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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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지도

실효 지배[1]

대한민국

영유권 주장

일본

행정 관할구역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행정구역명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행정권 주장[2]

일본 시마네 현 오키 군 오키노시마 정

위치

동경 131°52′ 북위 37°14′

면적

187,453m2

인구

약 40여 명[3]

주둔 부대

독도경비대

1. 개요
3. 역사 및 명칭
3.1. 역사 속 논쟁거리
3.1.1.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나오는 우산은 독도인가?
3.1.1.1. 반론
3.1.2. 은주시청합기 해석
3.1.3. 안용복 진술의 신빙성은?
3.1.4. 옛 지도의 독도
4. 독도 관련 조약
4.1. 울릉도 쟁계: 일명 안용복 사건
4.2. 대일강화조약: 일명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5.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5.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5.2. 홍승목 전 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5.2.1. 보론
6. 일본인들이 아는 독도
6.1.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2008~ )
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8. 한국 정부의 대응
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견해
8.2. 참여정부(2003~2008)
8.3. 이명박 정부(2008~2013)
8.4. 박근혜정부(2013~ 2017)
9. 북한의 대응
10. 민간 차원의 대응
11. 일본과 충돌할 가능성
12.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독도
13. 유사 사례
14. 관련 문서
15. 트리비아

1. 개요

한자: 獨島

로마자 표기: Dokdo(현행), Tokto(매큔-라이샤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

다음 지도네이버 지도에서 각각 독도의 로드뷰를 제공하고 있어 간접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네이버 직원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촬영했다카더라-

독도 라이브 영상 링크: KBS 제공. 청와대정부서울청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본관 로비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동일한 영상이다. KBS 독도 라이브는 KBS의 모든 방송을 볼 수 있는 앱인 My K 앱과 홈페이지에도 제공된다.

울릉도 동남쪽 87.4㎞[4] 바다 위에 있는 바위섬로,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이다. 대한민국 실효통치 지역(남한)은 물론, 한반도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다.[5]

일본에서는 이 섬이 한국 영토가 아니라 시마네오키오키노시마 정(오키 제도)에 딸린 섬 다케시마(竹島)며 대한민국이 강제 점령하고 있으니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외교 분쟁이 유명하다.[6] 그러나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한 강역이다.

한자로는 홀로 독(獨)자를 쓴다. 하지만 독도의 한자표기는 이런 한자 뜻과는 상관없이 그저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쓴 음차로, 진짜 뜻은 돌(石)의 서남 방언인 '독'이다. '돌로 된 섬'이란 소리.[7]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라는 큰 두 섬과 크고 작은 89개 부속도서로 나뉜다. 실제로는 섬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소리. 따지고 보면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첫 소절인 '외로운 섬 하나'는 잘못된 셈이다. 물론 절해고도(絶海孤島)란 점에서 보면 '외로운 섬'이라는 이름도 어울리기는 하다.

독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 실효통치 지역(남한)은 전라남도 신안군 가거도이다. 직선거리로 707km를 넘으며, 대한민국 실효통치 지역(남한)의 어느 두 지점 사이의 거리 중 가장 멀다.[8] 헌법상 영토로는 극서점인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직선거리로 725km이다.[9]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화산섬이다. 수백만 년 전 신생대에 동해에서 분출한 화산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되어 화산의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진 것. 마찬가지로 화산섬인 울릉도는 여전히 화산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있다. 또한 수심이 깊은 동해 밑바닥에서 바다 위까지 올라온 섬이기 때문에 해수면이 아닌 바닷속에 잠긴 부분까지 합쳐 높이를 재면 무려 2,000m에 이른다. 이게 얼마나 높은 것이냐 하면, 한라산보다도 높다. 물론 이건 에베레스트와 마우나케아(하와이)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독도의 해저 지형

독도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식생들이 많이 산다. 무엇보다 본래 바다사자의 주 서식지였는데, 멸종되었다. 본디 일본에서 1905년 독도를 점거한 표면상 연유가 바다사자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이 바다사자를 사냥하는 장면이 흑백 영상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수산물과 조류는 풍부하지만 바위산이 바다 한가운데 솟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지형이 가파르고 평지가 별로 없다. 게다가 식수도 꽤 부족한 편. 일단 샘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걸로 다 충당할 수가 없는 듯하다. 넓이가 그렇게 좁은 건 아닌데도 인구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까닭 때문.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긴급 상황 발발시 주민의 긴급한 후송 및 함정을 정박하기 위해 국토해양부에서 독도를 포함한 전국 10개 섬을 국가 관리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독도에는 기상악화에 대비한 방파제, 부두 등을 새로 만들고 최대 5천 톤급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독도경비대 및 1가구가 거주하며, 일대에 천연가스,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시설물로는 RKDD라는 ICAO 코드를 받은 헬리콥터 포트와 # 노무현 정부 시기 만들어진 접안시설, 어민숙소 등이 있다. 접안시설은 확장될 예정이다. RK**는 대한민국공항을 뜻하는 국가 코드이다. 일본은 RJ**.

독도에도 우체통이 있다. 이 우체통에 투함된 우편물은 2개월에 한 번 독도경비대함이 들어올 때 집배원이 수거한다. 서울 영등포구 기준으로 독도에서 투함한 우편물이 오는 경로는 독도⇨울릉우체국⇨포항우편집중국⇨대전교환센터⇨서서울우편집중국⇨영등포우체국⇨배달이다. 우편번호는 개정 전 6자리 번호가 799-805, 2015년 개정 후 5자리 번호는 40240이다.

2. 교통

독도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교통수단은 선박이 유일하다. 애초에 공식목적으로 사용되는 헬리포트를 제외한 다른 교통시설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 울릉군/교통 문서 참고.

3. 역사 및 명칭

명칭

한국어

일본어

영어

한국

독도

独島

Dokdo

일본

다케시마

竹島[10]

Takeshima

중립

리앙쿠르 암초

リアンクール岩礁

Liancourt Rocks

독도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울릉도와 아주 가까이 관계되어 인식되었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식되거나, 울릉도와 함께 한 쌍으로 다루어져 온 것이다.

  • 독도를 직접 언급한 첫 문헌은 한국 측의 삼국사기(1145년)로 지증왕 13년에 있었던 이사부의 우산국(于山國) 정벌을 다룬 내용이 독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 인정된다. 이는 동국문헌비고, 만기요람, 증보문헌비고 등에서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이다"라는 문구에 기초한 것이다.
  • 일본 측의 독도에 관한 최초의 직접 기록은 은주시청합기(1667년)으로 죽도-송도를 "이 사람이 살지 않는 두 섬에서 고려를 바라보는 것은 운주(이즈모국)에서 은주(오키국)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此二島無人之地 見高麗如雲州望隠州)"로 기술하여 울릉도-독도 두 섬을 조선과 일본 서북을 나누는 경계로 인식하였다.
  • 일본은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다소간 울릉도-독도 사이 명칭 혼란을 겪던 도중, 과거 울릉도의 이름으로 사용한 다케시마(竹島)를 독도의 명칭으로 확정하고, 독도의 명칭이었던 마츠시마(松島)를 울릉도의 명칭으로 규정함으로써 두 섬이 부속관계임을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
  •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국의 독도 주소는 울릉도에 부속되어 있으며, 영유권을 보유하지 못한 일본 또한 그 주소를 오키섬에 부속(島根県 隠岐郡 隠岐の島町)시킴으로써 독도가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섬의 부속섬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음을 시인하였다.

삼국사기에서 우산국에 관음도, 죽도, 독도 등의 부속섬이 포함되었다는 직접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18세기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그 영유 인식이 문헌상 인과적으로 확인된다.

근대 국제법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더라도, 맑은 날 울릉도에서 독도가 상시 육안관측된다는 물리적 사실(기사, 사진)은 '지속적 발견'에 해당하는 영유권원으로 인정받고 있고, 따로 '실효 지배'한 근거를 갖추지 않더라도 6세기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가 130km(육지-울릉도 간 최소 거리) 이상 항해한 기록이 그보다 적은 90km(울릉도-독도 간 거리) 떨어진 섬에 대한 '실효 지배'의 물리적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어, 혹시 있을지 모를 국제법정에서의 영유권 분쟁 시 '고대 우산국의 영유권에 독도가 포함되는가'의 사항이 대한민국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상당하다.

한편 울릉도 동편 바로 옆에는 죽도(죽서도)라고 불리는 별개의 섬이 존재하여, 후에 우산도가 죽서도이냐 독도이냐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울릉도 옆에 있으면서 사람이 사는 섬'은 죽서도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아, 혹여 고지도에 상관된 문제를 접한다면 이를 알아두는 편이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후의 한국/일본 문헌에서 독도의 명칭은 다양하게 표기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于山島), 안용복 관련 기록의 자산도(子山島), 성종시대의 삼봉도(三峰島), 정조실록의 가지도(可支島), 에도 막부메이지 정부의 마츠시마/송도(松島), 때로는 다케시마(竹島), 조선 말 고종이 말한 송죽도(松竹島), 대한제국의 석도(石島) 등등... 이 때문에 한국 측이 '이 섬은 독도다'라고 하면 지칭하면, 일본 측에서는 '이 섬은 독도가 아니다.'라며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대개 죽서도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 근대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영토를 파악하는 범위는 호구의 거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본토와 멀리 떨어진 독도를 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876년까지는 다케시마(竹島)가 울릉도였다는 것이다. 정작 독도는 마츠시마(松島/송도)라고 불렸다고 한다. [12]

울릉과 우산이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에서 송도라 부른다. 《만기요람》, 조선

일본에서 1박 2일 거리에 송도가 있고 다시 거기서 1일 거리에 죽도가 있어 고려가 보인다. 《은주시청합기》, 일본

한국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추정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5세기 초엽에 처음 나타난다. 특히 조선 태종 치세에 이루어진 일련의 울릉도 쇄출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그 외의 섬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우산도라는 이름이 본래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였으므로 다소간 울릉도와 우산도의 구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 측 사료상에서 독도로 확증되는 섬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중반에 처음 나타난다. 이는 오오야·무라카와 양 가문의 다케시마 즉 울릉도 출어 과정에서 울릉도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과 더불어 '마쓰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위치나 거리 등의 표현에 따라 이것이 독도임을 부동의 사실로 확증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국의 '우산도'와 일본의 '마쓰시마'로 인식되었던 독도의 존재는 17세기 후반의 쟁계 사건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한국의 조선 조정과 일본의 쓰시마 번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이 사건을 통해 이전까지 모호한 면이 있던 한국과 일본의 울릉도 인식이 완전히 정립되었는데, 이로서 한국은 울릉도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져 독도의 존재를 다시금 인지하였고 일본은 '다케시마'와 그 부속 도서인 '마쓰시마'의 영유권이 조선 측에 있음을 명확히 규정하였던 것이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 호(Le Liancourt)가 독도의 바위로 인해 난파당한 뒤로,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이 현재까지 서양권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름으로, 여기에서 rocks는 암초(岩礁), 그중에서 수상암으로 섬보다 작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해면 위로 튀어나온 바위를 의미한다.[13] 일본은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여 'Liancourt Rocks'를 리얀코루도 열암(リヤンコルド 列岩)이라 번역해 사용하기도 하고, '리앙쿠르'의 일본화된 발음으로 '랸코(リャンコ), 란코(ランコ), 얀코(ヤンコ)'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의 아르고너트호가 울릉도 측량 과정에서 위도경도 표기를 잘못 기재하고, 서양에서는 이걸 다시 일본 명칭과 대조하는 과정에서 동쪽의 다줄레(울릉도)를 마츠시마, 서쪽의 아르고노트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것이 일본 해군성에 역수입되었다. 그런데 해군성을 제외한 원래 메이지 정부와 육군성은 여전히 에도 막부의 인식을 이어받아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츠시마라 부르고 있었다.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일본은 1880년 군함 아마기호를 보내 울릉도 명칭 등의 정확한 정보 확인에 나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울릉도의 원래 명칭이 다케시마=죽도=竹島 였음을 확인하고, 인근에 따로 “竹島“(죽도) 라고 불리는 소도가 있음을 보고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 보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명확하게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을 바로잡지 않았다.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령이 아닌 타국(조선)의 영토이기 때문에 그 명칭의 역사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비밀 편입 시도하려던 때에 그 이름을 지어 넣으면서 ‘원래 조선의 동쪽 해상에 마쓰시마와 다케시마라는 두 섬이 존재하는 것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이며....(중략) 종래 잘못 불려지던 명칭을 전용해서 다케시마라는 통칭을 새로운 섬의 이름으로 하고자 합니다’라는 오키도사의 보고를 일본 내각이 받아 독도의 일본 명칭을 다케시마(竹島)로 결정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시마네 현 고시의 '무주지'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석도"라는 이름으로[14] 독도를 근대적 영토에 편입한 바 있었고, 앞서 일본 스스로 1879년 태정관에서 처리한 문서에서 울릉도와 그 외 1도(독도)를 일본령에서 제외한 바 있었다.

여기서 ‘독도’란 명칭은 1904년 일본 군함 니타카(新高)호의 행동일지에 “리앙코루도 암, 한인은 이를 독도(獨島)라고 쓴다”는 기록이 있어 이것이 한국인들이 부르던 고유 명칭임이 한일 사이에 교차 증명되며, 그 어원이 현재의 돌(石)에 있다는 것과 최소 1895년 이전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사용되어 명칭임을 민국일보 1962년 3월 19일 김윤삼 翁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899년 일본 해군 발행 조선수로지 전라남도 소안항 조에 석도(石島)의 발음을 トヽクソム(도토쿠소무=>독섬)로 적어 놓았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현재의 ‘돌’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이전의 ‘돍’으로 지역차를 두고 발음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니타카 호와 조우한 한인이 이를 한자 獨으로 표기해 일본인들에게 알려 주었고, 이 표기를 1906년 오키섬의 일본 행정관리들이 울릉도에 방문하여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사용하고, 심흥택이 일본인들이 사용한 명칭을 그대로 공식문서에 옮겨 적으면서 독도의 한자 표기로 굳어지게 된다. 다만 진정한 독도의 주인울릉도민들은 1950년이 넘어서까지 '독섬'이라는 한자표기 이전의 고유발음을 사용하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렇듯 대한제국은 1906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 시도를 뒤늦게 전해받고 독도 점거에 대해서도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준 식민지로 접어든 상태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에서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간주하여 조선총독부 치하로 파악하였고, 그 이전부터 대한제국은 1901년 9월 내부대신 이건하의 울릉도 관할 문서, 1902년 4월 내부의 ‘울도군절목’[15] 문서 등을 통해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즉 행정 관할을 구체적으로 실행했다. 울도군절목 내용 중 출입하는 화물은 독도에서 잡은 바다사자를 포함한 일본인의 수출화물에 일종의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었다.[16]

이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독도는 다시 한국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근현대 일본 공문서의 독도 관련 기록

3.1. 역사 속 논쟁거리

3.1.1.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나오는 우산은 독도인가?

본문보다 주석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우산,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세종실록지리지》

일본의 가와카미 겐조는 세종실록이 고려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우산도를 착오로 집어넣었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석으로 논파 끝. 애초에 고려사와 세종실록은 김종서로 편찬 책임자부터가 동일인이다. 울릉도에 파견되어 주민의 쇄출을 집행한 김인우의 직함 또한 1차 쇄출(1416년)에서는 '무릉등처안무사'였다가, 3차 쇄출(1423년)에서는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바뀐다. 따라서 당시 조선이 을 인식했음은 분명하다.

그는 또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면 130m 이상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울릉도는 안개가 잦고 삼림에 덮여 있으므로 오르기 힘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근데 울릉도 성인봉의 높이는 무려 984m고, 나리분지만 해도 250m에 달한다. 게다가 『고려사』에는 1157년에 이미 명주도감창 김유립이 울릉도 정상에서 사방을 답사한 보고가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가와카미 겐조가 논파당한 뒤, 일본의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좌장은 오히려 가와카미 겐조가 '울릉도와 독도가 서로 보인다'는 전제에 사로잡혀 잘못된 주장을 했다고 비판하고, '울진현에서 맑은 날에 울릉도와 죽서도의 두 섬을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죽서도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울릉도에 가려서 울진현에서 안 보인다.

또한 일본이 저 죽도는 울릉도 옆에 붙어 있는 관음도나 죽도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맑은 날에만 보이지만, 관음도나 죽도는 언제나 보인다.

3.1.1.1. 반론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 其島戶凡十五口, 男女幷八十六。 麟雨之往還也, 再逢颶風, 僅得其生 《태종공정대왕실록》33권

강원도 감사 유계문(柳季聞)이 아뢰기를,

무릉도(武陵島)의 우산(牛山)은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도 많사오며, 동·서·남·북으로 각각 50여 리 연해(沿海)의 사면에 석벽(石壁)이 둘러 있고, 또 선척이 정박할 만한 곳도 있사오니, 청컨대, 인민을 모집하여 이를 채우고, 인하여 만호(萬戶)와 수령(守令)을 두게 되면 실로 장구지책이 될 것입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江原道監司柳季聞啓: "武陵島 牛山, 土沃多産, 東西南北各五十餘里, 沿海四面, 石壁周回, 又有可泊船隻之處。 請募民實之, 仍置萬戶守令, 實爲久長之策。" 不允。《세종장헌대왕실록》73권

3.1.2. 은주시청합기 해석

은주시청합기는 1667년 은주(隱州) 지방 번사 사이토 호센이 남긴 책인데, 독도를 직접 기록한 일본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게 보낸 외교 공문에 이 저서를 언급하며 '17세기 부터 일본은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자료로 사용하려 했으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此二島無人之地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見高麗如 雲州望隱州
(이 두 섬에서) 고려[17]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雲州)에서 은주(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
然則 日本之乾地 以 此州 爲限矣
그러한 즉 일본의 땅은 이 주(州, 앞 문단부터 언급된 은주)로 한계 삼는다.[18]

로 오히려 '17세기부터 일본은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19]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현재 일본 외교부 독도 사이트에서 은주시청합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자폭

3.1.3. 안용복 진술의 신빙성은?

안용복의 업적이 영유권 분쟁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여긴 일본 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안용복의 진술과 행적을 부정해왔다.

1. 안용복은 범죄자이므로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 論

안용복은 불법 도항과 관리 사칭의 죄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울릉도 쟁계 이후 울릉도-독도의 영유권 확보에 공이 있음이 인정되어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안용복을 범죄자로 취급한 바로 그 조선 정부에 의하여, 그의 진술은 신빙성 있음이 확인되었으므로, 안용복이 범죄자임을 탓하려면 '안용복은 범죄자이나, 진술은 믿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일관성 있는 논리이다.

2. 안용복은 막부의 서계를 받은 바 없다 論

안용복이 에도 막부로 부터 받았다가 대마도주에게 빼앗긴 '울릉도-독도는 조선령'이라는 서계는 안용복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유감스럽게도 안용복이 서계를 받았다는 이 주장은 어린이용 위인전 정도나 제외하고 한국 측 연구자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조선정부도 믿지 않았다.

안용복을 심문한 유일집(兪集一)은

"근년 동래에 봉사(奉使)했을 때 안용복을 추문(推問)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호키주에서 준 은화(銀貨)와 문서를 쓰시마 사람이 겁탈했다.” 했는데, 이번 그가 호키주에 정문(呈文)한 데에는, “쓰시마 사람이 2천 금(金)으로 나를 속(贖)바치고 본국(本國)에 내보낸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 은은 본국에서 받겠다고 했다.”고 했으니, 전후에 한 말이 매우 어그러집니다. 또 쓰시마는 본디 속은(贖銀)을 와서 거둔 일이 없고, 임술 약조(壬戌約條)도 비밀에 관계되는데, 안용복이 어떻게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 왜인은 모두 죽도(竹島)가 호키주의 식읍(食邑)이라 하므로, 안용복이 한 번 말했다 해서 조선 땅이라 쾌히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용복의 정문 가운데는 울릉도는 본국 땅이라고 여러 번 말했으나, 왜인이 문답한 문서와 안용복을 내보낸다는 문서에는 일체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정들은 매우 의심스러우니, 다시 핵사(覈査)해 실정을 알아 낸 뒤에 죄를 논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3. 안용복은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과 마주친 적 없다 論

안용복의 1696년 왜인을 만났다는 숙종실록의 기록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안용복의 신빙성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부정하였으나 1월 28일에 이미 막부가 도해금지령을 내렸으므로, 그해 5월에 안용복 일행이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을 만났다는 진술은 허위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어업 중이던 일본의 두 가문에게 도해금지명령이 전달된 것은 그해 8월 1일의 일이라는 것을 나이토 세이츄 교수가 발견한 당시 돗토리번 공식일지인 히카에쵸(控帳)에 기록됨으로써 안용복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2005년 겐로쿠 각서에는 자산도=송도가 기록되어 있으면서도 안용복이 송도에 오게 된 이유를 '영주에게 소송하기 위해서'라고만 쓰여있지, 왜인이 또 울릉도에 어업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이케우치 사토시를 비롯한 일본 학자 및 일부 한국 독도연구가들도 안용복의 진술에 회의적인 방응을 보이고 있다. [20] 이는 여전히 한, 일 간 논쟁 중이다.

다만 안용복이 "일본의 마츠시마가 곧 자산도로 조선의 영토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실제 1696년 안용복이 울릉도에 가서 일본인을 만났냐와는 것과 별개로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고, 이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자산도'를 일본인이 말하는 '송도'라고 명확히 기록했는 데다, 일본 문서(겐로쿠 각서)에서도 확인되었으므로 전근대 영유권 주장에서 한국 측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되었다.

겐로쿠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언급이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江原道(カンヲンダウ) 此道竹嶋松嶋有之.
* 강원도 안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있다

安龍福申候ハ竹嶋ヲ竹ノ嶋と申朝鮮国江原道東莱府ノ内ニ欝陵嶋と申島御座候是ヲ竹ノ嶋と申由申候則八道ノ図ニ記之所持候
* 안용복이 말하길, 다케시마를 다케노시마라고도 한다. 조선국 강원도 동래부 안에 울릉도라고 하는 섬이 있으며, 이를 다케노시마라고 하는 까닭에라고 말해, 팔도지도에 기록해 이를 소지하고 있다.
松嶋ハ右同道之内子山と申嶋御座候是ヲ松嶋と申由是も八道之図ニ記申候

* 마츠시마는 상기한 도(道) 중에 자산이라고 하는 섬이며, 이를 마츠시마라고 하는 까닭에 이도 팔도지도에 기록했다고 말했다.

3.1.4. 옛 지도의 독도

중종 때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21]

  • 고지도상의 우산도는 독도인가?

조선시대 제작된 여러 고지도에 나오는 우산도가 현 독도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있다. 이는 위성, 사진 기술, 근대적 측량 기술이 부족하고, 현대인과 인식체계도 사뭇 달랐던 시대에 제작된 고지도를 구글 지도에 익숙해진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읽으려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논란이다. 예를 들어 1530년에 제작된 「팔도총도」의 우산도는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졌기 때문에 독도가 아니라거나, 1711년 박석창이 보고한 「울릉도도형」 울릉도 바로 옆에 그려진 '소위 우산도(所謂 于山島)'는 해장죽전(海長竹田)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죽서도라는 식의 도맷금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이 보유한 수많은 독도 관련 사료를 트집잡아 무용한 것인양 만들려는 일본 측의 전략적 폄하에 기인한 면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 고지도의 해독은 매우 고차원적인 일로 「울릉도도형」 '소위 우산도'의 경우 죽서도보다 남쪽인 저전동(현 저동) 저동항보다 더 남쪽에 그려져 있고, 1937년 그보다도 더 남쪽인 도동에서 발견된 수토관 박석창의 묘방(정동쪽) 각석입표를 고려하면, '소위 우산도'는 현 울릉도 동남쪽의 독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참조

우산,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 (于山武陵[22]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세종실록지리지》

영조 때 작성된 정상기의 동국지도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의 정확성은 현대적 수준측량에서 성인봉의 약 600m 지점부터 육안으로 독도를 식별 가능하다는 연구결과에서 드러나며, 이는 전통적으로 조선의 지리학자 및 관리들이 독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팔도총도」의 경우에도 지도를 실제 제작한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울진 정동쪽 바다에 우산-무릉 이라는 두 개의 섬이 있다'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문헌-문자 정보만을 가지고 지도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섬이 더 육지에 가까이 있는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섬의 위치를 해당 기록 순서인 우산, 무릉 순으로 동쪽 바다에 나란히 임의로 배치시키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15세기 「팔도총도」 이후, 자료의 축적에 따라 18세기 작성된 정상기의「동국지도」는 무릉은 왼쪽, 우산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실제 고지도는 이러한 미비함과 난해함 때문에 국제법정에서도 판결에 직접 인용되는 경우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고지도를 직접 인용하여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그 고지도가 해당 분쟁에 직접 활용되는 경우[23] 등에 한한다. 또한 자국의 영토에서 누락시킨 지도의 증명력보다 타국의 영토로 표시한 지도의 증명력을 더 높이 평가[24]하는 경향이 있으며, 개인 혹은 민간의 지도보다 정부 공인-공식 지도의 영향력을 더 높게 평가한다.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고지도는 예는 태정관지령문에 첨부되었던 기죽도약도이다.

  • 시마네현 고시는 없다?
일본은 독도의 영토편입을 시도했다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문서가 1945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며 원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문서는 시마네현 청에서 지방 촌 사무소로 배부된 사본 중 남아 있는 것을 수거한 것으로 알려졌다.[25] 이에 대해 사본에 시마네현 지사의 날인이 없고, 내부용도로 사용되는 '회람' 도장이 찍혀있는 등의 근거로 애초에 고시문은 완료되지 못한 것이라는 추정과 고시(널리 알림)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했다는 반증이라는 의견이 있다.
  • 하치에몬 사형 이후 설립된 도해금지 팻말
1837년 2월에 에도 바쿠후의 명령으로 다카다번이 니가타현 지역 해안가에 세운 도해금지령 팻말에 있는 '오른쪽 섬(右島)'이 울릉도-독도 중 어느 섬을 지칭한 것인지 논쟁이 있다. 팻말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이번에 하치에몬이 다케시마(竹島)에 도해한 사건을 검토한 결과, 오른쪽의 섬(右島)은 겐로쿠 시대부터 도해정지를 명령한 곳이므로 항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이 오른쪽 섬(右島)을 '죽도(당시 울릉도)', 독도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할 것인지 엇갈리는 것이다. '오른쪽 섬(右島)'이 울릉도를 칭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팻말의 왼쪽으로 문장을 연결하는 구조상 최초 등장한 '죽도(竹島)'에 대한 지칭대명사로 '오른쪽 섬(右島)'이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음으로, 이는 '오른쪽에 지칭 한 섬', 즉 죽도=울릉도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입장이다. 반면 독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向後 右島之儀も 同様相心得 渡海致間敷候(향후 오른쪽 섬도 같음을 명심해 도해하지 않도록)'의 문장을 근거로 여기에서 지칭된 오른쪽 섬은 'も(~도)'가 붙어있고, 바로 앞 문장에 울릉도가 도해금지 된 이력을 말하고 있음으로 '울릉도의 오른쪽 섬', 즉 독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이 팻말은 2010년에 한국인 사업가가 구입하여 한국으로 가져왔다.

* 울릉도사적

* 근대 문서의 논쟁점

19~18세기에는 조선(대한 제국)이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라 문서 면에서 여러 가지 논쟁점이 생긴다.

1. 대한 지지

대한지지의 에는 이 책은 일본인이 저술한 한국 지리관계 도서를 주로 하고 동국여지승람을 참고하여 역술하였다.” 고 되어 있다.

그리고 현채는 '대한지지'의 후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일본의 지리서를 번역했다."며 일본의 문서를 가져왔다고 했다.

2. 대한 신지지

"대한신지지"에는 울릉도만 있고, 독도가 없고, 위치편에 '조선의 동쪼기 경계는 두만강이며, 그것은 130도 58분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당시 독도는 조선령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지연은 분명히 "于山島는 其東南에 在하니라(우산도는 울릉도의 동남쪽에 있다)"고 서술하였고, 대한신지지"는 일본의 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1905)를 참조한 것이다.

해당 문서 참조.

4. 독도 관련 조약

4.1. 울릉도 쟁계: 일명 안용복 사건

1693년부터 1697년까지 조선인 안용복(安龍福)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도항하여 울릉도-독도가 조선령이라 주장한 여파로 조선-일본 간 벌어진 외교전 끝에, 울릉도-독도에 대한 영유권이 조선에 있음을 양국 간 확인한 사건이다.

사건의 자세한 내역과 요지는 희생과 고난으로 독도를 지킨 조선의 백성 안용복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과의 쟁계 내역이 명확함에도 일본측은 이 건을 덮고, 억지쓰고, 축소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유는,

첫째, 국제법상 영유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국가간 조약' 즉, 역사적 근거나 실효지배가 아무리 명확하다 할지라도 양국이 합의하에 영유권을 결정한 것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울릉도 쟁계는 울릉도-독도의 영유권을 조선-일본 간 정식 협상을 통해 확인한 사건으로 그 국제법적 영향력이 매우 심대하기 때문에, 일본 측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내역을 무마하고 잊혀지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

둘째, 조선-일본 간 울릉도-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이미 숙종시대에 있었음을 인정한다면, 일본 측이 주장하는 이른 바 '1952년 평화선 설정=결정적 기일'論 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법정이 울릉도 쟁계를 결정적 기일 사안으로 판단하면, 일본으로서는 쟁계의 결론인 울릉도-독도가 조선령으로 결정되었다는 결론을 다시금 받아들여야 하고, 일제시대 잠시 간의 독도 지배를 합법적 실효지배로 인정받아 독도의 영유권을 획책하려는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해 지는 것.

셋째, 울릉도 쟁계 중 조선-일본 간 오갔던 서계 중엔 아직까지 독도(당시 일본명 송도)가 명시된 것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일본 측은 울릉도 쟁계는 울릉도에 대한 영유권 포기였을 뿐, 독도는 무관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애초 울릉도 쟁계의 원인이 되었던 무라카미-오오타니 가문의 죽도-송도도해면허(송도 도해면허는 실물 미확인) 취득 과정을 보면[26] '竹島之內松島(울릉도 안의 독도)', '竹島近邊松島(울릉도 가까운 변두리의 독도), '竹島近所之小島(울릉도 가까운 곳의 작은 섬)'로 표현하고 있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인식하였고, 도해면허는 외국에 도항하기 위한 용도로 발급하는 것으로 독도 또한 일본 입장에서 외국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안용복 또한 "강원도 안에 죽도와 송도가 있다(江原道(カンヲンダウ) 此道ノ中ニ竹嶋松嶋有之)" 등을 명백히 고지한 사실이 있고, 에도 막부가 쟁계의 사실 확인을 위해 톳토리번에 보낸 질의서에 울릉도와 독도를 둘 다 언급하였으며, 톳토리번은 '죽도, 송도는 물론 그 밖에 부속된 섬은 없다'며 두 섬 모두 일본에 속한 적 없음을 답변하였다.

훗날 1869년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은 '죽도와 송도가 조선부속이 된 시말' 보고를 명했으며, 1877년 태정관지령에서는

울릉도 외 1도(竹島外一嶋) 지적편찬건, 1692년(元禄五年) 조선인 입도 이래(朝鮮人入嶋以来) 조선과의 외교교섭 결과(政府該国ト往復之末), 울릉도 외 1도(竹島外一嶋)는 일본땅이 아님(本邦 關係無)을 유념할 것(心得事)

이라 하여 독도를 '외 1도'로 울릉도 부속섬 취급하고, 그렇게 된 사연의 유래가 안용복 사건임을 재확인하였음으로 울릉도 쟁계에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자연 포함되어 있음이 명확하다 할 수 있다.

넷째, 울릉도 쟁계 이래로 조선-일본 양국이 울릉도-독도 두 섬을 인식하고, 그 영유권에 대해 다룬 것을 인정하면 현재까지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독도의 무주지론(無主地論)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울릉도 쟁계의 결론이자, 그 증거로 하치에몬 사형사건, 태정관지령문, 18~19세기 무수히 제작된 독도=조선령 지도 등이 존재했기 때문에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 시도 근거인 무주지론은 영토 침탈을 위한 고의적인 기만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이를 회피하려면 일본은 울릉도 쟁계 자체를 덮고, 억지쓰고, 축소하고, 망각하게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2. 대일강화조약: 일명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사실 이 조약은 독도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와 SCAPIN 제677호 항목을 참조.

4.3. 독도 밀약

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협정 전에 일본과 독도에 관한 비밀협정을 맺었다고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1. 독도(다케시마)는 앞으로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4.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아간다.

다만 관련 당사자 모두는 밀약의 존재를 부정한다. 밀약이니까 일본 정부에서는 이 밀약의 존재를 부인으로 일축했고 영토문제를 밀약으로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발표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과 같이 과거에 행한 수많은 밀약은(...) 이 밀약은 증거가 남아있지 않고 증인들의 증언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밀약은 한일 양국의 입장에서 상대국이 자국의 영토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허용한 것과 마찬가지라 영토주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후술하는 어업 협정은 근해의 경제권만을 다룬 것이라 레벨이 다르다. 한국 입장에서 월간중앙에서 보도하였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로 차관이 궁했던 것 처럼 당시 정권의 경제성장을 위해 차관 6,600만 불을 일본으로부터 받아오기 위한 밀약이라고 주장되지만 같은 해 1965년 6월경에 미국이 한-일 독도 공동 영유를 설득했다는 기밀 문서가 나온 것으로 보아 녹록치는 않았던 듯. 미국의 기밀 문서에 의하면 한-일 공동 등대를 건설하는 등 공동 영유권을 설득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4.4. 한일어업협정 논란

양국이 주장하는 EEZ가 겹친다.

IMF 직후 급하게 국제사회에서 차관을 빌려야 하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한일 어업 협정을 파기하자 동해에 해양 순시선을 배치하여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어선을 나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국내 어선이 일본 해양순시선에 그대로 들이받혀 침몰하기도 했다.

이 어업협정은 사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부에 걸친 산물이다. 1997년 7월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을 울릉도로 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1997년 10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잠정공동수역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잠정조치수역은 독도 중간수역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대화퇴 어장 등, 독도와 전혀 상관없는 쪽의 협상을 진행했다. 참고기사 참고기사2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되는 점은 독도가 일종의 "중간수역"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와 일본에서 주장하는 독도 기점 EEZ에서 겹치는 부분이 중간수역으로 정해진 것. 이 협정에 대해 '독도는 명확한 한국령인데 무슨 조치이냐', '일부라도 독도 관련 권리를 내준다는 것이 향후 영유권 문제에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이 들끓었고, 어민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27]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1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서 "이 협약은 어업과 관련된 분야만을 정의하기 때문에 이 협약이 영토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실제로 1982년 해양법에 관한 UN 협약의 제58조 제3항을 보면, 배타적 경제수역은 경제 주권으로서의 영해적 수역이면서 공해적 수역이기도 하다.

다만 EEZ를 완전한 공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서해, 동해에서 주변국과 EEZ로 관련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한계선을 그저 공해로 생각한다면, 한 국가의 경제주권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영토는 12해리 영해를 가지지만 모든 영토가 200해리 EEZ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EEZ 등을 표기한 지도를 보면 중간수역 가운데 울릉도 주변 12해리가 동그랗게 비어있다. 영해에서 해당 국가는 모든 활동의 독점권을 보유하며, EEZ에서는 해당 국가는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어업권을 보유한다.

이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여러가지 분쟁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세기부터 지속된 영국아이슬란드대구 전쟁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EEZ를 보면 그만한 섬들이 EEZ의 기점이 되지 못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국제법상으로는 섬을 사람이 살며 경제활동이 가능한 섬(island)과 그렇지 못한 암초(rocks)로 구별하며, 전자는 EEZ가 인정되지만 후자는 EEZ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독도는 EEZ 기점'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독도본부 등에서는 "독도는 사람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으며, 국제법상으로도 훌륭한 유인도이므로 울릉도와 같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도는 국제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28]

현실적으로 볼 때는 만약 중간 수역을 정하지 않고 울릉도와 오키섬 기점으로 EEZ를 절반으로 분리 시 독도는 대한민국 단독의 EEZ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대화퇴 어장 등 수자원이 풍부한 독도 동쪽 지역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명분과 실리 중 한쪽은 잃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IMF를 맞았던 당시 상황상 대외 차관 문제가 걸려 있어 강경 드라이브를 걸기 힘든 면도 없잖아 있았다. 결국 협상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독도가 지닌 국제 지위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어업에만 협정 효력을 한정하기로 했다.

  • 제15조: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어업에 관한 사항외의 국제법상 문제에 관한 각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된다.

또한 협정의 만료일을 3년으로 정하고, 그 이후에는 한쪽이 일방 파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 제16조 2항: 이 협정은 효력이 발생하는 날부터 3년간 효력을 가진다. 그 이후에는 어느 일방체약국도 이 협정을 종료시킬 의사를 타방체약국에 서면으로 통고할 수 있으며, 이 협정은 그러한 통고가 있는 날부터 6월 후에 종료하며, 그와 같이 종료하지 아니하는 한 계속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2017년 현재 어느 한쪽의 의지만 있어도 어업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

5. 독도 문제가 중요한 이유

이 작은 섬이 이렇게나 큰 논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섬이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독도를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게 빼앗긴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제국주의 시절 점령했던 영토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역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실제로 제국주의 마수를 처음으로 뻗치던 첫 땅, 러일전쟁 당시 첫 거점. 바로 독도를 노린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독도를 임시등대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겪어 보지 못한 신세대들의 반일 감정은 많은 경우 이 문제에 기인한다. 한 설문 조사에선 과거사 문제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했을 정도. 그만큼 한국인들이 독도 문제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반면 일본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독도와 제국주의 문제는 상관없는 것으로 본다. 일본 측이 주장하는 바는 한일병합이 이루어지기 전, 그리고 1905년 시마네 현에 편입되기 이전에 독도는 한국이 통치한 적 없는 무주지(無住地)였다고 본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러스크 서한에서 독도의 거취에 대한 논의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어 이런 논란은 가중되었다. 다만 이는 독도가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기보단 그만큼 중요한 섬이 아니기 때문일수도 있으니 확대해석은 주의.

전후 러스크 서한에서 미국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29] 이승만은 이승만 라인으로 알려진 평화선을 설치해 독도를 보호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측의 사상자가 나왔고, 이로 말미암아 일본에게는 '한국의 독도 무력점거'의 근거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일본 측은 한국이 독도와 연관되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을, 과거사를 아무런 관련 없는 쟁점에 이용해서 외교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제국주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고, 독도 영유권과 제국주의 역사는 관련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 일수록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어찌 되었든, 한국 입장에서는 독도는 1905년 이전에도 한국의 근대적인 지배권이 미치고 있던 땅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만 이러한 오해를 풀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기술을 동원해도 농경지가 없는 독도에선 행정구역상 동 수준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면서 식량 자급률 100%를 달성하고, 이에 더해 생활용수까지 확보하는게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하물며 19세기까지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독도에 누가 상주했겠느냐 하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한국은 적절한 반박을 하지는 못하는 상황. 우리 땅이니까 우리 땅이라는 단순한 주먹구구식 논리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제3자 입장에서는 그저 선동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외교의 장은 선동에 대놓고 넘어갈 만큼 녹록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이러다보니 국내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에 지쳐 일본 측 입장으로 선회한 사람이 존재한다.

물론 과거에 한국 땅이었느냐는 현 시점에서 실효지배를 하는 국가에게 영토주권을 인정하는 국제재판소의 판례를 고려하면 별로 중요한 문제라 보긴 어렵다. 어차피 과거에 일본 땅이었든 무주지였든 21세기에는 한국 땅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독도 영토분쟁에서 한국이 완벽하게 사리에 맞는 주장을 하고 있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고, 여기에 분명 한국의 논리 모순이 존재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독도는 과거부터 한국의 영토였다고 세계인들에게 백날백번을 얘기해봐야, '그럼 그렇다는 물증을 내보여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후술할 홍승목 외교관과 프랑스 법학자와의 대담에서 나왔듯이 프랑스 법학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에서까지 "너님들도 실수로 기록된 걸 그대로 인용할 수 있는 거 아님?"이라고 묻는 경우가 꽤 된다. 이렇게 세밀한 질문에 대해서도 "이러한 물증이 있다."라고 제시를 할 수 있어야지 '아몰랑! 독도는 우리 땅이야!'라고 해도 '증거도 내놓지 않으면서 지네 땅이라고 우기는 무식한 놈'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국 사람이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거나 명확한 근거를 요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제대로 된 근거를 통해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훨씬 이득이다. 어려울 것도 없다. 지금 보고 있는 나무위키의 독도 관련 문서에 수록되어 있는 정도만 대략적으로 알아놓아도 일반적인 수준에서 해명하기에는 충분하니 참고하자.

요즘은 이에 발맞추어 논리적인 비판 내용을 담은 독도 대중서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가 쓴 '우리역사 독도'. 김경진이 쓴 소설 <독도왜란>도 마지막권 후반부에서 상당한 쪽수를 소모하여 이 부분을 한일 양국의 네티즌들이 토론하는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결과는 철저한 논리와 역사적 사료로 인해 일본 넷우익의 참패/자폭.

가수 김장훈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일본에 제기했던 호사카 유지 교수가 함께 독도 전문 사이트를 개설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를 지원한다. www.truthoftakeshima.com라는 주소도 2012년 8월 확인 결과 http://www.truthofdokdo.com/ 로 리다이렉트 된다.

  • 독도에 군대가 주둔하지 않는 이유

2011년 8월 14일,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가 울릉도에 해병대 1개 중대를 배치시키고 1달에 1개 소대씩 독도 순환 근무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군부대가 배치 되면 분쟁지역화를 공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지금껏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상 독도 문제는 국내 정치용 떡밥으로 위치가 커져있기도 하고. 다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꾸준히 근거자료는 확보하는 것이 좋다.

5.1.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

일본은 계속해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국제법으로 해결을 보자 주장하고 있다. ICJ에 다국적 재판관이 있고 ICJ의 존재의의 자체가 국가간의 분쟁을 제3자가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므로[30] 분쟁을 ICJ에서 해결하자는 일본측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 분쟁이 맞다면 말이다.

외교라는 것은 철저히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국가의 실익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ICJ에서 승소하게 된다 쳐도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얻는 건 실질적으로 일본의 도발차단[31]과 국민적 자존심 상승뿐이다.

그러다 만약 ICJ에 제소했다가 만에 하나 패소한다면? 후술될 홍승목 외교관의 사례를 봐도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ICJ 제소가 이득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깟 로비 자금이 아까워서 우리의 영토판돈으로 거는 행태인 셈'이다. 독도가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지정학적, 상징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ICJ 제소를 추진하는 정치 세력에게는 대다수의 국민이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기에 한국은 애초에 분쟁이 아니다라는 태도로 ICJ의 강제관할권을 유보해버렸다. 때문에 ICJ는 임의로 독도문제를 재판할 수 없으며 결론적으로 한국의 동의가 없는 이상 ICJ제소는 불가능하다. 독도를 ICJ 제소하기 이전에 센카쿠 열도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ICJ 제소는 그냥 도발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단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지배 하는 이상 지나치게 민감하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심한 분쟁화를 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는 것 자체가 일본의 전략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은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영토분쟁에 관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강제관할을 유보하였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제소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독도 문제는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서 판단될 여지가 없다.

덧붙여 대한민국은 1991년 국제사법재판소 가입시 강제관할권을 유보해 우리가 소에 불응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이걸 유보하는 동안에는 다른 영토 분쟁에 대해서도 대한민국도 독자적으로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제소가 불가능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도 실효지배가 유지되고 현실적으로 독도를 능가하는 영토 분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만약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영토에 관한 문제일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현재 당장 우리나라가 국제법을 활용해서 재판을 해야할 필요성은 최소한 2018년 현재 기준으로는 없다. 추후에 중국과는 간도, 일본과는 대마도가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익이 적거나 거의 없다.

다만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분쟁에 대해 UN은 국재 사법 재판소를 통해 해결할 것을 권고할 수 있는데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일간에 무력충돌을 빚고 국재사법재판소로 가는 가정을 담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한적이 있다.

적어도 현재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는 이상, 독도의 영유권이 갑자기 일본에 넘어가는 일은 없으니 냉철한 사실관계에 근거한 주장, 홍보를 떠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으로 분쟁화를 유도하는 건 삼가는 것이 좋다.

강제 관할권을 인정하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게 강제 관할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이를 한국 정부가 인정하더라도 일본이 강제 관할권을 인정한 날짜 이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강제 관할권의 적용을 면피했기 때문에 독도 문제의 강제 관할권 역시 적용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뭐가 됐든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방적인 제소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 직접 못하고 한국에게 계속 도발을 하는 것. 일본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5.2. 홍승목 전 외교관의 독도영유권 대담

1996년 6월 14일 홍승목 前 외교관은 당시 외무부로 불렸던 부서인 외교부에 근무하던 도중, 프랑스국제법 학자 티에리 모르망(Thierry Mormanne)과 독도 문제에 대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전문 전체에 걸쳐 독도에 대한 사항을 다루고 있다.

단 홍승목 전 외교관은 이것은 개인 의견일 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의견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용을 보면 적절히 역지사지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이후 홍승목과 대화를 나눴던 티에리 모르망은 타카다 마코토하고도 아래의 대담을 했는데... 이 사람이 하도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설득력 없는 설득을 엄청나게 남발하자, "내가 사람이랑 말하는지, 돼지새끼랑 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비아냥거렸다. 다만 이 사실에 대해서는 출저가 필요하다.

5.2.1. 보론

원문

정리하자면, 일본은 강제관할권을 수락했기 때문에 상대국이 ICJ 제소를 하는 경우 반드시 재판에 회부되게끔 되어 있으므로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좋든 싫든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최소한 러시아나 중국이 ICJ제소에 일본보다 적극적이라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러시아가 ICJ제소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물론 현재 쿠릴 열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단락은 반론이라고 제목이 달려 있었으나, 이런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만약 홍승목 외교관이 일본이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취지를 그대로 따라 저런 답변을 했다고 한다면, 일본이 ICJ 강제관할권을 수락하였고, 중국이 ICJ제소를 꺼리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내용만으로는 반론이라고 보기 어렵게 된다. 이 기준이라면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과 무관하게, 중국이 수락하든 말든 중국에게도 ICJ제소를 주장하는 게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잉주가 ICJ 제소를 주장했을 때, 일본이 이를 쉬쉬한 것을 현재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 중이라서 그랬다고 해버린다면, 일본이 표면적으로 주장하는 "우리 영토임은 확실하나,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ICJ에 가자"라는 주장의 일관성은 반드시 깨지게 된다. 이런 모순점은 홍승목 외교관이 마잉주의 발언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음에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 외교관쯤 되는 사람이 일본이 ICJ 강제관할권을 수락했는지 여부를 모를 리가 없지 않는가

참고로, 2012년 현재 강제관할권을 수락한 국가는 유엔 가맹국 193개국 가운데 67개국이며,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 126개국은 수락하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서도 영국만 수락했을 뿐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는 수락하지 않았다.

6. 일본인들이 아는 독도

어느 미친 일본인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것을 증거조작까지 하면서 주장하는 한국어 블로그[32]

주로 일본에 다녀와서 일본인들과 말을 나눈 사람들이 "어, 내가 독도를 물으니까 일본인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던데? 그러니까 괜히 독도 얘기 꺼내지 말고 가만히 있자."라고 인터넷에서 말한 내용이 일반 대중들에게 퍼졌다. 이 말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으나 2018년 현재는 결코 아니다.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일본인들은 대체로 '조용한 일본인'이란 이미지를 가졌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일 뿐 모르는 게 아니다. 즉 일본인 개개인들이 정치/외교 이슈를 말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특유의 사회상 때문이지, 일본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바보들이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침착한 사회상의 겉면만 보고 무작정 일본인들이 독도나 쿠릴 열도 등 정치/외교 이슈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르다.

결코 요즘 일본인들은 독도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리고 독도(다케시마)는 엄연히 일본 고유 영토이며, 대한민국이 이를 불법 점령했다고 믿는다. 특히 2011년부터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들어간다.일본 위키백과에도 다케시마로 표기 되어있고, 한국이 불법 점거했다고 나온다. 안타깝게도 수정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일본어 위키백과

쓰시마 섬에 한국인 자본이 들어와 토지 몇 곳을 사들이자,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자본이 일본의 부동산을 쉽게 사들일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말았다. 일본을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보다가 공연히 뒤통수 맞는 일은 없도록 하자.

  • 일본 정치권의 의견
보수적인 자민당은 물론이고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다는 일본 민주당도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나마 일본 안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일본 공산당조차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지만, 한일 우호를 위해서 한국에 양보하자'라고 할 정도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게 일본인 대부분의 공통된 믿음이다. 그렇다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일부 시민들과 시민 단체들 뿐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본인들 처지에서는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독도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역사, 지리, 국제법에 대한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 당장 한국인들도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역사, 지리, 법 근거를 들어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결국 평범한 일본인들은 독도 문제에 아는 것은 거의 없이 일본 정부가 자기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니 그렇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몇몇 일본인들이 공부를 충분히 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도 일본 안에서 그것을 대놓고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양심이 필요하다. 즉, 양심과 용기와 지식을 모두 가진 사람만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다시 말해서, 일본에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은 마치 한국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그리고 일본 민주당의 도이 류이치 중의원이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한일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가 일본 안에서 빗발치는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끝내 사퇴한 일을 보면 지금의 일본인들이 독도에 관심이 없거나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서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어 위키백과 대한민국 문서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표시되어 있다. #
일본인들이 소위 다케시마 문제에 민감한 까닭은 일본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이 붙은 섬이 여러 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33] 일본어 위키백과에만 6개가 등재되어 있는데, 크기도 다양해서 독도보다 조금 더 큰 무인도가 있는가 하면 섬이 꽤 커서 주민도 여럿 살고 심지어 놀이동산이 있는 섬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다케시마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다케시마초에 있으며 한국인들도 자주 관광을 가서 그런지 시 홈페이지에 한글 서비스도 된다. 때문에 다짜고짜 다케시마는 한국이라고 하면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 같으니 독도라는 섬을 이성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해주자. &quot;다케시마는 일본 땅&quot;이라 말하는 일본 소녀를 칭찬했던 까닭
  •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와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 공산당의 입장은 여느 우익 단체 이상으로 강경하다. 특히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이른바 4개 도서 뿐 아니라 쿠릴 열도의 모든 섬을 반환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물러 터졌다고 질타할 정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은 자기들도 뭔가 찝찝하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실제로 그동안 방송된 일본의 국영 매체인 NHK 라디오 뉴스를 들어 보면, 대만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나 러시아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 문제에 비하면 독도 영유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다뤄 왔었다. 그냥 지나가듯이 한 번 '다케시마'라고 한 마디 언급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NHK 한국어 뉴스가 좀 더 길게 다룬다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역시 짤막한 단신이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전체의 길이는 일본어로 제공하는 뉴스 쪽이 더 길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존재감 없는 비중이라 할 수 있다.그도 그럴 만한 게 제대로 된 명분도 없고 실제로 얻을 가능성도 없으며, 현실적으로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고 일본이 자국의 영토라고 제시할 만한 근거도 제대로 없는 독도보다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 같은 쪽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 막장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조차도 독도는 내버려두고 센카쿠 열도에 집중하자는 말을 할 정도이니...더군다나 뉴스 자체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일본 학생층 사이에서 독도에 대한 인지도가 형편 없이 낮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 산케이 신문에서 이걸 떡밥으로 삼는 것이고, 우익 단체에서 교과서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인해 독도가 일본 내에서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NHK 뉴스에서 다뤄지는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 물론 전체 뉴스 중의 비중은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6.1. 독도 관련 최근 일본의 행보(2008~ )

자세한 자료와 진행 상황은 위키백과의 문서들을 참고하는 편이 낫다.독도 독도 분쟁

2008년 7월 14일 일본 정부공식적으로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교과서에 명기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일외교 전략에 뒤통수를 쳤다.

2009년 12월 24일. "일본 정부는 25일 오전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 지도 요령 해설서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독도 관련 부분을 빼버렸다. 그런데 은근히 말을 돌려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항목이 있다.

2010년 3월 30일, 일본이 초등학교의 모든 사회과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링크 4월 8일엔 그 전까지 독도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히토야마 총리가, 갑자기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해 더 큰 논란이 발생할 듯하다.참고

2011년 3월 26일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다음날인 27일 오후 3시에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독도는 일본 땅 이라는 항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 심의회를 열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기술한 중학교 사회 교과서 12종의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일본의 대재앙으로 간만에 조성되었던 우호적 분위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1년 3월 31일 일본 외상 마쓰모토 다케아키는 독도가 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 영토가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역시 우방국 아니랄까봐 우리나라의 영토를 같이 지켜준단다.

서경덕 교수의 2011년 4월 9일 미투데이에 따르면 일본 학생들이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동원해 '다케시마는 일본 땅' 주장을 더 알리려 한다고 한다.

2011년 4월 일본 극우들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여 한국인들의 재해 성금 모금 열기가 식어버린 소식을 접하고는 &quot;독도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는 한국에 맞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quot;, &quot;한국의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거부하거나,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의 일본 정부 요인 면담을 거부해야 한다&quot;개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2011년 7월 산케이 신문에서 국경선을 그려보게 하는 조사를 한 결과, 일본 고교생의 9.3% 정도 만이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선을 그었다고 한다.

2011년 8월 1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면서 입국을 시도했지만, 정부에서는 당연히 입국을 불허했다. 일본 정부에서는 입국 불허 조치에 대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식의 개소리를 했다. 외국인 정신병자들을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둘순 없지...

2011년 8월 2일 일본은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하고 관할하는 자위대는 해상자위대의 마이즈루 지방대라고 명시하였다.

2011년 8월 2일,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며 역사 왜곡을 일삼던 일본 자유사의 역사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의 연표를 표절했음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참고로 이 교과서는 일본 정부의 검정을 당당히 통과했다.

2011년 니코니코 동화日本の高校生が作った竹島問題検証動画が凄すぎる, <일본 고교생이 만든 다케시마 문제 검증 동영상이 굉장하다>라는 영상이 정치 카테고리 1위를 달성했다. 물론 그 실체는 철저히 혐한적인 시각으로 작성된 넷 우익개드립. 한편 2011년 유투브'독도는 한국 땅'이란 홍보 영상을 올렸다가 엄청난 반대 수를 얻은 영상이 있다고 한다.

2011년 대한항공A380 정식 투입에 앞서 독도에 시범 비행을 했는데, 일본이 비난을 하면서 희대의 외교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건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 문서를 따로 만들 정도로 내용이 긴 편.

2012년 3월 26일 극우 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자 3명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몰래 '독도는 일본 땅' 이라는 높이 90cm 말뚝을 박고 도망쳤다. 이 말뚝은 바로 뽑아 처분했다지만 이것을 세운 극우 단체는 한국 대사관 앞에 '다케시마 비'가 설치됐다면서 사진 등을 인터넷에 유포시켰으며, 이것을 박는 동영상도 자기들이 찍어서 방송사에 보냈다.

2012년 4월 12일 일본 도쿄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집회가 열렸고 그곳에서는 일본 유력 인사들이 참여를 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한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했다. 60년동안 대규모 전면전을 준비한 국가와 전쟁을 하겠다고??

2012년 9월에는 일본에서 '다케시마 쟁탈전'이라는 앱을 만들면서 엉뚱한 '다케시마'를 집어넣었다가 욕 먹고 내렸다. 그 엉뚱한 곳은 가고시마현에 실존하는 다케시마라고 한다.

그리고 2013년 2월 22일, 그동안 시마네현 독립 행사였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시마지리 아이코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을 참석시켜 국가 차원으로 인정한 공식 행사(또는 국경일)로 격상함과 동시에 국가적 영토분쟁으로서 정부와 국민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 하여 한일 간 독도 관련 외교분쟁이 재개되었다.

2013년 5월 21일, '다케시마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 소속의 일본 학자들이 부산에서 회견을 갖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도 방문을 허가 받았으나, 정확히 이틀 후인 23일에 울릉도 시동항 여객선대합실에서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사카모토 유이치라는 자가 갑자기 &quot;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다. 연구가 필요한 분쟁지역&quot;이라고 발언했다가 경찰에 잡혔다.

2013년 7월 일본 정부에서 독도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9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들 중 6할이 넘는 사람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2014년 1월 이젠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본격적으로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가르치겠다고 한다. 교과서 지침으로 명기한다.

2014년 6월에는 사격훈련 해역에 독도 주변의 일본 영해가 포함됐다며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에 훈련 중지를 요구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무시했다.

2014년 8월 24일, 일본 우익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는 건 페이크고 사실 알고 보니 일본영역참고도라는 일본 정부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지도를 일본 우익이 고맙게도 알아서 발견해 놓은 것. 이 지도에서 한국 땅이라고 명백히 표시해 놓은 부분을 가지고 눈에 뭐가 쓰였는지 일본 땅이라고 하는 증거라고 내놓았다가 한국 측 증거로 입수했다. 쉽게 말해 자폭했다.

2015년 1월 6일, 일본 정부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공식 쓰레기 홍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다음에는 일본해 홍보 영상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2016년 2월 22일, 일본 우익 성향의 게임 개발팀이 제작한 '다케시마 탈환'이라는 게임이 출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케시마 탈환! 문서 참조. 현실에서 못하니 게임에서라도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것 같다.. 위로해주자..

2017년 2월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결국 초·중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교육을 의무화하는 지도 요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2020년과 2021년에 적용될 전망이다.

7. 세계인들의 독도 인식

외국인들은 보통 "한국이랑 일본 사이에 무슨 섬 갖고, 둘이 싸운다더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이 문제에 강 건너 불 구경처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일본과 영토 분쟁 문제가 얽혀 있는 중국, 대만, 러시아 정도만이 암암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CIA에서 발간하는 월드 팩트 북에서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로 실려 있으며, 한국에서 1954년부터 점유한 이래 영토 분쟁 중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현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중립적인 시각이지만, 1900년대 이전의 한국의 독도 점유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한국 측에 불리한 의견이기도 하다.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은 모두 정치 및 외교적으로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만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관계를 중요시해야 하는 관계로 어중간한 대응인 것은 사실이며, 현실에서는 세계가 독도를 영유권 분쟁이라고 인식하는 게 당연한 인식이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 우리 땅이 당연하니까 그냥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승소해버리면 논란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일본이 원하는 것이다. 일단, 당연히 한국 영토인 독도가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분쟁 지역으로 인식되어있는데, 국제사법재판소까지 끌고 간다면 한국이 직접 분쟁 지역이고 재판 결과에 따라서 일본 영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인 재판관이 소속되어있어서 한국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도 없다. 쉽게 생각하면, 일본이 미쳐서 갑자기 서울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시 그냥 무시하는 것과 재판까지 끌고 가는 것 중 무엇이 현명한 대처일지 생각해보자.

한국은 보안상 이유로 서버가 국내에 있는 회사에만 지리 정보를 제공할 뿐 해외로는 지도 데이터를 반출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막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 애플 등의 외국 지도 제작 회사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지도 데이터를 따르기 때문에 동해일본해로, 독도다케시마로 표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7월 14일 미국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분쟁 지역으로 표기를 바꾸었다. 이에 따라 표기를 리앙쿠르 암(岩)으로 바꾸려 했다. 사서 참고. 다행히 7월 31일, 놀랍게도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1주일 만에 독도를 한국 영토로 교정했다. 그 전까지 한국과의 외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것에 비해 너무 쉽게 해결되었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그리 나서서 일처리가 된 건 드물다고 한다. 저 건이 진행 중일 때 한 개인이 나서서 움직이는데 정부는 뭐했냐며 크게 비난 받았고, 해외에 자국을 알리는데 정부가 크게 원조를 하지 않는 부분도 비판 받았다. 2ch인조이재팬혐한초딩들은 미국의 이 결정에 열폭.

다만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독도 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확률은 매우 낮다(...). 본인이 치르는 들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판국에. 사실 이런 종류의 국제 분쟁은 세계적으로 많고 아무리 미국의 대통령이라도 다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2008년 8월에 FTA관련으로 한국에 방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상황이라 지시한 것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한국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독도 문제에 중립을 외치던 미국이 실제론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라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4] 그러나 동시에 일본 역시 이 사건에 대해 패배감을 느낀 듯 하다.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이 반발한다고 그렇게 쉽게 한국 요구를 다 들어주냐?'라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직 일본 외무성 관료 마고사키 우케루는 이 같은 미국의 조치에 일본 정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것을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실수라고까지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사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방관하거나 침묵하는 선에서 끝나거나,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한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는 일본을 점령했던 연합군 통합사령부 지침으로 인해 독도가 일본령에서 제외되었고, 통합사령부의 명령은 비가역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확정된 후 일본국을 독립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무효화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역의 결과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앞으로 동북아시아의 역학구조가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다.

2012년 3월 22일 NYT(뉴욕타임즈)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광고를 싣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미 국립지리원은 독도에 대해서 한국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으며 독도를 부르는 다양한 표기(리앙쿠르 락스, 다케시마 등)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명시하였다. #

한편 위키백과도 살펴볼 만한데,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판 등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중립성을 위해 문서 제목을 '리앙쿠르 암초'로 하고 있다. 반면 중국어, 광동어, 고전 중국어판에서는 문서 제목으로 '독도'를 쓰고 있다. 그리고 폴란드어, 체코어, 리투아니아어, 슬로바키아어판에서 역시 문서 제목을 '독도'로 해두고 있다.[35] 특히 폴란드어와 체코어판에서는 우측 정보표 중 영유국 항목에 오로지 한국만 적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다케시마'라는 명칭은 오직 일본어판에서만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세계 주요국 중, 이스라엘이 거의 유일하게 독도, 동해를 단독 표기하는 나라"라는 소리가 있지만, 오류다. 이 얘기의 시초는 언론의 동해, 독도 표기를 조사하면서 한 기자가 각국의 주한대사관 홈페이지를 조사했던 것이다. 홈페이지에는 대사관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를 링크하는 게 보통인데 모든 대사관들이 구글 지도를 링크해 놓았다. 문제는 구글 지도의 경우 영문 구글로 접속하면 동해가 일본해로 되어있고 한글 구글로 접속하면 동해로 표기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사관은 영문 구글 지도로 링크를 걸어 놨지만 이스라엘은 한글 구글로 링크를 걸어 놨고 기자는 이를 근거로 독도 동해 표기 통계를 내었고, 이 통계 자료가 많은 커뮤니티를 떠도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렇게 믿게 되었다.

8. 한국 정부의 대응

8.1. 현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견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 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가겠습니다.

마땅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도 관계 발언 내용을 다룬다.

8.2. 참여정부(2003~2008)

  • 다케시마 발언

2004년 한일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 문제를 묻는 일본인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quot;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고..&quot; 라고 발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케시마라 말하고 통역사는 독도로 통역했다. 일본인 기자가 '다케시마'란 이름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다케시마'로 대답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참조

  • 강경한 대응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독도연설.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실제 연설 장면.

2011년에 뒤늦게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4월 "만약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접근하게 되면 바로 공격하여 당파[36]시키라"해경비밀지령을 내렸던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은 전군을 지휘하는 통수권자이자 국토관리를 지휘하는 통수권자인만큼 대통령이 이러한 비밀지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에 해경도 비밀리에 이를 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및 각종 정부부처는 초긴장 사태였으며, 사고 직후 바로 구조를 위해 해양경비정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 어선과 경비정, 그리고 일본 측 쌍끌이어선과 경비정이 서로 배를 부딪히며 대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노무현재단에서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어록상에서 확인하였던 결과이며 당시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이 이같은 증언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단호하고도 공격적인 입장에 일본 탐사선은 결국 출발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한국령임을 확실히 했다', '독도 수호의 강경한 기조를 보여주었다'며 호의적으로 보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일부는 '대통령이 사적이 아닌 공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서 외교관계에 마찰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다', '잘못하다간 양국 간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도 있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2006년 7월 5일에 한국 정부가 독도 주변 해류 조사를 감행한 것이 한일 양국의 체면 살리기용 물밑외교였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2011년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주한 미국대사관발 전문에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과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 간의 대화가 나와 있다.

한편 2011년 9월 2일 위키리크스에서 미국외교문서가 공개되었는데, 2006년 4월20일 미국부 극비문서에서 밝혀진 미일 외교관 면담 내용에 따르면 주일 미국대사 시퍼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과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일본은 국제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권리행사(독도 영유권 주장)를 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비합리적(irrational)으로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을 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2006년 7월 3일자 전문에서 일본의 독도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해주기를 원한다는 요구가 묵살당한 것도 드러났다. 일본 외무성의 겐이치로 국장이 한국과 일본의 독도 갈등에 대해 미국이 중립적인 것에 실망했다고 하며,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을 설득해 독도 주변 해양조사를 단념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무시당했다.

오히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은 일본 외무성에 자제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글은 미국 대사 개인의 발언이며 아래쪽은 미국 대사관의 공식적인 입장.

2007년에 건조된 대한민국 해군의 신형 강습상륙함의 1호함이 이 섬의 이름을 따서 독도함으로 명명되었다. 이때 일본에서 항의했으나 당연히 한국은 무시했다.

8.3. 이명박 정부(2008~2013)

일본 정부의 다케시마 교과서 명기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뒤인 2008년 7월 15일에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당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후쿠다 총리가 "다케시마(독도)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후술하겠지만 이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고 답변했다는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청와대와 일본 외무성은 이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은 후쿠다 총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그런 일[37]은 벌어져선 안 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독도 문제가 국제영토분쟁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요미우리 신문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은 두 정상이 요미우리 보도 내용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으며, 다케시마 명기 문제는 요미우리가 보도한 9일(회담일)에 결정되지 않았으며, 15일에 와서야 결정됐다고 밝히며 요미우리 보도를 부정했다. 2009년 한국 시민 소송단 나라사랑 시민모임은 이에 요미우리 신문을 상대로 허위 사실 보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있었음을 들며 당시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서면을 2010년 3월 법원에 제출했다. 이 서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후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 요미우리의 기사 원문과 이 기사의 신뢰성에 대한 자세한 해설.

이 소송은 원고인 시민단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로 법적 피해를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에 2010년 4월 7일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또한 재판부는 청와대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바를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송단은 행정 소송을 포함한 추가적인 수단들을 강구해서 계속 보도의 진위 여부를 캐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2010년 10월 6일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국민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소를 기각했다. 또, 재판부는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이 보도가 논란이 되었던 당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앞 글자만 딴 지곤조기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처럼 번졌다.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한 지곤조기 머그컵 초창기에는 反 MB정서나 민감한 독도 문제 때문에 논란거리로 퍼졌지만, 사건이 발생된 후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어감 때문에 널리 퍼진 듯하다. 이 문제는 2012년 2월 19일 경향신문은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미국외교문서를 통해 지곤조기 드립이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그 내용은 2008년 7월16일 강영훈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은 교과서 문제를 이 대통령이 후쿠다 총리에게 'hold back'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또 2008년 한·일 정상회담 직후 외교전문을 인용해 주한 일본대사관의 정치참사관이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두꺼운 피부'를 가져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트러블[38]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 원문

위키리크스 한글 - hold back 부분은 원문과 병기했다.

(C) On July 16, ROK Embassy First Secretary Kang Young-hoon told Embassy Tokyo political officer that Tokyo's July 14 decision to include its claim to the disputed Liancourt Rocks (named Takeshima by Japan and Dokto by South Korea) in an educational manual used by junior high school students was "very, very serious," "enormous," and "explosive." Following efforts made by new ROK President Lee Myung-bak to put aside the contentious historical differences that have plagued ROK-Japan relations, Kang said Seoul officials felt a sense of "betrayal," particularly after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on the textbook issue at their bilateral summit on the margins of the Hokkaido Lake Toya G8 meeting.

(기밀) 7월 16일 주일 한국 대사관 강영훈 1등 서기관은 일본 정부가 7월 14일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상에 분쟁이 있는 리앙쿠르 바위[39]를(일본은 다케시마로 일컫고, 남한은 독도라 부른다) 일본의 영유권으로 포함시킨 결정은 “매우 매우 심각하며,” “엄청나고,” 또한 “폭발력” 있다고 주일 미국 정치 담당관에게 말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한·일 관계를 괴롭히던 역사 인식의 차이를 제쳐놓으려는 이명박의 노력이 이어진 후라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강 서기관은 말하면서, 특히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 G8 정상회의 한켠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교과서 문제를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hold back”해 달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부탁을 한 이후라 더 그렇다.

그러나 '기다려 달라'의 원문 표현인 hold back은 '자제해 달라', '그만둬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과거 논란을 잠재우는 결과를 낳았다. 공개된 문서상으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hold back'해 달라고 발언했음에도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등재하기로 하여 한국 정부 관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 주요 내용. 2008년 이명박 정권은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실용 외교'를 제시하는 한편, 한-미-일의 공조에 더 노력하였다. 그러한 온풍 기조를 말하는 듯. 하지만 4 ~ 5월에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방침을 놓고 이미 독도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도 했다. 경향신문 등의 보도와는 달리, '자제하다'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독도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니 뒤로 미뤄달라"는 발언이었다고 본다면 이전의 '지곤조기' 논란과 같은 수위의 도마에 올릴 수 있겠지만,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면 독도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강경해지는 한일 정부의 입장을 볼 때 이 해석은 무리수에 가깝다.

일본의 독도 망언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 국민 교육, 국민적 감정 등이 강경해지는 것은 말 안 해도 잘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2008년 4 ~ 5월 이미 독도 교과서 문제를 터뜨리기 시작해 논란이 되었고, 6월에는 센카쿠 열도 문제가 터지면서 간접적으로 외교적인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동기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당연히 일본 정부에 하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향이 친일적이다'라는 이유로 '기다려 달라'라는 발언이었다고 추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 제 성향 때문에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를 이따위로 처리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애초에 '지곤조기' 발언이 퍼진 것도 '다른 건 몰라도 독도 문제 만큼은 계속해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발언했다'는 것 때문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즉 한국 정부의 입장과 국민 정서가 독도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고 강경 대응을 원했음을 생각해보면 '자제하라'라고 말했을 동기가 훨씬 강하다.

게다가 원문에는 Lee directly appealed to PM Fukuda to "hold back", 즉 직접적으로 hold back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나와 있다.

만약 hold back이 "기다려 달라"라는 뜻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사정상 안 되겠으니까 터뜨리더라도 나중에 터뜨려 달라"라는 뜻으로 "기다려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는 뜻이 된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뭐가 불리하길래 공식 외교석상에서 이렇게까지 발언했겠는가?

하지만 이미 "지곤조기"는 퍼질대로 퍼졌고, 다음에서는 국민일보가 보도한 "지곤조기" 기사에 댓글이 무려 39만 6천 개가 달리기까지 했다. 자세한 건 문예춘추 참고.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2007년 작고한 백충현 교수, 그리고 최서면 석좌 교수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편 임기 말년인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할 것이며, 날씨가 좋으면 독도에 간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그리고 이날 오후 2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했다.

이러한 행위를 '유용한 외교 카드를 필요하지 않은 때 쓴 포퓰리즘적 사업', ''친일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치적을 남기려 한 무리한 시도', '외교 분쟁화가 우려된다' 등으로 보는 쪽과, '독도가 우리 땅임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의 성향을 근거 없는 추측으로 대일 외교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는 쪽으로 갈렸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국내 보도에 앞서 방문 전날 밤 일본 신문에서 일제히 보도되었는데, 마치 엠바고가 풀린 것처럼 일제히 같은 시각에 게재되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서는 '사전에 일본 측에 통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대외로 통지한 적이 없는 대통령의 동선이 샌 보안사고가 일어난 것이 된다.

8.4. 박근혜정부(2013~ 2017)

2013년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방어훈련을 실시했다. 이례적으로 UDT 병력이 독도에 상륙했다.

2014년 11월에 2008년부터 계획하던 독도 시설물 설치 계획을 #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해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매년 해군, 해병대, 해경이 시행하는 독도방어훈련은 그대로 실시했다.

8.5. 문재인 정부(2017~ )

2017년 5월 17일 오후 1시부터 한국 국립해양조사원 소속 조사선 해양2000함이 독도 주변 수역에서 조사활동을 벌여 일본 측이 항의했다. 일본 해상보안청 8관구 소속 순시선이 한국 측 해양2000함이 독도 인근에서 쇠줄을 바닷속으로 던져서 계속 탐사활동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 측은 일본의 동의가 없는 조사활동은 인정할 수 없다며 조사 중단을 요구하고 일본 외무성은 정부에 항의하였다. 하지만 한국 소속 해양조사선은 무시하고 계속 조사활동을 하였으며 독도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한국 영해[40]로 들어가 5월 18일 오전 1시 30분까지 머무르다가 오전 5시에 다시 동해를 항해했다고 한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의 항의를 당연히 일축했다. 문희상 특사와 면담하던 아베 신조 총리도 이를 간략하게 언급하였는데, 그만큼 일본 측에선 상당히 신경 쓰일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의 동반자였던 노무현이 독도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자. 2006년 일본 측량선이 독도로 접근하려 했을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해경 경비함정들과 해군 함정들을 집결시켜 강경대응을 할 것을 직속명령으로 내렸을 만큼 단호히 대응하였다.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도강치가 그려진 넥타이를 매서 화제인데 넥타이를 통해서도 정치적 메세지를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 특성상 독도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7년 11월 7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공식 만찬에서 독도 새우를 올리기도 하였다. #

2018년 1월 25일 정부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위해 일본 정부가 동경도 내에 영토주권전시관을 25일 설치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의 즉각적인 폐쇄 조치를 엄중히 요구한다라고 외교부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발표하였다. #

2018년 3월 1일 3.1절서대문형무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라고 발언하였다.기념사는 28:39, 독도발언은 39:40에 들을 수 있다.

9. 북한의 대응

북한은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은) 독도에 있는 풀 한 포기도 밟지 말라."는 공식 논평을 내었다. 한국의 헌법으로 명시된 이북5도위원회처럼 북한도 헌법에 한반도 전체를 자기 나라의 영토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점거 중인 독도는 엄연히 자기네 영토이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방어하는 수준은 남한을 훨씬 뛰어넘는다.[41]

그 외, 2004년 /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자체적으로 독도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링크 2014년판의 우표에서 2005년에 남한에서 표준화한 독도의 바위 명칭을 그대로 실은 점에 주목. (탕건바위/삼형제굴바위 등) 무명의 독도 바위 이름 생긴다(기사)

워낙에 강력한 주장을 펼치는 북한인만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공동 한반도기에 독도가 빠진 것에 대해서 왜 뺐냐고 지적했다. 사실 올림픽때 이것말고도 위의 동영상처럼 개사해서 부르거나, 한국 단일팀 아이스하키 경기때 북한 응원단에서는 독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로 응원하기도 했다.

10. 민간 차원의 대응

  • 동해 명칭 병기로 인한 역효과?

동해/일본해 병기를 위한 노력이 2014년 초에 접어들어 버지니아 주를 시작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역으로 독도의 표기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바다 이름을 병기하고 있으니 독도도 병기해야 한다는 논리. 이미 2013년에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보기

  • 삼성그룹에서는 독도 박물관을 지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독도에 대한 정보와 삼국접양지도같은 유물로 반박 자료 및 독도가 대한민국령이라는 증거를 자세히 소장하고 있다.

11. 일본과 충돌할 가능성

군사력 비교,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등은 한국군 vs 자위대 참조

먼저 결론부터 내자면 현재 상황에서 일본은 전쟁을 절대 먼저 일으킬 수 없다. 집단자위권은 일본 영내를 방어하는 개념이고 국외에 미군을 따라 일본인 및 일본 이권을 보호하는 개념으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서해5도는 해당되는 사항이 없고, 북한이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따위가 대상이 될 만하지만 이 북한도 한국 정부가 반대하면 못 간다.

일본이 독도에 침탈하려 들면 어찌하냐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자위대가 독도를 공격해야 한다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있다. "평화헌법상 국외 파병은 금지되어 있지만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이므로 상관없다."는 논리. 이를 반영하여 각종 한일전쟁 소설에서 독도는 항상 전쟁의 스타트를 끊는 곳이다. 그와 더불어 독도 경비 대원들은 항상 전멸하는 걸로 시작한다. 애꿎은 경비 대원들만 죽어 나간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일본 극우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바일 뿐이다. 역사에서 자기 방위를 위해서 다른 나라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를 점거한다는 논리는 타국을 침공할 때 자주 쓰인 변명이다. 크킹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날조된 데 유래'를 생각하면 쉽다. 게다가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역사를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을 식민 통치한 역사가 있는 나라다.

진짜 일본이 이런 일을 벌인다면 전쟁이 안 날 수가 없다. 역사를 보면 나라 사이에 이러한 영토 분쟁이 전쟁으로 발전하는 예는 많았다.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 샤트 알 아랍강 영유권을 놓고 이란이라크가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42], 국경 지역의 카슈미르 땅을 놓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벌인 제1차,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카길전쟁 등.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에서 포클랜드 제도를 강제로 점거했다가 국제 사회에게 지탄 받고 패전한 아르헨티나처럼 일본이 국제 사회에게 지지를 받을 확률은 매우 낮다.

일본이 겨우 바위 덩어리 섬 하나, 극우 세력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군사 활동을 벌여 독도를 점거하려 한다면 이익보다 피해가 몇 백 배 더 많다. 당장에 1999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일어난 카길 전쟁에서도 국제 사회로부터 커다란 비난을 받은 건 인도를 먼저 공격한 파키스탄이었다. 즉 당장 수십 년 동안 벗으려고 애썼고 아무튼 세월이 지나서 좀 흐려지기는 한 침탈 국가 이미지를 다시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군대 대신 자위대를 운용할 정도로 군사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런 대규모 군사 행동을 일으키면 당시 일본과 싸웠던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있을까? 게다가 센카쿠 열도쿠릴 열도 분쟁 등 비슷한 분쟁이 주변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으로서도 동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싸우는 것은 마냥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잠재적인 라이벌인 중국과 호전적인 적성 국가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동맹국끼리 싸우면 미국의 힘을 깎는 일이 될 뿐이며 두 나라 모두 상호 방위 조약을 맺고 있기에 한국와 일본이 서로 영토 문제로 전쟁을 벌이는 걸 저지할 공산이 클 것이다.

물론 전술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일본이 정말 마음먹고 자위대로 대거 기습 공격을 한다면 독도를 수비하는 소수의 독도경비대가 독도를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상륙할 경우 자위대 서부방면대 보통과연대(수륙기동단)가 주축이 될 텐데 1개 소대 안팎에 불과한 독도경비대로는 함포 지원까지 받는 자위대 1~2개 중대의 공세를 당해내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독도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독도경비대는 장렬하게 산화할 가능성이 높다.[43] 실제 전투는 한국 제1함대제7기동전단,잠수함사령부, 제1해병사단과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이 각각의 항공전력의 엄호를 받으며 격돌한 뒤 이 과정에서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한국 해군의 주력은 당연히 7전단과 잠수함사령부이며 해역함대인 1함대는 지원 및 호위 역할, 해병대 병력 엄호 정도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해군은 힘들다고 했으나 세종대왕급 구축함 등이 들어오고 현무 크루즈 미사일이 공개된 지금은 전력이 제법 대등해졌다. 현무 미사일은 일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넣고 있어 해자대 함정들은 당연히 사정권내에 있다. 즉 함정 손실 없이 초창기에 내륙 기지에서 발사 가능한 유도탄을 죄다 동해로 쏟아부어도 해자대 함정은 줄줄이 격침 당하고 그 뒤 제7기동전단잠수함사령부가 마무리 쳐 주고 해병수색대는 해군 특수전전단과 함께 수륙기동단의 상륙을 저지하면 된다. 어차피 수륙기동단은 도서 방어 부대이지 공격 부대가 아니라 허약하기 때문에 제1해병사단 신속대응부대가 제압 가능하다. 그리고 이쯤 일이 벌어지면 포항에서 해병대 포병 전력이 긴급 전개된다.

여담으로 독도경비대는 해경이 아니라 육상 경찰이다. 의무경찰독도경비대로 따로 선발한다. 그 이유는 1982년 이전까지 전투 경찰이 해안선에 들어갔는데 울릉도, 독도, 제주도는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며 딴 섬은 1982년 해군에 이관되었다. 함포 사격을 지원하는 해자대 함정은 포항에서 신속 전개되는 해병대 포병전력으로 격파 가능하다. 최근 해병대도 북한과의 NLL 분쟁과 함께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의식, 이를 억제하고자 신속대응부대를 동,서해안에 배치하고 MLRS를 들여오는 등 전력을 늘리고 있다. 그간 주장으로만 그쳤던 울릉도 해병대 전투부대 배치가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전략도서방위사령부로의 격상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제9해병여단제주도에 들어간 것과 비슷하게 해병대 전투부대가 정식으로 울릉도에 들어가고 포병기갑 전력이 전개되면 일본 입장에선 말 그대로 턱 밑의 비수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조선인민군 해군잠수함 이용 침투는 더더욱이 불가능해진다. 해군도 이 점을 인식하고 해병 전투 부대를 집어넣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군 vs 자위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민 감정상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일본이 얻을 만한 건수가 그다지 없다. 결론적으로 전쟁 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44]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러한 독도 및 서북도서 기습강점 등 연안에서의 돌발사태에 대비, 동해와 서해에 신속대응부대를 배치했다. 해병대 항공단까지 창설되면 연안 신속대응부대의 대응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김경진 공저의 독도왜란이라는 소설이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해당 문서 참고.아무리 그래도 이걸 참고하기에는..

현재로서는 독도로 쳐들어오는 행위는 한국과 전쟁을 하자는 행위와 다르지 않으며, 이런 행위는 동맹국 입장으로서 상당한 결례이다. 마치 대마도가 과거 조선이 관리를 한 적이 있다는 것 때문에 대마도를 쳐들어가 강제로 점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일은 당연히 북한이 전쟁 일으킬 확률보다 낮으며 일어난다고 해도 무력으로 뺏은 것이기 때문에 UN기구 등의 제재가 있을 것이며 뺏은 독도는 일본 정부 소유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가 된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게 되고 당연히 무력으로 뺏은 일본에게 상당히 불이익이 올 수 밖에 없다. 즉 이 말은 독도를 뺏으려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없애고 뺏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일제강점기를 재림시켜야 독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한국이 멀쩡히 있는데 이를 그냥 지켜볼 리가 없다. 미국도 이런 경우 일본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 결국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외에는 독도를 일본 정부의 땅으로 만들 수 없다.

12.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독도

  • 친구모아 아파트의 배경이 되는 섬은 독도라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도랑 서도로 나뉘어 있고 일본 기준으로 왼쪽이 더 크다.
  • 2012(영화)에서 동해상에서 항해 중인 여객선이 쓰나미에 휩쓸리는데, 삭제된 장면에서 보면 독도 위에 걸려서 승객들이 생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때 마찰을 우려하여 독도나 일본 측이 주장하는 다케시마라고도 나오지 않으며 그냥 '암초'라고 나온다.
  • 김진명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독도경비대원들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다가 산화한다.
  • 김경진독도왜란에선 한일전쟁 소설에서 독도경비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고 오히려 일본 특수부대원들을 처발랐다. 본문에서 실제로 사망 플래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 두드리자의 장편 소설 독도를 지켜라에서 한일전의 시작으로 나온다근데 그 뒤는 좀비 아포칼립스인 게 함정
  • 유성일의 장편 소설 독도대전에서 지진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린다며 일본이 독도를 침략한다. 이후 사이버 대전으로 번지고 한국이 중국, 대만, 러시아까지 끌어들인다.
  • 플래시 게임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플레이어가 이순신을 조종해 독도를 노리는 친일파와 일본인들을 무찌르는 스토리이다. 이때 적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지만원, 한승조개노답 삼형제?외 다수.
  • 부활 이소룡 플래시 애니에서 이소룡이 독도를 차지한 니기미 사바사키 일당을 퇴치하는 것[45]
    • 니기미 사바사키가 고용된 자들이 영화에 나온 자들로 여전히 이소룡에게 퇴치 당한다. 미션을 보낸 닥터 강은 니기미 사바사키와 한패였다. 1화에서 9화까지만 10편은 나온다고 했으나 나오지 못했다
  •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에는 한국 땅으로 되어있는 독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유저가 독도에 폭탄을 떨구는 바람에 일본 유저 상당수가 밴 먹은 사건이 있었다.
  • 넷 우익들에 의하면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면 반일이라고 한다. 니코동 같은 곳에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연예인들이 독도 관련 얘기를 하는 동영상을 올려서 반일이라고 까는 경우다. 실제로 보면 거의 종북몰이급이다.

미국이 자국 군인을 통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46][47]

13. 유사 사례

독도와 비슷한 문제가 있는 곳으로 녹둔도가 있다.

독도 운운하는 거에 빡친 일부 한국인들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며 역드립을 치기도 한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순수하게 맞불 용도, 비유법 정도라 생각하자. 이쪽도 간도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전혀 근거나 이득은 없고 오히려 한국의 영토 침략성을 선전하는 구실만 줄 따름이다. 자세한 것은 대마도, 쓰시마 섬 문서 참고.

해외의 예를 들어보자면:

  • 러시아과 일본 간의 쿠릴 열도 분쟁: 쿠릴 열도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서 소련, 즉 러시아에 반환된 땅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언급이 안 된 섬들이라는 점에서 독도와 비슷하다. 사실은 일본 남쪽의 두 섬들도 쿠릴열도의 일부라 인정했는데 나중에 이걸 뒤집어 홋카이도의 일부라 주장한 경우.
1956년 일소공동선언에서 소련은 일본과 관계개선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언급이 안 된 남쿠릴의 섬 두 개(독도와 비슷한 경우)의 반환을 일본에게 제의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자 빡쳐서 반환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일본은 이에 남쪽의 두 섬들만이 아니라 4개 섬을 다 달라고 배짱을 부렸다. 당연히 소련은 거절했고, 지금도 일본이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서방에서는 공산진영과 싸울 걸 염두에 두고, 일본을 끌여들이기 위해서 일본에게 비교적 후하게 조약을 맺었다. 중국은 둘로 티격태격하고 있어서 어느쪽도 중국의 대표로 참가를 할 수 없었으며, 소련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조약에 싸인하길 거부했다. 물론 한국은 초청도 못 받고, 참가도 못 하고, 싸인도 못 하고, 그냥 강대국들끼리 주물럭거리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정작 당사자들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그게 오늘날 영토분쟁의 시작이다.
  • 스페인과 영국의 지브롤터 분쟁: 원래는 스페인이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으로써 중세시대에는 무슬림들이 여기를 거점으로 아베리아 반도를 침공했었다. 스페인이 간절히 원했던 곳이지만 점령이 미뤄지고 있는 와중에 영국이 1704년, 스페인 왕위전쟁 도중에 낼름해버렸다.
그 이후로 말이 많았지만, 일단 주민들이 영국으로 남는 쪽을 선택해서 일단락됐다. 그래도 스페인이 끈질기게 영토주장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스페인이 주장하는 우리 땅 안에 있는 땅이니 돌려달라는 것에 대하여 영국은 세우타멜리야모로코 땅 안에 있는데도 지들이 차지하는 건 당연하고 남이 지들 땅 차지하는 건 안 되느냐며 비웃는다.
결국 몇 차례 분쟁 끝에 지브롤터를 대상으로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이던 1960년대 후반 국경봉쇄를 발동시킨 적이 있었다. 일본이 한다는 그 해상봉쇄와 비슷한 성격의 이 봉쇄는 스페인이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 풀었고, 완전히 푼 건 80년대다. 하지만 이러한 스페인의 국경봉쇄는 아무리 해가 저물었다고 해도 핵무장국에 영연방을 필두로 무시 못할 강대국인 영국은 그다지 개의치도 않았고, 스페인으로서도 영국에게 크게 대들지 못했기에 사실상 효과도 별로 없었다.
  • 카타르바레인의 하와르 제도 분쟁: 지리적으로 보면 바로 카타르 앞마당인 하와르 제도를 바레인이 선수를 쳐서 점유해버렸다. 경제적으로도 국방력으로도 더 앞선 카타르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바레인은 일절 대응하지 않고 아예 하와르 제도에 다국적 관광시설을 만들어 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버려서 카타르는 함부로 무력을 행할 수도 없게 되었다. 카타르 알 자지라만 봐도 하와르 제도는 카타르 땅인데 바레인이 불법점거한다면서 비난할 정도이다.
  • 스페인과 모로코의 해상영토 분쟁: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나, 분쟁 지역 무인도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 모로코 어선이 사고를 당하자 양측이 구조선을 보내면서 서로가 자신들의 땅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우리가 구해주는 게 당연하다며 서로 욕하고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경제적으로 앞서는 스페인이 유리하지만 모로코도 필사적이어서 국제 사법재판소나 여러 기관도 유보한 채로 계속 갈등 중이다.
  • 그리스와 터키의 이미아/카르다크 섬 분쟁: 이미아(그리스어 Ίμια) 카르다크(터키어 Kardak) 섬은 에게 해에 있는 2개 암초로 이루어진 무인도이다. 1923년 로잔 조약에 의해 이미아 섬이 속한 도데카니사 제도이탈리아 왕국에 할양되었고, 이탈리아와 터키의 1932년 협약에 따르면 이 섬은 도데카니사 제도에 속한다. 1947년 그리스 왕국이 도데카니사 제도를 환수하면서 지금도 이 협정이 유효하다는 관점이 국제사회의 다수설이나, 터키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1996년에 터키가 일방적으로 이 섬에 상륙을 시도해 전쟁 직전까지 갔지만 그리스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14. 관련 문서

15. 트리비아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사이트에서 프린터 출력 테스트를 하면 출력되는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가 바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의 것이다. 해당 토지는 1968년 3월 13일 소유자 "국(國)"(= 대한민국 정부 직할)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가 되어 있고, 현재 해양수산부가 관리청으로 되어 있다.

KBS my K에서 독도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다.

동도의 북쪽 사면에 '한반도 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진 한반도 모양의 절벽이 있다.

일제시대의 일본의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은 울릉도에서 울릉 특산종인 섬초롱꽃을 발견해 명명했는데 그 학명이 Campanula takesimana로 매우 악의적인 학명을 붙였다.


  1. [1]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실효 지배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고유 영토'이며,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의 불법 점거'이나, 국제법에서는 대한민국에 의한 실효 지배 상태로 본다.
  2. [2] 한국은 인정하지 않는 행정명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리앙쿠르 암초라고 부른다.
  3. [3] 최종덕 씨가 1965년 3월부터 처음으로 거주한 이래 현재 김성도 부부 및 독도경비대원 35명, 등대 관리원 2명, 울릉군청 독도관리 사무소 직원 2명 등이 거주한다(2017년 9월 기준).
  4. [4]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한반도 본토인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에서 216.8km. 일본에서 독도까지는 오키 섬까지 157km, 일본 본토까지 최단거리 약 212km로, 주변의 큰 섬 기준으로는 한국(울릉도)에 가깝고 한일 양국 본토 기준으로는 일본에 가깝다.
  5. [5] 앞의 각주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가까운 한반도 본토인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과 216.8km 떨어져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 실효통치 지역(남한) 한정으로, 백령도경기도 김포시 월곶이 약 158km로 그 다음이다. 그 외에 마라도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은 약 132km, 가거도전라남도 해남군 울돌목은 약 122km이다.
  6. [6] 물론 대한민국은 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 여긴 적이 없다. 어떻게 보나 독도는 명백한 한국령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7. [7]동해에 있는 섬에 전라도 사투리가 붙었는가는,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공도령(空島令)을 해제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독도로 건너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8. [8] 참고로 마라도와 독도가 약 686km, 백령도와 독도가 약 647km, 마라도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가 약 637km이다.
  9. [9] 한반도 최서단은 압록강 하구의 비단섬, 한반도 최동단은 함경북도 경흥군, 한반도 최북단은 함경북도 온성군, 한반도 최남단은 전라남도 해남군이다. 한편 남한 최서단은 황해도 해상의 백령도, 남한 최북단은 강원도 고성군, 남한 최남단은 마라도다.
  10. [10] 죽도라고 한다 대나무 섬을 의미
  11. [11] 그런데, 문제는 독도를 일제령으로 편입해놓고도 육군과 해군에서 울릉도, 독도를 부르는 이름이 다 달랐다는 것이다. 자세한 건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문서를 참고할 것.
  12. [12] 그런데 웃기는 건 당시 일본군 육군과 해군이 독도와 울릉도를 부르는 명칭이 각각 달랐다는 거다. 자세한 건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문서를 보자.
  13. [13] 위키백과 기준으로 표기는 리앙쿠르 암초 >>> 독도 정도로 차이난다.
  14. [14] "漢文으로 작성되어야 하는 敎書의 전통을 이은 勅令에 사용되는 어휘는 언제나 漢字語이어야 한다. 따라서 차자 표기인 ‘獨島’가 아닌 ‘石島’를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반면, "吏讀로 작성되는 牒呈의 傳統을 이은 보고서 에 사용되는 어휘는 한자차용표기법에 따른 것이어야 하므로" "한자어(훈차 표기) ‘石島’가아닌 이두(음차 표기) ‘獨島’를 사용"한다. '獨島'․'石島'의 地名 表記에 관한 硏究
  15. [15] 절목이란 시행세칙을 의미한다.
  16. [16] "울릉도 수출품목에는 독도에서 잡은 바다사자가 포함되어 있고, 일본인들은 이 수출품에도 수출세를 납부했다. 일본인들이 수출세를 납부했다는 기록은 일본 외무성 기록에 보이며, 울릉도의 바다사자 수출통계 역시외무성 기록에 보인다. 울릉도의 일본인들이 독도 바다사자에 대한 세금을 울도군에 납부했다는 것은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독도가 한국령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울릉도의 산물에 대해서만 세금을 냈을 것이다. 당시 수출세는 물품에 따라 세금을 내는 이른바 ‘종가세’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이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竹島問題100問100答』에 대한비판적 검토,그리고 우리의 대응
  17. [17] 조선
  18. [18] 풀어쓰면, 두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이곳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운주에서 은기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 한계는 이 주로 한다.
  19. [19] 은주시청합기는 일본의 서북한계를 오키섬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 [20] 안용복이 실제로 일본 어부를 만났다는 주장을 회의적으로 보는 일본 측 근거는 오오야, 무라카미 가문도 그전 울릉도 쟁계로 조업이 막혀 손해만 보다, 출어를 위한 자금도 구하지 못해 출어할 상황도 아닌 데다, 일본 어부를 정말 만났다면 그런 중요한 내용이 왜 겐로쿠 각서에는 쓰여지지 않았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 도일 당시 일본 측은 '죽도일건(울릉도쟁계)는 끝났는데 왜 또 왔냐?'라는 어이없는 반응이었고, 이런 뜬금없는 도일에 명분을 가지려면 당연히 '여전히 남의 땅에 왜인들이 조업하고 있다'라고 해야 하는데, 도일의 이유가 대마번에게 당한 냉대를 호소, 소송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다만, 재일 독도연구가 박병섭 선생은 안용복이 1695년에 만난 것을 1696년에 만난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측 기록에 따르면 1695년 또 일본이 울릉도에 고기를 잡으러 오는데 이미 울릉도에 조선인들이 철포와 칼로 무장하고(!) 그들이 오기를 벼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해 울릉도 조업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는데, 그 무장 조선인들이 안용복 일행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실제로 울릉도 쟁계는 이미 안용복의 1차 도일(실제로는 일본에 납치)로 조선 영토임이 일본의 인정으로 끝났는데, 새삼스레 왜 또 안용복이 2차 도일을 감행했느냐의 이유가 조금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일본 학자들은 단순히 안용복이 1차 도일 때 일본에게 받은 냉대에 대해 칭얼대기 위함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어차피 울릉도는 공도정책으로 조선인들도 도항할 수 없으므로 안용복은 또 울릉도에 불법(....) 조업을 하긴 했으나 1차 도일 때 당한 괴로운 기억과 울분으로 1695년 때는 자기들도 만일을 위해 무장하고 있던 판에 또 일본 어민들이 오자 참다못해 1차도일 때의 냉대에 대한 항의도 겸해서 철저한 준비(관직 사칭, 지도 준비, 소장 작성 등. 실제로 안용복의 독도(자산도)에 대한 지식은 2차 도일 때 훨씬 더 정교하게 된다.) 끝에 1년 후 2차 도일을 감행한 것이라는 가정이다. 다만 2차 도일 자체도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중죄인데 1차 도일 때 사면 받고도 얼마 안 돼 또 울릉도로 갔다고 진술해 봤자 자신에게만 더 불리해지므로 1696년이라고 진술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어차피 2차 도일의 명분을 위해서는 울릉도에 또 갔다는 것을 시인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가정일 뿐이며, 1695년의 조선인들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21. [21] 현존하는 인쇄본 단독 지도 중에 독도(우산도)가 그려진 최초 지도이다.
  22. [22] 鬱陵의 오기인듯 하다.
  23. [23] 예를 들어 안용복이 항의를 위해 일본에 가져간 조선팔도지도,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의 프레비 히어 사원 판결에서 언급된 지도 등
  24. [24] '페드라 브랑카 사건(2008)'판결과 독도 영유권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Print-News?serial=44832
  25. [2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4666 "'독도 편입' 시마네현 고시 제정은 거짓말"
  26. [26] 독도,130문 130답 제5장 17세기 말 일본 도쿠가와 막부와 울릉도·독도 영유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106100069
  27. [27] 참고로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은 사람은 후일 박근혜정부 외교부 장관인 윤병세 즉 이 인간이 독도를 암초로 만든 것이다.
  28. [28] 독도가 국제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은 사람이 살고는 있으나, 독도 안에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섬 안에만 있는 자원으로 물 마시고 농사지으며 살 수 없다는 이야기. 섬의 정의에는 거주민뿐 아니라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 때문에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9. [29]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본이 주장하는 게 그렇다는 것. 러스크 서한은 애초에 조약도 뭣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빠졌으므로 따라서 한국에 반환하지 않고 일본령이 된다는 건 무리 그 자체다.
  30. [30] 판결에 강제성은 없으나 무시하면 국제적 비판은 무시 못한다.
  31. [31] 사실, 이마저도 정확히 확신할 수 없다. 위안부 협상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32. [32] 이 블로거는 731 부대 관련해서도 어그로를 끌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한국인과 키배를 벌이고 있다.
  33. [33] 문제는 대한민국에도 일본의 다케시마와 한자 이름이 같은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여러 개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섬으로 울릉도에 있는 죽도가 있다.
  34. [34] 사실 일본의 독도 영유 논리를 자세히 보면 미국의 권위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러스크 서한.
  35. [35] 폴란드어판은 Dokdo, 체코어판은 Tokdo, 슬로바키아어판은 Tokto라고 적고 있다.
  36. [36] 배로 밀어 깨뜨리는 것
  37. [37]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령으로 명기
  38. [38] 한·일 사이 마찰
  39. [39] 위키리크스 번역에는 '리앙크루 암도'라고 되어 있는데, 흔히 쓰는 독음은 '리앙쿠르'이며, '암도(島)'라는 표현과 달리 'Rocks'는 섬이 아님을 더 강조하는 표현이므로 일부 수정하였다.
  40. [40] 일본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물론 개소리다.
  41. [41] 이전 문서에는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방어하는 개념은 같지만 딱히 대한민국 편을 드는거 같지 않다고 서술되어있었다. 하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를 보면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42. [42] 단 이쪽은 영토 분쟁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당시 중동 정세상 복잡한 원인들이 얽혀서 터진 측면도 있었다. 자세한 건 이란-이라크 전쟁 문서 참고.
  43. [43] 그런데 독도 경비 대원들은 경찰이다. 즉, 전시에도 민간인이라는 뜻인데 비전투원인 경찰들을 함포 사격에 수륙기동단까지 동원하여 학살할 경우 그 뒷감당을 일본이 할 수 있을지는 각자 알아서 생각하도록 하자. 그리고 독도에 1개 중대 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독도 나루에서 독도경비대 막사까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좁고 경사가 심한 계단이 전부이며 이 계단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히 투입하기도 어렵다. 정말로 일본 측 병력이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경비대가 교전할 경우, 오히려 일본 측 병력이 축차 투입되었다가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다.
  44. [44] 한국의 피해가 클 거라는 것은 2010년 이전 이야기로 현재는 지키는 쪽인 한국이 유리하다. 한국은 내륙에 육군미사일사령부를 창설, 발사 가능한 유도탄을 죄다 초기에 동해로 쏟아 부어 해상자위대 함정들에게 용왕 면담을 시켜줄 수 있다. 배수톤수 큰 함정들부터 집중 공략해 가라 앉히면 해자대 전력도 절반 이상이 손실되고 남는 건 연안전력 정도로 이 정도는 제7기동전단이 나가면 상대 가능하다. 반면 육자대나 해자대는 순항, 혹은 탄도미사일 전력의 부재로 내륙 깊숙한 비밀 장소의 한국군 미사일 기지들을 때릴 수 없다. 공자대는 대한민국 공군과 같은 지상 타격력은 전혀 없는 데다가 한국의 조밀한 방공망과 압도적인 지원력의 차이로 대한민국 공군에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현대적인 BVR 전투 능력을 가진 전투기도 대한민국 공군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무 미사일의 사거리는 일본 열도 및 북한 전역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도 집어넣어서 중러 양국에게도 위협적이다. 물론 당연히 해자대가 한국의 임해 산업 시설을 때릴 힘도 없고, 그런 짓을 할 경우 100% 전쟁 도발이 되어 국제 제재에 돌입하며 미국도 이렇게 된 이상은 일본을 버릴 것이다. 상륙하는 수륙기동단은 제1해병사단이 막으면 되고, 어차피 육상 전력의 엄청난 차이로 육자대가 한국 상륙하는 것은 어렵다.
  45. [45] 그러나 닥터 강이 독도에 유능한 요원들을 보냈으나 실종된다 그들 중에는 허준도 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46. [46] 제11회 주한미군 웅변대회 1위 수상자인 마이클 패레스 상병으로, 북한의 은하 2호 발사실패 당시 페이스북에 찰진 한국어를 보여 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47. [47] 참고로 이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미군이 철수할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 SNS를 통해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절대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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