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

상단 자막은 직역, 하단 자막은 의역

1. 개요
2. 예시
3. 의역의 한계

意譯

liberal translation, thought-for-thought translation

1. 개요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 시적 표현이나 문화의 차이가 이해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문장이라면 대부분 의역이 필요하며, 언어유희에선 특히 의역이 중요하다. 번역하는 데에 있어 의역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건 의미가 없다. 뒤에서 설명을 하겠지만 좋은 번역이란 직역이나 의역을 딱 구분해서 나누는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번역하는 것이다.

문제는 의역을 "뜻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직역으로 하자니 너무 이상한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몰라 뭉뚱그려서 번역하는 행위" 나는 한다 번역을. 로 알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의역이 아니라 그냥 오역이다. 제대로 된 의역은 원문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나 숨겨진 뜻 등을 제대로 살리는 번역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 웹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을 통해 일본어를 배우거나 미국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을 마니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역이 제대로 된 번역이고 의역은 정말 어쩔 수 없을때만 해야하는 엄밀히는 틀린 번역"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직역이 기본적으로 우선시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직역이 모든 경우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며, 앞서 말했듯 의역도 절대로 비슷한 의미로 뭉뚱그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웹상에 번역된 자료를 볼 땐 뜻을 다 잡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로 "의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족이 붙어있을 때가 있는데, 의역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오히려 직역도 과도한 직역체, 그러니까 번역체 문장의 범위로 넘어가면 이해에 방해가 된다. 한국 웹에서 번역을 하는 많은 역자들은 표현 아래에 녹아있는 의미체계를 잡아내서 옮기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 그냥 문장을 한국어로 '치환'하기만 하곤 한다. 여기에 흔히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붙기도 하는데, 지나친 직역투가 살리는 건 원문의 느낌이 아니라 원문의 형태일 뿐이다. 직역을 해도 의미가 잘 통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원래 두개의 다른 언어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표현은 아무리 의미가 같거나 비슷해도 일반적으로 용법이나 사용 가능한 범위는 딱딱 맞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단어의 용법을 고려하지 않고 대응하는 단어로 치환하기만 하면 아주 억지스러운 한국어가 되는 것이다. 번역은 원문의 단어를 번역할 언어의 단어로 치환하기만 하는 작업이 아니라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대상 언어의 특성을 무시하고 원문 언어를 그대로 치환하는 행위는 직역이 아니라 그냥 해석이고,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도 못 한다. 그렇게 나온 문장은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어의 탈을 쓴 외국어"일 뿐이다. 번역은 다른 나라 말을 전혀 모르는 1개 국어 청취자를 대상이라고 전제로 해야하는 작업인데, 과도한 직역체 문장이 원문의 느낌을 잘 전달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웬만해서는 독자가 이미 번역체 문장에 익숙해서 직역을 토대로 원문을 유추해 뜻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어와 문장 구조 등 많은 면에서 유사한 일본어 번역시 가장 자주 나타나는 점이다.

또한, 단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라면 직역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처럼 유동적인 것을 번역할 때에는 직역체는 상기한 번역체 문장이 아니라 해도 의역에 비해서 적절하지 않다. 원문의 형태를 보존하면 의미전달은 잘 될지 모르나 결과물이 심하게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똑같은 의미를 전달할 표현은 굉장히 다양함에도 다채로운 번역 가능성을 탐구하지 않고 정형화된 표현으로만 뭉뚱그리는 것은 창의적인 의역을 통해 더 유동적인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번역이라고 하기 힘들다. 특히 직역을 한다고 편하게 말하는 대사들을 국어책에나 나올 법 한 딱딱한 문장으로 직역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번역에 지나친 일관성을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번역을 하려면 원어 실력보다 대상 언어 실력이 더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직역과 의역을 무슨 번역의 두 갈래 같은 걸로 인식하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번역을 할 때 유동적으로 택하는 기법 내지는 효과일 뿐, 둘이 양립 불가능해 역자가 둘 중 하나만 택해 일관해야 하는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직역과 의역은 구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한 쪽만 고집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원문에 따라선 한 문장에 직역과 의역이 둘 다 사용될 수도 있다. 일단 아무리 의역을 선호해도 문장이 굉장히 직설적이라면 의역을 할 여지 자체가 없다. 또 예를 들자면 "piece of cake"은 굉장히 쉽다는 뜻인데, 이것을 "식은 죽 먹기"로 번역하는 것이 직역인지 의역인지는 아주 애매한 문제다. 어쨌든 원문에 언급되지 않는 '식은 죽'이 들어가는 이상 의역이기도 하지만, 두 문장 모두 쉬운것을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것에 비유한데다 흔히 사용하는 간단한 표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직역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역 직역을 딱딱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쪽만 일관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며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령 직역을 극한으로 몰고가서, 상기한 "piece of cake"을 문자 그대로 "케이크 한조각"이라 번역하면 가독성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 혼돈의 카오스 역자의 취향에 따라 애매한 문장을 번역할 때 어느 한쪽을 선호할 수는 있겠지만. 다만, 실제로 인터넷 등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에게서 직역체를 선호하는 경향을 찾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사실 아마추어 번역가들의 문제는 의역, 직역이 아니라 번역 자체를 제대로 못한다. 예를 들자면 단어를 빠뜨리거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듣거나, 그리고 단어에 들어있는 암묵적인 뜻을 모르거나다. 예를 들자면 Ellen show 에 등장하는 남자 피겨는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인데 그의 대사 중 하나인 "Say hello to my crystal" 을 은근히 많은 비디오에서 "내 크리스탈에게 인사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crystal 은 마약 중 하나인 메스암페타민 (Methamphetamine) 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메스암페타민은 크리스탈로 이루어졌기 때문.

또 비슷한 예로 어벤져스에서 로키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치타우리 셉터를 찔러 세뇌를 하려고 했다가 실패했을 때 토니가 "Performance issue"라는 개드립을 치고 이것이 국내 자막에선 "발기부전"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이게 오역이다 아니다 논란이 컸는데 실제로 오역이 아니다. Performance issue를 직역하자면 성능 문제인데 여기서 말하는 성능은 남자의 그것(…)의 성능을 의미하기도 하고, 로키가 셉터를 사람에게 찔러 세뇌하는 걸 삽입에 비유해 그게 안 되니 발기부전이라고 드립을 친 것이다. 여기에 "중년 남성"이라는 원문에 없던 말이 추가되긴 했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면 발기부전이라는 번역은 아주 탁월한 의역이었고, "성능 문제"라고 직역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번역이었다.

2. 예시

예를들어 일본인 A가 일본인 B에게 말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해보자. 여기서 번역가가 번역해야 될 대상은 단순히 일본인 A가 한 말이 아니라, A와 B 사이에 오가는 의미체계다. B가 A의 말을 그냥 알아들을 수 있듯이, 번역본을 보는 사람도 번역가의 번역을 그냥 알아들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번역인 것이다. 그래도 원문의 맛을 살리고 싶다면 반드시 따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1]

영어 표현 "You can find faith at the end of a sword"란 표현은 그대로 해석하면 "칼 끝에서 신앙심을 찾을 수 있다"가 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마치 칼날의 꼭지점이 어떤 형태로 신앙심과 연결된다는 상징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문장의 실제 뜻은 칼 끝이 (코앞까지) 들어오면 믿음이 생길거다라는 뜻이다. 보다시피 원문에는 '협박'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부분이 전혀 없지만 표현이 그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문장구조 속에 녹아 있는 의미는 직역체로는 놓치기 쉽고, 설령 반영한다 해도 원문 구조에 얽매여서는 오히려 더욱 어색하고 장황한 문장이 만들어져서 소위 억지번역이 되기 쉽다. 중요한 건 원문이 정확히 뭐라고 쓰여 있느냐 이전에 그 원문이 가진 의미와 영향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원문의 구조에서 벗어나 의미전달을 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시적 표현이나 의도적으로 빙빙 돌려놓은 표현을 다 직설적으로 바꾸라는 뜻은 아니다. 원어민에게는 평범한 표현, 숙어 혹은 속담이지만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인해 외국 독자가 즉시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원어민에게도 직설적이지 않게 돌려 표현한 문장은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뜻의 표현이라도 용법이나 사용 범위가 다르면 두 언어의 차이를 명확하게 숙지해야 한다. 한국어에는 을 '꾼다'고 하는 표현이 따로 있지만 일본어에서는 '본다'는 뜻인 '見る'를 사용한다. '見る'와 '보다'는 같은 뜻이지만 사용범위에 차이가 있음을 감안하지 않고 "夢を見る"를 그대로 "꿈을 보다"라고 직역하면 이는 몹시 어색한 번역이다. "꿈을 꾸다"라고 의역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다.

영어에서도 예를 들어 보자면 please라는 표현은 흔히 "제발"이라고 직역하지만 사실 please는 좀 더 용법이 넓다. "제발"은 애걸한다고 할 정도로 진지하게 부탁할 때에나 쓰는 표현이지만 please는 단순히 부탁을 정중하게 하는 높임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영화에 종종 나오는 "You forgot to say please"란 표현은 "제발이라고 말하는 걸 잊었잖아"라고 번역하면 곤란하다. Please가 빠지면 명령조처럼 들리는지라 부탁을 하는데 예의바르지 않다고 지적하는 말이기 때문인데, 한국어에선 보통 단어 하나의 유무로 부탁인지 명령조인지가 크게 갈리지는 않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번역하려면 "부탁하는 놈 말투가 그게 뭐야?" 같은 과감한 의역이 필요하다.

이는 표현 뿐 아니라 조사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어는 문장구조가 한국어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어에 사용되는 조사를 해당하는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해 버리기 쉬운데, 사실 두 언어의 조사는 해당은 될지언정 뜻과 용법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お前に何がわかる?"라는 문장을 보자. 조사를 그대로 옮겨서 번역하면 "너에게 뭐가 알아?"가 된다. 그러나 한국어엔 이런 표현 없고 "네가 뭘 알아?"라고 말한다. 비슷한 예로 "私が分からない?"는 나를 못 알아보겠냐는 뜻이지만 과하게 직역하면 "내가 모르겠어?"가 되어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장구조가 비슷하다고 일본어의 단어와 조사 등을 그대로 가져와도 뜻이 통할 것이라는 오해를 가지고 직역을 하면 한국어면서도 한국어가 아닌 괴상한 문장이 탄생해 버리는 것이다.

또 일본어는 특성상 빙빙 돌려서 표현하는 등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이걸 또 원문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한국어에 없는 표현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俺はお母さんに起こされた같은 문장은 직역하면 '나는 엄마에게 깨워졌다'가 되지만, 당연히 어색하므로 자연스럽게 해석하면 '엄마가 나를 깨웠다'가 된다. 참고로 다소 억지로 깨웠다는 느낌도 있으므로 문맥을 봐서 '억지로' 등의 표현을 추가해도 괜찮다.

일본어 고유의 관용구 표현도 당연히 의역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흔히 쓰이는 正直者は馬鹿を見る같은 표현을 '정직자는 바보를 본다'라고 번역하면 그건 그야말로 해석이고, 오역이다. 실제 뜻이 완전히 상실되어서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제대로 번역하면 '정직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가 적당하며, '정직한 놈이 바보다'같은 해석도 가능하다.

비슷한 예로, 일본 가정에서는 서로를 부를 때 상대를 자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가정 내의 위치로 부르곤 한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일본인 본인들은 서로를 아빠, 엄마라고 생각하고 부르는 게 당연히 아니다. 단지 단어의 용법이 더 넓을 뿐이다. 이러한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원문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부부의 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서로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번역을 한다면 그게 정말 원문의 느낌을 살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걸로 의역하는 것보다 나은 번역이라고는 더욱 할 수 없을 것이다. '철수 아빠/엄마'라는 식으로 자식 이름을 붙이면 그나마 낫겠지만, 이렇게 하는 순간 이것도 직역의 범위는 벗어나는데다 쓸데없이 문장을 길게 늘이게 된다.

의미는 바뀌지 않더라도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표현의 경우에도 의역이 필요하기도 하다. 가령 명탐정 코난츠부라야 미츠히코(정세모)의 말투. 일본어 원판에서는 존댓말을 쓰는데, (소위 존댓말 캐릭터다) 그렇다고 한국에서도 그걸 그대로 '코난 군, 뭔가 찾으셨습니까?' 같은 식으로 번역하면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웹상의 불법 자막엔 미츠히코의 존댓말이 난무한다 [2]

번역체 문장/영어 항목에도 설명된 것처럼,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대명사를 과도하게 가져오는 경향도 많다. 자세한 것은 해당 내용 참고.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문에 사용된 대명사를 그대로 가져왔다간 "Give it to me(이리 내놔)!" 같이 평범한 문장도 "그것을 나에게 줘!" 같이 괴상하고 장황한 문장이 되곤 한다.

반대로 한국어나 일본어 등 동양권 언어 특유의 한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들은 영어 같은 서구권 언어로 번역하기 매우 힘들다. 의리, 감지덕지, 불효자식 등의 단어는 영어엔 그대로 대응하는 짧은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의 뜻을 그냥 나열만 해도 뜻이 통하긴 하지만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대사의 일부일 경우에는 "이 불효자식아"를 "You son with no respect towards his parent" 따위로 직역했다간(…) 미칠듯이 어색해지기 때문. 잘 된 의역의 예를들자면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에서 루퍼스 신라의 "눈치 좀 채라, 이 불효자식아"를 "A good son would have known (효자라면 눈치챘을 것을)"로 원문의 형태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면서도 뜻을 그대로 살려 매우 적절하게 번역한 영어 더빙판 대사가 있다.

사실 문장이 아니라 이름, 용어 등의 단어도 의역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한 단어라 할지라도 뜻이 있는 이상 의미전달이 필요하고, 문화적 차이가 있다면 직역은 올바른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예로, 일본에서 宇宙人이라는 단어는 우주에서 온 이종족을 의미하는데 한국어에서 그런 개념은 보통 '외계인'이라고 일컫는다. 이걸 한국 한자음대로 읽어 '우주인'이라고 적는다면 우주비행사와 헷갈릴 수 있으니,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역이자 발번역이 된다.

이렇듯, 너무 직역에 고집해서 배경 지식이 필요하거나 우리 말에서 잘 안 쓰는 표현으로 번역한다면 그건 번역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해석이다. 특히 사전 펼쳤을 때 맨 먼저 나오는 것으로만 번역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문장 뿐 아니라 단어라는 것도 서로 1:1로 대응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말도 동음이의어나 다의어가 많은 것처럼, 영한사전을 봤다면 1번 뜻, 2번 뜻, 3번 뜻…하고 단어 하나에 여러가지 뜻이 있다. 그러니 그 중에 어느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찾아봐야 한다.

원문 : She was taken off by other women.
올바른 의역 :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데려갔다.
잘못된 의역 : 그녀는 다른 여자들에 의해 옷이 벗겨졌다(?!).

끔찍한 의역: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이륙시켰다(!!)

예를들자면 특히 노래 가사나 시 등에서 운율이나 어감을 위해 조사를 빼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에 앞 뒷 문장을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조사를 이어주거나 어순을 바꿔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강한 직역만 강요해서 번역체 문장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정수같은 본좌도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번역체로 가득한 내용하고 다르다며 지적하는 일빠 사람이 있다.

3. 의역의 한계

앞서 설명했듯 의역은 세상에 어떠한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언어로 작성된 문장에 직설적이지 않은 암시가 포함되어 있는 이상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의역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의역을 과하게 했다가 오역의 범주로 넘어가는 사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역은 필연적으로 원문의 구조에서 벗어나게 되는 만큼 역자가 원문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거나 대상 언어로 옮기면서 창의성을 과하게 발휘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시키면 문장 구조도 뜻도 원문에서 벗어나서 사실상 발번역이 된다. 직역의 경우에는 아무리 뜻 전달력이 막장이라도 어쨌든 원문의 형태에는 충실하기 때문에 비교적 받아들여지기 쉬운 경향이 있다. [3] 이러한 문제는 의역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역자의 역량 때문에 생기는 실수지만, 어쨌든 의역을 할 때에는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기준 자체는 위처럼 '원문의 뜻을 살리는 번역'이지만, 사실 정확히 따지기는 복잡한 일이다. 애초에 사람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일부는 그저 내용(본질)만 옮기면 그 언어(그릇)이야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의역 역시 초월번역이나 오역과 함께 여러모로 정의하기 어려운 범주다.

예를들어 왈도체 같은 발번역의 경우는 의역이 아닌 확실한 오역이며, [4] 발번역 항목에 있는 만갤 번역 짤의 경우는 번역한 표현을 한국식 속어로 바꾸고 몇몇가지를 창작해서 추가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의역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다.


  1. [1] 신약성서에서 세례 요한이 "나는 예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실내에서는 맨발로 다녔고, 밖으로 나올 때는 끈으로 된 샌들을 신고 다녔다. 당연히 밖에서 돌아다니면 발이 흙투성이가 되는데,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집 노예가 문간에서 꿇어앉아 돌아온 주인의 신들메를 풀어주고 발을 씻겨주는 것이 당시 풍습이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의 노예만도 못하다고 말하고있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에도 이러한 맥락이 담겨 있다. 이렇게 번역된 한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도 배경지식이 이 정도로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2. [2] 이 '어색함' 이란 것은 단순히 우리들에게 익숙하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또래 친구에게 존댓말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코난 공식 더빙판의 경우 인명이나 지역명등을 현지화했으니 당연히 반말 번역이 적당하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존댓말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그런 사람들만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대중적이어야 하는 공식 번역에서 친구들 사이에 예의바른 존댓말을 구사하는 것은 무척 어색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3. [3] 특히 성경은 의역을 하다보면 번역자/번역팀의 신학관과 사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진지한 묵상/통독/연구용으로 의역 중심본보다는 직역 중심본이 선호되는 편이다. 반면에 성경 중 의역 중심본은 독해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에 초신자나 비신자들이 선호한다.
  4. [4] 애당초 왈도체는 의역이 아니라 오히려 직역을 잘못한 것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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