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1. 개요
2. 역사적 전개
3. 방식
4. 정치

政敎分離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대한민국 헌법 20조

교회는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정치 투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가를 대신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이성적인 토론의 길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하며, 그 정신적인 힘을 다시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한 힘이 없으면, 언제나 희생을 요구하는 정의는 구현될 수도 없고 진보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동선의 요구에 마음을 열고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교회는 정의 증진을 위한 활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28항 中

1. 개요

현대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하여 권력과 특정 교단을 결부하지 않는 것.

2. 역사적 전개

정교분리는 프랑스 혁명 이후 봉건왕조 체제의 종교의 국교 특권을 박탈하고, 특정 종교의 전횡을 방지하며, 근대 국가의 정책에 종교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오늘날 프랑스식의 정교분리를 의도한 것은 아니며 앙시앵 레짐에서 프랑스의 국교였던 가톨릭을 공격하여 교회와 수도원을 약탈하고 사제수도자들을 학살하고는 교회에게 충성을 강요한 전적이 있다. 그후 나폴레옹 시기 교황청과 화해했고[1] 다시 왕정복고를 거쳐 국교의 지위를 얻었으나, 19세기 중반 왕정이 무너지고 프랑스는 세속주의 국가가 된 것. 이러한 모습은 국민의회 의원들이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교회를 통제할 수 있다'라는 중세적인 사고방식을 따랐기 때문인데,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의도하지 않았던 부산물로서 정교분리 개념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회 의원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추호의 적의도 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분명히 표명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종래 왕권이 교회 문제에 관여했던 것처럼 자기들도 국민의 대표자로서 교회 문제를 규율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중략) 세속적인 국가권력이 교회 문제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은 근대 시민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국민의회 의원들 머리에서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 中, 노명식

먼나라 이웃나라 등을 통해 종교적, 사상적 자유와 관용이 꽤 보장된 것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에서도 한때 이 주제가 불거졌었다. 주변국과 달리 법적인 국교를 정하진 않았다지만 스페인에서 독립하는 데 구심점이 된 칼뱅파 교회가 사실상의 국교 노릇을 했고[2] 가톨릭이나 알미니안 교회 등의 타 교단들은 공직에 등용되지 못하는 데다 공개적인 종교 활동도 금지당해서 다락방이나 지하에서 조용히 의식을 치루어야 했다.[3] 19세기에는 왕이 교회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까지도 네덜란드 사회는 완전한 공존이라기보단 '기둥화'(verzuiling, pillarization)라 해서 종교와 이념에 따라 학교, 정당, 방송국[4], 신문사 등 여러 시설이 분리되어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갈등도 꽤 존재했다. 의외로 흔히 생각하는 네덜란드 사회의 자유주의적 이미지는 프랑스, 독일처럼 196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것이다.

한편 미국의 수정헌법 1조가 정교분리에 해당하느냐의 여부를 두고 근본주의 기독교에선 국가설립 당시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던 건국의 아버지들의 뜻을 곡해한다고 주장하고, 반종교 성향에선 건국의 아버지들은 전부 반기독교였다고 주장하는데 둘 다 어느 정도 사실을 왜곡한 면이 있다. 수정헌법 1조는 어디까지나 청교도들이 주장한대로 기독교에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전신) 같은 국교와 같은 기독교내 특정 종파를 나라에서 국교로 정하고 소수 교파[5]를 탄압하는 것을 금지하는 취지였지 기독교와 완전히 분리된 사회를 만드려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이신론 성향이었는데 이것이 당시 서유럽에서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기독교 세례만 받았다면 이신론 성향은 그다지 탄압받지 않았고 무신론이나 기독교 내 이단과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볼테르나 루소는 이신론이었으나 종교문제로 탄압받지 않았고[6], 오히려 지식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명목상 프로이센 개신교회 수장인 프리드리히 대왕은 불가지론자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신론 또는 아예 개신교에서 무관심해진 인물(대표적으로 존 애덤스)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들의 정치관과 윤리관은 청교도들의 칼뱅주의 사상이 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처럼 반기독교적 색채를 띈 것은 아니다.[7]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비록 혁명정부가 사제들에게 교황 대신 혁명정부를 따르라고 요구해 영국에서 처음 성공회가 생겼을 때처럼 탄압이 이루어졌지만 혁명정부 국민의회 의원들은 가톨릭 신앙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19세기 이후 근대국가들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법체계가 정비되며 전통적 국교는 지니나[8] 점차 세속주의 성향을 띠게 된다. 제1,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며 유럽의 왕정들이 붕괴되자 현대국가들은 헌법상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하게 된다.

  • 2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의 경우 아직도 성공회잉글랜드에서 국교로 규정되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지위일 뿐 정치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상원에 성직자 의석이 있긴 한데 찰스 1세 시절 성공회 주교들을 거수기로 뽑아서 비판받았고 1688년 명예혁명 이후엔 영국 국교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영국 국교회 &lt;39개 신조&gt;에 위배되지 않는 기독교 종파의 차별은 금지되었고,[9] 현재에도 국왕의 성직귀족 임명 권한은 매우 형식적이다.
  •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 공식적으로 개신교 루터교회가 국교다.[10] 그러나 국교의 권위는 형식적이며 세속화 되어 국가적 행사나 왕실의 관혼상제에나 출현하는 용도일 뿐, 국교의 지위라기 보다는 전통적 문화적 관습으로 여기고, 루터파 교회 신자라 하여 타 종교인과 비교하여 혜택이 전혀 없다.

2차대전 이후 수립된 제3세계 국가에서도 이들 근대화된 국가들의 헌법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바이며, 대한민국 헌법 20조 2항에도 마찬가지로 규정되어 있다. 터키오스만 제국 때부터 시작되어 케말 아타튀르크 때 부터 본격화된 철저한 정교분리 정책으로 유명한 세속 국가다. 비록 에르도안 총리-대통령 대에 와서 조금 위태로워졌지만, 여전히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비교하면 정교분리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진다. 타국 헌법의 경우는 추가 바람.

그러나 이슬람 국가를 중심으로, 지금도 권력과 교단이 일치된 나라가 존재한다. 호메이니가 제창한 벨리야테 파키(Veliyat-e-Faqih) 이론에 따라 신권 정치로 이슬람 성직자(아야톨라)가 최고 지도자를 겸하는 이란이 대표적이며[11], 신정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특정 종교 문화를 강요(이슬람 근본주의)하는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외)들이 있다.

어떤 국가들은 기독교의 이름을 내걸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연합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시도가 있어 왔는데, 기독당, 기독사랑실천당, 기독자유민주당, 한국기독당 등이 나섰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그 외에도 다른 종교들도 불심으로 대동단결 간간이 시도하긴 했는데, 통일교 역시 한 정당을 지지하였으나 똑같이 말아먹은 사례가 있다.[12] 그러나 이런 종교정당의 경우 프랑스 같은 극단적 케이스를 제외하면 정교분리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건 후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의 기본 통치철학은 유교, 성리학에서 비롯되었다.[13] 실질적으로 조선의 통치는 유학을 이념으로 하지만 법가식 통치였단 평을 받기도 한다. 하여튼 기본적으로는 유교의 논리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졌다. 성리학은 형이상학적 논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천인감응이니 하며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유교 성리학이 국교의 지위로 종묘와 사직에 제사가 왕실은 물론 국가의 중요한 의례였으며, 지방관들은 고을별 명산대천에 사시사철 제사를 지내야 했다.

불교에서는 중국 동진승려였던 혜원이 "승려부처님의 제자로 세속을 벗어난 존재이므로 천자에게 절해야 할 이유가 없고 동시에 천자의 정책에 승려의 자격으로 동조해야 할 의무도 없다"는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주장한 것을 정교분리를 주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선종 도입 이후 선승들은 대체로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고 중앙 정계와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삼기도 했는데, 신라 말기의 선승으로 봉암사에 머물렀던 지증대사는 수도 서라벌로 와서 머물러 달라는 경문왕의 요청에 "새도 나무를 가려 앉을 수 있다는 말씀은 감사하나 폐하의 부르심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없게 저를 그냥 진흙 속에 내버려 두셨으면 합니다."라며 거절했으며 잠깐 서라벌에 와서 왕을 알현했다가도 곧 다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종교정당의 활동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독교 우파를 표방한 기독자유민주당 같은 비현실적 구호를 내세운 사례가 있지만, 이것은 미국의 경우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종교인들의 외면을 받고 있을 뿐이지만, 미국에서는 정말로 진지하게 호응을 얻는 것 같다. 『지상의 위험한 천국』의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이를 두고 기독교 파시즘이라 불렀고, 『신의 이름으로』의 저자이자 종교학 교수 존 티한은 권력은 기독교 내의 폭력성을 실현시키는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교단을 편드는게 아니라면, 기독교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독일 기민련, 기사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종교정당 역시 민주정과 조화가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정교분리의 구체적 적용방식에 대한 차이를, 곧 후술할 프랑스식 정교분리와 미국/독일식 정교분리의 차이 등을 낳는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정교분리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에 속하며, 종교의 자유 역시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의 전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3. 방식

정교분리는 구체적인 적용 방식에 있어서 국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해석의 차이가 크게 존재한다. 첫번째 유형은 국가가 특정 교단에 특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형태가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는 미국독일이다. 미국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당선자 개인의 종교와 연관시켜 선서 등을 할 수 있으며, 조지 W. 부시가 2002년 9월 11일 9.11 테러 1주년 당시 "미국의 이와 같은 이상은 모든 인류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이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라며 요한복음 1장을 살짝 변형한 연설을 한 바 있다. 독일은 기독교민주연합그리스도교 계열 정당이 나름의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라기보다는, 국가권력과 특정 교단의 분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한편 정교분리의 구체적 적용 방식에 있어, 2번째 유형은 공적인 장에서 일체의 활동을 배제하는 형태가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는 프랑스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프랑스프랑스 혁명 때부터 이어져 온 계몽주의 정신과 여기서 비롯된 엄격한 정교분리 철칙인 라이시테로 인해 정교분리를 택하는 다른 국가들보다도 종교적 행동에 더 강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상징 노출 금지나 특정 종교를 암시하는 행위 금지 등이 있는데,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을 금지하여 논란이 되었을 정도로 종교를 엄격히 배제한다. 히잡 착용뿐만 아니라 공립학교 십자가 비치도 금지된다. 프랑스는 헌법 제1조에서 프랑스를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불가분적 공화국"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현재 프랑스는 이슬람교와 특히 큰 마찰을 빚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풍자하고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만화가들이 대낮에 사살을 당한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프랑스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재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터키아타튀르크 이후 프랑스식 세속주의 체제로 나갔다. 애초에 터키어로 세속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프랑스어에서 빌려와 Laiklik 이라고 부른다.[14] 한때 공공장소에서의 히잡착용조차도 엄격하게 처벌했지만, 현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영미식 자유주의적 세속주의를 언급하며 종교의 자유의 이름으로 이러한 제약들을 풀고 있다. 하지만 2017년 현재도 국립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일체의 종교적 상징의 사용이나 용어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과거처럼 십자가 목걸이를 하거나 히잡, 터번을 한 채로 공공기관이나 공공시설에 출입한다고 제약을 가하지는 않지만.

3번째 유형은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분리하고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경합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정교조약(concordat)을 체결하여 상호관계를 처리하는 형태이다. 이 사례로는 이탈리아폴란드 등이 있다. 이탈리아 헌법은 제7조에서 “국가와 가톨릭교회는 각각 자기 영역 내에서 독립적이며 주권을 가진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라테란 협정(Lateran Concordat)으로 정한다” 라고 밝힌다. 폴란드는 헌법 제25조 4항에서 “폴란드공화국과 로마 가톨릭교회 간의 관계는 교황청과 체결된 국제조약과 법률로 정한다”라고 선언한다.

4. 정치

한국의 경우, 미국독일에 가까운 정교분리를 채택 중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종교와 연관지어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행위가, 적어도 한국과 미국, 독일의 기준에서 보자면 정교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마틴 루터 킹 목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등은 스스로의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연관시켜서 공적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건 프랑스 등의 국가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정교분리는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을 분리하라는 의미이지 종교'인'이라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는 특정 종교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정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된다. 실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정교분리라는 단어가 이런식으로 종교인의 참정권 행사를 방해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엄밀히 정교분리원칙에 따르자면, 종교인 역시 종교인이기 이전에 민주사회의 구성원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격 신부, 목사, 승려는 투표하면 안 된다는 논리 정치적 무관심 항목에 있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시의 작가인 마르틴 니뮐러 역시 목사였다. 이는 반종교국가 무신론이다.

정교분리에 대한 또 다른 흔한 오해는, 이것을 마치 "종교의 정치화", 즉 종교가 정치를 잠식해 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방어권으로만 이해한다는 점이다. 정교분리는 이뿐만 아니라 "정치의 종교화", 즉 정치인의 신격화 내지 정치권력의 우상화를 막는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15] 그리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종교를 탄압하는 것을 막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1. [1] 교회 재산 문제와 세속주의 교회 수도원의 교육기능 복원 문제 때문에 교황청에서 거절했으나,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나폴레옹이 "또 한번 교회와 사제들 공격할 수 있다"고 으름장놓고 "칼뱅파로 개종하고 프랑스개신교에 봉헌(?)해 버릴까?"라고 협박하여 교황청에서 굴복했다.
  2. [2] 네덜란드 공화국 시절부터 개혁교회의 목사는 국가에서 직접 월급을 받는 등 준 공무원에 가까운 지위를 누렸지만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부모가 아이에게 세례를 줄지 말지를 알아서 선택하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타 국가의 국교회와 달랐다. 그래서 국교회가 아닌 '국민교회'(volkskerk)로 불렸었다.
  3. [3] 지금도 'schuilkerk'라 불리는 가톨릭 및 재세례파, 루터교도의 비밀 집회장소가 문화재로 남아있다.
  4. [4]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은 합쳐진 KRO-NCRV가 각각 가톨릭 방송과 개신교 방송이었다.
  5. [5]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잉글랜드에서 탄압받던 비국교도 복음주의자, 재세례파, 침례회 성향이 많았다.
  6. [6] 루소는 스위스 개신교도였는데 프랑스에서 활동하느라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는 했다.
  7. [7] 알리스터 맥그래스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
  8. [8] 대표적으로 영국성공회, 프로이센은 개신교, 러시아 제국정교회.
  9. [9] 1689년에 시대의 지성이었던 바로 그 존 로크가 관용의 기치를 들고 이에 맞선 바 있다. 그의 저작인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존 로크는 스튜어트 왕조 시절 박해받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청교도식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가톨릭과 유니테리언 차별은 1840년대까지 이어진다.
  10. [10] 노르웨이에서는 2014년에 국교 지위가 상실되었다.
  11. [11] 하지만 시아파 성직자들 중에서도 성직자의 정치 참여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상당하다.
  12. [12] 한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신자로서 종교인들을 존경하는 것과 유권자로서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철저하게 분리해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교회나 절 등지에서 종교인들을 존중하거나 심지어는 숭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투표에서 신앙을 기반으로 한 정당을 찍어주지는 않는다.
  13. [13] 동양사회에서 敎, 學, 道의 구분은 엄밀하지 않았다. 성리'학'이라고 해서 종교성이 없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도교도 마찬가지고, 기독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 서학이라 한 것은 서양 학문이란 의미가 아니라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였으며, 사실 불교도 조선시대 불도로 불리는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4. [14] 좀 더 나가자면, 전통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선 세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모든 인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고, 특히나 이슬람교에서는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율법이 민법의 역할도 맡았다. 현재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율법이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 때문에 현대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에서도 세속주의는 모두 외래어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으며, 이슬람주의자 또한 "세속화는 서구 기독교적 개념이지 우리랑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15. [15] 『한국헌법론』(개정 9판), 허영,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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