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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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키의 몸을 뜻하는 말
1.1. 장점
1.2. 단점
1.3. 모에요소로서의 장신 속성
1.4. 민족별 신장
1.5. 인물
2. 병자호란 때 도망간 문관

1. 큰 키의 몸을 뜻하는 말

長身.

반대말은 단신.

단신과 달리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일상 회화에서 이야기할 경우 가치관이 부딪칠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나마 좀 공통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개념을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1]

유난히 키가 큰 민족은 대표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인과 발칸 반도인, 네덜란드인과 동부 아프리카 일부 부족들. 남수단에 거주하는 딩카족(Dinka Tribe)은 20세기 중반에 평균 키 182cm[2]를 자랑했다. 그 유명한 매뉴트 볼과 모델 알렉 웩이 딩카족 출신이고 축구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 부모가 발칸 반도계 이민자인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이다.[3] 자세한 건 장신/목록 참고.

1.1. 장점

1.2. 단점

1.3. 모에요소로서의 장신 속성

만화나 애니, 게임에서는 큰 키 덕분에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는다. 또한 큰 키 뿐만 아니라 몸무게까지 많이 나간다면 거인 속성과 겸할 수 있다.

여자의 경우 키가 크면 다리가 길기 때문에 각선미가 많이 부각되기도 한다. 여기에 스타킹 패티쉬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여자가 장신일 경우 누님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통 큰 정도가 아니라 180cm가 넘는 굉장히 키가 큰 여자 캐릭터의 경우 그 이질적임으로 인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여자의 경우는 키가 크면 쿨하고 섹시할 수 있기 때문에 보이시 속성과 겸하기도 한다. 늘씬한 스타일일 경우 모델 스타일의 색기담당 기믹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여자가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쉬워 백합 라인에선 주로 을 맡는다.

장신인 여캐에게는 '키가 큰 게 콤플렉스'라는 설정이 붙기도 한다. 러브 콤플렉스가 대표적. 이를 반박한 것이 후지야마는 사춘기이다.

AV에서는 드물게 키가 180cm 전후인 여성과 키가 160cm 전후인 남성이 성관계를 가지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에는 키 차이로 인해 남성이 벽돌이나 책 등을 쌓아놓고 그걸 딛고 하는 등의 묘사가 나온다. 마크로필리아의 일종.

1.4. 민족별 신장

순위

국가

남녀 평균

기준

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83.9cm
171.8cm

만 19세 - 32세 측정, 2014년

2

몬테네그로

183.2cm
168.4cm

만 18세 - 37세 측정, 2014년

3

네덜란드

182.9cm
168.8cm

만 16세 - 18세 측정, 2002년

4

스웨덴

182.5cm
-

만 18세 징병 검사, 1961-1965년[18]

5

덴마크

181.6cm
-

만 18세 징병 검사, 1996년[19]

6

리투아니아

181.3cm
167.5cm

만 18세 징병 검사, 2001년

7

아이슬란드

181cm
168cm

2007년 OECD 만 20세 - 49세

1.5. 인물

  자세한 내용은 장신/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병자호란 때 도망간 문관

인조 때의 문관. 유명한 학자이자 효종장인장유의 동생이다. 원래는 형의 그늘에 가려 그저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으나 당시의 훈련 대장 이흥립이 장인인지라 그를 반정군 편으로 꼬신 공으로 정사 3등 공신이 되고 덕창군(德昌君)에 봉해졌다. 이때 그의 형 장유는 1등 공신이 되었다. 관직은 광해군에게 자기의 집을 내어준것으로 얻었다.

주로 지방관을 두루 지냈고 병자호란 당시엔 강화 유수로서 일종의 수군 장군인 주사 대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김경징과 더불어 강화도에 피난한 대군들 및 왕실 종친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지만 김경징과 사이가 나빠 사사건건 부딪쳐 의론을 분열시켰다. 게다가 '설마 바다로는 적이 들어오지 않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별로 방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군이 정말로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자[20] 그렇게 싫어하던 김경징과 더불어 배를 타고 내뺐다.

난이 수습된 후 그 죄를 물어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았다. 당시 그의 형이 우의정이었으나 사안이 사안인지라 얄짤없었다.[21] 수비 대장 직책으로서 임금을 버리고 도망간 죄는 용서가 불가능하나 단순히 패전을 이유로 참형을 당한 강진흔에 비해선 너무 고운 죽음이었다.


  1. [1] 본 문서의 장신 속성 캐릭터 항목은 여러 가지로 뒤섞인 창작물의 기준이다.
  2. [2] 이건 20대 남성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닌 남녀 노소를 합친 키다.
  3. [3] 아버지는 보스니아 출신, 어머니는 크로아티아 출신, 즐라탄 본인은 스웨덴 출신.
  4. [4] 반면 단신은 장신에 비해 체중 대비 낼 수 있는 힘, 열 내성, 민첩성, 낮은 무게중심 등에서 우위에 있다. 보통 단신은 개인전이 유리, 장신은 팀 전에서 유리하다.
  5. [5] 링크
  6. [6] 전투시에 상대의 공격을 맞을 확률은 피격면적이 큰 것보다 동작의 크기가 작을수록 맞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동작이 상대적으로 큰 키 큰 사람이 유리하다.
  7. [7] 일단 들어가는건 둘째치고, 앉을 때는... 안습. 특히 조수석이나 뒷좌석이면 앞에 공간이라도 있지, 운전석이면...
  8. [8] 전동차 출입문 높이는 보통 186cm로 맞춰져있다. 따라서 보통 180cm만 되어도 문 높이와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닿을 것 같은 느낌에 숙이게 되며 180cm 중반이 넘을 경우에는 신발을 신으면 키가 높아지기에 고개를 살짝만 숙이면 머리가 부딪힐 수 있어 꽤 많이 숙여야 한다. 게다가 경전철이면 애로사항이 꽃핀다. 또 기차도 만만치 않고 저상버스가 아닌 입석형 시내버스는 170cm만 좀 넘어도 천장의 손잡이에 머리가 닿으며 175cm이 넘으면 내릴 때 숙여야 하고 180cm이 넘으면 내릴 때와 탈 때 숙여야 한다. 190cm가 넘으면 서 있을 때 버스 천장에 머리가 닿는다.
  9. [9] 잔디용으로 거친 땅에서 축구하면 2달에서 3달이면 스터드가 다 달아지는데 거친 땅용으로 하면 6개월은 간다. 가끔 블로그보면 잔디용으로 맨 땅에서 축구했다가 두달만에 스터드가 사라졌는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10. [10] 단, 이건 단점이면서 장점이다.동시에 체지방의 소모도 크기 때문에 같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해도 단신보다 비만이 될 확률이 훨씬 낮아진다.
  11. [11] 이민자들이 많은편이므로 모로코계, 인도네시아계, 수리남계 등을 포함한 값이다.
  12. [12] 의외로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80cm. 독일 대표팀의 평균 신장인 185cm에 비하면 작은 편. 네덜란드 백인인 스네이더르 171cm, 젠던 173cm, 오버르마르스 173cm, 반 데르 파르트 176cm. 그렇다고 해서 혼혈들이 평균을 깎는 것도 아니다. 흑인 혼혈인 굴리트, 레이카르트, 인도네시아 혼혈인 반 페르시는 190cm에 육박한다.
  13. [13] # 독일의 평균 신장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함부르크의 18세 ~ 39세 남성 평균 신장은 185.6cm, 브레멘은 183.5cm이지만 작센 - 안할트는 175.7cm, 튀링겐은 175.4cm으로 한국보다 약간 큰 수준에 불과하다.
  14. [14] 노르웨이 성인 남성(18세부터 노인까지) 평균 신장 180cm, 스웨덴 20대 남성 평균 신장 182cm, 덴마크, 아이슬란드 성인 남성 평균 신장 181cm.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북부로 올라가면 북극인 및 그 혼혈이 많아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이 177cm 전후로 줄어든다.
  15. [15] 출처 측정 대상 남자 : 3,154명, 여자 : 3,956명.
  16. [16] 다만 키에 비해서 마른 편이긴 하다. 몸무게가 평균 58.8kg.
  17. [17]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키만 멀대같이 큰 게 아니라 장신에 어울릴 만한 골격도 갖추었다는 말이 된다. 즉 거구.
  18. [18] 이때가 스웨덴 키 전성기다. 지금은 이때보다 줄어서 181cm 정도. 19세기부터 1960년대까지는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컸다.
  19. [19] 서유럽이나 북유럽은 주로 1990년대에 가장 컸다. 지금의 덴마크는 180.2cm - 180.6cm 정도로 줄었다.
  20. [20] 민가의 집 문짝을 뜯어내서 뗏목을 만들어 쳐들어왔다.
  21. [21] 그것은 김경징(아버지가 당시 영의정 김류.)도 마찬가지였다. 김경징의 부관 이민구는 10년 넘게 유배살이를 하다가 효종 때에야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