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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泰春

1960년 2월 7일 ~ 1987년 6월 24일

1. 소개
2. 약력

1. 소개

이태춘은 대한민국 거창군 출신의 민주 열사 이다. 본관은 하빈(河濱).

1960년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월하마을참조[1]에서 태어난 그는 거창 마리초등학교를 다니다가 4학년 때인 1970년 부모님을 따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신암마을로 이주하였다. 이후 부산 선암초등학교, 동의중학교, 금성고등학교를 거쳐 1986년 동아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의 화승고무- 태광고무에 입사하여 근무 중 당시 전국적으로 펼쳐진 6월 항쟁에 참가하였다. 평소에도 진지하게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이 컸던 그는 6월18일 열린 6월 항쟁 부산집회에 참가하여 좌천동 고가도로 위에서 가두 행진을 했다.

1987년 6월 18일 밤, 그는 부산 좌천동 고가도로 시위에서 '한열이를 살려내라', '독재타도 호헌철폐' 등지의 4.4조 음율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행진하다 전경들이 난사한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다리 밑으로 추락하였다.[2] 시위대가 지나간 뒤, 이를 발견한 오선숙씨 등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4명(남2, 여2)이 지나가는 승용차에 급히 태워서 대연동 재해병원으로 후송했다.

결국 병원의 시설미비로 밤 12시경 다시 봉생병원으로 옮겨 신경외과에서 뇌수술을 하였으나, 그는 끝내 회복을 하지 못하고 6월 24일 저녁 8시에 눈을 감았다.

이후 6월 25일 부산대 병원에서 부검을 실시하여 부검 결과 직접적 사인은 뇌좌상이었고 오른쪽 이마 윗 부분에서 정수리를 거쳐 후두부까지 20.5cm에 이르는 종방향 두개골 골절이었다. 그 외 신체 어느 부위에도 일체의 외상이 없었다. 부검 후 22밤 10시경 시신을 연산동 시립 부산의료원 영안실로 안치하였다가 6월 27일 밤에 범일성당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이태춘 열사의 장례식에 장례위원으로 참석했다. 노무현 변호사는 이태춘 열사의 영정을 안고 시내 행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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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력


  1. [1] 하빈 이씨 집성촌이다.
  2. [2] 이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은 저지선을 뚫어 KBS부산방송총국을 습격하여 화염병을 던져 집기 일부를 파손했으며 밤 사이 경찰 저지선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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