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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반론
4. 변호
5. 기타
6. 관련 명언 및 명대사
7. 예시
7.1. 현재진행형인 예시
7.2. 종결된 예시
8. 참고 항목

영어 : History repeats itself, 숙어식으로 표현하면 Historic recurrence(역사 반복)

일본어 : 歴史は繰り返す

1. 개요

서양 속담/격언 중 하나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겹게도 많이 듣게 되는 격언. 이것이야말로 반복되고 있다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는 논리를 역사에 적용한 것으로, 이미 역사가 보여준 그 인과를 다시금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2. 배경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사상적 배경은 주로 왕조사관이나 상인사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카더라. 중국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는데, 정치적 문란으로 혼란에 빠진 와중에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농민 지도자가 집권한다는 시나리오가 반복된다는 점에 착안한 주장이다. 또 상인들의 경우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관을 역사가 반복된다는 주장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좀 더 다양한 경우에서 사용된다. 그저 단순히 같은 범죄가 반복 되어도 역사를 잊지 말라 언급되는 것이니 굳이 왕조까지 올라갈 정도로 현학적인 근거나 배경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은 단순하게 교훈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만큼 섣부른 일반화는 주의해야겠다.

3. 반론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고 역사를 공부하는 효용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얻어왔으나 반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푸코디언(푸코주의자)들은 역사는 반복,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수많은 맥락들과 얽혀있는 총체이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반복되는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 가령, 구한 말에 청,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이 조선에 진출하고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1990년대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이 한반도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이 비슷한 사건이라 하여 1990년 당시 국사학계에서 구한 말 연구가 붐을 이루었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논리와 탈냉전 시대의 논리를 똑같은 사건으로 보는 것은 맥락을 무시한 단편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흐름은 비슷한 것 같아도 시대 여건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도 옛날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시들을 볼 때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과연 이것이 반복된 역사인가 스스로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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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는 그의 저서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도 적혀있다.

또한 정말로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4. 변호

하지만, 이것은 학구적인 편집증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세하게 따진것에 불과하다. 역사가 반복되는다는 문장은 결국 어느 사건의 단면이 비슷하게 일어난다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로써 딱히 그 원인과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순환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같은 구조가 다시 그려지게 된다는 의미를 지닐 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밭에서 자랐던 간에 사과는 사과일 뿐이며 그 과정을 두고 따져봤자 무의미 할 뿐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굳이 제국주의 시대와 탈냉전 시대 같은 '오렌지와 사과'의 관계를 예시로 든다고 해서 다른 '같은 사과'들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는가? 저 예시를 제외하더라도 반복된 원인과 결과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사실 자신들의 논점을 띄우기 위한 아는체에 불과할지도

애당초 아래에도 잔뜩 실려있는 명언들을 살펴보라. 위 쪽의 단순한 반박으로 깨질 요량이라면 왜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언급하고 사용되었을까. 그야말로 단편적인 논점에 관해 주의해야 할 일이다.

5. 기타

사건이 아니라 큰 줄기로 보면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멜서스 트랩이 대표적이다.

6. 관련 명언 및 명대사

Was die Erfahrung aber und die Geschichte lehren, ist dieses, daß Völker und Regierungen niemals etwas aus der Geschichte gelernt und nach Lehren, die aus derselben zu ziehen gewesen wären, gehandelt haben.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민족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이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역사의 철학에 관한 강연 중 서론, 1832년)

Geschichte wiederholt sich – erst als Tragödie, dann als Farce.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1]

-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2]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상이한 형태의 비극들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들이 있으며, 그것에 비추어 볼 때 역사학은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 지극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삶의 스승>이다.

-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Hegel was right when he said that we learn from history that man can never learn anything from history.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헤겔은 옳았다.

If history repeats itself, and the unexpected always happens, how incapable must Man be of learning from experience.

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 조지 버나드 쇼

Toutes choses sont dites déjà ; mais comme personne n'écoute, il faut toujours recommencer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으나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 앙드레 지드(André Gide, 프랑스 소설가 겸 비평가)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 조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 에스파냐 출신의 미국 철학자)

Whoever wishes to foresee the future must consult the past; for human events ever resemble those of preceding times. This arises from the fact that they are produced by men who ever have been, and ever shall be, animated by the same passions, and thus they necessarily have the same results.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킬지어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History, with all her volumes vast, hath but one page

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

- 조지 고든 바이런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 마크 트웨인

인간의 본성이 쉽게 바뀐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 아라키 히로히코, <죠죠의 기묘한 모험>[3]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 박완서, 윤문규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에 대한 반박. 널리 퍼져 있기에 정확한 출처는 찾을 수 없으며, 이외수의 명언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비웃지 마라.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 이외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작자 미상. 윈스턴 처칠 [4]

"전쟁. 전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서.

- 율리시스(폴아웃: 뉴 베가스)

Times Change.

역사는 바뀐다.

- 가로쉬 헬스크림

"살다보면 항상 세상은 반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구세대가 경험한 실수와 성공의 사실들을 신세대들은 똑같이 답습한다. 아무리 구세대가 자신의 경험담을 신세대들에게 알려주어도. 그들은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 경험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다. 이것은 그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불필요한 진실인가? 마치 결혼 전 처녀가 양아치같은 놈에게 눈이 멀어서 결혼을 감행하려는 것과 같은, 그녀의 부모들은 양아치의 앞날이 뻔히 보이기에 결사 말리지만 그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눈앞의 달콤함에만 빠져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된다. 먼 예전 자신의 부모들이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이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해주려 또 말하지만, ('집어 쳐! 난 엄마처럼 살지않아! 난 멋지게 내 삶을 살 거니까 자꾸 내 인생 참견하지마.'[5]) 그러나, 멋진 삶?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웃기는 소리다! 결국은 그 처녀의 딸 역시 그 처녀와 똑같이 살게되는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동안의 내가 삶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결과였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연장자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에 대비하는 자들! 결국 인생의 승리자는 그런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왜? 뻔히? 결과적으로…. 되지도 않을 싸움을 하려 드는가?"[6]

- 류존하, 대털 2.0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익명

이 상소[7]의 맺음은 부녀자에게 일을 시키고, 사치품을 금하자는 매우 엉뚱한 결론이었지만... 시대상은 현대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삼국지는 1800년전 이야기입니다. 겨우 청동기 지나고, 철기를 쓰던 시대라구요. 1800년전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이리 비슷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100년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죠.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고, 그래서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거예요."

- 최훈. 삼국전투기[8]

7. 예시

7.1. 현재진행형인 예시

다만 이 대물림을 끊는 소수 예외가 존재한다.
어른취미가 그들의 아이취미로 이어지고, 그들이 자란 이후 그 취미는 어른취미가 되는 것으로 인해 같은 취미를 좋아하는 것이 반복된다.
신라부터 시작된 왜구의 침략, 고려 말 왜구의 침입, 조선의 삼포왜란 등 자잘한 왜란들과 임진왜란 같은 거대한 동북아 전쟁, 구한말의 일제 침략과 경술국치, 이후 35년간의 일제시대와 광복 후에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왜곡으로 인한 과거 책임 부인, 독도 침탈을 위한 만행 등을 보면 역사의 반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각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본연의 초심을 잃은 채 탐욕에 물들어 타락하고 있다.
세계 대공황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금융위기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세계적으로 더블딥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된 사고 사실의 발표 지연과 스리마일 섬의 진행 양상이 겹쳐서 결국 이런 사고를 낳고 말았다. 역사와 역사가 결합되어 결국 더 큰 역사를 반복한 사례.
이 둘은 초동 대처가 미흡한 탓이 매우 컸고, 공직자들의 보여주기식 행태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피해 규모와 피해액은 차마 비교할 수 없지만, 시 단위의 광범위적 사고라는 점에선 모두 끔찍한 사고다.
모두 정경유착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 사건사고에 휘말린 담당 공무원들은 어김없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둘 다 그룹 회장의 비리가 드러난 것과 멋대로 설계를 바꾼 것이다.
넷 다 안전불감증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데다가 시설의 관리 소홀, 무허가/불법 증축, 인솔교사/관계자들의 학생관리 소홀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똑같다. 씨랜드 화재의 경우는 정상적인 경로로는 허가가 날 수 없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무허가나 다름없었다. 충격적이게도,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의 사건들은 7개월도 안되서 연쇄적으로 터진 사건들이다.
모두 보안불감증이 낳은 결과다. 그리고 모두의 주민번호는 그렇게 중국으로 팔려갔습니다. 아예 인터넷 실명제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특히 2014년 1월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피해 규모·유출 범위 역대 최대·최다를 경신해버렸다. 사실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막아놓지 않는 이상 작정하고 뚫을려고 마음 먹으면 못 뚫을 건 없긴 하지만,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하청업체 직원이 보안 테스트를 빌미로 USB로 빼갔다. 사실 작정할 필요도 없었다!
안전대책 없이 무작정 관람객을 늘리는데만 집중해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92년 2월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팝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 때는 히트곡인 ‘투나잇’(Tonight)이 연주되자 200여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무대 쪽으로 달려나가다 넘어지면서 한 명이 짓밟혀 사망하고 6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공연장에는 수용인원 1만여명을 훨씬 넘긴 1만6000여명이 입장했다. 또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MBC 가요콘서트’ 녹화 현장에서는 관객 11명이 깔려 숨지고 162명이 부상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공연에는 인기그룹 SS501, 태진아 등 유명 연예인이 대거 출연할 예정이어서 많은 관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안전관리요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에 1만여명의 관람객들이 몰렸지만 배치된 안전관리요원은 단 20여명뿐이었다. 거기다가 당시 개방한 문은 직3문이었는데, 이 직3문은 내리막구조라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지극히 위험한 구조였다. 평지인 직2문이나 직4문이 있음에도 굳이 내리막인 직3문을 선택한 시점에서부터 인재였다. 또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환풍구 붕괴사고의 경우 여태까지의 사고들이 대개 그랬듯이 인재(人災)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환풍구는 밟고 올라가라고 만든 게 절대 아니다. 환풍구는 또 다른 굴뚝이라 함부로 올라갔다가 빠지면 절대 생존을 장담못할 정도로 깊은 곳이다. 지하철 관계자가 거의 화내듯이 환풍구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제지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1995년 전직 대통령 노태우, 전두환이 대검찰청에 직접 소환 출두하게 되었고 그 후로 14년 후인 2009년에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대검찰청에 소환됨에 따라 지금까지 3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검찰청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대검찰청에 소환되지 않았을 뿐이지, 레임덕 등으로 끝이 안 좋은 경우가 100%를 차지한다.(하야 - 중도 실각 - 암살 - 중도 실각) 이 중 전직 대통령 은 한꺼번에 검찰에 구속되어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전직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이자 국회의원 출신이었던 김현철과 전직 대통령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 3남 김홍걸이 잇따라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청에 소환출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친형 노건평과 현직 대통령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이 검찰청에 소환됨에 따라 헌정사상 유래없이 대통령의 아들들과 친형들이 잇따라 검찰청에 소환출두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 모두 비리사건 등으로 연루되어 검찰소환을 받았고 세간에서는 국왕의 아들이나 형을 지칭한다는 대군(大君)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다만 이들의 직종은 각각 국회의원과 농부라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보이긴 하였지만 모두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형이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통령인 아버지나 동생들 못지않게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문화대혁명분서갱유데자뷔로 평가받고 있는데, 특히 문화대혁명의 경우는 단 10년만에 중국의 거의 모든 것퀵 포맷 시켰다. [9]그리고 2014년, 무신론과 이교도 서적을 불태운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나타났는데...
일진이 낳은 대표적인 사건들로, 피해자가 폭력을 당하는 시점에서 일진들에 대한 과감한 조치가 행해져야 했으나, 가해자 측은 자기들 변호하기에 바쁘고, 학교 측에서는 이를 묻으려 하기에 바빴고, 피해자 측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사실을 숨기기에 바빴다. 결국 곪을대로 곪은 게 자살로 터지고 만 것.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사건이 반복된 대표적인 사례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될 원죄급 쳇바퀴.
취소선 처리는 했지만, 똑같은 병크에 똑같은 몰락이 전개됐다는 점에서 이 저주는 야구를 넘어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팀내는 진리
토츠카 요트 스쿨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독자적인 스파르타식 지도로 등교거부자나 히키코모리 등의 수많은 비행청소년을 교정시켰다는 선전으로 매스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행동을 되풀이하는 청소년을 교정한다고 자칭한 토츠카 요트 스쿨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훈련중에 학생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이른바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결과, 1983년 상해치사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어 교장 토츠카 히로시 이외 관계자 15명이 체포, 기소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재판 끝에 토츠카 및 코치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토츠카는 6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후, 2006년 4월 29일 출소해 현장에 복귀했다.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도 마찬가지로 가혹한 훈련이 원인이 되었으며, 결론은 열악한 실태와 안전문제뿐만 아니라 '인격 도야'와 '교정'을 명분 삼은 가혹한 극기 훈련이 빚어낸 참사.
두 사건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낡은 선박에다 극악무도한 선장의 행태, 무허가 불법 증축이 원인이다.
두 사건 모두 사고 후 늑장 사후대처로 피해가 커졌으며, 언론의 오보 또한 추가된 사건들이다.
서해 페리소 침몰 사고의 원인인 과적과 타이타닉 침몰사고의 원인인 부실관리 그리고 아리아케마루 전복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변침과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천하의 개쌍놈 선장의 이기심이 합쳐진 최악의 대참사다.
사태 발생 직후 기관사나 선장이 탈출로를 막고 먼저 탈출해 훨씬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결국 세월호는 예전 참사들의 문제를 모두 담은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세 사건 모두 병영부조리로 인하여 같은 사단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게다가 530GP 사건의 경우는 1985년에 있었던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의 재래 수준이었으며, 그 이후로 28사단은 물론이고 육군 전체가 대대적으로 병영부조리를 발본색원 하였으나, 9년이 지난 2014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라는 최악의 병영부조리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불명예를 얻게 된다. 게다가 그당시 28사단의 병영부조리 발본색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등잔밑이 어두운 꼴.
21세기 이후에 병영부조리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들이다. 530GP 사건 이후로 전군 차원에서 병영부조리 근절을 외쳤지만 결국 허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가 청소년들이었으며, 극악무도한 범행 수법조차도 매우 비슷하다. 게다가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처럼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도 소년법에 의해 법정 최고형이 15년 밖에 안 되어서 솜방망이 처벌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위의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전매상들의 소행으로 결국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는 되팔이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 라고 봐도 무방하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장소, 같은 민족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유사하다.이로 인해 안그래도 좋지않은 조선족에 대한 인식을 더더욱 악화시켰다.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을 내세운 각종 집회 및 과도한 거국적 사과 분위기의 정도가 지나쳐서 19세기 일본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던 오쓰 사건에 비유당하고 있다.
셋 다 사이비종교가 일으킨 집단자살 사건이다.
셋 다 인터넷상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서 연예인 및 방송인이 자살한 사건이다. 다른 점이라면 유니와 최진실은 비하성 악플로 인한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 쪽이고 송지선은 임태훈과의 스캔들 논란 후 앞뒤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던 네티즌들의 악플 때문에 자살한 쪽이다.
최악의 물수능이다 하는 소리는 사실 학력고사 때도 있었던 소리다.
종목만 다를 뿐 중계권 문제로 게임사나 협회, 방송사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사건의 성격이 유사하다.
BJ악어와 그의 방송 관계자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들을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이 마음대로 부려먹고 폭언과 욕설, 열정페이를 일삼았으며, 사건이 있을때마다 재대로된 반성과 사과를 하지않고 쉴더들을 이용해 이익을 채워갔다.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사건들이며 벌써 3번째임을 보아 비슷한 사건은 더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셋 다 공무원의 안일한 탁상행정이 근원이 되어서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과 공분을 샀다.

7.2. 종결된 예시

금나라가 몽골족을 견제하기 위해 편 이이제이 정책과 몰아주기 정책이 결과적으로 몽골족의 반감을 사 훗날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제국에 금나라가 멸망하는 결과를 자초했으며, 명나라가 여진족을 견제하기 위해 편 위소체제와 회사정책 또한 도리어 여진족이 성장하여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이 세워지는 결과를 자초했다.
고대부터 북방 유목민족들이 중국 본토인 중원을 침략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아예 정복왕조를 세워 직접 중원을 통치하기도 했다(오호십육국시대의 북방 유목민족 국가들, 위진남북조시대북위,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역대 한족왕조들 중 북방 유목민족과의 군사적 충돌을 완전히 해결한 왕조는 없었으며 한족왕조들 중 가장 이민족에 관대했던 당나라조차도 안록산의 난 이후 거란족 등 이민족의 성장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가 준가르 부를 무너뜨림으로써 중국역사의 뜨거운 감자였던 북방 유목민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대신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아 점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지
1994년 7월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이 당시 대통령 김영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17년 후인 2011년 12월 그의 아들이자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던 김정일은 심근경색으로 인해 급사하게 되었다. 둘 다 이전에도 와병설 등 사망설이 돌아다녔으나 그 와중에도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으나 졸지에 심근경색으로 사망. 후계도 똑같이 반복하고 이 과정에서 똑같이 붕괴설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1945년 남북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에 고정 및 비고정 간첩을 밀파하였으며 특히 1968년에는 서울 청와대울진,삼척지역에 간첩을 밀파하였고 그 이후 1996년에는 강릉에 무장공비를 파견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 부부는 모두 자연사나 병사(病死)가 아닌 저격범에 의해 암살 및 저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 때문에 아이러니와 역사를 반복하게 만드는 계기까지 마련했다. 박정희의 영부인이었던 육영수는 1974년 8월 간첩출신 문세광의 총탄에, 박정희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면서 1979년 10월 26일에 부하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정말 비슷하다. 우선 아케치 미츠히데김재규의 경우, 정권의 핵심적인 중추였던 사람이 정권의 수장을 제거했지만,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후속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결국 시망 테크를 탄 점, 정권의 수장을 죽인 것이 결국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버린 것, 무엇보다 '거사'를 일으킨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등. 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다. 그리고 사실상 정권의 1인자로 남게 된 시바타 카츠이에정승화도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아랫사람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시바타는 히데요시에게, 정승화는 전두환에게).
2011년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재스민 혁명으로 인해 오랫동안 독재집권을 해 왔던 수장들이 물러났으며 특히 이집트리비아에서도 장기집권을 해 왔던 무바라크와 카다피 정권이 몰락하는 계기가 생기기도 하였다.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당시 대통령 J.W 부시의 승인하에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2003년에는 이라크를 공습하여 각각 탈레반과 사담 후세인 정권을 잇따라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이 두 전쟁의 공통점은 아시아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점과 모두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싸우고 대립하였던 것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건너온 군인들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싸웠다는 점을 보면 사실상 단순한 동족간의 전쟁을 넘어 세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국을 비롯한 21개국의 군인들이 참전하였고 베트남 전쟁 때에도 한국,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국가들이 군대를 파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전쟁의 결말에서는 각각 휴전과 계속되는 분단현상, 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와 사회주의 통일정권 수립에서 엇갈리게 되었다.
이 세 전쟁의 경우 모두 중동에서 일어났다는 점과 공교롭게도 중동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두 전쟁에 이라크가 개입되었다는 점이 있는데 특히 걸프전쟁 때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력침공하였으며 중동전쟁의 경우 이스라엘과 아랍이 서로 대립하는 목적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을 보면 결국 아랍과 유대의 대립이 얼마나 심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집권여당이 저지른 희대의 병크. 둘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망가뜨렸다. 차이가 있다면 3.15 부정선거는 투표율을 높이려고, 2011년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투표율을 낮추려고 한 것. 극과 극이 통하기도 하는 사례이다.
강원도 평창은 2003년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다시 4년 후 2007년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나섰으나 다시 한 번 실패하여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특히 두 번의 유치전 때 모두 IOC 총회의 2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아픔과 슬픔을 겪었으며[10] 이로 인해 대한민국평창에 두 번이나 통한의 눈물과 상처를 안겨줘야 했었다. 1차 투표와 그 이후의 중간 과정에서 홍보가 부족해 표가 다른 곳으로 쏠린 것이 결정적인 패인(敗因)이 된 것. 그리고 4년 후인 2011년에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 재도전하여 계획대로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압승, 마침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두 게임 모두 3번째 테마까지만 공개되었고, 그마저도 3번째는 대충 만든 감이 컸다. 사실 소드 퀘스트는 아타리 쇼크로, 어니스와 프리키는 하향패치 병크와 개발팀 해체로 이렇게 되었고 결국 두 게임 모두 1년을 전후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소드 퀘스트 에어 월드와 어니스와 프리키 카지노 테마(가칭)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두 전쟁 다 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이고, 두 개 다 이 국가는 패전국이 되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 국가가 두 개 다 저 국가하고 붙어있다가 팀바꾼건?
1945년 12월 30일 송진우, 1947년 설산 장덕수, 몽양 여운형,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가 모두 암살당해 서거하였다. 이들 모두 총살과 1950년 6.25 전쟁 발발 전에 모두 서거하였다. 백범 김구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20세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두 거인으로 알려진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과 현대 창업주 아산 정주영 모두 병고(病苦)로 별세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1988 서울 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서거하게 되었다. 둘 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경기대회를 보지 못하고 별세하였는데 정주영의 경우 1988 서울올림픽은 살아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정몽준이 유치 당시부터 이끌어내었던 2002 한일월드컵을 살아서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
위는 후한의 황위를 찬탈하여 만들어진 국가이나, 이러한 역사는 나중에 서진에 의해 반복되었다.

8. 참고 항목


  1. [1] 정확하게는 이런 문장이다. "Hegel bemerkte irgendwo, daß alle großen weltgeschichtlichen Tatsachen und Personen sich sozusagen zweimal ereignen. Er hat vergessen, hinzuzufügen: das eine Mal als Tragödie, das andere Mal als Farce. 헤겔은 그의 저서 어디선가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걸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2. [2] 이 팜플릿은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로 세운 제2제정을 까기 위해 쓴 것. 즉, 처음 나타난 비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제1제정을, 두번째로 나타난 희극은 루이 나폴레옹과 그의 제2제정을 뜻한다. 마르크스가 그의 키워 능력치를 100% 발휘,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신랄하게 까는 글이다. 저작선집 2권에 있다
  3. [3] 이 말은 본편 속에서 보잉고도 언급한다.
  4. [4] 국내에선 신채호의 말로 알려져 있는데 아니다.
  5. [5] 이부분은 류존하가 예시로 든 처녀의 딸의 대사다.
  6. [6] 김화백 만화 명대사 대부분이 개그계 명대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런 진중한 감동계 명대사도 적지 않으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럭키짱을 봐도 의외로 사회문제나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는 대사가 많다.
  7. [7] 전투외편 8-3에서 화핵이 올린 상소다.
  8. [8] 따옴표 안은 최훈의 오너캐가 말하는 부분이다.
  9. [9] 게다가 학자 뿐 아니라 민간인을 포함한 모든 인민, 책 뿐 아니라 입고있는 옷이며 뭐며 조금이라도 구시대적인 모든 것이 타겟이었으니 스케일의 차이는...
  10. [10] 1차 투표의 경우 두 번의 도전에서 모두 투표 선두권으로 앞섰기 때문에 유치에 성공할 듯 싶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 두 유치전에서 2차 투표에서 뜻밖의 역전패를 당해왔기 때문에 세번째 도전에서도 2차 투표에 대한 신경과 관심이 컸었으며 특히 두번째 도전에서 실패하였을 때 당시 세간에서는 4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었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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