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모바일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1. 개요
2. 차례
3. 바깥고리

1. 개요

擊蒙要訣

조선왕조 때의 학자이자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가 지은 학문서. 1577년(선조 10년)에 율곡이 학문에 입문하는 후학생들을 위해서 지은 학문서로 1권 분량으로 있다. 원본은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다.

책 제목은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노하우)이라는 뜻으로 학문에 입문할 후학생들에게 내 어리석음을 스스로 버리되 학문의 중요함을 새기며 배우도록 하라라는 율곡의 뜻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서 후학들이 자신의 어리석고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학문을 익히어 세상을 바로잡으라는 율곡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십만양병설을 제창했던 율곡은 이로 인해서 관직에서 사임한 후 황해도 해주에 기거하며 후학양성에 열중하게 되면서 후학들이 세상을 올바르고 옳은 결단을 하라는 뜻으로 이 책을 직접 저술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후학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리석고 안일한 생각을 가질 것을 우려하여 다음 세상을 이끌 후학들이 세상을 올바르게 잡아가고 옳은 결단으로 바로 잡아야한다는 뜻을 생각하며 책을 저술하였는데 율곡은 이 책을 저술하기 전에 해주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제창한 계기로 사림파들의 걸림돌이 되었으며 사림들은 이러한 율곡을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급기야는 반역을 모의하는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사림들의 반응은 나라가 태평성대한 때에 군사를 키워서 뭐하냐, 율곡이 반역행위를 모의할려고 군사 도모를 제창한 것이 아니냐라고 그랬는데 이런 율곡의 의견을 홀대한 결과 율곡이 세상을 떠난 1584년 이후 8년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조선군은 초기부터 왜군에게 압도적으로 패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선조는 민중들을 버리고 의주로 북행 피난을 하게 된다.[1]

2. 차례

링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닷컴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원문 및 번역이다.

3. 바깥고리


  1. [1] 단 십만양병설은 허구라는 주장이 강하다. 자세한 내용은 임진왜란 항목 중 십만양병설 참조

분류

CC BY-NC-SA 2.0 KR(일반 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