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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와 경력
3. 역사관
3.1. 야사 위주의 기존 역사관 고수
3.2. 역사관에 대한 변호
4. 이야깃거리
5. 저서들

1. 소개

윤승운(尹勝雲)[1]

대한민국만화가. 본관은 파평(坡平). 1943년 8월 25일생. 실향민으로 원래 고향은 함경북도 종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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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에 등장한 오너캐.[2]

2. 생애와 경력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맹꽁이 서당》의 만화가. 순천대학교 만화 예술학과 전임 강사 겸임.

한국의 2세대 만화가로, 어릴 적 부친이 퇴근길에 사다 준 만화책 두 권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가 될 꿈을 키웠으며,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가 불명이라고 한다. 이후 큰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년 시절 효창 공원 주변에 살았는데 백범 김구의 사회장을 6살 때 목격했다고 한다.

1963년 《아리랑》 잡지에 《자선영감》을 게재해서 데뷔했다. 1970년대에는 아동용 명랑 만화를 주로 그렸으며, 1983년에 《보물섬》 잡지에 9년간 역사 만화인 《맹꽁이 서당》을 연재했고, 후에 만화책으로 출판되었다.

역사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우연히 젊었을 적 친척 할아버지 집에 본 역사책을 읽고 흥미를 가져 역사 만화를 그려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일견(一見) 정돈된 그림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데뷔해서 길창덕 화백 눈에 띄어 신문수, 오원석 화백과 젊은 시절 같은 화실을 쓰며 만화를 그렸다. 이때 만난 앞 두 화백과 더불어 박수동, 이정문 화백 등과도 친해 지금도 여행도 가고 같이 어울리는 사이라고.

윤화백의 만화책 《겨레의 인걸 100인》은 서울시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 캡슐에 같이 묻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며, 이 작품으로 문화부가 제정한 '한국 만화 문화상' 제1회 저작상 부분을 수상했다. 심사 위원들로부터 "독창적인 화법과 화기(畵技)를 지니고 있어 창작 만화로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교육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만화를 학습 저해의 요소로 평가하는 한국 교육계에서도 그의 만화는 교육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디딤돌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화백의 필치로 재탄생시킨 만화가 실릴 정도다.

하고자하는 의지가 대단해, 서재에는 3천권이나 되는 고문서와 역사 자료들이 빼곡히 쌓여있으며[3], 한자에 대한 사랑도 대단해 성균관대학교에서 독학 끝에 한문 연수 과정을 수료했고, 유명한 역사 유적지를 직접 방문하는 열정도 보였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지극해서 시작한 것이 《맹꽁이 서당》이며, 어릴 적 목욕탕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연재한 것이 《꼴찌와 한심이》가 있다.

애견들이 상당히 많은데 주로 등장하는 개들은 지인이 준 두 마리, 해피와 설리번. 이들을 항상 표지 서두에 그리며, 보신탕을 못 먹겠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역사 만화, 명랑 만화 외에도 종교(특히 불교)에 대한 지식도 매우 해박해, 항상 그의 만화에는 고승들의 얘기가 그려져 있고, 증산도나 천도교, 대종교나 갱정 유도 같은 민족 종교도 만화로 다루었다. 또한 천주교 계열 잡지인 《소년-내 친구들》에도 장기간 연재를 했으며, 개신교 매체에서도 관련 만화를 그렸다. 종교 만화의 그랜드슬래머 주로 초기 순교자들의 삶이나 조선 말기 시대 상황에 대해 많이 그렸으며, 《내 친구들》을 연재하던 가톨릭 계열 출판사(도서 출판 다솜)에서도 단행본으로 냈으나, 지금은 《내 친구들》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단행본 역시…. 얼마 전까지 2권은 재고가 몇 권 남아있는 게 확인되었지만 1권은….. 별개로 본인은 본래는 무종교로 불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으나 개신교 신자인 아내로 인해 신앙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매우 겸손하여, 만화에서 자주 자신을 환쟁이로 칭하거나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막상 만나본 사람들에 의하면 매우 아는 것이 많다고.[4] 아마도 만화를 그리면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연구해온 덕분인 것 같다.

만화 외적인 활동으로 2000년부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윤리 위원을 3년간 맡았다.

3. 역사관

3.1. 야사 위주의 기존 역사관 고수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어느 정도 비판의 소지가 있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서 야사를 마치 진짜 역사처럼 묘사한다거나,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인다.

맹꽁이서당 같은 옛날에 나온 책들은 광해군을 별다른 근거 없이 폭군으로 묘사했는데 심지어 어떤 책에선 연산군보다 더한 충혜왕과 동급인 폭군으로 묘사했으며 인조를 미화해 놓았다. [5] 정조가 오래 살았으면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개국(開國)했으리라는 말도 나왔고, 임금 몸에 쇠붙이인 을 놓지 않아서 사망했다는 식으로 설명한 부분도 있다. 임오화변의 원인도 사도세자가 당쟁에 휘말려 영조가 판단을 잘못하여 살해당했다는 당쟁 희생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시조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어도 정치인으로서는 그냥 탐관오리였던 정철을 지나치게 띄워줬다는 평도 많다. 물론 해당 서적에서 정치인으로는 0점인데, 문인으로서는 100점이라는 말을 첨언했다.

또한 앞서 언급된 《겨레의 인걸 100인》에서도 그 유명한 허준의 이야기를 그릴 때, 대놓고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의 이야기를 따르겠다고 서두에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드라마와 소설로 이은성의 픽션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그것을 따른 것. 서두에 작가 본인이 분명히 언급했으므로, 이를 놓고 작가를 탓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거기다가 《삼국유사》를 만화화하면서, 정작 삼국유사의 내용 분량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을 《환단고기》로 점철해버렸다. 그리고서는 그것을 참 역사라고 서술했다. 심지어 일연도 환빠로 묘사했다. 일연은 최소한 환빠는 아니다.(…) 애초에 그땐 《환단고기》가 없었다.

비록 역사물은 아니지만, 《탐험대장 떡철이》에서는 조선 시대에는 중국과 일본 밖에 모른다고 오류가 나와 있다. 정확히 떡철이가 꿈에서 조상을 찾아가 신대륙을 찾아 우리가 거기 차지하자는 말했는데, 조상이 바다 건너에는 왜(倭) 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말한다. 이는 오류인데, 일본 말고도 동남아 등에 대해는 조선 초부터 그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은 이미 고려나 신라 시대 때부터 아랍 및 동남아 나라들과 무역도 하고, 특정 구역에 이들이 머무르기도 했으니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세종 초기에 아랍 무슬림들이 조선에 와서 거주하거나 무역을 하던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심지어 조선 초기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도 만들어졌다.[6] 그리고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 군에 흑인 병사가 있는 걸 보고 조선 대신들이 놀라는데, 명나라 사람들이 양인(洋人)들이 있는 대륙 남쪽에 이런 흑인들이 많은 대륙이 있다고 하자, 양인(洋人)들에 대해서는 조선 측도 안다는 반응이 나온다. 16세기 ~ 17세기에는 선교 등을 위해 중국에 와서 머무르던 선교사나 양인들이 적지 않았다.[7]

3.2. 역사관에 대한 변호

다만 이러한 단점들은 작가가 활동한 시기가 19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윤승운 화백이 한창 현역으로 있을 때에는 사료(史料)로 인용할 만한 물건이 《연려실기술》 정도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거의 연구자들의 전유물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시대였으니, 자료 찾는 것부터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학자도 아닌 만화가에게 정확한 역사적 고증 및 사실 전달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부터가 너무 가혹한 처사다.

게다가 당시 국풍81 등의 영향으로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환 사관이 힘을 얻고 있었던 시기였다. 해동검도가 이 시류에 영합해 크게 흥했듯이,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고, 결정적으로 국가적인 단체인 육군사관학교에서조차 '일만 년 역사 웅비하는 한민족' 같은 슬로건을 내세울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윤승운 화백 본인의 역사관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당시 시류에 따랐을 뿐이다.

더욱이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여러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미뤄 볼 때, 광해군이나 장희빈 건으로 작가를 비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재평가 바람이 불기 이전까지는 작가가 묘사한 것이 당시 주류 사학계에서 인정하는 정론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시 각종 교과서, 학술서 등도 다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에 출간한 만화책에서는 광해군은 중립 외교를 주창한 왕이었다는 식으로 평이 바뀌는 등, 작가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집필할 당시의 사관(史觀)이나 시류를 따랐을 뿐이라는 게 맞다. 일단 이 분은 만화가이지 역사학자가 아니니 말이다. 적어도 낡은 사관을 고집하고 이를 지적하는 것조차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유사역사학보다는 훨씬 낫다.

오히려 이 때문에 현대의 노론 음모론보다 더 나은 묘사도 여럿 등장한다. 가령 송시열을 대범하고 충성심 강한 큰 인물로 묘사하고, 임오화변의 원인도 이덕일 식의 노론 음모론과는 달리, 단순히 신하들 간의 정쟁 자체에서 찾으며, 실질적으로 사도 세자를 죽게 한 것은 영조 본인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 이런 해석은 이덕일 이전부터 주류 학계에도 등장했던 학설이다.

또한 당시에도 광해군을 꾸준히 '중립외교의 현군'으로 재평가하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강했으나(특히 노태우 시절의 동구권과의 북방외교의 영향으로), 윤화백은 '광해군은 세자시절에 겪은 울분에 정신이 망가져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 혼군!' 이라는 기존의 평가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늘날 다시 광해군은 '역시 무능한 혼군이자 폭군에 불과했다' 라는 최종결론이 돌고 돌아 원상태로 돌아왔다.

또 윤화백의 역사물에서는, 당대의 다른 학습 만화나 역사 만화 등에서는 채 인식하지도 못한 부분을 제대로 잡아내 그려낸 경우도 여럿 있다. 작가가 즐겨 그린 암행어사 만화에서는 암행어사의 온갖 현시창적인 부분을 꽤 세세하게 묘사했다. 1980년대의 암행어사 만화에 탐관오리들이 암행어사가 비리를 눈치 채지 못하게 별별 짓을 다 한다거나, 심지어 탐관오리가 먼저 암행어사를 제거하는 역관광을 도모한다거나, 임지로 향하던 중 도적의 습격을 당하거나 호환을 당했다거나 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때 대중들이 생각하는 암행어사 이미지는 춘향전의 이몽룡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시절이다.

야사 위주라고 까이는 《맹꽁이 서당》에서도, 세종 시대는 국가 기틀 잡느라 완전한 태평성대는 아니었고, 성종 시절이 태평성대였다는 식으로 당시 사회상을 정확히 묘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맹꽁이 서당》의 표지에서도 작가가 분명히 조선 왕조 500년 야사임을 분명히 표기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최초 《보물섬》 연재 당시에도 그랬다. 그러니 이 작품들을 야사 위주라고 비판한다는 것은, 마치 소설을 놓고 허구를 써놓았다고 비판,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자료가 떡하니 나오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윤승운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다. 같은 이유로 《고우영 삼국지》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제치고도, 아직도 환단고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당장 링크된 인터뷰 항목에도 강단 사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도 어느 정도 국수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자는 다소 안타까운 의견을 내비추고 있다. 인터뷰 참조

4. 이야깃거리

다만 그리기 쉽고 개성 있는 그림체인 대신에 캐릭터의 다양성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 수염과 복장과 주름을 제외하면 모두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캐릭터 재활용이 어마어마하다. 애초에 캐릭터가 구분이 안 돼 있어, 그때그때 그리는 모양. 때문에 같은 인물이라도 나오는 책이 다르면 캐릭터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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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서들

추가 바람.


  1. [1] '승운'은 당나라 때 시인 왕발의 《등왕각서》 중 승우여운(勝友如雲)이란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뜻풀이하자면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라는 뜻. 뜻은 저게 맞긴 한데, 작가의 만화인 《암행어사 한심이》란 만화에선 마당쇠가 '구름한테 이겨서 뭘 해?' 라고 까대는 셀프디스를 했다.(…)
  2. [2] 위 만화에서는 머리카락이 있지만, 근작에서는 대머리로 표현된다. 해당 그림은 보물섬 연재분으로, 서당 소풍으로 계곡에 놀러가서 물고기 매운탕을 했을 때의 장면. 이때의 소개 인물은 김수팽이다.
  3. [3] 상도를 쓴 작가 최인호와 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최인호 생전 상도를 집필하기 위해 임상옥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윤승운의 서재에 관련 자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와 신세를 졌다고 한다.
  4. [4] 이 사람은 연세대학교 농학과 출신이며, 정확히는 연세대학교 농업 개발원 낙농과. 평생 교육원 개념이니 일반적인 학부생은 아니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꽤 고학력이다. 별개로 한학을 배우기 위해 성균관 한림원에서 7년동안 수학하기도 했다. 사실 화백 본인이 회고한 바, 만화로는 먹고 살기 힘들고 평소 낙농에 꿈이 있어 그쪽 관련 공부를 한 것이라고 한다. 일단 만화가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땅을 사 차차 귀농할 준비를 하려던 찰나 아버지같이 키워 준, 평생 농사꾼이였던 큰아버지가 농사도 쉽진 않으니 이왕 한거 쭉 가라고 설득해 만화 쪽으로 못을 박았다고. 지금의 부인도 당시 농업 개발원 동기였다고 한다. 당시 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했을 때인데 대범하게 윤승운을 이쪽 길로 이끌어준 큰아버지의 덕이 컸다.
  5. [5] 실록의 번역이 완료되고 관련 연구가 많아진 지금엔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광해군을 무턱대고 간신배 꾐에 넘어가 폭정을 휘두르는 암군으로 묘사했기 때문. 최근에 나온 Hello 만화로 보는 한국사에서는 조선을 다시 일으키려고 노력한 왕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반대파들을 죽인것과 궁궐공사로 재정파탄이 일어난건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거 같다.
  6. [6] 물론 해당 지도에서 중국과 조선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지긴 했으나, 유럽, 인도, 아프리카, 아랍 지역까지 묘사되어 있을 정도이다.
  7. [7] 그러나 그 조상이 세계사를 잘 모르는 무지렁이라고 하면 어떻게 이해는 된다.
  8. [8] 다만 굳이 그림 등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윤승운 화백의 그림체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이다.
  9. [9] 대표적으로 윤관. 근데 이분은 원래 중요한 분 맞다. 게다가 윤승운 화백 본인이 윤관을 조상으로 모시는 파평 윤씨의 후손이다.
  10. [10] 참고로 박수동 화백도 그림체가 이상해서 아이들 정서에 나쁘다는 같은 이유로 유해 만화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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