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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DB 프로미 2017-18 시즌 선수단

0. 이우정(G) · 1. 한정원(C) · 2. 박병우(G) · 4. 최성모(G) · 5. 맹상훈(G) · 7. 이지운(F) · 8. 박지훈(F)
· 10. 김태홍(F) · 11. 유성호(C) · 13. 윤호영(F) · 14. 노승준(F) · 15. 디온테 버튼(F) · 21. 윤성원(F) · 23. 김영훈(F)
· 27. 김현호(G) · --. 이광재(G)

김태술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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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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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DB 프로미 No.1

김태술(金泰術)

생년월일

1984년 8월 13일 (35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출신학교

해운대초 - 동아중- 동아고 - 연세대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등번호

1, 7

신체

180cm, 80kg

프로입단

2007년 드래프트 1번 (SK)

소속팀

서울 SK 나이츠 (2007~2009)
안양 KGC인삼공사 (2009~2014)
전주 KCC 이지스 (2014~2016)
서울 삼성 썬더스 (2016~2019)
원주 DB 프로미 (2019~)

1. 개요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2.2. 서울 SK 나이츠 시절
2.3.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2.4. 전주 KCC 이지스 시절
2.5.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2.5.1. 16-17 시즌
2.5.2. 17-18 시즌
2.5.3. 18-19 시즌
2.6. 원주 DB 프로미 시절
2.6.1. 19-20 시즌
2.7. 국가대표
3. 시즌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사항
6. 관련 문서

1. 개요

원주 DB 프로미 소속의 농구선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로, 특유의 픽앤롤과 예술적인 패스센스로, 지역방어를 깨는 능력이 뛰어나다.[1]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동아고 시절부터 천재 포인트 가드란 말을 들었으며, 강동희 - 이상민 - 김승현 으로 이어지는 '6년 가드설'을 잇는 천재 가드의 출현이 아니냐는 기대까지 받았다. 청소년대표팀에도 뽑혔다.

그리고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처음 출전한 농구대잔치에서 그런 기대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입학 예정자라는 대학생도 아닌 병아리 신분으로 출전한 주제에 고려대 격파의 주역이 되고 당시 정재호가 있던 경희대 격파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결승에서 만난 상무 상대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연세대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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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렉코비치?

연세대학교 시절.

그 후 선배인 이정석포인트 가드를 번갈아 맡으며 선배인 방성윤전정규, 동기인 양희종, 이광재 등과 함께 연세대가 대학 최강자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도 대학생 신분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 후반기에는 선배들의 졸업과 함께 힘을 키운 중앙대와 경희대의 대두로 인해 연세대 농구부가 차츰 패권을 잃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만다.[2] 고려대와의 정기전 성적 역시 좋지 않다. 시작은 2005년(2학년) 정기전에서 내내 앞서고 있다가 양희종의 파울아웃 후 귀신같은 역전패를 당한 것. 신제록과의 매치업에서도 줄곧 우위를 점했지만 신제록이 역전 클러치 3점을 때리는 바람에 다 망치고 말았다(…). 2006년(3학년) 정기전은 이동준(다니엘 산드린) 출장 문제로 경기 전부터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등 2시간여 가까운 파행을 겪다가 가까스로 진행됐는데, 연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부상과 파울이 겹친 양희종이 빠지자 전반전에 이미 20점 차 가까운 점수차가 나버린 것. 김태술(현 삼성), 이광재(현 DB), 이정현(현 KCC)의 연세대 가드진이 정의한-신제록 콤비에게 순삭당한 탓도 컸다. 4년의 정기전 중 김태술이 가장 부진했던 해. 덕분에 박건연 감독은 바로 잘렸다(…). 이듬해(4학년) 정기전 역시 15점 차로 대패하며 영 좋지 않은 성적을 남기고 졸업하였다.

그럼에도 대학 최고의 포인트 가드는 분명 김태술이었고, 프로농구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한 임재현을 대신해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2.2. 서울 SK 나이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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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 나이츠 시절.

2007-08 시즌에 평균득점 10.7점, 7.3 어시스트, 1.7스틸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서울 SK 나이츠를 오랜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고 그 해 신인왕에 올랐다. 마침 이 시즌에는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등 쟁쟁한 가드들이 각각 노쇠화, FA 후유증, 골프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양동근은 상무에 입대했던터라 상대적으로 가드진의 경쟁이 얇기는 했지만 날카로운 어시스트나 준수한 득점력에 리딩까지 보여주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나온 괜찮은 신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SK 나이츠 측에서도 이에 고무받았는지 포털 사이트 농구 뉴스란에 독자 코너를 만들어 '방-민-술 트리오(방성윤, 김민수, 김태술)'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어깨 부상으로 결장하며 방성윤, 김민수와 김태술이 같이 뛰는 경기가 있긴 한거냐는 우려를 받았으나 부상에서 회복해서 곧 돌아왔다. 하지만 전년도 신인왕 시즌에 비해서는 다소 정체한 시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치에 비하면 뭔가 미흡했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다. 결국 우승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SK는 2008-09 시즌 MVP인 주희정을 영입하기로 결정했고, 이 때 내준 카드가 바로 김태술이었다. 시즌 종료와 함께 발표된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술은 김종학과 패키지로 주희정과 교환되어 안양 KT&G로 이적했다.[3]

2.3.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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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주축 선수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고, 이들이 돌아오는 시점에 드래프트 자원과 함께 한 번에 정상을 노리는 계획에 따라 김태술은 트레이드와 동시에 바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고, 그리고 2년의 복무 끝에 2011-12 시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양희종-김일두 등도 한꺼번에 돌아오는데다가 신인 최대어 오세근까지 합류하는 시즌이므로 상당히 기대를 모았었다.

그리고 복귀한 2011-12 시즌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인삼공사의 돌풍을 이끌었다. 비록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상범 감독의 질책도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공백이 있었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준수한 활약.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흔들리는 면도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준수한 활약이었다. 시즌 평균은 10.8 득점에 4.4 어시스트. 그리고 PO KT와의 경기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평균 12득점을 집어 넣으면서 맹활약, 팀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면서 주희정을 내주고 자신을 데려온 인삼공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탈슼하니 바로 우승

2011-12 시즌 종료 후 발표된 Best 5에도 양동근과 함께 가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결국 2012-13 시즌도 양동근, 김선형등의 포인트 가드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하며 부상병동 KGC에게 공수 양면으로 이끌며 활약했다. 2013-14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해 4경기를 결장했고, 그사이 팀은 4연패에 허덕였다.

발목을 잡는것이 있으니 바로 장염과 부상. 장염은 2012-13 시즌 내내 괴롭히던 것이었다.[4] 그리고 2013-14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는중. 게다가 야투 감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득점 가담이 부족해지는등 작년보다 부진하며 태업을 하고 있냐는 비아냥까지 받고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유가 밝혀졌는데 바로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리신것. 2011-12 시즌 우승 직후 병원으로부터 진단받았던 것이라고 한다. 췌장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생존률이 극히 낮은 암으로 걸리면 끝인 암이다.[5] 추가로 밝혀진 소식에 따르면 본인 역시 장염을 아직도 달고 살고 있다고 하며 발목 부상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단 이러한 소식들이 밝혀진 뒤로는 팬들 그 누구도 까지 않고 아버님의 쾌유를 빌고 있다.그러나 결국 김태술의 아버지는 병환의 악화로 별세했다., 이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 되었다. 다음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FA 시장에선 동료인 양희종이 5년 6억에 계약하면서 김태술 본인은 잔류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서울 삼성이라는 소리가 들렸으나[6] 박지혁 기자가 삼성은 가고 꿈에서 김태술이 KCC를 갔다는 드립을 치고[7] 정지욱 기자가 I Love NBA 카페와 농구갤러리에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기는 등 KCC행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에서 다음날 바로 사인 앤 트레이드 기사가 떴다. 결국, 5년-6억 2천만 원에 안양 KGC 인삼공사와 재계약 후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KCC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반대급부는 강병현장민국.[8] 이적 후 김태술의 인터뷰를 보면 시즌 중반부터 FA로 이적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

2.4. 전주 KCC 이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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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에서 5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기대를 모은 하승진과의 호흡이 아직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 첫 경기라 아직은 두고 봐야 할 듯 하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KT와의 경기에서는 승리하긴 했지만 본인은 매치업 상대인 전태풍에게 확실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상의 여파가 있는 모양인지 2014년 10월 27일 기준 시즌 초반이지만 약 23%의 야투율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슛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그 후로도 전혀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먹튀, 고태술 등으로 불리면서 까이고 있는 중. 2라운드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야투율 20%대에 평균득점 5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조금은 나아졌지만 KCC는 패배하면서 리그 꼴찌로 내려 앉았을 정도. 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중. 팀이 9연패까지 하자 스트레스로 장염에 또 걸려 전자랜드전에 결장하였다. 아이러니하게 팀은 연패를 끊고 승리하였다. 장염에 시달리다 허리부상까지 겹쳤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결장 하였는데 팀은 SK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여전히 몸값대비 활약은 못보여주고있는 가운데 허재 감독까지 사퇴하면서 악재가 겹치게 되었다.

2015-16 시즌 초 대표팀에 있다 KCC로 복귀를 한 후에도 전혀 팀에 도움이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에서는 슈팅이 들어가지 않으니 패스도 자연스럽게 안되게 되고 돌파 또한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먹히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수비로 팀에서 하승진과 더불어 수비구멍이다. 수비문제로 지적받는 전태풍도 수비가 썩 팀 디펜스 부문에서 좋은선수는 아니지만 김태술에 비하면 팀 수비도 좋으며 애초에 대인방어 능력에선 전태풍은 근육질의 피지컬을 이용한 수비에서 김태술보다 나았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2015.10.20일 기준 2.67득점 2.2리바운드 2 2어시스트 1.8스틸로 스틸을 제외하면 매우 부진하지만, 진짜 문제는 비율 스탯, 22.8%의 야투에 3점슛은 단하나도 없으며 자유투도 겨우 66.7%. 그럼에도 추승균 감독은 꾸준히 20분 가량 출전시키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하고있다. 그런데 10월 24일 토요일 경기에서 17점 4리바 4도움을 기록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날렸다...만 그 이후 또 귀신같이 부진하면서 다시 고태술행.

그러나 다시 한번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고, 부상으로 빠진 경기들에 KCC가 상대 지역방어에 맥없이 무너지자 재평가가 되었고, 전태풍과 투가드로 특유의 패싱력으로 선수들을 살려주면서 꼭 필요한 선수라는 걸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로 또 부진하면서 다시 실망감을 주고 있는 상황. 무엇보다 슛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져서 상대가 대놓고 새깅을 해도 슛을 잘 던지지 못하게 되고 KCC 입장에서는 더욱 힘들게 공격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부와의 12월 11일에 있던 경기에서 허웅에게 제대로 떡블록을 먹으면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2월 16일 KGC전에서는 트리플더블에 약간 모자란 7골 9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쳐 팀의 85-60 대승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러다가 LG전에서는 또 부진하더니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10점에 9어시스트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결론은 14-15 시즌은 워낙 처참했던지라 15-16 시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 하나 경기력에 대한 기복이 심한 편이며 평균 득점이 겨우 5점대인 건 개선해야 할 상황이다. 결국 시즌을 4.5점 3.7도움 39.3 FG%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별 활약을 못하고 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그야말로 나오기만 하면 점수를 다 까먹는 구멍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나 2차전에서는 나오자 마자 조 잭슨과의 매치업에서 폭풍 실점으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나 6차전에서는 나오자 마자 완전히 게임이 넘어가는 흐름이 나왔다. 진지하게 이 분 안 되는 거 딱 하나임 그건 바로 농구

결국 챔피언 결정전 평균 10분 9초를 뛰면서 0.6점 1.6리바운드 0.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무려 연봉 5억을 받는 가드가 10분조차 버텨주지 못하고 팀의 패배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먹튀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게, 먹튀라는 오명을 결국은 지우지 못한 채, 2016-17 시즌을 앞두고 서울 삼성 썬더스이현민과 트레이드되었다. 삼성에서 2017년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같이 넘겨줬다는 듯. 장판팬들 : 만세!! 이상민 만만세!! KCC팬들은 이현민이라는 나름 준수한 가드와 5억짜리 먹튀 처리에 신인 드래프트 1라픽까지 먹게 되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KCC와 삼성의 운명이 정 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때까지는.[9][10] 그리고 2017년 10월 현재 결과적으로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 픽이 3순위에 걸리면서 서울 삼성 썬더스는 김태술 한 명을 받으려고 이현민과 3순위 드래프트 픽을 그냥 KCC에 갖다 바친 셈이 되었다. 완벽한 KCC의 승리.

2.5.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2.5.1. 16-17 시즌

몸상태가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첫 선을 보인 2016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고려대를 상대로 KGC 시절의 폭발적인 모습까진 아니었지만 안정된 슈팅을 바탕으로 자칫 고려대에게 역전당할뻔한 위기의 순간 결정적인 슈팅을 연거푸 성공시켜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안정적인 경기운영능력도 합격점을 받았기에 삼성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정규시즌 들어서도 전성기에 근접하는 경기력을 되찾으면서 삼성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최근 SK전에서는 환상적인 노룩패스를 성공시키고 4쿼터 막판 0.4초 남기고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결승 득점을 돕는 등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KCC에서 고질적으로 안 들어가던 뱅크샷의 성공률 또한 높아져 득점력도 살아나고 있다. 2라운드 들어서부터는 득점 기복이 조금 심해지긴 했지만, 승부처에서는 여전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쯤되면 STC에는 정말 뭔가 있기라도 한 듯.

이러한 효과로 올스타전에서 SK의 김선형과 함께 시니어팀 베스트5에 들었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클러치 상황에서 주는 패스가 턴오버로 이어지지를 않나, 4쿼터 승부처에서 노마크 레이업을 놓치질 않나 클러치 상황에서 역적소리를 들을 플레이가 많이 나오고 있다. 크레익도 그렇고 패싱력이 있는 선수들에게서 턴오버가 나오기 시작하니 연승을 이어가지 못하고 승패마진을 많이 깎아먹고 3위인 고양 오리온에 한 경기차로 쫓기게 되고 말았다! 결국 그렇게 다시 고태술행......

게다가 본인이 로테이션을 돌아간다던가 페인트존을 휘젓는다던가 등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라틀리프, 크레익 일변도의 공격만 지속되고 있어 커리어 전체가 그냥 포스트에 볼만 넣는 볼셔틀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거품론이 슬슬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 문제는 삼성의 현재 상황상 김태술이 없으면 천기범, 주희정, 이호현, 이동엽이 그 자리를 맡아야 하는데 천기범은 너무 어리고 주희정은 은퇴를 앞둔 40대 노장, 이호현은 작년에도 영웅병으로 말아먹는 게 다반사였고 이동엽은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이 눈썩이어서 개중 나은 김태술이 그나마 사람 수준으로 하는지라 중요한 상황에서는 무리해서라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반기로 갈수록 바닥을 찍는 경기력 탓에 PO에서 주전가드는 주희정이 맡고, 백업을 김태술이 맡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하다못해 이동엽에게조차 존재감이 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다보니 김태술을 은퇴시키고 주희정을 재계약하자는 말이 더 많이 보인다. 일단 4강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2득점 3어시스트로 어느 정도 제 몫을 해주었으며, 특히 55.7초를 남기고 던진 3점 슛을 성공시키며 삼성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챔프전에서는 귀신같이 친정사랑을 시전하면서 3차전 대역전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그날 가드진이 일제히 삽을 펐다지만 한창 팀을 이끌어야할 김태술이 2라운드 신인가드에게 탈탈 털리는 모습은 왜 김태술이 근 3년간 욕을 질펀하게 먹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비수를 꽂는다는 것이 이전 팀이 아닌 현재 팀이 되어버렸다...

챔프전 내내 최악의 플레이로 졸전을 면치 못한 김태술은 6경기 평균 1.8득점 1.7리바운드 1.8어시스트[11] 로 삼성이 준우승에 머무르게 되는 원인 제공을 하면서 명예 회복 실패는 물론, 까임 지분 1순위 신세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현민과 1라픽을 내준 역대급 호구딜 김태술이 내년에도 이런 턴오버 대마왕의 모습을 보인다면, 말 그대로 방출당할지도......

2.5.2. 17-18 시즌

팀의 백전노장 주희정이 은퇴하면서 주전가드로써의 책임감이 막중해진 시즌이라고 할수있다. 당초 천기범과 체력조절하면서 나올 것으로 보였으나 천기범이 개막전에서 부상을 당해 1달 반 정도 결장을 하게 되면서 예상보다는 많이 나오고 있다.

전체적으로 득점력은 현재까지 작년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리딩 능력은 너무 떨어진다. 특히 24초중 본인이 가져가는 시간이 10초 이상은 되어보일 정도로 속공농구와는 거리가 너무 먼 지공농구를 선보이고 있어서 많이 비판받고 있다. 거기다 포인트 가드로서 최근 들어서 자유투 성공률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역시 비판받는 요소 중 하나이다.

2.5.3. 18-19 시즌

시즌 초반부터 KCC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삼성 팬들의 분노와 혈압을 올리고 있다. 출전하는 시간과 반비례해 팀의 성적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다가 늑골 부상으로 3주 진단으로 빠졌는데 천기범이 자리잡기 시작하며 김태술의 입지는 좁아졌다.

2.6. 원주 DB 프로미 시절

2.6.1. 19-20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와 1년 보수 총액 1억에 재계약 한 뒤 정희원과의 트레이드로 원주 DB 프로미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11월 10일 경기에서 20분 동안 겨우 5골을 넣는 저조한 실력을 보였다. 동시에 1.27스틸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7. 국가대표

2012년 런던 올림픽 농구 최종 예선 라인업에 선발되어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을 하였다. 최종 예선 상대인 러시아와 경기에선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햇으나,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는 갓태술 소리를 들을 만큼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올 코트 프레스를 많이 이용하는 한국팀 특성상 막판 체력 저하로 아쉽게 2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2013년 윌리엄 존스컵과 FIBA 아시아 선수권에 출장하였으나 장기라 할 수 있는 뱅크슛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수비에서의 부족함만 내보이며 필리핀전 역전 3점슛을 얻어맞는 수비를 보여줬다. 결국 대회 내내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이며 국내용 가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농구 월드컵에서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필리핀전 16점을 포함하여 밥값을 하긴 했다. 다만 국대에서 구른 탓에 14-15시즌에 팀이 막장화된 원흉이 되기도 했다.

2015년 윌리엄 존스컵에서도 부진했고, FIBA 아시아 선수권에서도 중국전 크게 앞서던 점수차를 김태술 투입 단 몇 분만에 모조리 까먹는 기적을 행하며 역전패의 주역이 되었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도 꾸준히 정통 포인트 가드라는 이유로 선발되던 김태술은 이 무대를 끝으로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다.

3. 시즌별 성적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7-08

SK

51

132/243
(54.32%)

58/144
(40.28%)

106/132
(80.30%)

544

148

370

85

6

2008-09

47

125/249
(50.20%)

32/111
(28.83%)

114/146
(78.08%)

460

156

305

96

5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9-10

KT&G

군복무(공익근무요원)

시즌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0-11

KGC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1-12

52

133/272
(48.90%)

58/123
(47.15%)

119/149
(79.87%)

559

136

228

99

9

2012-13

54

191/402
(47.51%)

35/109
(32.11%)

86/110
(78.18%)

573

160

259

88

12

2013-14

32

91/208
(43.75%)

9/45
(20.00%)

62/87
(71.26%)

271

75

176

53

5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4-15

KCC

44

93/247
(37.65%)

11/57
(19.30%)

56/91
(61.54%)

275

110

164

39

1

2015-16

44

58/137
(42.34%)

17/54
(31.48%)

32/45
(71.11%)

199

116

164

49

1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6-17

삼성

51

116/248
(46.77%)

21/69
(30.43%)

85/110
(77.27%)

380

123

270

64

6

2017-18

54

76/180
(42.22%)

41/112
(36.61%)

83/119
(69.75%)

358

113

200

63

4

2018-19

36

23/62
(37.10%)

8/26
(30.77%)

19/33
(57.58%)

89

49

64

27

3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9-20

DB

30

31/65
(47.69%)

16/53
(30.19%)

19/30
(63.33%)

129

47

77

35

2

KBL 통산
(5시즌)

495

1069/2313
(46.22%)

306/903
(33.89%)

781/1052
(74.24%)

3837

1233

2277

698

54

4. 플레이 스타일

트랜지션에 있어, 본인의 스피드는 그다지 빠르지 않은 편이지만 뛰어난 볼 핸들링과 넓은 시야를 앞세워 앞에서 뛰어가는 팀메이트나 뒤따라 들어오는 트레일러에게 건네주는 어시스트가 일품이다.

빅맨을 활용하는 2대2에 있어서는 스크린 이후의 거의 모든 옵션을 활용할 수 있는 가드이다. 기본적으로 스크린 이후 골대로 쇄도하는 롤맨에게 찔러주는 패스는 국내 어느 선수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 앨리웁 패스 또한 굉장히 잘 활용하는데, 파틸로와의 투맨 게임에서 이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픽앤롤 뿐 아니라 픽앤팝, 직접 돌파에 이은 마무리 혹은 킥아웃에도 능숙하다. 스크린 밑으로 빠져나가는(아이스) 매치업 상대를 보고 던지는 뱅크슛은 트레이드 마크.

포인트 가드 치고도 작은 신장(프로필에는 180cm이라지만 실제는 178 정도)만 보면 빠른 움직임을 가진 가드같지만 대학 시절에도 드리블 능력이 좋았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고, 넓은 시야와 패스 능력으로 인정받은 쪽이다. 거기다 돌파 능력에 괜찮은 외곽슛까지 있을 정도로 득점력도 있다.

키가 키다 보니 아무래도 수비에선 약점을 보이는 편. 센스 있는 스틸 같은 건 잘 하지만 매치업 상대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인다. 여러 모로 대학 초기에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감에 비하면 성장이 별로 없는 편. '대학 1학년 때 이 정도니 졸업할 때면 얼마나 대단해지겠는가' 라는 게 당시의 기대감이었지만, 4학년 때 가서도 1학년 때만큼만 보여줬으니.

김태술의 기대값보다 덜한 성장은 대학 때 출중한 포인트 가드인 이정석이 같은 팀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태술이 포인트 가드로 뛰는 상황에서 김태술이 풀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이정석이 들어와 팀을 이끌었고, 결국 김태술은 자기가 플레이하기 좋은 환경에서만 뛰게 되면서 위기를 거치고 약점을 공략당하며 고난을 겪다가 그걸 극복하며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12] 이런 지적은 '김태술은 너무 농구를 예쁘게 하려고 한다'는 비판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석이 김태술에 밀려 얼리 엔트리로 프로로 진출했음도 잊어선 안 된다.

공격 때와는 달리 수비에서는 좀 거친 면도 있긴 하다. 실제 하드한 파울을 생각 외로 많이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공익근무 중에는 몸을 상당히 만들어서 피지컬이 굉장히 강해졌다. 실제 양동근도 김태술의 피지컬을 칭찬했다. 하지만 장염에 시달리면서 상당히 체중이 감량하였고 조금 힘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더욱 노련해지면서 시야, 리딩, 패스 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센스있는 패스는 현 KBL 제일이며 정통 포인트 가드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약점을 꼽자면 잔부상이 제법 많은 편이며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가드치고는 느린 편.[13] 달리기 자체도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고 순간 민첩성 역시도 빠르지 않아 상당히 민첩하고 날쌘 선수들을 만나면 자동문이 되는 편이다. 그리고 시즌이 거듭될수록 떨어지는 슈팅력도 약점이 되었다. 김태술의 슈팅은 우승 시즌 이후 빠르게 하락했으며 KCC에서 14-15 시즌에는 3점슛이 20%도 안 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다.

5. 기타 사항

방성윤과 더불어 SK 나이츠의 관중 버프를 담당했을 만큼 인기가 많았기에 신인 시절부터 팬들이 기자단에게 신인왕 선정을 위해 선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KBL 꽃보다 남자 투표'에서 소이정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건 흑역사인가?

SK의 홈구장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08-09 올스타전 마지막 장면은 선수들이 김태술을 번쩍 들어올려 덩크슛을 '시키는' 모습이었다.

SK 시절 별명은 매직키드, 마수리, 그리고 스탯술[14].

KGC에 와서는 '김태술래'라는 별명이 생겼다. 바로 이 분 때문이다.[15]

요즘 많이 불리는 별명은 술봉사. 리딩과 시야가 하도 똥망이 되다 보니까 붙은 안 좋은 별명이다. 원래는 '김봉사'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름이 더 임팩트가 있다 보니 술봉사로 더 많이 불린다. 김태술 외에도 황성인, 주희정, 임재현 등 다른 여러 선배들도 성과 봉사를 붙여서 봉사라고 불렸었다.

공익근무 시절 안쓰러운 일화가 있다. 공익 시절 안양실내체육관에 와 경기도 지켜보고 연습도 했는데, 어느 팬이 관중석에 앉아있는 김태술을 몰라본 채 "여기 매점이 어디에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우승한 직후 이 일화를 상기하면서 홈 팬이 자신의 얼굴을 못 알아봐 충격이 컸다며 이로 인해 이를 더 악물고 연습했다고 한다.

맞트레이드 대상이었던 주희정이 SK에서 폭풍몰락하게 되면서 한동안 DC 농구 갤러리 등지에서는 김태술 재평가론이 돌기도 했다. 게다가 2011-12 결승전에서 김태술이 맹활약, KGC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희정-김태술 트레이드가 다시 화제거리가 되었다.

안티가 좀 있는 편인데 그 이유가 이동준, 김민수에 대한 반말 덕분. 학년은 같지만 나이가 이동준은 4살이 많고 김민수는 2살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혼혈선수라서'라는 말이 많았다. 더불어 인터뷰에서도 전태풍에게 형이라 하지 않고 그냥 이름만 불러서 더욱 확산되기도 하였다. 결정타는 비록 반말은 아니지만 이동준이 트위터에 "김태술 고맙다. 이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우리 귀화한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알 것 같아." 라는 글이 나오면서였다. 그래서 나온 발언이 김태술: 동광아~[16] 참고로, 기사를 보면 김태술만 이동준을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의 정보는 카페 특성상 카더라에 기반한 내용인 듯 하다. 잘못된 정보인 듯. 기사.

최근 치한으로 오해받았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1] 과거 서울 SK 나이츠의 드롭존을 패스로 부술 수 있는 유일한 포인트 가드라고 유재학 감독이 칭찬한 바 있다.
  2. [2] 선배들의 졸업도 있지만 2004년 하승진의 입학으로 인해 그 해 연세대가 빅맨을 뽑지 않았다가 하승진이 NBA에 진출했고, 2005년에 입학한 빅맨 자원인 김동현, 손진우가 이탈해 버리면서 빅맨이 없어진 탓도 크다. 김재환이 5번을 보았지만 그나마 반칙이 많아 양희종이 '센터킬러' 소리까지 들어가며 4~5번을 봤던 안습한 상황ㅠㅠ. 거기다 명장 소리 들으며 팀을 이끌던 김남기 감독도 나가리되어 버렸으니. 그럼에도 양희종이 인사이드에서 경이적인 활약을 보인 덕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대학 후반기에는 결국 한계가 오고 말았다.
  3. [3] 7년 후 주희정과 김태술은 삼성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4. [4] 그로인해 공익 가서 키워온 근육이 다 빠져버렸다.
  5. [5] 그 억만장자였던 스티브 잡스조차 회생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는 5년이나 버틴 것이 굉장히 용하다고 할 정도.
  6. [6] 감독이 이상민이고 이상민과 김태술은 알다시피 연세대...
  7. [7] 엠바고에 걸릴까 봐 돌려 말한 듯싶다.
  8. [8] KCC가 현 FA제도에서는 최대어를 FA로 영입하기는 힘들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9. [9] 이건 이현민이 못해서가 아니라 KCC가 하승진, 전태풍, 에밋이 부상으로 장기적으로 못 나오게 되자 전력에 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은 임동섭이 어깨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부상자가 1명도 없었다. 그 임동섭도 겨우 2~3경기 정도 결장했을 뿐.
  10. [10] 삼성이 16-17시즌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자 삼성이 PO에서 패하지 않는 이상 좋은 픽을 얻긴 힘들었....는.....데...... 이 픽이 3순위에 걸리면서 KCC는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11. [11] 얼핏 보면 수능 점수같이 보이기도 하다.
  12. [12] 물론 대학 시절 상대팀 입장에선 김태술 나가니 이정석 들어오는 상황은 악몽과도 같았지만.
  13. [13] 그로 인해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인데도 철저하게 출전 시간관리를 받는다.
  14. [14] 경기력에 비해서 기록이 좋아서.
  15. [15] 하지만 복수도 성공.
  16. [16] 김동광 감독은 나이가 60이 넘은 농구계의 원로인데, 한국인-백인 혼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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