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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Kim Eo jun | 金於俊[1]

이름

김어준

출생

1968년 12월 4일 (51세)

경상남도 진해시[2]

본관

김해 김씨

학력

윤중중학교 (졸업)
문일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 / 학사)

병역

방위병 소집해제

종교

무종교(무신론)[3]

직업

언론인

1. 소개
2. 생애
2.1. 딴지일보 창간
2.2.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3. 주요 행보
3. 기타 이모저모
4. 매의 눈? 오리발의 달인?
5. 프로젝트 부
6. 논란
7. 출연작
8. 수상
9. 저서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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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 문단은 토론에서 '대한민국에서 좌파로 알려진 언론인'임을 기술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이 문단은 토론에서 '대한민국에서 좌파로 알려진 언론인'임을 기술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사항을 다시 토론하지 않고 수정할 시, 토론 합의에 대한 불응, 반달리즘으로 간주되어 차단될 수 있습니다. 편집 시 주의하여 주십시오. 해당 토론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쫄지마, 씨바"

팟캐스트나 김어준의 파파이스 때 한 단골 멘션이자 보수 정권에 대한 그의 대표적 멘션.

대한민국에서 좌파로 알려진 언론인,[4] 인터뷰어. 딴지일보 종신총수. 인터넷 미디어 딴지일보를 창립하였으며 이후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고 우파들을 깔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심층 취재 및 가공을 전문으로 한다.[5] 그에 비해 좌파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6]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대중적 인기로 대한민국 팟캐스트 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2011년 나는 꼼수다를 거쳐 2016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컴백해 다시 지상파 좌파 언론인으로 올라오면서 기존 기성 언론 매체 출신이 아닌 언론인으로서 시사저널의 연간 리서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2017년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7]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입김이 인정되는 좌파 언론인이 되었다.[8]

2. 생애

경상남도 진해시[9] 출신이다. 모친의 직업이 유치원 교사였으며 굉장한 방임주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10] 이 방임주의란 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김어준이 고교생 시절 담배를 피울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집에서 대놓고 피울 것인지 밖에 나가서 피우고 들어올 것인지를 두고 부모님과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때 김어준은 난생 처음으로 부모의 간섭을 받았다고 하는데, 끝끝내 방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김어준의 고집에 모친은 뺨을 한 번 후려치고는 "그래 피워라 인마"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지금 외모와 다르게 청소년기까지 큰 키에 날씬한 체형이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나꼼수를 할 때 정봉주가 김어준의 과거 지인을 만나서 조사해서 방송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출처] 유년기에 미국에 가서 10년간 살다가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중학생 때 이미 키가 180에 가까운 훤칠한 외모...?에 얼굴이 잘생긴 데다가 공부를 잘해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국 중학교로 전학오자마자 처음으로 본 학교 시험(중간고사 혹은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는 바람에 '얼마 전에 전학온 키 크고 잘생긴 애가 공부도 잘 한다'고 소문이 나서 별명이 테리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고등학교 당시 우등생이었다고 하는데 서울대학교는 삼수까지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로 진학하였다. 스스로 회술한 바에 따르면 더 재수사수(?)해서 서울대를 가고 싶었으나 군대 때문에 홍익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마지막 재수 삼수를 했을 당시, 탈락하면 입영통지서가 발급되고 그러면 더 이상 병역을 미룰 수 없어서 얄짤없이 군복무를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직업훈련원(폴리텍대학교 등)이 병역을 강제로 1회 연기를 시켜주고 이런저런 방법으로[12] 연기가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교 재학이 유일한 병역연기 방법이었다. 훗날 본인의 저서 '건투를 빈다(p.26~29)'에서 서울대에 갔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어린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며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사진과 시. 이때 계속 서울대 입시에 떨어져서 하루는 집에서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울고 있는데 모친은 시크하게 (문짝을 부수고 들어와) "네가 대학 떨어졌다고 내가 하루라도 뭐라 그런 적 있냐"고 "그만 울고 얼른 튀어나와서 밥 식으니까 빨리 먹으라"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병역은 지금의 상근에 해당하는 방위로 필하였다.[13]

[image]

1991년 배낭여행 시절.

대학생 시절에는 아직까지는 운동권의 영향력이 꽤 남아있던 시절임에도 학생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던 것인지 그냥 저냥 평범한(?) 대학생활을 지냈다. 졸업 후 1995년 포스코에 입사했으며, 대학생활 중 흔히 말하는 사고를 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것도 아닌 평범한 모습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대단히 많이 했으며, 근 50여 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경험과 견문을 넓혔다고 스스로 자술한다.[14]

배낭여행 중의 경비는 전부 현지조달. 비행기티켓도 여행사에다가 홍보용 사진촬영과 리뷰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구하였다. 회고에 따르면 파리-로마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호텔 '삐끼'로 시작하여 매니저도 지내는 등 사업 수완이 좋았다고 한다. 귀국 당시 그렇게 수중에 모인 6천 만원을 들고 딴지일보 발간에 노력하였다고.

2.1. 딴지일보 창간

포스코를 8개월 만에 자기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서류복사나 하는 신입시절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거 아니냐는 자괴감과 직장 내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까지 이어진 기나긴 회식 후 (부장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회사간부가 김어준을 포함한 신입들에게 회사에 일찍 나오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던 사건이었는데, 당시 김어준은 시간상 2~3시간밖에 없어서 잠을 아예 안 자기로 하고, 집에 가서 샤워만 하고 옷을 갈아 입고 회사로 갔다고 한다. 근데 그걸 요구한 그 간부가 자기보다 먼저 출근해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간부도 잠 안 자고 회사에 온 것이다. 게다가 뭔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신입직원인 자신을 쳐다봤다고 한다.

사원들의 군기를 잡아주기 위해서 본인이 더 먼저 회사에 나와서 가오를 잡던 간부가 스스로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하는 표정과 태도를 보인 걸 느끼던 순간이 너무나 끔찍했다고 한다. 결국 스스로 직장 후배들 휴식 인권뿐만 아니라 자기 인권까지 파괴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게 그런 것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데다가, 그런 정신상태를 후배에게 더 심어주려는 자기 태도 자체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하는, 순수 노예 앞잡이 근성을 보여줘서 징그러웠다는 뜻이다.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비참하다 못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김어준이 훗날 유명세를 가지게 된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호칭을 '총수'로 요구하는 결정적인 이유. 옛날 사회에서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한테나 쓰던 부정적인 느낌의 표현그 사람들은 보통 총수가 아니고 총통이라 부르는데? 총수라는 표현을 제일 많이 쓰는 곳은 오히려 대기업 회장님들[15][16]임을 알고도 평생 고집하는 이유는, 초기 딴지일보는 자기 혼자 시작해서 장기간 노력하여 유명하게 만들었으니 자신이 영원한 '총수'이며, 대형 언론들처럼 자신의 위에 다른 사람(광고주)[17]이 없으니 계속 남에게 요구받지 않는 자신의 소리만 내겠다는 의미라는 논리.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 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김유식에 비할 만하다.[18] 명확한 정치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 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진보-개혁세력 지향이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2012년 새롭게 시작한 웹 월간지 더딴지에서도 파토 등의 주요 필진이 물어본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음담패설과 욕설을 운영자 자신이 인터넷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첫 세대 매체다)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애니나 고전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19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19]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 버블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국내모벤처기업에서 800억 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는데 거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딴지일보가 서서히 지면서 같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던 것.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딴지일보 항목 참조. 딴지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흥했지만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지 못했고, 소수 필진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하고 싶은 말 다 쓰고는 보완없이 - 애초에, 필진도 독자도 컨텐츠를 즐기는 곳이었다 -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라 점점 정보보다는 잡설을 보는 곳이라는, 재미있게도 처음 시작하며 내건 이미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것과 함께 정치적인 지형도 딴지의 몰락에 한몫했다. 소위 개혁세력이 집권할 때 딴지의 주적인 보수세력이 야당이었는데, 원래 풍자와 해학은 권력을 까는 데서 재미가 나오는 법이지만 딴지의 주적은 그 당시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었으니...비슷한 진보적 정치풍자 사이트인 미디어몹도 개혁세력이 위기에 몰렸던 탄핵정국까지 그 인기가 피크를 이루다가 이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거기에 휘말려 인기가 떨어졌다. 미디어몹, 한겨레가 그랬듯이.

2.2.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 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 편. 의외로 이런 데 나와서는 "씨바" 같은 욕을 안 한다. "XX"는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가카 얘기할때는 좀 했다

바른 언어 사용에 관심 많은 시민 학술 단체가 이 욕에 대해서 비판하며 "세종대왕이 벌떡 일어나시겠다"라고 한 적 있는데 김어준은 "일어나거든 연락하시라고 해라! 크하하"라고 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가수다 품평으로도 유명하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의 한 코너에 출연해서 나가수의 열풍에 힘입어 크게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김어준은 라디오에서 당시 진행되던 시즌에서 1등과 7등(탈락자)을 단 한 번 빼고 다 맞혔다. 틀린 것 하나는 6등을 탈락자로 예상한 것. 3회의 출연 뒤 MBC 라디오국이 윤도현을 하차시키면서 함께 퇴장.

이 나는 가수다 품평에 모티브를 얻어, 알고 지내던 정봉주의 제안으로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2011년 런칭한 나는 꼼수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리나 하던 아싸 털보 아저씨가 아닌 주류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대안 언론인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으로 2016년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대안 언론인이 아닌 정식 언론인이 되었다.

여러 저서 등과 활동을 볼 때 상당히 정치지향적인 인물이며 정치논리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스탠스는 본인은 꾸준히 중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상 친문성향(민주당, 국민참여당 쪽)으로 평가받으며, 다른 이들이 주장과 행동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면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2.3. 주요 행보

3. 기타 이모저모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 닥치고 정치 中

4. 매의 눈? 오리발의 달인?

김어준은 '나는 꼼수다'와 2011년 5월 지승호와 가진 대담을 글로 옮긴 저서인 《닥치고 정치》(2011년 10월 출간)에서 향후 국내정치의 흐름에 대해 여러 가지 예측을 하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한민국 정치지형 특성상 이런 류의 예측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나, 김어준의 경우에는 간혹 예측이 적중하기도해 일부에선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빗나간 예언이 사실상 훨씬 많고 논란이 될 만한 이슈는 빗나가면 '아님 말고~' 식으로 발뺌해 안티팬도 엄청나게 많다. 자세한 건 논란 참조. 이 문단에서는 그가 했던 맞춘 예언(?)들을 살펴보겠다. 했다가 틀렸거나 애매모호한 예언들을 모으면 문서를 분리해야 할 만큼 길어질 테니

대부분의 예측이 김어준이 장담한 대로 흘러가긴 한다. 오세훈이 무상급식에 올인한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인 패착이었으나, 보수 측에서조차 그가 정말로, 그렇게까지 전격적으로 사퇴하리라고 여긴 사람은 드물었다.

민노당 국참당의 합당이나, 노심의 탈당과 같은 경우에는 진보정치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인식은 지니고 있었다. 2011년 5월 있었던 연석회의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걸 주도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총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이정희와 유시민이 함께 책을 내는 등, 징후는 많았으나 징후를 읽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 구체화시키는 건 결이 다른 이야기라 하겠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 홈피를 공격한 건이나 2011년 김해을 보궐선거 당시 김태호의 터널 차량 통행방해 의혹(일명 터널 디도스 사건)을 제기한 것 등, 당시엔 소설이나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를 공론화시킨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다스와 도곡동 부지 실소유자가 이명박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으며 결국 그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눈썰미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2011년경부터 김어준은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대통령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문재인 본인에게도 강권에 가까울 정도로 대선출마를 요구하며 당시 정계에 뜻을 멀리하던 문재인을 강하게 푸쉬했다.[33][34]

2013년엔 한겨레신문의 하니방송 <시사게이트>에 출연하여 안철수와 민주당에 관한 전망을 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 단 둘 가지고 제3세력으로 계속 가는 건 무리고 민주당을 먹거나 먹히거나 해야 활로가 있다'는 전략에 대한 발언이었다. 2014년 3월 2일에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그의 바람대로 합당을 하였다.

2017년 4월 개봉한 더 플랜 영화와 여러 인터뷰 등을 통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과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k=1.5 등 일련의 주장이 처절히 논파당하면서 거짓 주장을 밝혀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해명하는등 어마어마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음에도 이에 대해 김어준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한번도 사과나 입장표명 없이 그냥 넘어갔다. 자세한 것은 더 플랜 문서 참조.

2017년 9월엔 속속 이명박 정부 시절의 국정원, 사이버 사령부, 기무대를 동원한 전방위적인 여론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며 그동안 꾸준히 여론조작팀의 존재를 주장해온 김어준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김어준은 그간 자신이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음모론자로 몰렸다며, 공작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하는 심리의 빈틈을 먹이로 가동된다고 말했다. 십알단에 대해서도 미친 음모론자 소리를 들었다고. 2017년 11월 11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댓글 공작 활동을 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지시 받고 실행)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이 구속됨으로서 그의 노력들이 점차 빛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여론조작의 실체가 드러난 드루킹에 대해서는 침묵 혹은 이명박근혜의 음모라는 논리로 일관하는 중.

2017년 12월 7일에는 옵션 열기라는 주제로 또 한 번 넷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2018년 7월에는 뉴스공장을 통해 워마드에 대해 강한 논조의 비판을 쏟아냈다. 워마드가 여성계를 극우화시키고 있으며, 배후가 있다는 주장이다. 논거로는 워마드가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호하며, 보수 정치인은 욕하지 않는데 문재인, 박원순 등 진보계 인사는 거리낌없이 조롱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워마드, 메갈리아는 표면적으로는 진보인사들의 지원 속에서 커왔으며, 표면적이지 않은 쪽의 의혹도 있고, 분명 워마드가 박근혜를 비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물학적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2020년 이용수 할머니가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미향에 대해서 '위안부 성금과 국가보조금을 착복해왔다'는 폭로를 하였을 때, 친일 세력들의 작업이 개입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5. 프로젝트 부

김어준이 계획한 다큐멘터리

1. 그날, 바다

2. 더 플랜

3. 저수지 게임

자세한 것은 개별 문서 참고 바람

6. 논란

[image]   자세한 내용은 김어준/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출연작

8. 수상

9. 저서

10. 둘러보기


  1. [1] 가운데의 "어"자는 "어조사 어". 영어의 "at"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본인은 이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며 "내 이름에는 전치사가 있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2. [2]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일단 출신학교를 보면 적어도 중학교 때부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서 자란듯 하다.
  3. [3] 출처
  4. [4] 2008년에 언론사 등록을 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도 딴지일보는 정식 인터넷 언론사이며 그런 활동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딴지일보 발행인. 내부에서는 '총수'. 현재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중이다.
  5. [5] 그런 이유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반정부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는 친정부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또한, 천안함 음모론, 세월호 음모론, 박근혜 당선 때 개표조작을 주장하는 등 진보 진영 내에서 음모론을 생산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6. [6] 이는 우파들이 많은 매체에서 보여준 이른바 "제 식구 감싸기"를 좌파에서도 보여준 케이스라고 하겠다. 김어준 왈 "저쪽은 무슨 일 나면 서로 감싸주는데 이쪽은 서로 손절하려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7. [7] 2017년에는 보도담당 사장.
  8. [8] 둘을 동시에 칭하는 표현으로 주털야손이 있다. 아침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저녁에는 손석희의 JTBC 뉴스룸.
  9. [9]창원시 진해구
  10. [10]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맛있는 게 있으면 부모들이 항상 먼저 챙겨먹으며 "너희들은 맛있는 거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냐"라고 했다고. 그리고 김어준은 이 말에 설득당했다고 한다.
  11. [출처] 11.1 나꼼수 22회
  12. [12]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 등
  13. [13]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청년인구가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3급만 받아도 방위로 갈 수 있었다.
  14. [14] 이라크와 이스라엘 중동지역을 방문할 때 반군 지도자 아라파트의 모습이 궁금해서 그의 집을 한참 찾다가 만나기 직전까지 갔으나 생각해보니 무작정 만나고 싶었을 뿐 아라파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없어 그의 집 벽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서는 '생각해보니 아라파트가 본인을 만나줄 이유가 없었기에 집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15. [15] 이건 틀린 지적인 게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나치당 총수, 파시스트당 총수란 표현을 정치 시작하고 당내 권력 잡자마자 언론에서 계속 쓰기 시작했고, 총통은 한참 뒤 완전히 권력을 잡은 뒤에나 썼다. 히틀러는 의외로 쉽고 빠르게 총통이 된게 아니다. 총수인 상태로 대통령 선거 두번이나 떨어졌다. 게다가 권력 잡은 뒤 당내 행사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해외 언론에서 종종 총수(독일 총통 겸 나치당 총수)란 표현을 썼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정치인생에서 총통보다 총수란 표현을 더 많이 들었다. 즉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웬만한 대기업 회장들보다 총수 소리 더 많이 들었다
  16. [16] 통상 직위호칭을 붙여 누구를 지칭할땐 역임한 직위 중 가장 고위 직위의 호칭을 부르는 것이 상식이다. 예를들어 김영삼 전대통령이 대통령 재임기간 보다 국회의원 재임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고(즉 생전에 의원소리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고) 오늘날에 김영삼 전의원이라 부르지 않으며, 무려 9선을 했더라도 국회의원 이미지보다는 대통령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당연히 히틀러도 독일 총통이 된 이후 부터 사후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 총통으로 불리고 있는만큼 총통으로 불린기간이 더 길다. 각설하고 총수라는 이름에 히틀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지 대기업 총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지는 각자의 느낌 차이이겠지만 당연히 부정적인 느낌의 표현일꺼라 생각하는 것은 김어준의 무지 혹은 착각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일단 김어준 본인이 부정적이거거나 긍정적인 느낌이라고 말한 적이 없고(물론 그런 생각자체를 안 했을 리는 없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그렇게 딴지일보를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총수였고 마지막까지 총수다'라는 말을 자신이 진행하거나 출연한 방송들에서 수차례 한 적만 있다. 또한 김어준은 세월이 흘러 다른 변화(상술된 더 높은 직위라 불리우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거나 하는 일)가 생긴다해도 자신을 총수로 칭할 것이고 그렇게 불러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인터넷 신문 총수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지상파 방송의 진행자가 되었을 때도 자신을 총수로 불러달라고 요구했었고, 뉴스공장 때문에 공장장이라는 호칭이 생긴 뒤에도 실제 지인들이 아직도 총수라는 호칭을 더 많이 쓴다.(당시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조차 뉴스공장 출연때 김어준을 총수라 불렀다.) 이는 무조건 가장 유명하거나 높은 직위여야 한다는 호칭의 절대성이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가장 틀린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후세에 학계나 미디어에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비슷한 패턴으로 다뤄지는 사람이 아니며, 그래서 사후에도 총통으로만 불리운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총통시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총수시절의 사건들이 원인이 된 일들이 너무 많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어, 그들에 관한 수많은 미디어와 논문에는 총수 혹은 그에 해당하는 각국의 언어 어휘가 쓰여왔으며 그렇기에 총수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총통보다 압도적으로 약하다 볼 수 없다. 총통과 총수라는 두가지 어휘가 다 강한 이미지로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남은 인물들인 것. 게다가 총통이 되기 전에, 진짜 대통령이나 총리가 따로 있었어도 이미 실질적 왕 같은 실권자였던 시간이 꽤 있어 김영삼 대통령처럼 대통령 취임 직전 직후의 권력차이가 크지도 않아, 중요 커리어에 총통이 아니던 총수 시절 운영했던 국가정책이 항상 포함된다. 총수라는 단어를 안 쓰고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기에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후세에 총수로 안 칭해졌다는 건 잘못된 비교다. 오히려 한국 기준으로도 대기업 총수들은 총수보다 회장, 재벌회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며, 총수라는 단어는 희귀하게 쓰이기에 재벌회장이라는 대체 표현이 더 많이 쓰이는 대기업 총수보다, 특이한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허울 내에 독재제도를 운영하고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정당 민주주의도 붕괴시켜 총통이 되기 전 총수시절에도 실권을 잡자 왕처럼 행동했던 히틀러나 무솔리니 쪽에 더 많이 쓰였음은 주관적이라고 볼 수 조차 없다.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처럼 보편적 사례를 통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수준의 관심 범위를 넘는 특수한 정치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상식이라고 주장하며,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역사적으로 국소한 지역이 아닌 전세계 학계와 미디어에서 세기가 넘어가도록 끊임없이 특별하게 다뤄지는 인물들을 단순 직위의 고하로 호칭하는 패턴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고, 당위를 떠나 현실에서도 그렇지가 않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평전은 물론, 수많은 국가에서 제작한 2차대전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총수라는 표현은 넘쳐난다. 총수일때 했던 일들이 총통이 되고 2차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으므로.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봐도 도저히 총수라는 어휘의 이미지가 히틀러 무솔리니 쪽이 재벌회장들보다 약할 수가 없다. 오히려 정 한국 정치인과 비교하자면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그들처럼 쿠데타 집권 및 독재정권으로 인해 장군이미지가 강한 전두환 같은 사람과 비교가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야 전 대통령이라 칭해지나, 독재자라는 이유로 전두환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고 장군으로만 부르는 사람들이 현대에도 남아 있기에, 전두환이 대통령 이미지와 장군 이미지를 둘 다 갖고 있어 사회에서 장군이라는 소재의 이야기가 나올 때 전두환이 떠오르는 일반인들이 한국에 여전히 많듯(심지어 개그 프로그램에 '옥장군'이라는 전두환 패러디 캐릭터도 있었다.), 총수 시절 쿠데타가 있었고 총통과 총수 이미지를 둘다 가지고 있어 총수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들이 떠오르는 것이 흡사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공식석상 호칭을 어떻게 하느냐와 어휘 관련 이미지가 어떠냐는 문제는 같은 것이 아니다.
  17. [17] 대형 언론들은 항상 광고주나 투자세력 등에게 논조가 흔들린다는 비난을 받는다.
  18. [18] 그러니까 현재 21세기 인터넷 커뮤니티의 통념적 형태를 확립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방향은 다르지만 '자유'라는 가치 아래 거침없이 반말을 하거나, 욕을 섞거나 키배를 뜨는 등 PC통신 시절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행태들을 주류화한 것. 더 쉽게 말하면 '인터넷에서 노는 방식'의 개념을 바꿨다.
  19. [19] 사실 1998년 정도면 아직 PC통신이 전성기일 때라, 인터넷 매체는 많지 않았고 갈 곳도 적었으며, 그 비싼 인터넷 자원 - 미국의 인터넷이 상업화되는 시기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을 가지고 황색저널을 표방하는 데 쓸 생각을 한 사람은 더 적었다. 시기를 아주 잘 탄 것.
  20. [20] 즉 마지막회의 바로 직전 회차.
  21. [21] 일상생활에서 김흥국처럼 아무 맥락없이 마구잡이로 가족과 친구들과 포털사이트, SNS에 물어보라고 시켰다. "오늘 국물이 맛있네. 근데 엄마, 다스는 누구거에요?", "야 어제 그 방송 재밌더라. 근데 다스는 누구거냐?", "(연예인 열애설 포털기사 댓글로)어 쟤네 둘이 사귀었다고? 근데 다스는 누구 거냐?"하는 식의 예를 들어줬다. 무서운 점은 단 2일만에 수만명의 청취자들이 실제로 대형포털사이트와 SNS에 실행하기 시작해서 일주일만에 수십만명으로 번졌다는 것이었다. 이게 유행이 된 뒤에는 가히 다스판으로 변해 SNS에 쿠크다스, 아디다스 드립같은 패러디 게시물이 판을 쳤을 지경.
  22. [22] 명백한 팩트로, 다스 특집때 김상중이 했던 엔딩 멘트였다. 김상중은 "그런데 대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말하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23. [23] 그것이 알고싶다 시간대다. 따라서 해당일에는 결방.
  24. [24] 세월호사건 소재 코너에서 유병언의 아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쿠르드족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일방적인 부정적 보도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하거나. 심지어 비판한 예시영상이 다른 방송국이 아닌 SBS뉴스였다
  25. [25] 첫회에는 박근혜 관련 문제의 관계자도 나왔었다.
  26. [26] 2002년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에서 박근혜를 상대로 '본인이 섹스어필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
  27. [27] 그러나 이는 모순적인 것이, 김어준은 딴지일보 초기까지만 해도 노무현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28. [28] 사실 검은 넥타이 자체는 그 전부터 메왔다.
  29. [29]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은 철저하게 박정희를 기반으로 하고 명확히 다른 길을 걷는 것도 아니어서 박정희하고 연계시켜서 까는 것이 연좌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를 사실상 정치적 세습이므로 박근혜를 폭풍디스했다.
  30. [30] 파파 이스로 바뀌기 전, 방송 초기에 방송 중 중간 영상으로 김어준이 청취자와 시청자들에게 '닭을 새롭게 요리하는 법'을 적어서 방송 측에 보내달라고 했을 정도다. 중의적 표현
  31. [31] 연구용역을 받아 진행되는 과제는 수탁기관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32. [32]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를 위주로한 진보신당 탈당파는 진보신당과 결별하고 민노당,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 참여로 실현되었다.
  33. [33] 다만 이게 김어준이 문재인의 진가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에게 대선후보 권유를 해봤던 것은 사실이나 그 외에도 유시민, 조국 등 김어준이 찔러본 사람은 많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1년에 이미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 투표에서 당시 안풍(安風)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강력했던 안철수를 누르고 1위를 할 정도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문재인이 정치에 뜻을 굳히게 된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말 때문이다. 문재인이 정계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는 주장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며, 김어준이 문재인을 사실상 발굴했다고 하는 것도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34. [34] 문재인이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적어도 일반 국민들에게 문재인은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문대통령의 성정상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었고,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하물며 대권후보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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