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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은해사의 말사에 대한 내용은 불굴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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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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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석굴암과 불국사

영어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프랑스어

Grotte de Seokguram et temple Bulguksa

국가·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5년

등재기준

(i)[1], (iv)[2]

지정번호

736

[image]

불국사 창건 당시의 상상도

佛國寺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유물
5. 기타
6. 교통편
7. 입장료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 연간을 기원으로 하는 사찰.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불국정토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통일신라의 꿈을 드러내는 건축물로, 이름인 불국사는 불국정토에서 유래하였다. 황룡사가 거대한 규모로 유명한 이라면, 불국사는 치밀한 구성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절이다.[3] 대표적인 한국 건축물 중 하나. 경주시소풍 내지 수학여행을 간다면 꼭 들르는 곳.[4] 입장료는 2020년 성인 기준 6천 원.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2. 역사

정확한 건축 연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불국사고금창기'[5]라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연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기를 소원하여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 이후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크게 개창했는데, 이때 아미타여래상과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봉안했다.

문무왕 10년(670)에는 무설전을 건설해 화엄경을 강의했고, 경덕왕 10년(751)에 그 유명한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다. 출판사 지학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연표에도 751년이 불국사와 석굴암이 중창되기 시작한 해라고 서술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앞부분이 빠지고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불사(석굴암)을 만들었고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것. 이 일화가 유명해서 김대성이 지은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 더 정확할 거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불국사 자체가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기에 김대성 혼자서 그런 엄청난 건설을 했다기보다는[6] 법흥왕 때부터 신라 국가차원에서 개증축을 해오다가 훗날의 모습의 바탕이 되는 결정적인 중수를 김대성이 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아무래도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 더 세세하기도 하고, 삼국유사가 설화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7] 참고로 삼국사기엔 김대성이라는 이름은 없고 경덕왕 시절 중시를 지낸 김대정(金大正)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기백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들은 정황상 동일인물로 추정한다. (김용춘 등 다른 인물을 봐도 ㅊ~ㅈ~ㅅ의 한자 표기가 달라지는 일이 흔한 편.)

어쨌든 중수와 관련한 유명한 설화로 삼국유사에도 실린 김대성 설화가 유명하다. 김대성이 재상급인 중시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고위귀족이 심혈을 기울여 중수하면서 규모가 상당히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김대성이 중수한 연대는 751년에서 765년 사이로 추정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중수하였고 여러 부분에서 통일신라의 정형화된 양식이 보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는다. 이때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등이 세워졌으며 2탑 1금당의 가람(절의 배치된 모양) 형식이 완성되었다.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방화로 한 번 크게 불타 사라졌다. 지금도 대웅전의 장대석 등을 살펴보면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다. 불국사 가이드 투어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방화는 처음부터 절을 파괴할 목적으로 방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경주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 병사들이 굉장한 절이 있다고 구경왔다가 의병이나 승병을 무장시키기 위해 절에 보관중이던 대량의 무기를 발견하고 본대에 연락해서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맹독을 감추고 있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토 기요마사는 불교 신자였다.[8] 조선 영조 41년(1765)에 불국사 대웅전이 다시 세워지고, 1779년 경주 지방 유림이 지원하여 중창하는 등(기사링크) 재건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조선 말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폐허가 되었으며, 당시 다 쓰러져가는 불국사를 조선 말기에 촬영한 사진이 남아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1918년부터 1925년까지 대웅전과 다보탑을 보수하였다. 그러나 다보탑의 석물과 사리함 등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그동안에도 여러 건물이 소실되었다. 원래 일제는 불국사 유적을 축소하여 건성으로 복원할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계획을 수정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복원계획 수정 이는 불국사의 여러 유적들을 보수공사를 핑계로 약탈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舍利塔: 보물 61호)은 한때 일본인이 빼돌렸으나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가 임시로 복원한 상태로 있다가[9] 결국 광복 후 1970년대에 와서야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복원작업이 이루어졌으며, 그 당시 돈으로 약 8억 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며, 석축과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이나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물이며, 구품연지가 재건 당시엔 동선을 막는단 이유로 메워버렸고, 복원된 목조 건물도 고려 중기에서 조선시대의 양식을 뒤섞어서 재현한 것이기에 창건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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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말기에 폐사지가 된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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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임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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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복원된 현대의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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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복원된 가람의 전체 모습.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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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다 미요지의 평면 분석

불국사의 평면 구성에 수학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요네다 미요시였다. 요네다의 안은 현대에 와서는 실측이 부족하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불국사가 석굴암과 같이 수학적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는 데에 주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이는 서구 건축물들이 즐겨 사용한 방법이므로, 동양 건축물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서구 중심적인 사고라는 비난도 존재한다.

아무튼 불국사는 평면 배치 뿐만이 아니라 형태적,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탑들의 관계인데, 석가탑은 완벽한 비례[11]와 기하학적인 직선미를 선보이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한 다보탑은 층 구조를 버린 자유롭고도 독특한 형식이어서 석가탑과 짝을 지으면 대칭되면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대비되는 구성은 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당에서 바라본다면 화려한 다보탑 뒤의 단순한 경루와 단아한 석가탑 뒤의 화려한 종루(수미범종각)를 통해 반복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경루와 화려한 종루는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정확한 양식을 알기 어려움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불국사와 조선시대의 불국사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불국사에는 좌경루와 우경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복원된 형태는 다보탑 쪽이 좌경루, 석가탑 쪽에 범영루가 있고 이것이 우경루가 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종루(수미범종각)와 우경루가 사실 다른 건물이며, 서쪽의 극락전 쪽에 우경루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범영루는 1612년, 1688년에 중건하고, 1708년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73년의 복원 공사 때 다시 중건되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또한 선의 미려함을 느낄 수 있으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청운교와 백운교 바로 밑에는 구품연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1970년대의 당시 복원공사 책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관광객의 동선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

석가탑에서는 1966년 도굴범이 훼손한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最初)의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도굴범들은 석가탑의 사리구를 도굴하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고, 수리하다가 다른 층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로 이 도굴범들은 검거되었으며, 황룡사지를 털었던 도굴범들이란 점이 수사 중에 밝혀졌다.

이 수리 과정에서 전문가도 아닌 인부들이 나무 전봇대를 기중기 삼아 엉성하게 복원하다가 전봇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석가탑의 일부를 깨먹었다. 그 당시 한국의 엉성한 문화재 관리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국적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던 부분이다. 지금이라고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자세하게 나온다.

4. 유물

4.1. 불국사

사적 제502호, 세계문화유산

4.2. 다보탑

국보 제20호, 항목참조

4.3. 석가탑

국보 제21호, 항목참조

4.4. 연화칠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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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경덕왕 10년(751)부터 혜공왕 10년(774)까지 불국사가 중창될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개보수 되었으며, 박정희 정권시절인 1973년에 대대적인 복구 공사를 거치면서 난간을 복원했다.

의미

불교 경전에서는 아미타불과 보살들은 연화와 칠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관문인 안양문을 거쳐 극락세계를 오간다고 한다. 서방정토를 상징하는 불국사의 정전 앞을 지날 때 이 다리를 건넘으로서 불국(佛國)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볼 수 있다.

양식

연화교는 10단 칠보교는 8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화교는 돌 끝이 각져 있으며 연꽃이 새겨져 있고, 칠보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두 다리 밑으로 아치형의 무지개 다리가 있으며 밑으로는 물이 흘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두 다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유사한 구조로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다른면이 많이 보이며 두 다리 밑으로 통하는 무지개 다리도 그 구성을 달리하고 있다.

4.5. 청운교, 백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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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청운교와 백운교는 불국 정토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다리로 불국정토를 들어가는 순서는 자하문-청운교-백운교 순이다. 흔히 청운교, 백운교를 좌우로 나눠 생각 하기 쉽지만 계단의 윗 부분이 청운교 아래 부분이 백운교인 것이다. 두 다리를 거쳐 자하문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석가탑, 다보탑이 나오며 이는 상징적으로 불국정토에 들어섬을 의미한다.

역사

청운교와 백운교는 경덕왕 10년(751)부터 혜공왕 10년(774)까지 불국사가 중창될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임진왜란 때 훼철되었다고 추정한다. 숙종 41년(1715)에 한 차례 중수되었다고 하지만, 구한말에는 이미 폐찰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부분적으로 보수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 대대적인 재정비를 거쳐 난간을 복원하고, 현재에 이른다.

양식

석축물임에도 불구하고 목조건축 양식을 띄고 있다. 백운교는 18단이고 청운교는 16단으로 모두 34단이고, 계단 끝에는 돌기둥과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아치형의 무지개 다리 밑에는 연못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연화칠보교에 비해 규모는 크지만 장식은 간소화 된 편이다.

4.6. 석굴암

국보 제24호, 세계문화유산 항목참조

4.7.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26호, 항목참조

4.8.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7호, 항목참조

4.9. 석가탑 사리장엄구 및 동반 출토 유물

국보 제126호, 항목참조[12]

5. 기타

불국사가 있는 토암산 근처에는 당시의 기하학을 총동원해 석굴을 지었고, 근엄한 느낌의 부처 조각상을 품은 석굴암도 존재한다.

불국사 대웅전은 2014년 해체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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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로 추정 중. 수많은 여학생이 저런 교복을 입던 시절이니 정황상 8.15 광복 이후일 테고, 70년대에는 불국사가 복원되어 회랑이 생기기 때문. 자세히 보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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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 2001에서는 한국 스테이지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2013년 5월 17일 석가탄신일 새벽에 불국사 경내 성보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연리목 중 느티나무의 뿌리 밑둥이 잘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누가 이렇게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다.

극락전 앞에 가면 하도 사람들이 만져서 반질거리는 돼지 동상이 있는데 극락전 글자가 한자로 써있는 편액 뒤에 있는 돼지가 원본이다. 무한도전에서 돼지 찾기 미션이 나온 뒤 유명해져서 동상을 만들었고 2018년 지금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등이 불국사를 찾을 때 이 돼지를 소개해준다.

불국사 밑에는 큰 규모의 여관 및 유스호스텔들이 위치해 있다. 수학여행 등 단체여행객들은 보통 이곳 아니면 보문관광단지의 콘도 등에 숙소를 마련하는 편이다.

경산시불굴사라는 매우 비슷한 이름의 절이 있다. 하지만 인지도에서 넘사벽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

70년대 무협 홍콩 영화를 보면 불국사가 종종 소림사로 나올 때가 있다. 1978년 성룡이 출연한 '권정(금강혈인)'이 대표적. 당시 공산중국이 개방하기 전이라서 본토 촬영이 불가능했고 홍콩 땅은 너무 좁아서 사찰배경 촬영지가 별로 없어서 그나마 전통건축이 비슷하게 생긴 한국에서 중국무협 배경으로 촬영하곤 했다.[13]

2016년 경주 지진의 여파로 다보탑의 일부가 무너지고 대웅전의 기와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

6. 교통편

인근 고속도로로는 동해고속도로 남경주IC가 불국사에서 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고속도로 구조 상 이곳을 통해 불국사를 찾는 경우는 부산이나 울산 같이 경주보다 남쪽에서 오는 경우이며, 서울 같이 경주보다 북쪽에서 온다면 경주 시내를 통과해서 와야한다.

동해선에 이 역의 이름을 딴 불국사역이 있다. 단, 불국사역에서 불국사까지는 3.5 km로 매우 멀다. 그러므로 불국사역에서 불국사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생각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불국사역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가 있긴 하지만, 큰 길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하기 때문에 굳이 택시를 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역은 동해선의 태화강역~신경주역구간의 복선전철화가 완료되면서 폐역될 예정이다.

불국사로 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시내버스편

- 10번, 11번[14]- 700번
- 700번
- 불국사역 → 불국사: 11번- 불국사 → 불국사역: 10번[15]

7. 입장료

입장료

성인

6000원

중/고등학생

4000원

초등학생

3000원

장애인 복지카드 소지자, 국가유공자, 조계종 신도증 소지자, 경주시민[16]은 입장료가 면제된다.

주차요금

소형차

1,000원

대형차

2,000원


  1.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3. [3] 다만 불국사도 신라~고려시대에는 지금보다는 훨씬 컸고, 세월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4. [4] 다만 의외로 경상도 출신 학생들은 평생 불국사에 한 번도 안 가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경상도에서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기 때문. 오히려 수도권으로 1박 2일을 가는 게 훨씬 인기 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게, 경상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거리상 불국사에 가기 편해서 굳이 수학여행이 아니어도 불국사에 갈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5. [5]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라고도 한다.
  6. [6] 심지어 그가 기록처럼 시중이라는 고위 관직일지라도, 그런 절을 혼자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7. [7] 또한 사찰 창건 설화들 중에서는 해당 사찰의 역사가 유구하다고 강조하고자 불교가 공인되거나 전래되기도 전에 창건되었다고 주장하는 무리수를 둔 경우도 있는데, 불국사 설화는 불교가 공인된 법흥왕대를 창건 시점으로 잡으므로 그런 무리수도 적다.
  8. [8] 가토 기요마사는 정확하게는 가마쿠라 시대에 승려 니치렌이 창시한, 법화경만을 유일무이한 경전으로 떠받들고 다른 경전은 싸그리 무시하고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련정종의 신자였다. 같은 불교라도 극단적인 종파를 믿었기에 이질적인 한국 불교에는 자비가 없었던 것이다. 무기도 발견됐겠다, 명분은 충분하다.
  9. [9] 일제의 복원공사로 다 무너져가던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와 많은 건물들이 보수되면서 일단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불국사의 회랑과 난간등은 복원하지 못했다.
  10. [10] 그런데 사실 창건 초기의 기단 위에 후대에 다시 지은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점은 현재 한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절들이 그닥 다를 것이 없긴 하다. 유명한 동대사 대불전도 나라 시대에 처음 대불을 만들면서 지었지만 현존 건물은 에도 시대에 와서야 세워진 것이고 그나마도 원래 크기에서 축소된 규모. 시텐노지는 태풍으로 무너지고 나서는 건물 자체를 아예 콘크리트 싹 다 지어버렸다. 나라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그대로 유지된 호류지나 도쇼다이지 같은 사찰들은 일본에서도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다만 이 점을 감안해도 불국사 복원과정이 확실히 엉망이긴 했다.
  11. [11] 한국 탑의 높이와 폭의 비율 기준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석가탑이다.
  12. [12] 126 - 6호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13. [13] 비슷하게 수원 화성이 북경성으로, 종묘가 자금성으로 나온 사례도 있다.
  14. [14] 순환노선으로, 같은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순환한다. 따라서 어느 노선을 이용해도 상관없다.
  15. [15] 이처럼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타야 할 버스가 달라지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해당 노선들이 순환노선이기 때문이다.
  16. [16] 2013년 3월부터 입장료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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