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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영토 분쟁 관련 지역

대한민국 지배 지역

북한, 중국 지배 지역

러시아 지배 지역

독도

이어도

백두산

녹둔도

[image]

<white>독도/獨島/Dokdo
竹島/Takeshima[1]
Liancourt Rocks/리앙쿠르 락스, 리앙쿠르 암초

<white>[image]

<white>독도 지도

실효지배

대한민국

행정 관할구역

경상북도 울릉군

행정구역 지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영유권 주장

일본

행정권 주장

시마네오키군 오키노시마정

위치

동경 131°52′ 북위 37°14′

면적

187,453m2

인구

약 50명[2]

주둔 부대

독도경비대

1. 개요
2. 교통
3. 역사 및 명칭 문제
3.1. 역사적 논쟁점
3.1.1.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은 독도인가?
3.1.2. 안용복은 거짓말쟁이?
3.1.3. 기타 쟁점
4. 독도 관련 조약
5.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5.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5.2. 홍승목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5.2.1. 보론
6. 일본인들의 독도 인식
6.1.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 (2008~ )
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8. 한국 정부의 대응
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
8.2. 노무현 정권기 (2003~2008)
8.3. 이명박 정권기 (2008~2013)
8.4. 박근혜 정권기 (2013~ )
9. 북한의 대응(?)
10. 민간 차원의 대응
11. 일본과의 군사분쟁 가능성
12. 대중매체에서의 독도
13. 유사 사례
14. 관련 문서

1. 개요

獨島 Dokdo Tokto 러시아어로 독도는 Токто 이다.

대한민국의 최동단에 위치한 섬.

다음지도깨알같은 밀키스네이버지도에서 각각 독도의 로드뷰를 제공하고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독도 라이브 영상 링크 : KBS 제공. 청와대정부서울청사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동일한 영상이다.

울릉도 동남쪽 87.4㎞[3] 해상에 있는 바위섬로,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일본에서는 시마네오키 제도의 부속 섬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외교 분쟁으로 유명하다.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다.

참고로 한반도 최서단은 압록강 하구의 마안도, 한반도 최동단은 함경북도 경흥군, 한반도 최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한반도 최남단은 전라남도 해남군이다. 한편 남한 최서단은 황해도 해상의 백령도, 남한 최북단은 강원도 고성군, 남한 최남단은 마라도이다. 그리고 독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대한민국 실효지배의 지역은 전라남도 신안군 가거도이다. 직선거리로 706km를 넘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실효지배지역의 어느 두 지점 사이의 거리 중 가장 멀다. 헌법상의 영토로는 극서점인 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도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직선거리로 725㎞이다.

한자로는 홀로 독(獨)자를 쓴다. 그러므로 영어로는 The Lonely Island 반도 좆까 우린 섬이라고 하지만 독도의 한자표기는 이런 한자 뜻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쓴 음차[4], 진짜 의미는 돌(石)의 서남 방언이다. 돌로 된 섬이란 소리.[5]석도 독도는 실제로는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가운데 수로가 뚫려 있어서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그리고 크고작은 89개 의 부속도서로 나누어져 있으니,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첫 소절인 '외로운 섬 하나'는 사실 잘못된 셈. 외로운 섬 여든아홉. 근데 지금은 91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화산섬이다. 수백만년 전 신생대에 동해에서 분출한 화산이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풍화되어 화산의 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된 것. 마찬가지로 화산섬인 울릉도는 여전히 화산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그리고 수심이 깊은 동해바닥에서 수면까지 올라온 섬이기 때문에 해수면이 아닌 산뿌리부터의 높이로 따지면 한라산보다 높다. 물론 이건 에베레스트와 마우나케아(하와이)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독도의 해저 지형

독도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식생들이 많이 서식한다. 무엇보다 본래 바다사자의 아종인 강치의 주 서식지였는데,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멸종되었다. 애초에 일본에서 1905년 독도를 점거한 표면상의 이유가 강치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일본인쪽8E들의 강치 사냥 장면이 흑백 영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이 독도를 요새화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개드립 주장을 내세운다. 아무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본의 세태를 엿볼 수 있다. 이 반달노무 새끼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처럼 수산물과 조류는 풍부하지만, 바위산이 바다 한 가운데 솟아있는 거나 다름 없어서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식수가 꽤 부족한 편. 일단 샘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걸로 다 충당할 수가 없는 듯하다. 면적이 그렇게 좁은 건 아닌데도 인구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이후, 긴급 상황 발발시 주민의 긴급한 후송 및 함정의 정박을 위해 국토해양부에서 독도를 포함한 전국 10개 섬을 국가 관리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독도에는 기상악화에 대비한 방파제, 부두등을 신설하고 최대 5천톤 급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독도경비대 및 1가구가 거주하며, 일대에 천연가스,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시설물로는 RKDD라는 ICAO 코드를 받은 헬리콥터 포트와 노무현 정부 시기 만들어진 접안시설, 어민숙소 등이 있다. 접안시설은 확장될 예정이다. 참고로 RK**는 대한민국의 공항을 의미하는 국가 코드이다. 일본은 RJ**.

독도에도 우체통이 있다. 중요한건, 투함된 우편물은 2개월에 한번 독도경비대함이 들어올 때 집배원이 수거한다. 서울 영등포구 기준으로 독도에서 투함한 우편물이 오는 경로는 독도⇨2개월 숙성⇨울릉우체국⇨포항우편집중국⇨대전교환센터⇨서서울우편집중국⇨영등포우체국⇨배달이다. 우편번호는 개정 전 6자리 번호가 799-805, 2015년 개정 후 5자리 번호는 40240이다.

2. 교통

독도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교통수단은 선박이 유일하다. 애초에 공식목적으로 사용되는 헬리포트를 제외한 다른 교통시설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 울릉군/교통 문서 참조.

3. 역사 및 명칭 문제

독도는 역사속에서 언제나 울릉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인식되어 왔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식되거나, 울릉도와 함께 한 쌍으로 다루어져 온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우산국에 관음도, 죽도, 독도 등의 부속섬이 포함되었다는 직접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18세기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그 영유 인식이 문헌상 확인된다.

근대의 국제법에 의해 판단해 보더라도, 맑은 날 울릉도에서 독도가 상시 육안관측된다는 물리적 사실[2]은 '지속적 발견'에 해당하는 영유권원으로 인정받고 있고, 따로 '실효지배' 한 근거를 갖추지 않더라도 6세기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가 130km(육지-울릉도 간 최소 거리) 이상 항해한 기록이 그보다 적은 90km(울릉도-독도 간 거리) 떨어진 섬에 대한 '실효지배'의 물리적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어, 만약에 있을지 모를 국제법정에서의 영유권 분쟁 시 '고대 우산국의 영유권에 독도가 포함되는가'의 사항에 대해 대한민국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상당하다.

한편 울릉도 동편 바로 옆에는 죽도(죽서도)라고 불리는 별개의 섬이 존재하여, 후에 우산도가 죽서도이냐 독도이냐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특히 '울릉도 옆에 있으면서 사람이 사는 섬'의 경우 죽서도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아, 혹여 고지도에 관련된 문제를 접한다면 이를 알아두는 편이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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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한국/일본 문헌에서 독도 표기는 오락가락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于山島), 안용복 관련 기록의 자산도(子山島), 에도 막부와 메이지 정부의 마츠시마/송도(松島), 때로는 다케시마(竹島), 조선 말 고종이 말한 송죽도(松竹島), 대한제국의 석도(石島) 등등... 이 때문에 한국 측이 '이 섬은 독도다'라고 하면 지칭하면, 일본 측에서는 '이 섬은 독도가 아니다.'라며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대개 죽서도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 근대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영토로 파악하는 범위는 호구의 거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를 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876년까지는 다케시마(竹島)가 울릉도였다는 것이다. 정작 독도는 마츠시마(松島)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울릉과 우산이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에서 송도라 부른다. 《만기요람》, 조선

일본에서 1박 2일 거리에 송도가 있고 다시 거기서 1일 거리에 죽도가 있어 고려가 보인다. 《은주시청합기》, 일본

한국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추정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5세기 초엽에 처음 나타난다. 특히 조선 태종 치세에 이루어진 일련의 울릉도 쇄출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그 외의 섬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우산도라는 이름이 본래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였으므로 다소간 울릉도와 우산도의 구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확증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중반에 처음 나타난다. 이는 오오야·무라카와 양 가문의 다케시마 즉 울릉도 출어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마쓰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위치나 거리 등의 표현에 따라 이것이 독도임을 부동의 사실로 확증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국의 '우산도'와 일본의 '마쓰시마'로 인식되었던 독도의 존재는 17세기 후반의 쟁계 사건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한국의 조선 조정과 일본의 쓰시마 번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이 사건을 통해 이전까지 모호한 면이 있던 한국과 일본의 울릉도 인식이 완전히 정립되었는데, 이로서 한국은 울릉도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져 독도의 존재를 다시금 인지하였고 일본은 '다케시마'와 그 부속 도서인 '마쓰시마'의 영유권이 조선 측에 있음을 명확히 규정하였던 것이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 호(Le Liancourt)가 독도의 바위로 인해 난파당한 뒤로,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이 현재까지 서양권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름으로, 여기에서 rocks는 암초(岩礁), 그중에서 수상암으로 섬보다 작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해면 위로 튀어나온 바위를 의미한다.[6]

일본은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여 'Liancourt Rocks'를 리앙꼬루도 열암(リヤンコルド 列岩)이라 번역해 사용하기도 하고, ‘리앙크루’의 일본화 된 발음으로 ‘량코’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의 아르고너트호가 울릉도 측량 과정에서 위도경도 표기를 잘못 기재하고, 서양에서는 이걸 다시 일본 명칭과 대조하는 과정에서 동쪽의 다줄레(울릉도)를 마츠시마, 서쪽의 아르고노트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것이 일본 해군성에 역수입되었다. 그런데 해군성을 제외한 원래 메이지 정부와 육군성은 여전히 에도 막부의 인식을 이어받아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츠시마라 부르고 있었다.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일본은 1880년 군함 아마기호를 보내 울릉도 명칭 등의 정확한 정보 확인에 나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울릉도의 원래 명칭이 다케시마=죽도=竹島 였음을 확인하고, 인근에 따로 “竹島“(죽도) 라고 불리는 소도가 있음을 보고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 보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명확하게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을 바로잡지 않았다.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령이 아닌 타국(조선)의 영토이기 때문에 그 명칭의 역사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비밀 편입 시도하려던 때에 그 이름을 지어 넣으면서 ‘원래 조선의 동쪽 해상에 마쓰시마와 다케시마라는 두 섬이 존재하는 것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이며....(중략) 종래 잘못 불려지던 명칭을 전용해서 다케시마라는 통칭을 새로운 섬의 이름으로 하고자 합니다’라는 오키도사의 보고를 일본 내각이 받아 독도의 일본 명칭을 다케시마(竹島)로 결정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시마네 현 고시의 '무주지'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석도"라는 이름으로[7] 독도를 근대적 영토에 편입한 바 있었고, 앞서 일본 스스로 1879년 태정관에서 처리한 문서에서 울릉도와 그 외 1도를 일본령에서 제외한 바 있었다. 그 후, 대한제국은 1901년 9월 내부대신 이건하의 울릉도 관할 문서, 1902년 4월 내부의 ‘울도군절목’[8] 문서 등을 통해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즉 행정 관할을 구체적으로 실행했다. 울도군절목 내용 중 출입하는 화물은 독도에서 잡은 강치를 포함한 일본인의 수출화물에 일종의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었다.[9]

이를 배경으로 대한제국은 1906년 일본의 시마네 현 고시를 뒤늦게 전해받고 독도 점거에 대해서도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준 식민지로 접어든 상태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에서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간주하여 조선총독부 치하로 파악하였고,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독도는 다시 한국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근현대 일본 공문서의 독도 관련 기록

3.1. 역사적 논쟁점

3.1.1.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은 독도인가?

본문보다 주석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우산,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세종실록지리지》

일본의 가와카미 겐조는 세종실록이 고려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우산도를 착오로 집어넣었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석으로 논파 끝. 애초에 고려사와 세종실록은 편찬 책임자부터가 동일인이다. 울릉도에 파견되어 주민의 쇄출을 집행한 김인우의 직함 또한 1차 쇄출(1416년)에서는 '무릉등처안무사'였다가, 3차 쇄출(1423년)에서는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바뀐다. 따라서 당시 조선이 '두 개의 섬'을 인식했음은 분명하다.

또한 '두 섬이 서로 멀지 않다'는 내용에 힘입어, 시모조 마사오는 세종실록의 우산도가 울릉도 바로 옆의 죽도(죽서도)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는 구절을 설명할 수 없다. 앞서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와 덧대어 해석해보면 이것은 울릉도-독도 간의 거리를 기술한 문장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다.

한편 일본의 가와카미 겐조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면 130m 이상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울릉도는 안개가 잦고 삼림에 덮여 있으므로 오르기 곤란했다고 주장하였다. 근데 울릉도 성인봉의 높이는 무려 984m고, 나리분지만 해도 250m에 달한다. 게다가 『고려사』에는 1157년(!)에 이미 명주도감창 김유립이 울릉도 정상에서 사방을 답사한 보고가 기록되어 있다. 참고 울릉도에서 사람이 거주한지 2000년이 넘도록 누구 하나 독도를 본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일각에서는 '울진현에서 맑은 날에 울릉도와 죽서도의 두 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문장에 '相(서로)'이라고 하여 두 섬의 관계임을 명시한 데다가 죽서도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울릉도에 가려서 울진현에서 안 보인다.

해당 문장을 자세히 보면, 주어는 우산-무릉이라는 두 섬이고, 그 두 섬이 在(존재하다)-去(떨어지다)-見(응시하다)로 기술되어 있다. 어디에도 다른 어떤 이가 그것을 바라본 것이라 기록되어 있지 않다.울진현 시점이라는 둥, 강원도 산 위의 어떤 사람 시점이라는 둥 하는 해석은 애초에 독도를 차지하고자하는 일본인들의 망상에 기초한 해석일 뿐

刷出空其也, 麟雨言, 土地沃饒, 竹大如柱, 鼠大如猫, 桃核大於升, 凡物稱是
사람들을 쓸어 내보내 비웠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토지는 비옥하고, 대나무는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만하고, 복숭아씨가 됫박만 한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
- 세종실록 지리지

이 문장을 두고 일본측에서는 독도에서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고 쥐는 살지 않으며, 복숭아가 자라기 힘들고 토지는 척박하기 때문에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하고 있으나, 해당 문장은 우산국(國)에 대한 설명 중,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비판이다.

3.1.2. 안용복은 거짓말쟁이?

다만 이미 그해 1월에 다케시마 도해가 금지된 상황에서 과연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출어해 있었는가 하는 것이 또 문제인데, 일본 측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안용복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단정짓고 싶어하지만 일본에서 당시 안용복을 취조한 '겐로쿠(원록)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가 발견되면서 이들은 몹시 난감해진 상황. 오컴의 면도날도 모르냐?

더군다나 안용복이 "일본의 마츠시마가 곧 자산도로 조선의 영토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 진술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안용복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자산도'를 일본인이 말하는 '송도'라고 명확히 기록했고, 이를 일본 측에서도 받아들였음이 확인되기 때문. 이것이 일본 문서에서도 확인되면서 전근대 영유권 주장에서 한국 측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되었다.

겐로쿠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언급이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江原道(カンヲンダウ) 此道竹嶋松嶋有之

한국에서는 이 문장을 '강원도(이 도 안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일본측에서는 이 서술을 1. 날조라고 치부하거나 2. 안용복의 망상을 받아적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3. '강원도(여기로 가는 도중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라고 해석하거나 한다. 어째 지들끼리도 말이 안 맞냐 1 2

여기에 혹자는 '안'이라는 단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中이 아닌 內를 써야 한다고 하지만, 글쎄올시다? 어쨌든 원문을 보면서 판단하자. 참고로 이 문서에는 논란이 되는 문장 외에도 안용복이 설명한 다케시마와 마츠시마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기술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一 安龍福申候ハ竹嶋ヲ竹ノ嶋と申朝鮮国江原道東莱府ノ内ニ欝陵嶋と申島御座候是ヲ竹ノ嶋と申由申候則八道ノ図ニ記之所持候
一 松嶋ハ右同道之内子山と申嶋御座候是ヲ松嶋と申由是も八道之図ニ記申候
* 안용복이 말하길, 다케시마를 다케노시마라고도 한다. 조선국 강원도 동래부 안에 울릉도라고 하는 섬이 있으며, 이를 다케노시마라고 하는 까닭에라고 말해, 팔도지도에 기록해 이를 소지하고 있다.
* 마츠시마는 상기한 도(道) 중에 자산이라고 하는 섬이며, 이를 마츠시마라고 하는 까닭에 이도 팔도지도에 기록했다고 말했다.

3.1.3. 기타 쟁점

1879년 '태정관문서'로 불리는 독도 관련 문서의 '다른 한 섬'은 지금의 죽도이고, 질의서 부속문서의 '다음으로 한 섬'은 독도로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는 주장. 하지만 질의서에서 'XY'에 대해 물었으면 지령서에도 'XY'를 가리킨다고 보는 게 정상이며, 애시당초 질의서와 지령서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질의서 말미에 지령을 휘갈겨 써놓은 것이다. 따라서 질의서의 '두 섬'과 지령의 '두 섬'은 같은 섬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저것은 질의서와 질의서 부속문서의 '두 섬'이 각기 다른 의미라는 말이 되는데… 말이 되냐!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제로 편찬된 시마네현 지도를 찾아보면 간단한 일이긴 하다. 참 쉽죠?
일본 측에서 힘주어 반론하는 것으로 한국 측에서 맞받아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한국에서 독도란 명칭이 등장한 것은 1900년대 이후이다. 이전까지 여러 이름들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그 동안 독도를 실효지배 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게 일본 측의 주장이다. 애초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이유는 지명을 고정시켜 각 지방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인데, 독도의 경우 한자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이 계속 바뀐 것이다. 그리고 사정에 의해 지명이 바뀌게 된 경우, 예전 지명을 밝혀 착오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독도는 그러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일본 측에서는 그 때까지 한국은 독도에 여러 이름을 붙인 것 뿐이지 영토로 편입시킨 건 아니었고, 오히려 1905년에 일본이 먼저 영토로 편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데 문제는 돌의 사투리가 독이고 돌이 한자로 되면 석자고 고종황제가 석도로 편입했다메.. ?

1711년에 수토관으로 파견된 박석창이 보고서에 첨부한 「울릉도도형」에 우산도가 그려져 있으나, 동쪽 한가운데 있는 섬에 '해장죽(海長竹. 대나무의 일종.) 밭. 이른바 우산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독도의 지형에는 '밭'이라고 표현할 만 한 평지가 없어서, 일본 학계는 조선에서 기록한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라는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우산도 = 죽서도'의 시각이 유력해 보이는 몇몇 기록들은 한국 측의 가장 큰 약점이다.
1837년 2월에 에도 바쿠후의 명령으로 다카다번이 니가타현 지역 해안가에 세운 도해금지령 팻말에는 '이번에 하치에몬이 다케시마(竹嶋)에 도해한 사건을 검토한 결과, 오른쪽의 섬(右嶋)은 겐로쿠 시대부터 도해정지를 명령한 곳이다. 오른쪽의 섬(右嶋)은 항해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다케시마'는 엄연히 울릉도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뒤의 '오른쪽의 섬'을 독도로 보려는 주장이 여론몰이에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문맥에 따라 '위에서 말한 섬'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 팻말은 2010년에 한국인 사업가가 구입하여 한국으로 가져왔다.
해당 문서 참조.

4. 독도 관련 조약

4.1. 독도 밀약

박정희가 집권 당시 한일협정 전에 일본과 독도에 관한 비밀협정을 맺었다고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아간다.

다만 관련 당사자 모두는 밀약의 존재를 부정한다. 밀약이니까 일본 정부에서는 이 밀약의 존재를 부인으로 일축했고 영토문제를 밀약으로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발표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과 같이 과거에 행한 수많은 밀약은(...) 이 밀약은 증거가 남아있지 않고 증인들의 증언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밀약은 독도가 이미 완전히 한국 영토인데도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협정으로서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후술하는 어업 협정과는 성격이 다른데, 이는 영토 주장을 묵인한 것이기 때문. 월간중앙에서 보도하였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로 차관이 궁했던 것 처럼 당시 정권의 경제성장을 위해 차관 6600만불을 일본으로 부터 받아오기 위한 밀약이라고 주장되지만 같은 해 1965년 6월 경에 미국이 한-일 독도 공동 영유를 설득했다는 기밀 문서가 나온 것으로 보아 녹록치는 않았던 듯. 미국의 기밀 문서에 의하면 한-일 공동 등대를 건설하는 등 공동 영유권을 설득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4.2. 한일어업협정 논란

[image]

양국의 주장 EEZ가 겹친다

IMF 직후 급하게 국제사회에서 차관을 빌려야 하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한일 어업 협정을 파기하자 동해에 해양 순시선을 배치하여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어선을 나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국내 어선이 일본 해양순시선에 그대로 들이받혀 침몰하기도 했다.

이 어업협정은 사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부에 걸친 산물이다. 1997년 7월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을 울릉도로 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1997년 10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잠정공동수역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잠정조치수역은 독도 중간수역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대화퇴 어장 등, 독도와 전혀 상관없는 쪽의 협상을 진행했다. 참고기사 참고기사2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되는 점은 독도가 일종의 "중간수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와 일본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에서 겹치는 부분이 중간수역으로 정해진 것. 이 협정에 대해 '독도는 명확한 한국령인데 무슨 조치이냐', '일부라도 독도 관련 권리를 내준다는 것이 향후 영유권 문제에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이 들끓었고, 어민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1년과 2009년 두차례에 걸쳐서 "이 협약은 어업과 관련된 분야만을 정의하기 때문에 이 협약이 영토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실제로 1982년 해양법에 관한 UN 협약의 제58조 제3항을 보면, 배타적 경제수역은 경제 주권으로서의 영해적 수역이면서 공해적 수역이기도 하다.

다만, EEZ를 완전한 공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서해, 동해에서 주변국과 EEZ로 관련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한계선을 단순히 공해로 생각한다면, 한 국가의 경제주권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영토는 12해리 영해를 가지지만, 모든 영토가 200해리 EEZ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EEZ 등을 표기한 지도를 보면 중간수역 가운데 울릉도 주변 12해리가 동그랗게 비어있다. 영해에서 해당 국가는 모든 활동의 독점권을 보유하며, EEZ에서는 해당 국가는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어업권을 보유한다.

이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여러가지 분쟁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세기부터 지속된 영국아이슬란드 간의 대구 전쟁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EEZ를 보면 그만한 섬들이 EEZ의 기점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국제법상으로는 섬을 사람이 거주하며 경제활동이 가능한 섬(island)과 그렇지 못한 암초(rocks)로 구별하며, 전자에 대해서는 EEZ가 인정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EEZ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독도는 EEZ 기점'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독도본부 등에서는 "독도는 사람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국제법상으로도 훌륭한 유인도이므로 울릉도와 같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도는 국제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근데 여기 지금은 공무원 살고있음

현실적으로 볼 때는 만약 중간 수역을 정하지 않고 울릉도와 오키섬 기점으로 EEZ를 절반으로 분리 시 독도는 대한민국 단독의 EEZ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대화퇴 어장 등 수자원이 풍부한 독도 동쪽 지역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명분과 실리 중 한쪽은 잃을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IMF를 맞았던 당시 상황상 대외 차관 문제가 걸려 있어 강경 드라이브를 걸기 힘든 면도 없지 않았다. 결국 협상의 장기화를 막기위해 현재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를 그대로 건드리지 않고 어업에만 협정의 효력을 한정하기로 했다.

또한 협정의 만료일을 3년으로 정하고, 그 이후에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따라서 2016년 현재 일방의 의지만으로 어업협정은 파기가 가능하다.

5.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이 작은 섬이 이렇게나 큰 논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섬이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독도를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게 강탈당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제국주의 시절 점령했던 영토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역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실제로 제국주의 마수를 처음으로 뻗치던 첫 땅, 러일전쟁 당시 첫 거점 바로 독도를 노린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러일 전쟁 당시 독도를 임시등대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신세대들의 반일 감정은 많은 경우 이 문제에 기인한다. 한 설문 조사에선 과거사 문제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했을 정도. 그만큼 한국인들이 독도 문제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일기 예보나 세계 지도에도 다른 자잘한 도서 지역들은 무시하면서 독도만은 표기 하는건 이것 때문이다. 한반도기도 다른 섬은 다 안그려놓으면서 울릉도와 독도 만큼은 그려놓는다(....) 그렇지만 사실 울릉도 독도보다 사람이 많이 살고 중요한 섬은 너무 많다!!

반면에, 일본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독도와 제국주의 문제는 관련없는 것으로 본다. 일본 측의 입장은 한일병합이 이루어지기 전, 그리고 1905년 시마네 현에 편입되기 이전에 독도는 한국이 지배한 적 없는 무주지(無住地)였다고 본다. 또 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러스크 서한에서 확인되었기에,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독도는 무주지다 선포한게 아니다. 러스크 서한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그렇게 해석된다고 일본이 주장한 것.

전후, 러스크 서한에서 미국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10] 이승만은 이승만 라인으로 알려진 평화선을 설치해 독도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일본 측의 살상자가 나왔고, 이로서 '한국의 독도 무력점거'의 근거가 생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 측은 한국이 독도와 연관되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을, 과거사를 아무런 관련 없는 쟁점에 이용해서 외교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일본의 고의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즉,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제국주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고, 독도 영유권과 제국주의 역사는 관련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 일수록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어찌되었든, 한국 입장에서는 독도는 1905년 이전에도 한국의 근대적인 지배권이 미치고 있던 땅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만 이러한 오해를 풀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 땅이니까 우리 땅이라는 단순한 주먹구구식 논리가 아니다. 실제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열을 올리면서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는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근거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주장은 제 3자 입장에서는 선동일 뿐이고, 세계 무대에서 선동에 대놓고 넘어갈 만큼 녹록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만 잔뜩 부채질할 뿐이다. 국내에서도 논리싸움에서 깨지고 일빠로 전향한 사람이 소수지만 존재한다. 인조이재팬이 존재했을 당시에 특히 두드러졌던 부류이고 지금도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독도는 분명 한국의 소중한 영토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큰 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강요하기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국 사람이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거나 명확한 근거를 요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제대로 된 근거를 통해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훨씬 이득이다. 어려울 것도 없다. 지금 보고 있는 나무위키의 독도 관련 문서에 수록되어 있는 정도만 대략적으로 알아놓아도 일반적인 수준에서 해명하기에는 충분하니 참고하자.

요즘은 이에 발맞추에 논리적인 비판 내용을 담은 독도 대중서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가 쓴 '우리역사 독도'. 김경진이 쓴 소설 <독도왜란>도 마지막권 후반부에서 상당한 쪽수를 소모하여 이 부분을 한일 양국의 네티즌들이 토론하는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결과는 철저한 논리와 역사적 사료로 인해 일본 넷우익의 참패/자폭.

가수 김장훈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일본에 제기했던 호사카 유지 교수가 함께 독도 전문 사이트를 개설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를 지원한다. www.truthoftakeshima.com라는 주소도 2012년 8월 확인 결과 http://www.truthofdokdo.com/ 로 리다이렉트 된다.

2011년 8월 14일,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가 울릉도에 해병대 1개 중대를 배치시키고 1달에 1개 소대씩 독도 순환 근무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군부대가 배치 되면 분쟁지역화를 공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지금껏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상 독도 문제는 국내 정치용 떡밥으로 위치가 커져있기도 하고. 다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꾸준히 근거자료는 확보하는 것이 좋다.

5.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일본 :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계속 우기는거 보기 싫으면 국제사법재판소를 가자!

한국 : 우리가 왜 가야함? 우리땅인데 왜 재판소를 가야 됨? 미쳤냐?

일본 : ICJ로 가서 재판 받으면 승패소 여부에 상관없이 승복할께!

한국 : 최근에 ICJ가 고래 잡아먹지 말라고 판결했는데 왜 항소했음?

일본 : 아몰랑 다께시마 우리땅!

일본은 계속해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국제법으로 해결을 보자고 도발을 하고 있다. ICJ에 자국적 재판관이 있고 일본이 ICJ에 독도를 제소해서 최소한 손해볼 일이 없고 표면적인 명분상으로도 그럴듯 한 일이다. 물론 고유영토를 아무런 이익이 없는 ICJ 제소에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외교라는게 무엇인가? 철저히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국가의 실익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ICJ에서 승소하게 된다 쳐도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얻는건 실질적으로 일본의 도발차단[11]과 국민적 자존심 상승 뿐이다.

그러다 만약 "ICJ에 제소했다가 만에 하나 패소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후술될 홍승목 외교관의 사례를 봐도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ICJ 제소가 이득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깟 로비 자금이 아까워서 우리의 영토판돈으로 거는 행태인 셈이다. 독도가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지정학적, 상징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ICJ 제소를 추진하는 정치 세력에게는 대다수의 국민이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ICJ의 강제관할권을 유보했기 때문에 ICJ는 임의로 독도문제를 재판할 수 없으며 결론적으로 한국의 동의가 없는 이상 ICJ제소는 불가능하다. 독도를 ICJ 제소하기 이전에 센카쿠 열도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ICJ 제소는 그냥 도발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단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지배 하는 이상 지나치게 민감하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심한 분쟁화를 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는 것 자체가 일본의 전략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은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영토분쟁에 관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강제관할을 유보하였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제소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독도 문제는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서 판단될 여지가 없다.

덧붙여 대한민국은 1991년 국제사법재판소 가입시 강제관할권을 유보해 우리가 소에 불응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이걸 유보하는 동안에는 다른 영토 분쟁에 대해서도 대한민국도 독자적으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제소가 불가능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도 실효지배가 유지되고 현실적으로 독도를 능가하는 영토 분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만약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영토에 관한 문제일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현재 당장 우리나라가 국제법을 활용해서 재판을 해야할 필요성은 최소한 2014년 현재 기준으로는 없다. 추후에 중국과는 간도, 일본과는 대마도가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익이 적거나 거의 없다.

다만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분쟁에 대해 UN은 국재사법재판소를 통해 해결할 것을 권고할 수 있는데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일간에 무력충돌을 빚고 국재사법재판소로 가는 가정을 담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한적이 있다.

적어도 현재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는 이상, 독도의 영유권이 갑자기 일본에 넘어가는 일은 없으니 냉철한 사실관계에 근거한 주장, 홍보를 떠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으로 분쟁화를 유도하는건 삼가는 것이 좋다.

강제관할권을 인정하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게 강제관할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를 한국정부가 인정하더라도 일본이 강제관할권을 인정한 날짜 이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강제관할권의 적용을 면피했기 때문에 독도문제의 강제관할권 역시 적용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뭐가 됐든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방적인 제소는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참고로 2015년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의 일본 국적 재판관은 나루히토장인 오와다 히사시로, 무려 일본 황실인척이다. 그리고 2015년 현재 중국과 러시아 국적 재판관도 실존한다.

5.2. 홍승목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1996년 6월 14일 홍승목외교관은 당시에는 외무부로 불렸던 부서인 외교부에 근무하던 중, Mr Thierry Mormanne(티에리 모르만)라는 프랑스 국제법 학자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여기서는 독도가 1905년 이전 한국령이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외한 주요 대담만 소개한다. 전문

단, 홍승목 전 외교관은 이것은 개인 입장일 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용을 보면 적절히 역지사지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여담으로, 티에리 모르만는 타카다 마코토하고 아래의 대담을 했는데... 이 인간이 하도 아래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설득력 없는 설득을 엄청나게 남발하자, "내가 사람이랑 말하는지, 돼지새끼랑 말하는 지 모르겠다."라고 비아냥댔다.

5.2.1. 보론

원문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독도와 센카쿠 문제를 혼동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칫하다간 일본의 독도 국제분쟁화 전략에 말릴 우려가 있다며 두 사안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오해는 '일본이 독도는 ICJ 제소를 추진하면서 센카쿠 열도의 경우에는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독도를 둘러싼 영토 갈등이 없다'고 강조하듯 일본도 '센카쿠 열도에는 영토 갈등이 없다'고 비슷한 주장을 하는 걸 보고 일본도 센카쿠 제소를 거부하리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조차 최근까지 '일본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진실'이라는 인터넷 자료에서 '일본은 중국과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 제도 등에 대해서는 ICJ 회부를 거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적어놓았을 정도로 이런 오해는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달리 1958년 ICJ의 강제관할권까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ICJ 규정 36조 2항의 '선택조항 수락 선언'에 동의했기 때문에 이 조항에 동의한 국가가 제소하면 소송에 응할 의무가 있다. 다만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 열도에 대해 먼저 나서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따름이다.

센카쿠 문제에서 소송을 꺼리는 쪽은 오히려 중국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섬의 영유권 갈등에 제3국이 개입하는 걸 우려해 영토 문제에서 철저히 양자간 해결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독도 문제에 끼어들지 않는 건 이 점과 관련이 있다.

마잉주 총통의 최근 주장은 실제로 제소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발언권을 높이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일본은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서도 1970년대에 ICJ 제소를 제안한 적이 있다. 여러 차례 소송 경험도 있어서 ICJ 제소에 관한 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일본은 1956년 유엔에 가입하기 2년 전인 1954년에 ICJ부터 가입했고, 그후 곧바로 한국에 독도 문제를 ICJ로 가져가자고 제안했을 만큼 집요하게 독도의 ICJ행을 추진해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지난 6일 '일본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진실' 수정판을 올리면서 '일본이 센카쿠 제도 등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하고 있다'는 부분을 삭제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독도와 센카쿠 열도, 쿠릴 4개섬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나 국제 정치적 맥락이 모두 다르다"며 "센카쿠 열도 사안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우리 입장이 중국이나 대만과 다르다는 점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리하자면, 일본은 강제관할권을 수락했기 때문에 상대국이 ICJ 제소를 하는 경우 반드시 재판에 회부되게끔 되어 있으므로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좋든 싫든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최소한 러시아나 중국이 ICJ제소에 일본보다 적극적이라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러시아가 ICJ제소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물론 현재 쿠릴 열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단락은 반론이라고 제목이 달려 있었으나, 이런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만약 홍승목 외교관이 일본이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취지를 그대로 따라 저런 답변을 했다고 한다면, 일본이 ICJ 강제관할권을 수락하였고, 중국이 ICJ제소를 꺼리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내용만으로는 반론이라고 보기 어렵게 된다. 이 기준이라면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과 무관하게, 중국이 수락하든 말든 중국에게도 ICJ제소를 주장하는게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잉주가 ICJ 제소를 주장했을 때, 일본이 이를 쉬쉬한 것을 현재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 중이라서 그랬다고 해버린다면, 일본이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우리 영토임은 확실하나,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ICJ에 가자"라는 주장의 일관성은 반드시 깨지게 된다. 이런 모순점은 홍승목 외교관이 마잉주의 발언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음에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 외교관쯤 되는 사람이 일본이 ICJ 강제관할권을 수락했는지 여부를 모를리가 없지 않는가

참고로, 2012년 현재 강제관할권을 수락한 국가는 유엔 가맹국 193개국 가운데 67개국이며,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 126개국은 수락하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서도 영국만 수락했을 뿐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는 수락하지 않았다.

6. 일본인들의 독도 인식

한미친일본인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것을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주장하는 한국어블로그. 빡침주의. 이 블로거는 731 부대관련해서도 어그로를 끌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한국인과 키배를 벌이고 있다.

비슷한 주장이 있는 페이스북 동영상.(삭제됨)

주로 일본에 갔다와서 일본인들과 대화한 사람들이 "어, 내가 독도에 대해서 물으니까 일본인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던데? 그러니까 공연히 독도 얘기 꺼내지 말고 가만히 있자."라고 인터넷에서 말한 내용이 일반 대중들에게 퍼졌다. 이 말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었으나 2016년 현재, 지금은 결코 아니다.

우선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일본인들은 대체로 '조용한 일본인'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일뿐 모르는게 아니다. 즉 일본인 개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외교적 이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특유의 사회상 때문이지, 일본인들이 무슨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바보들이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며, 따라서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침착한 사회상의 겉면만 보고, 무작정 일본인들이 독도나 쿠릴열도등 정치/외교적 이슈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이르다는 것.

요즘의 일본인들은 독도에 대해서 결코 모르는 게 아니다. 그리고 독도(다케시마)는 엄연히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이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들어간다.

쓰시마 섬에 한국인 자본이 들어와 토지 몇 곳을 사들이자,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자본이 일본의 부동산을 쉽게 사들일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말았다. 일본에 대해서 흐리멍덩하고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공연히 뒷통수맞는 일은 없도록 하자.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로 거의 모든 일본인이 독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대통령 이름도 모르거나, 대서양이 캘리포니아 방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성인들과 같이 정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물론 과거에는 한일간의 독도에 대한 인식에는 온도차가 다소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일본 우익들의 떡밥 공작이 점차 결실을 거두고 있는 중. 장기 불황과 쇠락에 따른 우경화와 함께 일본인들의 독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져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 정신은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보수적인 자민당은 물론이고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다는 일본 민주당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나마 일본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일본 공산당조차,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지만, 한일 우호를 위해서 한국에 양보하자."라고 할 정도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게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그렇다고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일부 소수의 시민들과 시민단체들뿐이다.[12]

그리고 최근 일본 민주당의 도이 류이치 중의원이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한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가, 일본 내에서 빗발치는 혐한초딩들의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결국 사퇴한 일을 보면 지금의 일본인들이 독도에 관심이 없다거나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엔 다케시마는 일본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령했어요 X징징이라고 표기해놨고, 일본어 위키백과 대한민국 문서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표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소위 다케시마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일본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이 붙은 섬이 여러 개 있기 때문이다.[13] 일본 위키피디아에만 6개가 등재되어 있는데, 크기도 다양해서 독도보다 조금 더 큰 무인도가 있는가 하면 섬이 꽤 커서 주민도 여럿 살고 심지어 놀이 공원도 있는 섬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다케시마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다케시마초에 있으며 한국인들도 자주 관광을 가서 그런지 시 홈페이지에 한글 서비스도 된다. 때문에 다짜고짜 다케시마는 한국이라고 하면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 같으니, 독도라는 섬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해주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 말하는 일본 소녀를 칭찬했던 이유

재미(?)있게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와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 공산당의 입장은 여느 우익단체 이상으로 강경하다. 특히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이른바 4개 도서 뿐 아니라 쿠릴 열도의 모든 섬을 반환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물러터졌다고 질타할 정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건… 자기들도 뭔가 찝찝하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실제로 그동안 방송된 일본의 국영 매체인 NHK 라디오 뉴스를 들어 보면, 대만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나 러시아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 문제에 비하면 독도 영유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다뤄 왔었다. 그냥 지나가듯이 한 번 '다케시마'라고 한 마디 언급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NHK한국어 뉴스가 좀 더 길게 다룬다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역시 짤막한 단신이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전체의 길이는 일본어로 제공하는 뉴스 쪽이 더 길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존재감 없는 비중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제대로 된 명분도 없고 실제로 얻을 가능성도 없으며, 현실적으로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고 일본이 자국의 영토라고 제시할 만한 근거도 제대로 없는 독도보다는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센카쿠 열도같은 쪽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 막장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조차도 독도는 냅두고 센카쿠 열도에 올인하자는 말을 할 정도이니...

더군다나 뉴스 자체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일본 고딩 사이에서 독도에 대한 인지도가 형편 없이 낮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 산케이 신문에서 이걸 떡밥으로 삼는 것이고, 우익 단체에서 교과서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인해 독도가 일본 내에서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NHK 뉴스에서 다뤄지는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 물론 전체 뉴스 중의 비중은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6.1.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 (2008~ )

자세한 자료와 진행상황은 위키백과의 문서들을 참고하는 편이 낫다.독도 독도 분쟁

2008년 7월 14일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교과서에 명기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일외교 전략에 뒤통수를 쳤다.

2009년 12월 24일. "일본 정부는 25일 오전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독도 관련 부분을 빼버렸다. 그런데 은근히 말을 돌려서 자기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항목이 있다.

2010년 3월 30일, 일본이 초등학교의 모든 사회과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링크 4월 8일엔 그 전까지 독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히토야마 총리가, 갑자기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해 더 큰 논란이 발생할 듯하다.참고

2011년 3월 26일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다음날인 27일 오후 3시에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독도는 일본땅 이라는 항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 심의회를 열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기술한 중학교 사회교과서 12종의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일본의 대재앙으로 간만에 조성되었던 우호적 분위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1년 3월 31일 일본 외상 마쓰모토 다케아키는 독도가 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 영토가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서경덕 교수의 2011년 4월 9일 미투데이에 따르면 일본 학생들이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동원해 '다케시마는 일본 땅' 주장을 더 알리려 한다고 한다.

2011년 4월 일본 극우들은 도호쿠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여 한국인들의 재해 성금 모금 열기가 식어버린 소식을 접하고는 "독도 실효지배를 강화하려는 한국에 맞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의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거부하거나,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의 일본정부요인 면담을 거부해야 한다"개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2011년 7월 산케이 신문에서 국경선을 그려보게 하는 조사를 한 결과, 일본 고교생의 9.3% 정도 만이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선을 그었다고 한다.

2011년 8월 1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면서 입국을 시도했지만, 정부에서는 당연히 입국불허. 일본 정부에서는 입국불허 조치에 대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식의 개소리를 했다.개의 입이 더 불쌍하다 자기네 땅인데 허가를 왜받아

2011년 8월 2일 일본은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하고 관할하는 자위대는 해상자위대의 마이즈루 지방대라고 명시하였다. 이놈들이 진짜

2011년 8월 2일,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며 역사왜곡을 일삼던 일본 자유사의 역사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의 연표를 표절했음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참고로 이 교과서는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교과서 검정을 발로 하나 보다

2011년 니코니코 동화日本の高校生が作った竹島問題検証動画が凄すぎる, 일본 고교생이 만든 다케시마 문제 검증 동영상이 굉장하다라는 영상이 정치 카테고리 1위를 달성했다. 물론 그 실체는 철저히 혐한적인 시각으로 작성된 넷 우익개드립.

2011년 유투브독도는 한국땅이란 홍보 영상을 올렸다가 엄청난 반대수를 얻은 영상이 있다고 한다.

2011년 대한항공A380 정식 투입에 앞서 독도에 시범비행을 했는데, 일본이 비난을 하면서 희대의 외교분쟁이 시작되었다. 이건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 문서를 따로 만들 정도로 내용이 긴 편.

2012년 3월 26일 극우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자 3명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몰래 '독도는 일본땅' 이라는 높이 90cm 말뚝을 박고 도망쳤다. 이 말뚝은 바로 뽑아 처분했다지만 이것을 세운 극우단체는 한국 대사관 앞에 '다케시마 비'가 설치됐다면서 사진 등을 인터넷에 유포시켰으며, 이것을 박는 동영상도 자기들이 찍어서 방송사에 보냈다.

2012년 4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집회가 열렸고 그 곳에는 일본 유력인사들이 참여를 해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한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했다. 아무래도 다시 전범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전쟁을 안 해서 몸이 근질거리는 건가?

2012년 9월에는 일본에서 '다케시마 쟁탈전'이라는 앱을 만들면서 엉뚱한 '다케시마'를 집어넣었다가 욕 먹고 내렸다.

그리고 2013년 2월 22일, 그 동안 시마네현 독립 행사였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시마지리 아이코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을 참석시켜 국가 차원으로 인정한 공식 행사(또는 국경일)로 격상함과 동시에 국가적 영토분쟁으로서 정부와 국민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 하여 한일간 독도 관련 외교분쟁이 재개되었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2013년 5월 21일, '다케시마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 소속의 일본 학자들이 부산에서 회견을 갖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도 방문을 허가받았으나, 정확히 이틀 후인 23일에 울릉도 시동항 여객선대합실에서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사카모토 유이치라는 자가 갑자기 "독도는 한국땅이 아니다. 연구가 필요한 분쟁지역"이라고 개소리 발언했다가 경찰에 잡혔다. 사서 고생한다.

2013년 7월 일본 정부에서 독도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9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들 중 6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2014년 1월 이젠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본격적으로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가르치시겠단다. 교과서 지침으로 명기하신단다.

2014년 6월에는 사격훈련 해역에 독도 주변의 일본 영해가 포함됐다며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에 훈련 중지를 요구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상큼하게 씹어 주었다.

2014년 8월 24일, 일본 우익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페이크고 사실 알고보니 일본영역참고도라는 일본 정부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지도일본 우익이 알아서 발견해놓은 것. 이 지도에서 한국 땅이라고 명백히 표시해놓은 부분을 가지고 눈에 뭐가 씌였는지 일본땅이라고 하는 증거랍시고 내놓았다가 한국측 증거로 입수. 쉽게 말해 자폭했다.

2015년 1월 6일, 일본 정부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공식 쓰레기 홍보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다음에는 일본해 홍보영상까지 올리시겠단다.

2016년 2월 22일, 일본 우익성향의 게임 개발팀이 제작한 '다케시마 탈환'이라는 게임도 출시되었다.쿠소게 확정

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외국인들은 보통 "한국이랑 일본 사이에 무슨 섬이 있는데, 둘이 싸운다더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이 문제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영토 분쟁 문제가 얽혀 있는 중국, 대만, 러시아 정도만이 암암리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CIA에서 발간하는 월드 팩트 북에서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로 실려 있으며, 한국에서 1954년부터 점유한 이래 영토 분쟁중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1900년대 이전의 한국의 독도 점유를 부정하므로 한국 측에 매우 불리한 의견이다.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은 모두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만 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관계를 중요시해야 하는 관계로 비겁한 대응인게 사실이지만.

한국 측 입장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전혀 불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외국인들에게 알릴 필요도 분명히 있다.

한국은 보안상 이유로 서버가 국내에 있는 회사에만 지리 정보를 제공할 뿐 해외로는 지도 데이터를 반출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막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 애플 등의 외국 지도 제작회사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지도 데이터를 따르기 때문에 동해일본해로, 독도다케시마로 표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부분은 미흡한 부분으로써 하루 속히 손질을 해야할 부분이다.

2008년 7월 14일 미국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분쟁지역으로 표기를 바꾸었다. 이에 따라 표기를 리앙쿠르 암으로 바꾸려 했다. 사서 참고. 다행히 7월 31일, 놀랍게도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1주일 만에 독도를 한국 영토로 교정했다. 그 전까지 한국과의 외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거에 비해 너무 쉽게 해결되었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그리 나서서 일처리가 된 건 드물다고 한다. 저 건이 진행중일 때 한 개인이 나서서 움직이는데 정부는 뭐했냐며 크게 비난받았고, 해외에 자국을 알리는데 정부가 크게 원조를 하지 않는 부분도 비판받았다. 2ch인조이재팬혐한초딩들은 미국의 이 결정에 열폭.

다만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독도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확률은 매우 낮다(...). 본인이 치르는 들도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판국에…. 사실 이런 류의 국제분쟁은 세계적으로 많고 아무리 미국의 대통령이라도 다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2008년 8월에 FTA관련으로 한국에 방한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상황이라 지시한 것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한국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독도 문제에 중립을 외치던 미국이 실제론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라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14]

그러나 동시에 일본 역시 이 사건에 대해 패배감을 느낀 듯 하다.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이 반발한다고 그렇게 쉽게 한국 요구를 다 들어주냐?' 라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직 일본 외무성 관료 마고사키 우케루는 이 같은 미국의 조치에 일본 정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것을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실수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2101202846라고 까지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2012년 3월 22일 NYT(뉴욕타임즈)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광고를 싣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미 국립지리원은 독도에 대해서 한국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으며 독도를 부르는 다양한 표기(리앙쿠르 락스, 다케시마 등)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명시하였다. #

한편 위키백과도 살펴볼 만한데,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판 등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그들 입장에서) 중립성을 위해 문서 제목을 '리앙쿠르 암초'로 하고 있다. 반면 중국어, 광동어, 고전 중국어판에서는 문서 제목으로 '독도'를 쓰고 있다. 그리고 폴란드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판에서 역시 문서 제목을 '독도'로 해두고 있다.[15] 특히 폴란드어와 체코어판에서는 우측 정보표 중 영유국 항목에 오로지 한국만 적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다케시마'라는 명칭은 오직 일본어판에서만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8. 한국 정부의 대응

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에 나가겠습니다.

당연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 내용을 다루고 있다.

8.2. 노무현 정권기 (2003~2008)

2004년 한일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 문제를 묻는 일본인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좀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독도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런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재론하지 않겠다 이런 정도로 말씀을 드리겠다." 라고 언급하였다. 일본인 기자가 "다케시마"란 이름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한국의 대통령이 "다케시마"로 대답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참조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독도연설.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실제 연설 장면.

2011년에 뒤늦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6년 4월 "만약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접근하게 되면 바로 공격하여 당파[16]시켜라!"라고 해양경찰청에 비밀지령을 내렸던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사실상 전군을 지휘하는 통수권자이자 국토관리를 지휘하는 통수권자이니만큼 당시 현직 대통령이 이러한 비밀지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에 해양경찰청도 비밀리에 이를 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및 각종 정부부처는 초긴장 사태였으며, 사고 직후 바로 구조를 위해 해양경비정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 어선과 경비정 그리고 일본측 쌍끌이어선과 경비정이 서로 배를 부딪히며 대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노무현재단에서 2006년 노무현 재임 당시 어록상에서 확인하였던 결과이며 당시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이 이같은 증언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노무현의 단호하고도 공격적인 입장에 일본 탐사선은 출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한국령임을 확실히 했다, 독도 수호의 강경한 기조를 보여주었다며 호의적으로 보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일부는 대통령이 사적이 아닌 공적으로 그런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서 외교관계에 마찰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다, 잘못하다간 양국간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도 있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2006년 7월 5일에 한국 정부가 독도 주변 해류 조사를 감행한 것이 한일 양국의 체면 살리기용 물밑외교였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2011년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주한 미국대사관발 전문에 그 당시 외교부장관이었던 반기문과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간의 대화가 나와 있다.

한편 2011년 9월 2일 위키리크스에서 미국외교문서가 공개되었는데, 2006년 4월20일 미국부 극비문서에서 밝혀진 미일 외교관 면담 내용에 따르면 미국 주일 미대사 시퍼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일본은 국제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권리행사(독도 영유권 주장)를 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비합리적(irrational)으로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을 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2006년 7월 3일자 전문에서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해주기를 원한다는 요구가 묵살당한 것도 드러났다. 일본 외무성의 겐이치로 국장이 한국과 일본의 독도 갈등에 대해 미국이 중립적인 것에 실망했다고 하며,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을 설득해 독도 주변 해양조사를 단념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무시당했다.

오히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은 일본 외무성에 자제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글은 미국 대사 개인의 발언이며 아래쪽은 미국 대사관의 공식적인 입장.

2007년에 건조된 대한민국 해군의 신형 강습상륙함의 1호함이 이 섬의 이름을 따서 독도함으로 명명되었다. 이때 일본에서 항의했으나 당연히 한국은 상큼하게 씹었다.

8.3. 이명박 정권기 (2008~2013)

일본 정부의 다케시마 교과서 명기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뒤인 2008년 7월 15일에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당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후쿠다 총리가 "다케시마(독도)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변했다는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청와대와 일본 외무성은 이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은 후쿠다 총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데 그런 일[17]은 벌어져선 안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독도 문제가 국제영토분쟁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요미우리 신문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은 두 정상이 요미우리 보도 내용과 같은 대화를 나눈적이 없으며, 다케시마 명기 문제는 요미우리가 보도한 9일(회담일)에 결정되지 않았으며, 15일날에 와서야 결정됐다고 요미우리 보도를 부정했다.

2009년 한국 시민 소송단 나라사랑 시민모임은 이에 요미우리 신문을 상대로 허위 사실 보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있었음을 들며 당시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서면을 2010년 3월 법원에 제출했다. 이 서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후 네티즌들의 반응. 요미우리의 기사 원문과 이 기사의 신뢰성에 대한 자세한 해설.

이 소송은 원고인 시민단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로 법적인 피해를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에 2010년 4월 7일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또한 재판부는 청와대와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송단은 행정 소송을 포함한 추가적인 수단들을 강구해서 계속 보도의 진위 여부를 캐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2010년 10월 6일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국민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소를 기각했다. 또, 재판부는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허위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

이 보도가 논란이 되었던 당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앞 글자만 딴 지곤조기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처럼 번져나갔다.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한 지곤조기 머그컵 초창기에는 反 MB정서나 민감한 독도 문제 때문에 논란거리로서 퍼졌지만, 사건이 발생된 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어감 때문에 널리 퍼진 듯하다.

이 문제는 2012년 2월 19일 경향신문은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미국외교문서를 통해 지곤조기 드립이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그 내용은 2008년 7월16일 강영훈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hold back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또 2008년 한·일 정상회담 직후 외교전문을 인용해 주한 일본대사관의 정치참사관이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두꺼운 피부'를 가져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트러블[18]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 원문

위키리크스 한글 - hold back 부분은 원문과 병기했다.

(C) On July 16, ROK Embassy First Secretary Kang Young-hoon told Embassy Tokyo political officer that Tokyo's July 14 decision to include its claim to the disputed Liancourt Rocks (named Takeshima by Japan and Dokto by South Korea) in an educational manual used by junior high school students was "very, very serious," "enormous," and "explosive." Following efforts made by new ROK President Lee Myung-bak to put aside the contentious historical differences that have plagued ROK-Japan relations, Kang said Seoul officials felt a sense of "betrayal," particularly after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on the textbook issue at their bilateral summit on the margins of the Hokkaido Lake Toya G8 meeting.

(기밀) 7월 16일 주일 한국 대사관 강영훈 1등 서기관은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상에 분쟁이 있는 리앙쿠르 바위[19]를(일본은 다케시마로 칭하고, 남한은 독도라 부른다) 일본의 영유권으로 포함 시킨 일본 정부의 7월 14일 결정은 “매우, 매우 심각하며,” “엄청나고,” 또한 “폭발력”있다고 주일 미국 정치 담당관에게 말했다. 한·일 관계를 괴롭히던 논쟁있는 역사 인식의 차이를 제쳐놓으려는 한국의 새 대통령인 이명박의 노력이 이어진 후라,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강 서기관은 말하면서, 특히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 G8 정상회의 한켠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hold back”해달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부탁을 한 이후라 더 그렇다.

그러나 '기다려 달라'의 원문 표현인 hold back자제해 달라, 그만둬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과거 논란을 잠재우는 결과를 낳았다. 공개된 문서 상으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hold back'해달라고 발언했음에도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등재하기로 하여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 주요 내용. 2008년 이명박 정권은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실용 외교'를 제시하는 한편, 한-미-일의 공조에 더 노력하였다. 그러한 온풍 기조를 말하는 듯. 하지만 4 ~ 5월에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방침을 놓고 이미 독도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도 했다. 경향신문 등의 보도와는 달리, '자제하다'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독도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니 뒤로 미뤄달라"는 발언이었다고 본다면 이전의 '지곤조기' 논란과 같은 수위의 도마에 올릴 수 있겠지만,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면 독도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강경해지는 한일 정부의 입장을 볼 때 이 해석은 무리수에 가깝다.

일본의 독도 망언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 국민 교육, 국민적 감정 등이 강경해지는 것은 말 안 해도 잘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2008년 4 ~ 5월 이미 독도 교과서 문제를 터뜨리기 시작해 논란이 되었고, 6월에는 센카쿠 열도 문제가 터지면서 간접적으로 외교적인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동기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당연히 일본 정부에 하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 친일적이다'라는 이유로 '기다려 달라'라는 발언이었다고 추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성향 때문에 양국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를 땡처리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애초에 '지곤조기' 발언이 퍼진 것도 '다른 건 몰라도 독도 문제만큼은 계속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발언했다'는 것 때문이었음을 생각해보라. 즉 한국 정부의 입장과 국민적 정서가 독도 문제에 대해 굉장히 민감했고 강경 대응을 원했음을 생각해보면 자제하라라고 말했을 동기가 훨씬 강하다.

게다가 원문에는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즉 직접적으로 hold back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나와 있다.

만약 hold back이 "기다려 달라"의 뜻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사정상 안 되겠으니까 터뜨리더라도 나중에 터뜨려 달라"라는 의미로 "기다려 달라" 고 강하게 요구했다는 뜻이 된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독도 문제에 대해서 뭐가 불리하길래 공식 외교석상에서 이렇게까지 발언했겠는가?

하지만 이미 "지곤조기"는 퍼질대로 퍼져버렸고, 다음에서는 국민일보의 "지곤조기"보도 기사에 무려 39만 6천개의 댓글이 달리기까지 했다. 자세한건 문예춘추참고.


2010년,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2007년 작고한 백충현 교수, 그리고 최서면 석좌 교수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편 임기 말년에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이 이루어졌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할 것이며, 날씨가 좋으면 독도에 간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으며, 이날 오후 2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했다.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유용한 외교 카드를 필요하지 않은 때 쓴 포퓰리즘적 사업, 이명박 대통령이 친일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치적을 남기려 한 무리한 시도, 외교 분쟁화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한국령 방문은 당연한 것, 독도가 우리 땅임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의 성향에 대해 근거 없는 추측으로 대일 외교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일왕 사과 요구광복절 축사의 위안부 문제 언급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되자,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지나친 공세가 아니냐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국내 보도에 앞서 방문 전날밤 일본 신문에서 일제히 보도되었는데, 마치 엠바고가 풀린 것처럼 일제히 같은 시각에 게재되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서는 사전에 일본측에 통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당연히 해당국 방문이나 통과도 아닌데 외국에 통지할 까닭이 없다). 이에 따르면 대외 통지한 적이 없는 대통령의 동선이 새어나간 보안사고가 일어난 것이 된다.간첩이 있는 건 사실인 듯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3년 1월 경 독도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뭐병. 독도 방문은 했지만 예산은 깎으니, 지곤조기라는 말도 나오는 게지.

8.4. 박근혜 정권기 (2013~ )

2014년 11월에 2008년부터 계획중이던 독도 시설물 설치 계획을 일본과의 마찰 우려로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뭐? 하지만 매년 해군/해병대/해경이 시행하는 독도방어훈련은 그대로 실시하고 있다.

9. 북한의 대응(?)

북한은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은) 독도에 있는 풀 한 포기도 밟지 말라."는 공식논평을 내었다. 웬일로 정상적인 반응을 어쨌건간에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니까 물론 북한은 헌법에 한반도 전체를 자기 나라의 영토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점거 중인 독도는 엄연히 자기네 영토이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보통 이런 논평이 나오면 일본 측의 "유감 표명"이 이어지고, 다시 정치인 및 외교부(혹은 상대국 대사 소환) 차원의 설전이 치열하게 일어나지만, 이때만큼은 일본에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

10. 민간 차원의 대응

동해/일본해 병기를 위한 노력이 2014년 초에 접어들어 버지니아 주를 시작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역으로 독도의 표기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바다 이름을 병기하고 있으니 독도도 병기해야 한다는 논리. 이미 2013년에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보기

11. 일본과의 군사분쟁 가능성

군사력 비교,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등은 한국군 vs 자위대 참조.

결론부터 먼저 내자면 진짜 일본이 이런 일을 벌인다면 전쟁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일본은 전쟁을 절대 먼저 일으킬 수 없다. 집단자위권은 일본 영내를 방어하는 개념+ 해외에 미군을 따라 일본인 및 일본 이권을 보호하는 개념으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서해5도는 해당 사항 없고, 북한이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따위가 대상이 될 법한데 이 북한도 한국정부가 반대하면 못 간다.

일본이 독도에 침공하면 어찌하냐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자위대가 독도를 공격해야 한다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있다. "평화헌법상 해외 파병은 금지되어 있지만, 다케시마는 자국 영토이므로 상관없다."는 논리. 이를 반영하여 각종 한일전쟁 소설에서 독도는 항상 전쟁의 스타트를 끊는 곳이다. 그와 더불어 독도경비대원들은 항상 전멸하는 걸로 시작한다. 안습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일본 극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자기방위를 위해서 다른 나라가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를 점령한다는 논리는 타국을 침략할때 자주 쓰인 변명이다. 크킹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날조된 데 유레'를 생각하면 쉽다.게다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를 일으킨 전범국가고, 대한민국을 식민통치한 역사가 있는 나라다.

역사적으로 이런 국가간의 영토분쟁이 전쟁으로 발전하는 예는 많았다.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이라든지 샤트 알 아랍강의 영유권을 놓고 이란이라크가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이라든지[20] 국경 지역의 카슈미르 땅을 놓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벌인 제1차,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라든지...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에서 포클랜드 제도를 강제로 점거했다가 국제적으로 지탄받고 패전한 아르헨티나처럼, 일본이 국제적 지지를 받을 확률은 낮다. 일본이 겨우 바위 덩어리 섬 하나, 극우 세력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군사 활동을 벌여 독도를 점령한다면 이익보다 피해가 몇 백 배 더 많다.

당장 수십 년 동안 벗으려고 애썼고 아무튼 세월이 지나서 좀 흐려지기는 한 침략 국가의 이미지를 다시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군대 대신 자위대를 운용할 정도로 군사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런 대규모 군사행동을 일으키면 당시 일본과 싸웠던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있을까? 게다가 센카쿠 열도쿠릴 열도 분쟁 등 비슷한 분쟁이 주변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싸우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잠재적인 라이벌인 중국과 호전적인 적성국가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동맹국끼리 싸우면 미국의 힘을 깎아먹는 일이 될 뿐이며, 둘다 상호 방위조약을 맺고 있어서 미국 입장에선 둘이 서로 영토 문제로 전쟁을 벌이는 걸 극력저지할 공산이 클 것이다.

물론 전술적으로 생각해보면, 물론 일본이 정말 마음먹고 자위대로 대거 기습 공격을 한다면 독도를 수비하는 소수의 독도경비대가 독도를 지켜내는 건 불가능하다. 상륙할 경우 자위대 서부방면대 보통과연대(수륙기동단)가 주축이 될 텐데 1개 소대 안팎에 불과한 독도경비대로는 함포지원까지 받는 자위대 1~2개 중대의 공세를 당해내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독도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독도경비대는 장렬하게 산화할 가능성이 높다. [21] [22] 실제 전투는 한국 제1함대제7기동전단,잠수함사령부, 제1해병사단과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이 각각의 항공전력의 엄호를 받으며 격돌한 뒤 이 과정에서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한국 해군의 주력은 당연히 7전단과 잠수함사령부이며 해역함대인 1함대는 지원 및 호위 역할, 해병대 병력 엄호 정도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해군은 힘들다고 했으나 세종대왕급 구축함 등이 들어오고 현무 크루즈 미사일이 공개된 지금은 전력이 제법 대등해졌다. 현무 미사일은 일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넣고 있어 해자대 함정들은 당연히 가격권에 들어온다. 즉 함정 손실 없이 초창기에 내륙 기지에서 발사 가능한 유도탄을 죄다 동해로 쏟아부어도 해자대 함정은 줄줄이 격침 당하고 그 뒤 제7기동전단잠수함사령부가 마무리 쳐 주고 해병수색대는 해군 특수전전단과 함께 수륙기동단의 상륙을 저지하면 된다. 어차피 수륙기동단은 도서 방어 부대이지 공격 부대가 아니라서 허약해서 제1해병사단 신속대응부대가 제압 가능하다. 그리고 이 쯤 일이 벌어지면 포항에서 해병대 포병 전력이 긴급 전개된다.

여담으로, 독도경비대는 해경이 아니라 경찰이다. 의경 중 독도경비대로 따로 선발한다. 그 이유는 1982년 이전까지 전투경찰순경이 해안선에 들어갔는데 울릉도, 독도, 제주도는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며 딴 섬은 1982년 해군에 이관되었다. 함포 사격을 지원하는 해자대 함정은 포항에서 신속전개되는 해병대 포병전력으로 격파 가능하다. 최근 해병대도 북한과의 NLL 분쟁과 함께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의식, 이를 억제하고자 신속대응부대를 동,서해안에 배치하고 MLRS를 들여오는 등 전력을 늘리고 있다. 그간 주장으로만 그쳤던 울릉도 해병대 전투부대 배치가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전략도서방위사령부로의 격상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제9해병여단제주도에 들어간 것과 비슷하게 해병대 전투부대가 정식으로 울릉도에 들어가고 포병기갑 전력이 전개되면 일본 입장에선 말 그대로 턱 밑의 비수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조선인민군 해군잠수함 이용 침투는 더더욱이 불가능해진다. 해군도 이 점을 인식하고 해병 전투부대를 집어넣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군 vs 자위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민 감정상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일본이 얻을 만한 건수가 그다지 없다. 결론적으로 전쟁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23]

참고로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러한 독도 및 서북도서 기습강점 등 연안에서의 돌발사태에 대비, 동해와 서해에 신속대응부대를 배치했다. 해병대 항공단까지 창설되면 연안 신속대응부대의 대응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김경진 공저의 독도왜란이라는 소설이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해당 문서 참고.아무리 그래도 이걸 참고하기는......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다. 만에 하나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려고 전쟁을 걸었는데 이를 대한민국이 안보리올려버리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것보다 중국이 다오위다오(센카쿠)에 밀고 들어오면 어쩔?

12. 대중매체에서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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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국 군인을 통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24]

다케시마 홍보 게임이 나와 일본 내 관심이 매우 뜨거운 편이다. 기사 참조.그리고 빡침주의.

13. 유사 사례

독도와 비슷해 보이는 문제가 있는 곳으로 간도가 있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되찾을 확률이나 찾아서 얻는 득도 거진 없는 거나 마찬가지. 녹둔도가 비슷하다면 좀 비슷하긴 하다.

독도 운운하는거에 빡친 일부 한국인들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며 역드립을 치기도 한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순수하게 맞불 용도. 이쪽도 간도와 마찬가지로 전혀 근거나 이득은 없다. 자세한 것은 대마도, 쓰시마 섬 문서 참고.

해외의 예를 들어보자면,

1956년 일소공동선언에서 소련은 일본과 관계개선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언급이 안 된 남쿠릴의 섬 두 개(독도와 비슷한 경우)의 반환을 일본에게 제의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자 빡쳐서 반환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일본은 이에 남쪽의 두 섬들만이 아니라 4개 섬을 다 달라고 배짱을 부렸다. 당연히 소련은 거절했고, 지금도 일본이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이미 서방에서는 공산진영과 싸울 걸 염두에 두고, 일본을 끌여들이기 위해서 일본에게 비교적 후하게 조약을 맺었다. 중국은 둘로 티격태격하고 있어서 어느쪽도 중국의 대표로 참가를 할 수 없었으며, 소련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조약에 싸인하길 거부했다. 물론 한국은 초청도 못 받고, 참가도 못 하고, 싸인도 못 하고, 그냥 강대국들끼리 주물럭거리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정작 당사자들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그게 오늘날 영토분쟁의 시작이다.
그 이후로 말이 많았지만, 일단 주민들이 영국으로 남는 쪽을 선택해서 일단락됐다. 그래도 스페인이 끈질기게 영토주장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스페인이 주장하는 우리 땅 안에 있는 땅이니 돌려달라는 것에 대하여 영국은 세우타와 멜리야가 모로코 땅 안에 있는데도 지들이 차지하는 건 당연하고 남이 지들 땅 차지하는 건 안 되느냐며 비웃는다.
결국 몇 차례 분쟁 끝에 지브롤터를 대상으로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이던 1960년대 후반 국경봉쇄를 발동시킨 적이 있었다. 일본이 한다는 그 해상봉쇄와 비슷한 성격의 이 봉쇄는 스페인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 풀었고, 완전히 푼 건 80년대다. 하지만 이러한 스페인의 국경봉쇄는 아무리 해가 저물었다고 해도 핵무장국에 영연방을 필두로 무시 못할 강대국인 영국은 그다지 개의치도 않았고, 스페인으로서도 영국에게 크게 대들지 못했기에 사실상 효과도 별로 없었다.

14. 관련 문서


  1. [1] 다케시마(죽도)는 일본 규슈 남부, 가고시마 현의 사쓰마반도(薩摩半島) 남단에서 남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동중국해 동부 해상에 있는 섬이다. 그 외에도 다케시마 섬 (구마모토 현), 다케시마 섬 (미야기 현), 다케시마 섬 (아이치 현), 다케시마 섬 (야마구치 현) 등 많은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영토의 섬은 많다. 다케시마 라는 표현은 일본에서만 사용한다. 다케시마는 일본땅이고 독도는 한국땅이다.
  2. [2] https://www.taxtimes.co.kr/hous01.htm?r_id=122791
  3. [3] 가장 가까운 한국의 육지인 죽변에서 217km, 서울에서 직선으로 435km.
  4. [4] 물론 음차라고 해도 수많은 '독' 자 중에서 그나마 의미가 잘 들어맞는 글자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독도는 외따로 떨어져있는 절해고도니까.
  5. [5] 왜 동해에 있는 섬에 전라도의 서남 방언으로 된 이름이 들어왔냐 하면, 울릉도와 독도의 방위를 위해 공도령(空島令)을 해제헸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건너와서 붙여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6. [6] 위키백과 기준으로 표기는 리앙쿠르 암초 >>> 독도 정도로 차이난다.
  7. [7] "漢文으로 작성되어야 하는 敎書의 전통을 이은 勅令에 사용되는 어휘는 언제나 漢字語이어야 한다. 따라서 차자 표기인 ‘獨島’가 아닌 ‘石島’를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반면, "吏讀로 작성되는 牒呈의 傳統을 이은 보고서 에 사용되는 어휘는 한자차용표기법에 따른 것이어야 하므로" "한자어(훈차 표기) ‘石島’가아닌 이두(음차 표기) ‘獨島’를 사용"한다. '獨島'․'石島'의 地名 表記에 관한 硏究
  8. [8] 절목이란 시행세칙을 의미한다.
  9. [9] "울릉도 수출품목에는 독도에서 잡은 강치가 포함되어 있고, 일본인들은 이 수출품에도 수출세를 납부했다. 일본인들이 수출세를 납부했다는 기록은 일본 외무성 기록에 보이며, 울릉도의 강치 수출통계 역시외무성 기록에 보인다. 울릉도의 일본인들이 독도 강치에 대한 세금을 울도군에 납부했다는 것은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독도가 한국령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울릉도의 산물에 대해서만 세금을 냈을 것이다. 당시 수출세는 물품에 따라 세금을 내는 이른바 ‘종가세’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이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竹島問題100問100答』에 대한비판적 검토,그리고 우리의 대응
  10. [10]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본의 주장이 그렇다는 것. 러스크 서한은 애초에 조약도 뭣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빠졌으므로 따라서 한국에 반환하지 않고 일본령이 된다는 건 무리수 많은 주장이다.
  11. [11] 사실, 이마저도 정확히 확신할 수 없다. 위안부 협상 이후에도 계속 도발하는게 일본이다.
  12. [12] 사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독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상당한 양의 공부가 필요하다. 당장 한국인들도 독도가 당연히 우리땅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역사적, 지리적, 법적 근거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평범한 일본인들은 독도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이 일본 정부가 자기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니 그런가보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몇몇 일본인들이 공부를 충분히 해서 독도가 자기네들 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도 일본 내에서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용기와 양심이 필요할 것이다. 즉, 양심과 용기와 지식을 모두 가진 사람만이 독도는 한국땅임을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13. [13] 문제는 대한민국에도 일본의 다케시마와 한자 이름이 같은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여러 개라는 거다.
  14. [14] 사실 일본의 독도 영유 논리를 자세히 보면 미국의 권위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샌프란시스코 강화도약러스크 서한
  15. [15] 폴란드어판은 Dokdo, 체코어판은 Tokdo, 슬로바키아어판은 Tokto라고 적고 있다.
  16. [16] 배로 밀어 깨뜨리는 것
  17. [17]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
  18. [18] 한·일 간 마찰
  19. [19] 위키리크스 번역에는 '리앙크루 암도'라고 되어 있는데, 보편적인 독음은 '리앙쿠르'이며, '암도(島)'라는 표현과 달리 'Rocks'는 섬이 아님을 더 강조하는 표현이므로 일부 수정하였다.
  20. [20] 단 이쪽은 영토분쟁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기에는 당시 중동 정세상 복잡한 원인들이 얽히고 섥켜서 터진 측면도 있었다.자세한건 이란-이라크 전쟁 항목 참조
  21. [21] 그런데 독도경비대원들은 경찰, 즉 전시에도 민간인이다. 비전투원인 경찰들을 함포 사격에 수륙기동단까지 동원하여 학살할 경우 그 뒷감당을 일본이 할 수 있을런지는 각자 알아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22. [22] 그리고 독도에 1개 중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독도 선착장에서 독도경비대 막사까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좁고 경사가 심한 계단이 전부이며, 이 계단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지라 많은 병력을 집중적으로 신속하게 투입하기도 어렵다. 정말로 일본측 병력이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경비대가 교전할 경우, 오히려 일본측 병력이 축차 투입되었다가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다.
  23. [23] 한국의 피해가 클 거라는 것은 2010년 이전 이야기로 현재는 수비자인 한국측이 유리하다. 한국은 내륙에 육군미사일사령부를 창설, 발사 가능한 유도탄을 죄다 초기에 동해로 쏟아 부어 해자대 함정들에게 용왕 면담을 시켜줄 수 있다. 배수톤수 큰 함정들부터 집중 공략해 가라 앉히면 해자대 전력도 절반 이상이 손실되고 남는 건 연안전력 정도로 이 정도는 제7기동전단이 나가면 상대 가능하다. 반면 육자대나 해자대는 순항, 혹은 탄도미사일 전력의 부재로 내륙 깊숙한 비밀 장소의 한국군 미사일 기지들을 때릴 수 없다. 공자대는 대한민국 공군과 같은 지상타격력은 전혀 없는데다가 한국의 조밀한 방공망과 압도적인 지원력의 차이로 대한민국 공군에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현대적인 BVR 전투능력을 가진 전투기도 대한민국 공군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무 미사일의 사거리는 일본 열도 및 북한 전역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도 집어넣어서 중러 양국에게도 위협적이다. 물론 당연히 해자대가 한국의 임해 산업시설을 때릴 힘도 없고, 그런 짓을 할 경우 100% 전쟁 도발이 되어 국제 제재에 돌입하며 미국도 이렇게 된 이상은 일본을 버릴 것이다. 상륙하는 수륙기동단은 제1해병사단이 막으면 되고, 어차피 육상전력의 엄청난 차이로 육자대가 한국 상륙하는 것은 어렵다.
  24. [24] 제 11회 주한미군 웅변대회 1위 수상자인 마이클 패레스 상병으로, 북한의 은하 2호 발사실패 당시 페이스북에 찰진 한국어를 보여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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