. 확고하게 대답했다. 이 대답에 길창덕 화백은 "그래, 역시 그렇지. 자네의 독창적 그림체였지? 미안하네. 한번 확인해보고자 일부러 차갑게 말해보았네"라고 웃으며 말하고, 그를 인정해주었다.

이렇게 길창덕 화백의 인정도 받고, 꾸준히 작품을 그리긴 해도 그다지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덤으로 대머리 캐릭터를 그렸다가 80년 초반, 전두환을 연상케한다는 죄목으로 작품도 강제 종료되는 일까지 겪게 된다.[9] 그나마 O달자의 봄이 영화화가 될 정도로 인기를 얻어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때,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외식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83년 아기공룡 둘리를 보물섬에 연재하게 된다. 연재 전에 둘리를 친구인 만화가 김동화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뭐야? 이 악어 새끼는?"하고 물었다고… 발끈한 김수정은 "야! 공룡이다. 이게 어디가 악어로 보이냐?"고 했지만 김동화는 "이런 거 인기 못 끌 거 같다. 우리 내기하자"고 했고, 몇 해 뒤에 그 내기로 술 한판 얻어먹었단다.

2.3. 둘리의 아버지가 되다.

사실 둘리는 연재 초기에는 그렇게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1983년 8월 24일 오후 2시쯤, 무더운 여름에 아기공룡 둘리 6화를 아르바이트하는 문하생들[10]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고를 다 끝낼 무렵에 수고했다면서 문하생에게 시원한 콜라라도 사오라고 심부름을 했는데 이 친구가 그만 뭔 심보인지 콜라를 엄청 흔들면서 가져왔다. 당연히 콜라를 따려니까 콜라가 솟구치면서 원고까지 흠씬 젖었고 김수정과 다른 문하생들은 충격과 공포에 비명을 질러버렸단다(…) 그 문하생은 그 날부터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고 이 에피소드는 바로 둘리에서도 쓰이게 된다.(고길동이 콜라 사오라고 심부름하자 둘리가 콜라를 마구 흔들며 가져와 당연히 솟구친 콜라에 고길동이 흠뻑 젖는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다시 원고를 그려야 했는데 이 때부터 이상하게도 인기가 생기기 시작해서 보물섬 표지를 장식했고 인기 투표에서도 독보적으로 높은 투표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김수정은 둘리를 대본소 업체에 팔지 않고, 당시에는 거의 유일한 연재만화 판매 업체인 요요 코믹스를 통해 단행본을 냈는데 요요 코믹스 측이 가장 많이 팔리는 단행본이라면서 꽤나 두둑한 판매 수익비를 줬다고 한다. 김수정은 이 때 만화가도 이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구나 라는 느낌이 왔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아기공룡 둘리가 TV애니메이션으로 나왔을 때, 자신의 작품 성향은 찾아보기 힘든 아동용 애니로 탈바꿈 된 걸 보고 "이런 건 둘리가 아니야"라며 머리를 쥐어뜯기 까지하며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1] 당시 TV애니메이션이 특집 2부까지 방영을 마친 후 50부작으로 제작 제의를 하였지만 원작과 애니메이션과 갭이 크다는 이유로 김수정이 거절하는 바람에 두번다시 TV애니메이션은 방영하지 못했다.[12] 그에 대한 반발인지 베이비 사우르스 돌리에서 더 시궁창스러운 이야기와 성적인 코드 등을 도입했다가 제대로 흑역사 취급을 받게 된다.

물론 김수정 화백의 그림체가 철저하게 아동용 만화에 특화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TV 애니매이션 버전의 아기공룡 둘리는 아동용 애니로 탈바꿈된 것이다. 그냥 생긴 대로 갖다 붙인 셈이다. 내용이 아동용 만화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날자 고도리 역시 그림체 때문에 아동용 만화로 보인다.

텐아시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이혼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따른 스트레스도 엄청났으므로 그런 어두운 상황이 만화에 투영된 것이라고 한다. #

얼음별 대모험을 만들 때 즈음 "둘리는 어디서 살아요?" 라는 어떤 아이의 편지를 받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13]

아기공룡 둘리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준 최고의 히트작이지만, 아기공룡 둘리의 인기 때문에 아리아리 동동, 쩔그렁! 쩔그렁! 요요[14], 볼라 볼라 같이 둘리와 같은 시기에 연재하던 다른 작품이 묻혀버린 면이 없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서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고. 심지어 아리아리 동동의 연재가 중단된 이유는 당시 편집장의 "둘리보다 재미없다"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표작들 중 일곱 개의 숟가락은 드라마화, 티쳐X는 개그프로의 꽁트화가 되어서 인기를 끌었다. 09년 새로이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 TV 애니메이션은 아동에게 충실한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라고 언론에서 밝혔는데 거짓말이었다. 과거 김수정 스타일대로 제작되어서 어른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특유의 긴 파마머리로 유명하며 작중 가난한 만화가 김파마 로 자신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파마 머리의 유래는 80년대 장발 단속 당시에 시도한 자신 나름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실제 머리는 긴데 파마 때문에 짧게 보여서 장발 단속을 피할 수 있어서 라고 하는데, 다른 인터뷰에선 머리를 쥐 파먹듯이 잘린 적도 겪었다고 했다. 결국 장발 단속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듯. [15] 현재는 이 머리를 포기했다.

90년대 중반쯤에는 어린이 교육 프로에도 출연하여 기초적인 그림 그리기 기법을 가르치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2.4. 그 후

하지만 90년대에는 만화가 활동을 멈추고 둘리나라 회사 대표로서 회사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실 90년대 중후반에 새 만화 연재도 기획했지만, 출판사들이 베이비사우루스 돌리의 실패 때문인지 둘리는 한물갔다면서 연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여 아쉬움을 나타낸 적도 있다. 1999년에 스포츠서울에서 아리아리동동의 리메이크판을 잠깐 연재한 적이 있긴 한데, 김수정 골수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퀄리티로 별 주목도 못받고 한달도 채안돼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베이비사우루스 돌리보다도 더한 진 흑역사... (돌리는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도 은근 많지, 아리아리동동 리메이크판은 정말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뒤로는 만화 연재는 완전히 포기하신듯 하다. 다만 2016년 현재까지 조선일보에 작은 2컷만화로 둘리의 영어교실같은 걸 연재하긴 한다.

현재 회사 둘리나라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기업인으로서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다고 한다.[16] 그 외에도 1998년부터 2년간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을, 2000년부터 이두호 화백의 뒤를 이어 2년간 만화가협회장까지 지냈다.

2005년부터 인덕대학교에서 캐릭터 디자인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몇년 못하고 그만두었다. 참고로 당시 이진주(만화가)가 학과장이었다.

3. 이모저모

4. 검열과의 전쟁

사실 그 시절은 '심의'가 아니라 '검열'이었고 성적인 내용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내용도 당연히 포함됐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검열하면서 작가들은 만화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 그린 게 아니라 검열 때문에 못 그렸다.

둘리 애장판 작가 인터뷰 겸 책 서문

아동 만화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심의가 적었을 것 같지만 상술했듯이 김수정 만화가는 본래 성인 만화가로 당시 시대 기준으로 파격적이거나 암울하고 성적인 코드들과 1980년대의 시대상과 정권을 풍자하는 정치적 코드들을 자주 삽입했다. 그러다 보니 보수세가 강했던 당시 사회에서 신군부YWCA에 의해 제지되기도 했다.

데뷔작인 1남 4녀 막순이 이후 김수정을 알린 작품 중 하나인 아담 그리고 이브가 정부에 의해 검열된 대표적인 피해사례로 14회만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유는 작 중 대머리 인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것으로[18] , 이주일등과 마찬가지로 당시 전두환의 외모와 관련된 탄압이다. 당시 도봉동에 거주했는데, 당시에는 도봉동은 시골이었고 집엔 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 찾아왔었는데 느닷없이 편집장에게 호출이 와 가보니 주간중앙 편집부가 뒤집어져있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신군부가 들어서기 전이었는데(5.17 내란 이후 8.27 통일주체국민회의 이전), 이 때문에 국보위에서는 ‘왜 이런 게 누설됐나, 사전에 정보가 흘러간 것 아닌가’라면서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간중앙이 완전히 뒤집어졌고, 중앙 일간지에 사과문도 냈으며 김수정을 짤렸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보면 이주일과 달리 연재처나 방송사 측의 과도한 아부로 빚어진 일은 아니고, 국보위가 직접 나선 일로 보인다.##

YWCA에게도 괴롭힘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꽤 맞는 말이다. 얼음별 대모험이 개봉할 당시 인터뷰하던 씨네21같은 잡지에서도 그냥 YWCA 이름으로 통일해 보도했다. 그 정확한 이름은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 일단 해당 단체 소속인 부분은 맞으며 YWCA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월간 키노 1998년 1월호에 나온 이들의 반론글(여길 악의 소굴처럼 엄청 비판하던 박무직에게 반론한 글)에서 이 이름과 같이 YWCA 소속임을 밝히고 있긴 하다.

확실히 이 단체에게 엄청 시달림을 받았었다. 둘리가 "아이들이 너무 버릇없고 고길동도 너무 폭력적이다."라며 저질 불량만화로 매도당하면서 1980년대 후반경에 여기서 소환하여 "이렇게 그리지 말라고~" 하자 열 받은 나머지 나중에는 "이렇게 그리면 어쩔 거냐? 날 처벌할 거냐!" 이런 마음으로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내용도 넣었다고 하신다.[19] 그러나 실제로 작중에서 도우너는 고길동을 애완동물로 취급하며 반말을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게다가 의외로 둘리, 또치도 고길동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도 보인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대로 부도덕적이며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연재 당시 사전심의에서 일부 장면이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bugulbugul_191245_3[245855].jpg

아기공룡 둘리 원고 중 한 장면. 빗금 친 부분이 당시 심의로 인해 삭제 처리된 장면이다.

이를테면, 희동이의 고추를 때린다든지 하는 장면이 들어갔는데, 검열이니 뭐니 이들 잔소리를 피하고자 환경오염 때문에 돌연변이 무가 살아 움직이는 꿈의 세계에서 희동이 바지를 벗겨 꼬추를 때리면서 자연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시도를 했다. 그야말로 교훈적인 내용을 추가하는 고단수 명안(…)을 내놓아서 이 단체들이 별다른 말도 못했단다. 존나좋군?

성교육 만화인 귀여운 쪼꼬미까지도 저질 불량만화로 매도당했다.[20] 더 골때린 건 1991년경에 이 만화를 추천만화로 선정하는 통에 아주 열터져 씩씩거리셨단다. 진정한 이뭐병. 1997년 7월 27일 딱 1회하고 사라진 서울 애니메이션 엑스포[21]에 나와 귀여운 쪼꼬미 홍보 부스에서 사인회도 하셨는데, 당시 사인을 받은 어느 이가 "그 단체에게 시달림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대체 어느 정도였나요?" 라고 질문하자, 방금 전까지 미소지으면서 답변하던 얼굴이 확 달라지면서 "거기 이야기도 하지 마세요"라며 고개를 돌렸기에 입을 다물었던 적도 있었다.

5. 활동 목록

5.1. 주요 작품들

데뷔 : 1975년 소년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 당선(폭우)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5.2. 기타 활동

좋은 만화영화상 대상수상 - 문체부 주관한국영상대상 애니메이션상 수상 - 일간스포츠 주관영화평론가상 수상 - 한국 영화평론가 협회 주관


  1. [1] 학교 본관 내에 둘리 인형과 도우너 인형 등이 있다.
  2. [2] 연재 만화의 특성을 살려(?) 에피소드 소재 자체를 당대의 핫이슈와 곧잘 엮어내기도 했다. 위 이라크 에피소드나, KAL기 에피소드 등. 시사 만화가로서의 센스도 지니고 계신 듯.
  3. [3] 저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거나, 김수정이 성공할 때까지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는 말이 있지만 잘못된 정보다. 김수정이 어린 시절에 사고로 다쳐 집에서 지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아버지는 유일하게 집안에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자신을 믿어주고 꿈을 잃지말라며 격려해주고 만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돌아가신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고 한다(둘리 애장판 1권 작가 인터뷰 및 월간 보물섬 1989년 12월호 참고).
  4. [4] 5~60년대에 '만화'라는 것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기억해보자. 그나마 형을 말리던 게 아버지였다. 어머니나 형들은 거지 꼴로 사는 것과 같다고 화냈지만 아버지만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며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던 그를 막지 않았기에 자신이 만화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5. [5] 1935~2017. 본명은 김기태. 당대 유명 순정만화가 민애니 화백의 남편이라고만 서술하기에는 억울하다. 시사만화가에서 시작했으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철도청을 풍자한 만화로 인하여 필화사건을 겪으며 아동만화가가 되었다. 김영하 화백이 그의 제자였으며 김기백도 당대 유명 만화가였다. 2017년 7월 11일 작고.
  6. [6] 이 만화는 김수정이 존경하는 만화가 차평(1940~ ) 이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렸다. 그러나 차평은 만화 검열제 항목에 나온대로 검열에 부딪치자 꽤 젊은 나이에 은퇴해버렸다....
  7. [7] <한국대표 만화가 18인의 감동적인 이야기(장상용 저)> p73~74 참고.
  8. [8] 1990년 보물섬에 회고하길, 이전에 그리던 만화들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리던 작품이라고 했다. 작가에게 거론도 하기 싫은 흑역사였던 셈.
  9. [9] 그 시절에 무척 흔하던 일이다.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 작품 고바우 영감은 1950년대부터 대머리 캐릭터였음에도 이 당시 새해 인사한다고 큰절하며 돋보이는 대머리가 전빠박을 비하한다고 신문에 연재를 못했으며 연기자인 故 박용식이 전두환 닮았다고 방송 활동을 금지먹었다.
  10. [10] 한국의 만화가 18인같은 책자에선 문하생이라고 나오는데 둘리 애장판에서 작가 인터뷰로 "난 문하생을 쓴 적이 없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확히는 문하생을 고용한 게 아니라 후배 만화가들이나 출판사 사람이 톤을 붙이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수정이 여러 곳에서 이 콜라 이야기와 문하생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이 일화는 확실한 사실인 듯.
  11. [11] 캐릭터 디자인도 너무 다르고 둘리의 성격도 순한 모습으로 달랐고 정작 김수정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크게 관여하지 못했었다. 바뀔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애니메이션 심의규정이 한 몫했다.
  12. [12] 물론 20년 후 원작의 특성을 살려서 리메이크판 TV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13. [13]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므로, 관련 인터뷰 등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수정 바람
  14. [14] 이 작품은 닥터 슬럼프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 자세한 건 닥터 슬럼프 항목 참고.
  15. [15] DC인터뷰에선 단속을 피했다고 하는데 한국의 만화가 18인에선 김수정이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당시 경찰에게 머리를 억지로 잘리던 걸 회고했다…
  16. [16] 1998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둘리나라로 벌어들인 순수익은 당시 200억이 넘었다고 한다. 2016년으로 치자면 600억 가까운 수익이었고 이후 여러 수익을 더 거둔 건 당연하다. 여담인데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은 그다지 수익을 얻지 못했는데 항목을 참고할 것.
  17. [17] 알코올 도수 15도. 1990년대 초반의 정세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18. [18] 자세한 내용은 덥수룩 했던 아담의 머리를 보고 이발사가 새로운 뭔가를 보여준다면서 머리를 다 뽑아버리는 장면이었고, 그 장면은 이주일 개그의 패러디 였다고한다(...)
  19. [19] YWCA 국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도 있다. TV 인터뷰에서도 당시 80년대 수준으로 둘리 일당의 악동 행위는 충분히 불량아, 문제아의 영역이었다고. 당장 현실에서 저런 자식 키우라면 충분히 문제아이긴 하지만... 기저귀만 입고 있는 희동이가 외설적이라는 딴지는 충공깽이다. 1980년대 후반 당시 김수정 화백은 이런 지적에 너무나도 열뻗쳐서 "당신들은 아기 기저귀 갈아입힐 때도 외설적이라 생각하시나요?" 라는 말로 반격했더니만 한다는 소리가 일상과 만화는 다르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먹였다고 한다.
  20. [20] 쪼꼬미 자체가 당시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성교육 만화이기도 했지만(...)
  21. [21]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 및 미국 애니메이션을 원어로 유료 상영까지 했다. 건담 F-91이나 지온의 잔광, 메모리즈같은 애니가 상영했는데 마크로스 플러스는 상영 예정을 잡았다가 뮨을 범하려는 장면이 심의에 걸려서 상영취소되었다. 그것도 상영예정 날에. 덕분에 많은 항의에 환불 요구까지 있었다. 지온의 잔광 상영 때도 자막이 안 나오고 끝부분이 먼저 나오고 처음 부분이 뒤에 나오는 상영 사고가 벌어져 환불 사태가 벌어졌었다.
  22. [22] 쉽게 말해 아기공룡 둘리의 인간 버전으로 보면 되는데 둘리의 포지션을 홍실이가 맡은 것이다. 그외 홍실이의 부모들은 모두 친부모라는 점과 위로 오빠가 한명있다는 점도 둘리와의 차이점. 특이하게 홍실이의 아버지가 홍실이가 다니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의 당시 호칭} 교장 선생의 옛 제자였다는 설정이다. 마지막회에서 홍실이 아버지가 미국지사로 발령받아 떠나기전, 학교 정문에다 바리케이트를 세워놓고(도망갈까봐...) 전교생들과 석별의 포옹(...)을 하는데 이게 밤까지 계속되어 경비원이 제발 좀 집에 가라고 하소연을 하는게 개그 포인트. 폐륜행위도 있는데 유기견을 데려와서는 개 이름을 자기 아버지 이름으로 짓는다. 더불어 미국으로 간다니까 당시 인기 미드였던 기동순찰대의 판치{에릭 에스트라다 분}와 사귀겠다고 하질 않나, 빨리 학교가라는 아버지를 향해 미국 가기 전 해야 할일이 얼마나 많냐며 일일이 나열하지를 않나(머리에 노랑물은 왜 들여??{홍실이가 미국 가기 전 해야할일들 중 하나로 든게 머리에 노랑물 들이기였다}), 실로 둘리 못지 않은 진상의 진수를 보인다.
  23. [23] 그런데 김수정의 딸의 이름이 다름아닌 김홍실인데, 바로 이 만화에서 따왔다고.
  24. [24] 작중 등장하는 만화가 김파마의 작품으로 일종의 극중극. 애니화에 성공했는데 TV를 켠 순간 전봇대 변압기가 나가서 둘리는 이 방송을 못 봤다.
  25. [25] 성교육 만화. 비록 김수정 화백의 둘리식(?) 그림체지만 성교육 만화란 특성상 아동들의 성기 노출 등이 자주 나왔다. 요즘이면 아청법 크리. 참고로 애니화되어 MBC에서 방영 되었지만 시청률이 그리 나오지는 않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습.
  26. [26] 아이큐 점프 연재. 염라대왕의 아들인 홍도와 홍도의 아들이었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순경 민완(성이 민씨고 이름이 완이다.)이 강력 범죄를 해결하는 작품으로, 소년지에 연재된 만화답지 않게 극 중 등장하는 범죄자들의 범행동기라던가 수법이 상당히 잔혹(극중 한 에피소드에서 민완이 우연히 탈옥범에게 잡혀 인질이 되는데 이 탈옥범은 알고보니 억울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오랫동안 갇혔던 무고한 사람이었다. 엽기적인 건 대박 식당으로 큰 성공을 거둬 그 지방에서 유지나 다를 거 없는 베프가 진범이었고 덤으로 이놈이 그야말로 인간말종이라 이 억울한 탈옥범의 친누이동생까지 죽였다.(오빠가 무고함을 드러낼 증거를 찾았기에) 그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하나뿐인 가족까지 죽인 셈. 그걸로도 모자라 두 동생까지 데려와 석궁으로 아예 이 무고당한 친구를 죽이려 했다. 뭐 민완과 홍도 도움으로 일은 해결되는데 이 쓰레기의 두 동생은 오발된 석궁에 맞거나 형이 탄 차량에 치어 죽고, 마지막으로 이 쓰레기도 민완이 경찰임을 드러내면서 모든 진실을 알 증인으로 나서자 흥분해 다른 경찰의 권총을 빼내 쏘려다가 경찰들 총을 무수히 맞고 벌집이 되어 끔살...그럼에도 이런 쓰레기를 학창시절부터 베프로 아끼던 친구는 눈물을 흘린다.)했고, 그 최후 또한 비참했다.결국 인기를 얻지못하고 흐지부지 갑자기 완결(홍도의 아우가 갑자기 나타나 아버지가 화냈다고 홍도를 억지로 염라계로 데려가면서 끝났다.). 홍도는 판관 포청천을 많이 참고했는지 검은 피부에 이마에 초승달 점이 똑같았다.
  27. [27] 주인공 '부니기'는 학교 교사이지만 키가 심각하게 작다. 선을 보러 갔는데 상대 여자가 거인 수준으로 묘사되었고 그 거인녀의 키가 170cm. 도시전설로 이 만화에서 두 개의 만화가 파생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하나는 굿모닝 티처(주인공의 직업에서 유래)이며 다른 하나가 그 전설적인 미스터 부(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라고 한다.

[image]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수정 문서의 r78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분류

CC BY-NC-SA 2.0 KR(일반 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