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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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의 국가 및 지역

프랑스령 기아나

제도]]
(영국)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영국)

우루과이 동방공화국
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국기

국장

면적

176,215km²[1]

인구

3,456,877명(2017)

수도

몬테비데오

공용어

스페인어

종족구성

백인 90.7%, 흑인 4.8%, 기타

종교

가톨릭 45.7%, 기타 기독교 9% 등(2008)

정치체제

단일국가, 대통령제 (임기: 5년 단임제)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

임기

2005년 3월 1일 ~ 2010년 3월 1일
2015년 3월 1일 ~ 2020년 3월 1일 (예정)

부통령

루시아 토폴란스키

통화

우루과이 페소

국가

동방인들이여,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스페인어: Orientales, la patria o la tumba)

GDP

명목 549억 6800만 $(2015)

1인당 GDP

명목 16,092$(2015)

인터넷 도메인

.uy

1. 개요
2. 국호와 국기, 국가
3. 자연
3.1. 기후
4. 역사
5. 정치와 군사
5.1. 역대 대통령
6. 경제
7. 문화
7.1. 문학
7.2. 음악
7.3. 축구
8. 외교
9. 이민
10. 행정구역
11. 우루과이 출신 인물
12. 창작물에서의 우루과이

스페인어: 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한국어: 우루과이 동방공화국

포르투갈어: República Oriental do Uruguai

영어: Oriental Republic of Uruguay

1. 개요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정식 명칭은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인구는 2005년 기준 346만 명이며 이들 중의 절반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거주한다. 면적은 17만 6200㎢으로, 남한의 1.7배 정도 되는 크기니까 그렇게 작은 크기는 아닌데 이웃의 두 나라가 하나같이 스케일이 크고, 다른 나라들도 국토 면적이 크다 보니 우루과이가 작아 보인다. 인구 수가 적은 것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남미에서는 수리남 다음으로 작은 나라.

세계적인 축산국이다.

수도는 몬테비데오. 공용어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우리에게는 김영삼 前 대통령 집권 초기에 체결된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쌀 개방 협정으로 잘 알려진 국가.

남아메리카 국가 가운데서 가장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나라이며 단순히 1인당 GDP가 높을뿐만 아니라 정치도 깨끗한 편에[2] 치안과 복지수준도 괜찮아서 OECD에 가입되어있지 않지만 남아메리카 국가 가운데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임금 수준은 아르헨티나에 밀리지만 브라질이나 멕시코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다.

브라질과는 한때 같은 나라였고, 지금도 매우 가깝지만 느낌이 확 달라진다. 덥고 너저분하고 위험한 브라질과 달리 이쪽은 시원하고 깔끔하며 안전하다!!! 우루과이인들은 브라질 하면 덥고 벌레 많고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동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웃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백인이 주류인 보기 드문 남미 국가다. 원래부터 원주민의 인구가 많지 않아서 식민지 개척 이후 격렬한 저항에도 지속적으로 내륙으로 밀려난 데다가 1831년 초대 대통령의 조카가 차루아 부족원들을 초대해놓고서 이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결정타를 맞았다.[3] 그나마 20세기 들어서 원주민들의 문화를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미 때 늦은 일이다. 우루과이 총 인구 가운데서 원주민 조상을 가지고 있는 인구는 3% 내외 정도의 수준이다.

2. 국호와 국기, 국가

정식 국호는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이다. 우루과이는 이 나라 서부 국경을 이루는 우루과이 강에서 따온 이름인데 스페인인들이 파라과이 일대를 일컫는 말인 과라니(Guarani)에서 따왔다고 한다. 물론 원주민 언어에서 따온 것인데 새의 강, 뱀의 강 등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방'에 별다른 뜻은 없고 우루과이 강 동쪽에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우루과이의 국기는 1830년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의 독립에 크게 기여해 준 일이 있어서 우루과이의 국기도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거의 비슷하게 흰색과 하늘색, 꽤 훈남인5월의 태양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우루과이 축구 대표팀의 별명은 La Celeste (하늘색). 다만 우루과이의 국기는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구분하기 위해 마치 성조기처럼 5월의 태양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흰 바탕에 줄을 연속으로 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위의 두개의 깃발은 우루과이에서 지정한 정부기관용 깃발들이다. 보통의 경우 정부기관용 깃발은 민간용 깃발에 국장이 추가된 형태이나, 위의 두 깃발은 우루과이의 민간용 깃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우루과이 정부기관용 깃발의 특수한 기원에 의한 것인데, 첫번째 깃발은 우루과이 독립영웅 호세 아르티가스를 기리기 위해, 두번째 깃발은 33인의 망명정부 요인들을 기리기 위해 각각 정부기관용 깃발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루과이 정부기관은 여건이 될 경우 세개의 국기들을 게양해야 한다.

국가는 <동방인들이여,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스페인어: Orientales, la patria o la tumba)이다.

3. 자연

동북쪽의 브라질, 서쪽~서남쪽의 아르헨티나 사이에 위치한 나라. 남쪽으로는 남(南) 대서양에 접해 있고, 남대서양을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이 나온다. 직접 국경을 접하진 않았지만 파라과이도 주변국이라고 볼 수 있다.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이란 정식 명칭의 '동방'이 가리키듯 이 국가는 우루과이 강 동쪽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레소토, 스와질란드와 더불어 국토 전체가 남회귀선보다 남쪽에 있는 오직 4개의 국가 중 하나이다.[4]

이 나라는 한국 남부 지방과의 대척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전라남도 진도군, 신안군 서쪽 지역과 제주도가 우루과이 동남부 지방과 대척점을 이룬다. 진도군과 신안군은 우루과이 동남부 해안 지방과 대척점이고 제주도는 그보다 북쪽인 브라질과의 국경 지대인 미림 호 일대와 대척점이다. 그 밖의 지역은 남부 지방이라도 우루과이 영토 안이 아닌 동쪽 앞바다가 대척점이다.

3.1. 기후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로 6-8월이 겨울, 12-2월이 여름이다.

온대기후와 아열대 기후의 중간인 온대 습윤기후인데 눈은 거의 안 내린다. 마치 오이먀콘이 겨울에 -5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확률로 몇십년에 한 번 꼴로 눈이 내린다. 온대 습윤 기후는 아열대로 분류하는게 대부분이라 사실 상 국토 전역이 아열대 팜파스 지대라고 봐도 된다.

사계가 미약하게나마 뚜렷하며 시원한 겨울과 더운 여름이 있다. 겨울 평균은 13도 정도로 한국의 10-11월 정도이며 여름 평균은 26도로 한국의 남부 지방과 비슷하고 최고 40도까지 치솟는다. 겨울에는 3한4온을 보여 최저 0도까지 떨어졌다 낮에는 최고 25도까지도 치솟는 등 온난하다.

다른 나라에 비유하면 미국의 남동부,브라질 남부 파라나/산타카타리나/히우그란지 두 술 주, 한국제주특별자치도, 중국의 화동, 일본 규슈, 호주의 동해안이랑 비슷하다.

4. 역사

옛날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투피-과라니계의 차루아족과 차니족등의 종족들이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면서 살던 땅이었다. 그러다가 스페인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고, 차루아족들은 스페인에 거세게 저항하며 맞섰지만 애초부터 쪽수부터 후달렸던지라 내륙지역으로 계속해서 밀려나갔다.

스페인포르투갈이 투닥거렸고 한때는 스페인의 7년 전쟁으로 잠깐 포르투갈이 점령했었다. 하지만 그 후 스페인이 되찾아 계속 스페인의 식민지였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붕괴하면서 독립하는데…. 당시 주변의 강대국이던 브라질 제국의 침공으로 시스플라티나[5] 주로 편입되었으나, 아르헨티나가 브라질 견제를 위해 우루과이 독립을 지원, 500일 전쟁 끝에 1828년에 독립을 얻어냈다.[6]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를 자국의 은인으로 여기며 양국은 영구혈맹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 양 도시 모두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독일계 이민자들이 주류였기에 비슷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7] Rioplatense 지방에 속하는 유일한 두 나라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이기때문에 사용하는 방언 역시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8]로 동일하다.

알고보면 포르투갈의 식민지의 식민지였던 해괴한 이력을 가진 나라가 우루과이다. 그런즉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의 2중 식민지였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사이에는 브라질이 있었다. 정확히는 포르투갈 왕실이 피신한 포르투갈령 브라질 제국의 땅이었던 것.[9] 그래서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 외에도 Portuñol (포르투뇰)이라는 포르투갈어+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하튼 20세기 초반에 나름대로 강소국으로 손꼽혀서 선도적으로 복지정책을 도입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는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1930년대에 경제대공황으로 한바탕 휘청거렸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초기엔 중립을 고수했다가 전세가 완전히 기운 1945년 2월에야 연합국에 가담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독일 해군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인 그라프 쉬페가 남대서양에서 영국 해군과 교전을 벌인 후 몬테비데오 항에 피항한 적이 있다. 이 때 그라프 쉬페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독일, 그라프 쉬페를 몬테비데오에 묶어두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영국, 그리고 중립 노선을 고수하는 우루과이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진행되었다. 결국 그라프 쉬페는 자침, 함장인 랑스도르프는 자살했고 승조원들은 우루과이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

1954년부터 1967년까지는 스위스의 연방평의회[10]를 본따 9명으로 '정부 국가평의회'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

20세기 후반에 이 나라가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과 놀랄만큽 흡사하다. 지구 반대편에 딱 있어서 그런가 특히 80년대의 군부 독재나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민주 투쟁 등은 보는 사람한테 얄궂은 느낌마저 주기에 충분하다. 독립을 하기 위해 망명정부를 세운 요인의 숫자까지 33명으로 똑같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도 5년 단임제다.[11] 게다가 한국의 맨 반대편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수시에서 직선으로 파고들어가면 몬데비데오의 앞바다가 나온다고. 과연 동방공화국 심지어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한 시기도 1980년 12월로 한국이랑 동갑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차이가 많이나게 되었는데 90년대 후반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제가 막장화 되면서 같이 막장테크를 탔고 거기에다가 2001년에 구제역까지 돌면서 우루과이산 축산물의 수출이 크게 격감하는 바람에 우루과이의 경제도 개판이 되었다. 그로 인해서 2004년 대선에서 바스케스가 당선되면서 우루과이 역사상 최초로 좌파가 집권했고 그 동안 소흘히 했었던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세계 경제 호황으로 우루과이도 경제도 호황세를 누렸다. 2009년에 호세 무히카가 당선되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2012년 겨울 추위가 오자 대통령 궁을 열어 노숙자들을 묵게 했다. 대통령궁은 인민의 재산이라면서. 2013년 들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대마초도 합법화하여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우루과이의 대마초관련 정책에 관심을 가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많다.

한편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광역전선의 유리함이 예측되었으나 선거 중반 들어서 예상외로 국민당 후보가 치고올라오면서 접전이 에측되고 있는 중. 10월 26일 선거에서 광역전선(좌파)의 바스케스가 49.5%, 국민당의 라카예가 32%를 득표하여 11월 30일 결선투표를 진행하였고 타바레 바스케스가 당선되어 홀리오 산기네티 이후 민주화 시대의 2번째로 두 번 임기를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현재 전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5년의 정권을 유지하여 퇴임 직후 같은 당인 타바레 바스케스에게 이양하여 지금도 광역전선이 여당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서 지지율이 30%대로 크게 떨어져서 집권 1기때에 비해서 인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5. 정치와 군사

정치적으로는 인접대국이면서 같은 백인계에 같은 언어권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브라질의 영향이 적은 것도 아니기는 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옆의 아르헨티나와 똑같은 느낌으로 아르헨티나의 미니미 느낌이 나며 브라질은 국경을 넘는 순간 확 달라지는 정도의 큰 차이를 보인다. 표지판의 언어도 포르투갈어-스페인어로 바뀔 정도. 물론 남부 브라질의 경우는 우루과이처럼 백인이 대부분인데다가 아열대 팜파스라 그렇게 크게 차이는 안나지만 좀더 북쪽은 진짜 다르다. 정확히는 브라질 쪽이 상대으로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느낌이고 우루과이가 깔끔하고 조용하다.

# 이코노미스트 선정 2013년 최고의 국가로 선정됐다. 민주주의 지수 17위(2013), 언론자유지수 23위(2015), 부패인식지수 21위(2014)로 소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부분에서 선진국에 준하는 안정도를 갖추고 있다. 평균적으로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

군사력은 약하다. 총 병력은 2만 5천명인데 병역이 모병제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징병제 국가보다도 전 국민 중에서 군인의 비율이 높다. 그리고 구형 전차를 모두 퇴역시키고 대체 무기를 도입하지 않아서 전차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남미 국가들 중에선 매우 안정된 축에 속하는 국가다. 실제로 소득 지니계수의 경우 0.45로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0.51인 칠레[12]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환경도 좋고 안정적인 경제상황에 복지도 잘 되어 있어서[13] 많은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국가 중 하나라고.# 다만 예전에는 정말로 치안이 좋은 편이었는데 2010년대 들어 점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남미에서는 제일 좋다고.

역사적으로 보면 다소 순탄치 않은 편인데 80년대 초중반에 경제난을 겪었고, 90년대 중후반들어 아르헨티나 경제가 막장화되어서 우루과이 경제도 한동안 막장이 되었다. 원래 우루과이는 오랜기간(군사정권 시절은 제외) 콜로라도당-국민당의 양당제였는데 좌파가 장기집권하게 되는 체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동화에서 온 것같은 인상을 주는 전직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집권했던 나라로 굉장히 진보적인 정책(마리화나 합법화, 동성결혼 합법화)을 추진하였다. 이때 선진국에서조차 하지 않는 발언을 하여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전문

5.1. 역대 대통령

이름

대통령 재임 기간

로렌소 바트예

1868~1872

호세 바트예

1903~1907, 1911~1915

루이스 바트예 베레스

1947∼1951, 1954∼1958

호세 무히카

2010~2015

6. 경제

우루과이는 혼합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하며, 1인당 GNP는 남아메리카의 평균보다 높은 편으로 칠레에 이어 2번째로 높은 1인당 소득, 2번째로 낮은 극빈곤 비율, 문맹률 이다. 산업별로는 금융업 23%, 제조업 26%, 서비스업 17%, 농수산업 10%로 이루어지며 농·축산업과 그 가공업이 중심이어서 산업구조가 취약하다.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목축업으로 국토의 86.7%에 해당되는 목초지에서 양과 소를 비롯한 많은 가축들이 방목되며, 축산품이 전체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으나 육류의 주요 수출지역인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의 수입 규제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농업은 목축업이 중심이므로 식량을 자급할 수 없어 밀 등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나 근래 밀, 쌀의 재배에 주력하는 한편 어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총취업인구의 17%가 농수산업에 종사한다. 210km에 이르는 해안선이 대서양에 접해 있어서 정부 주도하에 어업개발이 활발하다. 광물자원과 에너지자원의 보유율이 낮은 편이며, 북부지역에 약간의 철광석, 납, 구리 등이 매장되어 있다.

공업은 경공업 중심이며 1997년 국내총생산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공업시설은 몬테비데오 주변에 분포하며, 농산물의 가공업, 신발 및 석유, 남부 해안을 중심으로 관광산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비교적 공업이 발달한 나라이지만 무역구조를 보면 농산물을 수출하고 공업제품을 수입하는 뉴질랜드와 비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제조업에 총취업인구의 27.1%가 종사한다. 남대서양 연안의 휴양지를 기반으로 세계적 관광지가 발달하였다.

주요 수출품목은 육류, 곡물, 가죽, 목재 등이고 주요수입품목은 소비재, 자본재, 자동차, 전기전자제품 등이며[14] 거의 해마다 수입초과로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주요무역상대국은 수출입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이다. 2000년 수출은 22억 9500만 달러, 수입은 34억 6600만 달러다.

외국투자 우대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주요산업인 식육 생산부문을 비롯하여 금융부문 등 많은 경제부문에 미국이나 영국의 기업이 진출하고 있다. 2000년 현재 외채가 29억 달러이며, 1985년 이후 정부의 관세 인하 등 수출 확대 정책과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에 힘입어 실업률이 낮아졌으나 인플레이션 증가율은 높아졌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외채상환 부진, 높은 인플레이션 등은 경제 발전을 지연시키는 주요한 문제다.

우루과이의 철도는 모두 국유이며 노후하였다.

2004년 이후 중도좌파가 집권한 이래로 연 평균 5%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2015년 이후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기침체로 인해 성장률이 1-3%대 가량으로 크게 떨어졌다.

2030년 월드컵이 개최되는 때까지 경제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고 한다. 이미 2016년 기준으로도 OECD 회원국인 멕시코, 그리스, 터키보다 잘 사는 편이고 적은 인구로 인한 특성과 경제 성장률과 정치(부패)수준으로 봤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7. 문화

의외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 월드컵 경기장 Centenario. 탱고도 몬테비데오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된 문화이기 때문에, 우루과이도 탱고의 출생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Carlos Gardel도 우루과이 사람이었다는 소문 [15]

매년 2월 (겨울) 한 달 이상 지속된 Carnival이 열리는데 브라질은 형형색색 인것과는 달리 노예로 온 흑인들의 문화를 백인의 우루과이인들이 받아들여 Candombe라는 아프리카식 드럼을 여러명의 남자들이 치면서 퍼레이드를 형성한다. 카니발 문화 중의 하나는 Murga라는 아주 독특한 문화. 전세계의 이와 비슷한 문화는 스페인 Cadiz에서만 찾아볼수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정치,사회, 문화에 관련된 사항을 풍자희학하는 예술장르 라는데있어서 우리나라의 봉산탈춤등의 문화와 흡사하다. 마치 삐에로처럼 분장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테마를 정하여 사회 풍자하는 시적가사를 아주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부르는 것. 한 팀당 1시간 정도씩 부르는데, 그 가사와 분장/테마등의 무대 완성도로 경합을 벌인다.

우루과이의 목동인 가우초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다) 특이한 문화중의 하나. 가우초들의 예술활동도 활발한데 스페인 이민자들 특히 바스크 이민자들의 영향도 많이 받아서 특유 검정색 베레모를 쓰는 사람도 많다. 가우초들이 즉흥적으로 시적가사를 만들어 상황묘사를 하는 식의 노래가 유명하기도 하다.

음식은 미국 바비큐의 원조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쇠고기 숯불구이인 asado(아사도)를 즐겨먹는데 Chimichurri소스와 함께 먹는다. 소고기구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탈리아식의 음식이 주류이며, 프랑스와 독일식 음식문화도 찾아볼수있다. 마테차를 정말 많이 마신다.

2013년 12월 10일 우루과이 의회에서는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이 세계 최초로 통과되었다. 2013년 12월 11일 기준 호세 무히카 대통령이 서명하면 공식 발효된다고 한다.

종교는 50%가 가톨릭을 믿지만 나머지 50%는 초교파와 무신론이라 남미에서 보기 드문 무신론 주류 국가이다. 사회주의 사상이 제일 많이 퍼진 곳이 이 곳이며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스페인의 공산당원들이 대거 이민 온것을 시작으로 칠레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당시에는 피노체트의 핍박을 피해 칠레 공산당원들도 많이 망명왔고 이웃 아르헨티나호르헤 비델라도 공산주의를 탄압해 공산당원들이 대거 이웃나라인 이 곳에 망명 왔다. 이러한 사회주의 영향으로 30%나 되는 무신론이 절반 이상의 가톨릭을 압도하고 세속화된 것. 실제로 1990년대까진 무려 공산반군인 투팍 아말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초교파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많다. 기독교는 기독교인데 특정 교파에 굳이 목을 매진 않는다는 뜻.

우루과이의 제헌절은 한국보다 하루 늦은 7월 18일로 공휴일이다.

우루과이에는 9월에 공휴일이 아예 없고 2월3월은 해에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7.1. 문학

유명한 작가로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있다. 이 분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회 문제를 다뤄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유명하다. 갈레아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탈된 대지'를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 대통령미국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7.2. 음악

#!folding 가사
>Ya tuve que ir obligado a misa, ya toqué en el piano "Para Elisa"
>[[미사]]에 의무적으로 참석했었지. [[엘리제를 위하여]]를 피아노로 연주한 적도 있어
>ya aprendí a falsear mi sonrisa, ya caminé por la cornisa.
>거짓 웃음을 짓는 법을 배웠고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기도 했지.
>Ya cambié de lugar mi cama, ya hice comedia ya hice drama
>잠자리를 옮겨본 적도 있고, 이런저런 [[희극]]도 [[비극]]도 겪어왔네.
>fui concreto y me fui por las ramas, ya me hice el bueno y tuve mala fama.
>대놓고 말한 적도 완곡하게 표현한 적도 있고 [[위선|좋은 놈인 척]]도 해보고 나쁜 평판도 들어봤지
>Ya fui ético, y fui errático, ya fui escéptico y fui fanático
>도덕적으로, 변덕스럽게, 회의적으로, 열광적으로
>ya fui abúlico, fui metódico, ya fui impúdico y fui caótico.
>무관심하게 강박적으로 파렴치하게 무질서하게 행동해본 적도 있지
>Ya leí Arthur Conan Doyle, ya me pasé de nafta a gas oil.
>[[아서 코난 도일]]을 읽어본 적도 있고 [[가솔린]]에서 [[디젤]]로 갈아탔어
>Ya leí a Bretón y a Moliere, ya dormí en colchon y en somier.
>브레톤과 몰리에르도 읽어봤고 매트리스에서도 스프링 침대에서도 자봤지.
>Ya me cambié el pelo de color, ya estuve en contra y estuve a favor
>머리색을 바꿔본 일도 있고 찬성 편에도 반대 편에도 있어봤어.
>lo que me daba placer ahora me da dolor, ya estuve al otro lado del mostrador.
>한때 내게 쾌락이었던 것이 지금은 나에게 고통을 주네, 어제는 주인, 오늘은 손님이라는 입장으로 바꿔도 봤지.
>
>Y oigo una voz que dice sin razón
>근거도 없이 내게 말하는 목소리가 있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데 이제 더이상 변하지 않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매일매일 그저 똑같은 사람이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내 인생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
>Ya me ahogué en un vaso de agua , ya planté café en Nicaragua
>한 컵의 물로도 질식도 해봤고, 니카라과에 커피를 재배하기도 했어.
>ya me fui a probar suerte a USA, ya jugué a la ruleta rusa.
>미국에서 내 운을 시험해보기도 했고, [[러시안 룰렛]]도 해봤어.
>Ya creí en los marcianos, ya fui ovo lacto vegetariano.
>화성인도 믿어봤고 우유와 계란만 먹는 채식을 한 적도 있지
>Sano, fui quieto y fui gitano, ya estuve tranqui y estuve hasta las manos.
>제정신으로, 정착도 해봤고 방랑도 해보았네, 평온한 시간도, 정신없는 시간도 보내면서
>Hice el curso de mitoligía pero de mi los dioses se reían.
>신화 강의를 들었지만 신들은 날 비웃을 뿐이었네.
>orfebrería lo salvé raspando y ritmología aqui la estoy aplicando.
>금을 가공하며 입에 풀칠했고, 여기에선 리듬의 법칙을 제련하지
>Ya probé, ya fumé, ya tomé, ya dejé, ya firmé, ya viajé, ya pegé.
>나는 맛보고, 피우고, 취하고, 포기하고, 서명하고, 여행하고, 치고
>Ya sufrí, ya eludí, ya huí, ya asumí, ya me fuí, ya volví, ya fingí, ya mentí.
>번민하고, 회피하고, 도망치고, 단정하고, 떠났다가는, 돌아오고, 진실을 가장하고, 거짓도 말해봤지.
>Y entre tantas falsedades muchas de mis mentiras ya son verdades
>무수한 허위와 오류 속에서 내 거짓말의 대부분은 이윽고 진실이 되었네
>hice fácil adversidades, y me compliqué en las nimiedades.
>난 곧잘 적을 만들었고 사소한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왔어.
>
>Y oigo una voz que dice con razón
>마땅한 이유로 내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 데 더 이상 변하지 못하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갈수록 더 똑같아지고 있어.
>Ya no se que hacer conmigo.
>더 이상 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
>Ya me hice un lifting me puse un piercing, fui a ver al Dream Team y no hubo feeling
>남의 차에 리프팅도 해보고, 피어싱도 해보고, 드림팀을 보러갔고, 아무런 느낌(feeling)도 없었어
>me tatué al Che en una nalga, arriba de mami para que no se salga.
>[[체 게바라]]의 이름을 한 쪽 엉덩이에 새겼지, 지워지지 않도록 '엄마' 문신 위쪽에
>Ya me reí y me importó un bledo de cosas y gente que ahora me dan miedo.
>나는 웃었지, 그리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나 사람들에게 요만큼도 개의치 않아
>Ayuné por causas al pedo, ya me empaché con pollo al spiedo.
>별 이유없이 단식을 해보기도 하고, 전기 구이 닭을 먹고 체한 적도 있어.
>Ya fui al psicólogo, fui al teólogo, fui al astrólogo, fui al enólogo
>나는 [[심리학자]], [[신학자]], [[천문학자]], [[양조학자]]를 만나봤고
>ya fui alcoholico y fui lambeta, ya fui anonimo y ya hice dieta.
>알콜중독자도 되어보았고 아첨꾼도 되어보았지; [[익명]]이었던 적도 있고 [[다이어트]]를 한 적도 있지
>Ya lancé piedras y escupitajos, al lugar donde ahora trabajo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에 침을 밷고 돌을 던지곤 했다네
>y mi legajo cuenta a destajo, que me porté bien y que armé relajo.
>나에 대한 서류에는 내가 어떻게 선행을 했고 말썽을 피웠는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
>Y oigo una voz que dice sin razón
>이유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데 이제 더이상 변하지 않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매일매일 그저 똑같은 사람이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내 인생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네.
>
>Y oigo una voz que dice con razón
>마땅한 사실을 알려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언제나 변화하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정체된 인간이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난 하루하루 조금씩 더 획일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나 자신을 어찌 해야 할 지 알 수 없네.

El Cuarteto de Nos라는 우루과이 밴드의 노래 Ya no se qué hacer conmigo의 뮤직비디오는 신묘한 타이포그래피로 인해 많은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음악이 저 국기에 있는 해님에 비교된다.

No te va gustar (You won't like it)이라는 밴드의 음악도 들어볼만 하다. Chau, Tan lejos, Paranoia 등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으로는 락계열의 음악을 많이 들으며 Nacional Rock이라 하고 Cumbia 쿰비아 라는 남미특유노래를 즐겨듣기도 한다. 이탈리아계 우루과인들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음악이 유명하기도 하다.

7.3. 축구

원래는 월드컵 초대 챔피언이자 첫 개최국으로 세계축구본좌였다.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무려 개최국 브라질을 꺾고 우승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마라카낭의 비극 참고. 이렇게 월드컵 통산 2회 우승국이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급격히 쇠락해서 오세아니아급까지 대추락했다.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때 기운 차리고 옛 명성에 도전하며 최근에는 실력이 크게 올라갔다. 자세한 것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해진 선수는 미쓰에이 수지 닮은 누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때부터 4회 연속으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했다. 2002년 예선때는 호주를 꺾고 본선에 진출했으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는 다시 만난 호주에게 이번엔 역으로 지며[16] 탈락하였다. 2010년 예선에서는 코스타리카를 꺾고 진출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에서는 요르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

아무튼 인구 수 대비 실력은 최강급이다. 견줄려면 현재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4강[17] 중 하나인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정도나 견줄 만하다.

브라질에게 우루과이 원정은 매우 부담스러운 경기이다. 마라카낭의 비극도 그렇지만 몬테비데오 원정, 특히 우루과이의 심장인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의 공식전 승리는 2017년에야 처음으로 기록되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종종 브라질의 발목을 잡는다. 국민감정도 안 좋아 브라질과 대결은 우루과이 판 한일전이 되는데 우루과이인 입장에선 번번히 브라질을 무찌르니 환호할 만 하지만 덩치가 더 큰데도 깨져서 돌아오는 브라질 입장에선 속이 터진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상대로 승점이 쏠쏠하다. 이유인 즉 우루과이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강만 건너면 바로인지라 아르헨티나에게는 우루과이 상대로만큼은 원정도 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8. 외교

아르헨티나와는 오랜 우방이다. 1825년부터 1828년까지 시스플라티나 주(현 우루과이)의 독립선언 당시에 이 독립 문제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간에 벌어진 전쟁인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시스플라티나 주를 대신하여 싸워줘 독립을 쟁취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부끼리도 국민 감정도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로 친하다. 우루과이의 국기도 이러한 독립쟁취에 도움을 받은 아르헨티나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아르헨티나의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을 본떠서 넣은 것이니 말이다.

당연하지만 브라질과는 국민 관계가 꽤 나쁘다. 원래 우루과이는 포르투갈브라질 제국이 빼앗은 스페인 식민지로 남부 브라질 팜파스 지역의 일원이었다가 독립하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일본일본인을 보는 한국인의 감정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 35년 간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나라이기 때문에 치환이 잘 될 것이다. 그래서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축구 경기에서 만나면 난리가 난다. 애석하게도 역대 전적은 덩치가 훨씬 크고 피파랭킹이 앞선 브라질이 현저히 밀린다.[18]

한국과는 1964년에 외교를 맺었으며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UR)를 통해서 나라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는 단점이 있다.[19] 북한과는 미수교 관계.

한국에서 우루과이로 향하는 비행 시간은 약 30시간에 달한다. 이 나라에 가려면 공항+비행기에서 하루 이상을 보내야 하는 셈. 직항도 없고 지구 반대편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홍콩 국제공항+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으로 캐세이퍼시픽 항공+아메리칸 항공 혹은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휴스턴으로 전일본공수+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하게 된다. 그게 싫으면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상파울루의 루트로 갔다 브라질에서 브라질 비행기 아무거나 잡아타고 와도 된다. 편한 방법중 하나로 인천에서 파리로 간 뒤 몬테비데오행 에어 프랑스를 타는 방법도 있었으나 단항했고 한국에서 우루과이를 가려면 인천(서울)-멕시코시티-부에노스아이레스-몬테비데오 루트로 가거나 인천-마드리드-몬테비데오 루트를 이용해야 한다. 중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경유를 한 뒤 몬테비데오로 이동하는데 30분 정도 소요된다. 보통 원양어선 선원들의 경우 자주 타게되는 노선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좌파 정권이 집권한 후로는 서방국가와는 외교관계는 꽤 좋지 않은 편. 이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중남미 국가들도 다 쿠바, 베네수엘라같은 건 아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반이(주류 국가들 위주로 그래서 남미상태가...) 이쪽 경향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우루과이의 대외 무역을 보면 수입, 수출 모두 중국과의 무역량이 미국과의 무역량보다 많다.# 다만 이전보다는 좋지않는 편이라고 해도 경제적인 측면도 있고해서 대놓고 반서방노선을 타지는 않는다. 실제 중남미에서 우루과이는 중도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로 분류된다.[20]

9. 이민

2015년 기준 정보에 의하면 우루과이는 인구 감소로 고민중인데[21] 당장 땅 크기가 한반도의 약 3/4 정도인데 인구가 400만명도 되지 않는다. 한반도의 절반도 안되는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우리와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그래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우루과이에 살 의지만 보이면 영주권을 준다. 즉 전세든 월세든 살 집이 있는 상태라면 1년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1년 영주권을 받고 6개월 이상만 우루과이에 머물면 장기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5년 동안 매년 6개월 이상만 우루과이에 거주하면 시민권 신청자격을 준다. 물론 갖추어야 할 서류는 많다. 아포스티유(apostille)를 받아 서류를 가지고 가는 게 좋다. 이민 신청은 우루과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도 참고할 것.

또 참고해야 할 점은 우루과이는 대학교까지 무상 교육이다. 공립은 초, 중등 교육에서 대학까지 모두 무료이나 사립은 매년 학비가 수천만원 하는 미국 학교, 영국 학교가 있고. 프랑스 학교, 독일 학교가 있는데 그나마 프랑스 학교, 독일 학교가 초중등의 경우 미국 학교, 영국 학교의 절반정도 학비가 든다.

이민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지에서 온다. 남미에서 평가는 치안이나 교육, 복지 등 여러 제반사항이 정말로 괜찮고, 봉급수준도 그럭저럭 괜찮지만[22] 몬테비데오를 제외하면 인구가 적어서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은데다가, 주요 관광지를 제외하면 밤문화도 별로 발달하지 않아서 평화롭기는 한데 오래 머물러 살기에는 정말 정말 심심하다고 한다(...).

뭐 그래도 카라카스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시우다드후아레스, 몬테레이, 산 페드로 술라처럼 총과 마약이 대놓고 돌아다니는 스릴(?)을 매일같이 느끼는 것보다는 정말 훨씬 낫다!!!

한국 교민은 2015년 현재 수십명 정도 거주하고 있고, 최근에는 선박 통행이 많아진데다 통상 관계로 한국인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 원양어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점령 문제로캐안습 아르헨티나 영국과 얽힌 면이 있어 한국 원양어선이 포클랜드로 입항하는 경우 아르헨티나 입항에 문제가 생기는데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무대포식 경제수역 설정이나 기타 관련 사항으로 대다수의 한국 원양어선은 조업해역에서 가까운 아르헨티나가 아닌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모항으로 둔다. 근처의 남서대서양 공해상은 아직 수산기구가 들어서지 않아 어업에 있어 각종 제약에서 타 해역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한국, 중국 어선들의 조업이 많다.

어기가 끝나거나 어획물을 하역하기 위해 입항하는 시즌이 되면 몬테비데오가 한국과 중국인 선원들로 북적인다(물론 가는 곳은 거의 카지노). 카지노 주변에 한국 식당이 4곳 있으며 우루과이의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편이라 아무 생각없이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이 나온다.김밥천X에서 김밥 두줄을 먹었는데 가격이 만원이네? 같은 느낌 관광 면에서도 물가가 싸지 않고 볼거리도 거의 없어[23]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연결거점 정도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신세이며 언어 역시 스페인어를 모르면 상당히 힘들다.

최근 들어 우루과이도 시민권 취득을 제한하고 있어 시민권 취득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시민권을 취득할 거라면 다른 나라를 알아보도록 하자.

10. 행정구역

수도 몬테비데오를 포함 19개 Departamento[24]로 나뉜다.

주명

주도

Montevideo (몬테비데오)

Montevideo (몬테비데오)[25]

Artigas (아르티가스)

Artigas (아르티가스)

Canelones (카넬로네스)

Canelones (카넬로네스)

Cerro Largo (세로라르고)

Melo (멜로)

Colonia (콜로니아)

Colonia del Sacramento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26]

Durazno (두라스노)

Durazno (두라스노)

Flores (플로레스)

Trinidad (트리니다드)

Florida (플로리다)[27]

Florida (플로리다)

Lavalleja (라바예하)

Minas (미나스)

Maldonado (말도나도)

Maldonado (말도나도)

Paysandú (파이산두)

Paysandú (파이산두)

Rivera (리베라)

Rivera (리베라)

Rocha (로차)

Rocha (로차)

Río Negro (리오네그로)

Fray Bentos (프라이 벤토스)

Salto (살토)

Salto (살토)

San José (산호세)

San José de Mayo (산호세 데 마요)

Soriano (소리아노)

Mercedes (메르세데스)

Tacuarembó (타콰렘보)

Tacuarembó (타콰렘보)

Treinta y Tres (트레인타이트레스)[28]

Treinta y Tres (트레인타이트레스)

11. 우루과이 출신 인물

어째 등재된 인물들 태반이 이다

12. 창작물에서의 우루과이

호머 심슨이 개드립을 쳤다. U(You)r(are)guay(GAY)라고(...)(해당 영상).

영화 계엄령에서는 군사독재 시절 당시 우루과이의 시궁창스런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선전물을 나눠주는 1인 시위자를 정부 요원이 대놓고 저격해서 사살한다던가...

대항해시대 2에서는 이곳의 서부에 있는 우루과이 강 유역에서 땅늘보를 발견할 수 있다.


  1. [1] 한반도의 78.36%다.
  2. [2] 반대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여야 가릴거없이 정치권이 부패에 찌들대로 찌들었다는 평이 자자하다.
  3. [3] 우루과이의 흑역사로 꼽힌다. 차루아족들은 우루과이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는데 이들의 뒷통수를 친 셈이 되기 때문이다.
  4. [4] 만약 볼리비아가 칠레로부터 영토를 수복하게 될 경우 칠레도 포함되어 남희귀선보다 남쪽에 있는 나라가 5개국으로 증가된다.
  5. [5]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시스플라나겠지만 당시부터 이미 스페인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참고로 현재도 볼리비아에서 빼앗은 아크레 주 등은 스페인어를 쓴다. 그래서 아크레의 대도시 리오블랑코는 히우블랑쿠 보다는 리오블랑코로 그대로 불린다.
  6. [6] 때문에 브라질은 우루과이를 '잃어버린 고토'라 여기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었다.
  7. [7] 미국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홍콩마카오의 관계와 비슷하다.
  8. [8] Castellano rioplatense(카스테샤노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식 스페인어로 읽는다면 "카스테야노 리오플라텐세".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영향인지 스페인어임에도 나폴리 방언의 억양이 특징적이다.
  9. [9] 7년 전쟁 때 잠깐 포르투갈이 북쪽을 먹었다 나중에 스페인에 돌려주었다. 정식으로 브라질 땅이 된 건 브라질 제국 때.
  10. [10] 스위스 연방평의회(Bundesrat)는 직선으로 7명을 선출하며, 이 중에서 연방의회가 1년 임기의 대통령·부통령으로 한 명씩을 선출한다.
  11. [11] 1985년 민정이양 이후부터. 다만 퇴임한 후 다음 선거에 재출마는 가능한데, 실제로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Julio María Sanguinetti)가 1985~90년, 1995~2000년에 대통령을 지냈다.
  12. [12] 명목상 남미 최부국이나 소득격차도 굉장히 높다.
  13. [13] 우루과이의 복지제도는 왠만한 서구권국가들보다도 일찍 구축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유산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당대에 축산업에 너무 많이 의존하다보니 그만큼 너무도 빨리 무너졌다. 석유값 상승을 통해 두어차례씩(1970년대, 2000년대) 막강한 복지국가를 구축하는듯 싶었다가 석유값 폭락으로 혹간 베네수엘라와 비슷하다. 그래도 그 유산이 1970년대까지도 이어지기는 했다만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사정이 그리 좋은건 아니다보니까 복지제도 자체가 무력화된 타 중남미 국가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민영화를 단행해서 복지국가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졌다. 2000년대 이후로 다시 복지제도가 확대되어가는 추세이기는 한다지만.
  14. [14] 그러다보니 식품은 싸지만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비싸다.
  15. [15]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인들이 아니라고 엄청 싸운다.
  16. [16] 질만 했다. 누가 호주감독인지만 보면 된다.
  17. [17]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준우승국인 독일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로2016 우승/준우승인 포르투갈과 프랑스.
  18. [18]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있어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명실상부한 천적이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특히 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 경기장의 경우 브라질은 여기서 우루과이를 이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19. [19]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임기 중이던 당시 개그작가 장덕균이 쓴 'YS는 못말려'란 책에도 이것을 개그스럽게 묘사했다. 김영삼이 국제대회 출전 중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다음 상대가 우루과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 나라는 우리랑 무슨 원수를 졌는지, 우루과이 라운드로 속썩이더니 이젠 축구로 속썩이네"라고 탄식하더라는 대목이 있다.
  20. [20] 남미에서 강경좌파 집권국가로 분류되고 있는 나라는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정도고,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는 우파 집권 국가, 그 이외엔 대다수가 중도좌파 집권국가로 분류된다. 친미/반미 여부와 좌파/우파 여부가 꼭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우파가 집권한 파라과이의 경우도 친미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하고 중도좌파가 집권한 페루도 서방세계와 관계가 나쁜 건 아니고 오히려 우호적인 편이다.
  21. [21] 출산율은 2명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어서 한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다른 남미국가와는 다르게 이미 1930년대에 출산율이 2명대로 진입한 영향으로 인해 인구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고령인구의 비율이 높고, 소득수준도 높기는 하지만 이것은 높아봐야 남미 기준인지라 소득수준이 더 높은 서유럽 국가들이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지로 이민가는 경우도 많다.
  22. [22] 우루과이보다 최저 임금 수준이 높은 나라는 남미에서 아르헨티나가 유일하다.
  23. [23] 푼타델에스테 같은 휴양지가 있긴 하다. 참고로 저 도시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24. [24] 영어의 'department'에 해당한다.
  25. [25] 수도인 동시에 또 하나의 주(州)인 셈이다.
  26. [26] 보통 그냥 '콜로니아'로 불린다.
  27. [27] 당연히 미국 플로리다 주와는 다르다.
  28. [28] 숫자 33을 뜻한다.
  29. [29] 우루과이를 대표하던 독재자.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독재자와는 다소 거리가 먼 편이며, 오히려 김일성의 꼭두각시였던 김두봉을 생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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