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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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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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남우주연상

제17회
(1978년)

제18회
(1979년)

제19회
(1980년)

하명중
(족보)

최불암
(달려라 만석아)

이대근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장민호
(1968)

최불암
(1969)

함현진
(1970)

함현진
(1970)

최불암
(1971)

김성옥
(1972)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해당 부문 신설

최불암
(1974)

문오장
(1975)

한진희
김진해
(1977)

최불암
이낙훈
(1978)

이정길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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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불암(崔佛岩)

본명

최영한[1](崔英漢)

출생

1940년 6월 15일 (79세), 일본령 조선 경기도 인천부 금곡정[2]

본관

해주 최씨

신체

171cm[3], 75kg

학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데뷔

1967년 KBS 드라마 '수양대군'

가족

배우자: 탤런트 김민자

형제자매

무녀독남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4

취미

여행

특기

골프

종교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출처

기타 사항

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한민국 경찰 명예 경무관
불암산 명예산주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배우 활동
2.2.1. 그가 발굴한 배우
2.3. 정치 활동
3. 기타
4. 출연작
4.1. 드라마
4.2. 기타
4.3. 애니메이션
4.4. 광고

1. 개요

대한민국배우.

국민 아버지로 유명한 국민배우이자 수사반장, 전원일기로 대표되는 전설적인 장수 드라마들을 주인공으로서 이끌었던 대배우이다. 과언이 아니라 1970 ~ 1980년대 한국 TV 드라마계에서 이 분을 제외하면 설명이 불가능 할 정도의 큰 존재감을 자랑했다. 현재 80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밥상을 비롯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며 어린 시청자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신다.

연기 외에 최불암 시리즈로도 유명한 배우. 최불암이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최불암 시리즈를 좋게 여기지 않았으나 몇몇 에피소드들을 몇 차례 접하면서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재미있다'라고 생각하여 호의적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출판사에서 최불암시리즈 출판을 위해 집에 찾아왔을 때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으며,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웃고 힘을 낼 수 있게 저작권도 무상으로 줬다고 한다. 최불암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때 일밤에 출연해 최불암 시리즈 꽁트에 본인이 본인 역을 맡아 철저히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비슷한 경위로 유명세를 얻은 척 노리스와는 동갑(1940년생)이다. 이 외에 이주일, 이소룡 등과도 동갑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40년 6월 15일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에서 사업가인 최철(崔鐵)과 대한제국 때 궁내 악사를 지낸 집안의 딸 이명숙(李明淑)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최불암의 가족 중에는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최불암을 임신한 모친을 국내에 두고 독립운동을 하는 형제들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고, 해방이 될 때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다. 그 후 해방이 되고 나서 만주에서부터 인천까지 말을 타고 귀향했다. 말안장에는 돈과 보석이 잔뜩 실려 있었다고.

최불암의 부친은 만주에서 가져온 돈으로 해방 직후 인천에 영화사(건설영화사)와 신문사(인천일보[4])를 차렸으나 직접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6살에 불과했던 최불암은 부친의 영정을 들고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야 했다.

모친 이명숙 여사는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대폿집을 열었다. 그곳은 금방 당대 문화인들의 사랑방이 됐다. 그 곳을 드나들던 문인 중 소설가 이봉구는 특히 명동백작이라 불렸는데, 부잣집 아들인 그가 은성에 술자리를 마련하면 서점을 운영하던 시인 박인환과 가난했지만 멋진 시들로 인기가 많았던 김수영 등이 모여 많은 일화를 만들어낸 곳이다. 봉구주점이란 별명까지 있었다고. 은성주점 터는 현재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최불암은 단골이었던 당대 문화인들과 대화에 끼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 예술에 대해 알려준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최불암의 개인사적 다큐멘터리마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은성주점 터를 찾는 모습이 가끔 텔레비전에 비친다.

2.2. 배우 활동

대중들에게는 주로 텔레비전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많지만, 젊었을 적에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원래는 연출을 전공했으나, 자기가 연출을 맡은 연극의 배우가 연기를 못하자 그 대타로 뛴 것이 연기 인생의 시작이었다. 특히 1959년에 극단 '실험극회'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햄릿을 공연했을 때 타이틀 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당시 한국에서 햄릿을 연기한 최연소 배우였다고 한다. 다만 평이 안좋았는지 자신이 성에 안찼는지 공연 끝나고 자진해 국방부 퀘스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원래는 외아들이라 군대 안 가도 되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연극배우 시절에는 별로 유명세를 못 탔다. 당시는 외모가 연극배우의 척도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문에 한때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고...[5] 1967년 27살의 나이에 KBS 2기 탤런트로 데뷔하여 처음 맡은 역할이 김종서 장군, 그것도 계유정난 당시의 노년 역할이었다(;;). 이후로 줄곧 노역으로 승부수를 던지게 되었다고... MBC에서 방영된 제1공화국, 제2공화국에서는 아예 이승만 역할을 맡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제2공화국은 그렇다 치고, 제1공화국 당시에는 40세의 나이에 80대였던 이승만 역을 맡았다...

1969년에 MBC가 개국하자 그쪽으로 옮긴 후에 대박을 많이 터뜨렸고 스타가 되었다. 현재는 다른 방송국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거의 MBC 전속이나 다름없었다.[6] 그래서 최불암 시리즈 중에서 터미네이터가 방송국에 쳐들어왔는데 경비가 '야 여긴 KBS야 MBC가서 찾아봐'라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드라마 외에는 KBS좋은나라 운동본부에 반고정 패널로 장기출연했으며, 그 덕분에 즐겨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7]

전원일기(22년간 방영), 수사반장(18년간 방영) 등 국내 드라마의 전설.

2004년에는 비슷한 연배의 배우인 오지명, 노주현과 함께 코믹영화 까불지마를 찍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8]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9] 끝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2009년 불암산 명예산주로 위촉되었다.

지금이야 연세가 연세인만큼 할아버지나 장인어른, 시아버지를 자주 맏아서 연기하시지만 젊었을적 수사반장같은 드라마에서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그 자체. 특히 담배를 물고 피우는 장면이 워낙 간지라, 박정희도 그가 담배를 피우면 함께 물고 피웠었다.

노인들중에서 김혜자와 부부인 것으로 착각하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실제로는 김민자가 부인인데, 이 사람 역시 탤런트이다. 결혼 전 최불암이 편모 가정에 외아들인데다 직업이 배우라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자와 가까워질 생각으로 김민자가 있던 KBS로 이적했을만큼 공을 들인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

1981년에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로 유명한 정여진와 함께 듀엣[10]으로 "아빠의 말씀"이라는 음반을 낸 적이 있다. 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 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11] 90년대 중순 MBC에서 하던 만나보고 싶습니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정여진이 지금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면서 그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앨범[12]을 내는 준비를 하던 정여진 가 나와 인터뷰와 같이 최불암과 16년만에 만나기도 했다. 이후 2020년 1월 3일 슈가맨 3 5화에서 정여진과 함께 재석팀 슈가맨으로 등장했다. 슈가송은 당연히 아빠의 말씀.

차마고도, 한국인의 밥상다큐멘터리내레이션을 맡기도 했고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나레이션도 맡은 바 있다.

여담으로 박순천 여사 역할로 유명한 성우출신 원로배우 김소원은 그의 처형(妻兄)이고, 배우 최아란은 그의 처조카이다.

2.2.1. 그가 발굴한 배우

2.3. 정치 활동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5번)

통일국민당

-

당선

1993.2 탈당
1993.7 민주자유당 입당[13]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신한국당

33,020 (32.5%)

낙선 (2위)

통일국민당으로 강부자와 함께 통일국민당 전국구(비례대표)의원으로 1992년 14대 국회의원직을 맡기도 했다.(같은 시기 이순재민주자유당 의원이었고, 부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최불암은 다음해 정주영의 대선 패배 때문에 국민당이 대선에서 패하자 국민당 의원과 함께 민자당으로 옮겼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신한국당으로(국민당 해체 이후 옮김) 지역구 의원(영등포 을)으로 출마했으나 철새김민석에게 패배, 낙선하는 아픔을 맛봤다.[14] # 연설장면

여담으로 14대 국회의원 당시에는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등, 연예 활동을 겸했다. 이는 이순재, 강부자 등도 마찬가지. 당시에는 이를 막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불암이 정치를 이유로 연예 활동을 중단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 때.낙선하고 바로 복귀했다

3. 기타

> "하루는 부속실[18]에서 전화가 왔다고 집사람이 그래요. 청와대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속으로 "부속? 부속이 뭐지?" 그러면서 전화를 받았어요. 일요일, 수사반장이 막 끝났을 땐데, 내가 바꾸니까 "영부인 전화십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기다리는데 누가 웃으면서 "저, 육영수예요" 하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죠. 나는 속으로 뭔가 큰 죄를 지었구나 했죠. 근데 육 여사께서 "제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담배를 좀 줄여주세요. 최불암 씨가 담배를 태우시면 저 양반도 따라서 태워요." 그러시는 거예요.

4. 출연작

4.1. 드라마

4.2. 기타

4.3. 애니메이션

4.4. 광고


  1. [1] 국회의원 활동은 당연히 본명으로 했기 때문에,(뉴스에서도 신한국당 최영한 후보라고 말한다) 이 이름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2. [2]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3. [3] 젊은 시절에는 175cm였지만 고령으로 인해 키가 줄어들었다.
  4. [4] 현재 발행되고 있는 인천일보와는 다른 회사다. 현재의 인천일보는 1988년에 창간됐다.
  5. [5] 그래서 괜히 자살한 연예인들을 질타하는게 아니다.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그걸 극복한 연륜이 있어서이다.
  6. [6] 80년대에 '전속'은 없어졌으나, 의리상으로 계속 MBC에 출연했다고.
  7. [7] 관련 일화로 초기에는 '금연' 선언만 하고 담배를 계속 피웠는데, 어느날 시민에게 딱 걸려서 빼도박도 못하고 금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 토크쇼에서 고백한 내용.
  8. [8] 제작과 감독 모두 오지명이 한 작품으로, 사실상 오지명이 독보적으로 이끌어간 영화임에도, 유명한 최불암 시리즈 덕분에 오지명이 주연을 양보했다고...
  9. [9] 시기를 잘못 잡은 탓이다. 개봉 당시에는 외국 경쟁작이 엄청난 속도로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10. [10] 엄밀히 말하면 내레이션. 노래는 정여진만 불렀다.
  11. [11] 원곡은 명배우 앤서니 퀸이 부른 유명 팝스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 배우로서 앤서니 퀸을 동경했기 때문에 섭외가 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당시 그가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한 때였기에 더욱 더 곡이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12. [12] 당시 정여진이 준비하던 앨범은 최진실이 나온 영화 주제가 편지 OST이다.
  13. [13] 이때는 전국구 의원이 탈당한다고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다! 통일국민당은 탈당한 최영한(최불암의 본명)이 의원직을 안토해내자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각하당한다.(헌재 1994.4.28. 92헌마153) 판결 요지는 탈당한 전국구 의원의 의원직 유지 여부는 헌법이 아닌 개별입법으로 논의할 문제라는 것으로, 이후 입법을 통해 전국구 및 비례대표 의원이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끔 하였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서 배정한게 전국구인데, 이때 최불암을 포함해서 다수의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무소속 전국구 의원이라는 희대의 코메디가 벌어졌다. 언론에서 이를 조롱하는 칼럼도 여러차례 나왔다.
  14. [14] 이 때 김민석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의 젊고 전도유망한 미남 정치인으로, 지금과 같은 철새 이미지가 없었다. 당시 최연소 의원(31세)이었고, 이 이미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가카에게 광탈하고...대선에서 철새되고
  15. [15] 동아일보에 금주 선언문을 투고하고도 술을 못 끊었고, 본인의 수필 중에서도 명정(酩酊) 40년이라는 글이 있을 정도. 40년 인생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 살았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
  16. [16] 잔 돌려마시는 풍습이 대세였던 시절이니까.
  17. [17] 당시 받은 술은 막걸리. 쌀로 담근 술을 바닥에 버렸다고 혼이 난 것.
  18. [18] 청와대 내의 살림을 담당하는 부처로 영부인을 보좌하는 역할도 한다.
  19. [19] 여담으로 1998년 4월 28일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사기꾼을 잡아라' 특집으로 사기 용의자들을 공개수배했는데, 이 때 최불암이 직접 진행을 맡았고 명예 경정이라는 자막까지 나왔다.
  20. [20] 1969년 MBC 개국초기작으로,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라는 유행어도 낳았다.이때부터 김혜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1. [21] 80년대 훌륭한 부자들의 성공담을 다룬 실화 드라마 시리즈. 여기서 정주영편에서 최초로 정주영을 연기한다. 참고로 이 작품중 일부 장면은 정주영 회장 사망후 편집돼서 재방된 경력이 있다.
  22. [22] 독립운동하다가 돌아와 입헌군주국을 재건시켰다. 이때 황후가 김혜자. 또 부부로 출연했다.
  23. [23] 기존의 '국민 아버지'에서 '꼴마초 국민 아버지'로
  24. [24] 수사반장에서의 모습으로 TV속에서 주인공인 한태주에게 말을 거는 역할. 원작에서는 70년대 BBC의 새벽 화면조정시간에 나오던 소녀가 이 포지션이였다.
  25. [25] 다른 형사들은 모두 출연자의 본명을 썼는데 혼자만 다른 이름이었다
  26. [26] 실제 정주영 회장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정계진출도 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27. [27] 단, 청년 천태산은 차인표가 담당.
  28. [28] 80년대 사극의 영조역 단골이었다.
  29. [29] 이때부터 타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작가 김수현의 권유로 출연을 결정했다.
  30. [30] 최불암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69년에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세탁기인 백조세탁기의 광고모델이었는데 백조세탁기 출시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같은 회사 제품의 광고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