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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삼국지의 인물들에 대한 내용은 한복(삼국지) 문서를, 중국(한족)의 전통 복식에 대한 내용은 한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아시아의 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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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기모노

아오자이

치파오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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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감각으로 디자인된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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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여성한복. 기본 치마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도식화

1. 개요
2. 구조
3. 역사
3.1. 시대별 변천사
4. 다른 나라 전통복식과의 비교
4.1. 서양권의 인식
5. 한복에 대한 인식
5.1. 현대의 한복
5.1.1. 생활 한복
5.2. 왜곡된 보수성과 억지 비난
6. 대량생산의 어려움
7. 한복의 실루엣
8. 한복/종류
9. 장신구
10. 머리
11. 소매 종류
12. 옷깃 종류
13. 바느질
14. 원단
15. 입는 순서
15.1. 전통 방식
15.2. 현대
16.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17. 관리하는 법
18. 말기와 가슴가리개
19. 현대에 들어 생긴 것
20. 대중문화 속의 한복
20.1. 한복을 입은 캐릭터
20.2. 한복 일러스트
21. 관련 문서
22. 둘러보기

1. 개요

한복(.)은 한민족전통의상을 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변하고 있는데 현대에는 주로 조선의 말기 양식과 그의 개량형이 한복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현대에는 붕어배래, 조끼허리풀치마, 조끼, 마고자 등 구한말 이후에 변형된 형태 위주로 입는다. 그리고 여자 한복 뿐만 아니라 남자 한복 역시 구한말 이후 변형된 양식이 흔한데 이러한 양식을 전통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후술하겠지만 실용 의복으로써의 가치는 낮다. 현대의 한복은 소재의 다양성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2. 구조

저고리, 허리띠, 고름, 바지, 모자류(건이나 갓 등), 귀고리 등이 기본 구성이다.

기본적으로 상유하고(上襦下袴)[1] 양식을 띠고 있다. 북방(알타이)계 호복을 근간으로 상의와 하의가 나누어져 있어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로 구성된 활동적인 복식이다.[2] 또한 아한대성 기후조건 탓에 몸을 감싸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한푸와 달리 치마 속에도 반드시 바지를 입는다.

원래 성별과 상관없이 귀고리까지 착용하는 것이 기본 착장이었다.[3] 고분 발굴을 통해 신라삼국시대 때부터 그랬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 초기(임진왜란 이전)에도 성별 불문하고 귀를 뚫고 귀고리를 착용했다.세종실록 3권, 세종 1년 1월 6일 신해 4번째기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사대부 자손들이 귀고리를 착용했으며, 금이나 은을 써도 법에 저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선조 5년(1572)에 젊은 남자에 한해 귀고리를 금지시킨다. 선조실록 6권, 선조 5년 9월 28일 신해 두 번째기사 조선 대에 들어 귀를 뚫는 귀고리가 아닌, 귓바퀴에 거는 귀걸이가 등장했다.[4] 선조실록 186권, 선조 38년 4월 19일 계해 두 번째기사에 '귀고리를 건 노파'가 언급되므로 여자까지 귀고리를 금지당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선조 30년(1597)에 남자의 귀 뚫은 자국을 보고 조선인인지 왜적인지 구분한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5년에 남자들의 귀고리를 금지시켰음에도 오랜 풍습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법으로 금지되기 전에 귀를 뚫었던 사람이거나.선조실록 93권, 선조 30년 10월 4일 신유 여섯 번째기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복은 속바지건 겉바지건 간에 바지를 포함하고 있고, 여러 겹을 껴입어 풍성하다는 특징이 있다. 복식사에서 한민족만큼 동형성을 지킨 민족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의상은 기모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자의 옷을 아담한 가슴에 적합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왔고 그 때문에 가슴을 압박하는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으며, 한복의 경우에도 아래쪽은 크고 화려하게 만들고 위쪽은 작고 간소하게 만드는 것을 여성용 한복의 기본적인 디자인 양식으로 삼고 있었기에 딱히 예외는 아니었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전통적 원형을 지킨 한복의 이야기이고, 현대에 들어 제작되는 개량한복이나 퓨전한복은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과 편리하게 맞추기 위해서 면 소재나 블라우스 소재 등 현대의 소재와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3. 역사

한복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구려의 벽화에서였다. 기본적인 형태는 상의와 끈, 하의, 그리고 모자에 두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이후 차츰 변화하여 상의가 짧아지고 허리에 매는 끈이 고름으로 간소화되었으며 두건이 다른 형태의 모자로 대체되었다. 이후 만주족의 복식에 영향을 받은 마고자와 서양 복식에 영향을 받은 조끼가 추가되어 현대의 한복 형태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한복을 크게 간소화한 생활한복은 고름이 단추로 대체되고 소매가 줄어들어 일상생활에도 입기 편하게 만든 형태이다.

여성용 저고리는 짧아지고, 치마는 반대로 길어져서 가슴 바로 아래까지 치고 올라갔다.

평복은 고유의 형태를, 관복 및 공복은 중국의 복식을 받아들인 이분적 복식제도였으나 상류층도 일상에서는 고유의 한복을 입었다.

제주도(탐라국) 지역은 육지와 떨어진 섬이라는 지형적 특색으로 인해 상당히 오랫동안 독자적이고 원시적인 복식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후한서》동이열전과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서해에 있는 큰 섬에 주호국(제주의 옛 명칭)이 있는데, 가죽옷을 입은 사람들은 윗도리만 걸치고 아랫도리는 입지 않으며 소와 돼지를 기르며 배를 타고 한(韓)과 교역한다"는 기록이 있으며, 제주 전통 모피·피혁류 복식 연구라는 논문에서는 '제주 중간 산간지역에서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는 1900년대 출생 제주도민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 상당히 최근까지도 가죽옷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이전 등의 기록을 통해 남방계의 영향이 짙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한반도에서 북방계 복식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일본 복식과도 유사성이 있으며, 일각에서는 호복, 한푸의 영향을 받기 이전 한국의 원시 복식의 형태를 제주도 복식을 통해 추론하기도 한다.

3.1. 시대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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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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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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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려도경에는 상류층 부녀자들의 의복이 서민과 다를 바 없었으며, 어떤 사람에게 '왕이 올 때에야 비로소 왕족들이 비단 옷을 입는다'고 들었다 언급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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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에는 남자 바지의 형태가 지금의 사폭바지로 달라졌다. 이전에는 여자 속바지와 같은 형태였다. 위의 조선 이전 한복들을 봐도 사폭바지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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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복식을 복원한 것을 보고 싶다면 이 링크를 참조하자

4. 다른 나라 전통복식과의 비교

일본기모노중국한푸만주치파오, 한국의 한복 중에 가장 견고하고 만들기 어려운 것은 한복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8]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기모노[9]의 코소데나 후리소데가 한 벌 통옷으로 되어있는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으며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사극, 게임이나 패션쇼 등에서 활발하게 복원과 재창작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삼국시대 한복의 경우 한푸(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와 기모노와 상당히 많은 접점을 지니고 있다. 이시절의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며, 백제, 가야 쪽 한복의 경우 아스카 시대의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연구되고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있다.

이는 2000년대 '쌍화차 코코아'라는 여초카페의 모 유저가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글(스크랩본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옷깃이 목을 바싹 감싸고 동정이 있는 것이 조선시대 한복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모노와 구분하긴 어렵다. 해당 글은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모노를 낮잡아 보면서 한복을 띄우는 한편, 한국 만화의 한복 왜곡 사례로 동양 판타지하백의 신부를 들거나, 허리띠를 뒤에 묶는 방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거나[10], 쾌자도포라고 하는 등, 한복에 대해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향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고 엽혹진,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퍼지면서 한복의 특징에 대해 알리는데에 공헌하는 한편 '한복=조선시대 한복'이라는 선입견을 고착시키는데에도 일조했다. 심지어 2010년도인 현재에도 여기저기 스크랩되면서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절찬리에 알리는 중이다.

원나라 때에 고려의 풍속이 당시 갔던 환관, 공녀들의 영향이었던 것이다.한나라 이후 중국의 복식은 옷 폭이 넓지 않고 통이 좁은 데 반해 한복은 고대부터 꾸준히 속옷을 여러 겹으로 받쳐 입어 풍성한 모습을 보인다. 옷 자체도 한푸는 통옷에서 출발해 하의에 치마를 입었고, 한복은 설령 치마를 입더라도 바지를 필수적으로 입는다. 중세 이후, 각국의 복식은 전체적인 실루엣 자체가 다르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고려양 한푸는 오군(袄裙) , 혹은 유군(襦裙)이라는 복식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한푸 문서에도 고려양 한푸가 오군(袄裙)이라 소개되어 있다. 유군은 원래 이렇게 생긴 옷으로, 짧은 윗옷에 긴 치마를 입는 복식을 뜻한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복식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지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생긴 유사점도 있다. 특히 관리의 공복이나 고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그렇다. 고려 이후로는 왕이나 관리들이 입는 공식 의관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거의 동일했다고 보면 되며[11] 왕의 관과 옷은 명나라에서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명나라후금에게 망한 후 강제 변발 시행과 치파오를 입게되고, 그 후 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들의 옷차림(단령과 사모)을 보고 중국인 (중에서도 한족)들이 중화의 아름다운 풍속을 조선에서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 이를 두고 한복의 기본 복식이 한푸에서 따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성여왕 때 중국 공복을 도입한 이후 고유 복식과 중국 공복이 공존하는 이분적 복식제가 유지되었다. 왕이나 관리들도 일상에선 기본 한복을 입었다. 또한, 명나라 복식의 경우 고려양의 영향 이후 폭은 좁아졌어도 한복같은 투피스 형태가 유지되었기에 그래 보이는 것도 있다. 애초에 한푸는 남방계 복식에서 시작하여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복식이고, 한복은 북방계 호복의 영향으로 발전했다. 기모노는 관두의에서 시작한 옷이다. 두 복식의 시작이 한푸라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4.1. 서양권의 인식

현대에 들어 한복이 한국적인 대표 문화 요소로 자리잡았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먼 듯 하다.

서구권에서는 y자 모양 옷깃의 동아시아 전통의상을 통틀어 기모노로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의 동양의 전통의상이라는 뜻으로 보통명사화 했을 정도이다. 이에 의해 한복이 기모노(그들이 생각하기에 동양 의상을 총칭하는)의 하위개념이라고 아는 이들도 많다.[12] 2008년 캐나다의 모 잡지에서 셀린 디옹이 내한해서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한복을 기모노로 표기했다. 다행히 국내의 모 블로거가 그에 대해 정정요청을 했지만, 아직 해외에서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Google에 Korean Kimono라고 쳐보면 한복이 나온다.

이미 패션 용어에서는 넓은 소매y자 옷깃, 허리띠 같은 부분을 통틀어 기모노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서구에서도 기모노가 대중화돼서 그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고대~근대를 아우르는 한복의 형태까지도 기모노로 인식하게 만들어 주객이 전도되는 안습한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미국 할로윈 축제 한국팀 참가 후기 포스팅에도 현재 서구권 일반인들의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적나라하게 나온다. 목가리개까지 상당히 적절하게 고증된 고구려 갑옷을 사무라이라고 하거나 한복전문가 자문 아래 철저히 고증하여 사극에서 사용됐던 한복을 게이샤 의상으로 부르는 등.

외국 특히 문화가 다른 지역의 전통의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13] 가장 인지도 있는 아시아 국가인 일본의 의상으로 부르는 것이겠지만, 올바른 명칭은 아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한류로 인해 한국이 아시아권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지고, 늘 생소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패션산업의 특성에 따라 패션디자이너들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고, 이에 따라 "한복 Hanbok"에 대한 인식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한복을 알리는데 가장 공헌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는 1993년 처음으로 파리 컬렉션을 시작한 이래 13년간이나 꾸준히 컬렉션을 해오며 서양 패션계에 한복을 알려왔다. 그녀의 컬렉션에 영감을 받은 프라다미우치아 프라다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방한시 그녀의 가게를 찾고 직접 한복을 입기도 했다.#

[image] 이영희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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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알마니 시계

미우치아 프라다

2011SS 뉴욕컬렉션에서 카롤리나 헤레라는 컬렉션 전체를 한복 모티브로 선보였는데, 여성한복만 아니라 갓을 비롯하여 다양한 요소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복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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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리나 헤레라 2011SS 컬렉션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 역시 2011SS 파리 컬렉션에서 한복 모티브의 드레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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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김미희(Kim MeHee) 한복디자이너가 활약하고 있는데, 그레이 아나토미에 출연하여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명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산드라 오가 여러 행사와 화보에서 착장하였고, 제시카 알바패리스 힐튼의 여동생 니키 힐튼 등은 내한할 때 김미희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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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해외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통한 새로운 디자인 시도들은 상당수가 오트쿠튀르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며, 서구권은 물론, 한국에서 입는 여타 브랜드들의 기성복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중국, 일본의 복식과 비교해보면 아직 많은 부분이 뒤쳐져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복의 고유의 패턴이나 실루엣이 패션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인 만큼 향후 인식의 변화와 한복의 새로운 재해석을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은 분명하다.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딕 아드보카트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에도 한복을 입었는데 저고리와 마고자를 바꿔 입었다고 한다.

5. 한복에 대한 인식

명절을 제외한 일상생활에서 전통복식을 입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주변 인식[14]이 없지 않다. 요즘 세대에서는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입는 옷으로 보기도 한다. 게다가 한복이라는 건 특별한 행사, 즉 결혼식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정도에 입는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인데 요즘은 명절에도 귀찮아서 안 입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도 정장을 입는게 흔하지만 애초에 서양옷인 양복을 정장이라고 칭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한국의 한복에 관한 인식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또한 한복 착용에도 남여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결혼식이나 명절, 기타 아주 중요한 행사 참석 시에 50대 이상으로 나이가 많은 여성은 한복을 착용하는 경우가 아직까지 굉장히 많지만, 상대적으로 남성은 착용하는 경우가 훨씬 덜하다. 사회적 시선도 여성에 비해 남성은 착용하면 약간 특이하게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 나라에서 고유 의상(custom clothing)은 특별하게만 입고, 구별시켜 부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통 의상을 구분 없이 전부 뭉뚱그려 '한복'이라 부르는 용법부터 이분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다. 현대에는 디자이너들이 여러 형태로 어레인지하는 동시에 한복 고유의 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그리고 서울신라호텔에서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고 식당에 들어가려는 것을 두고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라는 망언을 하며 식당 출입을 금지시켰으면서 정작 객실에 유카타를 비치해 놓아서 국민들의 엄청난 공분을 산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인이 기본적으로 한복에 가지고 있는 인식 자체가 마냥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즉 한국인들의 인식에서 한복은 특별한 순간에 입는 웨딩드레스 같은 옷으로 일상복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그야말로 박제된 전통문화에 불과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사실 한국 대중들이 알고 있는 한복의 모습은 상당히 조선시대, 정확히는 구한말 위주로 편향된 것으로,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시대를 불문하고 한복에는 매우 많은 변형이 존재한다. 하긴 애초에 한국 역사의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 옷만 입고 살았을리가 없고, 조선시대로 연도 별로 양식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경복궁에서는 한복을 입은 관람객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제도가 있는데, 신라시대 복식을 입은 모델이 '한복이 아니다'라고 해서 무료입장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물론 조선의 고궁과는 시기가 맞지 않는 신라 복식이야 그럴수 있다고 쳐도 조선 중기풍의 장저고리를 입은 관람객도 무료입장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

한복 연구가 주로 근대 위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과거의 복식 연구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15] 무덤에서 나오는 출토복식을 제외하면 직물로 만든 옷은 삭아버리거나 색이 바래서 오래 못 가므로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16] 여담이지만 일본 기모노 또한 대외에 알려진 것은 매우 정형화된 이미지이다. 사실 어느 나라인들 의상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두가지 이미지로 기억하지만.[17]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로는 북촌한옥마을, 경복궁, 인사동서울시 종로구의 관광지나 전주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한옥마을이나 고궁 등에서 분위기도 살고 요금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더. 한복 대여점도 많아져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일상에서도 한복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명절 아니면 입지 않는다는 인식이 많이 개선된 듯하다. 그래도 아직 기념사진용이라는 비판은 남아있다.

자국의 전통문화가 생활 속에 많이 보편화된 편인 일본이라고 할지라도, 도쿄 한가운데에서 평범한 날에도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보다는 평소에 기모노 입은 젊은이를 훨씬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일본 서브컬처 작품에서 여름 축제날 유카타를 입은 모습이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자국의 전통의상이 일상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한국과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요즘 젊은이들이 한복을 많이 입기 시작한 곳이 경복궁이나 북촌한옥마을 같은 곳임을 고려해보면, 사람들이 한복을 입는 것에 대한 인식을 더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한복을 입을 수 있는 축제나 장소가 더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1. 현대의 한복

근래의 한복들의 경우 전통한복과 달리 입고 벗기에 편리하도록 재래식 한복의 옷고름 대신 단추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재래식 한복에서 단추를 안 쓴 것은 아니지만,[18] 재래식 한복은 깊이 여며서 입은 상태에서 고름을 묶는 게 일반적이라 단추의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현대 개량한복은 활동의 편리함을 강조하다 보니 쉽게 벗을 수 있도록 예전보다 여밈이 줄고 고름은 전통적인 디자인인 맺음단추나 그 외 적절한 단추로 대체하고, 추가로 장식성을 강조하기 위해 단추가 만나는 가슴부위에 화려한 자수를 놓은 천을 덮기도 한다. 왕의 곤룡포나 관리들의 관복 단령에 있는 흉배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각형의 화려한 금실자수판을 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19] 이때 마과처럼 단추끈이 긴 것보다는 가사나 면제배갑의 단추처럼 단추끈을 짧게 하고, 단추끈과 옷의 연결부위에 자수 등으로 장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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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복으로 입는 쾌자.(출처)복잡한 옷고름을 자수와 맺은단추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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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사의 모습. 1890년 5월 10일자 <런던뉴스>에 실린 삽화라고 한다.* 옷고름을 단추로 대체한 모습이 눈이 띈다.

6.25 전쟁 전후 시기만 해도 시골에 가면 대다수 민중의 옷은 흰 한복이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갓과 도포를 입은 어르신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20]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양반가 어르신네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이 졸업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노래자랑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여성들이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 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였다.

원더풀 금요일에는 한복 전도사 남녀가 나왔으며 직업은 둘 다 회사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여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이외에도 한복을 입고 세계여행을 한 남성도 있었다. #

대학의 국악과에서는 실기 시험을 한복 차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대개는 학교에 비치된 한복을 입고 실기 시험을 치르지만, 만약 개인 한복이 있을 경우에는 개인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명절이거나 특별히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할 이유가 없는 한 한국인들은 입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 [21] 과거 개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22] 다른 많은 한국의 문화 요소가 그렇듯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라기보다는 그저 대외에 쇼윈도우식으로 한국을 돋보이려할 때만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박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옆나라 일본이 기모노를 하나의 패션으로 재해석해서 상품화한다거나, 유카타를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로 만든 것은 지금의 한국에서의 한복의 현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중학교고등학교에서 한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거의 한문 아니면 국사 선생님이다. 아니다 가끔 국어 선생님이나 일반사회 선생님들도 입으신다 한복 입고 수업하고 싶어서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하신 선생님도 있다 또한 전교조 소속 교사들도 한복을 많이 입는다. 대학교에서 한복을 입은 교수들은 거의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한문학과 교수님이다.

메가스터디수학 강사 현우진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한복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설날 아니었음?

이처럼 전통 복식을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다. 만주족의 창파오의 바지를 없애서 (말 그대로 하의실종 패션이다) 옆의 트인 부분을 통해 드러나는 맨다리에 포인트를 주는 중국의 차이나 드레스나, 길이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미니스커트로 만드는 일본의 유카타 등등...솔직히 한복만 그렇게 만들지 말란 법이 없다. 실제로 한복 패션쇼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한복을 다룬 보그지에서도 그런 스타일을 보여준 바 있다. (관련 포스팅)

그래도 드라마 《》을 계기로 퓨전한복 열풍이 시작되고 이후 걸그룹들이 명절이면 무대에 퓨전한복을 입고 나온다거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일상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충분히 입을 수 있는 한복들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등 지금도 꾸준히 현대적인 재해석과 어레인지가 시도되고 있으며,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 개량한 한복을 교복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간혹 가다 고등학생인데 희한하게 흰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100%이다.

설날이나 추석 연휴에 한복을 입고 롯데월드 등의 놀이공원에 가면 자유이용권 가격이 할인된다!

2019년 기준으로 한복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있는곳은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등이 있다.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의상과도 있었지만 2016년부터 패션산업과와 통합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5.1.1. 생활 한복

2000년도 들어 나오는 생활 한복(개량 한복)들은 1980~1990년대의 칙칙한 개량한복들과 달리 많이 세련된 편. 거기다 한복 자체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도 상당히 양호해져서 일본의 젊은 층이 기모노를 입는 수준으로 퍼진 것은 아니지만 명동이나 홍대를 위시한 서울 번화가에서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젊은 세대의 한복 사랑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특히 한복입기 좋은날, 한복 세상을 꿈꾸다 라는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한복을 즐겨입는 젊은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5년 8월 9일 시사매거진2580 '나는 '덕후'입니다' 편에서도 등장하는데 한복놀이단 단장인 권미루씨와 운영위원들은 디자인을 현대화시켜 소매가 시스루인 한복과 도드무늬/꽃무늬 한복 등을 입고 등장했다. 한 외국인은 한복 스타일과 무늬 신발의 매칭이 상당히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그 외에도 지나가는 모습으로 티셔츠같은 느낌의 한복이 등장했는데 금색으로 무늬를 넣은 저고리이지만 부담스럽기보다 고급스럽고 예쁘다. 참조할만한 기사, ##

예복용 한복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기성복으로 쓰기에도 충분히 손색없는 여러 디자인의 생활한복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격은 예식용 정장 한복에 비해 저렴하긴 해도 백화점 브랜드 기성복 수준으로 만만치 않은 편이다.

일각에서 아쉬운 점으로 꼽히는 것은 이런 브랜드의 대다수가 양장 패턴을 사용하거나, 아예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은 정도이기 때문에 평면 패턴으로 생활 한복을 만드는 브랜드는 정말 적다는 것. 생활 한복을 만든다 하여 찾아보면 대부분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고 차이킴의 허리치마[23]와 철릭 원피스를 모방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축에서는 양장 패턴을 도입한 개량한복은 한복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생활 한복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양장과 차별화가 잘 되지 않을 바에는 굳이 개량 한복을 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대적인 활동성 및 계절 감각(반소매, 민소매, 반바지, 스커트 등)을 차용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멋은 한복 특유의 느낌이 멀리서도 한 눈에 살아나는 것이다. 단순히 셔츠에 고름 좀 단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각종 게임에서 명절 기념 코스튬 및 스킨으로 출시하는 개량형 한복을 생각하면 된다. 한복 특유의 멋은 한눈에 살리면서도 반소매, 민소매, 구두 등의 현대적 실루엣 및 핏을 동시에 만족한 예가 많다. 이러한 디자인을 창작물에서만 적용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한다면 한복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단순히 양장에서 한복 요소만 추가한 것에서 더이상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후술하듯 한복이 박제 문화가 되지 않게 하려면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양장 패턴을 도입하는 것도 정말 훌륭한 선택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현대의 대중들에게 전통적인 스타일[24]이 어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복에 현대적 코드를 가미하는 시도를 격하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당장 그 '전통 한복'마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국의 복식 형태를 받아들이고 실루엣도 변해왔다. 심지어 구한말에는 그 일각에서 '이건 한복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옷처럼 서구 복식을 도입하기도 했고 한복에 서구 복식을 섞어 입기도 했다.[25] 또한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중국의 아름다운 전통의상으로 각광받는 치파오도 중국 고유의 전통적인 패턴은 결코 아니다. 이렇듯 한복에 양장 패턴을 도입했다고, 혹은 원형에서 많은 부분을 바꿨다고 해서 한복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고 변화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밖에 이런 생활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입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원단과 바느질이 미덥지 못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도 있다. 혹은 한복 특유의 기계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수제작으로 된 것이 많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많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함부로 입고 다니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아쉬운 것은, 위의 긍정적인 시도나 변화는 여성용 한복에 국한된 부분이 크다는 것이다. '왜 한복은 사랑받지 못할까? '라는 통계청 기사에서 나온 한복을 선호하지 읺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 남성용 한복은 매우 촌스럽다. 예식용도 잘 해봐야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정도이고, 생활한복은 나이 지긋하신 국사선생님이나 스님이 입을 법한 전형적인 형태를 지닌 칙칙한 개량한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참조: 네이버 쇼핑에 '남성 생활한복'을 검색해 본 결과)[26] 각종 드라마나 만화 등에서 도포쾌자, 철릭을 휘날리는 모습 등, 남성 한복이 사실상 모에 요소로 취급되는 것과는 정 반대인 상황. 물론, 예시로 든 외투까지 가게 되면 가격이 만만치 않게 되겠지만 여성용도 상황은 별반 다를 바 없고, 굳이 도포 같은 것을 고집하지 않아도 여성용 한복은 계속해서 현대적으로 재 창조되는 데에 반해 남성용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상기한 브랜드 리슬에서 저고리를 응용한 셔츠나 도포를 응용한 코트 등 남성용 한복 디자인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 한 두 명이 제작하는 것으로는 여성용 한복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다행히 남성 생활 한복도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철릭, 저고리를 본딴 셔츠, 두루마기를 본딴 코트, 한복 바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베기팬츠, 슬림핏 바지 등이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입는 대부분의 한복들이 기껏해야 구한말 스타일이고, 잘 해봐야 조선시대 스타일이라는 것도 지적할만한 사항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복식을 재현하기가 수월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점도 있으며, 중국의 한푸 입기 운동처럼 조선 한복을 배제하고 "우리도 고구려 한복을 입자!"는 식의 주장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런 아집도 위험하지만, 한복의 정의를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가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구한말 한복에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기술자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출토복식 재현을 제외하면 구한말 한복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재질을 전통적인 비단으로 하면 활동성이 제약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옛날에 농민들이 입었던 옷 같은 경우엔 재질이 빳빳하고 튼튼해서 동적인 활동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그런 빳빳하고 튼튼한 한복은 찾기 어렵고 양반들이 입었을 법한 고운 재질의 한복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세탁도 불가능하고, 무조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며 다림질까지 정성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에 드는 노력이 기성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향이 개량한복에도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이런 요소들도 (개량) 한복을 꺼리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5.2. 왜곡된 보수성과 억지 비난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를 일종의 성역으로 만드려는 인식도 존재하는지 다른 해외의 복식에는 유난히도 관대하면서 자국의 복식의 개량화에는 유난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한복을 조금만 노출도 있거나 짧게, 타이트하게 제작하기만 해도 한복이 아니라는 주장이 달리곤 한다. 걸레짝이냐, 기모노 같다, 기생한복 같다는 원색적인 비난은 덤.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무지에 더해 '감히 우리의 고결한 전통문화를 건드리다니'라는 식의 이상하게 왜곡된 보수성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사실 디자인이 너무 못생겨서 비난 하는 경우도 많다.-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K-1에서 짧은 저고리와 치마[27] 입은 라운드걸이 등장한 것에 네티즌들이 발끈한 사건이다. 일본 단체인 K-1에서 한복 변형 컨셉을 잡았다는 게 큰 이유였지만 일본도 자기네 전통의상을 만화 같은 곳에서는 잘만 개조한다는 점에서 과민반응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2017년에도 게임 오버워치한국인 캐릭터 D.Va 한복 스킨이 공개됐는데 아티스트 데이비드 강은 인터뷰에서 '한복 치마를 짧게 바꿔봐서 이게 괜찮을지 몰랐는데 다행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 큰 이슈가 없어서 안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경우는 다행히(?) 큰 이슈는 아니었지만, 2017년 현재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것들은 '자유' 롭게 표현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복이라는 의상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문명의 영역에 포함되는 본질이다. 고로 한복이라는 의상또한 서로 개개인이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을 하고 그리고 사회의 환경(여기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를 이해하는 수준을 의미한다)이 이렇게 개개인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움직일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구축되어야 개개인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저마다의 영역을 탐구함으로써 한복의 영역이 확장되고 깊어지며 풍성해지고 거시적 관점에서 발전하는것이다. 게다가 오로지 전통의 원형만을 고수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방법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결국엔 현대식 복장을 입고 다니고, 한복은 명절때 반짝입거나 그마저도 안입는 정도가 되었는데. 이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해서(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계속 변화해 왔지만) 전통을 잘 보존한다고 할수 있을까?. 그렇기에 개량으로 평상시에도 입어 볼만한 한복을 만들고 입는것이 오히려 전통 보존에 있어선 훨신 유효한 방법이다. 또한 한류 컨텐츠 시각으로 봐도 세계에 더 알리고 접하게 하기 위해선 현대적인 개량이 필수적이라고 할수 있다.

대중들이 한복에 대한 견해가 대단히 짧다는 것은 비단 개량된 한복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고려 이전의 고대 한복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하다보니 고대 한복을 표현한 그림이나 재현품을 보면 기모노 아니냐는 말이 꼭 나온다.[28] 비단 고려 이전 한복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한복조차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왜색이라는 주장이 꼭 따라붙곤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기모노에만 있는 형태'라면서 주장하는게 대단히 웃긴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2009년, 복식과 매듭장식, 문양 등에서 격한 왜색 논란이 일어났던[29] 다음 웹툰 환상스케치 당시 직접 각종 서적과 논문을 참조하고 이대 복식관이나 운현궁, 한복 전문점 등을 탐방하며 논란에 일일히 반박한 유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럼 어찌하여 왜색 복식 논란이 일어났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위에 사료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 유사한 것들도 많다. 헌데 이 유사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것을 먼저 접하고 한국것을 나중에 접했다면 당연히 일본것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만약 조선 초중기의 한복 양식으로(저고리는 길고 배래는 직선이며 소매는 길고 소맷부리통을 넓음)그렸어도 지적이 나왔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복 양식은 조선후기때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 환상스케치 복식논란. 그 오해와 진실.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에 등장하는 복식들도 고증이 제대로 된 경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접하기 쉬운 조선의 한복만이 한복으로 인식되어 고대 한복에 대한 인식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일본의 기모노가 만화나 게임 등의 매체에서 적극적인 대외 홍보를 통해 기모노와 디자인적 접점이 큰 고대 한복까지 이미지 잠식이 일어나버린 것.[30] 대중들이 한복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의 대표적인 예로 네이버에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웹툰 문아를 연재하고 있는 팬마 작가는 2014년 9월, "등장인물들의 옷이 일본 옷같다"는 댓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것에 분노하여 트위터에 '둥근 소매와 옷깃의 동정이 달린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라는 설명이 달린 고려 복식에 대한 간단한 도식화와 함께 "고중세 배경에 흔히 알고있는 한복이 나오면 그건 틀린 고증이다. 작품에 나오는 한복은 일본옷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복을 자주 그리고 직접 디자인해서 한복 업체와 콜라보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은 2017년 10월, 트위터를 통해 섹시하게 만든 한복을 만드는에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에 전통을 파괴한다거나 기모노같다는 억지 비난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전통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코드를 가미해서 생활에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사에 전통을 파괴했다거나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듯 '전통 한복을 조선시대로만 국한하는 것도 애매한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한복조차도 생김새는 계속 변했고 18세기 한복은 저고리가 짧아 섹시하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전통' 한복은 상당히 근대에 들어 정착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본문은 물론 앞서 흑요석의 트윗으로도 언급되었지만, 대중들은 전통 한복을 조선 시대 후기에서 구한말 스타일로 국한해 인식하고 있고 대부분의 업체가 만드는 한복 역시 그 시대 한복으로만 제한되어 있다. 현대의 한복은 조선 후기보다는 구한말 이후 스타일에 가깝다. 애초에 붕어배래는 조선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양식이고, 가슴 위로 올라오는 조끼허리풀치마는 개화기에 외국인 선교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고려 이전의 한복은 사극이나 행사 재현용으로나 만들어질 뿐이고 그조차도 당시의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이 문제는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이 고대 복식을 왜색으로 치부하는 부끄러운 현상에는 이런 편향성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

이와 같이 상당수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접하여 형성된 한복의 스테레오 타입'만이 전통 한복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던 것이라 할 지라도 익숙하지 않다면 한복이 아니라 몰아가며, 심지어는 일본의 옷이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치마가 짧은 경우 한복 치마는 저렇게 짧지 않다며 '일본 옷 같다'는 이야기가 더러 나오기도 하는데, 오덕 분야에서 종종 보이는 짧은 기장의 기모노도 원래 그렇게 짧은 옷이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 현대인의 관점에 따라 예쁘게 개량한 한 갈래일 뿐. 지금 우리가 한복치마를 짧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애초에 동양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전통의상 중 무릎 언저리로 올라올 정도로 치마가 짧은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동양의 한푸나 치파오, 기모노 역시 원형은 발목을 덮는 기장이지만 형태와 기장이 변한 것일 뿐이다. 치파오는 애초에 바지를 입는 형태였고. 더 안타까운 부분은, 이러한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의 정착과 오해가 한복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이런 몰아가기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벌어지기까지 했다. 2018년 서울 종로구청에서 각종 '퓨전 한복'들에 대한 고궁 입장권 할인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 이 때문에 2018년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아예 한복을 입고 출석해서 '한복의 기준을 너무 가볍게 다루려 하고 있다', '복식 문화의 절대적 보존이 아니라 효율적 보존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게 더 옳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문화재청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퓨전 한복'에게도 기존의 입장권 할인 혜택을 계속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6. 대량생산의 어려움

전통 한복은 옷본이 입체패턴인 양장과 다른데다 재단이 복잡하며,[31][32] 만드는 방식이 손이 많이 가고[33] 만드는 법 자체가 어렵다. 의외일지 모르나 반드시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태가 나는 옷이기까지 한지라 여러모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를 통해 양산되는 한복은 백이면 백 양장식이다. 얼마든지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양장 옷본을 바탕으로 한복처럼 보이게 디자인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려면 사람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남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치마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다른 링크)

7. 한복의 실루엣

흔히 한복 하면 여성용 한복의 경우 특히 몸매를 숨기다 못해 포대자루같은 실루엣으로 인해 모에화 등, 매체의 창작물에 도입하기 부적절한 옷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치파오, 아오자이 같은 경우는 몸의 태를 드러내고, 기모노는 선이 딱 떨어져서 한복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리기 수월한 편이지만, 한복은 몸의 태를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한복의 의상 패턴을 파악하지 않으면 특유의 선을 살릴 수 없다는 주장이 있으며,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복장이라 천을 줄이지 않으면 섹시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기껏해야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 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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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 저고리의 변천사

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패션쇼에서는 이를 노리고 아예 모델의 가슴 아래의 둥근 선이 완전히 노출되게 디자인된 무지 야한 한복도 있었다(…) 사실 가슴가리개를 해도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경우 겨드랑이가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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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풍속화 연소답청에 표현된 가슴가리개.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저고리가 너무 짧아져 이 속옷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르자[34] 가슴가리개는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가리고 조이는, 맨 아래에 착장한 한복 속옷이다.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치마의 말기 부분이다. 한 무식한 사람은 이를 기모노의 오비(허리띠)라며 까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기생들은 여기에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수를 놓은 가슴가리개는 전해지는 유물은 없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현대에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애들도 얄짤없어서, 이제 겨우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10대 초반 소녀의 가슴을 바싹 조여놓으니 지금 생각하면 성장에도 방해가 되었을 듯. 그래서인지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치마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맟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가 생기니, 이젠 죄지 않으면 그대로 치마가 밑으로 훌러덩 벗겨진다. 그러니 목숨 걸고 조여야 한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한 거다. 조끼허리 혹은 어깨허리 [35]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가리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한 것도 있고 체조와 농구 같은 운동를 하거나 뜀뛰기를 할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렸기 때문에 개량해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는 과정 중 기존 어른들의 반응은 당연히 '쯧쯧, 요즘 애들은 발랑 까져서…'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상하의 구분선을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물론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같다'면서 경계하며 대차게 까기도 한다.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36]를 응용한 한복 원피스나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최근 2010년대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생활한복이나 개량한복의 치마가 허리에서 여며지도록 짧아지고, 저고리 길이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이니 구한말의 이러한 디자인 변화를 마냥 비난하기보다는 현대의 한복 디자인에 다양성을 부가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8. 한복/종류

문서 참조.

9. 장신구

10. 머리

가체, 댕기머리, 상투, 생머리 문서 참조.

11. 소매 종류

한복 소매는 크게 좁은소매(직배래), 넓은소매(대수, 활수), 두리소매(콩태소매), 둥근소매(붕어배래)로 나뉜다. 한복은 알타이계 호복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벽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좁은소매가 주류였다가 한나라 계통 복식인 한푸(漢服) 상의의 활수(闊袖) 형태를 받아들이게 되어 좁은 소매와 넓은 소매가 공존하게 된다. 활수형 복식의 대표적인 예가 원삼이다. 좁은소매 또는 직배래는 말 그대로 현대 기성복 소매처럼 좁은 직선 형태 혹은 소매 부분으로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넓은소매는 사각형 혹은 겨드랑이 부분에서 소매 부분으로 사다리꼴을 그리는 사각형을 하고 있다. 두리소매는 넓은소매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소매 아래로 늘어진 부분이 막혀있는 형태로 간단한 소지품을 담을 수 있다. 둥근소매 혹은 붕어배래는 소매가 붕어의 배처럼 아래로 처진 곡선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흔히 한복의 곡선미를 강조하면서 한복 특유의 둥근 소매를 한복만의 것이자 모든 한복의 특징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우가 잦으나 이는 심각한 오류이다. 조선 이전의 한복은 크게 직선 소매와 넓은 소매만이 나타나며, 붕어배래는 조선시대 17세기 철릭에 관한 연구에서는 임진왜란 전후로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복식 섹션에서는 붕어배래가 1910년대에 정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밖에 붕어배래가 1900년대에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두 의견의 연대가 상당히 차이가 나는 편인데, 그렇다 해도 한국 복식사에서 붕어배래가 나온 시기가 조선시대 이후라는 것은 분명하다. 1900년대에 등장했다는 주장은 붕어배래가 널리 유행했던 시기를 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붕어배래가 유행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점차 활동성을 중시하게 되며 한복업계에서도 직선형의 배래로 한복을 제작하는 예가 많아졌다.

12. 옷깃 종류

13. 바느질

14. 원단

15. 입는 순서

15.1. 전통 방식

여자는 바짓부리를 정돈하여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버선을 언제 신어야 한다고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가난한 평민들이 저걸 다 챙겨입기에는 무리가 컸던데다 복식금제로 인한 제약 역시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 입는 옷에 따른 변화도 당연히 있었다.

원래는 치마를 오른쪽 자락이 위쪽으로 가게 입는 것이 흔했으나,[49] 개화기 쯤부터 양반은 왼쪽 자락을 위로, 기생 등의 특수계층이나 천민은 오른쪽 자락을 위로 입게 되었다고 한다.

15.2. 현대

16.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17. 관리하는 법

18. 말기와 가슴가리개

말기가슴가리개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치맛허리/바짓허리라고 사이시옷을 쓸데없이 넣어 표기하지 않는다. 또한 '고름'은 상의를 여밀 때 쓰는 끈을 지칭하는 것이지, 말기에 달린 끈을 고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치맛고름/바짓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 책에도 없고 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남자 바지를 여미는 끈은 말기에 같이 달린 끈이 아닌 분리가 가능한 허리띠이며,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에 달린 끈도 그냥 '바지끈', '바지말기 끈' '바지허리 끈'으로 부르지 바짓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는 없다.

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국어사전)이다.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 별개의 의복이 아니다.

말기는 저고리에 동정, 길, 섶 등이 있는 것처럼 하의 속옷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치마에서는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조끼허리식 풀치마의 경우 어깨끈이 달린 그 부위. 이 경우 말기 부분이 가슴에 온다. 이 조끼허리식 풀치마가 혼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래 전통적인 치마는 띠허리풀치마라 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어깨끈은 달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말기는 허리에 위치했다. 말기에 두르고 남는 말기끈[53]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성을 보이기도 했다.[54] 한복드레스에서 상의 부분으로 활발히 개량되는 것은 이 말기 부분을 가슴가리개처럼 보기도록 굉장히 넓게 개량한 말기치마를 다시 개량한 것이다.

가슴가리개는 가장 안쪽에 착장하는 상의 속옷이다. '대자'라고도 부르는 그것. 위의 속옷 단락이나 항목 참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비 이방자여사의 가슴가리개

가슴가리개가 말기에 흡수되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가슴가리개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치마말기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치마는 허리에 두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기는 가슴가리개의 아래쪽 절반 가량과 겹치게 된다. 게다가 말기는 허리를 고정할 정도면 됐고, 속옷 역할을 할 정도로 넓지 않다. 다시 한 번 작성하지만,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에 천을 다시 덧대어 허리에 두르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따로 분리되거나 속옷과 흡수된 적 자체가 없다. 저고리에서 동정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애초에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양 선교사인 이화학당의 교장 미스 월터에 의해 서양 복식 재단법을 일부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이전 문서에서는 애들이나 입던 것이라고 서술했는데 문호 개방 전 조선시대에는 애들도 입지 않았다.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에 생긴 것으로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 받아들여 입었던 것은 맞다. 애초 그들을 가르치던 서양인 선교사가 고안하여 전파한 것이다. 조선식 의복의 가슴가리개와 그 위를 여러 겹 동여매는 하의의 허리말기가 신체를 압박하여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활동성을 저해한다고 여겨, 어깨끈이 있고 가슴을 안정적으로 감싸 주는 조끼허리를 고안하여 보급한 것이다. 조끼허리의 패턴 자체가 서양 의복의 몸통(토르소)을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입체재단의 일부이다. 현대까지도 이런 조끼허리식 풀치마를 주로 착용하는데다 옛 복식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흉내내겠다며 말기의 폭을 대폭 늘린 말기치마나 치마 위에 두르는 말기대같은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니 이런 혼란과 착오가 생기게 된다. 더군다나 말기치마와 말기대는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흉내내려는 목적에서 탄생되었으나,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칭하는 말기가 버젓이 이름으로 붙어버렸다.[55]

예로부터 입어온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띠허리식 풀치마로, 허리에 두르는 랩스커트 형식이었다.[56] 현대에 주로 입는 가슴 위로 올라오고 어깨끈이 달린 것은 조끼허리식 풀치마로, 띠허리식 풀치마에 비하면 비교적 현대에 생긴 것이다.[57] 그러므로 원래 말기 부분은 허리에 오게 된다. 한복은 전통 의상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기 때문에 현대에 입는 한복이 아닌 전통적인 한복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한복을 입더라도 가슴가리개를 비롯한 전통 속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조끼허리식 풀치마형으로 나온 샤 등의 재질로 만든 속치마를 많아봐야 두 겹 입는게 전부다. 저고리도 전통식과 양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니 한복에 관심이 있더라도 전통 한복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한복은 원래 하의는 허리에 둘러서 입지, 가슴 부근이나 그 위로 올라오지 않는 복식이다.

말기는 애초에 섶, 길, 고름, 동정, 화장, 선처럼 의복을 구성하는 부분요소의 이름이기 때문에 독립된 별개의 속옷과 혼동되거나 합쳐질 이유가 없다.

치마말기는 엄연히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슴가리개는 브래지어,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다. 벨트나 단추가 있는 그 부분.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 매어 치마나 바지를 여미고 고정한다.

19. 현대에 들어 생긴 것

전통 한복은 아니지만, 최근 퓨전한복 업체나 동호인들에 의해 생겨나는 복식과 부속품들이 있다.

2000년대 이후의 사극들은 부정확하고 이상한 고증으로 인해 다 큰 성인이 배씨댕기를 하고 나오더니[59] 이젠 아예 배씨댕기도 뭣도 아닌 고급 화과자같은 것을 머리에 얹고 나온다. 이것도 모자라 앞의 고급 빵떡과 첩지를 합치더니 여기에 가체까지 합쳐버렸다. 이 정체불명의 가체빵떡첩지배씨댕기는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거대해지는 실정이다. 상투같은 경우, 상투관을 쓰고 나올 때에는 안채에서 몰래 꺼내온 듯한 화려한 비녀로 장식하는 것은 기본에[60] 아예 쌍상투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상투는 중국 상투와 달리 단단한 매듭이라 어지간히 머리숱이 적지 않고서는 가운데에 비녀를 가로지르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투를 틀면 고정시킬 목적으로 동곳이라는 일종의 상투용 비녀를 세로로 꽂는다. 원래 머리숱 많으면 상투를 두 개 틀었다. 젊은 사람은 특히 쌍상투가 흔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와 미적인 이유로 인해 배코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댕기 역시 정석으로 드리지 않으며, 두 번 접어 고무줄로 고정시키는 게 전부다. 옛 복식과 두식 고증은 이미 다른 고증들과 함께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간 지 오래다.

조끼허리식 풀치마도 모자라 현대에 만들어진 말기치마가 사극에 등장하는 실정인데다 한복 속옷도 특별히 속옷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이상 재질의 패티코트같은 현대의 한복 속치마를 입고 나온다. 현대의 패티코트를 입은 것과 전통 속옷을 갖춰입은 것은 태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상술했지만 가슴가리개에 수를 새기는 것 역시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이지 고증에 맞지 않다. 고려나 삼국시대가 배경인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중국의 한푸나 시대를 초월한 국적 불명의 의상이 버젓이 등장한다. 2000년대 이후의 사극은 복식과 건물, 음식, 채소 고증조차 당당히 씹어먹으며 현대에 생긴 어휘가 사극에 등장하는 판국이다. 옛 복식이나 두식을 공부한다고 사극을 보면 정말 낭패다.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쉽다. 커뮤니티에서도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상당히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게 낫다.[61]이외에도 여기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참고하자.[62]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왕실문화도감- 조선의 왕실복식이라는 책도 좋은 자료로 참고할만 하다.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황실 복식이긴 하지만 왕족들도 일과가 끝나면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 양반계층 일반 복식 참고용도로도 사용할만 하다.

20. 대중문화 속의 한복

한복 코스튬을 한 벌 줬다. 훨씬 이전에 출시된 코스튬 중에도 ‘강강수월래’라는 한복 코스튬이 있다.

20.1. 한복을 입은 캐릭터

20.2. 한복 일러스트

21. 관련 문서

2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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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위에는 저고리, 밑에는 바지. 중국의 한푸는 기본적으로 위아래 한 벌인 통옷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 탓에 대체로 상의하상(上衣下裳)이라 한다.
  2. [2] 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여자 한복은 치마 안에 바지를 입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3. [3] 부수적으로 목걸이, 팔찌, 가락지, 반지 등의 장신구도 착용했다. 이 역시 남녀불문이었다.
  4. [4] 맞춤법 상으로는 귀고리와 귀걸이를 같게 볼 수도 있지만, 역사 쪽에서는 귀고리는 귀를 뚫고 착용하는 장신구를, 귀걸이는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거는 장신구를 뜻한다.
  5. [5] 백분을 바르고 붉게 화장한다는 뜻으로, 검은 눈썹 화장인 미대(眉黛)(눈썹 화장을 중시해서 십미도(十眉圖)도 있었다.), 이마 가운데에 그림 그리는 화전(花鈿),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 부분을 황색으로 염색하는 액황(額黃), 볼을 붉게 칠하는 홍장(紅粉), 보조개가 있는 것처럼 그리는 면엽(面靨), 볼에 피가 흐르는 것처럼 그리는 사홍(斜紅), 이마, 콧등, 턱을 하얗게 칠하는 삼백(三白) 등이 있었다. 사진 사진2 사진3 중국 시대별 입술 중국 시대별 눈썹 당나라 시대별 눈썹1 당나라 시대별 눈썹2(앞과 이어짐) 당나라 눈썹 화전 화장 순서 홍장 재현
  6. [6] 고려는 중국의 영향으로 왕족의 복식도 몽골풍과 고려풍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는 귀족들도 마찬가지라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분적 복식제를 유지하면서도 귀족복식 내부에서는 고려식과 몽골식 등으로 나뉘었다.
  7. [7] 또한 통일신라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 고려는 이름은 고구려에서 따왔지만 정작 신라를 계승하는 국가였다. 통일신라는 김춘추가 당의 복식, 제도 등을 긁어오다시피 들여온 국가였다.
  8. [8] 한복을 처음 접한 일본인들이 제일 놀란 것이 성큼성큼 걷는 여성들이었다는 말도 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은 옷의 특성상 종종걸음을 하게 된다.
  9. [9] 남성용 기모노, 쥬니히토에, 무녀복은 한복처럼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다.
  10. [10] 한국 내에 매우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이다. 다음 웹툰의 '환상스케치'라는 작품에서 비슷한 이유로 왜색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그것을 보다못한 어떤 유저가 직접 자료를 조사해 비난에 대해 일일이 반박한 사례가 있다. 실제 한복에서 허리띠를 뒤에 묶는 경우는 흔한데, 삼국시대 복식은 허리띠를 앞이나 뒤에서 매듭짓는 게 일반적이었고, 링크에도 나와있듯 정재복(呈才服)의 대대 역시 뒤로 묶는다.
  11. [11] 세부 형태는 한복과 같았으나, 외형은 중국에서 도입할 때의 모양새가 유지되었다.
  12. [12] 단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 학술적으로 동양의 전통의상이란 개념이 기모노로 보통명사화가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모노' 자체를 일본의 옷뿐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통 의상을 총칭하는 뜻으로 쓴다면 그들이 '기모노'라는 단어를 쓸 뿐, 내포하고 있는 의미 자체는 틀린 것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그렇더라도 동아시아 전통 의상의 종주국이 일본일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바로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13. [13] 한국인 중에서 유럽의 각각 서로 다른 전통 의상들을 잘 구분해내고 해당 국가와 지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4. [14] 극단적 민족주의자나 사이비 종교(특히 대순진리회 계열) 소속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15. [15] 우리나라 전통 복식학자 중에는 석주선이 가장 유명한데 소장품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있다. 안타까운 건 1.4 후퇴 때 피난하면서 서울 수복 직후 살해당한 오빠 석주명이 평생 모은 나비 표본을 가지고 피난 하느라 조선 후기의 복식유물을 집에 남기고 갔는데 피난 후 돌아오니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16. [16] 주로 남아있는 자료는 글인데 고분 벽화라도 나오면 잭팟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글로 아무리 설명해봐야 그림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날 사서 특성상 의상 같은 것은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는다. 삼국시대까지 가면 고분 벽화는 현대의 사진 자료에 준하는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17. [17] 특히 동아시아 나라들의 복식이 현대의 개성 있는 전통복식 이미지로 고착된 것은 기껏해야 수백 년 전이지 그 이전엔 정말 비슷비슷하게 생겨 먹었었다. 애초에 서로 교류를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해온 옷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복 인식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도 천 년 전 복식은 자기 나라 것인지 이웃 나라 것인지 구별을 못한다.
  18. [18]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근대에 등장한 마고자 단추를 떠올리지만 조계종 스님들의 가사(태고종 가사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맺은단추가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매듭으로 만든 맺은단추(이건 삼국시대 단령과 같이 들어왔다고 추정된다), 원삼에서 사용한 원삼단추(암단추와 수단추로 나뉘어 있으며, 수단추로 암단추를 이어 고정한다. 고정이 끝나면 단순한 고정장치가 아닌 하나의 예쁜 장식이 된다.), 그 외에 수많은 단추 유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추 자체는 예전부터 존재하였다.
  19. [19] 단추 한두 개 만으로 잘 여며지지 않을 때는 재래 한복처럼 허리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더 단다. 다만 맺음단추를 더 다는 옷들의 경우 차이나 칼라에 맺음단추를 죽 달아 마과랑 구별이 안 가는 것도 있다.아예 제작 자체를 중국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함정
  20. [20] 지금은 드물지만 과거에는 서울의 대치동이나 잠실, 홍대앞에서까지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21. [21] 다만, 이는 유치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생일잔치를 2~3개월에 한 번씩 할 경우 생일이 훨씬 지난 사람이 한복을 입고 생일잔치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22. [22] 절에서 템플스테이할때 일반인이 입는 경우로는 지금도 많이 쓰인다. 혹은 무속인들이나 나이든 불자들이 종종 입기도 한다.
  23. [23] 원래 띠허리풀치마는 구멍이 없다.
  24. [24] 심지어 그 '전통적인 스타일'이라고 인식되는 한복 형태도 20세기에나 성립된 것이다.
  25. [25] 예를 들어 한복에 주머니가 달리기 시작한 시점은 구한말이다.
  26. [26]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은 더더욱 한복을 기피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27. [27] 조선 말기 양식의 저고리와 평민들의 작업용 치마인 거들치마를 재해석한 디자인.
  28. [28] 물론 기모노의 동아시아 전통의상 이미지 잠식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라 서구권의 사람들 역시 고대 한복을 기모노로 인식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중국인들도 자국의 한푸를 보고 기모노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29. [29] 물론 반박글이 올라온 뒤 왜색 소리가 쏙 들어갔을 정도로 사실 왜색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30. [30]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재현된 고대의 한푸를 보고 상당수 중국인들이 한복이나 기모노 아니냐며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31. [31] 서양 복식처럼 다트(평면인 천을 입체적인 몸에 맞추기 위해 일정 부분을 긴 삼각형으로 주름 잡아 꿰매어 줄이는 것.가슴 다트)를 넣어 곡선을 만들지 않으며, 평면재단이다. 당연히 겨드랑이의 암홀이 없다.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바닥에 놓으면 납작하게 붙는다. 시접을 모두 안감 안으로 넣는다는 점 역시 큰 차이다. 재단의 차이로 인해 옷 주름의 차이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입었을 때 어깨와 겨드랑이, 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복은 겨드랑이에서 어깨까지 八자 모양의 주름이 생기며, 어깨 부분이 뾰족하게 각지지 않는다. 팔 부분에도 여러 주름이 생긴다. 이는 전통 저고리와 양장 저고리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32. [32] 여자 민저고리 기준으로 양쪽 소매와 뒷길 두 장, 앞길 두 장, 깃, 안섶, 겉섶, 고름이 필요하다. 회장저고리인 경우 그 부분을 따로 재단한다. 색동저고리 역시 색동을 각각 재단하기 때문에 조각이 더 늘어난다. 치마의 경우 몇 폭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바지는 허리, 마루폭 두 장, 작은사폭 두 장, 큰사폭 두 장이 필요하다. 하의의 경우 말기를 덧대고 고름을 달기도 한다. 여자 속바지류는 말기와 고름을 달지만 남자 바지는 허리끈으로 여민다. 허리에 고리를 달아놓고 허리띠를 끼우는 것은 서양의 벨트를 차용한 개량식이다.해평윤씨 묘역 출토 사폭바지. 염의로 쓰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남자아이 바지
  33. [33] 도저히 기계로 하기 어려운 작업이 많다. 전통방식의 바느질은 곱솔이라고 하는 천의 이어붙임을 이용하며, 이는 박음질을 3번하여 연결된 부위를 매우 짧게 잘라 이어붙이기 때문에 자동화가 어렵고 재봉틀을 쓰더라도 자를 때는 사람이 집적 해야한다. 여분을 남기지 않아 튿어진 경우 수선하기 어렵다.
  34. [34] 원래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35. [35] 어깨치마라는 명칭은 현대 동호인들이 간편히 부르는 명칭이다. 말기 부분을 조끼로 만든 치마는 구한말에 생겨난 조끼허리 풀치마와 어린 아이들이 입는 조끼허리 통치마로 나뉜다.
  36. [36] 어깨끈도 있겠다. 원피스 형태겠다. 저고리만 제거하면 그야말로 우아한 드레스가 된다.
  37. [37] 선조 대에 금지되었다. 1차로 금지된 것은 선조 6년인데, 30여 년이 지난 임진왜란 때에 조선과 일본 양쪽에서 귀 뚫은 자국으로 조선인을 구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38. [38] 국어사전에서는 귀고리와 귀걸이를 같게 보지만, 사학계에서는 귀고리는 귀를 뚫고 착용하는 장신구라 하고, 귀걸이는 귓바퀴에 걸치는 장신구를 가리킨다.
  39. [39] 다만 가체 항목에도 언급되듯 가체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지라 사극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심한 통증을 겪거나 목디스크가 생기는 등 건강상의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출연자 보호 차원에서 기생 역할 정도를 제외하면 고증을 포기하고 가체를 이런 머리장식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40. [40]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제외하면 적의 이외의 궁중여성복에 용보를 달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지는 않다.
  41. [41] 원래 옷에 금실을 직접 수놓았다.
  42. [42] "검소하고 소박한 것을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급선무인데 국가가 문승(文勝)의 폐가 있는 듯 하여 항상 염려가 된다. 단자사라(緞子紗羅)는 우리 나라의 것이 아니며, 존비등위는 금은각대(金銀角帶)로 정하고 있으니 굳이 흉배를 하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43. [43] 채금석 『전통한복과 한스타일』-p.200 '유물·문헌을 통해 본 고려시대 저고리' 중에서.
  44. [44] 기사에는 깨끼의 원초적 형태라 한다.
  45. [45] 이 링크를 일부 참조했다
  46. [46] 호다: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 (네이버 국어사전)
  47. [47] 위사. 가로실
  48. [48] 경사. 세로실
  49. [49] 딱히 정해진 게 없었다.
  50. [50] 일반적인 고름은 외고름이었다.
  51. [51] 조선 말기에 천민은 치맛자락을 오른쪽으로 여미고, 고름도 오른쪽으로 고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방향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치마나 바지를 여미는 방향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방향을 신경쓰지 않았다.
  52. [52] 여기서 그냥 잡아빼지 않고 고를 만들면 쌍고름이 된다. 허리띠를 맬 때에나 사용하는 방식이다.
  53. [53] '치맛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의상사에서 쓰지도 않는 정체불명의 말이다. 쓰지 말자. 흔히 가슴가리개를 치마말기로 서술하며 가슴가리개의 끈을 말기끈으로 서술하곤 하는데,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54. [54] 말기끈은 조끼허리식 말기가 생겨난 후로 말기끈이 작고 짧아진 1960년대 이후 향대, 혹은 눈물고름이라는 이름의 장식품으로 나왔다. 시집가며 이걸로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허구. 현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치맛'고름'도 아마 이 눈물'고름'이라는 허구의 장식품이 생겨난 이후로 오개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말기끈은 그냥 끈일 뿐 고름이 아니다.
  55. [55] 말기는 치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치마를 보면 속옷 겸용이라 하기에는 말기 부분의 폭이 매우 좁다. 딱 치마끈 정도의 폭.
  56. [56] 어린 아이들은 실용성을 이유로 조끼허리식 통치마를 입었다-지만 이것도 구한말에 조끼허리가 보급되고 나서 생긴 것이지, 조끼허리식 말기 보급 이전에는 애들일지라도 띠허리식 치마를 입었다. 애초 서양식 재단법을 모르던 시기인데 어떻게 서양 의복의 토르소 재단법에서 나온 조끼허리를 만들어 입었겠는가?
  57. [57] 개화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에 의해 생겼다
  58. [58] 안으로 들어가는 자락의 끈이 위쪽에 달린다.
  59. [59] 배씨댕기는 원래 서너 살 짜리 아이들이 착용하는 장신구다.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면 성인이 젖병 들고 삑삑이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자.
  60. [60] 상투관은 상류층의 전유물인데, 특히 머리숱이 적은 노인들이 사용했다.
  61. [61] 한복에 대한 최초의 책은 이여성의 「조선복식고」이다. 현대에 출간된 대다수의 한복 서적 역시 제작 관련이 아닌 이상 조선복식고를 참고하였다. 그러나 조선복식고 역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오류가 지적되는 상황이므로 폭 넓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간혹 일부 서적은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서술을 싣는 경우도 있어 역사와 고고학 및 복식(한복, 한푸, 북방계 호복, 남방계 복식, 기모노 등 복식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다소 곤란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러한 책은 대부분 전문도서라 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술술 읽을 난이도가 아니긴 하지만.
  62. [62] 다만 병자호란 이후에서 조선 말기 의상들이 대부분이라 조선초기 및 중기의 궁중복식을 찾아보는건 불가능하다.
  63. [63]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다.
  64. [64] 어나더 버젼 한정.
  65. [65] 맥시멈임팩트2 새로운 복장 한정.
  66. [66] 종종 이 분이나 이 분처럼 한복과 현대 복식을 결합한 옷도 보인다.
  67. [67] 인게임에 등장한 순서이며 K국(한국)의 전차소녀이자 전투복이 한복이다.
  68. [68] 한복만 입고 다닌다. 변장할 때에나 사복으로 갈아 입는 편.
  69. [69] 취미가 개량한복 만들기이며, 명아연납작이에게 한복을 입힌 것도 그녀다. 하지만 본인이 입고 있는 옷은 한복이라기보단 무복에 가깝다.
  70. [70] 물론 스킨으로...
  71. [71] K2는 개량한복 형태, K5는 전통한복에 가까운 형태.
  72. [72] 세종대왕급 구축함네임쉽인 세종대왕함을 모에화한 함희다.
  73. [73] 스킨으로 한복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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