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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역대 당대표

3대
조승수

4대
홍세화
안효상

5대
이용길

[image]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트리비아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1. 개요

한국정치인, 언론인이다. 2018년 기준 노동당 소속. 1947년 12월 10일생. 진보신당이 망해서 그렇지 김규항, 박노자. 오세철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계열 지식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서슴없이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몇 안되는 인물.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때 지나치게 온건(?)하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다.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정당을 원한다고.

2. 생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후 무역회사에 재직하던 중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파리 출장 중 프랑스망명을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프랑스에서 20년간 망명 생활을 하였다. 이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프랑스 이민국의 망명 담당자가 했던 질문이란 게 "당신은 그저 당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뿐인데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 물론 이에 대한 홍세화의 대답은 "그렇게 하면 잡혀가니까...(...)'' 이후 한동안 파리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 자유화도 막 되던 시기라 아직 해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프랑스와 유럽 상황을 신속히 전달하는 언론인 역할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택시기사 생활 경험과 프랑스 사회에 대한 소개, 본인의 성장기와 한국 사회의 과제를 담은 1995년작[1]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 후 1999년에 귀국하고 2002년 1월에는 영구귀국했다.[2] 그 후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2011년 11월 25일 진보신당의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지만, 당의 득표율이 3%를 넘지 못해 낙선했다.

이후엔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는 노동당의 정당후원회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2020년 2월 14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임미리 교수 비판 칼럼 고발 사건에 관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보다 배타적이며 비관용적"이라며 비판했다. #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진보신당

242,995 (1.13%)

낙선 (2번)

4. 트리비아


  1. [1]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2. [2] 단, 그의 두 딸과 아들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그곳에 남았고, 아내는 한국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한다고. 한국 국적의 홍세화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동안, 프랑스 국적의 딸은 한국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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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NC-SA 2.0 KR(일반 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